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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설에 빠지다 - 금오신화에서 호질까지 맛있게 읽기
조혜란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소설이란 늘 그 시대 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소설은 그렇다.
그럼 조선시대 사람들의 욕망은 무엇이었을까?
양반사대부들의 지고의 가치였던 성리학을 비롯한 유학서적들을 보면 알 수 있을까?
아니 그건 때로 입신양명의 도구이며 한껏 치장된 이미지들이다.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을 보여줄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고상한 학문도 그림도 아니다. 때로 풍속화나 민화들, 속화들에게서 그런 욕망들이 보이긴 한다. 그러나 그것의 양을 따지자면 허기를 면하기 어려울정도의 양이다.
그러면 남는건? 아 소설이 있었구나...
솔직히 말해서 난 정말이지 조선시대에 창작되고 읽혀진 소설이 이렇게 많다는걸 정말 몰랐다.
내가 아는 조선시대 소설의 양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있을, 즉 고등학교까지의 학교교육에서 입시를 위해 제목을 외웠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제목을 외워야 했던 고등학교때의 고문 시간은 얼마나 괴로웠던가? 늘 임금에 대한 사모의 정을 노래하고 전원생활과 안빈낙도를 부르짖던 문학작품들은 어린 마음에도 비정상으로 보였으니 어찌 안괴로웠겠는가 말이다.
여기 정말로 조선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날것 그대로의 욕망이 있다. 바로 소설들이다.
조혜란씨의 한바탕 수다에 의해 새로운 생명을 얻은 소설속의 욕망들이 꿈틀거린다.
소설 속에 사랑이야기가 빠질수가 없다. 당연히 첫 장은 사랑이야기로 시작한다.
금오신화 속 한편인 <이생규장전>, 작자미상의 <소설-눈을쓸다>와 <윤지경전>
이거 분명히 조선시대 소설인데 말이다. 등장인물들의 하는 양은 전혀 조선스럽지 않다. 아니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조선에 대한 관념과 맞지 않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이생과 최소저의 사랑에서는 최소저가 훨씬 적극적이다. 담너머 오가며 눈길이 간 이생에게 먼저 유혹을 하는 것도 그리고 이생을 침실로 끌어가고 결국 결혼으로 이어가는 것도 모두 최소저가 주도한다. 또 그 첫 유혹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길가에 있는 이, 누구네 낭군인가요
푸른소매 큰 띠가 수양버들 사이로 아른아른.
어찌해야 뜰안의 저 제비처럼
구슬발을 헤치고 사뿐히 담장을 넘어갈까?
이토록 풍취있는 유혹에 누군들 안 넘어갈까?
<소설>속 사랑은 또 어떠한가? 어린시절부터 함께 자란 관찰사댁 도련님과 관기의 사랑.
당연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어야 마땅할터인데 관찰사어르신은 아들의 사랑을 지켜주고 싶어한다. 정실부인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아버지의 배려를 한마디로 딱 자르며 거절하는 도련님! "아버님! 제가 그까짓 기생 하나 때문에 상사병이라도 나겠습니까? 어차피 한양으로 데리고 가도 그 아이는 헌신짝이 될 겁니다. 염려마십시오."라니.... 그러나 도련님의 이 호기는 결국 이별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정말로 철없는 어린아이의 오산이었으니.... 결국 두고온 연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 겨울 무작정 길을 떠나는 도련님. 그런 도련님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기생. 조선의 사람들도 그래 젊은 날의 격정적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었구나....
그에 비해 윤지경전은 기묘사화를 배경으로 하면서 당대 사대부들의 정치적 상황이 가미되는 바람에 그리고 후반부의 사랑에 정치적 욕구가 끼어들면서 사랑얘기로는 격이 떨어져버렸다. 그 반면 이 때 사림 양반들의 은밀한 욕망, 왕권에 도전하는 신권, 왕명에도 굽히지 않는 신념, 어쩌면 그들이 실제로 이룰 수는 없었던 욕망이 왕의 딸 옹주를 거부하는 주인공 윤지경과 겹친다고나 할까?
2부는 전쟁과 그 참상에 대한 소설들이다.
