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 게임 - ‘좋아요’와 마녀사냥, 혐오와 폭력 이면의 절대적인 본능에 대하여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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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인생 드라마 '더 글로리 시즌 2'가 얼마 남지 않았다. 3월 10일. 시즌 1에서는 복수를 예고했다면 시즌 2에서는 본격적인 복수와 결말이 펼쳐질 예정이라 섣달 남짓한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그래도 친절한 크리에이터들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기다릴 수 있었다. 연진이가 숨 쉬듯 즐겼던 지위 게임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 제발 울 동은이 행복하게 해주세요.


#14 우리는 본능적으로 관계를 맺고 지위를 얻으려 한다.
집단에 수용되고 집단 안에서 지위를 얻으려 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것이 인생의 게임이다.



제목부터 매혹적인 <지위 게임>은 인간 행동의 메카니즘 가장 이해할 수 있는 '지위 욕구'를 관한 책이다. 저자 윌 스토는 모든 인간에게 지위 추구의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SNS 중독과 경쟁심부터 종교적 광신, 테러, 혁명, 전쟁까지 역사상 인간의 모순과 부조리를 ‘지위 욕구’라는 주제로 분석했다. 본인의 연구 자료였던 다양한 책과 학술 논문과 정기간행물을 기반으로 집필하여 일반적인 개념은 논란의 여지가 없으며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진에게 원고의 감수도 완료한 책이라고 전했다.



이 책은 심리학과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 연구를 토대로 인간 삶의 숨은 구조를 파헤치며 지위 게임이 잘못 흘러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시켜줬다. 결론적으로 타인과 우리 자신을 보는 관점을 변화시킬 인간 심리에 대한 전면적인 재고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저자는 지위를 "사람들이 우리를 추종하거나 존경하거나 추앙하거나 칭찬하거나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도록 허락해 주는 상태"로 정의한다.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도록 허락해 주는? 이 문장이 매우 거슬리는데~ 사람들을 막 좌지우지하는 갑이란 말인가. 난 또 삐딱선타고.. 지위를 가진 자는 싫지만 음... 그 맛이 궁금하기도 하고.. 이너매 양가감정은..



인간의 게임에는 지위를 얻기 위한 세 가지 주요 경로가 있다. 힘이나 두려움을 무기로 지위를 차지하는 지배 행위로 지위를 쟁취할 수도 있는 '지배 게임', 의무감이 강하고 순종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에게 지위가 주어진지는 '도덕 게임', 단순히 이기는 차원을 넘어서 기술이나 재능이나 지식이 필요한 일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사람에게 지위가 돌아가는 '성공 게임'이다. 이 중 성공 게임은 인류의 진보와 혁신을 이끌었다.



이 책의 첫 번째 주인공 '벤'은 열네 살에 자신의 비밀을 들은 어린 학생(11세)를 의자로 내려쳐 사망하게 한 죄로 교도소 신세를 진다.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벤은 가석방을 거부하면 30년째 재소자로 지낸다. 생각보다 영리했던 그는 석사, 박사 과정까지 마스터하고 교도소 변호사로서 수감자를 도와 평판이 좋았고 영향력도 컸기에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의 지위를 버리고 일개 전과자로 살아야 할 텐데 나라도 나가기 싫었을 것 같다.



이처럼 제1부에서는 집단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다루고 있었다. 제2부는 한계 없는 욕구에 대한 내용으로 남뉴기니의 마린드족의 이념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에게 정액은 마법 그 자체였다. 정력과 생식 능력의 원천이라 믿고 연고처럼 여기저기 바르고 먹기도 했다. 창이나 활에 낚싯바늘에 바르면 정액이 표적으로 이끌어준다는 터무니없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 정액은 자위행위로는 얻지 못하고 반드시 여성의 질액과 섞여야 했다는.. 웩!! 그래서 부족 여자들은 과도하게 성관계를 자주 가져야 했더란다. 혼인 첫날밤에는 배우자의 모든 남자 친척과 성교하고 나서야 배우자와 잘 수 있었다는.. 아이고 머리야..



