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르탱고
길유영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지막 계절을 재촉하듯 요즘 자주 비가 내린다. 옷깃을 여며도 어쩐지 휑한 마음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이럴 때 뭐다? 로맨스를 읽어야 할 때가 왔다. 스토리움 소설 공모전 당선작이라는 <리베르탱고>에 유진과 지민의 사랑을 훔쳐보려 한다.

리베르탱고는 리베르트(스페인어로 자유)와 탱고가 합쳐진 말이다. 아르헨티나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자인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리베르탱고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르헨티나 탱고의 시대를 열었다. 어릴 적 드라마 삽입 음악으로 처음 듣고 강렬함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까먹을만하면 어디엔가 또 들려오는 이 음악은 수능 금지곡이라 할 만큼 치명적, 중독적이었다. 최근 드라마 서예지 주연의 '이브'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 화에 서예지가 직접 반도네온으로 이 곡을 연주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지만... 이쁜 것들이 잘하면 왜 이리 배가 아픈지...

🎻챌로하는 사람에게 등을 보이는 건

안아달라는 말이거든요

세계적인 챌리스트 유진은 3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공연을 하려고 한다. 넓은 예술의 전당은 제치고 경기도 외각 작은 문화회관에서 연주를 하겠다는데. 좌석수마저 부족한 세현문회화관 행정 직원 지민은 이런 그가 못마땅하다.

첫 만남부터 삐걱대는 두 사람. 자꾸 옷길이 스치면 정이 든다는 말 때문인가. 강당에서 연주 중에 갇히고 만 유진이 지민에게 SOS를 청하고 서둘러 회관에 도착한 지민은 무엇에 홀렸는지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피아노를 두들기다가 유진과 함께 합주를 한다. 자연스레 서로의 삶에 대해 얘기하는 두 사람.

211-212/🎻 서투르게, 희미하게 기억을 더듬어 피아노를 한 음 한 음 쳐내려가던 그 순간. 손목을 잡아당기던 첼로의 음률에 저도 모르게 뺨이 달아오르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그 강당이 어두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알 수 없는 설렘에 가슴이 두근거리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꽁꽁 숨겨둔 자신만의 어두운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하며 위로받는 것. 이보다 충만한 기쁨이 더 있을까 싶다.

천재 첼리스트라는 남자의 어울리지 않는 소탈함에 마음이 조금 열리는 지민, 그 틈을 적극적으로 들어오려는 유진의 알콩달콩 스토리를 보니 다시 사랑하고 싶어진다. 아~ 불륜은 안 되니까. 다니엘 헨니 가면을 어디서 구해서 남편에게 씌워줘야 하나보다.


*출판사 제공 도서입니다.

#리베르탱고 #길유영 #고즈넉이엔티

#소설 #신간소설 #도서추천 #소설추천

#로맨스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른 행성이 있었다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양영란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리에 정신과 의사 프랑수아 를로르는 <꾸빼 씨> 시리즈로 전세계인이 가장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되었다. 그런 그의 첫 sf 소설! 《푸른 행성이 있었다》이 내 손안에 들어왔다. ‘독자를 행복하게 할 감동적이고 놀라운 이야기’라는 평을 받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는 이 소설! 엄훠~ 너무 기대된다.

기술발전이 오히려 인류를 위협하고(기술이 인력을 대체되는 등) 더불어 확장되고 있는 생태계 변화는 비단 우리 아이들이 살게 될 세상은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본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된 작가는 자연스레 사랑 이야기면서 철학 동화이기도 하고 모험 소설이도 한 이야기가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 소설이 바로《푸른 행성이 있었다》이다.

기후 재앙과 경제 전복으로 각국에서는 물과 원자재를 차지하기 위한 국지전이 잇달았고 이에 지구는 방사능 구름과 핵겨울이 몰려오면서 문명 전체가 막을 내리게 된다. 이미 화성에 세워진 콜로니로 터전을 잡은 사람들은 지구 대재앙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화성의 유독가스로부터 인간을 보호해 주는 돔으로 세워진 콜로니에서 사람들은 폐소공포증을 견디며 언젠가 지구에 돌아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콜로니에서 바라본 지구를 푸른 행성으로 부르기 시작한 건 비극적인 과거가 지워지고 새로운 시작이 가능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테다.

