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반짝반짝
이공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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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문구를 사랑하지만 자제력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의 필통은 국어책과 맘먹는 정도의 사이즈였고, 그 안에 세상은 '윌리를 찾아라'보다 더욱 부산하고 복잡했다. 색연필 전용 필통, 연필 전용 필통, 볼펜 전용 등 나뉘어 가지고 다녔으면 찾기가 쉬웠을 텐데, 나의 필통에서 바로 사용할 필기구를 찾기란 '윌리'보다 더더욱 어려운 숙제였다. 다 이쁘고 소중한데 한 놈만 고른다는 건 무척이나 고민되는 일이니 말이다. 물론 지금도 문구와 미술용품들이 많지만 분류라는 것을 터득한 어른이라서 여러 개의 꽂이에 종류별로 정리를 해놓았다. 보기만 해도 참으로 뿌듯하다.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받은 핑크색 자석 필통 안에 정갈하게 깎인 연필 몇 자루와 뽀얀 지우개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학교를 빨리 가고 싶었다.
초록색 토끼 문양이 찍힌 하얀 실내화는 빨간색 실내화 주머니에 넣고 다녔고 어쩌다가 책상 중간에 금을 넘어온 짝꿍의 연필이나 지우개의 주인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곤 했다. 하루 중에도 수없이 뺏기고 뺏는 문구 약탈전이 벌어졌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직접 손으로 하는 작업 중에 글쓰기와 그림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문구는 베프 이상이었다. <작지만 반짝반짝>의 저자도 나와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문방구 앞에서는 설렘에 얼굴이 붉어지는 소녀의 모습은 영락 없이 나였다. 문구덕후로서 동질감을 느낀 나는 그녀의 문구 사랑법이 궁금했다.

어린 시절의 꿈이자 좋아했던 것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마음을 담아 '리멤버 유어 걸후드'라는
슬로건을 만들고 내가 만든 문구에 넣었다. p24

쭈뼛쭈뼛 문방구 안을 몇 시간이고 서성이던
어린 시절의 나는 문방구 사장이 되었다.
한없이 어설프고 엉뚱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애틋이 품고 살다 보니 전혀 상상도 못한
어른이 되었다. p180

대학 졸업전에 디자이너로 취업한 저자는 그림이 그리고 싶어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프리랜서로서 길을 가게 되었다. 어릴 적 일기장 속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결국 문방구 주인이 되었다. 일러스트로서는 여러 기업과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하고 개인사업자로서는 이공 일러스트 굿즈 브랜드인 '스탠더드 러브 댄스'를 운영하고 있다.

내 마음이 제일 많이 애탔고 또 두근거렸던 곳,
바로 문방구다.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결핍'이라는 감정을
경험하게 되었다. p22

그랬다. 그건 결핍이었다. 갖고 싶지만 모두 갖지 못하고, 문구 캐릭터만큼 이쁘게 그려내고 싶었는데 되지 않는, 모두 소유할 수는 없다는 가르침을 준 곳이 문방구였다. 반지 사탕과 각종 불량식품들의 유혹에도 매서운 엄마의 눈초리에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하고, 이쁜 색칠공부도 많은데 한 가지만 선택해야 했다. 분명 어린 나도 작가처럼 크면 문방구 사장님이 되고 싶을 것이다. 

저자를 설레게 했던 캐릭터는 콩콩이, 발렌타인, 소담이라는데, 내가 기억하는 캐릭터는 디즈니 캐릭터와 일본 캐릭터인 키티, 스머프, 국내 문구 캐릭터는 금나래와 산머루(?), 머털도사, 둘리 정도이다. 역시나 옛날 사람이 되어가는구나. 얼마 후면 냉동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시대가 바뀌지만 문구 사랑의 공감은 여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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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감정과 생각보다는 일정을 기록하는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감정을 쏟아버렸던 흔적을 읽었을 때 분명 혼자였는데도 불구하고 귀바퀴가 터질 것 같은 창피함이 밀려왔던 기억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좋은 일보다는 우울했던 기록을 더 보기 싫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나 자신을 그대로 꺼내 본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기장 사용법을 바꾸기로 했다. 행복했던 일과 감사했던 일들로 채우기로, 시간이 지나 다시 읽었을 때 미소가 지을 나를 위해 오늘의 하루 중에서 행복을 찾아 기록하기로 했다.

