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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부모에 대해서 느끼는 우리의 사랑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할지 모른다. 당시에 나는 자신들의 부모뿐만 아니라 범행을 저지르고, 또 범행을 수수방관하고, 외면하고, 묵인하고, 수용한 모든 세대로부터 자신들을 분리시켜 수치심 자체는 아니라도 적어도 수치심으로 인한 고통을 극복한 다른 학생들을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내가 이들 학생들에게서 자주 발견하곤 했던 그 의기양양한 독선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어떻게 사람이 죄의식과 수치심을 느끼면서 동시에 그렇게 독선을 과시할 수 있는가? 부모로부터의 그러한 분리는, 부모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부모가 저지른 죄 속으로 어쩔 수 없이 연루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단순한 수사요, 잡음이요, 소음에 지나지 않았던가?" 
이런한 생각들은 나중에 떠오른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나중에도 아무런 위안을 주지 못했다. 한나에 대한 사랑때문에 겪은 나의 고통이 어느 면에서는 나의 세대의 운명이고 독일의 운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그 운명에서 더욱 빠져나오기 힘들고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 슬쩍 넘어가기도 힘든 것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위안이 될 수 있는가? (182-183쪽) 

꼬마 미하엘은 한나에게 한없이 빠져든다.
한나 역시 미하엘을 꼬마, kid라고 부르며 애써 거리를 두지만 그녀가 미하엘을 사랑하고 있음은 그녀의 머뭇거림에서 오히려 드러난다.
그저 사랑이다. 나이를 빼고 나면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으랴?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한나가 떠나고 미하엘이 한나를 다시 만난 것은 의외에도 법정에서이다.
그것도 나치 부역자로 법정에 선 한나의 모습.
영화속에서는  너무나도 순진한 아니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판사를 향해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어요?"라던 한나의 모습이 압권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독일인 전체를 향해서 던지는 질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속에서는 오히려 다시 만난 한나를 향한 미하엘의 머뭇거림이 더 오래 남는다.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나 궁지에 몰린 그녀를 다시 온전한 사랑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머뭇거리는 미하엘.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일것인가 아니면 회피할 것인가?
단지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책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 때문이 아닌 과오를 사랑을 이유로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같이 짐을 나눠야 할까?
미하엘의 고민, 머뭇거림은 늘 그렇게 머뭇거림으로 끝난다.
그의 주저는 결국 그들 둘의 즐거웠던 추억 - 그가 한나를 안고 책을 읽어주던 기억에 그를 머무르게 한다. 

어쩌면 아버지 세대의 전쟁범죄를 보는 전후세대 독일인들의 마음이 한나에 대한 미하엘의 마음과 교차하는 순간이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만 보고 싶지만 사실 사랑이란게 얼마나 복잡다단하며 미묘한 감정이던가?
모든 것을 같이 책임지고 같이 아파하는 사랑은 그리 흔한게 아니다.
그것이 연인이든 역사에 대한 책임이든.....
그 연인이나 역사의 죽음앞에서야 이제 제대로 거리를 두고 자신의 얼굴을 사랑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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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6-0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보니 영화도 좋지만 책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든걸 같이 아파하고 같이 책임지는 사랑,
객관적거리를 둘 수 있는 자리에서도 그 편이 될 수 있는 사랑,
그런것이군요.역사에대한책임,도 동일하게요.

바람돌이 2009-06-05 13:27   좋아요 0 | URL
책의 90%는 영화와 같구요. 결코 미하엘역의 남자배우가 표현할 수 없었던 내면의 우물거림은 책속에서 더 이해가 잘 되더군요.
하지만 사랑이든 역사든 똑같이 아파하는건 가능할까요? 미하엘이 그러했든 원래 그렇게 불가능한게 아닐까? 그냥 그렇게 느껴지는 거리만큼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어디까지인지 생각하고 행하는것, 전 그게 미하엘에게는 책을 읽어주는 일이었던듯해요. 우리에게는 어디까지일지... 글쎄요....

2009-06-05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내용과 비슷한 느낌을 <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에서 받았어요.
한 시대의 악이 평범한 개인한테 전이되는 것. 성인식에 선물로 흑인 노예와 채찍을 받은 아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노예를 학대합니다. 시대의 악과 평범한 개인한테 진행되는 악의 전이. 어려운 문제이고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아요.
<더 리더>는 영화로 봤는데 마지막 한나의 선택에 울컥했어요.