화성 콜로니에서 정착한 인류는 우수한 인재를 엄격하게 선별된 자였기에 5세대도 안 되는 기간에 과학적, 기술적으로 안정된 사회를 이룩하게 되었다. 모든 곳을 관장하는 중앙컴퓨터 인공지능인 아테나는 사람들의 적성도 계급도 결정한다. 이에 프로그래머, 알고리즘 개발자, 시스템 관리자, 군인 등 콜로니 시스템 유지에 필요한 인재들은 높은 계급을 차지하고 변호사, 요리사, 외교관 등 이미 인공지능에 대체된 적성을 타고난 사람들은 용도 불명이란 꼬리표를 달고 산다.

그 용도 불명으로 분류된 신병 로뱅 노르망디가 지구로 파견되어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는 모험담이 주를 이루는 소설이었다. 권위 존중 지수가 낮게 판정된 로뱅은 상사들의 명분없는 요구에 단호히 거절하는 타입이었고 갈등에 원만한 중재를 돕는 능력을 소지한 자였다. 사령관이 지시한 임무는 지구에 파견된 후 실종된 군인들의 행방을 확인하라는 것이다. 사절하려던 로뱅은 유의 생명 연장 조건에 순응하고 떠나기로 한다.

로뱅이 지구에 불시착한 후 여러 섬을 거치며 다양한 문명(+가치관) 과의 만남을 갖게 된다. 그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개안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성숙된 자아를 찾아간다.

이 소설은 '왜'에서 시작된 의문을 파헤치며 '어떻게'에 다다른다. 막대한 임무를 왜 신병(더구나 용도 불명) 혼자 보내게 되었는지와 로뱅의 출생과 관련된 커다란 비밀이 로뱅의 연인 유에 의해 퍼즐이 완성된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산이 있다고 한다. 분명한 건 끝까지 나아갈 때 우리는 그 산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정된 공간이었던 콜로나를 벗어나 진짜 세상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한 로뱅을 보며 다져본다. 물음표로 포진된 삶에서 충분히 흔들리고 방황하고 성찰하여 조금씩 느낌표로 채워가가는 데 집중해 보자고.

29더는 용도 불명들을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서, 요즘에는 용도 불명들에게 자신보다 능력이 나은 사람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기고 있다. 그럼에도 콜로니 내부에서는 이 같은 잔인한 농담이 유행처럼 돌고 돌았다. 용도 불명 + 1 =0.

50나는, 아니 나를 태운 우주선은 그때와 똑같은 장치에 시동을 걸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미사일이 궤도를 바꾸더니 나를 향해 되돌아 왔다!

89유를 향한 그리움에 사로잡히는 순간들을 제외하면, 나는 이 섬 주민들 속에서 행복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유도 깨달았다. 이 섬에서 나는 더는 용도 불명이 아니었다.

275 아테나는 자유와 능력의 무거운 굴레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켰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내가 점점 더 자주 느끼는 이 분노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내 속에서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기회를 찾아내고 싶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싶고, 나도 잘 모르는 무언가에 항거하고 싶은 욕망이 불끈불끈 느껴지니 하는 말이다.

383 나는 다시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엄청난 무게의 의무감이 나를 짓눌렀다.

바로 자유의 무게.

자유연애냐, 진보냐? 안분자족이냐, 야심이냐?

한 사회에서 질투나 경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촉발하지 않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불평등으로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 내가 확신하는 거라고는 소외되는 사람, 용도 불명, 잉여 인간이 없는 세상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 한국BP출판사 지원도서로 개인적인 소견을 담아 작성하였습니다.

#푸른행성이있었다 #프랑수아를로르#꾸뻬씨시리즈작가 #한국BP #마시멜로 #유토피아 #SF소설 #신간소설 #도서추천 #도서협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의 쓸모 - 개츠비에서 히스클리프까지
이동섭 지음 / 몽스북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기에 떠나신다는♪ 그말 나는 믿을 수 없어♬

사랑한다면 왜 헤어져야 해♪ 그 말 나는 믿을 수 없어♬

내가 이기적인가? 사랑해서 보내준다는 말은 나에게 통용되지 않는 행위다. 짝사랑이었다면 모를까. 사귀다가 떠나보낸다? 이건 헤어지고 싶지만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자기 욕심 아니면 반대로 정말 내가 사라져야 그 사람이 행복할 것 같은 상황 정리……. 아! 그렇구나. 과거형으로 말해주는 모든 사랑은 슬프네. 나는 슬픈 게 싫은 거였나 보다.

