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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인문학 - 한국 인문학의 최전선
서동욱 기획 / 반비 / 2013년 1월
평점 :
도서관이나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인문학’ 강좌들의 목록을 살펴보면 그 중 정말 인문학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강좌는 열에 한둘이 될까 말까다. 서점에 가서 인문학 도서들의 제목을 훑어보면 인문학조차 ‘힐링’이나 ‘스펙 쌓기’의 수단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이 책은 인문학 열풍이 불지만 정작 인문학의 본질은 흐려진 지금의 현실에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인문학자부터 언론인, 출판인까지 인문학과 연을 맺고 있는 다양한 저자들이 모여 지금의 한국 인문학에 25개의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들을 통해 인문학은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다시 짚어본다.
이 책의 첫 질문은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적 CEO인가’이다.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기업의 CEO들은 인문학에 빚을 졌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인문학이 과연 진짜 인문학일까? 저자는 그들이 말하는 인문학이 새로운 자본주의에 필요한 정신들을 집약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자본과 결탁해 현실을 가리는 ‘우아한 가림막’이 되어버린 인문학을 거부하고, 인문학이 다른 분야의 토대가 되거나 어디엔가 써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유용성의 의무에 반대한다.
“유용성은 인간을 억압한다. 인문학은 쓸모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으며 억압이 인간에게 얼마나 부정적으로 작용하는지 보여준다. 이것이 쓸모없는 인문학이 쓸모 있는 이유다.”
책의 본문 중 비평가 김현의 글을 조금 변형시킨 이 글은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 인간까지도 유용함이라는 잣대로 판단되며, 유용하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인문학이 어떤 존재 가치를 가지는지 이야기한다. 인문학이 어디엔가 써 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수단이 아니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책은 인문학의 시작 자체가 고전 문헌에 대한 ‘비판적’ 독해였다는 데서 인문학을 인문학답게 하는 것이 비판 정신이라고 본다. 유용함이 가치의 척도가 되고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이 목표가 된 세상, 그런 세상 속에서 절망과 무기력, 타성에 빠진 삶에 의문을 제기하고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성찰하는 것이 인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자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즉, 인문학이 찾아야 할 본질은 비판과 성찰, ‘싸우는 인문학’의 정신인 것이다.
인문학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지만, 인문 교양의 많고 적음이 사람을 바꾸지는 않는다는 이 책의 지적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인문학적 교양이 풍부한 대기업 CEO들은 정작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일에서는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라는 인문학의 가르침을 내팽개친다. 그들의 인문학은 비판과 성찰이 빠진 교양으로서의 인문학일 뿐이다. 교양으로서의 인문학이라는 한계에 갇히지 않으려면 인문학의 가르침을 내 삶에,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스스로 생각하고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세상과 자신을 동시에 수리하는 ‘싸우는 인문학’의 정신이다.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어진 ‘소프트 인문학 세트 메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이 책은 ‘싸우는 인문학’의 정신을 잃지 않는 인문학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인문학이 자본과 결탁하면서 비판 정신을 잃고 원래의 방향에서 멀어진 지금, 이 책은 인문학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너도 나도 인문학을 외치지만 정작 인문학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는 데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 인문학 공부를 해도 정작 자신의 삶에는 변화가 없어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세상과 자신을 바꾸는 자신의 인문학이 무엇인지 고민함으로써 첫 발을 떼라고 제안한다. 그 발걸음들이 이어져 세상과 자신을 바꾸는 인문학이 뿌리내리길 바란다.
"유용성은 인간을 억압한다. 인문학은 쓸모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으며 억압이 인간에게 얼마나 부정적으로 작용하는지 보여준다. 이것이 쓸모없는 인문학이 쓸모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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