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 - 티베트에서 보낸 평범한 삶, 그 낯설고도 특별한 일 년
쑨수윈 지음, 이순주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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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연과 함께 자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티벳, 그들에게 빠져 든 것은 티비 다큐 '차마고도' 를 보면서 강인하면서도 자연에 굴하지 않는 그들의 삶을 보고는 야크와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동경, 호감을 갖게 되었다. 올해 읽은 여행서중에 티벳에 관한 책이 두어권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내가 가서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간접적으로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면서 받아들이고 있었던것 같다.

조장, 어찌보면 정말 잔인한 것 같지만 그 깊은 속을 들여다보면 호화찬란하게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보다 몇마리의 독수리를 살리며 '마지막 보시' 를 하고 가는 참 이상적인 방법이란것을 깨달게 되기도 했다. '눈 깜빡할 새 독수리 20~30마리가 하늘에 나타난다. 날개 길이가 1미터도 더 되어 보이는 큰 독수리들이다. 내가 죽으면 내 시신으로 그중 한 마리라도 배불리 먹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남자들은 계속 손에 참차를 문질러 그것을 살점과 섞어 푼촉에게 건네주고 푼촉은 그것을 독수리들이 먹기 쉽게 배치한다. 순식간에 독수리들이 모두 먹어치운다. 남자들이 안도한다. 그들은 독수리가 아무것도 남기자 않고 시신을 빨리 먹어치우면 환생도 빨리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보시는 티베트인들의 본성에 자리합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독수리는 시체만 먹는 동물이죠. 그런데 만약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한다면 독수리는 굶어죽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너무 잔인한 일이 되겠지요.' 생각하기에 따라서 무엇이 더 잔인한 일일까..?  마지막 한 점의 살까지 보시를 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티벳트인들, 하지만 그들의 이런 삶은 왜곡되어 너무 많은 질곡의 삶을 살고 있음이 안타깝다.

모든 자연에 신이 있다고 믿는 하늘과 가까운 곳 티벳, 그리고 부족한 산소에도 굴하지 않고 척박한 삶에도 꿋꿋함으로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그들, 주식보다 더 많이 즐겨 마시는 '창'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한 술만 보아도 꾸밈없음이 들어나 보이는데 그 술로 인한 피해가 점점 커나간다는 것이 참 슬픈 일이다. 책으로 보는 그들의 삶도 좋지만 다큐로 보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거대함보다는 그들의 삶속에 들어가 꾸밈없는 일상을 거짓없이 전해주었다는 것이 참 와 닿는 책이다. 형제간에 아내를 나누는, '일처다부제는 우리의 전통이고 사람들은 그 제도에 만족하고 있어요. 어쨌든 혼인신곤느 하지 않으니까 그냥 내버려둬요.' 지금 세대는 일처다부제가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니 다행이다.

그들의 질긴  생명력에 꼭 필요한 '야크', 녀석은 농사에도 장삿길에도 그리고 그들의 삶에도 어디 하나 버릴것이 없는 존재이다. 똥은 연료로 털은 실로 가죽이며 고기며 그들에게 마지막 한점까지 모두 필요한 것들인 야크, '남자가 야크똥에 불에 붙이자 이내 거대한 붉은 불꽃이 허공을 향해 활활~~ 그 야크똥은 가장 강한 불꽃을 만들어 내고 따라서 정화력이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진 희귀종 붉은 야크의 똥을 말려 만든 것이다.' 영혼의식에도 꼭 필요한 야크똥, 넉넉하지 못한 자연에서 무엇하나 쉽게 생각하지 않고 생활에 활용하여 쓰는 그들의 일상적인 삶이 그대로 들어나 있어 티벳속에 깊숙히 들어갔다 나온것처럼 그들을 좀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싶다.