제3부는 극단의 게임을 주제로 SNS 속 부족 전쟁부터 마녀사냥, 합리적인 광신도, 공산주의자들의 우화 등 과거와 일상에서 벌어졌던 지위 게임이 부른 부작용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기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기분은 순간뿐일 것이다. 혼자 올라서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게임에 지치기보다 서로가 윈윈, 협력으로 채워가는 인생.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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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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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18년 차 언어치료사(언어재활사) 김지호 저자가 지난 2007년부터 2022년 겨울까지 만났던 아이 중 25명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풋내기 치료사로 말더듬증 아이를 처음 맡게 된 사례부터 다운증후군·중증 자폐성 장애·무발화(아직 말에 못 트인) 등 여러가지 사연들이 있었다.



한 사연이 끝나면 바로 그 아이에게 못다 한 말들, 당부 또는 고백 같은 말을 담은 편지가 이어진다. 처음 만난 아이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과 언어치료 수업을 하는 과정들에서 언어치료사의 많은 수고를 알 수 있었다. 양육자와 다름없는 그들의 애씀과 마음이 없었다면 그 아이들은 언어의 빈곤으로부터 좀 더 오래 머물렀으리라.



누군가를 연상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아이들의 이름을 익명으로 표기했다. 이마저도 그의 배려가 느껴졌다. 가정 방문 치료사로 고충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행운이었다고 했다. 아이들과 종이접기, 놀이터에서 신체 놀이, 공원 산책 등을 하며 많은 말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이다.



나는 유독 아이들보다 그 아이들의 부모에게 마음이 쏠리더라. 특히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은 신이의 어머니. 그녀는 발달장애인 단체 사무실에서 임원으로 관련 시위 및 캠페인을 한다. 그 시위 안에는 삭발식도 참여했더란다. 저자는 수업을 마치고 머릿수건으로 한 어머니를 보고 터지는 눈물을 애써 참아야만 했다고 고백했다. 아이와 가족의 생존을 위해 기꺼이 수치심을 밀어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저자는 신이 엄마를 통해 장애인 지원 정책의 문제점을 디테일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이 책을 통해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 장애인의 연민을 거두고 정책을 결정하는 이들에게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며 강하게 호소했다.
"장애인이 있는 가족은 온전히 돌봄에 집중하고 나와 같은 치료사나 사회복지사는 온전히 지원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상처입은 아이들을 온몸으로 지켜주는 부모님과 온 마음을 다해 아이들의 말문을 두드리는 그들이 있어 세상은 조금 더 북적북적해지지 않을까. 이 세상 모든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마음 다해 존경을 표한다.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즐거움과 소통의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있길 바라며.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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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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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관람은 초등학교(라떼는 국민학교였지만) 소풍이 최초였지 싶다. 세 자매의 앞날을 위한 경제활동으로 바쁘신 우리 부모님은 큰 맘먹고 쉬는 날이면 풍류를 즐기는데 집중하셨더랬다. 딱히 불만은 없었다. 세 딸들을 어디든 데리고 다니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가족소풍보다는 단체 소풍이었던 터라 동네 꼬마들과 어울리면 그만이었다. 어느 한쪽도 불만은 없었다. 어른들은 어른끼리 애들은 애들끼리. 다들 그렇지 않나? 좌우지간 비글과 맞먹는 체력을 가진 아이들에겐 박물관은 너무 재미없었다.

정신없이 놀다 보니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나에 대한 탐구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근원적인 호기심을 일으켰는데 그 널름널름하던 의문이 역사 쪽으로 번져 나갔다. 역사의 재미를 이제야 맛본 나. 크~~

<조선미술관>의 저자는 고미술계에서 정평 있는 최고의 해설가라고 한다. 예리한 해석과 맛깔나는 입담은 재밌는 역사 드라마와 다름없다는! 그 드라마 내가 책으로 봤다는 것! 대박.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백성의 다채로운 일상을 담은 풍속화부터 왕실과 상류사회의 경사스러운 행사를 그린 기록화까지, 신윤복, 정선, 김홍도를 비롯한 조선의 천재 화가들 7인의 작품과 더불어 태평성대를 누린 숙종과 영조대의 기록 화첩도 소개되고 있었다. 저자는 조선시대 화가들의 뛰어난 연출력을 감각적인 해설로 그림을 더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스님들이 길거리 탁발을 위한 공연을 '스님들의 버스킹'이라고, 장수를 축하하는 잔치에 술을 담당하는 이를 '기로회 바텐더'로, 노름꾼들을 보며 조선판 카지노라는 둥 .. 이런 식으로 비유할 때마다 피식피식 웃음이 세어 나가게 된다.

신윤복의 인물화는 정말이지 너무 곱다. 그림을 팔아 먹고 살긴 했지만도 당대 상류층이 벌이는 퇴폐성을 고발하는 그 맹랑함이 왜이리 멋진 거야.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반했을 듯.

