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1 | 62 | 63 | 64 | 6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난처한 미술 이야기 1 -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미술 : 미술하는 인간이 살아남는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점이나 도서관의 예술 서적 코너를 살펴보면선사시대 미술부터 현대 미술까지 시대 순으로 미술사를 살펴보는 미술 통사(通史)는 매우 흔하다그런데도 이 책의 제목에는 난생 처음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어떤 점에서 다른 미술 통사와 다르기에 난생 처음이라는 말을 자신 있게 제목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일까?


'난생 처음 한 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2권의 두 페이지. 저자와 청자의 대사가 다른 색으로 인쇄되어 있다. 사진 출처: http://www.artinculture.kr/online/2781


 우선 이 책은 가상의 청자와 저자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기획되었다이러한 대화 형식은 저자 혼자 줄줄이 설명하는 형식과 달리독자가 청자의 입장에 이입해 저자와 대화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한다청자의 대사와 저자의 대사는 각각 다른 색으로 인쇄되어청자(에게 이입한 독자)와 저자의 대사를 구분하기 쉽게 하면서 두 사람이 서로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난생 처음 한 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2권에 실린 연대표. 책의 시각적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 사진 출처:

http://www.artinculture.kr/online/2781


그리고 텍스트의 흐름에 맞게 시각자료가 꼼꼼히 배치되어 있다저자는 오른쪽 페이지의 그림을 보시면’, ‘뒤쪽의 그림을 보시면’ 등 책의 판면 어디에 시각자료가 위치해 있는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실제로 저자가 가리키는 위치에 시각 자료가 배치되어 있다이것은 처음부터 텍스트와 시각자료의 위치를 고려해 기획과 집필편집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또한 작품 도판과 지도일러스트그래프연대표 등 다양한 시각자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독자들은 책의 시각적 흐름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다또한 깔끔한 편집과 다채로운 시각 자료들은 독자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주고책을 소장하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또 하나의 독특한 요소는 한 소단원이 끝날 때마다 나오는 요약정리 난처하 군의 필기 노트이다. ‘공부하는이라는 제목에 맞게 독자들은 한 소단원을 다 읽을 때마다 필기 노트를 보면서 그 단원에서 배운 것들을 머릿속에 정리하게 된다이 코너는 학생들의 필기 노트처럼 줄이 그어져 있는 공책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어그냥 미술사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강의를 듣고 필기하면서 공부하는 느낌을 더해준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의 황소를 그린 벽화. 약 1만 7천 년 전. 저자는 현생 인류가 다른 인류와 달리 정교한 의사소통을 통해 사회를 지속시키고 지식과 지혜를 축적했기에 생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미술은 언어와 함께 정교한 의사 소통의 도구 역할을 해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한, 생존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동굴 벽화는 그 의사소통의 가장 오래된 증거이다. 사진 출처: http://www.ancient-wisdom.com/francelascaux.htm


무엇보다 이 책은 미술에 대해 참신하고 깊이 있는 시각을 제시한다미술사라는 같은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미술 통사들은 서로 비슷비슷한 내용을 다룰 수밖에 없다하지만 이 책은 다른 미술 통사들이 지나쳤던 지점들을 짚어보면서  '미술은 삶의 부속이나 장식이 아닌 생존의 비결이다' 등의 참신한 시각을 제시한다청자가 (독자들이 던질 만한질문을 던지면 저자가 답하는 형식은 이 참신한 시각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이끌어낸다청자(그리고 독자)는 기존의 시각이나 상식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질문을 하면저자는 청자와 독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주며 대답한다질문과 대답을 통해 독자가 또 다른 방향에서 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점들 덕분에 난생 처음 한 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는 1권이 21쇄까지 증쇄되고다음 권들도 계속해서 증쇄되고 있을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이 시리즈의 인터넷 서평들은 대부분 지식과 재미 모두를 잡았다는 호평이다이제 중세 미술까지 다루었으니 앞으로 다룰 내용이 더 많을 것이다난생 처음 한 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가 지금의 참신함을 끝까지 잃지 않고계속해서 독자들을 미술 공부의 즐거움으로 이끌기를 바란다



