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러스먼트 게임
이노우에 유미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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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얀 거탑>이라는 드라마의 각본가 이노우에 유미코의 원작 베스트셀러인 <해러스먼트 게임>의 주제는 기업의 컴플라이언스이다. 기업에서 컴플라이언스는 법률 준수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사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괴롭힘을 소설에서 다루고 있다. 2018년 10월 TV 도쿄에서 9부작으로 카라사와 토시아키가 주연으로 인기리에 방영했던 드라마이기도 하다. 재미는 보장이겠구나 싶었다. 직장 내 괴롭힘의 주제도 신선하다.



오늘도 이른 아침 낚시에 빠져 비린내를 풍기며 출근한 아키스 와타루. 마루오 슈퍼 추오점에서 점장을 맡고 있었다. 과거 도쿄 본사의 중추였던 점포개발부에서 유망한 존재였지만 7년 전 어떤 사건으로 좌천되었다. 느닷없이 인사발령 전화를 받고 당황했으나 이동 날짜는 당일이라니! 이동 부서는 해러스먼트를 다루는 컴플라이언스 실의 실장이다. 인사이동 기간도 아닐뿐더러 당일 이동이라니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7년 전에는 좌천시키더니 갑자기 본사로 불러들이는 회사의 사정은 무엇일까.


 렌마점에서 판매된 당사 오리지널 브랜드 '완전 안심'시리즈의 크림빵에서 1엔짜리 동전이 나왔다는 고객 불만을 주제로 임원 회의가 한창 중인 회의실. 고객 불만이 있기 바로 전일 폐점 직전에 전화가 수상쩍었다. 어떤 여성이 '파워하라'(일본식 준말로 상사의 괴롭힘)을 중단하지 않으면 마루오 슈퍼 모든 점포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말하고 끊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사건이 터졌다.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한 컨플라이언스 실에 마코토가 긴급히 보고를 올렸고 모두 내부 범행이라고 추측하는 가운데 마루오 사장은 비어있던 컨플라이언스실의 실장의 적임자로 아키스를 당일 임명한다. 그리고 아키스에게 사건 해결과 함께 밀명을 내린다.


 긴급한 사건부터 해결하는 아키스는 사장의 밀명에 대해 고민을 한다. 다름 아닌 와키다 상무를 제거하기 위해 비밀리에 해러스먼트를 찾아내라는 것이다. 와키타는 과거에 아키스의 부하직원이었다. 7년 전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모든 것에 자신감을 잃은 채 바닷속에 몸을 던지게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사장을 그것을 이용해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아키스를 불러들인 것이다. 와키타는 임원들을 장악해서 마루오 일가를 축출하려는 것을 알게 되어 사장은 비장의 카드를 만들어 놓으려고 한다. 마루오사장과 와키타 상무의 기싸움, 아키스와 와키타의 껄끄러운 과거, 각종 해러스먼트 발생과 해결 과정을 재밌게 읽었다.


 우리나라도 줄임말을 즐겨 쓰듯 일본에서도 준말을 사용하는데 해러스먼트를 하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파워하라, 젠더하라, 파타하라, 모라하라. 카스하라로 다양한 종류의 학대가 소재로 나온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무리 안에서 안정감을 갖는 존재라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 혼자가 아닌 집단이라는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 그렇다 보니 무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보통은 섣불리 아니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책 속에 여러 가지 해러스먼트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모라하라였다.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를 불안에 빠트리거나 인격에 존엄에 상처를 임하는 정신적인 폭력으로 보이지 않는 폭력이라고도 한다. 쉽게 말하면 '왕따'같은 것이다. 인류가 행하는 최악의 폭행이며 절대 있어서는 안 될 학대이다. 따뜻한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들은 언제든 이런 학대에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모든 해러스먼트는 없어야 하지만 모라하라만큼음 절대적으로 단종되기를 바래본다. 



