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카를로스 - 희곡 대산세계문학총서 78
프리드리히 폰 실러 지음, 장상용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스포일러 포함


이 희곡집에는 잔 다르크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인 '오를레앙의 처녀'와 스페인의 왕자인 카를로스 왕자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인 '돈 카를로스'가 실려 있다.

 

1. 오를레앙의 처녀

-돈 카를로스 이후에 쓴 작품임에도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돈 카를로스의 등장인물들보다 그 깊이가 얕고 평면적이어서 종이인형 같다. 주인공 잔느는 적군의 장군과 사랑에 빠진다는 점만 제외하면 수많은 기독교의 전설들에 나오는 전형적인 성녀이다. 그리고 적장과 사랑에 빠져서 잔느의 캐릭터가 더 입체적으로 변한 것도 아니다. 잔느가 자신이 적장을 사랑한다는 것에 죄책감을 가져, 자신이 마녀로 몰리는데도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하는 상황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런데 정작 적장을 만났을 때는 자신의 사랑을 단번에 포기한다. 잔느와 적장 사이의 아슬아슬한 감정, 잔느를 동료로 존중하고 존경하면서도 또한 여자로서 사랑하는 뒤누아 백작의 감정,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잔느를 마녀라고 손가락질해도 변함없이 잔느를 믿고 아끼는 고향 친구 레이몽의 순박한 사랑을 좀 더 풀어갔다면 인물들에 생기가 돌았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너무 멜로에만 치중하게 되나?)

 

- 잔느를 더 영웅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화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전사하는 것으로 바꾸었는데, 실제 역사대로 화형당하게 하는 편이 순교자적인 면과 비장함을 더 강조할 수 있지 않았을까.

 

- 전해지는 이야기대로 쓰는 것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잔느의 말에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보인다. 하지만 전지전능해 보이는 잔느도 그녀를 믿지 못한 아버지와 자신의 감정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너무나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실러가 낭만주의 시기의 작가이다 보니 잔느는 그야말로 열혈 소녀이다. 잔느의 대사는 종교적인 열정이 넘쳐나는 문어체 대사들인데, 자연스러운 구어체를 문어체보다 좋아하는 나로서는 좀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번역자 분이 나이 드신 학자여서 그런지 잔느와 언니들, 또는 레이몽과의 일상적인 대사에서는 평범한 소녀로서의 말투는 잘 살리지 못하셨다.


2. 돈 카를로스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포사 후작 로드리고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전형적인 캐릭터이고 완벽한 캐릭터이다. 꺾이지 않는 올곧은 성품과 자유를 위해 싸우는 용기, 자신을 희생해 카를로스 왕자를 지켜내는 우정 등 완벽한 캐릭터의 전형인데도 오히려 그 점이 매력적이다. 실러도 포사 후작에게 애정을 많이 쏟았는지 주인공인 카를로스 왕자와 엘리자베트 왕비보다 비중도 더 많이 할애한 것 같다. 겉보기에는 카를로스 왕자의 엘리자베트 왕비를 향한 사랑이 중심 내용인 것 같지만 사실은, 포사 후작의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 중심 내용이 아닌가 싶다. 자유를 향한 열망을 쏟아내는 포사 후작의 대사에 공을 들인 것을 보아,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이쪽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 겉으로는 펠리페 왕에게 충성하는 척하면서 펠리페 왕과 카를로스 모두를 속이면서까지 카를로스와 엘리자베트, 네덜란드를 구하는 작전을 펼치는 치밀함이 매력적이다.

 

-그런 포사 후작조차도 "제 아무리 날아다녀도 길지만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끈"에 한평생 묶여 있었다는 것이 소름이 끼친다. 왕국을 자유에게 물려주느니 파멸에게 물려주겠다는 종교재판장의 대사에서 종교적 독선의 지독한 집요함을 느꼈다. 종교재판장은 후반에만 잠깐 등장하지만, 왕자를 파멸로 몰아넣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한 도밍고 신부와 알바 공작보다도 더 무서운 악역이다.