사물을 허투루 보지 않았던 저자는 패키지도 모았다고 한다. 컬러, 작업시간, 패턴 등 디자이너의 생각을 전부 읽고 싶었다고 하니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것 같다. 쉽게 버려지는 것들 속에서 가치를 찾아낸다는 모토로 더 들여다 보 거 예리하게 찾아내려 했다고 한다. 그렇게 패키지를 모았다고 한다.
지금은 자제하고 있지만 포장지, 박스를 버리는 걸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마음에 든 것은 버리지 못한다. 화이트데이에 받았던 초콜릿을 감싸던 포장지를 묶어주던 작은 리본, 특히 리본을 잘 못 버리는 것 같다. 언젠가는 꼭 쓸 일이 있을 거하는 생각에 자꾸 모으게 되는 것 같다. 10년도 넘게 주인을 못 찾은 리본도 있다. 

<작지만 반짝반짝>는 문구 러버인 저자의 에세이로, 어린 시절의 추억과 소중했던 문구, 그리고 지금의 일을 하게 되기까지 수없이 자신을 들여다본 이야기들이 있었다. 솔직하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잘 드러난 글을 보며 조금 더 용기 내어 살아도 괜찮겠다고 나를 응원하게 되었다.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하루를 보내는 나에게 선물의 시간을 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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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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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드디어 읽어봅니다. 장르 소설계에서 유명한 미미 여사님을 영접하게 되어 기쁘네요. 
어떤 이야기로 저를 매료시킬지 무척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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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는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라고 합니다. 전작을 보지 못했지만 편집자 후기를 읽어보고 알게 되었어요. 탐정 시리즈 하면 허를 찌르는 추리력으로 쫄깃하게 읽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겠지만 스기무라는 기존 탐정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저 평범한 아재이죠.
몇 가지만 느낀 점을 공유하자면
▶아내의 불륜으로 이혼하고 딸의 친권은 포기한 채로 늘 금전적으로
쪼들리며 지낸다. 가엽다.
▶공감력이 뛰어나 툭하면 고객 앞에서 눈물샘이 터진다. 여리다
▶ 소름 돋게 추리를 잘하지는 않는다.
▶ 아줌마들하고 친하게 지낸다. (연령대가 다양한 여성들과 친하다)
위와 같이 미친 추리력을 소유한 건 아니지만 정이 간다고 할까요. 얘기를 잘 들어주며 끊임없이 추임새를 취하는 다정한 동네 언니 같은 느낌이에요.


이 책은 세 가지 단편을 엮었습니다.
'절대 영도', '화촉',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이 세 편의 이야기 속의 주요인물은 여성입니다. 피해자인 내용도 있고 가해자인 경우도 있습니다.

절대 영도 - 딸 유비를 조사해달라는 하코자키 부인의 의뢰가 들어온다. 예상치도 못한 자살기도 후에 병원 치료 중인 딸 유비의 면회를 강하게 거부당하고 있다. 자살 원인이 장모님이라며 면회를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면회는 보호자인 사위만 가능하도록 병원에 일러둔 상태.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하다고 핑계를 둘러대지만 수상쩍다. 하물며 주치의를 만나게 해달라는 것도 거절당했다. 하코자키는 유비가 걱정되어 눈물로 병원에 호소했지만 애석하게도 만나지를 못하게 된다.
모녀는 아주 친밀한 관계였고, 유비는 엄마인 하코자키에게 사소한 것도 의논하며, 많이 의지하는 공주님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하코자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딸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사사 도모키 그의 비밀은.....