모든 사랑 노래가 내 것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고, 모든 이별 노래가 내 것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사랑을 시작하면서 충만해지기는 순간도 있었으며 더 외로운 순간도 있었다.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나를 뒤흔드는 그놈의 사랑이 지겨웠다. 로맨스가 들어간 모든 것들을 회피했다. 그런데 결혼을 왜 했냐고?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사랑이 있더라. 나를 나로서 있게 해주는 사랑, 그 사랑을 찾았기에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행복하냐고? 나는 행복하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들을 품은 책이 여기 있다. 「사랑의 쓸모」는 고전 문학이라는 큰 줄기에서 사랑에 대한 질문과 답을 추출하고 저자의 인문학 도서이다. 17편의 명작을 '끌림과 유혹, 질투와 집착, 오해와 섹스, 결혼과 불륜'으로 가름하여 볼 수 있었다.






유럽에서 명성을 얻은 첫 번째 러시아 작가,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러시아 인들의 이름은 읽기도 쓰기도 어렵다)의 <첫사랑>에서 저자는 '첫사랑은 자신의 결핍을 투사한다'라고 지적했다. 지나는 자신을 말을 잘 듣게 만들 남자였던 페트로비치에게 빠져든 이유는 부성애의 결핍이었다는 것이다. 간절히 원하지만 갖지 못했던 그 무언가를 가진 사람에게 사랑을 느꼈다는 것이구나. 소년과 지나, 소년의 아버지 페트로비치, 그들의 사랑을 분석한 이야기는 간간한 재미가 있었다.

진정한 자신의 매력을 몰랐던 개츠비, 사랑하는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나의 행복을 포기할 용기임을 깨달은 에릭(오페라의 유령), 안타깝게도 오랜 연인과의 익숙한 불행을 선택한 폴(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신의 사랑의 온도를 찾아가는 티타의 성장 이야기(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어머니의 세계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망가져가는 에리카 (피아노 치는 여자), 멋 훗날에야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 소녀(연인), 섹스에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은 와타나베(노르웨이의 숲), 사랑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튼튼한 집이 되어주는 일이라는 걸 보여줬던 제인(제인 에어) 등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어느 한 작품도 놓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이 책은 내가 사랑이라고 명명하는 것들은 지극히 일부였음을 알 수 있게 해줬다. 세상 알지 못하는, 격지 못했던 수많은 사랑들을 문학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예술과 인문학 전문가인 저자답게 곳곳에 명화들이 책을 더 빛나게 해줬다. 내용과 연결되는 명화들 덕분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완독 후 책을 껴안고 도리도리한 건 안비밀.

17편의 작품을 모두 완독한 기분이다. 이보다 더 완벽한 리뷰가 있을까 싶다. 정식으로 작품들과 대면하게 만드는 매력도 지니고 있었다. 「사랑의 쓸모」는 가독성과 가성비가 끝내주는 고전 로맨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책이었다. 소멸했지만 사실 소멸하지 않은 사랑 세포들이 깨어나는 순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데면데면했던 사랑과 다시 친해지길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


※ 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개인적인 소견을 담아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의쓸모 #이동섭 #몽스북 #MONS #고전문학 #사랑 #로맨스 #고전로맨스 #사랑에대하여 #신간도서 #인문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스팅 - 영화관 소설집 꿈꾸는돌 34
조예은 외 지음 / 돌베개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얼마 전 돌베개 출판사의 도서관 소설 「더 이상 도토리는 없다」를 인상 깊게 읽었고, 뒤쪽 책날개에 다음 편인 영화관 소설 출간 예고를 보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소설이 주는 감동과 철학적인 사념을 즐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내 마음을 뭉근하게 끓어오르게 만드는 몇몇 국내 작가를 만났더랬다. 누구처럼 십 년 넘게 소설을 읽은 사람이 아니기에 많은 작가를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인지 앤솔로지 작품에 좋아하는 작가분이 보이면 유독 반가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번엔 영화관 이야기라니! 