"미끼를 걸고 그걸 먹으러 온 물고기를 낚아 올린다. 산 채로 가지고 돌아가 회를 떠서 먹는다. 잔혹한 유희입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회사원의 인생을 느꼈고, 그래서 푹 빠져버렸습니다."


"아니오. 대신 이것만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 점장님이 1엔짜리 동전을 주우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기억해두세요.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주의 한 번 주지 않는 것을 방치라고 합니다. 그게 훨씬 더 잔혹하고 무자비한 파워하라입니다."


"누군가를 혼내줄 말은 많이 알고 있어도 각오와 반성을 위해 해야 할 말은 모르는 것이다." 


"- 왜 넌, 나를 판 거냐?"


"스스로 책략가임을 인정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책략에는 둔감하다. 자신만이 계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까? 난…… 그냥, 높은 자리에 오르면 시시한 인간이 돼버릴 것 같은데. 지방에 가서 앞치마 걸치고 고객을 상대하면서 …… 세상에는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것보다 즐거운 일이 많다는 것을 알았어."


 아키스가 7년 전 파워하라로 고발되어 목숨까지 버릴 뻔한 사건으로 인생의 맛을 통달한 듯 보였다. 명석한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과 그의 능청스러움과 따뜻한 인간미는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었다. 사람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며 속마음을 꺼내놓게 만드는 그는 참 멋진 아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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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전승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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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나에게 책이란, 만화영화처럼 시각을 만족해주는 수단이었다. 그림이 없으면 책을 구매하지 않았고, 활자만 가득한 책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어린이는 고단한 하루에 마음과 몸이 시들해진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된 나는 위로의 수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책을 가까이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저자 전승환은 '책 읽어주는 남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좋은 문장과 위로를 건네주는 북테라피스트이자 에세이 작가이다. <나에게 고맙다>, <행복해지는 연습을 해요>,<라이언, 내 곁에 있어줘>를 집필했고 이번에 출간된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는 첫 인문 에세이라고 한다.
이 책은 네 개의 챕터로 나의 '감정, 시간, 관계, 세계'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열심히 살지만 무엇 때문에 열심히 살고 있는지 모르겠고, 의미를 알 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만 있는 게 한심스러워지는 날 이 책을 펼쳐보자.



슬픔과 고통의 형태가 다양하기에,
우리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위로하는 것도 필요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힘들 때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있다면 정말 좋겠죠.
설령 그가 내 마음을 완벽하게 알아줄 수 없다고 해도
그렇게 털어놓는 이리 자체가 위로가 될 테니까요. p17~p18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날은 친구들과 수다로 지워내고 노래방에서 심장이 튀어나오도록 고성을 지르며 상처를 뱉어낸다. 사람들에게 마음이 다친 날에는 친구라는 관계로 위로를 받고, 내가 모자라서, 바보 같아서 받았던 마음의 상처는 차분하게 책과 음악으로 위로를 받는다. 형태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이 무척이나 공감이 되는 문장이다.



인정하면 집착이 없어진다.
사람이 될 수 없고, 그 물건이 내 물건이 될 수 없고,
그 돈이 내 돈이 될 수 없고, 그의 재능이 나의 재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런데 인정하고 나니 한편으로 여유가 생겼지만
한편으론 미친 듯이 슬퍼졌다. p64 



책 속에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의 구절이다. 보석 같은 문장을 기억하고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저자는 여러 채널에서 '책 읽는 남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공감을 자아냈던 130권 정도의 굉장한 문장들을 담았다. 나는 그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은 꼭 읽어보고 싶다. 



불안할 때는 먼저 내 마음을 돌아보고,
그다음으로 관계를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가진 여러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즉 나라는 기준점을 단단히 다지면
우리는 어떤 불안 속에서도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고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 25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나 자신에게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요.
먼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내 마음에 솔직해져야, 비로소 나라는 중심을
세우게 되고 관계에 마구 휩쓸리지 않게 됩니다. p203 



저자는 말한다 나답게 사는 것이 쉽지 않다고. 나도 평생을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나답게 사는 것이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 단단한 자존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사람들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 관계가 편해지듯 적절한 거리를 두고 나를 바라본다면 좀 편해질 것 같다. 지나친 관심과 애정이, 집착과 연민이 되지 않기를, 나에게 좀 더 관대해지기를 바라본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의 보석 같은 문장과 따뜻한 저자의 글로 용기와 위로를 받으며 오늘도 기운을 내보기로 했다.

