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가 뭐라고 - 여러분, 떡볶이는 사랑이고 평화이고 행복입니다
김민정 지음 / 뜻밖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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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란 과연 무엇인가?
떡볶이는 추억이다. 떡볶이는 과거다. 오늘의 즐거움이다.
내일을 살게 하는 힘이다. 소울푸드다. 사랑이다.
괜한 그리움이기로 하고 구체적인 절절함이기도 하다. p6


격하게 공감한다. 음식에는 냄새와 맛, 온도와 촉감만 있는 게 아니다. 음식과 함께한 시간, 공기, 감정 모든 것이 포함이 된다.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떡볶이는 오랫동안 함께 했기에 한국인이라면 단연 소울푸드다. 

떡볶이의 가격 변천사는 잘 모르지만 남편이 어렸을 적에 100원 떡볶이가 있었다고 한다. 떡볶이 4개에 100원, 아이가 간식을 먹기에 충분한 가격에 양이었을 것 같다. 지금은 1인분에 보통 3000원~3500원이다. 매운 음식은 잘 먹지 못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먹게 된다.

일본어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인 김민정의 <떡볶이가 뭐라고>은 제목부터 침샘이 자극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읽는 내내 침샘은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했다. 꼴깍꼴깍 침을 삼키며 그 자리서 다 읽고 떡볶이집으로 향했다.


떡볶이가 필요한 날이 있다.
떡볶이를 먹고 또 하루를 버팅 용기를,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싶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도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이고,
떡볶이는 어느 계절에든 동기 부여에 가장 적절한 음식이다. p19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상실감을 어떻게 채울 수 있느냐가 그 후를 좌우한다.
상실한 채로 두느냐 무언가로 채우느냐는
오로지 개개인이 선택할 몫이다.
다만 내일을 살기 위해, 상실감의 만 분의 일만큼이라도
무언가로 채우두는 편이 조금 나을 수 있다.
떡볶이와 음악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도
끌어안고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누군가가 다가와
짐을 나누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p.93


도쿄에 살고 있는 저자의 떡볶이와 함께한 추억과 떡볶이 예찬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일본은 멥쌀이 아닌 찹쌀로 떡을 만들어 재료를 구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찹쌀로 고춧가루로 볶은 떡볶이의 부족한 맛을 채우기 위해 다시다의 힘을 필요로 했고, 어느 날은 많이 짜게 만들어지는 날도 있었단다. 이런 과정을 인생으로 연결하여 떡볶이 철학의 글도 볼 수 있었다. 옛날 떡볶이집은 디제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추천받아 틀어주기도 했다는데 저자는 나보다 조금 연배가 높은 것 같다. ^^ 뉴트로가 대세인 요즘 디제잉 부스가 있는 분식집 사업을 한다면 어쩌면 성공하지 않을까 싶다. 추억을 살 수 있다는 것. 너무나 감동이다~ ㅋㅋ


어떤 음식은 실제로 누군가를 위로한다.
입과 위를 위로하기도 하지만,
마음을, 영혼을 위로한다.
영양가보다 끈질긴 중독성으로 사람을 휘어잡는
떡볶이는 영혼을 위로해주는 음식들 중 최고봉에 속한다. p.154


저자는 기름떡볶이에 맥주가 생각났다고 한다. 나는 졸여 만든 떡볶이가 맥주가 좋다. 떡볶이 친구인 튀김이 더해지면 최고의 안주이다. 업무에 시달린 날 유독 사람에게 시달린 날은 떡볶이가 생각이 났다. 맥주 한 잔에 달큰한 떡볶이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브런치나 점심에 먹으면 궁합이 좋은 커피와 떡볶이. 이 아이들에게서 얻은 든든함은 하루를 살게 할 수 있으니 떡볶이는 결코 가벼운 음식이라고 볼 수 없다. 오랜만에 맛있고 기분 좋은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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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소철나무
도다 준코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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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봉꾼 집안.
구역질 나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나는 하루가 멀다고 계집질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두 사람은 아무 거리낌 없이 내 앞에서 여자를 안았다. 내 눈에는 두 사람이 나와 핏줄로 연결된 인간이 아니라 그저 추악하고 무서운 짐승으로 보였다. 이윽고 내 안에 시원하리만치 압도적이고 고요한 절망감이 싹텄다. /p.219


마사유키는 료헤이가 기어 다닐 때부터 돌봐주는 아이로 지금은 중학생이다. 마사유키는 2002년도 겨울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료헤이의 부모는 하늘나라로 갔고 그 뒤로 할아버지도 돌아가셔서 할머니인 시마모토 후미에가 유일한 보호자인 아이다. 그 사

고의 속죄를 마사유키가 13년째 하고 있다. 처음에는 가해자인 줄 알았으나 가해자는 아니었다. 마사유키는 짜증 나게 미련했다.