-주인공인 카를로스 왕자는 주인공이지만 포사 후작보다는 매력이 떨어지는 캐릭터이다. 펠리페 왕과 카를로스까지 속여가면서 치밀하게 카를로스와 네덜란드를 구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포사 후작에 비하면 실행력도 떨어진다. 그리고 지나치게 감정적이어서 신중함도 떨어진다. 포사 후작이 왕의 자객에게 살해당했을 때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겠지만, 자신을 살리려는 포사 후작의 뜻을 생각해서라도 펠리페 왕 앞에서는 연극을 해야 했다. 그리고 정숙한 왕비로 살려고 했던 엘리자베트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도 카를로스 왕자가 아닌 포사 후작이었다.

 

- 이 작품은 카를로스 왕자와 엘리자베트 왕비의 사랑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들을 그리는 소설이지만, 정작 카를로스 왕자는 엘리자베트 왕비보다는 친구인 포사 후작을 더 아꼈던 것 같다. 그렇게 엘리자베트 왕비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괴로워하던 카를로스 왕자는 포사 후작이 죽은 뒤 엘리자베트 왕비에 대한 감정을 놓아버린다. 정작 엘리자베트 왕비가 남편과 딸, 왕비 자리를 버릴 각오를 하고 자신과 함께 하겠다는 고백을 했음에도. 포사 후작을 잃은 후에야 자신의 무모한 열정 때문에 친구가 자신을 희생했고, 그 친구가 자신에게 엘리자베트 왕비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에볼리 공녀는 치밀하고 악독한 악녀 캐릭터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는 그리 독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자신의 사랑이 거절당한 것에 대한 분노 때문에 카를로스 왕자의 적들과 손을 잡았지만 상황이 생각보다 악화되자 카를로스 왕자와 엘리자베트 왕비를 모함하는 데 동참한 것을 후회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그래 봤자 때는 이미 늦었지만.

 

- 돈 카를로스에 대한 실제 역사 이야기를 찾아보고 나니, 돈 카를로스는 이 작품에서처럼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려 하는 고결하면서도 비극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정신장애가 있는 자폐아일 확률이 더 높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정말 선량한 정치적 희생양이었는지 단순한 미치광이였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는 인물인 것 같다.

 

-베르디의 오페라에서는 원작보다 멜로를 더 강화했다. 원작 안에서는 정작 두 사람이 직접 만나는 장면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 오페라에서는 카를로스가 혼사가 성사되기도 전에 약혼녀로 내정된 엘리자베트 공주를 몰래 찾아가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추가되었다. 그럼에도 오페라를 보는 관객들 중 많은 사람들이 카를로스와 엘리자베트의 사랑보다는 카를로스와 포사 후작의 우정에 더 깊은 감명을 받는다고 한다. 원작에서 포사 후작의 캐릭터와 카를로스와의 우정이 워낙 잘 구축되어 있었으니, 멜로를 보강해도 그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번역하신 분은 원작에서 모두 독일식으로 바뀐 인명을 프랑스식과 스페인식으로 다시 바꾸는 수고를 하셨지만 좀 더 꼼꼼이 하셨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스페인식 이름인 로드리고로 바꾸었어야 하는데 독일식 이름인 로데리히로 그대로 두거나, 스페인식으로 클라라 에우헤니아라고 해야 할 공주의 이름을 클라라 에우게니아, 클라라 오이헤니아라고 독일식으로 그대로 둔 것, 스페인식 이름인 펠리페라고 하지 않고 필립으로 그냥 둔 것(펠리페 왕은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으로 독일 쪽으로도 관련이 있는 인물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스페인 국왕으로서 스페인식 이름으로 표기되는 것이 맞다.), 프랑스 공주인 엘리자베트의 이름을 영어식 이름인 엘리자베스로 표기한 것이 그 예이다. 그리고 '낫다'를 계속 '낳다'로 말하는 것이 거슬렸다.