우리는 매일 아름다움을 많이 놓치고 살아간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안목을 기른다면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안목 또한 자연스레 생길 것이다. 인생은 아름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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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성적으로 살기로 했다
서이랑 지음 / 푸른영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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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향적인 사람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이 부러웠다. 의미 없이 던진 말에 며칠을 고민하기도 하고,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곱씹으며 실수한 것 없는지 기준도 없는 검수를 하며 나 자신을 피곤하게 했다. 내적 에너지 소비를 많이 하지만 외부 활동을 하면서도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라 꼭 완벽하게 내성적인 성격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피터 홀린스는 성격을 구분 짓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그러면 내성적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나는 내성적으로 살기로 했다>에서 저자의 고백을 읽으며 찾아보기로 했다.



물구나무를 서느라 온갖 신경과 에너지가 집중되어
내가 걷고 있는 풍경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다면,
나는 차라리 물구나무서기를 못하고 싶다.
p87



저자는 본인을 지독한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외향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불행하게 살았다고 한다. 시부모님께 싹싹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까지 하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 동질감을 자아냈다. 나처럼 같은 고민을 하며, 같은 것에 예민해하는 저자라서인지 과거의 저자에게 힘내시라고 응원하고 싶었다.



누가 어떤 칭찬을 듣는지 보고 들으면서 우리는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가치관을 형성한다. 그러니까 칭찬이 문제다. 그놈의 칭찬 때문에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바라고 같은 것을 부러워한다.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같은 길을 간다. 우리가 이토록 재미 없어진 이유가 그 마약 같은 칭찬 때문인 것이다. / p24



모든 '처음'에 설렘을 느끼기보다 두려움을 느끼는 탓에 무엇이든 지레 겁부터 먹고 망설이는 나를 덜 다그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나를 들킬까 봐, 남들은 다 큰 어려움 없이 해나가는 듯한 일상조차 나에게는 신경이 곤두서고 힘겨운 과제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척하며 매일매일 무리하던 일들도 그만두었다. 내가 지독하게 내성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뒤집기 위한 발버둥을 그만두고 어쩔 수 없는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내성적으로 살기로 했다. /p.82



잘못된 건 '눈치를 보는 나'가 아니라고. 나라는 존재가 없어진 건 내가 눈치를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눈치 보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싫어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눈치를 보면서도 눈치 보지 않은 척하다 보니 도대체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어졌는지도 모르겠다. /p212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척하며 무리하며 관계를 이어가는 저자는 결국은 자신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발버둥 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하긴 모든 사람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면서 살기란 여간 피곤할 일이 아니다. 그러다 무심코 드러난 진짜 나의 성격을 사람들이 떠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느니 나의 이런 성격마저도 좋아하는 사람이 소수라도 있다면 그걸로 인생은 괜찮은 게 아닐까 싶다.



행복이 무엇인지 따위는 알 필요가 없다. 대신 자신이 원하는 행복이 어느 쪽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따끈하고 얼큰한 국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매일 크림 스파게티만 먹으면서 느끼하다고 불평하는 것만큼 웃긴 일은 없을 테니까./p169


