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취록 - 조선 최고의 예언서를 둘러싼 미스터리
조완선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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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일단 처음부터 눈길을 확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꾹 참고 읽다보면 나중에 흥미로워지겠지, 그런 기대감으로 읽은 책 치고는 기대를 채워주는 책은 극히 드물었다.(물론 있기는 있었다). 인내심이 부족한 나에게는 과감히 다음 기회로 미루는 책이 되고 만다. 물론 이렇게 책이 많은 세상에서 '다음 기회'라는 것은 아마 영영 들춰보지 않게 될 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특히 소설은 한 세계를 새로이 만나서 교감하는 것이기에 이야깃속으로 빠져들게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이 책은 그런 기준으로 점수를 주었을 때에는 합격이다. 일단 소설 속 소재인 '비취록'만으로도 느낌이 온다. 예언서라는 소재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일이기에 알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관심을 끌게 된다. 게다가 예언서가 나왔던 그 당시의 일이 아닌 현재의 이야깃속에 적절히 녹아들어 긴박감을 더한다. 조선 후기의 예언서라는 흥미로운 소재에 빠른 전개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한다. 역사 미스터리를 즐겨 읽는 사람이 아니어도 시선을 잡아 끌 수 있는 매력이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마가 끝난 어느 날, 강명준 교수에게 누군가가 찾아온다. "댁이 강명준 교수유?" 누구에게도 이 책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달라며 그가 펼친 책은 비취록. 원본을 며칠만이라도 보고 싶었으나, 그는 10페이지 정도 되는 복사본만 던져주고 사라졌다. 며칠 후 경찰의 방문으로 그 사람의 이름이 최용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실종되었다는 것도. 그가 대전 시내에서 고서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하필 최용만의 마지막 통화자가 강명준 교수였을까? 호기심은 극대화되고, 툭툭 터지는 사건사고로 급박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느새 『비취록』인지 뭔지 하는 고서가 이번 사건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간에 이젠 그 책을 빼놓고는 이번 사건을 설명할 수 없었다. 모든 사건이 그 책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109쪽)

 

비취록을 소재로 한 연쇄살인사건이라! 이 책은 책소개만 보았을 때 재미있겠다고 짐작했지만, 직접 보니 상상 이상의 흥미로운 책이었다. 이 책은 조완선 작가가『외규장각도서의 비밀』『천년을 훔치다』이후 삼 년 만에 발표하는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번에도 전작에 이어 역사와 관련된 소설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는데, 상상력이 빈약한 편인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사실史實로서 때우려는 편법이라고 겸양의 말을 한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것 아닌가! 어떤 소재를 사용하든 소설만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다면, 독자로서는 최고라고 치켜세울 수 있는 법이다. 사실과 상상력이 만나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며 흥미를 배가시킨다. 이 책을 읽고나니 조완선 작가의 다른 책도 찾아 읽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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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속도 - 사유하는 건축학자, 여행과 인생을 생각하다
리칭즈 글.사진, 강은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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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하는 사람마다 기억이 다르다. 같은 곳을 여행해도 때에 따라 다른 느낌이 나기도 한다. 오늘 본 것과 내일 본 것이 정반대의 감흥을 주기도 한다. 그런 점이 여행의 매력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메시지를 준다면 별 매력이 없을 터. 이 책에서는 여행의 속도를 이야기한다. "각기 다른 속도로 여행하다보면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다. 여행지에 가면서 비행기를 타고 갈 때와 버스를 타고 갈 때의 느낌이 다르다. 여행지를 다니면서도 걸어다닐 때와 차를 타고 다닐 때의 느낌이 다르다.