바람돌이 2009-06-05 15:56   좋아요 0 | URL
요즘 히틀러시대에 대한 연구나 파시즘 그리고 파시즘시대의 대중심리에 대한 책들이 유난히 많은것도 결국 이런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면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서겠죠? 저도 더 리더에서 마지막 한나의 선택은 충분히 예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울컥하더라구요.
덕분에 관심가는 책을 또 발견했네요. 2백년전 악녀일기.. 재밌을 것 같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6-05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를 우리나라로 배경을 옮겨서 친일파 문제로 다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바람돌이 2009-06-05 16:22   좋아요 0 | URL
우리 나라로 옮겨오면 이런 글은 안나올것 같아요. 적어도 나찌에의 부역이 죄악으로 인정되고 공유되는 나라와 그렇지 않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묻혀버리는 나라만큼의 차이가 나오겠죠? 그리고 피해자의 입장과 가해자의 입장의 차이가 있을테고요. 최근에 나온 김연수씨의 <밤은 노래한다>가 선악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보여준 시도가 아닐까 싶은데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도 많이 듭니다.
 
백야행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정태원 옮김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엄청난 몰입도! 스피디한 전개! 그리고 마지막 장의 그 순간까지 궁금하게 만드는 주인공들의 진짜 관계의 정체!
이 유명한 소설은 도서관에서 늘 대출중이었다.
겨우 겨우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은 결국 하루에 한 권씩 사흘의 밤을 밝히게 만들고야 말았으니 그 이유가 바로 앞에 말한 것들이었다. 

"줄곧 나는 하얀 어둠속을 걸어왔어. 태양 아래서 걸어보는게 내 유일한 소망이야."
이런 유키호의 고백은 그녀의 삶을 얘기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이 책속에서 묘사되는 유키호라는 여자의 이미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녀는 한 번도 명징하게 앞에 나서 자기 주장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 책의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사이에 그녀는 모호하고 알 수 없는 존재로 버티고 있다. 소설속의 그녀가 신비화되어 나타나듯 독자에게도 그녀는 신비로운 존재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을때까지, 아니 덮은 후에조차도 그녀는 왜 이런 삶을 사는걸까? 왜 무슨 생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걸까 못내 궁금하게 하는 힘.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 료지 역시 애매하고 안개에 싸여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는 왜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지, 그의 모든 행동들의 근원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소설의 마지막 장을 대하기 전까지는 상상하기 힘든 이 둘의 오래된 슬픔과 외로움은 둘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과 함게 마지막 순간까지 책을 놓치 못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모든 것이 명징하고 일사분란하게 복기되는 것도 아니다.
책을 다시 뒤적이며 얼키고 설켰던 사건들을 다시 복기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하얀어둠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러고보니 내용보다 더 절묘한 제목이었구나....  

다만 아쉬움은 마지막 순간의 비밀이 벗겨지는 순간 20년을 이어온 두 주인공의 관계의 설득력이 갑자기 떨어진다는 점이랄까?
그럼에도 멋진 재미있는 추리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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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미래의 고전 1
이금이 지음, 이누리 그림 / 푸른책들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시절의 첫사랑 하면 늘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던 황순원의 <소나기>
우리 시절의 첫사랑은 자고로 그렇게 수줍고 애틋한 그런 환상 한꺼풀을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대부분은 그런 상상으로 뒤덮인 짝사랑으로 끝났지만...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생때부터 짝사랑이 아닌 진짜 사랑을 한다.
커플링을 교환하고 투투데이니 백일이니를 챙기고 주변에 알려서 인정을 받으려하고...
어쩌면 수줍은 환상은 벗겨진듯하지만 뭐 나름대로 진지한것은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요즘 아이들의 연애모습은 안타까움이 더 많이 드는것은 내가 늙었기 때문일까?
좋아하는 여자애를 위해서 해주고 싶은게 어른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커플링이니 맛난 음식이니 꽃이니 선물이니 잔뜩 돈드는 것밖에 없는건 어떡하면 좋을까?
첫사랑의 가슴설렘과 두근거림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더 많이 서툴러지고 더 많이 식상해지고 어른의 세계를 모방하는 모습.
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뭘 보여준걸까?  