                                   한스 홀바인, 사이먼 조지의 초상


                                     산체스 코엘로, 카를로스 왕자의 초상


-책 표지의 우아한 남자의 초상화는 한스 홀바인의 <사이먼 조지의 초상>이다. 홀바인이 카를로스 왕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인 것으로 보아, 그의 모델 사이먼 조지도 카를로스와 동시대 인물이지만, 카를로스와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우아하고 기품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오히려 실제 카를로스의 초상화에서 느껴지는 카를로스의 인상은 경박하고 야비하다. 실제 역사 속의 미치광이 카를로스와 달리 작품 속의 카를로스는 고결하고 올곧은 인물인 것처럼. 책 표지의 초상화는 작품 속의 고결하고 올곧지만 주변의 중상모략에 시달리는 비운의 왕자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과 함께 리메이크 1
미와 요시유키 지음, 이현석 옮김, 주호민 원작 / 애니북스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1. 진변호사가 자홍 씨에게 각 지옥과 그곳을 관장하는 대왕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일러스트 속 대왕들은 원작에서와 같이 괴짜 과학자 같은 모습의 오관대왕(검수지옥 관장)을 빼면 일본 불교 회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아주 기괴한 건 아니지만 확실히 원작보다 사람 같은 느낌은 덜하다. 한국인 편집자 분께서는 일러스트에서만 그런 모습이라고 하셨는데, 첫 번째 도산지옥의 진광대왕은 일러스트와 같은 모습이니 좀 불안하다. 다른 대왕은 모르지만 염라대왕과 변성대왕은 일러스트와는 다른 모습으로, 캐릭터 디자인이 멋지게 나왔으면 좋겠다.


2. 원작에서 모순되는 설정인 '한 지옥에서 영원히 벌을 받는다'는 설정을 죄업의 양에 따라 형기가 정해지는 것으로 바꾼 것 같다. 각 지옥을 돌면서 벌을 받는다는 죄인들도 있으니 모순되는 설정이었는데, 그 모순도 해결하면서 더 합리적인 설정이라 바뀐 설정이 맘에 든다. 원작자인 주호민 작가님과 상의해서 바꾼 설정인 듯싶다.


3. 진기한 변호사가 지적인 천재 캐릭터라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리액션도 커지고 엉뚱한 면이 강해졌다. 원작보다 좀 어린 느낌이기도 하고. 자홍 씨도 어려지니 둘의 나이대가 비슷해져 친구 같은 느낌이 강해졌다. 원작의 자홍 씨가 "혹시 신 아니세요?"라고 할 정도로 절대자 같은 면은 줄어들었다.  


4. 처음에는 야쿠자 같이 보이던 해원맥도 보다 보니 원작보다 더 날카롭고 준수한 외모여서 점점 마음에 든다. 해원맥과 덕춘이의 비하인드 스토리인 신화편 차사전도 이 작가 그림체로 봤으면 싶을 정도다. '북방의 하얀 삵' 이미지에도 잘 어울리고, 일본판 덕춘이 캐릭터와도 잘 어울린다. 일색이 강하다는 건 여전히 마음에 걸리지만. 


5. 유성연 병장과 흑제신장이 대치하는 장면의 긴장감과 섬뜩함을 잘 살린 것이 마음에 든다. 액션신은 확실히 원작보다 박진감이 있다. 원작에는 나오지 않던 흑제신장의 본모습도, 청소부로서의 모습도 둘 다 카리스마가 있어서 마음에 든다.


6.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대로 자홍 씨의 나이가 어려져서 납골당을 보면서 내 집 마련 이야기를 하거나 회사 일에 쫓겨서 산 이야기를 할 때 삶의 애환이 덜 느껴진다. 자홍 씨나 진변호사나 아, 그렇죠.그렇네요, 하고 무덤덤하게 지나가는 느낌. 감정의 깊이가 얕아졌다. 자홍 씨의 나이가 어려져서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데서 나오는 애잔함을 기대했는데, 그런 애잔함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의 유골이 납골당에 안치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원작의 자홍 씨는 워낙 삶에 지쳐서 무덤덤한 모습이라는 게 이해가 가지만, 리메이크판의 자홍 씨는 아직 죽기엔 젊고 심지어 자기가 죽은 것도 모른 채 남의 장례식장에서 졸고 있었던 걸로 착각했었다. 그러니 이제 돌아갈 몸이 아예 없어져서 자신이 살아날 가능성이 아예 없어졌다는 거에 동요하는 걸 보여주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한빙지옥 편에서는 자홍 씨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데서 나오는 애잔함과 안타까움을 잘 살려줬으면 좋겠다. 한빙지옥의 송제대왕, 판관들 뿐만 아니라 보는 독자들도 자홍 씨에게 연민을 가지게. 