일상 모든 생활이 무당에 의해 이루어지고 바람에 나붓기는 깃발에 쓰인 그들의 바람처럼 모든것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 순박하면서 때묻지 않은 사람들의 삶이 다른사람들의 눈에는 왜곡되어져 삶의 터전이었던 그곳에 고립되지 않고 그들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날이 빨리 오길 바래본다. 더불어 오랜시간이 지난후에도 문명의 혜택보다는 그들만의 삶이 그대로 보전되어 전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의 시선으로 남을 판단하기 보다는 그들의 시선으로 가까이 다가가 꾸밈없는 티벳과 티벳인들을 보여주었기에 값졌던 책이다.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유일한 희망은 좀 더 나은 존재로 환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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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누주드, 열살 이혼녀
누주드 무함마드 알리.델핀 미누이 지음, 문은실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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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이혼은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며 시작이다...


세상에서 제일 나이 어린 이혼녀라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열살, 그 나이에 결혼과 함께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으니 얼마나 고통이 컸을까? 하지만 그녀에겐 <이혼>이라는 새로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알게 되고는 희망을 만난것 같아 정말 다행이다.이집트나 그외 중동지방에는 조혼풍습이 있어 여자들에게도 문제이지만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도 문제라는 것을 다큐를 통해 몇 번 보았다.그때 그녀의 이야기를 접한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한것도 같지만 이제 서서히 그녀들에게도 조혼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이혼을 하려한다는 것을 보고는 맘이 너무 아팠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아이의 건강마져도 좋지 못하고 산모도 똑같이 불행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접하면서 지금 나의 삶이 너무 행복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시간.

누주드, 그녀는 그녀의 선택이 아닌 아버지와 남편의 선택에 의해 강제 결혼을 하게 된다. 그것도 열살에... 열살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을 보면 엄마의 간섭과 보호아래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고 결혼이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자신의 미래마져 꿈을 꾸지 않으며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즐기기에도 바쁜 나이인것 같은데 집안의 가난과 사회적인 흐름에 인하여 자신의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음에 결혼과 함께 성적학대를 받게 된 누주드. 그녀가 이혼을 한다는 것은 가족과 집안에 대한 먹칠쯤으로 아버지와 오빠들은 본인이 겪는 고통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명예> 만을 말하는 것에서 보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하지만 열살의 누주드는 당당히 혼자서 법원을 찾아가고 판사를 만나 '이혼' 을 하겠다고 한것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당찬지 그리고 그녀가 겪은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겠다. 

밤마다 자행되던 남편의 성적학대와 시댁의 따갑던 눈길, 남편과 자신의 고통스런 삶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최선의 방법은 <이혼> 이었는데 다행히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 하느님은 그녀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 <이혼-자유> 를 얻은 그녀는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자신은 무척 행복하다. 다시 학교에 다닐수 있게 되었으며 그녀를 후원하는 사람들도 생기도 결혼으로 포기했던 희망이 다시 꿈을 꾸게 만들었다. 자신을 잘 돌봐주고 이혼을 하게 도와 주었던 변호사 샤다를 보면서 나중에 자신과 같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고 싶은 '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인 누주드, 자신의 결혼과 함께 묻혀 버리고 꼬였던 언니의 이야기도 그녀의 이야기와 마찬가지처럼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가족의 남자들이 내리는 명령에 항상 복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언제까지나, 무조건 '네!' 라고 말하라고 배웠습니다. 오늘 나는 '아니오'라고 말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늘 아버지와 오빠나 남자들에 의한 명령에 복종하며 자신보다는 가족과 집안과 풍습에 따랐던 여인들이 그녀를 계기로 새로운 희망을 얻고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 늘 하던 '예'가 아닌 '아니오' 라는 말을 찾기가 얼마나 힘든 여정이었는지. 그녀는 달콤한 사탕과 쵸콜릿을 좋아하고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열살의 아이다. 비록 집은 가난하고 아버지는 아직 실업자이며 오빠 또한 일자리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자신이 겪은 일때문에 자신의 여동생들에게는 똑같은 일을 당하지 않게 조혼반대를 할 수 있게 된 그녀, 열심히 공부하여 꼭 멋진 변호사로 거듭나길 바라며 책의 수익금 일부가 중동직여그이 어린이 교육 지원과 강제 조혼 예방을 위한 일에 쓰인다니 더 많이 홍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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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에 달 뜨면
백동호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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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그 자체이다. 소록도에서 나환자를 대상으로 자행된 일제의 생체실험을 낱낱이 고발한다.