그가 출세를 못한 이유가 아버지였다는 것에 열불이 났지만, 어진 또는 궁중 기록화를 그리는 신윤복은 또 상상이 안되기도 하고, 만약 그랬더라면 귀한 역사적 사료인 그의 그림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미술관>은 1관은 풍속화, 2관은 기록화로 구분되어 순서와 별개로 읽고 싶은 부분부터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 기록화보다는 풍속화가 더 재밌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이야기가 최고지.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조선미술관 #탁현규 #블랙피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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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영원의 시계방 초월 2
김희선 지음 / 허블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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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장르는 단연 SF 문학이다. 다소 마니아적인 SF장르가 일반 문학으로 유입된 건 꾸준히 선보인 출판사의 노력과 SF문학의 스타작가들의 등장이었을 것이다.


동아시아 출판사는 한국 SF의 미래를 관측하는 망원경이 되겠다는 포부로 2016년 출판 브랜드 '허블'를 론칭했다.


김희선 작가의 <빛과 영원의 시계방>은 2022년 4월부터 시작된 한국문학의 SF 세계 위로 떠오른 초승달, 초월 시리즈 두 번째 소설집이다. 김희선 작가는 병원에서 약사로 일하고 퇴근해 매일 1~2시간씩 소설을 쓰는 루틴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약사와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그가 생소하지는 않다. 누군가 떠오르는데 그건 비밀.

이 책을 만나기 전에 그의 작품을 만난 적은 없으나 완독 후 몹시 당황스러웠고 김희선 유니버스가 궁금해졌다. 사회파 SF라고 부를 법한 이야기들이라고 소개된 이유를 찾아낸 것이다.


단편의 작중 인물 중에는 최루탄에 맞은 대학생, 노동착취에 봉기를 일으킨 공장소녀들, 파독 광부 가 있다. 오래전 시간으로 독자를 데려가며 또 다른 이야기로 현실의 경계를 너무나도 쉽게 허물어뜨린다.

무엇보다 시공간 여행 머신 '기압 운송선', 버튼 하나로 세상을 리부팅하는 '둠스데이 머신', 뇌를 디지털화해서 의식을 컴퓨터에 옮기는 '전뇌시물레이션', 기억 재구성 '기억기반 가상현실', 태엽 감기 한 번으로 24시간 일하는 자동인형 '오토마톤' 등 흥미로운 장치들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단편임에도 장편으로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한 편 한 편 굉장한 일이 벌어진다.

막바지에는 존재의 근본 원리에 대해 의심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나는 내가 아닐지도, 이곳은 누군가의 꿈일지도, 내 기억은 누군가에 조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ㅋ. 그만큼, 혼이 나가도록 재밌었다는 의미다. 다음 초월 시리즈도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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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내가 뭘 만들다가 아주 신기한 걸 발견했거든. 그 뭐냐. 세상 어디든 다 갈수 있는 방법이라고 해야할까."



💎"내가 완전히 과거에 속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오롯이 현재에 속해 있지도 않은 채, 물리적으론 과거, 의식적으론 현재를 헤매고 있었다는 사실이란다. 마치 관찰자처럼 과거의 나 자신과 사건을 바라보는 느낌이었고."



💎"혹시 세상에 길은 한 갈래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누구나 그 폰을 손에 넣는 자는, 언제든 우주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겨우 '전원꺼짐'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만으로."



💎"정신의 빛이든 육체의 빛이든, 인간은 결국 빛을 추구하게 마련이니까요."



💎"만약 꿈의 레코더가 상용화된다면, 우리들 각자는 하나의 꿈으로 고정되고 다른 모든 가능성들은 소멸할 겁니다."



💎"때론 사라져 가는 기억이 새로운 이야기와 뒤섞여 악몽을 만들어 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봐도 자케 드로의 오토마톤은 자신이 자동인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으니까요."



💎"누군가의 기억을 완전히 지워주는 일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남자들이 존재하리라곤 아무도 믿지 않았다."



💎"사실은 영화가 진짜 현실이고, 지금 여기가 바로 허구이자 상상 속 세계라는 걸. 내가 알아냈으니까요."




*동아시아 서포터즈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빛과영원의시계방 #김희선 #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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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마음 -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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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은

소비를 통해, 소유를 통해, 그리고

소비와 소유에 대한 사유를

통해 정의되는 것 같다.