"당신과 알고 지낸 지도 오래되었지. 아까 말했다시피 당신은 성실해. 참을성이 많고, 겸손하고, 예의 바르지. 부조리한 상황을 몇 년씩이나 버텨왔어."
"당신을 칭찬하는 게 아니니 착각하진 말게. 짜증이 치민다고 말했잖은가. 실례를 무릅쓰고 말하지. 당신은 어리석어 보여. 아니, 실제로 어리석지. 13년 전 당신이 뭔가 잘못했나? 아무 잘못도 안 했어.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고." / p.142


삼대 정원사이면서, 난봉꾼 집안에서 마사유키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어린 시절을 무관심과 냉대로 자랐다. 아무도 무엇이 잘 못된 것인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마사유키가 철이 들었을 무렵 소가조원에는 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여자들이 있었고, 쉬는 날이면 할아버지와 아버지 둘 다 여자와 놀고 마사유키는 혼자였다. 한 번도 유원지와 동물원에 데려가 준 적이 없다. 결핍이 결핍인지도 마사유키는 몰랐다. 이런 환경은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먹지를 못하게 되었다. 물이나 커피 우롱차 외에는 그 무엇도 누군가 앞에서 목구멍에서 넘기질 못한다. 그러다 시공주의 쌍둥이들과 처음으로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 두 살 위인 남매로, 첫째 이쿠야와 인생의 최초의 친구로 마이코는 첫사랑이 되었다.


마이코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다. 나는 수많은 가시를 느꼈다. 온몸 구석구석 가시가 박혔다. 두꺼운 가시, 가는 가시, 독 가시, 얕고도 깊게 나를 찔러댔다.
"그게 이상하다는 걸 모를 만큼 상처 입었는데. 본인한테 자각이 아예 없어서야."/ p.250


"자네가 여태껏 최악이었다 해도 그건 자네 탓이 아닐세. 아무것도 모르는 자네한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런데 이제부터는 아닐세. 자네는 이미 알고 있어. 그러니 만약 앞으로 자네가 최악이라면 그건 전부 자네 탓이네. 누구의 탓도 아니지."


"삼대 청년. 그걸 처음에 가르쳐준 사람에게 감사하게나. 말하기 어려운 걸 말해줬으니 말이야. 보통은 최악인 사람에게 당신은 최악입니다. 하고 굳이 말해주지 않거든. 조용히 인연을 끊을 뿐이지. 그걸 말해준 까닭은 진심으로 자네를 걱정하기 때문이야. 그것만은 알아두길 바라네."/p.256


이쿠야는 스무 살이 되어서야 재능이 없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서른두 살 먹도록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 아무 데도 가지 못한 채 빙빙 돌기만 하고 있다. 아무 데도 못 간다.
바보처럼, 개처럼 13년을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부질없는 것이었을까? 내가 해온 모든 일이 헛수고였을까? /p. 404


시공주이면서 쌍둥이의 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한 난봉꾼 아버지의 어긋난 사랑은 죽음으로 치닫게 되었고 그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료헤이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마사유키는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13년째 후미에게 생활비를 지급하고 료헤이를 돌봐준다. 미련스럽게도.. 가슴이 아프다.
2013년 7월 7일은 그에게 중요한 날이다. 어쩌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수도 있는 정말 중요한 날이다. 어쩌면 이 날을 위해 13년을 견뎌왔을지도 모른다. 과연 그가 따뜻한 밥을 누군가와 함께 먹을 수 있는 날이 올까.