<실미도>의 작가 백동호, 그이 이력을 읽다 깜짝 놀랬다.의무교육은 물론 문교부 혜택을 하나도 받지 않은 그가 교도소에서 8년6개월여 기간 동안 삼천여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니 대단하다. 처음엔 낯선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실미도>가 그의 작품이란 것을 알고는 작가의 대단한 약력을 기대했던 난 선량하게 미소짓고 있는 그의 사진과 함께 무너지고 말았다.한센인과 소록도를 다른 다큐를 언젠가 본 기억이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묻힌, 가슴 아픈 역사가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고는 관심이 가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는데 나환자들의 애환과 소록도의 역사를 소설로 만나니 다행스럽기도 하다.

일제시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묻힌 역사는 정말 많다. 하지만 지금도 파헤치기 보다는 어쩌면 쉬쉬 덮어 놓으려고만 하고 있는 것같은 아쉬움이 남는데 누군가 역사를 바로 잡는 이가 있다는 것은 우리 역사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것 같다. 내가 어릴때에 장날 장에 나가보면 꼭 몇 명의 나환자들을 만나곤 했었다. 발가락이며 손가락이 너덜너덜하고 옷마져 다 헤져서 사람들이 모두 기피하기도 하고 울면 문둥이가 잡아 간다는 말에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그때는 생각지 못했던 그들의 생사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소설을 읽는 동안...

오대산 타잔이라 불리는 한상혁은 소록도를 탈출하여 오대산에 들어와 남의 눈을 피해가며 살아 가고 있었는데 어느날 뜻하지 않은 횡재처럼 먹구렁이를 생포하게 된다. 먹구렁이를 잡아 큰돈을 만져 보겠다는 기쁨도 잠시 등산객들과의 마찰에 뜻하지 않은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피해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의 외모는 금방 알아치릴 수 있어 멀리 피하지도 못하고 잡혀 들어가게 되고 만다. 하지만 교도소마져 그에겐 편한 휴식처가 되지 못하고 모두가 그를 기피하며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하고 그에게 외치기만 한다. 그의 옆방에 있던 정환채는 그의 방으로 건너가 그에게서 진한 지난날의 질곡같은 삶과 함께 소록도의 역사를 듣게 된다.

나환자들의 천국이라 일컫던 '소록도', 진짜 낙원이며 천국이었을까? 주민들에게서 섬을 빼앗듯 사들여 나환자들의 병원을 짓고 그들이 묵을 요양소를 짓고 육지에서는 평범하게 대해보지 못했던 음식들을 먹을 수 있고 눈치보지 않고 살게 된 나환자들은 그곳이 천국인양 양의 탈을 쓴 일본인들이 시키는 일을 성하지 못한 몸으로 모두 이겨내며 천국이 될 그 날을 기다리며 산다. 하지만 태양을 삼키듯 먹구름이 서서히 소록도를 지배하듯 한사람 한사람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고 가혹한 매질과 감시,소록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차츰차츰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 상혁은 평택부자집의 사대독자였기에 넉넉한 돈을 가지고 들어가 그나마 그의 생을 연장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힘들기만 한 나환자드라, 그들을 상대로 원장이며 원장의 양아들인 사토는 그들을 마루타로 생체실험을 한다. 파상풍균과 괴저균을 실험하면서 넘쳐나는 나환자들을 인간이 아닌 자신들의 업적과 전쟁을 위한 실험도구로 취급한 사람들, 하지만 그들보다 더한 사람들은 그들의 밑에서 그들에게 충성을 다하는 끄나풀들이다. 