책을 읽다가 남편에게 나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물어봤다. 대답은 "당신은 당신이라 장점이고, 당신은 당신이라 단점이야"였다. 듣고 나서는 한 대 때릴까? 하고 기분이 나빴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람이 온전하게 나를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착각일 수도 있다. ^^ 자신의 부족함을 들어내고 그 모습마저도 좋게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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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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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리나라에도 엄청난 팬덤이 형성된 작가지만 소설을 즐겨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나는 최근 [분신]으로 그의 진가를 알아보게 되었다. 93년도에 발표한 [분신]은 클론이라는 그 시대에 생소한 주제였을 텐데 지금 읽어도 대단히 흥미 있었다. 설 연휴를 앞두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만 하려 했으나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이 보이는 순간 본능적으로 [11문자 살인사건]에 손이 나갔고 결국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어제야 마침 한 권의 책을 완독해서 이 책을 집었는데 너무나 집중하며 읽어내려갔고 하루가 가기 전에 완독했다. 먼저 끝낸 책은 서평을 미루고 <11문자 살인사건>을 쓰게 될 줄이야 ㅋㅋ 정말 믿고 보는 게이고라는 말은 틀림없었다.


▶"나" _ 여성 추리소설가
▶가와즈 마사유키 _ "나'의 애인. 프리랜서 작가
▶하기오 후유코 _'나'의 담당 편집자이자 친구
▶니자토 미유키 _여성 카메라맨
▶야마모리 다쿠야 _ '야마모리 스포츠플라자'의 사장
▶야마모리 마사에 _ 다쿠야의 부인
▶야마모리 유리 _ 다쿠야의 시각장애가 있는 딸
▶무리야마 노리코 _ 다쿠야의 비서
▶하루무라 시즈코 _ '야마모리 스포츠플라자'의 직원
▶가네이 사부로 _ '야마모리 스포츠플라자'의 직원, 시즈코의 애인
▶후루사와 야스코 _ 직장인
▶다케모토 유키히로 _ 르포작가. 요트 여행 사고에서의 유일한 희생자
▶다케모토 마사히코 _ 직장인, 유카히로의 동생


도입부부터 주요인물 소개를 친절하게 작성된 소설을 최근에 처음 보는 것 같다. 인물 파악을 하기 위한 노력을 책을 째려보며 노트에 끄적일 필요가 없어서인지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다.
"누군가 나를 노리고 있어."
나의 애인 가와즈가 버번 잔 속의 얼음을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어느 날 형사가 찾아와 그의 살해 소식을 알렸다. 둔기로 뒷머리를 내리친 뒤 항구에 버려졌다고 한다. 주인공은 친구이자 편집장인 후유코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사실 가와즈는 후유코가 소개해준 남자였다. 이틀 뒤, 그의 장례식에서 그의 여동생과 같이 일했다던 어깨가 다 무진 여성 카메라맨 니자토 미유키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틀 뒤 오빠의 유품을 정리하던 가와즈의 동생이 주인공에게 전화해 책과 자료들이 필요하면 보내드리겠다고 연락이 와서 택배로 받기로 했다. 마침 주인공도 그 집 열쇠를 돌려줘야 해서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가와즈의 스케줄표를 보게 되었고 죽은 당일 야모모리 사장을 만난 것을 알게 된다.


추리소설 작가인 주인공은 이번 사건은 보통으로 보이지 않았고 더구나 좋아하던 사람이라 진실을 파헤치고 싶었다. 물론 차후 소설의 소재로도 사용할 의향도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 보트 사고로 살아남은 사람이 차례대로 제거되고 있을 것이다고 생각하게 된다. 유일한 사망자였던 다케모토의 관계자의 복수일까.
며칠 뒤 니자토는 가와즈처럼 후두부에 가격을 당한 시체로 그녀의 아파트에서 발견된다. 그날은 주인공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그 뒤로도 요트의 생존자인 극단의 배우 사카가미 유타카도 동일한 방법으로 살해된다. 역시 주인공과 만나기로 하루 전에 일어난 사고다. 범인은 항상 주인공보다 앞서간다.