동재의 사랑의 실패는 결국 그런 표현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 아닐까?
마음을 보여주는 것을 가르치지 못한 어른들의 미숙함
아이들의 연애나 마음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아이들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가르치는 것도 어른일 것이다.  
아이들은 이 책을 보면서 동재의 사랑이 실패한 이유를 뭐라고 생각할지 궁금하다.
설마 아이스크림 값이 없어서였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이금이씨의 책이 좋은건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일게다.
요즘 아이들의 일상을 어른의 시각으로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
이게 말이 쉽지 어른이 된후에는 참 쉽지 않은 일인데 이금이씨는 참 아이들의 세계를 잘 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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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9-04-26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요즘 아이들은 순진한 동재보다는 화려한 찬혁이를 더 좋아하는 것일수도. 동재와 찬혁이의 마음이 동일할 수도 있겠죠? 둘의 헤어짐이 연아의 일방적인 통보였으니 ㅎㅎ
아이들 참 대범해요.

바람돌이 2009-04-27 13:36   좋아요 0 | URL
아이들 눈으로 보면야 당연히 찬혁이가 더 좋겠죠. 폼 나잖아요. ㅎㅎ
다만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물질적이고 어른들의 흉내투성이라는게 안타까워요.
 
옛 소설에 빠지다 - 금오신화에서 호질까지 맛있게 읽기
조혜란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소설이란 늘 그 시대 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소설은 그렇다.
그럼 조선시대 사람들의 욕망은 무엇이었을까?
양반사대부들의 지고의 가치였던 성리학을 비롯한 유학서적들을 보면 알 수 있을까?
아니 그건 때로 입신양명의 도구이며 한껏 치장된 이미지들이다.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을 보여줄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고상한 학문도 그림도 아니다. 때로 풍속화나 민화들, 속화들에게서 그런 욕망들이 보이긴 한다. 그러나 그것의 양을 따지자면 허기를 면하기 어려울정도의 양이다.
그러면 남는건? 아 소설이 있었구나...
솔직히 말해서 난 정말이지 조선시대에 창작되고 읽혀진 소설이 이렇게 많다는걸 정말 몰랐다.
내가 아는 조선시대 소설의 양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있을, 즉 고등학교까지의 학교교육에서 입시를 위해 제목을 외웠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제목을 외워야 했던 고등학교때의 고문 시간은 얼마나 괴로웠던가? 늘 임금에 대한 사모의 정을 노래하고 전원생활과 안빈낙도를 부르짖던 문학작품들은 어린 마음에도 비정상으로 보였으니 어찌 안괴로웠겠는가 말이다.

여기 정말로 조선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날것 그대로의 욕망이 있다. 바로 소설들이다.
조혜란씨의 한바탕 수다에 의해 새로운 생명을 얻은 소설속의 욕망들이 꿈틀거린다. 

소설 속에 사랑이야기가 빠질수가 없다. 당연히 첫 장은 사랑이야기로 시작한다.
금오신화 속 한편인 <이생규장전>, 작자미상의 <소설-눈을쓸다>와 <윤지경전>
이거 분명히 조선시대 소설인데 말이다. 등장인물들의 하는 양은 전혀 조선스럽지 않다. 아니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조선에 대한 관념과 맞지 않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이생과 최소저의 사랑에서는 최소저가 훨씬 적극적이다. 담너머 오가며 눈길이 간 이생에게 먼저 유혹을 하는 것도 그리고 이생을 침실로 끌어가고 결국 결혼으로 이어가는 것도 모두 최소저가 주도한다. 또 그 첫 유혹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길가에 있는 이, 누구네 낭군인가요
푸른소매 큰 띠가 수양버들 사이로 아른아른.
어찌해야 뜰안의 저 제비처럼
구슬발을 헤치고 사뿐히 담장을 넘어갈까?
이토록 풍취있는 유혹에 누군들 안 넘어갈까?
<소설>속 사랑은 또 어떠한가? 어린시절부터 함께 자란 관찰사댁 도련님과 관기의 사랑.
당연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어야 마땅할터인데 관찰사어르신은 아들의 사랑을 지켜주고 싶어한다. 정실부인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아버지의 배려를 한마디로 딱 자르며 거절하는 도련님! "아버님! 제가 그까짓 기생 하나 때문에 상사병이라도 나겠습니까? 어차피 한양으로 데리고 가도 그 아이는 헌신짝이 될 겁니다. 염려마십시오."라니.... 그러나 도련님의 이 호기는 결국 이별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정말로 철없는 어린아이의 오산이었으니.... 결국 두고온 연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 겨울 무작정 길을 떠나는 도련님. 그런 도련님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기생. 조선의 사람들도 그래 젊은 날의 격정적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었구나....
그에 비해 윤지경전은 기묘사화를 배경으로 하면서 당대 사대부들의 정치적 상황이 가미되는 바람에 그리고 후반부의 사랑에 정치적 욕구가 끼어들면서 사랑얘기로는 격이 떨어져버렸다. 그 반면 이 때 사림 양반들의 은밀한 욕망, 왕권에 도전하는 신권, 왕명에도 굽히지 않는 신념, 어쩌면 그들이 실제로 이룰 수는 없었던 욕망이 왕의 딸 옹주를 거부하는 주인공 윤지경과 겹친다고나 할까? 