 

저자는 기차  여행을 가장 인간적인 여행 방식 중 하나라고 꼽으며 각지에서 찍은 기차 사진을 소개해준다. 객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편안히 앉아 창문 밖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여러 가지 상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여행을 좋아하고, 특히 기차여행을 좋아하기에 이런 사유를 해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고속열차는 청춘의 뜨거운 피다. 짧은 시간 안에 꿈에 닿기 위해 전력으로 내달리는 질주본능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청춘을 붙잡고 싶은 중년의 집착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얼마나 많은 꿈들이 실현되지 못하고 사라져 갔는지 깨닫는다. 돌이켜 보면 가보고 싶었던 곳들 중 반도 가보지 못하고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다. 하늘이 내게 얼마만큼의 시간을 더 허락할지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중년의 여행은 청춘의 그것처럼 느긋할 수 없다. 일반열차에 앉아 지루한 시간을 참아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유한한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일생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 (34쪽)

 

이 책은 사유하는 건축학자 리칭즈가 들려주는 여행과 인생 이야기다. 먼저 이 책의 구성이 인상적이다. 이 책 제목인 '여행의 속도'에 맞춰 총 7파트로 글을 나누고 있다. 250-350km/hr의 고속열차부터 0km/hr의 고요한 묘지 여행까지. 빠른 속도로부터 점점 느리게 여행지를 안내해준다. 이 책의 순서에 따라 읽어나가며 직접 여행에 참여하는 듯 긴박한 속도감을 느낀다. 이 책에 빠져드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꼭 가봐야할 명승지나 흔한 여행 책자처럼 맛집 혹은 숙소 등을 다룬 책이 전혀 아니어서 새로운 느낌이 든다. 신선한 기분이 들어 빠른 속도로 읽어나가게 된다.

 

처음에는 여행의 속도에 관한 사색에 대한 글 위주로만 담겨있을거라 짐작하고 읽게 되었는데, 읽다보니 건축학자답게 각 지역의 독특한 건축물을 담고 그에 대한 생각을 풀어나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아마 내가 직접 그곳에 여행하더라도 그런 건축물에 시선이 가서 사진도 찍고 마음에 담아오는 일은 극히 드물지도 모른다. 건축학자의 섬세한 감성이 더해져 그런 결과가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지루하게 건축물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색할 수 있게 다양한 코드를 심어놓았다. 여행지를 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 그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이 책을 누리는 최대의 즐거움이었다. 이 세상은 정말 가볼 곳이 많고, 느낄 점도 충분히 많다. 다만 내게 그런 것들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나가게 된 책이었다. 줄어드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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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4.12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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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14년도 달력의 마지막 장을 남기고 있다. 2014년의 시작을 알린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이렇게나 빨리 마지막 달을 향하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된다. 2014년 맺음달, 12월을 맞이하여 월간 샘터와 함께 행복한 마무리를 계획하는 시간이다. 표지 그림을 보면 커다란 선물 상자가 있다. '12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산타, 선물, 눈, 눈사람, 모두 그림 속에 담겨있다.

날씨는 추워지지만 마음을 주고 받는 계절이기에 푸근함이 느껴집니다.

12월과 잘 어울리는 이미지로 2014년을 잘 마무리하고, 희망찬 2015년을 계획해본다.

 

이번 달 이야기 중에는 발행인 김성구의 '침묵'이 가장 먼저 들어온다. 침묵 속에서 제일 잘 보이는 것은 하늘의 별과 자신의 모습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계절이 겨울의 길목이라 여러 별자리가 선명하게 보이고, 한 해의 막다른 골목에서 자신의 모습도 더 또렷하게 보인다는 점. 올 한 해동안 어떤 일이 있었고, 내 모습은 어떠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된다.

 

샘터 에세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파티'를 보며, 성탄 선물은 값비싸고 그럴싸해보이는 선물만이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본다. 귤과 사탕, X-mas라고 적은 담배를 담은 성탄 선물이 병사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으리라는 것을 이 글을 읽으며 받게되는 감동으로 짐작해본다.