「캐스팅」은 영화관을 소재로 한, 국내 작가 7인의 빛깔이 담긴 소설이다. 첫 번째 주자 조예은 작가의 작품 <캐스팅>은 어느 날 영화 속 장면 속에 배우가 도끼에 머리가 찍힌 채 스크린을 뚫고 나온다. 그리고 화자와 함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내용이다. 늘 주목받던 화자가 부상 후 다시 뛸 수 없게 되자 세상에 엑스트라가 된 것처럼 무기력하게 지냈는데 이 사건을 통해 내면이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의 말처럼 조연이 주인공이 된 청춘 모험담이었다. 꼭 주인공이 아니어도, 큰 위기 없이 퇴장하는 조연도 충분히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했던 극장 직원 리라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윤성희 작가의 <마법사들>은 뒤꿈치가 내려가지 않는 아이와 후드티를 벗지 않는 아이가 함께 가출한 이야기였고, 김현 작가의 <믿을 수 있나요>는 인간이 필요로 만든 AI를 한편으로는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시대에 존재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내용이었다. 





박서련 작가의 <안녕, 장수 극장>은 작은 도시 마을 폐업을 앞둔 장수극장이 중학교 축사 영상을 기점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게 되는데 오랜 시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한 극장에서의 추억과 역사들이 무척이나 애틋해 보였다. 나는 운이 정말 좋게도 어린 시절에 영화와 가까운 환경에서 마음껏 영화를 구경했다. 극장 거리 남포동(부산)은 걸어서 5분도 안되는 거리였더랬다. 그 당시 부산 남포동에는 많은 극장이 있었다. 동아극장, 국도극장, 부산극장, 대영극장 등 이보다 더 많았을 텐데 오래되다 보니 기억이 안 난다. 





나의 첫 영화는 SF 영화 '우뢰매'였다. 아마도 제일극장이었을 것이다. 당시 지인찬스라는 명목으로 상영 종료 후에 남아 연달아 또 봤다. 그 시절 정말 많은 영화를 마음껏 봤다. 물론 청불은 볼 수 없었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변했다. 대부분의 극장들이 사라졌고 그나마 제일극장이었던 자리에 CGV가 들어섰다. 지금은 사라진 영화간판 작업하는 곳에서 한참을 구경했던 기억이 있다. 





정은 작가의 <사라진 사람>은 스크린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을 목격한 소녀는 친구에게 의논하지만 왠지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에게 말하게 되는데, 오래 같이 산 사람은 공간으로 대화를 한다는 소녀의 엄마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사라진 아버지가 사실은 작별 인사를 했다는 그 방법은 공간의 작은 변화였음을 그녀는 알아차렸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는 그 대사에 물먹은 솜이 마음에 툭 얹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빠와 무수한 시간을 함께 한 엄마만이 알 수 있었던 것일 테니. 





조해진 작가의 <소다현의 극장에서> 비혼주의자였던 여성이 그날 이후로 외로움과 이별하고 사람과 부디껴 살기로 한 단편소설이다. 보육시설에서 봉사 중 만난 12세 소녀를 입양하면서 조금 색다른 조건을 내건다. 다현의 방식은 양육에 대한 관점을 재구축하게 되는 시점이었다. 입양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보육원에서 처음 만난 아이가 보호종료기간이 되자 입양했던, 이모 삼촌을 멈추고 진짜 엄마 아빠로 되어준 배우 부부도 잠깐 떠올랐다. 다현의 방식은 긴 관점에서 인생 친구를 사귄다는 가벼운 마음이라 입양과 양육에 더 필요한 자세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한정현 작가의 <여름잠> , 식민지 조선 영화 산업을 공부했던 미국 노부인이 사라진 영화관을 찾는 내용으로 잠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도 작가님의 고유성을 볼 수 있다. 아키비스트로서 역사적 아픔의 장소가 출현시켰다.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시간, 되풀이되어선 안 될 우리의 역사를 다시 떠올려본다. 




일곱 가지 무지갯빛 영화관 단편 소설 모음집이었던 <캐스팅>에서 다양한 이야기 속에 우리들의 흔적과 삶을 진지하게 대하는 이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이야기 속에 영화관 에피소드로 지난 추억을 데려와서는 턱을 괴고 한동안 젖어있게 만들곤 했다. 깊어가는 이 가을, 바스락 단풍길을 걸은 후 벤치에 앉아 읽기 너무 좋은 책이었다. 




※돌베게 출판사 서평단 지원도서로 개인적인 소견을 담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핑하는 정신 소설, 향
한은형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정신 '소설, 향' 일곱 번째 책 한은형 작가의 《서핑하는 정신》을 읽다보면 서핑팝송을 듣고 싶어진다. 소설 속 화자가 듣기 전과 후로 인생을 나눴던 팝송 잭 존슨의 '베터 투게터'도 좋았지만 비치보이스의 '코코모'를 시작해서 '캘리포니아 드림'. '서핀 USA'~~ 옛날 팝송이 왜이리도 좋은지! 나이들었다는 징조일까. 아니지 나이는 먹을만큼 먹었지. 이제 어떻게 늙어가야할지 고민을 할 나이임에도 나는 내 인생에 중대한 과제를 수행하는 중이다. 딱 올해까지만. 내년에는 다른 인생을 살리라.