화촉 - "우리 엄마가 스물다섯 살이고 사에코 이모가 스무 살이었을 때 엄마의 약혼자를 이모가 빼앗은 거예요."
25년 전 사키코의 결혼 당일 신랑이 사라졌다. 동생 사에코와 함께.
사에코는 예비 형부와 사랑에 빠져 임신 3개월인 상태였다. 그 후로 두 자매는 인연을 끊고 지냈다. 언니의 남자를 빼앗은 사에코의 신혼생활은 2년을 넘기지 못해 이혼했고 딸인 시즈카 씨가 세 살 때 미야사키와 재혼했다.
사키고는 절대 사에코를 용서할 수 없었다. 이런 사키코에게도 좋은 사람이 나타났고 늦은 나이에 결혼한다. 그리고 외동딸인 가나를 얻게 되었다. 가나는 어느 날 SNS를 통해 자신과 똑 닮은 사촌 언니의 시즈카의 존재를 알게 되어 부쩍 친해지게 되었고,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어 했다. 고집이 센 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동네 부인에게 동행을 부탁했고 그 자리에 스기무라가 보디가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 집주인 다카나카의 며느리 1호와 딸 아리사가 찾아와 트러블 메이커인 '구치다 미키'라는 여자가 찾아오면 무조건 일을 거절해달라고 부탁받은 스기무라.
얼마 후 구치다 미키가 찾아왔다. 그녀와 전남편 사이에 태어난 아들 류세이가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했고 현재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고 한다. 스기무라는 역시 거절 못 하고 일을 맡게 된다. 조사하면서 미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게 되고 그녀의 몰상식한 행동에 피해자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경박하고 사치스러운 미키에게는 연년생 여동생 미에가 있다. 그녀와 달리 정숙하며 차분한 스타일이었다. 연락이 안 되는 미키에게서 울렁거림을 느끼는 스기무라.. 과연 미키는 어떻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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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괴로운 과거라도 그건 당신의 역사예요.
어제의 당신이 있기 때문에 자금의 당신이 있고,
당신의 내일이 있는 거예요.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행복한 미래로 가는 길은 열리지 않아요. 461p

책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글귀였습니다.
200페이지가 넘는 '절대 영도'를 시작하여 세 편 다 속상한 마음으로 읽었지만 사키코와 사에코, 미키와 미에... 이 두 자매들의 이야기는 무척 마음이 아팠어요.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은 자들의 말로가 선명하게 그려졌습니다. 그녀들의 딸을 지켜보며 자주 만나지 못하는 자신의 딸을 그리워하는 스기무라도 가여웠습니다. 

탐정 데뷔를 한지 얼마 안 된 스기무라는 주로 오피스 가키가라에서 하청 받는 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어요. 초보 탐정이라서 이번에는 큰 사건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네요. 피칠갑하는 스릴러 소설은 아니었지만 인간미가 느껴지는 탐정 덕분에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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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순정 - 그 시절 내 세계를 가득 채운 순정만화
이영희 지음 / 놀(다산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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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1학년, 통통한 볼살에 가느다란 눈, 주근깨가 많았던 혜선이는 나와 절친이 되었는데 얼마 후 혜선이가 친했던 영화라는 아이도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우리 셋은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어서 하굣길에도 붙어 다녔다. 서울 출신이었던 영화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을 왔는데 그때 혜선이와 친해졌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우리와 분위기가 달랐다. 왠지 세련된 것 같기도 하고 그 애가 좋아하는 것은 왠지 멋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어느 날 영화가 만화방에 가보자고 우리를 꼬셨는데 조금 고민하다고 그 날로 우리 셋은 만화방 죽순이가 되었다. 그 시절에 만화방은 날라리 또는 양아치들이 다니는 곳으로 착한 학생은 금지구역이어서 잠깐 고민했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그다지 위험해 보이거나 불량해 보이는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물며 담배 피우는 아이도 없었다. ㅋㅋㅋ
그리고 순정만화와 열애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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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보는 순간 삼십 년 전의 우리들이 떠올랐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 아니 핑계 중에 하나는 버스정류장 바로 뒤에 위치한 만화방이었다는 것. 그리고 만화방 주인 언니의 라면요리 솜씨는 기똥찼고, 음악 선별도 어쩜 내가 보는 만화의 흐름에 맞는 것을 틀어주는 것이 완전 능력자였다. 긴 머리에 청순한 외모 덕분에 남학생 손님도 제법 많았던 것 같다. ㅋㅋ

<안녕, 나의 순-정>의 이영희 저자는 어린이 시절부터 「굿바이 미스터 블랙」을 시작으로 대부분 만화로 독서 목록을 채웠다고 한다. 어느 한 장르만 편애하지 않고 시대물, SF, 코믹, 가족물 등 여러 장르를 섭렵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재밌게 읽었다.
순정만화는 사전적으로 볼 때는 순수한 감정이나 애정을 표현하는 만화라고 한다. 순수한 감정이 사랑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다종다양한 장르를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여성 팬층이 막중하다는 건 인정한다. 보통의 남성은 대놓고 순정만화를 읽지는 않는다. (집에서 볼 수도 있지만 검증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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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작들의 줄거리와 저자의 애정 하는 캐릭터, 그 시절의 저자의 추억과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책을 나는 진정 아껴가며 읽었다. 격정적인 정서에 들쑥날쑥했던 성적표를 받고 세상을 비판했던.. 공부도 쥐뿔 하지도 않고 불만투성이였던 어린 이키다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금 생각하면 무지하게 창피하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었으니까. 그 시절에는 저 혼자만 진지한 생쇼를 다 하지 않나. ㅋㅋㅋ