2부는 전쟁과 그 참상에 대한 소설들이다.
<김영철전> <강도몽유록> <<박씨전>
<김영철전>은 평안도에 살았던 김영철이라는 사람(신분은 안 나와있으나 대략 중인 내지는 평민으로 보인다)이 병자호란이 일어나면서 파란만장한 생을 보내게 되는 일대기형태이다.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흔히 조선하면 떠오르는 병자호란에 대한 비분강개, 애국충정 이런것들로부터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소설의 내용은 어쩌면 조선이라는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이 시대에 와도 여전히 어울릴듯한 느낌이다. 전쟁이 한 인간과 가족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그리 모진 고통을 감내했으나 돌아온 고향에서 포상을 받기는 커녕 그동안의 일로 인해 빚더미에 올라안고 결국 자식들에게 절대로 군역을 지게 하지 않기위해 성을 쌓다 늙어죽는 삶이라니... 전쟁으로 인한 인간삶의 파괴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한 소설이 정녕 조선시대에도 있었구나....
그에 비하면 <강도몽유록>은 병자호란을 피해 강화도로 들어갔던 고관대작 집안의 여인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모두 자의든 타의든 죽음을 맞았고 그 죽음의 한스러움과 왕과 고관대작 남자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상당히 강도높은 정부비판서인 셈이다. 그것도 여자들의 입을 빌린 형태로.... 하지만 여자들의 이야기에서 자기 속에 내면화된 열녀의 이미지를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면은 이 책에 실린 소설 중 가장 호감도를 떨어지게 하는 면이 돼버리는구나... 
<박씨전>은 이 중 많이 알려진 소설이지만 박씨 부인의 처소 <피화당>을 당대 병자호란이란 전쟁에서의 패배에 대한 소설적 보상으로 읽어내는 저자 조혜란씨의 해석이 더 의미심장하였다. 

3부는 양반남성들의 판타지를 다루고있다. 뭐 솔직히 가장 관심 안가는 분야다. ^^;;
<옥루몽><오유란전><적성의전><금방울전>
<옥루몽>은 인간으로 탄생한 하늘의 선남선녀들의 이야기를 살짝 빌어 지상에서 그들이 다시 만나고 한 남자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치는 다섯 선녀출신 여성들의 사랑얘기. 뭐 이정도면 은밀한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노골적인 남성적 판타지다. 이 부분에서 애초에 나는 옥루몽을 읽고싶다는 생각을 한적이 없었다. 그런데 조혜란씨의 글을 읽다보면 완역판이 5권이나 되는 대하소설을 이런 간단한 줄거리만으로 재단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근대이후의 일하는 인간이 아니라 근대 이전의 놀이하는 인간에 대한 긍정적 묘사와 재조명까지 읽어낼 수 있다는 걸 보면 읽고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단 말이지....
형제간의 그 오래된 갈등과 싸움을 다룬 <적성의전>은 평범할 듯하고, 진짜 금방울이 주인공인 <금방울전>은 동화책을 보는 느낌일듯...
3부에서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오유란전>
두 사대부 청년의 우정과 성장담을 다루고 있는 표면적인 이야기보다는 그 성장을 이끄는 오유란이라는 캐릭터가 훨씬 흥미롭다. 그녀가 이생이라는 새장속 사대부청년을 인간의 세계로 이끄는 방법이 파격적이다. 그런 그녀가 느닷없이 소설속에서 사라져버린다. 남자들 속에 철저하게 묻혀버리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비존재감이랄까?
이 소설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학년말에 계획하고 있는 조선시대 여성사 수업에 오유란전 다시쓰기 내지는 소설 이어가기를 해보면 재밌을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또는 재창조되는 여성 오유란? 일단 오유란전 원본을 읽고나서 계획을 잡아봐야 될듯... 