- 료헤이와 마사유키
료헤이 또한 마사유키가 할머니 앞에서 무릎 꿇고 머리를 바닥이 수그리는 것을 어릴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인지한다. 하지만 자라면서 의문을 품게 되고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삼촌이었던 마사유키에게 배신과 연민을 모두 갖게 되었다. 마사유키가 단지 속죄만으로 료헤이를 돌봤다고는 볼 수 없었다. 자신이 못 가졌던 관심과 하고 싶었던 것들을 료헤이에게 모두 해줬다. 그러면서 자신도 즐거워했고 무엇보다 료헤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마사유키의 결핍을 채워준 사람은 다름 아닌 료헤이와 첫사랑인 마이코였다. 사람이 준 상처는 사람이 낫게 해준다고 하는 말이 이해가 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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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왕
니클라스 나트 오크 다그 지음, 송섬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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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왕>은 원제가 '1793'으로 1793년 스톡홀룸을 배경으로 한 역사 추리소설이다. 이제 갓 스릴러 소설의 묘미를 알게 된 나는 지인의 강력한 추천에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 시대의 문화와 분위기를 한 소설에서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18세기의 스웨덴은 영국과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특히 1700년대 후반기의 문화는 프랑스풍이라고 한다. 귀족 가문들은 프랑스의 생활 양식에 도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프랑스의 변화는 그들에게 핫이슈였음을 알 수 있다. 루이 16세가 처형당하고 남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참수형 예정이었는데 소설에 중반부에 결국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음을 읽을 수 있었고, 의학지식이 부족했던 때라 민간요법과 미신에 더욱 의존하던 시대였음을, 지독한 가난이 사람을 비루하게 만든다는 것을 실감했다. 


<늑대의 왕>은 총 4부로 나눠진 이야기로 모두가 연결고리가 있는 스토리였다.

1부 인데베토우의 유령_1793년 가을
파트부렌 호숫가에 떠오른 시체를 아이들이 발견하고 방범관인 카르델에게 신고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쓰레기 호수라 평상시에도 온갖 더미가 난무한 더러운 곳이라 시체가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시체라고 보기에는 크기가 작아서 귀찮아하고 있던 찰나 손에 잡힌 그것은 사지가 절단되고 눈알과 치아가 제거된 남성을 보게 된다. 흉측했지만 금발만큼은 아름다웠다. 카르델은 순간 전장에서 동료를 잃고, 자신의 왼팔을 잃었던 트라우마 발현으로 없는 팔의 통증에 고통스러워한다.

법조계에서 저명했던 세실 빙에는 창백한 피부, 큰 눈에 앙상한 체형으로 생명의 불씨가 언제 꺼질지 모른다. 그의 가벼운 몸짓은 소리 없이 돌아다니는 유령과 같아 인데베토우의 유령이라고 불리고 사람들은 그가 이 겨울 안에 죽을 것인지에 대해 내기를 하고 큰 목돈을 챙길 자가 누구인지 기대를 하곤 했다.
그의 학창 친구인자 치안총감 요한 구스타프 놀린에게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었으나 거절할 수 없는 살인사건의 비공식 수사 부탁을 받게 되는데 마지막 남은 시간을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신분을 알 수 없던 시체의 이름을 묘지기의 추천되로 칼 요한으로 부르기로 한다. 칼 요한을 처음으로 건진 카르델에게 협조를 구하고 이 둘은 파트너가 되어 비공식적으로 수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빙에는 나날이 많은 피를 토하고 더욱 앙상해져 간다.
두 가지 확인된 단서로 각자 하나씩 파헤치기로 한다. 


"내가 보기에는 제일 먼저 오른팔이 잘린 것 같아. 그다음이 왼 다리, 왼팔, 오른 다리 순서겠군. 아무는 속도가 나랑 비슷했다고 치면 오른팔이 잘린 건 한 석 달 전일 것 샅아. 오른 다리는 한 달쯤 된 것 같고." /41


3년 전 전장에서 한쪽 팔을 잃은 카르델은 시신의 사지가 아물 수 있는 시간을 두고 차례대로 베어 나갔다는 것을 추리한다.

"저는 올겨울이 끝날 때까지 살아 있지 못할 겁니다. 곧 저는 어떤 원인과 결과에도 종속되지 않은 몸이 되겠지요.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간에, 당신은 홀로 버텨야 합니다."
"그럼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자네의 이 짝패가 난리 법석에 함께 휘말리는 꼴을 구경하려면 말이야." / 71


"빙에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언제나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남의 약점을 찾아다니는 늑대일까요?" / 92 


예전에 세계사 책에서 사람을 전시했다는 시대가 있음을 알고 놀라움에 치를 떨었는데 책 속의 시대에도 귀족들의 놀이문화에 인간 전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보통 인간은 아니다. 선천 기형이거나 질병으로 뒤클어진 신체를 가진 자들은 눈요기 감이 되었다. 눈과 치아를 잃고 사지가 잘린 칼 요한도 귀족들의 비밀 장소인 케위세르 저택에 보내져 머물러 온갖 추행을 당하다 생을 마감했다.