7. 덕춘이가 송신탑 위에 올라가서 원귀를 탐지하는 장면은 원작과 달리 어딘가 아련하고 신비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그 장면에서 덕춘이가 다른 장면에서보다 더 예쁘고 청순해서 좋고.


8. 지옥의 장면들은 원작에서보다 훨씬 잔혹하다. 원작에서와 달리 상처가 나도 다시 원상복귀되고 다시 상처가 나면 또 원상복귀되는 과정이 무한반복되는 게 더 잔혹하다. 앞으로 자홍 씨가 보고 듣고 겪게 될 지옥의 장면들이 얼마나 잔혹할까. 자홍 씨가 업관에서 겪을 일도 원작에서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충격적으로 묘사될 듯하다. (그런데 상처가 다시 원상복귀되면 서천식물원엔 가지 않아도 되지 않나?)

 

9. 도산지옥 대기실 한 구석에 붙어 있는 귀왕대 모집 포스터가 깨알 같다. 그런데 귀왕대도 가면을 벗으면 판관들이나 변호사들처럼 사람의 모습일까? 아니면 상상의 동물 같은 모습일까? 가면 뒤의 모습을 전혀 알 수 없으니 궁금하다.


10. 자홍 씨가 할머니께 내복을 드리는 장면은 암시만 하면서 담담하게 그린 원작보다 더 자세히 공을 들여 그렸다. 회상 신에 나오는 꼬마 자홍 씨도 귀엽고, 쑥쓰러워하면서 내복을 드리는 자홍 씨의 모습도 훈훈해서 좋지만, 너무 힘을 줬다는 느낌도 든다. 감정을 섬세하게 그린 점은 좋지만 이렇게 하면 감동적이겠지?를 너무 의식한 느낌이 없잖아 있다. 또, 해원맥이 갓난아기를 데려가는 장면에서도 원작의 노인들의 반응이 '에그, 딱해라' 정도였다면 리메이크판의 노인들은 펑펑 울면서 해원맥을 말리는데, 조금 과장되고 호들갑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 작가와 미와 작가의 감성의 차이겠지만, 좀 더 담백하게 가도 좋을 것 같다. (상관없는 얘기지만 미와 작가가 그리는 리메이크판의 노인들은 설정상으로는 한국인이지만 미묘하게 한국인이라기보다는 일본인 같은 느낌이 든다. 작가 본인이 일본인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난나 - 사랑의 여신
무라트 툰젤 지음, 오은경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 스포일러 포함(<살모사의 눈부심> 스포일러도 포함됨)


- 이 책을 읽고 있으면 터키 북동부의 고원이 눈앞에 보인다. 산 속의 맑고 서늘한 공기가 느껴지고, 초원 위를 흘러가는 개울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옷차림들이 눈앞에 보이고, 다양한 언어들이 귓가에 들린다. 이렇게 책 속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묘사가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다.

 

- 이렇게 묘사가 섬세한 반면 서사는 그리 뛰어나지 않다. 제밀과 빌랄 두 주인공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서사 방식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이야기는 압축하면 한 줌밖에 되지 않고, 비슷한 시대를 그린 소설인 <내 이름은 빨강>이나 <살무사의 눈부심>에 비해 이야기의 깊이도 이야기가 남기는 여운도 한참 떨어진다. <내 이름은 빨강>에서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도 전통적인 미술의 아름다움을 지켜가고, 그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자기 눈까지 찌르는 세밀화 장인들과 <살무사의 눈부심>에서 황위와 목숨을 포기하고 자기 자식의 목숨을 살림으로써 마지막으로 인간성을 회복하는 미치광이 술탄의 이야기는 당시의 시대상과 함께 여운과 먹먹함을 안겨준다. 하지만 나약한 영주의 아들 제밀과 평범한 예니체리 빌랄은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한다.

