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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윅 클럽 여행기 ㅣ 찰스 디킨스 선집
찰스 디킨스 지음, 허진 옮김 / 시공사 / 2020년 3월
평점 :
찰스 디킨스 선집의 마지막 소설 <픽윅 클럽 여행기>를 남겨두고 만만치 않은 두께감에 부담을 느끼며 시작을 했다. 얼마 전 완독한 <돈키호테 2>는 936페이지, <픽윅 클럽 여행기>는 1267페이지 와우! 완주 기간은 한 달로 결정했는데 잘 한 것 같다. 찰스 디킨스의 활력 있는 필체를 음미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 작품은 <두 도시 이야기>, <올리버 트위스트>에 비해 등장인물이 해맑다 못해 투명하다고 해야 할까. 그들 나름 심각하고 진지한데 늘 사고와 사건이 뒤따르고 오명과 오해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픽윅 클럽의 수장 픽윅에게 웃지 못할 일이 늘 발생했다. 그리고 그를 애정으로 보필하는 하인 샘 웰러. 어라~ 누구랑 비슷한데... 이들은 전생에 돈키호테와 산초였을지도 모르겠다.
#픽윅 클럽의 회장 새뮤얼 픽윅과 스노드그래스, 터프먼, 윙클은 픽윅 클럽 통신회 소모임을 결성하고, 클럽 제복을 맞춘 후 여행을 시작한다.
시적 명성은 스노드그래스, 정복의 명성은 터프먼, 스포츠의 명성은 윙클, 철학과 학문의 명성은 수장인 픽윅 씨 담당으로 각각 명확한 캐릭터를 갖고 있는 이들이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은 픽윅 클럽 신사들을 좋아했고 그들과 즐기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했지만 그중에는 환심을 얻고 뒤통수를 치는 사기꾼도 있었다. 바로 앨프리드 징글이라는 청년이다. 노신사 워들의 여동생 레이첼에게 청혼한 터프먼을 제치고 노처녀 레이첼을 꼬드겨 도망친다. 그의 목적은 레이첼의 재산을 가로채는 것. 그 후로도 징글의 비슷한 수법의 악행은 끊이질 않았다.
"픽윅 씨가 양쪽에 산적과 음유시인의 팔짱을 끼고 입구를 향해 엄숙하게 걸어가자 가장 의상을 차려입은 손님들을 보려고 모여든 남자와 여자, 소년과 소년, 어린이들까지 모두 즐거워하며 흥겁게 소리를 질렀다." 클럽 회원들끼리도 몇 번의 결투가 벌어진다. 가장 조찬회에 초대된 픽윅 클럽 신사들은 멋진 의상을 고르기 위해 상점에 갔다. 터프먼이 산적 의상을 고르자 동행할 생각에 심한 모멸감을 느낀 픽윅은 터프먼이 다른 의상을 고르길 권했고 그러다 둘이 싸운다. 그러고보니..이 신사들은 자기네들끼리는 사소한 일로 자주 싸운다. 그리고 화해도 바로 한다. 어찌나 해맑으신지!
"마사 바델 부인의 의뢰에 따라 혼약 파기 소송이 시작되었음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고소인이 요구하는 손해배상금은 1,500파운드이며, 본 소송에 따라 민사 법원이 귀하에게 영장을 발부하였습니다. " 픽윅 클럽의 사건 중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따라가다 보면 저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 하나의 사건이 해결되기도 전에 유쾌한 픽윅 클럽 신사들은 또 사고를 친다. 한 눈을 팔 수가 없다. 요절복통 수난기다.
#찰스 디킨스식 개그
"터프먼 씨가 왼쪽 팔에 화약의 일부를 맞음으로써 수업이 많은 죄 없는 새들의 목숨을 구했다. (중략) 터프먼 씨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어느 여인의 세례명을 부르면서 양쪽 눈을 번갈아 뜨다가 다시 쓰러져 두 눈을 감았는데... "
"웰러 씨가 마지막 말을 한 것은 그 순간 윙클 씨가 양발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고 뒷머리를 얼음에 찧고 싶다는 미칠듯한 욕망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사실 윙클은 만능 스포츠맨이라고 사람들에게 소개를 하지만 아주 실속 없는 양반이었다. 노신사 워들과 함께 까마귀 사냥을 하다가 불발되어 터프먼이 맞고 쓰러진다. 또한 스케이트를 타기로 결정이 나면서 두려움에 떨었던 윙클의 심정을 저자가 맛깔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여기서 또 다른 실험을 하고 있나 본데요. 훌륭하신 노부인께서 양탄자에 누워서 해부인지, 직류 전기 요법인지, 아무튼 과학적인 소생법을 기다리고 계시네요."
저자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기절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쩌면 그 시대의 기절하는 특기를 가진 여성이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였던 것일까. 병원에서 노부인이 쇼크로 기절했는데 다들 바빠 확인을 못하고 있는 것을 알려주려는 샘 웰러의 배려 있는 대사이다. 어찌나 글을 너무 재밌게 쓰는지! 배를 잡고 웃었던 적이 너무 많았다.
#정치, 사회 풍자 그리고 이상적인 어른(세계)
픽윅의 여행에서 일어난 일들은 그저 웃음거리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이스턴월에는 강력한 두 당파가 있었다. 블루파와 버프파로 나눠진 신문사, 교회 안에서도 블루파 좌석, 버프파 좌석 등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이곳에서는 부정선거가 남발했고 당파 간의 인신공격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대중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한 그들의 연출은 혀를 차게 만들었다. 그리고 타락한 변호사들이 어떤 방법으로 수완을 거두는지도, 치안판사의 성의 없는 판결과 돈을 받고 위증을 서는 보증인 등 법조인을 향한 풍자들을 볼 수 있다.
픽윅이 배상 거부로 갇히게 된 플리트 감옥에서 보인 양극의 상황에 가슴이 아팠다. 영화 홀리데의 유명한 대사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떠올랐고, 가난한 자에게 법은 너무나 가혹했던 그 시절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 쓸쓸했다. 그곳에서 픽윅은 격렬하게 분노했다. 그리고 가난한 자를 돌봐주었다. 출소 후에도 가난한 자들의 쉼터가 되어주었다. 우리가 바라는 어른상을 몸소 보여줬다.
24살의 청년 찰스 디킨스는 유쾌한 <픽윅 클럽 여행기>라는 소설을 쓰면서, 자신이 되고 싶은 어른상을 픽윅으로 보여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세 번째로 만난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완독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천재 소설가이며 따뜻한 가슴을 가진 영국의 위대한 소설가라는 것을.
*출판사로 지원도서로 정독하여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