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나를 몰아세우던 목소리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소리를가만히 들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일이.
- P86

"새비 아주머니는 엄마의 상처였어. 그렇지만 자랑이기도 했지, 엄마를 크게 넘어뜨렸지만, 매번 털고 일어날 힘이 되어주기도 했으니까. 엄마가 새비 아주머니를 떠올리며 가장 많이 했던 얘기는 이거였어, 새비가 나를 얼마나 귀애해줬는지 몰라, 새비가 나를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몰라.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 아픈 일이 많았는데도, 새비아주머니를 기억하는 엄마의 표정은 늘 환했어. 꼭 다른 세상에 있는사람처럼 말이야,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상처 같은 거 받지 않아도 됐겠지만 그래도 엄마는...‘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는 삶을 택하셨겠네요."
"그래, 그게 우리 엄마야."
- P116

희자 어마이, 전지전능한 천주님이 왜 손을 놓고 계신 기야. 나는 슬퍼만 하는 천주님께 속죄하고 싶지 않아, 천주님 앞에서 내 탓이오, 내탓이오, 말하고 싶지 않아. 천주님이 정말 계신다면 그때 뭐하고 계셨느냐고 따지고 들고 싶어. 예전처럼 무릎 꿇고 천주님, 천주님 감사합니다. 말하고 싶지 않아. 기래, 나를 살려주셨지. 기래서 감사하다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 목숨은 뭐가 되나.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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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와 장롱, 책상, 세탁기, 식탁, 카펫, 그의 손길이 닿았던 속옷과 식기를 전부 버렸다. 육 년을 산 집이었기에 물건은 계속해서 나왔다. 이사 당일까지 쓰레기봉투 몇 개를더 채우고서야 끝이 났다.
- P10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 P14

할머니는 애써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 헤어졌어요. 남편이랑.
"잘했어."
할머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약간 얼떨떨한 마음으로 할머니를 바라봤다.
- P50

오늘 지나가는 길에 맞았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내 남편이 이유도 모르는 병으로 죽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혼자 슬퍼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부정 탄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런 식으로, 일어난 일을 평가하지 말고 서항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게 사는 법이라고,
그녀는 댓돌에 앉은 채 임마가 알려준 방법으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아픈 엄마를 버렸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엄마를 땅에 묻어주지 못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 P55

허영실의 힘이 얼마나 센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순교자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사람이었다. 가진 모든 것을, 목숨까지도 버려 천주에 대한 사랑을 지키려 했던 그들의 이야기에 감화를 받았다. 그는 증조모를 알게 되면서, 그녀가 사는 모습을 보고서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준비를 했다. 너를 구하기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하겠다는 마음이었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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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2-23 0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밝은 밤》 보시는군요 저도 언젠가 봐야 할 텐데... 두번째 글은 자주 본 거네요 마음은 보이지 않아서 저 말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1-12-23 09:04   좋아요 0 | URL
많은 사람이 그렇게 좋다는 책을 이제야 봅니다. 생각보다 재밌네요. 문장도 좋고, 스토리도 흥미롭네요.
말씀하신 문장 보면서는 아 진짜 이렇게 따뜻한 햇볕에 마음을 말릴 수 있다면 진짜 좋겠다 싶더라구요.그냥 그 광경이 막 떠오르는거 있죠. ^^
 
행성어 서점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최인호 그림 / 마음산책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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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한다. 

야 이건 정말 소설이야, 이걸 소설로 쓰면 진짜 재밌을텐데 뭐 이런 생각말이다.

하지만 보통의 인간인 나는 그냥 생각만으로 그칠 뿐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 한순간 아 이거 이야기가 되겠네 싶은 단상들을 놓치지 않고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반짝이는 단상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아 이런 생각으로도 소설이 만들어지는구나 감탄하며 이 짧은 이야기들에 흠뻑 취하게 된다.


임팩트가 가장 강한건 역시 첫 글인 <선인장 끌어안기>이다.

무엇이든 피부에 닿는 순간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병에 시달리는 파이라라는 전직 건축가의 이야기다.

그런 그녀가 온 집안에 선인장을 키우는 것은 왜일까?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던 어린 소녀 소영을 사랑하는 그녀에게 자신의 병은 새로운 고통이 된다.

사랑은 스킨쉽니다. 

누구든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싶고, 따뜻하게 안고싶어한다.

그 포옹에 사랑의 기쁨이 담겨있다.