 

- 작가는 이난나를 '헌신적이고 강인하고 지혜로운 여성'의 표상으로 생각하고 이 작품 안의 여인들을 이난나에 빗대어 이 소설의 제목을 '이난나'라고 지었을 것이다. 작가가 생각한 이난나는 저승으로 끌려간 남편 두무지를 찾아 목숨을 걸고 저승으로 찾아간 여신이다. 하지만 실제 이난나는 지상에서의 권력만으로 모자라 지하 세계의 권력까지 차지하려 저승에 내려갔다 지하세계의 지배자인 여신 에레슈키갈에게 붙잡혀, 자신이 살기 위해 남편 두무지를 지하 세계로 대신 끌려가게 한 여신이다. 작가가 생각하는 헌신적인 여성상에 가까운 여신은 오히려 남동생을 위해 매년 반년씩 대신 지하 세계에 있기로 한 두무지의 누나 게슈티난나다. 작가가 신화를 잘못 안 것인지 이난나와 두무지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을 접한 것인지 모르겠다.

 

- 그리고 작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이난나, 헌신적이고 강인하고 지혜로운 여성은 남편의 바람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남편이 사랑하는 다른 여자까지 이해하고 사랑하는 고전적인 여성인가? 작가가 나이가 많은 이슬람권 남성이어서 그런 여성을 이상적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 속의 이난나들은 내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 제밀은 이 책의 주인공이지만 이야기의 한 축을 이끌어갈 만한 카리스마나 매력은 없다. 유럽에서 신식 공부를 하고 돌아온 지식인이지만 작품 속에서 하는 일은 전혀 없다. 문제가 생길 때 해결에 나서는 것은 제밀의 아버지와의 친분으로 제밀을 도와주고 돌봐주는 이웃의 영주들이나 제밀의 유능하고 충직한 수하들일 뿐이다. 게다가 바람기도 많아, 애꿎은 본처 술타나를 비롯한 식솔들까지 추방되게 만든 아르메니아 여인 쉬메이라를 두고 또 다른 여인 아시아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 뒤에도 이제 막 소녀티를 벗은 젊다기보다 어리고 예쁘장한 여인들만 보면 상사병에 빠져 버린다. 이런 캐릭터에게서 무슨 매력을 느끼란 말인가.

 

- 작품 안에서는 설명이 불친절하게 되어 있지만, 빙판 위에서의 말 썰매 경주를 하다 빙판이 깨지는 바람에 물에 빠져 실종되었던 빌랄이 겨우 목숨을 건지고, 그 사이에 다른 영주에게 잡혀간 제밀을 구하러 간다는 것이 결말인 듯하다. 일종의 열린 결말이지만 열린 결말이 주는 여운도 없고, 호기심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 예니체리의 병영 분위기와 제복, 사냥개의 종류와 특성, 길들이는 법은 무척이나 구체적으로 나와, 예니체리와 시대적인 분위기, 사냥개에 대해서는 공부를 많이 하고 썼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 덕분에 당시의 예니체리가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장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샤꾼딸라 - 세계의 고전 인도편 2
깔리다사 지음, 박경숙 옮김 / 지식산업사 / 200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명색이 주인공인데, 샤쿤탈라와 두샨타의 비중이 너무 적다. 두 사람의 달콤하거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했었는데, 정작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1막에서 서로에게 두근거림을 느끼면서도 그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장면과 3막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밖에 없다. 두 사람이 비밀 결혼을 하고 샤쿤탈라가 두샨타의 아이를 가지고 두샨타가 인드라를 도와 악마를 물리치는 그야말로 주요 내용들은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거의 다 조연들의 대화로 전달된다. 두샨타의 악마와의 전쟁 이야기는 당시 무대 장치와 특수효과의 한계 때문에 직접 묘사하는 데 무리가 있었긴 하겠지만. 희곡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에는 보여주기와 들려주기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보여주기 방식을 너무 아꼈고 들려주기 방식을 너무 많이 썼다.