서로 죽고 죽이며 자신이 살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계급사회처럼 나의 목숨을 위하여 남의 목숨을 담보로 잡고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 영원한 비밀도 없고 영원한 역사의 매장도 없는 것 같다. 쉬쉬하며 실험을 나환자들의 목숨을 앗아가던 감금실의 비밀도 쉬쉬하며 퍼져나가게 되고 살인마를 죽이기 위한 처절한 응징을 하게 되기도 하고 섬을 탈출하게도 되는 나환자들의 애환. 배추벌레 보다 못한 목숨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나병에 걸린 것도 서러운데 너무도 가혹하면서도 처참하게 죽어간다. 그런 일들을 왜 우린 강건너 불구경하듯 보고만 있었던 것일까? 정부의 너무도 단단한 입단속과 귀단속에 그동안 <실미도>의 그들처럼 잊혀져만 간 것인지.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소설보다 더한 일들이 그곳 <소록도>에서 자행되었으리라. 숨겨진 역사속에 불행하게 묻혀버린 영혼들, 이 소설로 그나마 그들의 한을 듣는 듯 하여 가슴이 아리지만 위로를 얻는다. 

작가가 오랜동안 수감생활을 해서인지 글속에 들어난 그들의 생활이 사실적이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더 깊이 읽어나가며 자신의 맘까지 표현해 놓은 듯 하다. '마음은 안에서만 문을 열 수 있는 감옥이다. 마음이 닫힌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보여주어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애기만 듣는다.' 처럼 마음에 와 닿는 글들이 자주 보인다. 그가 이 글을 쓰기 위하여 참고한 문헌들을 보니 알게 모르게 나환자와 소록도에 대한 역사와 그들의 이야기가 있긴 있다. 하지만 그동안 관심부족이었을까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마져 읽어보려 했지만 읽지 않아 나병환자와 소록도에 대한 이야기인줄 몰랐다. 작가를 통하여 나환자들과 소록도에 대하여 알게 되어 소중한 기회가 되기도 했지만 대단한 작가를 만난 기쁨도 있다. 그의 다른 작품인 <실미도1,2>를 언제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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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최인호 지음, 임효 그림 / 청아출판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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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와 아랑의 하늘도 갈라 놓치 못한 영원한 사랑...


이 소설은 작가의 <왕도의 비밀>의 한 부분으로 삽입되었던 것을 앞부분과 뒷부분을 약간 손을 봐서 하나의 소설로 탄생시킨 것이라 한다. 전설로 전하는 '도미와 아랑의 사랑' 을 작가의 상상력과 감정이 이입이 되어 더욱 멋진 전설로 자리하게 된 것 같다. <왕도의 비밀>이란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는데 이 부분은 익히 알고 있는 부분이라 어려움없이 읽었고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무언가 가슴에 찐하게 남은 찌꺼기가 새삼 내 옆을 돌아보게 한다. 과연, 나의 사랑은 얼마만큼의 깊이를 가지고 있는지?

꿈 속에서 보았던 여인을 찾아..
몽유도원도, 백제의 21대 개로왕은 어느날 꾼 꿈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그 여인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 화공을 불러 자신의 꿈과 여인을 그리게 하고는 나라안팎을 모두 뒤져서 꿈 속의 여인을 찾아 내라고 신하들을 닥달을 한다. 하지만 어느 여인도 개로왕인 여경의 맘에 들지 않는다. 점점 여경은 방탕하게 되고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그는 여인들이 결혼을 했건 안했건 가리지 않고 꿈 속의 여인을 찾아 세월을 허비한다. 그러다 마주한 소문에 제일가는 미인인 '아랑'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신하들과 함께 그 여인을 만나기 위한 계략을 꾸민다. 그 마을에 사냥을 하러 나갔다가 사고를 당하여 목숨이 위험하게 되고 여인의 피가 특효인지라 도미는 아랑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고 아내의 단지한 피를 원하는데 아랑은 무언가 일이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한다.