칼 요한을 바로 죽이지 않았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눈알과 치아를 먼저 제거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정말 악마일까.
악마적인 취미로 즐긴 놀이일지 증오로 가득한 복수인지 끝이 궁금했다. 


2부 피와 포도주_1793년 여름 。 외과 견습생 요한 크리스토페르 블릭스가 누이에게 편지를 쓰듯 일기를 기록하는 내용으로 살인자가 등장한다.

3부 나방과 불꽃_1793년 봄 。 안나 스티나라는 소녀가 소꿉친구의 프러포즈를 거절하다가 매춘녀로 신고받고 억울하게 교화소로 잡혀가게 되는 내용이다.
4부 늑대 중의 늑대_1793년 겨울 。각자 수사하던 카르델과 빙에가 만나 퍼즐을 맞춰가며 드디어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늑대 중에 살아남은 늑대가 누구인지 책에서 확인해보길 바란다.  


"당신의 표정이 바뀌는 걸 전 분명히 봤습니다. 절 속일 생각은 마시지요! 당신이야말로 진짜 늑대입니다. 지금까지 본 것만으로도 당신이 늑대인 건 분명하지만, 만에 하나 제 짐작이 틀렸다 해도 당신은 조만간 늑대들의 법칙을 받아들이어야 한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중략) 다신의 송곳니는 아주 깊이 파고들 겁니다. 어쩌면 당신이 둘 중 더 힘이 센 늑대가 될지도 모르지요." / 95~96 


2부와 3부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사건과 연결된 관계자였다. 그 시대에 없는 자가 배부를 수 있는 방법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각 스토리에서 볼 수 있었고 여성에 대한 비윤리적인 학대에 대해서도 생경하게 알 수 있었다. 참혹한 시대상은 다시 반복되지 않겠지만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행하는 수법은 달라졌어도 사라지는 않는다는 진실에 착잡해진다.

<늑대의 왕>의 후편 1794에서도 왠지 카르델과 빙에의 파트너십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든다. 잔혹하지만 스릴러소설 입문자인 나도 불편하지는 않았고 역사 속에 잠시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한 표현이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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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넌 고마운 사람
배지영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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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라디오를 본격적으로 들었던 때가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전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였다. 서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외로워하는 나를 위해 부산 친구가 추천해주었던 MBC 라디오 신성우의 디스크쇼를 가끔 들었던 것 같다. 동일 인물인데도 TV와 라디오에서의 음성은 천지차이였다. 무슨 장치였을까? 아니면 밤이어서 더 달달하게 들렸던 것일까? ㅋㅋ 미대입시 준비를 하면서 불성실했던 청취 생활을 끝을 냈다.



<이미 넌 고마운 사람>의 저자 배지영은 라디오 작가로 오랜 시간 직접 사연을 고르고 전하고 나누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런 사연들 속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한 밤에 디제이를 통해 전해졌던 사연을 고르고 골라 책으로 엮었다고 하니 너무나 기대가 되었다. 




그래. 혼자라서 좋았던 게 아니라
둘이라서 더 좋았던 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그냥 사랑이라서 좋았던 거야./ p51



나 역시 그녀와의 헤어짐이 아쉬웠다기보다는
함께 산책하던 공원의 풍경이,
소박한 식탁에서 음악을 들으며 식사하던 시간이
몹시 그립기도 하니까. /p.48



사랑과 이별을 겪으면서 느꼈던 마음이 생각이 났던 구절이다. 왜 그렇게 '내가 어디가 좋아'라고 '구체적으로 말해봐'라고 닦달을 했었는지. ㅎㅎ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유 따윈 없다는 것을 오랜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를 좋아하면서도, 이 행복이 끝날까 두려워하지만,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던 철없는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또 어떤 각주는 책의 뒷장에 붙어 있어서
시간이 지나야 읽혀지기도 해.
퇴직을 앞둔 아버지의 등에서 느껴지던 쓸쓸함을,
결혼을 앞둔 딸이 밥 먹는 모습을 찬찬히 지켜보던
어머니의 눈물을.
아버지의 상황이 되어서야 또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알게 돼./p148



예전에 tv에서 부모님이 전화로 밥 먹었냐는 보고 싶다는 뜻이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면 좀 더 각주를 잘 찾을 수 있었을까. 망나니 같은 나로 인해 시꺼멓게 속이 탔을 엄마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상 하지만 습관인 건지 아직 아이 같은 나를 받아주길 바라는 마음인지 자꾸만 투정하게 된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마주할 횟수는 자꾸 줄어들 텐데.. 분명히 후회할 텐데 말이다.