 마지막 장은 워낙에 명문인 허균과 박지원을 빼놓을 수 없어 그들의 작품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고 있다. 허균의 <남궁선생전>과 박지원의 <호질> <열녀함양박씨전>
하지만 작가의 관심도 딱히 이곳에 있는 것 같지 않고 꽤 알려져 있는 내용들이라 딱히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와 함께 옛 소설 속에 빠져 살았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 옛 소설의 풍부함이 지나치게 알려져 있지 않은 안타까움이 저자에게 이런 수다판을 열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을 것이다. 그래 뭔가를 꼬실려면 이정도는 돼야지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유혹이란 것도 이 정도 되면 고수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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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고 하니 먼저 읽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부터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드는데 전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고등학생만 돼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을 듯....그저 쉽게 옛 소설에 대한 수다를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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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헨 2009-04-15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석류인가요 아니면 그냥 소설모음에 뒤에 설명이 있는???
님의 리뷰를 보니...이 책 땡기는걸요~~~

바람돌이 2009-04-15 08:58   좋아요 0 | URL
아뇨 그야말로 옛 소설에 대한 수다입니다. 소설의 내용을 요약 소개하고 각 편에 원문 약간을 소개, 그리고 그에 대한 조혜란씨의 이해를 돕기위한 글이나 감상문 약간이 붙어있는 형태예요. 고등학생부터라면 누구나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글인것 같아요.

2009-04-15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6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국경을넘어 2009-04-15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요거 학생들하고 함께 읽어봐야겠군요. 구미가 당기는... ㅋㅎㅎㅎ

바람돌이 2009-04-16 10:31   좋아요 0 | URL
고등학생들이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니 그것도 좋을 것 같네요. ^^

2009-04-26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26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4-26 01:04   좋아요 0 | URL
아~ 예~ 감사
제가 중학교 어머니독서회 선정도서 우선 올려볼게요.
제가 추천한 책과 선생님이 골랐는데 더 많은 책을 사준다는 교장샘 약속 믿고 좋은 책 욕심내는 중이거든요.^^
 
함께 있을 수 있다면 2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랫만에 말랑말랑한 연애소설이 보고싶어졌다.
가볍고 따뜻한 로맨스영화를 보고싶은 기분과 같다고 할까?
연애소설을 보고싶은 기분이란 머리아프고 뭣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그리고  악받치는 일들만 출몰하는 세상에서 뭔가 그래도 따뜻한 온기, 그리고 순리대로 풀려가는 뭔가를 보고싶은 그런 기분이랄까?
딱 그런 기분일때 하이드님 서재에서 안나 가발다를 만났다. 뭔가 지금의 내 기분과 맞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마침 도서관에 안나 가발다라는 이름도 처음 들은 이 작가의 책이 있었던건 내겐 행운이었던듯...
연애소설의 공식을 차분히 빠뜨리지 않고 밟아가는, 그러면서 주인공의 마음이 되어 같이 연애의 떨림을 공유하는 시간들은 오랫만에 맛보는 기분이다.
책을 읽는 동안일지라도 꽤나 근사한 기분이다.  

어찌보면 모두들 세상의 아웃사이더인 주인공들과 주변인물들이 하나씩 하나씩 벽을 허물면서 서로에게서 안식과 위안을 찾고 기대나가는 과정의 묘사가 섬세하다.
세상은 이렇게 잘 풀릴수는 없어라며 책을 덮지만 그래도 세상에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행복을 찾아가는 것도 사실이잖아라고 나직이 속삭이게 된다. 
한 명도 온전해보이지 않는 상처투성이의 주인공들이 그렇기에 더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안아가는 과정이 허황되지 않아 보이는건 우리 사는 세상이 그러하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일게다.

세상 사는게 뭐 별거있어?
다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적당히 숨기다가 또 그걸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그렇게 의지하며 사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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