아랑을 한번 보고 온 여경은 그녀를 잊지 못해 아랑의 남편 도미와의 내기를 꾸미어 그를 잡아 들이고 그의 목숨을 담보로 아랑을 탐하려 한다. 여경의 맘을 읽은 아랑은 하녀를 자신으로 변장을 하여 여경을 받들게 하고 자신은 그의 꾐에서 빠져 나오지만 여경은 끝내 그녀를 단념하지 않고 도미의 두 눈을 멀게 한다. 그래도 아랑은 남편에 대한 절개와 정조를 지키려 하며 여경의 꾐에서 빠져 나오려 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둘의 목숨이 다 위험에 처한다. 남편이 죽어야 여경을 받들겠다는 아랑은 그를 부족풍습대로 죽은자를 매장하는 배에 띄어 보내는 것을 제안하여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 보지만 끝내 여경을 받들 마음이 들지 않은 그녀, 하늘이 그녀의 마음을 알아 주었을까 남편도 살려주고 둘이 함께 할 수 있게 해준다. 눈 먼 남편의 수발을 들어가며 초라하게 살아가던 둘은 결국 백제를 떠나 고구려로 들어가고 가진것은 없지만 남편의 피리소리를 들어가며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어느날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의 얼굴때문에 모든 것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는 그 얼굴을 갈대잎으로 해한다. 험상궂게 변한 그녀의 모습, 그래도 옆에 남편만 있으면 행복한 그녀.

여경은 '아랑의 정절을 탐하는 욕심보다는 두 사람의 금슬에 대한 질투심으로 가학함으로써 고통에 신음하고 괴로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즐기는 것 같은 잔혹한 취미에 빠져들어 있음이었다.' 하지만 아랑은 '신은 가난하고 천했을 때의 친구는 잊어서는 안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함께 먹으며 고생을 함께 한 아내는 집에서 내보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 라는 말로 남편 도미와 자신은 하늘이 맺어준 부부임을 말하며 자신의 정절을 지켜 나간다. 조강지처, 아랑의 마음도 남편에 대한 믿음이 단단했지만 남편 도미의 아내 아랑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였기에 그들의 사랑을 하늘도 갈라 놓지 못하고 그들을 다시 하나로 맺어지게 하여 평생 행복하게 해 주었으니 내사랑이 어떤가 하고 뒤돌아 보고 싶을때 한번 되새겨 보면 좋을 내용이다. 사랑을 너무 쉽게 생각하여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현대의 사랑에 일침을 가하는 이야기이지만 사랑도 중요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 또한 부부간에는 중요한것 같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 하늘도 어쩌지 못한 아랑과 도미의 사랑은 하늘도 감동시킨 이야기일터, 부부간에 또는 남녀간에 교훈을 삼으라는 이야기로 짧은시간동안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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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
한승원 지음 / 김영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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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보시로 맑고 고요하며 향기로운 삶을 전해주는 '초의' 


작가의 책은 한권 한권 연관이 있는 듯 읽어야만 하는 강렬한 무언가가 있다. 먼저 <흑산도 하늘길>이란 정약전에 대한 책을 읽고 난 후 잠깐 다른 책인 <시인의 잠>이란 연애소설을 읽었다. 그런 후에 다시 정약전의 동생이며 그가 흑산도에서 그렇게 그리워 하던 <다산1,2>을 읽고 나니 <초의>를 집어 들게 만들었다. 다음으로 나를 행복하게 기다리고 있는 책은 <추사1,2>다. 다산의 제자로 알고 있는 '초의'를 제자이기 보다는 다산의 아들들과 긴밀한 우정을 나누며 추사와도 같은해에 태어나서인지 천재가 천재를 알아보듯 그들이 누린 삶은 '행복' 그 자체로 보였다. 