그러나 파이라와 소영에게 이런 기쁨은 불가능하다.

서로의 손가락 끝이라도 맞닿는 순간 불같은 고통이 각자의 몸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영은 죽음을 앞두고 파히라에게 말한다.

'파히라, 내가 당신을 안아봐도 될까요? 딱 한 번만요.'

둘은 비명을 참고 눈물을 참으며, 피부 표면을 칼로 베어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30쪽) 생각한다.

고통이 곧 사랑이 되어버린 파히라는 쓸쓸하게

"그래도 그 사랑을 감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지."라고 읊조리는 것이다. 

그래서 소영을 잃은 파히라는 선인장을 키운다.

이 이야기는 절망에 대해 말하지만 또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근래에 읽은 어떤 사랑 이야기보다 강한 사랑이야기이다.

짧다고 감동의 크기가 작은 것은 아니라는걸 이 이야기가 말해준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치명적인 어떤 결핍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행복해지고 싶은 인간들이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결핍들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행복해지고 싶은 인간의 기본 본능을 다양한 변주로 이야기한다. 또한 행복해지는 방법도 결국 사람마다 다르다.

시력을 잃고 기계 눈을 가지게 된 여성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신의 기계 눈을 가장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연습을 하고 그것을 SNS에 올린다. 그리고  눈이 아름답다는 타인들의 찬사에 나는 기계눈이어도 행복하다고 자위한다.

정말로 그녀는 행복할까? 사실상 그녀의 행복은 모래성이라는 것을 그녀 자신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이보그는 아름답다는 말이 정말로 사이보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것인지(40쪽) 고민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찾은 것일게다. 자신의 행복의 조건을 타인의 찬사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존에서 찾기 시작했으므로.....


정말로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영화속에 흔한 소재로 등장하는 평행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영화처럼 그렇게 극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곳에서 멜론을 파는 가난한 상인은 나는 저쪽 세계에서는 거리에서 연주를 하는 가난한 바이올린 연주자일수도 있다.

그래 둘 다 별볼일이 없다니 너무 불공평하지 않나라고 생각하는건 스펙터클이나 스릴러의 영역이고,

소설속에서는 멜론을 파는 나도 나쁘지 않지만 바이올린 연주자인 나도 괜찮은것 같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게 뭐야? 둘 다 너무 별볼일 없잖아?

하지만 멜론을 파는 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나를 바라보는 순간은 왠지 둘 다 근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근사하게 산다는 말은 왠지 근사하다.

몸에 칲으로 심어진 통역기로 어떤 언어의 책이든지 바로 읽을 수 있는 세상에서 더 이상 언어는 학습이 대상이 아닌 세상을 꿈꾸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하나쯤은 그것이 불가능한 언어도 있지 않을까?

어떤 번역기로도 번역되지 않는 그 책이 행성어 서점에 있다.

그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류가 오래 그래 왔듯이 느리게 그 행성의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누구도 읽지 못하는 책을 읽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어떤 전자기기에 의해서도 포착되지 않는 별안개 풍경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물감과 붓을 꺼내 그리는 노인의 모습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늪지에 가라앉지 않고 다른 방식의 삶을 찾아 떠나고야 마는 소년도 근사하다.

이렇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 하나 초라하지 않다. 

그래서 그렇게 근사한 사람들을 만나는 독서를 하는 내가 잠시 근사해보이기도 한다.


무언가를 잃는 다는 것이 바로 불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데, 우리는 때때로 그것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하나를 잃은 것이 전부를 잃었다고 마음껏 착각하고 불행의 관념속으로 자신을 밀어넣는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많은 것들로 채워져 있고, 하나를 잃으면 무언가 다른 것이 우리를 기다리기도 한다.

외계의 기생생물로 인해 얼굴에 가면이 붙어 떨어지지 않게 된 사람들은 억지웃음을 웃지 않아도 되게 되면서 오히려 서로에게 진짜 다정함을 베푸는 것(136쪽)을 배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무언가를 잃은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얻은 사람이 되고 그리고 근사해진다.


김초엽 작가의 글은 모두 절망과 상실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그것은 소재일뿐 결국 중심은 희망과 연대, 사랑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내가 좀더 좋은 인간이 돼가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는 시간은 행복한 시간이 된다.