 

'목욕탕을 품은 면사무소' 이야기도 기분을 좋게 한다. "돈 처들여가며 면사무소는 뭐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주지." 면사무소 개축에 앞서 주민 설문조사를 하던 정기용은 이 말에 목욕탕을 설계했다고 한다. 남탕 여탕의 구분 없이 짝수는 여탕, 홀수는 남탕을 연다고 하고, 가격은 65세 이상은 1,000원, 그 미만은 1,500원으로 저렴한 이용료다. 안성면 주민자치센터 목욕탕! 정말 멋진 곳이다.

 

매달 눈여겨 보고 있는 야생화 자수 작가 김종희의 '꽃을 놓다'. 이번 달에는 용담을 수놓았다. 종을 거꾸로 뒤집은 모양의 야생화. 용담은 보라색으로 빛깔이 알므답고, 약용식물로 잘 알려져있다. 바람에 약해 쉽게 쓰러지지만 잎과 잎 사이에서 꽃이 많이 피기 때문에 줄기가 상했다고 쉽게 끊어내서는 안 된다.

 

이번 달 월간 샘터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소리가 들리는 글을 읽어보게 되었다. 얇은 잡지임에도 알차게 구성되어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는 물론 새로이 알게되는 지식도 풍부해 매달 빼놓지 않고 보게 된다. 월간 샘터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며 여러 가지 주제로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이 좋다. 외출할 때 부담없이 핸드백에 넣어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2015년에도 월간 샘터와 함께 자투리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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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장腸 여행 - 제2의 뇌, 장에 관한 놀라운 지식 프로젝트 매력적인 여행
기울리아 엔더스 지음, 배명자 옮김, 질 엔더스 삽화 / 와이즈베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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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당 불내증을 앓았고, 원인모를 상처로 고민을 한 경험이 있다.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성공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것을 절감하며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 기울리아 엔더스의 이야기다. 1990년 생으로, 독일의 촉망받는 신예 의학자인 그는 자신의 절실한 고민이 있었기에 일반 독자에게 쉽게 다가가는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의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밀폐된 회의실에서 토론하거나 논문에만 기록하지 않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널리 알리고자 한 흔적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여동생 덕분에 겉도는 설명을 피할 수 있었다며, 동생의 도움을 치하한다.

글을 써서 먼저 읽어주면, 동생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씩 웃으며 이렇게 말하기 일쑤였다. "다시 써!" (13쪽)

동생의 솔직한 반응이 물흐르듯 자연스럽고 쉽고 재미나게 이 책을 엮게 된 원동력이 되었음을 확실하게 느끼게 되는 문장이다. 감사의 말에서도 다시 한 번 동생이야기를 한다.

동생이 없었으면 이 책도 없었을 것이다. 동생의 자유롭고 합리적이고 호기심 많은 정신이 없었으면 나는 실수를 통해 배우는 용기와 의지보다 순종과 안정을 선호하는 편한 세계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280쪽)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그동안 '장'에 대해 너무 무심했구나! 장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고 있었고, 인체에 대해 소홀하게 생각했다는 점을 반성해본다. 대부분 의학서적이 그렇겠지만, 우리 몸을 너무 딱딱하고 지루하게 접근하는 방식이어서 거리감을 느꼈는데, 이 책은 달랐다. 술술 읽을 수 있는 점이 매력이다. 그냥 수다떠는 느낌으로 부담없이 재미있게 한 판 떠들어대는 느낌으로 읽게 되었다. 그런 시간도 분명 필요하다. 그 점이 오히려 장에 대해 확실히 훑어보며 더욱 집중해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우리 몸은 '장'만 달랑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장기가 연결되어 있고, 뇌의 작용까지 생각해보면 전반적으로 인체의 신비가 느껴진다. 이 책도 '장'에 대한 이야기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장과 연결된 다른 부위까지, 음식물 운반 과정을 설명해주고, 장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일깨워주며, 전체적이고 포괄적으로 이야기해준다. 잘 알지 못하던 미생물의 세계까지, 장에 관해 속시원하게 풀어나가는 책이다. 이 책에 담겨있는 삽화도 천천히 보며 전체적인 이해를 돕게 한다. 어떤 그림은 가만히 쳐다보면 한바탕 웃을 수 있으니, 그 또한 이 책의 매력을 더욱 발산시켜주는 요소가 된다.