속명 '중부'인 초의는 시.서,화의 삼절을 만들려는 할아버지의 욕심도 있었지만 그가 지닌 천재성이 모든면에서 들어난듯 하다. 할아버지의 노력으로 그가 어린시절 누린 시서화에 대한 능력과 역병으로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고향집을 불사르며 떠나야 했던 고향 다음으로 그의 삶의 터전에 되어 버린 절에서  내재된 그의 재능이 모두 발휘되어 나오듯 범패며 바라춤이며 금어며 단청이며 못하는 것이 없던 그가 아홉번이나 덕으며 비로소 제 맛을 찾는 ''를 무서운 보릿고개를 넘으며서 곡우부터 입하전까지 찻잎을 따고 차로 되기까지의 과정을 땀과 배고픔으로 배우고 가마꾼으로 가마를 메지 않았다면 그 힘든 과정속에서 깨달음은 얻지 못할 수도 있었을터인데 일찍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법을 배운듯 하다.

왜, 자신이 힘들게 차잎을 따야하는지 배가 부르지도 않는 차를 마시는지 모르던 그가 차의 '다선' 이 되기까지 그의 삶은 아홉번의 덕음처럼 평범한 그의 삶이 물에 빠져 스님을 만난것부터 인연처럼 만난 향기로운 사람들, 벽봉스님이며 완당스님이며 정약용과 그의 아들들인 학연과 학유와 그리고 추사 김정희에서 소치 허련까지 그의 삶을 더욱 맑게 해준 사람들이 있어 그의 진가는 더욱 빛이 난 듯 하다. 작가는 초의스님의 '다선' 보다는 한인간의 고뇌와 삶을 조명하듯 역사속의 그를 추적하면서도 그의 파란만장한 행로를 그려내려 노력한것 같다. 역사속에 흩어져 있던 그의 퍼즐들을 한데 모아놓듯 '인간 초의' 를 그려내려 했기에 그와 함께 시,서,화를 논했던 풍류객들이 등장을 하여 그가 스님으로 보다는 삼절을 뛰어 넘는 사절 오절쯤의 이야기들이 조금은 나른한 맛도 있지만 작가 한승원을 읽기에는 좋은 작품인듯 하다.

'차는 텅 빈 곳에 어리는 향기로운 모양새(공즉시색), 그 모양새 속에 어려 있는 텅 빈 것(색즉시공), 우주의 원동력과 순리와 평등을 가르친다.'  작가 또한 차밭을 직접 가꾸며 자신이 만든 차만 마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또한 '초의선사'와 무엇이 다른 삶일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차는 혼자 마시는 것은 제일 제대로 마시는 것이고, 둘이서 마시는 것은 잘 마시는 것이고, 3~4인이 함께 마시는 것은 그저 맛을 보는 정도이고, 5~6인이마시는 것은 제대로 마신다고 할 수 없고, 7~8인이 둘러앉아 마시면 차를 보시하는 것이다.' 라는 말처럼 자신이 만든 차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려 노력하여 <다신전> 과 <동다송>을 쓴 초의선사. 시,서,화는 물론 차,사상,예술까지 아우르는 그의 재능은 정말 대단한듯 하다. 범인人으로 살았다면 그의 삶을 정리하기 쉬웠을테지만 스님으로 전국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셨기에 그의 행적을 찾아 나가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삼년여동안 '초의' 를 찾으려 노력했던 해산 한승원님 덕에 초의선사를 쉽게 만나고 헤어졌지만 아직 한승원을 알아가기엔 역부족인것 같다. 그가 '초의'와 함께 등장시킨 '추사'를 읽으면 갈증이 조금 더 줄어들까 하는 생각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두 개의 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하나는 거울이고 다른 하나는 숫돌이다.거울은 올곧은 일을 하는 성인의 삶인데 거기에 몸과 마음을 비춰보며 살아가야 한다. 숫돌은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의 행실이다. 그것은 다른 산에서 나는 우둘두둘한 돌일지라도 내 심신이 성정을 벼리는 데 숫돌로 쓰면 된다.' 할아버지가 주신 말씀을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아간 초의, 그 말씀처럼 어긋남이 없이 살려 노력한 그의 삶처럼 거울에 비추이며 잘못을 숫돌에 벼르듯 맑고 향기로운 삶을 전해 준 초의선사, 한 잔의 차를 마시고 난 후의 개운함처럼 맑은 향기가 나는 듯한 책 '초의' 는 마음에 때가 끼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읽으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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