 

- 군신관계이면서도 친구인 두샨타 왕과 브라만 비두샤카가 말씨름하면서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 얼마 전에 본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과 내금위장 무휼, 또는 세종과 대제학 정인지가 말씨름하면서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비두샤카도 산스크리트 연극의 전형적인 개그 캐릭터라지만, 개성이 약하고 전형적인 이 작품의 인물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는 캐릭터이다.

 

- 이야기의 극적인 전개는 약하지만, 시적인 대사들 속에 담긴 인물들 주변의 자연 풍경과 그에 빗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묘사는 섬세하다. 그리고 고대 인도의 풍습과 풍물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흥미롭다. 이에 대해서는 각주를 꼼꼼히 단 번역자의 공이 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두 소설 모두 스포일러 있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보통 책 표지 속의 이 소년이 막스 티볼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겉보기에는 열두 살짜리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고단한 삶을 견뎌온 60세 노인인 막스의 모습을 이 소년의 모습에 겹쳐 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어둠 속에서 그렁그렁한 눈으로 누군가(아마도 앨리스)를 바라보면서, 슬픔을 안으로 꾹꾹 눌러 담고 있는 막스를 떠올릴 것이다.

 

 사실 이 그림은 ‘데니스 매케일의 초상’이라는 그림으로 이 책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그림이다. 그리고 이 그림 속의 소년이 막스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소년은 특별히 슬픈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큰 중절모 위에 작은 중절모가 얹힌 모호한 이미지의 원서 표지와 달리, 소년의 얼굴을 한 슬픈 막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한국판의 표지는 독자들에게 평생에 걸친 막스의 간절한 마음을 더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사람’이라는 설정이 신선하다고 하지만, 이 설정은 이미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쓰였던 설정이다. ‘벤자민...’의 주인공 벤자민 버튼은 막스 티볼리처럼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는 운명을 타고 났다. 70세까지의 수명을 살도록 예정되어 있고, 겉보기의 나이와 진짜 나이의 합이 70세라는 설정도 같고, 심지어 (소설 속에서) 둘은 동시대를 살아간 인물이다.(막스 티볼리-1871년생~1930년 사망, 벤자민 버튼-1860년생~1930년 사망))

 

 하지만 그러한 운명을 받아들이는 막스 티볼리와 벤자민 버튼의 태도는 정반대이다. 벤자민은 사람들이 자신을 몇 살로 생각하든, 자신의 실제 나이를 그대로 밝히며 살아간다. 그 때문에 같은 또래인 힐데가르드와 결혼할 때도 젊은 여자를 탐하는 호색한 취급을 받고, 대학에 입학하려고 했을 때도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는 수모를 겪는 등의 고충을 겪어야 했다. 반면 막스는 ‘사람들이 네 나이가 얼마쯤이라고 생각하면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라는 어머니의 말을 평생 동안 따라온 덕분에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대로 살아가야 하는 아픔을 평생 지고 살아가야 했다.

 

