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도키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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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되고 가장 즐겁게 써 내려간 소설이라고 소개한 <아들 도키오>를 만났다. 제목은 아들 도키오지만 아들 도키오가 아버지 다쿠미의 삶에 끼어드는 내용이다. 그것도 타임슬립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의 매력에 도취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장르의 소설을 읽는다는 설렘에 다쿠미를 더 빨리 만나고 싶었었다. 


원제는 <도키오>로 2002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08년에 발간되었다. 신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역시나 히가시노덕후님들은 이미 읽으셨다고 하셔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으로 숨 쉬는 것도 어려운 19세 청년이 각종 의료 기구에 의지한 채 병실에 누워있다. 이제는 듣는 것도 불가하며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아버지 다쿠미는 결심을 하고 아내에게 고백한다.

"옛날에 나는 도키오를 만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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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우스 증후군은 뇌신경이 차례대로 죽어버리는 병으로, 어릴 때는 무증상으로 자각하지 못하고 십 대 중반을 경계로 증상이 나타난다. 먼저 운동신경이 무뎌져 손발을 움직이기 힘들다가 서서히 장기 기능 저하되면서 의학적인 도움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해지다가 뇌기능까지 정지된다. 안타깝게도 유전성 질환인 이 병은 다쿠미가 사랑하는 레이코의 가족 이야기이다. 


다쿠미의 프러포즈로 레이코는 결혼하지 못하는 가족의 저주를 말해주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절대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평생 독신이라는 레이코의 마음을 꺾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러다 레이코는 임신을 한다. 수술을 결심했지만 역시나 다쿠미는 아들과의 연도 지켜냈다. 그에게 들렸던 청년의 목소리.
"내일만이 미래가 아냐"라고 말하던 어떤 청년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던 것이다.


중학교 졸업 직전에 발현된 관절통과 비슷한 통증부터가 시작이었다. 19세가 된 도키오는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레이코에게 못했던 도키오와의 만남을 고백하며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 소설은 19세의 도키오가 시간을 거슬러 내려가 23세의 아빠 다쿠미를 만난다. 철없는 아빠를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게끔 독려하면서 부모와 자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레이코는 도키오에게 묻고 싶었다.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 행복했는지 아닌지. 우리를 원망하지는 않는지..."
레이코가 듣고 싶었던 대답은 다쿠미는 알고 있었다. 과거에 자신을 찾아와 준 19세의 도키오를 통해서 말이다.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던 도키오는 책을 읽으며 많은 성찰의 시간을 가진 듯하다. 23세의 철없는 아빠에게 인생에 대한 진리와 철학적인 내용을 멋지게 던진다. 철없기보다 한탕주의 망나니에 가까운 다쿠미에게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도키오가 미래에서 온 자신의 아들임을 듣게 된 순간의 다쿠미.

아사쿠사 하나야키 놀이공원에서 어렵게 과거의 아빠를 재회한 도키오를 표현한 구간부터 나는 뭉클했다. 그리고 친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다쿠미의 오해를 풀고자 노력하던 도키오의 마음도 너무 이뻤다. 초반에 아빠를 형이라고 부르는 도키오가 안쓰러웠고, 그 후의 두 남자의 캐미가 너무 좋았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다시 한 번 말했다.
˝여러 일이 있었지만, 당신 탓이 아니에요.
내 인생이니,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에요.
더는 당신 탓으로 돌리지 않겠어. 그 말이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하나 더.
나를 낳아줘서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_p435 다쿠미가 스미코에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력은 쉽게 읽히지만 감동 드라마와 미스터리를 어색하지 않게 환상 조합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고 본다. 첫 만남에 아빠는 세상에 불신이 가득찬 망나니고, 생각 못 한 아빠의 여자친구 지즈루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지즈루의 실종으로 두 남자가 찾아 나서며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린다. 판타지와 추리, 드라마적인 요소들이 자연스러운 연결, 막힘없는 가독성, 굉장한 몰입도는 히가시노가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넘나들며 다작하는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내일만이 미래가 아냐. 그건 마음속에 있어. 
그것만 있으면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어. 
그걸 알았기에 당신 어머니는 당신을 낳은 거야."
 _p396 도키오가 다쿠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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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새의 비밀 - 천재변리사의 죽음
이태훈 지음 / 몽실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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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리사 辨理士, patent attorney