최근에 나왔던 첫 장편 <지구 끝의 온실>은 소재나 주제 모두가 흥미로웠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좀 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은 단편들이 더 좋은 작가지만 얼마가지 않아 단편들에서 느껴지는 이 힘을 장편에서도 오롯이 느낄 것을 기대하며 작가에게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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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2-09 07: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작가님이시군요 ㅋ 그 책만 읽어봤는데 이 책도 재미있을거 같아요 ^^

바람돌이 2021-12-10 09:21   좋아요 2 | URL
전 재밌게 읽었어요. 소설이 짧다보니 금방 읽고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글들을 쓴 짧은 생각들의 여운이 길더라구요. ^^

페크pek0501 2021-12-10 1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김초엽 님이 인기네요. 짧은 글로 매력을 발산할 듯합니다.^^

바람돌이 2021-12-10 14:00   좋아요 2 | URL
지금 단편집도 하나 새로 나와서 아껴놓고 있어요.

mini74 2021-12-10 2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단편집 사고 고개 돌리니 엥? 또 나왔네 하면서 고민중 ㅎㅎ 아이가 더 좋아하는 작가 ~ 랍니다. 바람돌이님 글 읽으니 아무래도 미루지 말고 사야헐 듯 합니다 ~

바람돌이 2022-01-07 23:49   좋아요 1 | URL
방금 떠나온 세계를 사고 읽으려고 하는데 또 므네모사가 새로 나왔어요. 김초엽작가 완전 다작인데 독자로서야 고맙죠. 우리집 딸래미들은 지금 책이라고는 안 읽고 한명은 연애에, 한명은 게임에 홀릭하고 있어 슬퍼요. 나랑 같이 책읽고 서점도 같이 가주고 하면 좋으련만.....ㅠ.ㅠ

희선 2021-12-11 03: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이 쓰신 글을 보니 여기 담긴 이야기 좋아 보이네요 사랑에는 아픔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것도 사랑으로 여기면 좋을 텐데... 사람이 하나를 잃는다고 다 잃는 건 아닐 텐데, 그걸 잘 잊는군요

바람돌이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바람돌이 2022-01-07 23:51   좋아요 2 | URL
저는 다 좋았어요. 짧은 이야기들이 다 아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같은..... 사람이란 다 어느정도는 자기 중심적인데 사랑을 하면 그게 더 심해지는거 같아요. 내가 이렇게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왜 아닌거 같니 뭐 이런 감정이랄까? 어쨋든 누구에게나 사는건 쉽지 않고 무언가를 얻는건 또 무언가를 잃는 것이기도 하지요.
희선님도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

scott 2022-01-07 17: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 추카!
부산에 행성어 서점이 생길지도 ㅎㅎㅎ

바람돌이 2022-01-07 23:52   좋아요 2 | URL
감사하빈다. 부산에 행성어 서점이 생기는건 좀...... 그걸 읽으려면 언어를 새로 배워야 하잖아요. 아 정말로 전 언어 배우는거 너무 싫어요. 힘들잖아요. ㅠ.ㅠ

mini74 2022-01-07 17: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 축하드려요 *^^*

바람돌이 2022-01-07 23:5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주말 편히 보내세요. ^^

thkang1001 2022-01-08 0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2-01-07 23: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한달에 한번 알라딘이 주는 선물 좋네요. ^^ 뭔가를 이룬 듯한 기분이랄까? ^^

새파랑 2022-01-07 17: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방학에 당선까지~!! 바람돌이님 축하드려요 ^^

바람돌이 2022-01-07 23:53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그런데 방학은 아직도 못했어요. 여름방학이 길었던 휴유증이 정말 ..... ㅠ.ㅠ
다음주 화요일 방학입니다. ㅎㅎ

희선 2022-01-08 0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 축하합니다 주말 따듯하게 보내세요


희선
 

"처음에 우리가 서로를 알아봤을 때는 그저 우습기만 했지.
그쪽 세계의 나도 주목받지 못하는 한심한 연주자에 불과한데,
다른 세계에 있는 나도 소질 없는 멜론 장수라니 말이야."
"하지만 이제는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단다. 나는 이렇게 매일 아침 수레를 끌고 시장에 나오는 일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일도 좋아하거든,  - P51