 

유쾌,상쾌,통쾌,명쾌! 이 책을 읽으며 내 안의 장기들에 집중해본다. 이 녀석들, 매일 같이 생명력을 내뿜으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구나! 매력덩어리 장, 내괄약근과 외괄약근의 밀당, 변기 위의 바른 자세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와 실험 참가자들의 친절한 참여 등 초반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책이다. 일단 초반에 흥미롭게 시선을 사로잡으면, 그 다음에는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 계속 읽게 된다. 독일 아마존 종합 1위 베스트셀러라는 점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1위 수식어를 달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책이었으니 말이다. 우리 내부의 생리학적인 면모부터 불내증,과민증,알레르기 등의 병리학적인 측면까지, 이 책을 통해 흥미롭게 읽어보는 시간이 된다. 누구에게든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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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 영혼이 향기로웠던 날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안내하는 마법
필립 클로델 지음, 심하은 옮김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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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감각으로 무언가를 기억한다. 어느 순간, 쏟아지는 빛이나 향기로 기억하기도 하고, 분위기와 맛으로 비슷한 무언가를 보았을 때 새삼 강렬하게 그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오늘 아침 식사를 할 때에는 동치미 국물의 냄새를 맡으며, 문득 과거 어느 시절 인도 여행을 하던 어느 마을이 떠올랐다. 기억은 어느 순간 느닷없이 떠오르는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 체험처럼 어느 순간 문득 기억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드러나게 된다. 우리의 삶은 그 기억들의 총합이다. 이 책은 프랑스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필립 클로델이 기억하는 향기를 그려내고 있다. 이 책으로, 그 해 가장 뛰어난 산문에 수여되는 장자크 루소 상을 수상(2013년)했다.
 
이 책을 보며 다양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향기에 대한 기억 A to Z 이라고 할 수 있다. 아카시아를 시작으로 여행까지, 향기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며 글을 써나가고 있다. 책을 읽으며 필립 클로델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고, 동발Dombasle마을의 분위기나 필립의 아버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이미 지나버린 과거에 대한 회상이 이루어질 때에는 나또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생각해보며 감상에 젖어보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내 과거 속의 한 장면과 오버랩되며, 이미 잊은 줄로만 알았던 과거 어느 한 순간이 불현듯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 책은 충분히 감각적이다. 책을 읽는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냄새까지 상상되며 후각을 자극한다. 누군가 생생히 묘사하는 글귀를 통해 나또한 이미 경험한 듯한 자극을 느끼는 것이다. 책은 간접경험을 넘어선 경험의 혼란을 느끼게 한다. 내 과거 속 시간이 실제로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기억의 조작이었는지, 헷갈리게 하는 묘미가 있다. 그것이 실제이든 아니든, 그것은 이미 중요하지 않다. 책을 읽으며 충분히 저자의 글 속에 빠져들으면 그 뿐이니까.
 
책을 읽다보면, 무미건조하고 시큰둥하게 현재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일상 속 사소한 향기의 기억조차 글의 소재가 될 수 있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일 수 있을텐데. 마늘, 계피, 양배추 등 알 수 있는 향기부터 골루아즈와 지탄, 장밋빛 사암, 묑스테르 치즈 등 알 수 없는 향기까지 골고루 담겨있다. 선크림에서 약간 진득한 사향유, 터키 규방의 향기. 한낮 열기의 연장처럼 어루만지는 팔의 친밀한 포근함을 느끼고, 물고기에서 축축한 비늘의 詩를 읽어낸다. 향기로 읽는 책이고, 향기를 떠올려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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