"의사소통이 없으면 협력할 수 없으니,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는 언어라든지, 미술이야말로 생존의 비결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맞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미술은 삶의 부속이나 장식이라는 편견이 있지요. 하지만 미술이야말로 두 발로 걷고 도구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우리가 타고난 생존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p. 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죄와 벌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스포일러 포함

어린 시절부터 10년도 넘게 『죄와 벌』을 읽어야지, 라고 마음만 먹다 드디어 죄와 벌을 읽었다. 막상 읽어보니 내가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책이라는 선입견은 깨졌다. 올해 상반기 내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푹 빠져 있었는데, 죄와 벌을 읽으면서 톨스토이와는 다른, 도스토예프스키의 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아직 이 책 하나만 읽었지만. 


작가 최악의 조합 중 일부. 도스토예프스키의 장광설이 그 중 한 요소로 끼어 있을 만큼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장광설은 대단하다. 출처: 디시인사이드 도서 갤러리


이 책을 읽기 전 작가들의 단점들을 모아 놓은 '작가 최악의 조합' 이라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장광설'이 그 중에 끼어있었다. 읽으면서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뿐만 아니라 그에게 맞서는 조사관 포르피리, 그를 유혹하는 스비드리가일로프, 친구 라주미힌, 심지어 단역에 가까운 인물인 레베자트니코프까지 각자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이야기 전개 위주로 소설을 읽는 편이라, 처음에는 엄청난 양의 장광설에 숨이 막혔다. 하지만 읽으면서 각자의 생각과 개성이 생생히 드러나는 장광설에 빠져들게 되었다.

장광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생각과 심리 묘사이다. 거기에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자기 신념을 위해서라면 어떤 행동을 해도 정당화될 수 있을까? 

소설 초반에 라스콜리니코프는 우연히 술집에서 한 대학생과 장교의 대화를 듣는다. 대학생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모든 사람에게 해만 끼치고, 얼마 있지 않으면 저절로 죽을 노파와 그 노파의 돈으로 할 수 있는 수백, 수천 가지의 선한 일들이 있다. 노파를 죽이고 노파에게서 빼앗은 돈으로 선한 일들을 한다면, 그 선한 일들로 노파를 죽인 죄가 보상될 수 있지 않을까?"


2002년 BBC 드라마 버전 속 라스콜리니코프(존 심)의 모습. 그는 고리대금업자 노파와 그녀의 여동생을 살해하고 나서 작품 내내 죄의식을 느끼다, 자기 합리화하기를 되풀이하면서 괴로워한다.


또 라스콜리니코프는 예전에 썼던 논문에서 사람들은 비범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의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주장했다. 그 논문에서 그는 그저 인류의 존속을 위해 태어나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비범한 사람은 자기 신념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어떤 장애든 제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나폴레옹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 신념을 실행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선과 악이 아닌 자신의 양심에 의거해서. 그는 자신이 그런 비범한 사람인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노파를 죽인다. 하지만 그는 노파를 죽인 것에 대한 죄의식으로 작품 내내 괴로워하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죄의식과 자기합리화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들로부터도 스스로 멀어져간다. 그리고 자신을 의심하는 경찰 조사관 포르피리에게는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을 암시하면서 도발한다. (얼마나 대놓고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지 그를 철석같이 믿는 친구 라주미힌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살인을 들킨 것은 아닐까,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서서히 피폐해져 간다. 그가 이렇게 괴로워한 기간이 불과 2주일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피폐해져 가는 그의 심리는 거의 800여 페이지에 걸쳐 세밀하게 묘사된다. 읽는 사람까지 라스콜리니코프의 좁고 어두컴컴한 하숙방에 갇혀 함께 미쳐가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BBC 2002년 드라마 버전에서 라스콜리니코프에게 회개하고 자수할 것을 권하는 소냐(라라 벨몬트).


결국 그는 죄의식으로 인한 괴로움과 자수하라는 소냐의 설득으로 인해 자수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시베리아에 유형을 간 뒤, 그곳까지 자신을 따라온 소냐의 무한한 사랑에 감화돼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암시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하지만 이 결말에 대해서는 독자들마다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열린책들판 『죄와 벌』 부록에는 번역자와 러시아 학자 콘스탄틴 모출스키가 각각 쓴 해설이 실려 있는데, 두 사람도 결말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인다. 