지식재산권의 전 과정을 대리하거나 감정하고, 관련된 전반적인 사무를 담당하는 전문직 자격 또는 자격을 갖춘 사람. 산업재산권의 분쟁사건 대리, 심판의 심결에 대해 소제기를 할 때의 대리, 권리의 설정 대리, 산업재산권의 자문 또는 관리 업무 등을 담당한다. _출처 다음 백과 


<산호새의 비밀>을 읽기 전에는 변리사라는 직업을 알지 못했다. 대한민국 특허 정보 1세대 출신인 작가의 경력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특별한 소재에 특별한 직업을 가진 주인공들에 어쩌면 몰입도가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읽기 편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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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랑이도 살고 도 사네

강민호는 조심스레 골목 안쪽으로 한 발 다가갔다. (중략)
그때 멀리 누군가 쓰러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 속으로 한 걸음 더 내딛었다. /p18
서울 강남역 1번 출구 골목 안쪽에서 변리사 송호성이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환경미화원에 의해 발견되어 신고되었고 날카로운 칼에 찔려 출혈 과다고 사망했다. 김택근 반장은 가장 친한 친구였던 강민호 변리사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찍었다.
강민호는 단기 기억상실증으로 명확한 알리바이 성립을 불가한 상태였다. 감당하지 못할 상황에 뇌는 주인의 생존을 위해 해당 기억을 잠근다. 강민호는 골목에서 무엇을 봤을까. 아니면 무엇을 했을까.

김택근 반장의 추리를 신뢰하지 않았지만 강민호의 부분 기억상실과 몇 가지의 단서로 잠시 혼란스러웠다. 강민호는 목격자일까. 가해자일까라는 생각까지 미쳤다.
송호성의 꾸린 소나무 변리사 사무소의 직원들은 모두가 송호성의 죽음을 애도했다. 송호성은 직원들에게 믿음직한 오너였고 가족 같은 사람이었다. 송호성이라면 일하는 게 행복하다고 했던 동료들이었다. 모두가 슬픔으로 넋을 잃고 있는 중 이성을 잃지 않고 처리 중인 일의 마무리에 매진하는 사람이 있었다. 막 수습에서 벗어난 선우혜민 변리사는 회사 건립 이후 수습은 채용하지 않았던 송호성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천재였다. 그녀는 송호성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열심이었다. 

사망한 송호성의 빈 집에 누군가 침입했고 얼마 후 선우 혜민의 집도 털렸다.
이 두 사람에게 그들은 무엇을 찾으려 했을까.




요즘은 잘 나오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산업기밀을 경쟁사에 팔아 이윤을 챙기는 산업스파이가 드라마 소재로 자주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최초로 누가 먼저 신기술을 공표하느냐는 업계에 일인자로 자리매김하는 아주 중요한 이슈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산업재산권의 분쟁 소송이 존재하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변호사는 전문지식을 갖춘 변리사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산호새의 비밀>에서의 선과 악에 대한 캐릭터가 분명했다. 그렇게 궁금했던 송호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선우혜민을 신입으로 채용했던 이유가 마지막에 밝혀진다. 드라마와 추리를 콜라보 한 이 소설은 참 매력 있게 다가왔다.
더러운 거래가 이루어지는 은밀한 식당 골목에서 벌어졌던 살인사건, 퇴락한 국정원의 등장했던 이 소설의 내용은 정말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은 더 큰 곳으로 향해가고 너무나 위험할 수 있는 사건의 전개로 한시라도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소설을 많이 접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 이런 거대한 소설이 있다는 사실에 감명받았다. 작가님의 후속작이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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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생활 도구 - 좋은 물건을 위한 사려 깊은 안내서
김자영.이진주 지음 / 지콜론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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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문구점에서 전동 지우개를 보며 '라떼는 말이야'가 절로 나왔다. 어디서 저런 기똥찬 생각을 했을까+요즘 애들은 좋겠어~라고 말이다.
생활용품점만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이쇼핑을 하곤 한다. 혼이 나간 채 바구니를 들고 한 시간 이상을 돌아다녔지만 막상 구매는 한두 개 정도만 하게 된다. 무분별한 소비는 쓰레기를 만든다는 것을 몇 번 겪고는 눈 호강을 실컷 하고 정말 필요한 물건만 사게 되는 것이다. 어떤 물건이 좋은 물건인지에 대한 고민을 줄여보고 싶었는데 마침 적합한 책을 만났다.