소설 속 주인공 이제이는 해변으로 가는 길이다. 갑작스런 큰이모의 죽음으로 해변아파트를 물려받게 되었다. 유산처리기한이 한달이라는 통보를 받고 보통의 일상에서 이변을 싫어했던 그녀는 급하게 일주일의 휴가를 냈고 양양에 도착했다. 번아웃이었던 체력의 전원을 끄고 한동안 누워있던 이제이는, 삼일 만에 밖으로 나와 주변을 탐색한다. 스타트업 동료들과 나눈 대화가 떠올린 그녀는 미래가치가 있는 해변아파트를 소유하는 게 유리하다는 결정을 한다. 그리고 들어오는 길에 라면에 끌려 들어간 술집에서 서핑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남녀에게 신경이 쏠리고는 다음날 이른 아침 서핑 강습 장소에 가게 된다.


엄마에게서 남들에게 미움받지 않는 표정과 태도를 교육받으며 감정을 숨기는 기술을 터득했던 이제이는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동시에 잃은 후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것이다. 인스타에 자신을 알 수 있을만한 게시물은 절대 업로드 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을 몰개성한 게 자신의 개성이라고 했다. 파도에 인생을 비유할때마다 몰래 쓴웃음을 지었던, 살면서 서퍼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이제이가 양미 씨를 알게되면서 서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내성적인 성격인 분들은 아실 거예요. 내성적인 거지. 얌전한 건 아니거든요. 욕망이 없는 것도 아니고, 화가 없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밖으로 표출을 하지 않고 있는 거죠. 내 안에 있는 게 터질 때 보면 굉장하잖아요? 꾹꾹 누를수록 더 많이 터지지 않나요?(중략) 바다는 훨씬 더하죠. 사람도 그런데……134

🏄‍♀️이게 매우 잘 안 되거든요. 정말 안 됩니다. (중략) 잘 안 되니까 되는 순간의 희열이 엄청난 거기도 하지만요. 잘되는 걸 잘하는 건 재미없잖아요?142-143


나는 오른손잡이다. 양손잡이가 부러웠던 어느날 왼손을 훈련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곤 펜글씨교본을 구입한다. 반 년을 걸쳐 두 권을 완성했더랬다. 시작은 조카(당시 5살이었던)보다 더 못난 글씨가 차츰 어른 글씨로 성장하는 것을 펜글씨교본에서 볼 수 있었고 기분좋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 속 양미 씨는 서핑을 가르쳐 준다면서 곳곳에 삶의 지향점을 밝혀주곤 했는데 이러니 내가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정말 멋진 그녀다.


🏄‍♀️서핑하는 정신이 뭘까?

위로하는 정신 아냐?

스스로를 위로하는 정신. 223


🏄‍♀️ 자기가 자기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위로야. 

그치. 너 잘하고 있다. 앞으로도 잘할 거다. 살자. 살자. 살아야겠다. 224

서핑 강습 과정 중 에고서핑 수업이 있었다. 그 시간은 셀프 위로는 가능하나 서로에게 위로는 금지라고 주의사항을 알려 주었다. 각자의 차례가 돌아오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을 달래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위로라고 말해주는 양미 씨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제이는 자신에게 좀 더 자유로워지기로, 따듯해지기로, 단단해지기로 마음먹지 않았을까. 와이키키 하우스에서 서핑 강습 나도 체험해보고 싶고만~



조금 생소한 서핑 용어는 뒷장 용어집이 있으니 참고하며 읽으면 된다. 한겨울의 서핑이 이렇게 따수울수가! 이 소설은 '온화한 웃음을 닯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저자의 마음이 잘 녹아 있는 이야기였다.



🏄‍♀️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보통 이상으로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그날의 내가 보통 이상으로 사랑을 느끼는 대상은 내 인생이었다. 나는 나의 하루를 사랑하고,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259-260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로 개인적인 감상평을 담았습니다.

#서핑하는정신 #한은형 #소설향시리즈 #작가정신

#도서지원 #서평단 #소설추천 #신간소설

#베스트셀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