모출스키는 그가 진정으로 회개할 리 없다는 의견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수를 할 때 자신의 손익을 분명히 따진다. 그는 자수하면 정상참작을 해주겠다는 포르피리의 약속을 분명히 고려했다. 또한 자신이 죽인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자신이 비범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자신이 한심할 정도로 평범하고 무력하다는 것에 대한 절망감이 더 커 보인다. 그는 감옥에 들어가서도 반성하지 않고 "나의 양심은 편안하다"고 생각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비범한 사람으로서 선과 악이라는 도덕률이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지만, 다만 운명과의 싸움에서 패배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모출스키는 19세기라는 시대적 배경, 당시 『죄와 벌』이 연재되던 잡지의 온건한 성향 때문에 도스토예프스키가 비범한 사람에 대한 진실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한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와의 사랑, 신과의 화해를 통해 갱생할 것을 암시하는 결말은 '경건한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두냐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절망하는 스비드리가일로프(나이젤 테리)


반면 번역자는 결말이 보여주는 그대로 라스콜리니코프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나는 번역자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모출스키는 선과 악이라는 도덕률을 뛰어넘어서 무제한의 자유를 추구했던 인물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자살한 것은,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할 일을 찾지 못하고 권태를 느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자신의 생각과 달리 그 자신조차 무제한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한다. 그가 무제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인물이었다면 그는 두냐가 자신을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두냐와 강제로 관계를 가지고, 꿈 속에서 다섯 살짜리 창녀가 자신을 유혹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두냐에게 그럴 수 없었고, 다섯 살짜리 창녀가 자신을 유혹하는 모습에 역겨움을 느꼈다. 자신을 구해준 아내를 독살하고 어린 소녀를 강간하는 반면, 소냐와 그녀의 어린 동생들에게는 거액을 기부하는 등 선과 악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행동하던 그도, 정작 자신이 선과 악의 도덕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허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또 선과 악을 넘어서서 그저 자신의 생각을 따라 무제한의 자유를 추구하며 살아간 결과가 어떤 것인지 라스콜리니코프의 악몽 속에서 나타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유형지에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만이 옳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전염병에 걸리는 꿈을 꾼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신념이 자신의 신념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죽이고 세상은 멸망한다. 사람에게는 자기 신념을 가지고 행동할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는 다른 사람의 신념과 자유, 생명을 침해하지 않는 선 안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 선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라스콜리니코프의 악몽 속 세상과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아무리 올곧고 강한 신념도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무제한의 자유 속에서는 변질되기 마련이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의 아가페적이라고까지 할 만한 무한한 사랑을 받아들이고, 신과 화해할 것을 암시하는 결말이 지나치게 기독교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소냐는 신을 믿으라고 그에게 강요한 적이 없고, 그가 머리맡에 성경책을 둔다고 해서 그가 기독교인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는 기독교 신앙에 감화되었다기보다는, 어떤 사상보다 인간의 삶 자체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범한 사람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선과 악도 뛰어넘을 수 있고 다른 사람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자신의 이론이 얼마나 허점투성이였는지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소냐, 친구 라주미힌, 여동생 두냐)이 그를 놓지 않았고, 그도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인간 본연의 감정, 사랑과 선의를 버리고 외면하기에는 너무 인간적이고 연약했다. 그는 자신의 허점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유형지에서 새로운 삶이 찾아왔다는 것을 느끼는 소냐와 라스콜리니코프.


이런 결말이 도덕적인 설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라스콜리니코프가 도덕률과 기독교 신앙에 얽매였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삶과 이론 사이의 모순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는 죄의식과 자기합리화 사이에서 고민하기를 멈추고,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나약하다는 것,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됐을 것이다. 자신이 자신을 제약하는 것들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렇게 패배함으로써 그는 자유를 얻었다. 그래서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다."는 문장은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좁은 골방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가뒀던 마음의 감옥에서 나온 그에게, 이 말은 진정한 삶이 시작될 것을 알리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필리아 2018-04-28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출스키의 ‘경건한 거짓말‘에 공감이요^^
멋진 리뷰 보고 갑니다~~