<이미 넌 고마운 사람>을 다 읽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여운은 길게 남았다. 아린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환해지는 책이었다. 일정한 톱니바퀴에 맞추듯 빡빡하게 살아가는 청춘과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일상이 무료하거나 너무나 지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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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술래잡기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파일
마옌난 지음, 류정정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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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삼. 너에게 지옥을 보여주마.
살아있는 것이 죽음보다 못하다는 것을
느끼게..


마가리타 - 눈물, 잊지 못한 기억
철도 재료 기업 사장인 40대 남성, 독극물 살인 사건 발생
사고 이후 매일 밤, 같은 악몽을 꾸는 모삼.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기억이 없다. 4개월 만에 처음으로 단장을 하고 외출을 했다. 기억을 한 올이라도 찾을 생각에 나왔지만 답답할 뿐이다. 12시가 넘은 시간 자신의 기억과는 전혀 무관한 클럽으로 향한다. 주문한 마가리타를 보고 있는데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은 여자가 곁으로 와서 마가리타 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사라졌는데.. 갑자기 들려온 비명소리 후 경찰이 출동했다. 그들은 VIP 룸에 폴리스라인을 둘렀다. 모삼은 호기심이 발동하여 슬그머니 라인 안으로 들어가 사망자를 관찰했다. 그리고 신들린 듯 추리를 하고 프로파일링 한다. 이런 자신도 무척이나 놀라워한다. 


모삼의 신비함과 괴이함은 오 팀장도 들은 바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현장에서 그는 유령처럼 불쑥 나타나 신 내림을 받은 자처럼 추리하고 분석하여 용의자를 찾아내고, 마지막엔 기운 빠진 사람처럼 경찰청으로 따라온 데다가 지금은 또 이런 상태라니… p.50


클럽의 사건은 모삼의 기억을 되살려났다. 기억을 찾은 후 처음으로 생각난 사람은 파트너 무즈선에게 전화를 했다. 한달음에 달려온 므즈선은 모삼과 함께 사건을 해결한다. 단순한 독살 사건이 아니었다. 사랑과 증오가 엇갈린 이야기이다. 


타인이 너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그들의 업보요,
또한 그들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너의 업보다. 웨인 다이어


사건 종료 후 무즈선 집으로 향하는 두 사람, 최면을 통해 임신한 관팅이 어떤 방법으로 유린되고 살해되었는지 다 알게 된 모삼은 무너진다. 하지만 그는 쉬지 않고 프로파일링 한다. 조금이라도 기억을 남기기 위해 그놈을 꼭 잡기 위해. 갑자기 적외선 불빛이 보였다. 수상한 빛을 추적하는 모삼과 무즈선은 무즈선집에 설치된 카메라 안에 종이를 발견한다. 그 녀석이다. 


저와 게임을 하시지요.
당신이 지면 누군가를 죽일 것이고,
당신들이 이기면 그 사람을 살려주지요.
이 게임은 당신들이 나를 찾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게임에 응하지 않으면 3일 후 오랜만에 토막 시체를 보게 될 것이라는 그 녀석은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의 해결과 추격이 반복되는 소설이다. 마지막까지도 L의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다. 사신은 모삼과 무즈선보다 더 앞에 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누구도 찾지 못할 범죄를 먼저 알아내 해결하라고 물어다 주는 브로커 같은 느낌도 들었다. 여기서 나오는 범인들은 모두 사연이 있다. 그들을 악마로 만들었던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그들은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되었다. 하지만 피해자라고 해서 모두 가해자가 되는 게 맞다고 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모삼은 사건을 해결하면서 L의 말을 떠올린다. '당신에게 보여주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런 것인지.' L은 모삼을 너무나 잘 알지만 모삼은 L을 전혀 모른다. 중국 최고의 법의관 무즈선은 파트너인 모삼의 부족함을 보충해 줄 수 있으며, 시시각각 모삼이 잘못한 부분을 알려주면서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낮춰주었다.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는 파트너이면서 서로를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범죄 스릴러소설을 오랜만에 읽어서인지 잔혹한 장면에 소름이 돋긴 했지만 L의 존재가 너무 궁금하고 모삼과 무즈선의 쿵짝도 흥미로워 계속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소설이었다. 다음 책이 너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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