 벤자민과 막스 모두 쉽지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더 절실히 와 닿는 것은 막스의 삶이다. 시간의 흐름과 자신의 기이한 운명에 휩쓸려 살아가는 벤자민과 달리, 그 둘의 강력한 힘을 이겨내려고 평생을 발버둥 쳐 왔던 막스의 삶이 더 치열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원숙하다는 이유로 나이든 남자들을 좋아하는 힐데가르드의 취향 덕분에 벤자민은 쉽게 그녀와의 결혼에 골인한다. 하지만 막스는 50대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첫사랑이자 평생의 사랑인 앨리스에게 그저 ‘옆집에 사는 친절한 아저씨’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와의 사건에 휘말려 그녀가 떠나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녀를 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자신의 실제 나이처럼 보이는 35세가 되었을 때 기적처럼 그녀를 만난 뒤에야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진짜 자신과 자신의 가족, 유일한 친구 휴이까지 버려야 했다. 힐데가르드와 결혼하기 위해 주위의 눈총 빼고는 어떤 어려움도 겪지 않았던 벤저민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벤자민은 자신이 젊어지고 힐데가르드가 늙어가자, 그녀에 대한 사랑이 식어가는 것을 느끼고, 젊은 여성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의 젊음을 즐긴다. 하지만 막스는 늙어가는 앨리스의 모습조차 너무나 사랑스럽게 여기고, 자신이 젊어지는 것을 들킬까봐 전전긍긍해 한다. 벤자민의 모습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 사랑이 식고 권태기를 겪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반면 막스의 사랑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앨리스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도 변하지 않는다. 앨리스가 그를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앨리스에 대한 그의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또 하나 살펴볼 부분은 아들과의 관계이다. 대학교를 중퇴하고 아무 희망도 없이 하숙집 한 구석에서 술만 마시면서 세월을 보내던 막스는,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온 친구 휴이에게서 앨리스가 자신의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제 그에게는 앨리스와 자신의 아들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는 그 희망 하나를 붙들고 미국 전국을 휴이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아들을 찾았고, 마침내 앨리스와 자신의 아들을 찾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열두 살짜리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휴이의 아들 행세를 해야 했다. 자신과 함께 살자는 휴이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그는 앨리스와 아들과 함께 살겠다고 고집한다. 결국 휴이는 그를 위해 자살한다. 자신이 죽어야 고아가 된 막스가 앨리스와 아들과 함께 살 수 있기 때문에. 휴이의 희생으로 앨리스와 아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된 막스는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게 된다. 아들 새미는 막스를 늘 ‘오리 대가리’라고 부르고 ‘잠꼬대를 유난히 많이 하고 늙은이 같은 데가 있는 괴짜’라고 생각하지만, 함께 지내기에 괜찮은 친구로 여기는 듯하다. 막스는 친구의 모습으로라도, 그저 새미의 곁에서 함께 지내고 새미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반면 벤자민은 자신의 아들 로스코가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고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지만, 점점 어려지면서 로스코에게 애물단지가 된다. 로스코는 아버지가 자신보다 더 어려지면서부터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잃고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아버지에게 자신을 삼촌으로 부르게 한다. 로스코에게 나이를 거꾸로 먹는 아버지는 혐오의 대상, 자신이 어쩔 수 없이 돌봐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의 단 한 순간 친구로라도 아들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삶과, 자신의 아들과 평생을 함께 하지만 아들에게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삶 중에 어떤 것이 더 힘겹고 어떤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또 하나 살펴볼 것은 시간과 운명을 대하는 태도이다. 벤자민 버튼은 자신이 점점 어려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시간과 자신의 운명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 그는 어려지면서 점점 자의식을 잃어가고 마침내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의 상태로 생을 마친다. 벤자민 버튼의 정신도 나이를 거꾸로 먹기 때문에 그의 정신은 몸의 나이에 따라 흘러간 것이다.

 

 반면 막스 티볼리의 몸은 거꾸로 나이를 먹지만, 정신은 보통 사람들처럼 나이를 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 어려져도 막스 티볼리의 정신은 어려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성장해 간다. 그는 자신이 아기의 모습이 되어 자의식마저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상황에 놓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이미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아직 자의식이 남아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점점 어려지고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앨리스와 새미에게 숨길 수 없는 순간, 그리고 앨리스의 새로운 남편인 하퍼 박사가 앨리스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한 집안에서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13번째 생일날(실제로는 60번째 생일날) 밤, 아무도 없는 강가로 나가, 작은 조각배에 몸을 뉘였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아팠을 때 처방전을 조작해 모아둔 약들을 삼킨 뒤 영원의 나라로 떠났을 것이다.

 

 벤자민 버튼이 나이를 거꾸로 먹는 특이한 운명을 가졌지만, 보통 사람들처럼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면, 막스 티볼리는 그런 자신의 운명과 시간의 흐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모든 것에 맞서 끝까지 한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벤자민 버튼...’이 시간에 휩쓸려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풍자한 블랙코미디라면 ‘막스 티볼리의 고백’은 시간에 휩쓸려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에 맞서 평생 동안 사랑하기로 선택해 왔던 인간의 치열한 삶을 담은 일대기이다. 내게 더 와 닿는 것은 후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가고 사랑하는 것을 택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늘 나를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