범인은 누구이며, 무슨 이유로 생존자들을 위협하는 것일까를 보며 쉼 없이 추적하며 읽어내려갔고 다 읽은 후에는 작가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를 생각했다. 가치를 선택하는 것.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일방적인 가치관이 그들이 어떤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게 했고 그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후로도 범인을 알아낸 그들이 했던 행위도 추악했다. 누군가의 가치를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나와 신념이 다르다고 하여 그 사람은 죽어마땅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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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가 뭐라고 - 여러분, 떡볶이는 사랑이고 평화이고 행복입니다
김민정 지음 / 뜻밖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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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란 과연 무엇인가?
떡볶이는 추억이다. 떡볶이는 과거다. 오늘의 즐거움이다.
내일을 살게 하는 힘이다. 소울푸드다. 사랑이다.
괜한 그리움이기로 하고 구체적인 절절함이기도 하다. p6


격하게 공감한다. 음식에는 냄새와 맛, 온도와 촉감만 있는 게 아니다. 음식과 함께한 시간, 공기, 감정 모든 것이 포함이 된다.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떡볶이는 오랫동안 함께 했기에 한국인이라면 단연 소울푸드다. 

떡볶이의 가격 변천사는 잘 모르지만 남편이 어렸을 적에 100원 떡볶이가 있었다고 한다. 떡볶이 4개에 100원, 아이가 간식을 먹기에 충분한 가격에 양이었을 것 같다. 지금은 1인분에 보통 3000원~3500원이다. 매운 음식은 잘 먹지 못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먹게 된다.

일본어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인 김민정의 <떡볶이가 뭐라고>은 제목부터 침샘이 자극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읽는 내내 침샘은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했다. 꼴깍꼴깍 침을 삼키며 그 자리서 다 읽고 떡볶이집으로 향했다.


떡볶이가 필요한 날이 있다.
떡볶이를 먹고 또 하루를 버팅 용기를,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싶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도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이고,
떡볶이는 어느 계절에든 동기 부여에 가장 적절한 음식이다. p19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상실감을 어떻게 채울 수 있느냐가 그 후를 좌우한다.
상실한 채로 두느냐 무언가로 채우느냐는
오로지 개개인이 선택할 몫이다.
다만 내일을 살기 위해, 상실감의 만 분의 일만큼이라도
무언가로 채우두는 편이 조금 나을 수 있다.
떡볶이와 음악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도
끌어안고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누군가가 다가와
짐을 나누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p.93


도쿄에 살고 있는 저자의 떡볶이와 함께한 추억과 떡볶이 예찬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일본은 멥쌀이 아닌 찹쌀로 떡을 만들어 재료를 구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찹쌀로 고춧가루로 볶은 떡볶이의 부족한 맛을 채우기 위해 다시다의 힘을 필요로 했고, 어느 날은 많이 짜게 만들어지는 날도 있었단다. 이런 과정을 인생으로 연결하여 떡볶이 철학의 글도 볼 수 있었다. 옛날 떡볶이집은 디제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추천받아 틀어주기도 했다는데 저자는 나보다 조금 연배가 높은 것 같다. ^^ 뉴트로가 대세인 요즘 디제잉 부스가 있는 분식집 사업을 한다면 어쩌면 성공하지 않을까 싶다. 추억을 살 수 있다는 것. 너무나 감동이다~ ㅋㅋ


어떤 음식은 실제로 누군가를 위로한다.
입과 위를 위로하기도 하지만,
마음을, 영혼을 위로한다.
영양가보다 끈질긴 중독성으로 사람을 휘어잡는
떡볶이는 영혼을 위로해주는 음식들 중 최고봉에 속한다. p.154


저자는 기름떡볶이에 맥주가 생각났다고 한다. 나는 졸여 만든 떡볶이가 맥주가 좋다. 떡볶이 친구인 튀김이 더해지면 최고의 안주이다. 업무에 시달린 날 유독 사람에게 시달린 날은 떡볶이가 생각이 났다. 맥주 한 잔에 달큰한 떡볶이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브런치나 점심에 먹으면 궁합이 좋은 커피와 떡볶이. 이 아이들에게서 얻은 든든함은 하루를 살게 할 수 있으니 떡볶이는 결코 가벼운 음식이라고 볼 수 없다. 오랜만에 맛있고 기분 좋은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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