<김영철전> <강도몽유록> <<박씨전>
<김영철전>은 평안도에 살았던 김영철이라는 사람(신분은 안 나와있으나 대략 중인 내지는 평민으로 보인다)이 병자호란이 일어나면서 파란만장한 생을 보내게 되는 일대기형태이다.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흔히 조선하면 떠오르는 병자호란에 대한 비분강개, 애국충정 이런것들로부터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소설의 내용은 어쩌면 조선이라는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이 시대에 와도 여전히 어울릴듯한 느낌이다. 전쟁이 한 인간과 가족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그리 모진 고통을 감내했으나 돌아온 고향에서 포상을 받기는 커녕 그동안의 일로 인해 빚더미에 올라안고 결국 자식들에게 절대로 군역을 지게 하지 않기위해 성을 쌓다 늙어죽는 삶이라니... 전쟁으로 인한 인간삶의 파괴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한 소설이 정녕 조선시대에도 있었구나....
그에 비하면 <강도몽유록>은 병자호란을 피해 강화도로 들어갔던 고관대작 집안의 여인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모두 자의든 타의든 죽음을 맞았고 그 죽음의 한스러움과 왕과 고관대작 남자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상당히 강도높은 정부비판서인 셈이다. 그것도 여자들의 입을 빌린 형태로.... 하지만 여자들의 이야기에서 자기 속에 내면화된 열녀의 이미지를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면은 이 책에 실린 소설 중 가장 호감도를 떨어지게 하는 면이 돼버리는구나...
<박씨전>은 이 중 많이 알려진 소설이지만 박씨 부인의 처소 <피화당>을 당대 병자호란이란 전쟁에서의 패배에 대한 소설적 보상으로 읽어내는 저자 조혜란씨의 해석이 더 의미심장하였다.
3부는 양반남성들의 판타지를 다루고있다. 뭐 솔직히 가장 관심 안가는 분야다. ^^;;
<옥루몽><오유란전><적성의전><금방울전>
<옥루몽>은 인간으로 탄생한 하늘의 선남선녀들의 이야기를 살짝 빌어 지상에서 그들이 다시 만나고 한 남자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치는 다섯 선녀출신 여성들의 사랑얘기. 뭐 이정도면 은밀한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노골적인 남성적 판타지다. 이 부분에서 애초에 나는 옥루몽을 읽고싶다는 생각을 한적이 없었다. 그런데 조혜란씨의 글을 읽다보면 완역판이 5권이나 되는 대하소설을 이런 간단한 줄거리만으로 재단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근대이후의 일하는 인간이 아니라 근대 이전의 놀이하는 인간에 대한 긍정적 묘사와 재조명까지 읽어낼 수 있다는 걸 보면 읽고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단 말이지....
형제간의 그 오래된 갈등과 싸움을 다룬 <적성의전>은 평범할 듯하고, 진짜 금방울이 주인공인 <금방울전>은 동화책을 보는 느낌일듯...
3부에서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오유란전>
두 사대부 청년의 우정과 성장담을 다루고 있는 표면적인 이야기보다는 그 성장을 이끄는 오유란이라는 캐릭터가 훨씬 흥미롭다. 그녀가 이생이라는 새장속 사대부청년을 인간의 세계로 이끄는 방법이 파격적이다. 그런 그녀가 느닷없이 소설속에서 사라져버린다. 남자들 속에 철저하게 묻혀버리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비존재감이랄까?
이 소설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학년말에 계획하고 있는 조선시대 여성사 수업에 오유란전 다시쓰기 내지는 소설 이어가기를 해보면 재밌을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또는 재창조되는 여성 오유란? 일단 오유란전 원본을 읽고나서 계획을 잡아봐야 될듯...
마지막 장은 워낙에 명문인 허균과 박지원을 빼놓을 수 없어 그들의 작품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고 있다. 허균의 <남궁선생전>과 박지원의 <호질> <열녀함양박씨전>
하지만 작가의 관심도 딱히 이곳에 있는 것 같지 않고 꽤 알려져 있는 내용들이라 딱히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와 함께 옛 소설 속에 빠져 살았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 옛 소설의 풍부함이 지나치게 알려져 있지 않은 안타까움이 저자에게 이런 수다판을 열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을 것이다. 그래 뭔가를 꼬실려면 이정도는 돼야지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유혹이란 것도 이 정도 되면 고수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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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고 하니 먼저 읽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부터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드는데 전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고등학생만 돼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을 듯....그저 쉽게 옛 소설에 대한 수다를 즐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