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 시를 쓴 사람

어쩌면 사랑에 목마른 젊은 시인의 치기가 보여주는 저 문장을 쓸 때, 가난해도 백석은 행복했을 것이다.

사랑을 하고 시를 쓸 수 있었으므로...

 

 

"서과나무에 사과가 안 열린다면, 사과가 열매를 맺었다고 쓰면 되는거야. 알겠어? 그게 바로 창조의 원리거든. 그걸 잘 알아야 해. 우리 문학가들은 창조자들이야. 당이 원하는 인간이 있다면, 우리는 그걸 만들어내는 거야. 그게 우리가 하는 문학이야. 알겠어? 자네는 시로 그 힘을 보여야 해.‘- P150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정해진 시어들, 아니 선동구호들만으로 시를 쓰라는 요구를 받는 시인이라니.

 

"저 역시 시를 썼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말들은 제 안에서 점점 지워지고 있습니다. 음식 이름들, 옛 지명들, 사투리들..- P162

시인이 시를 쓸 수 없게 만드는 사회에서 백석은 언어 자체를 잊어버려간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하고 안타까웠다.

한국전쟁 이후 온 국토가 폐허가 된 북한에서 중요한 것은 아마도 생존이었을 것이다.

공습의 공포, 전쟁의 공포, 모든 인민이 멸절될 수 있다는 그 공포는 아마도 절망이었을 것이다.

그런 절망은 거의 항상 절대자에 대한 쉬운 열망을 가져온다.

인간의 나약함은 절대적인 절망상황에서는 너무도 쉽게 비상식적인 권위를 희망으로 여긴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처참한 경제의 몰락으로 고통받던 독일인들이 히틀러를 창조했고,

한국전쟁 이후 폐허의 공포가 김일성을 창조했다.

어디 그 뿐이랴?

강대한 자본주의 국가에 위협받던 소련에서는 스탈린의 독재가 용인됐고,

마오쩌뚱은 문화혁명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그곳들에서는 항상 문학이든 예술이든 존재하기 힘들다.

인간의 마음을 규격화하는것이 어떻게 예술과 양립할 수 있을까?

 

김연수의 소설 일곱해의 마지막을 읽으며 시를 잃어가는 시인 백석을 만난 밤

지금의 한국사회를 생각한다.

코로나란 공포가 다시 우리를 강타하고, 불신과 증오가 난무하고, 이 사태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고 싶은 사람들.

처음엔 신천지였고,

지금은 사랑제일교회고.

증오는 나아가 어제 오늘 진행된 온갖 공무원 시험에 대한 비판으로,

개학하는 학교로, 정부는 왜 셧다운을 하지 않는지 비난에 비난....

 

신천지나 사랑제일교회, 광복절 집회를 통해 바이러스를 퍼뜨린 세력들에게는 구상권을 청구하면 된다.

그리고 집회를 허가한 공직자들은 공식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사태가 기독교 세력 전체에 대한 증오로 연결되어서는 안된다.

이러다가 한국에서 기독교 금지법안이라도 만들라고 요구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분노와 화가 어떤 존재 전체의 금지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아 제발 내가 기독교인이라서 이런 말을 한다고 오해하지는 말자.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다만 모든 종교를 존중하여 절에 가도 교회에 가도 이슬람 사원에 가도 기도를 할 뿐... 그 종교의 성인들은 다 인간다운 사회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라고 믿는 사람일 뿐이다.)

 

모든 증오는 결국 시인이 시를 쓰지 못하는 사회로 나가는 첫걸음이다.

백석이 시를 쓰지 못한 것은 그가 권력이 원하는 사회의 일률적인 규격을 맞출 수 없는 영혼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세력에 대한 일방적인 증오와 폭력은 곧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만큼 전염의 힘이 세다.

인간의 힘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직면했을 때 인간은 언제나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밀고 싶어해왔다.

지금은 기독교를 증오하지만, 이 사태가 더 걷잡을 수 없어진다면 그 다음에는 누구를 증오할까?

 

시인은 언제나 시를 쓸 수 있어야 하고, 삶은 언제나 계속되어야 한다.

시와 삶을 지속시키는 건 언제나 증오나 배제가 아니었다.

시를 쓰지 못하는 백석의 삶을 오늘 다시 살펴보는 김연수의 책이 나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지만, 우리 공동체의 연대가, 다른 사람을 살피는 배려가 우리를 시와 삶으로 이끌어갈 것임을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과나무에 사과가 안 열린다면, 사과가 열매를 맺었다고 쓰면 되는거야. 알겠어? 그게 바로 창조의 원리거든. 그걸 잘 알아야 해. 우리 문학가들은 창조자들이야. 당이 원하는 인간이 있다면, 우리는 그걸 만들어내는 거야. 그게 우리가 하는 문학이야. 알겠어? 자네는 시로 그 힘을 보여야 해.‘
- P150

"저 역시 시를 썼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말들은 제 안에서점점 지워지고 있습니다. 음식 이름들, 옛 지명들, 사투리들..
폐허에 굴러다니는 벽돌 조각들처럼 단어들은 점점 부서지고 있그 위에 새로운 사회주의 공화국의 시들이 건설되고 있었다. 새로운 시들은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벽체를 올려 아파트를 건설하듯이 한정된 단어와 판에 박힌 표현만으로 쓰였다.  - P162