바스티안 2018-04-28 13:11   좋아요 0 | URL
각자의 해석이 다르니까요.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민들의 반대 여론에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강행되고 있고대선 때의 공약 중 지켜진 것은 거의 없다시위나 서명 운동에 참여하면서 목소리를 내어 봐도 국정에는 전혀 반영되는 것 같지 않다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무엇을 한다 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민주주의가 힘을 잃어가는 지금의 상황 앞에서 우리는 비통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의 저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이 시대의 정치가 비통한 자들의 정치라고 이야기한다지금 한국의 정치 상황이 우리를 비통하게 하는 것처럼민주주의 정신은 쇠퇴하고 국민들이나 정치인들이나 사사로운 이익에 골몰하는 미국의 정치 상황은 파머를 비통하게 한다지금의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어느 시대어느 곳에나 현실과 가능성 사이에는 절대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존재한다그 비극적 간극 앞에서 우리는 비통한 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비통한 자가 될 때우리 자신과 세상의 고통을 끌어안으면서 마음을 열게 된다고 말한다그는 비통함으로 인해 열린 마음들 안에서 병든 민주주의를 치유할 잠재력을 발견한다저자는 병든 민주주의를 치유하기 위해 민주주의에서의 마음의 역할로 눈을 돌린 것이다.

 

마음은 정치와는 상관없는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으로 보인다그런데 왜 저자는 민주주의에서의 마음의 역할에 주목했을까?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서로의 차이로 인한 갈등과 긴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나치가 유대인이라는 희생양을 통해 독일 사회 안의 긴장을 종식시켰던 것처럼 강제로 긴장을 종식시킬 수도 있다하지만 민주주의는 긴장을 종식시키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긴장을 끌어안기 위한 제도이다민주주의는 긴장을 끌어안고 그 안에서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며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간다그렇기에 비통함으로 인해 열린 마음으로긴장을 창조적으로 끌어안는 마음의 습관이 민주주의의 토대를 재건할 수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마음의 습관은 개인의 내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그는 우리에게 자신만의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나아오라고 이야기한다거리나 지역 공동체 같은 공적인 영역으로 나와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을 넘어 타인과 만나고 대화할 때 우리는 다양성과 활력을 얻을 수 있다교실이나 종교 공동체처럼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공동체에서도 마음의 습관을 기를 수 있다이러한 공동체에서는 교사나 종교 지도자 같은 전문가나 지도자에게 의사결정을 맡기고 의존하기 쉽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느리더라도의사 결정 과정에서 일어나는 긴장들을 견뎌내면서 합의를 추진한다면생각지 못한 훌륭한 해결책과 깊은 연대감을 얻을 수 있다또한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는 것에 따르는 긴장을 끌어안고 내면적 성찰을 공동체에서 공유할 때그 성찰은 더 심화되고 힘을 얻어 사회 변혁으로 확장될 수 있다이러한 마음의 습관들을 통해 이루어낸 정치적 실천이 비통한 자들의 정치인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마음의 습관이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들에 비해 작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하지만 저자는 정치 문제가 너무 거대하고 복잡하며 우리와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될 때 우리가 위축된다고 이야기한다그리고 우리의 생활 가까이에 있는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의 습관이 우리가 당면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하지만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위한 기초 체력을 회복하려 할 때, ‘마음의 습관은 좋은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마음의 습관이 변화를 일으키기에는 너무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될 때우리는 저자가 인용했던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볼 수 있다.

 

정의를 위한 (모든투쟁의 핵심 요소는 잠깐 동안만이라도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동안이라도 한 걸음 나서면서 뭔가를 하는 사람들이다그리고 심지어 가장 작고 비영웅적인 행동들이 불쏘시개로 쌓여나가다가 어떤 놀라운 상황에서 격렬한 변화로 점화될 수 있다.(p. 64.)


정의를 위한 (모든) 투쟁의 핵심 요소는 잠깐 동안만이라도,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동안이라도 한 걸음 나서면서 뭔가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심지어 가장 작고 비영웅적인 행동들이 불쏘시개로 쌓여나가다가 어떤 놀라운 상황에서 격렬한 변화로 점화될 수 있다.(p. 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1 | 62 | 63 | 64 | 6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