<월간 생활 도구>라는 책 제목은 매달 출간될 것 같은 착각을 부르지만 한 권으로 끝나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김자영과 이진주는 함께 상점 카탈로그를 운영하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좋은 물건에 대한 저자들의 철학과 애정의 결과는 <월간 생활 도구>로 태어났다.
12개월로 목차를 나누고, 월마다 주제를 정하여 주제와 부합한 생활용품을 소개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어쩌면 리빙 잡지로 머물 수도 있는 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목차만으로 오해가 풀렸다. 계절을 반영한 낭만적인 제목 속에 도구는 컬러와 디자인, 편리성, 도구의 역사 등 흥미로운 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예를 들어 February(그리운 시절), March(기록의 가치), May(초대하는 날), September(글 읽는 밤) 등등 감성적인 소제목에 텐션이 살짝 오른 상태에서 글을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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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시절- 휴대전화
독일어로 마침표 혹은 점을 뜻하는 풍트는 기술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음에 대한 고민을 담아 시계, 전화기, 충전기 같은 전자 제품을 만드는데 2018년 통화와 문자, 일정 등 최소 기능만 하는 휴대 전화 MP 02를 출시했다고 한다. 유치원생들도 사용이 보편화된 스마트폰이 대세인 요즘에 역순하는 제품이었다. 

늘 누군가와 연결된 우리의 삶이 피로하지는 않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어느 먼 곳의 누군가와 '좋아요'로 하는 소통에 마침표를 찍고 가까운 지인과 목소리로 대화하는 것은 어떨지도 말이다. p.51

길을 걸을 때도 친구와 커피숍에 있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지인을 보며 서운함을 느낀다. 눈을 보고 말하고 싶은데 그들의 눈은 폰에 가있으니 대꾸를 한다고 해도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한 뉴트로 제품 풍트의 MP 02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 줘서 단종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록의 가치 - 10 Years Memo
오늘을 회상하고 동시에 내년의 오늘을 상상할 수 있다. 쓰지 않는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기록의 기쁨이다. p71

2012년 일본의 편집자이자 디자이너인 도츠카 야스오가 고안한 십 년 다이어리는 십 년이라는 시간 속에 하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구성이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메모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두 눈이 번쩍이는 제품이었다. 한 페이지에 10년의 내용을 단박에 확인할 수 있다니~! 상당히 두껍겠다고 생각이 들겠지만 도츠카의 일기장의 하루치 쓸 공간은 세 줄 정도여서 부담스럽지도 않을 것 같았다. 검색해보니 국내에도 10년 일기장이 있어 구매해서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하루의 작은 흔적을 몇 년 후에 한꺼번에 봤을 때의 감동을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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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뚜껑 따개
덴마크 엔지니어 헬게 브릭스 한센은 관절염을 앓고 있는 여든의 어머니를 위해 병따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세계 최초로 병뚜껑을 살짝 들어 올리는 방식의 유리병 뚜껑 따개를 만들어 1995년 특허를 받았다. 그 후로 다른 디자이너들이 재질과 형태를 변경해 무게와 가격을 낮췄다고 한다.
손에 땀이 나 미끄러워서인지 뚜껑 부분에 쨈이 굳어서인지 도통 열리지가 않던 뚜껑과 씨름을 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손쉽게 열 수 있는 도구가 있다.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그들의 노력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사람을 향한 애정이 도구를 완성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된 셈이다. 그보다 가치 있는 인생이 있을까.


<월간 생활 도구>에서 소개된 마흔여섯 가지 생활 도구의 이야기는 금세 읽힌다. 진귀한 물건만 나열한 정보 집이 아닌 테마별로 엮은 에세이집 같은 느낌이었다. 계절별로 정리된 도구의 쓰임새와 향기에 흠뻑 젖는 시간으로 채워졌고, 익숙한 도구의 역사와 에피소드 등은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별거 아닌 물건에도 찐한 사연이 있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앞으로 도구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질 것 같다.
빛의 여러 색을 섞으면 흰색이 되듯, 다양한 도구를 담은 이 책의 표지도 순백색으로 정한 것도 감각적이다. 건축학교를 함께 다녔던 저자 두 명이 집필했다고는 생각이 안들 정도로 통일된 분위기의 글과 내용에 편안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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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일기 - 윤자영 장편소설
윤자영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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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품고 쓴 절망 일기가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었다.