'나는 소싯적 만화잡지 좀 봤다'거나 '댕기, 윙크, 화이트, 이슈 등을 알고 있다'면 <안녕, 나의 순-정>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어린 나와 친구, 그리고 추억을 만나볼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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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도르래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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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행위가 비교적 적으며, 끝 맛도 깔끔한 미스터리를 코지 미스터리라고 한다. 일본 코지 미스터리의 여왕이라고 알려진 와카타케 나나미 작가는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로 유명하다. 하무라 아키라는 여탐정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조사 과정이 순탄하지 많은.. 아니 항상 위험과 사고가 함께하여 피곤과 고질병을 달고 사는 게 일상인 인물이다. 여탐정이 주인공인 미스터리 소설은 처음이라 흥미가 생겼다. 수입보다 치료 비용이 더 많이 들어 늘 불경기인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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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매일 선택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시 선택한다. 선택한 끝에 일어난 일에 대해 혹자는 자신의 선택을 칭찬하고, 혹자는 후회한다. 그리고 다시 선택한다. p.6 


우와. 첫 문장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만발이었다. 사실 <녹슨 도르래>가 나에게 오기 전에 <조용한 무더위>가 집에서 방치되고 있었다.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의 순서를 확인하니 <조용한 무더위>가 먼저라서 읽어보았다. 5개의 사건 속에서 아키라를 보면서 ' 아! 정말 아프겠다', '좀 쉬자! 쉬어, '아키라를 그만 좀 괴롭혀' 하며 과몰입이 버렸다. 어떤 사건도 쉽게 해결되지 않았고 그녀를 둘러싼 인물도 하나같이 별로였다. 음.. 맞아, 진상!이라는 표현이 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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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무더위>를 읽고 바로 <녹슨 도르래>를 들었다. 이번에는 하나의 사건을 다룬 장편 소설이었다.
도토리종합리서치의 사쿠라이의 하청을 받은 일은 부잣집 도련님의 바람난 어머니를 조사해달라는 것. 조사대상인 이사와 우메코의 뒤를 밟다가 동창생과 싸우던 우메코가 계단 위에서 떨어지면서 아키라를 덮치게 된다. 아키라를 쿠션 삼았던 우메코는 부상이 거의 없어 그 자리서 일어나 저 멀리 사라졌지만, 그다음 같은 높이에서 떨어진 다른 할머니 아오누마 미쓰에는 그대로 바닥에 추락해 크게 다치게 되었다. 아키라의 얼굴도 본인의 피로 물들고 있었고 구급대원은 두 여성을 싣고 병원에 간다. 


하청을 줬던 사쿠라이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니 미쓰에가 고소하지 않도록 중개인이 되어달라는 다른 임무를 받게 된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아키라는 미쓰에의 연립에서 지내게 된다. 미쓰에의 가족은 히로토라는 손자가 유일하다. 7개월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아들을 읽고 손자는 몸이 불편한 상태로 재활치료를 아직 받고 있었다. 며느리는 손자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다른 사내와 정분이 나서 사랑의 도주를 하고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히로토는 사고직전의 기억을 일부 잃은 부분기억상실 환자이기도 하다.


백곰 탐정사의 탐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히로토는 아키라에게 교통사고 당일에 자신이 왜 아버지와 함께 스카이랜드 역 앞에 있었는지 알아봐달라고 의뢰를 했다. 그리고 살인곰 서점의 직원으로서 아버지의 유품인 책을 처분해 주기를 원했다. 


유품정리업체가 오기 전날 히로토의 방에서 화재가 일어났고 그 불쌍한 청년은 숨을 거둔다. 너무 많은 일들이 아키라 앞에서 벌어졌다. 연립의 화재로 의뢰인은 사망했고 미쓰에는 생명이 아슬한..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된 상황. 아키라는 계속 조사해보기로 하는데....