반려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동무'라는 의미로의 쓰임이 많아졌다. 반려견, 반련묘, 반려식물, 반려돌.... 생물에서 사물까지 점점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다. 사물에 애칭을 부여하고 애정을 주는 것은 최근의 일은 아니다. 외화 드라마 '전격 z작전'에서 인공지능 자동차는 '키트'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 후부터(그 전일 수도) 사람들은 자신의 자동차에 이름을 지어주곤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물론 빠방이는 폐차전까지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요즘은 로봇청소기에게도 반려돌에게도 이름을 지어준다. 무생물에게 가상의 자아를 심어주는 우리들은 참 사랑스러운 존재다.

물건에 대해 생각해 본다. 실용성을 떠나 순수하게 갖고 싶다는 욕망으로 구매한 물건은 무엇이며 얼마나 절제하지 못했던가를. 소비패턴을 보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 사람의 일부는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소비와 소유에 대한 사유가 한 사람을 정의한다는 말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겠다.

생계형 변역가인 저자가 꺼낸 반려 물건 이야기 속에는 여러 가지 사물들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유산 책장, 외할아버지가 처음 사주신 바이올린, 웨딩드레스, 찻잔, 인모가발, 트렌치코트, 작업실, 건조기, 의자, 신발, 만년필, 노트 등. 가끔은 나와 같은 생각들도 묻어 있어 더 공감을 하며 읽어내려갔다. 물건을 사 책을 버리지 못하는 저자는 말한다. '언젠가 읽을지도 모를 책은 언젠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라고. 책을 만날 당시 나의 상황에 따라 밑줄 문장이 달라지는데, 언젠가 또 다른 문장으로 가슴이 떨릴지 모르는데 어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읽지 못한 새 책은 더더더 버릴 수 없다.

저자는 36세에 갑작스러운 암진단을 받고 급하게 항암치료가 들어가면서 부작용에 대비한 소비를 해야 했다.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인모가발과 두피샴푸를 구매하면서 죽음의 벼랑 끝에 세워진 사람들을 겨냥한 거대한 사업을 체험하게 된다. 죽게 생겼는데 이 정도 소비도 못 하냐는 심리가 발동되어 흔히 말하는 보복 소비를 하게 되는데 이걸 제일 잘 아는 기업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작년이 암진단 받은지 5년차였다. 그녀는 이제 환우들에게 인모가발을 나눔하려고 한다. 일종의 보복 기부를.

⁂ 새 물건에 마음을 사로잡히고 그 물건을 구매할 때 느끼는 짜릿함보다 물건과 오랜 관계를 지속하면서 더 만족감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세월이 지날수록 물건이 나의 존재를 반영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는 돌보는 존재다.


⁂ 마음에 꼭 들지 않으면 사지 않기. 세월이 흐를수록 아름다워지는 물건을 사기. 그동안 나를 기쁘게 했던 물건이 아니라면 미련 없이 남에게 주거나 버리기. 가만 보니 이 원칙은 새 인연을 만들 때도 쓸 수 있겠다.

⁂ '왜'라고 묻는 일은 어렵다. 무턱대고 살면 편한데 '왜'라고 묻는 순간 우리 삶이 경로를 이탈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질문하는 일, 그것도 어려운 질문을 골라 묻는 일은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이 버릴 수 없는 나의 책들을 볼 때마다 내가 새겨보는 다짐이다.

오래도록 곁에 두고 사랑한 물건에는 추억이라는 이름의 영혼이 깃든다고 말에 크게 공감했던 나. 물건을 버리는 것도 추억을 버리는 것 같아 쓰린 가슴에 자꾸 미루게 된다. 정리전문가는 사진으로 찍어두라고 하지만 사진에는 영혼이 없는데 어쩌란말인가.





이 책에는 저자의 아버지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알고 보니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역자 고 이윤기 선생님이었다. 세상에나!! 첫 꼭지에 주제 아버지의 유산이었던 그것이 고 이윤기 선생님의 책장 이야기였다니! 다시 돌아가 읽었다. 아버지와 함께 한, 장기 프로젝트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그녀에게 성취감에 앞서 그를 향한 그리움일 것만 같다. 젊은 나이에 암진단이라는 흔치 않은 경험은 이전과는 다른 삶의 깊이를 보았을테지. 부녀의 합작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궁금하다. 얼른 데려와 읽어봐야지.



-출판사 지원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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