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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비틀 ㅣ 킬러 시리즈 2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평점 :
2010년 9월에 이사카 고타로가 3년 만에 완성한 <마리아비틀>은 <그레스호퍼> 의 후속작이라고 한다. 두 작품은 청부살인없자 시리즈로 등장인물이 다소 겹치지만(학원 강사와 푸시 맨, 말벌 등등) 6년 사이에 이사카 고타로의 변화를 <마리아 비틀>에서 알 수 있다고 한다.
정보 위주의 독서로 편식한 나는 소설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유명한 작가나 재밌는 소설을 잘 모른다. 다만 북클럽 회원들이 한목소리로 이사카 월드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말에 혹해 언젠가는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사카 월드의 첫 입문 소설은 <서브머린>으로 그의 명성을 체감하며 그의 팬이 되고 말았다.
<마리아비틀> 배경인 신칸센의 이름은 '하야테'호로 도쿄에서 모리오카까지 운행하는 기차이다. 작가의 실제 거주지가 센다이 지역이라 몇 작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이 센다이가 배경이 많다고 한다. 200km 이상으로 달리는 고속철도 안에 킬러들의 사투가 벌어진다. 중간에 서는 역이 거의 없이 쉼없이 달리는 신칸센. 종착역까지 2시 30분의 시간에 쫓기는 자와 노리는 자, 표적이 되는 자들의 박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제목의 일화로 무당벌레를 영어로 하면 레이디 비틀인데 여기서 레이디는 성모 마리아를 가리키므로 레이디 자리에 마리아를 넣어 마리아 비틀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제목이 무당벌레라면 나나오가 주인공? ㅎㅎ
이 소설에서 12명의 킬러가 등장한다. 킬러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면 왠지 킬 빌처럼 피가 낭자한 피 칠갑이 상상되지만 이사카의 방식은 깔끔했다. 해학적으로 과일이나 곤충, 동물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킬러들은 살벌하기보다는 나사가 한두 개는 빠진 모지리처럼 보였고 안쓰러워 보일 때도 있었다. 다만 비현실적인 캐릭터 왕자는 모성을 부르는 미모에 숨겨진 천재적인 사악함이 놀라웠다. 다른 킬러들에 비해 인간미라곤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악마 그 자체였다. 철학을 운운하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할 때는 도저히 중학생이라고 볼 수 없었다. 이사카는 어떻게 저런 캐릭터를 만들었을까? 신박이다. 이사카 고타로는 악을 묘사하는 소설가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때부터야. 사람을 죽이는 일에 흥미를 갖게 됐지.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일이나 목숨을 빼앗는 누군가의 반응 같은 것들이 흥미로웠어."
'인간에게는 가지 정당화가 필요하다. (중략) 타인에게 굴복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기 정당화가 발생한다. 자신의 무력과 역량 부족, 나약함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다른 이유를 찾아낸다.'
'인간은 무서운 결단이나 윤리에 반하는 판단을 내려야 할 때야말로 집단의 견해에 쉽게 동조하며, 더 나아가 '그것이 옳다'라고 확신하는 게 아닐까.'
'인간은 자기가 타인보다 높은 지위에 있다는 사실에 안심한다. 상대를 학대함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곱씹으며 음미한다.'
상큼미와는 전혀 거리가 먼 허당미의 과일 브라더스 레몬과 밀감은 완전히 상반되는 캐릭터였다. 혈액형의 통계를 중시하는 일본답게 밀감은 전형적인 A형, 레몬은 전형적인 B형 임을 알려준다. 고전소설을 좋아하고 차분하고 진지한 성격의 A형 밀감과 꼬마 기관차 토마스를 좋아하는 B형 레몬은 물과 기름 같았는데 어떻게 업계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난 업자인지 둘의 대화는 진지하면서도 웃겼다.
불운의 여신과 결혼해야 할 것 같은 나나오의 장면을 볼때마다 안쓰러웠는데 그는 왜 무당벌레라는 별명을 가졌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일을 받아 업무를 지시하는 마리아가 처음에는 중요 인물 같았는데 그다지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검은 뿔테안경을 쓴 훤칠한 청년, 나나오의 눈부신 활약을 지켜보는 사이 어느새 나는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저 재미 삼아 어린 아들을 옥상에서 밀어버린 왕자에게 복수하고자 알코올중독에 걸린 전직 킬러 기무라는 허망하게 왕자의 술수에 걸려든다. 왕자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병원에서 대기 중인 킬러가 아들을 해치도록 장치 때문에 섣불리 왕자를 처리할 수도 없는 상황, 신칸센 안에서 기무라는 왕자의 심부름꾼 노릇을 해야 할 처지가 된다. 그의 아들 와타루는 끝까지 안전하길 바라며 쭉 읽어내려갔다. 그런데 초반부에 스쳐간 그분이 등장함다. 왕자의 응징이 기대해도 될까. 정말 여기저기 깔린 복선을 주의 깊게 기억해야 한다. <마리아비틀>은 띄엄띄엄 보았다가는 큰 재미를 잃어버린다. 너무 매력 있다. 이사카 고타로의 킬러 시리즈인 <그레스호퍼>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