"우리의 현실이 정말로 같을까? 그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이 진실한 대화일까? 너는 그것을 어떻게 확신하지? 어떤사람은 수요일에서 바닐라 냄새를 맡고, 또 어떤 사람은 남들이 결코 구분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빨간색을 구분하지. 우리는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의 관점을 상상하지 못하겠지. 자신의수천 배나 되는 몸집을 가진 동물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진드기의 관점을 헤아려볼 수도 없겠지. 평생을 살아도 우리는 타인의 현실의 결에 완전히 접속하지 못할 거야. 모든 사람이 각자의 현실의 결을 갖고 있지. 만약 그렇게, 우리가 가진 현실의결이 모두 다르다면, 왜 그중 어떤 현실의 결만이 우세한 것으로 여겨져야 할까?"
- P57

어떤 이들은 낯선 외국어로 가득한 서점을 거니는 이국적인 경험을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이방인으로서의 체험, 어떤말도 구체적인 정보로 흡수되지 못하고 풍경으로 나를 스쳐지나가고 마는 경험……..
- P63

덕분에 이 서점의 책들은 읽히지 않음으로써 가치를 부여받았다.  - P63

"그러다 이곳 행성어 서점의 존재를 알게 됐죠. 그제야 알았어요. 저는 앞으로도 수만 개의 언어를 할 수는 없겠지만, 그수만 개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조차 읽지 못한 책들이 저를 기21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 P72

나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끊임없이 요동치던 것이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덧씌워 보는 것과 실제로 만드는 것은 달랐다. 나는 괴물이 되었다가 평범한 아이가 되었다. 이끄는 자가 되었다가 밀려나는 자가 되었다. 소망의 표면 아래 진짜 미래의 모습이 채워졌다. 나는 그 간극을 감당할 수 없던 거였다.
- P82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나섰을 때, 리키는 오솔길 끝 전망대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보았다. 웅성거리는 소리도 없이조용해서 어쩐지 그 풍경은 그 자체로 한 장의 사진처럼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한 노인이 조립식 이젤을 세워 놓고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 P105

소년은 이따금 우리에게로 걸어와 우리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늪의 수면 위에 부유하는 우리를 살피면 마치 우리가 무슨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처럼,
- P121

"어차피 가면을 쓰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모르지요. 생각해보세요. 저는 지금 당신을 향해 웃고 있을까요? 아니면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어느 쪽이든, 그게 제 진심일까요?"
- P136

그래도 어느 순간 다현은 인생의 쓴맛이라는 비유를 이해할수 있게 되었고, 어디선가 그런 맛이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 때면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사장과 나누었던 기묘한 점심을떠올리곤 한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 다른 행성에서 스쳐 지나갔을지 모르는 그와의 대화를, 그리고 구름을 한 스푼 떠먹는느낌이었던 푸딩의 맛을그러다 보면 혀끝에 약간의 알싸한 단맛이 감도는 것 같기도 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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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두고 그 애는 말했어. 파히라, 내가 당신을 한 번만 안아봐도 될까요? 딱 한 번만요.‘ 나는 팔을 벌려 그 애를 안았어. 끝까지 안고 있었지. 비명을 참고 눈물을 참으며, 피부 표면을 칼로 베어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고통을 주지 않는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생각하면서.... - P30

"그래도 그 사랑을 감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지."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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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12-02 1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행복하기도 하지만 아프게도 하지요. ^^

바람돌이 2021-12-03 09:22   좋아요 1 | URL
와우 이 책 어제 다 읽었는데 너무 좋아요. 특히나 저기 인용한 첫번째 작품이 선인장 끌어안기라는 글인데 정말 임팩트가 장난 아닙니다. 원래 좋아하는 작가인데 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

transient-guest 2021-12-06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만간 몇 권을 구해 읽을 작가인데 특히 이 책이 어떤지 궁금했어요. 우연히 왔다가 평을 발견했네요.ㅎ

바람돌이 2021-12-07 10:03   좋아요 1 | URL
저는 이 작가의 첫 작품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보고 확 반했어요. 이번에 한꺼번에 3권의 책이 나왔는데 장편인 지구끝의 온실보다는 아직은 이 책같은 단편들이 더 좋더라구요.

북극곰 2021-12-08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가...‘를 아직도 못 봤는데, 더 좋아하게 되셨다니 확 동하네요. 저도 궁금해졌어요.

바람돌이 2021-12-08 23:44   좋아요 0 | URL
하하하 영업성공입니다. ^^ 전 지금 신작인 <방금 떠나온 세계>를 사놓고 다음에 읽으려고 하고 있어요. 어떤 작가를 데뷔작부터 나오는대로 읽는건 새로운 경험이네요. 김초엽작가는 지금도 좋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가 됩니다. 한국 소설의 폭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건 분명한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