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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도키오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0년 4월
평점 :
작가가 되고 가장 즐겁게 써 내려간 소설이라고 소개한 <아들 도키오>를 만났다. 제목은 아들 도키오지만 아들 도키오가 아버지 다쿠미의 삶에 끼어드는 내용이다. 그것도 타임슬립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의 매력에 도취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장르의 소설을 읽는다는 설렘에 다쿠미를 더 빨리 만나고 싶었었다.
원제는 <도키오>로 2002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08년에 발간되었다. 신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역시나 히가시노덕후님들은 이미 읽으셨다고 하셔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으로 숨 쉬는 것도 어려운 19세 청년이 각종 의료 기구에 의지한 채 병실에 누워있다. 이제는 듣는 것도 불가하며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아버지 다쿠미는 결심을 하고 아내에게 고백한다.
"옛날에 나는 도키오를 만났어."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은 뇌신경이 차례대로 죽어버리는 병으로, 어릴 때는 무증상으로 자각하지 못하고 십 대 중반을 경계로 증상이 나타난다. 먼저 운동신경이 무뎌져 손발을 움직이기 힘들다가 서서히 장기 기능 저하되면서 의학적인 도움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해지다가 뇌기능까지 정지된다. 안타깝게도 유전성 질환인 이 병은 다쿠미가 사랑하는 레이코의 가족 이야기이다.
다쿠미의 프러포즈로 레이코는 결혼하지 못하는 가족의 저주를 말해주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절대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평생 독신이라는 레이코의 마음을 꺾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러다 레이코는 임신을 한다. 수술을 결심했지만 역시나 다쿠미는 아들과의 연도 지켜냈다. 그에게 들렸던 청년의 목소리.
"내일만이 미래가 아냐"라고 말하던 어떤 청년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던 것이다.
중학교 졸업 직전에 발현된 관절통과 비슷한 통증부터가 시작이었다. 19세가 된 도키오는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레이코에게 못했던 도키오와의 만남을 고백하며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 소설은 19세의 도키오가 시간을 거슬러 내려가 23세의 아빠 다쿠미를 만난다. 철없는 아빠를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게끔 독려하면서 부모와 자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레이코는 도키오에게 묻고 싶었다.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 행복했는지 아닌지. 우리를 원망하지는 않는지..."
레이코가 듣고 싶었던 대답은 다쿠미는 알고 있었다. 과거에 자신을 찾아와 준 19세의 도키오를 통해서 말이다.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던 도키오는 책을 읽으며 많은 성찰의 시간을 가진 듯하다. 23세의 철없는 아빠에게 인생에 대한 진리와 철학적인 내용을 멋지게 던진다. 철없기보다 한탕주의 망나니에 가까운 다쿠미에게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도키오가 미래에서 온 자신의 아들임을 듣게 된 순간의 다쿠미.
아사쿠사 하나야키 놀이공원에서 어렵게 과거의 아빠를 재회한 도키오를 표현한 구간부터 나는 뭉클했다. 그리고 친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다쿠미의 오해를 풀고자 노력하던 도키오의 마음도 너무 이뻤다. 초반에 아빠를 형이라고 부르는 도키오가 안쓰러웠고, 그 후의 두 남자의 캐미가 너무 좋았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다시 한 번 말했다.
˝여러 일이 있었지만, 당신 탓이 아니에요.
내 인생이니,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에요.
더는 당신 탓으로 돌리지 않겠어. 그 말이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하나 더.
나를 낳아줘서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_p435 다쿠미가 스미코에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력은 쉽게 읽히지만 감동 드라마와 미스터리를 어색하지 않게 환상 조합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고 본다. 첫 만남에 아빠는 세상에 불신이 가득찬 망나니고, 생각 못 한 아빠의 여자친구 지즈루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지즈루의 실종으로 두 남자가 찾아 나서며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린다. 판타지와 추리, 드라마적인 요소들이 자연스러운 연결, 막힘없는 가독성, 굉장한 몰입도는 히가시노가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넘나들며 다작하는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내일만이 미래가 아냐. 그건 마음속에 있어.
그것만 있으면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어.
그걸 알았기에 당신 어머니는 당신을 낳은 거야."
_p396 도키오가 다쿠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