청덕 고등학교 3학년 5반 담임 홍서린은 쉬는 시간 휴대폰에 부재중 3통을 확인하는 동시에 다시 동일한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게 된다. 5반 학생 이승민의 아버지라고 소개하는 남자는 이승민의 교우관계와 4월 25일에 학교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데 홍서린은 이승민을 기억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없는 듯 조용한 녀석이었는데 4월 25일 감기로 조퇴를 허락해 준 학생이다. 별일 없었음을 전하니 아버지는 따로 만나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승민이 자살시도를 했는데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승민의 아버지 이달수는 군인으로 평생을 규칙과 규정으로 살아왔고 가정의 문제는 없다고 믿기 때문에 분명 학교 문제라고 의심하지만 홍서린은 이해할 수가 없다. 교사로서 승민이와 대화를 하고자 했지만 아버지는 일체 비밀로 붙여달라고 하지만 그래도 사명을 다해 지켜보기로 했다.
5월 초 충덕 고등학교에 학생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도 살해. 

3학년 1반 공승민 학생의 후두부로 벽돌을 가격한 살해라는 소문은 벽돌 살인마라고 sns로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이른 아침 교무실에선 중부 경찰서의 두 형사와 함께 긴급회의가 열렸다. 단순 퍽치기인지, 원한을 산 살해인지는 부검을 해봐야 확정이 되겠지만 그전에 학교에서 조사를 하려고 출동한 것이다.
더구나 아들의 시체를 확인하는 순간부터 공승민의 엄마는 이승민이라고 주장하며 오열하는데 둘이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범인은 누구이며 어떤 사연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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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에서 그것을 말하고 싶었다.
부족함 없이 무엇이든 해주는 부모가 완벽하지는 않다는 점.
학생 개개인은 너무나 소중해서 한 명이라도 소외되는 학생이 없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부디 희망의 학교가 절망의 학교로 느껴지는 학생이 한 명도 없기를 희망한다. _작가의 말 중에서




 개인보다 우선하는 집단주의 문화인 한국에서의 왕따들은 외줄 타기 하는 것처럼 정서가 늘 불안하다. 직장 생활을 하는 어른마저도 따돌림으로 자살하는 현실에서 학교라는 사회에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을 아이들의 행동 결과는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방과 후 지옥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집이라는 곳도 다른 지옥이라면? 살아갈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중학교 때부터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공승민은 이승민을 괴롭혀왔다. 당하고만 있던 이승민이 단 한 번 도발한 사건은 피해자였던 이승민을 가해자로 낙인찍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냥 맞아주던 이승민의 공격을 예상하지 못한 공승민은 그대로 공격을 받아 입안이 찢어지고 치아까지 상실되었다. 누가 봐도 외관상으로는 피해자로 보였고, 영악한 공승민은 그동안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학교도 부모님도 이승민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학교의 요청으로 전학을 가게 된 이승민은 잠시 지옥에서 벗어났으나 원사인 아버지는 정신교육이라는 전제하에 이승민에게 군장을 매고 운동장을 돌게 만들었고 그 후로도 작은 실수에도 무거운 군장을 매고 운동장을 돌게 만들었다. 성장판을 눌러서 인지 이승민은 또래에 비해 키가 자라지 않았다. 그런데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나게 된 공승민의 체격은 더욱 커졌다. 다시 지옥이 시작되었다. 

과학교사 출신의 작가의 특기를 살려 현실적으로 문제 되는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이 소설을 통해 알리고자 했다. 있을법한 이야기가 아닌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사회현상을 적나라하게 소설로 녹여냈다. 전형적인 학부형 갑인 공승민 어머니, 자신의 신념을 가족에게 강요하는 이승민의 아버지, 관계 회복의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던 이혼남 남용성 선생, 사랑이 죄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학생에 대한 집착과 편애를 남발했던 송나영 선생... 이들을 보고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공승민의 어머니를 보고 공승민은 치밀하게 쥐구멍을 만들며 이승민을 괴롭혔다. 학교에서는 괴롭힘을, 집에서는 억압을 받았던 이승민은 극단의 선택인 절망 일기를 썼다.