 


커피가 나왔다. 런치 타임 동안 보온기 위에서 게으른 잠을 자던 커피였다. 미적지근한 환경에 오래 있으면 알싸한 맛이 난다. 커피도 인간도. p.283

 


버라이어티한 그녀를 쫓아 읽어가는 중에 곳곳에 이런 문장들을 발견할 때면 어깨가 쑤욱 내려갔다. 어쩜 표현이 내 마음에 쏙 들어오는지. ㅋㅋ 정말 매력 있다. 히로토를 둘러싼 사람들 속에 진짜가 있었는데 끝까지 모르고 사고사를 당한 그가 너무 불쌍했다. 그녀의 신분을 밝혔다면 히로토는 조금이라도 기운차리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물이 많이 등장하여 집중하고 읽어야 했다. 초반에 나왔던 인물이 후반에 다시 나올 수 있기에 기억에 끈을 놓치지 말기를 권한다. 그리고 살짝 로맨스가 있는데 감초라고나 할까..ㅋㅋ 하무라 시리즈가 올해 NHK 드라마로도 제작이 되었다고 한다. 영화로도 만나보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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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크족 다이어리
곰토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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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일러스트를 보며 무한 동질감을 느꼈다. 어쩜 '우리집과 똑같을까' 했는데 달랐다. 서로의 바운더리를 지켜가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의 부부는 우리와 비슷하면서 조금 달랐다.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칭하는 딩크족에 관한 책이라서 관심이 컸다. 지금의 우리 부부가 '못하는'에서 '않는' 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맞장구쳐 줄 친구가 필요했던 것 같다. 


저자는 네이버 블로그 곰킨스♥토킨스 부부의 공간을 운영 중이며 취미로 부부툰을 그리고 있다. 곰킨스, 토킨스 둘의 앞자를 따서 ‘곰토’를 필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캐릭터가 동글동글한 게 너무 귀엽다. 자세한 연령 정보가 없지만 책을 보니 대략 20대 후반인 것 같다. 젊은 나이에 딩크를 선택하기까지 고민과 과정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아이를 선택한 사람과 딩크, 누구도 우위에 있지 않다. 다만, 딩크로 살기로 결정했다면, 또는 아이를 낳기로 결정할 때에는 본능에 따른 나 자신과 본능 너머의 나 자신에 대한 파악은 확실히 하고 결정했으면 한다. (중략) 딩크로 살게 될 당신이 마주하게 될 가장 큰 오지랖은 '본능'이다. 적은 내부에 있다. / p32


모성본능에 대한 내용이었다. 저자도 나처럼 아이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타입이어서 갈등 또한 많았을 것 같다. 성인이 되면 취업, 결혼, 출산, 육아 순으로 인생이 정해져서 취업이 늦어진다는 둥, 결혼이 늦어진다는 둥 잔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 더 조바심이 들었다. 결혼하면 건강한 몸을 만들어 임신하는 게 목표였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저자의 배우자처럼 우리 남편도 출산에 대해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라는 의견 아닌 의견을 주어서 속상했었던 날이 많았다. 생각해보니 '지금도 난 좋아'라는 고마운 말을 들어놓고도 자격지심에 남편을 더 힘들게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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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성격도 있었지만 '장남' 또는 '장녀'라는 타이틀은 타고난 성격에 굴레를 씌웠다. 그에 대한 반작용인지, 우리는 책임감이 강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책임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취약한 완벽주의자가 되었다. /p.57



장남과 장녀. 우리 부부의 타이틀이다. 우리는 첫째의 무게감을 알기에 배려를 많이 하는 편이고 또한 첫째라서 부리지 못한 어리광을 서로에게 가끔 하곤 한다. 아이는 '네가 알 수 없었던 행복을 안겨줄 거야', '00는 내가 사는 이유 자체이고 나의 분신이야.' 알고 싶은 행복이면서도 두려운 행복이었다. 엄마라는 숭고하면서 위대한 역할을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혹시라도 나보다 더 허약한 아이를 만나게 되면 살아가는 내내 죄인이라는 족쇄로 나를 괴롭힐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20년 전에도 했던 이 생각은 더 커져만 가는 것 같았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서 아이가 와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딩크족이라고 확신을 하지는 못한다. 다만 우리 둘만으로도 시간을 행복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실제로 그러하니까. 지금이 난 좋다. 어떠한 선택이든 그에 선택에 모두 존중해 주고, 나와 다르니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최선을 다하고 행복하면 그만이다. 나와 같은 고민에 힘들어할 독자들이 읽어주면 좋은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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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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