"나는 1924년에 세상에 태어났고, 그 세상에는 늘 나보다 먼저죽는 것들이 있었어요. 내게 전쟁이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죽이는 일이었어요. 전쟁은 인류가 행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일이지만, 그 대가는 절대로 멍청하지 않습니다.  - P164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나요? 전쟁을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평화를, 상처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회복을 노래할 수 있나요? 전 죽음에, 전쟁에, 상처에 책임감을 느껴요. 당신 안에서 조선어 단어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 죽음에 대해 당신도 책임감을 느껴야만 해요. 날마다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사는 게 아니에요.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게 시인의 일이에요. 매일매일 세수를 하듯이, 꼬박꼬박."
- P1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행은 대답을 망설였다. 당시에는 그와 만나기만 해도 사상을 의심받던 시절이었다. 마치 단 한 번의 접촉만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여기듯이. 그러는 동안에도 눈은 그의 머리 위에, 어깨 위에, 신발 위에 내려 쌓였다. 그는 그 거리에서 곧 지워질 것처럼보였다. - P70

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있는 것, 어떤 시를 쓰지 않을 수있는 것, 무엇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사람이 누릴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능력은 무엇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었다. 상허의 말처럼 들리는 대로 듣고 보이는 대로 볼 뿐 거기에뭔가를 더 덧붙이지 않을 수 있을 때,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1958년 북한의 사람들에게 자유가 전혀 없었다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들은 들으라는대로 듣고, 보라는대로 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라는 대로 말해야만 했다. - P85

"저는 전봇대가 계속 웅웅거렸다고 기억하는데, 아빠 이야기는그렇지 않아요. 아빠는 기차가 떠난 뒤로는 세상이 적막했다고 기억해요. 기차가 떠나고 누군가 말했대요. 우리는 세상에 버려진것이라고, 그리고 또 말했대요. 죽으라고, 우리 죽으라고 이런 곳으로 보낸 것이라고. 그랬더니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고, 그러자엄마들도 울었고, 할머니들도, 아빠들과 할아버지들도 다 울었다. - P94

그 시절의 새벽, 기행의 이웃들은 아직 푸릇푸릇한 기운이 감도는 대동강 변을 따라 하염없이 걷거나 제자리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을 거의 매일 목격했다. 눈만 돌리면 보이는 그 유령과도 같은이미지는 마치 기행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인 것처럼 착각하게만들었다. 꽉 막힌 세계 속에서 오갈 데 없이 헤매는 기행의 비판받는 자아들처럼, 그렇게 서서, 혹은 버드나무 몇 그루 아래를 걸어갔다가 되돌아오며 기행은 누군가의 명백한 악의마저도 자기운명의 일부로 여겨야만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를쓰는 일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 P1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게 시네. 독침을 쏘는 말벌이 하늘을 가득 뒤덮은 풍경. 그나라에 적어도 시인이 한 명은 있는 셈이네."
"그 친구의 꿈은 시인이 아니라 영화감독이야. 북조선의 미하일 칼라토조프를 꿈꾸고 있지."......
"미래의 칼라토조프를 꿈꾸는 청년이 있는 나라라면 절대로 폐허일 수 없지." - P14

벨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벨라의 고향은 스탈린그라드였다. 지난 대조국전쟁에서 히틀러의 나치군에 맞서 스탈린그라드의 남녀가 맹렬한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지키려고 그토록 안간힘을쓴 이유가 무조건 사수하라는 스탈린의 명령 때문만은 아니라는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 도시는 그들의 것이고, 그들이 청춘과 꿈을 묻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 청춘과 꿈의 이야기가 있기에 어떤 폐허도 가뭇없이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라고 그녀는 믿고 있었다.
- P15

벨라는 여행 가방 속에 들어 있는 기행의 노트를 떠올렸다. 서양식대로 페이지를 넘기면 결말부터 읽게 된다는, 세로로 써내려간, 동양의 글자들, 인생을 거꾸로 산다면 어떻게 될까? 결말을 안뒤에 다시 대조국전쟁을 거쳐 십대 시절로 돌아간다면? 장차 시인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네크라소프의 시를 읽는다.
면? 얘는 전쟁에 가서 돌아오지 못할 거야, 라고 생각하며 급우와대화를 나눈다면? 그렇다면 원래보다 더 슬플지는 모르겠으나 그순간에 더욱 집중하긴 할 것이다. 미래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과거는 잘 알고 있으니, 오로지 현재에만, 지금 이 순간에만
- P26

"외로움을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하니까 그럴 수밖에. 외로워봐야 육친의 따스함을 아는 법인데, 이 사회는 늘 기쁘고 즐겁고 백찬 상태만 노래하라고 하지. 그게 아니면 분노하고 증오하고 저주해야 하고, 어쨌든 늘 조증의 상태로 지내야만 하니 외로움이 뭔지 고독이 뭔지 알지 못하겠지. - P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가 싫어하게 놔둬, 쇼리, 그와 대화를 해. 그를 도와줘. 안심시켜줘. 폭발하지 않게 다독여줘. 그러면서도 본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그만의 방식으로풀게끔 해주는 거야."
- P113

 "이 일이 일어난 원인은 셋 중 하나일 거예요. 몇몇 인간들이당신네 종족의 존재를 알고 죄다 위험하고 사악한 뱀파이어일 거라고 결론 내리고 벌인 짓이다. 아니면 어떤 이나 집단 혹은 개인이 쇼리의 가족이 인간과 이나의 DNA를 섞어서 낮에도 깨어 있고 햇빛에도 쉽게 화상을 입지 않는 아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걸 질투해서 벌인 짓이다. 그것도 아니면 인종차별주의자들, 아마도 이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쇼리의 피부가 검은 것을 알고 당신들이 낮에 겪는 문제를 해결할 비법이 멜라닌이라는 사실에 비위가 상해서 벌인짓이다. 이 세 가지가 가장 유효해요.  - P2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