 한번 펼치면 멈춤 없이 읽어내려가는 <파멸 일기>의 흡입력은 대단했다. 가독성이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하지만 완독 후 여러 가지 생각 풍선 때문에 쉽게 독후감을 쓸 수 없었다. 한국, 학교, 청소년, 학부모, 선생님, 사랑, 삶 등 여러 카테고리는 정리한다는 것에 스스로 부담을 갖게 되었지만 어차피 프로 서평러가 아니기 때문에 두서없이 글을 쓰기로 했다.
쉽게 읽어지는 글이지만, 결코 마지막 장을 쉽게 덮을 수 없었던 <파멸 일기>는 다양한 세대들이 많이 읽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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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가는 유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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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가, 두 시간 간격으로 순간 이동을?"
s.f. 초능력이 주제인 이야기인가.
<서브머린>, <마리아 비틀>로 이사카님의 진가를 알게 된 이후 다시 만난 신간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앞 전에 캐릭터는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후가와 유가'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지진 않았다.
이사카님의 스토리텔링의 실력은 뛰어난 것일까? 특별한 것일까?
나는 <후가는 유가> 속으로 한 걸음 다가가기로 했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공유'였음이 틀림없다.
오직 그 무기 덕분에 살아남은 셈이다. 


두 시간 간격으로 태어난 유가와 후가. 첫째 후가는 차분하면서 부드러운 성격을 갖고 있는 반면에 유가는 거칠고 말보다 행동이 앞선 아이다. 한 뱃속에서 자란 쌍둥이 형제의 성격은 외모만 같을 뿐, 성격과 특기는 동전의 앞뒤처럼 달랐다. 


폭력을 휘두르고 고함을 지르는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복종을 하며 스스로를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어머니, 좁고 허름한 집, 늘 똑같은 식사와 똑같은 옷, 둘이 나눠 쓰는 학용품, 게다가 게임도 스마트폰도 없이 하루하루 살다 보면 기분이 암울해질 따름이다. 그런 생활이 기본이었던 우리에게 1년에 하루라고는 하나 남과는 다르게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정신적인 구원이었다. 


생일날 오전 10시부터 밤까지 두 시간 간격으로 서로의 위치가 바뀌는 기묘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유아기 때부터 어렴풋이 알아차린다. 365일 중 단 하루 형제는 시험을 하며 이 능력을 들키지 않도록 궁리를 한 덕분에 누구에게도 들킨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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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영상을 들이대며 유가에게 접근한 기자 다카스기와의 만남으로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는 후가를 돕기 위해 유가는 발가벗고 온몸에 기름칠을 한다. 아기였지만 순간 이동의 능력을 알고 있었는지... 어느새 둘의 자리는 서로 바뀌었고, 아버지는 손에 잡힌 미끄덩한 몸의 아기를 화장실에 패대기치며 폭력을 멈췄다. 그때부터 능력의 시작이라고 기억하는 후가는 다카스키에게 특별한 힘으로 얽힌 에피소드를 열거한다. 


"제 동생은 저보다 훨씬 터프합니다."


유가는 언제나 후가를 이렇게 소개를 한다. 신발 한 짝 같았던 쌍둥이 형제는 열다섯 살을 기점으로 떨어져 지내게 되는데 공부에 흥미가 없던 후가는 고철상 암굴 아주머니 가게에서 직원으로 일하게 되고, 유가는 불우한 가정 안에서 꿋꿋하게 학업에 매진했다. 비록 떨어져 지내지만 오히려 유대감은 깊어져 만나는 날에는 자신이 체험한 일과 얻은 정보를 이야기했다. 그러다 후가의 여자친구 고다마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녀의 오래된 불행을 직접 목격하게 되는데...




<후가는 유가>의 책 제목과 다르게 첫째가 유가이고 둘째가 후가인 이 소설은 다 읽은 후의 제목에 의미를 알 수 있었고, 곳곳에 복선이 깔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형제의 주변 인물 중 피해자들은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지 않고 체념하는 사람들뿐이다. 

쌍둥이 형제를 세상에 내어놓은 어머니마저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 맞고 있는 후가를 보며 한 숨만 쉬었다. 초등학교 동창 와타보코리는 히로오의 괴롭힘을 그대로 받아냈다. 가출했다는 소녀 또한 살인마에게 희생물이 되어 버렸다. 피해자는 아무런 힘을 쓸 수 없고 가해자의 잔혹함은 더욱 강해지는 세상에 살고 있는 쌍둥이 형제들은 필살기, 천사와 악마를 번갈아 보는 순간의 틈을 노려 악과 대응하려고 한다. 

인터뷰로 시작한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진행되는데 흥미진진했고, 재미의 절대 요소 반전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벌어졌다. 이사카 고타로는 자신의 초반 작품들의 독자 후기에 '슬프고 씁쓸하지만 읽고 나면 따뜻해진다'라는 느낌을 이번 작품에서 받은 것 같다고 자평했다고 한다. <후가는 유가>에서 이사카님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이사카 고타로 초반의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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