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맥도날드
한은형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전 '맥도날드 할머니'라는 인물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노숙인답지 않게 트렌치코트를 입고 매일 같이 맥도날드에 나타나 영자 신문을 읽는 모습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서 방송에도 나왔다고 한다. 나는 그 방송을 보지 못했지만 맥도날드 할머니라는 이름이 워낙 인상적이라서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봤을 때 읽어보고 싶었다. 아니, 알고 싶었다. 맥도날드 할머니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지금도 종종 회자되고 이렇게 소설까지 나왔는지 궁금했다. 


이 소설은 맥도날드 할머니로 알려진 실존 인물의 생애 중에서 언론을 통해 공개된 내용을 토대로 작가가 상상한 내용을 덧붙여서 완성되었다. 공중파 방송국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신중호 PD는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맥도날드 할머니에 관한 제보를 받고 취재에 나선다. 매일 밤 같은 시각에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정동 맥도날드에 나타나 음식을 주문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서 신문이나 책을 읽다가 새벽이 되면 사라진다는 할머니의 정체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맥도날드 할머니를 직접 만나보니 할머니보다 '레이디'라고 부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용하는 어휘나 행동하는 모습이 단정하고 우아했다. 이런 '레이디'가 벌써 7년째 정해진 주거지 없이 거리를 떠돌며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대학도 나왔고 직장 생활도 했다는 걸 보면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아온 게 분명한데 어떤 사연으로 인해 노숙인으로 전락했는지도 궁금했다. 자칫하면 자신도 늙어서 거리를 떠도는 신세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고 불안했다. 


한편 자신을 취재하러 온 신중호 PD를 만난 맥도날드 할머니는 자신의 고요하고 단조로운 일상에 모처럼 대화할 만한 상대가 나타난 것이 반갑고 즐겁다. 맥도날드 할머니로 알려진 1940년생 여성 김윤자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교회에서 만난 어느 집사님이 매달 보내주는 20만 원을 아껴 쓰면서 좋아하는 커피도 마시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케이크를 대접하기도 한다. 


밤에는 주로 맥도날드에 있다면 낮에는 일본문화원에서 오래된 일본 영화를 본다. 세상을 떠난 여배우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기도 하고, 과거의 꿈들과 현재를 비교하며 상념에 빠지거나 후회하기도 한다. 현실과 이상의 불일치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파멸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마담 보바리>, <안나 카레니나>가 떠오르기도 했다. 실존 인물의 삶을 매체로 재현하는 것의 윤리에 대해 고민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사들의 도시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41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해진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최근작들을 읽고 조해진 작가의 팬이 된 경우라면 이 책을 읽고 놀랄지도 모르겠다. 일단 내가 그랬다. 조해진 작가의 소설이 지금도 막 밝고 경쾌한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근작들을 읽으면 호의나 희망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는 편인데, 이 소설집을 읽고 나서는 단절이나 절망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떠올랐다. 작가님이 이 시절에 이런 분위기를 선호하셨는지 아니면 그 당시 한국 문학이 대체로 이런 분위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책에는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저자의 데뷔작 <여자에게 길을 묻다>를 비롯해 일곱 편의 중, 단편이 실려 있다. 2004년부터 2008년 사이에 쓰인 작품들이라서 (2024년인) 지금 읽으면 약간의 시차가 느껴질 수 있다. 폭력에 대한 묘사 면에서 특히 그랬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중에는 폭력이 일상의 배경처럼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소설이 몇 편 있다. 남자친구는 여자친구를 때리고, 아버지는 자식들을 때리고, 교사는 학생들을 때리고, 상사는 여직원들을 희롱한다. 다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이의를 제기하는 쪽이 이상해 보인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이런 야만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조해진 작가와 연결되는 작품들도 있다. 다섯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청년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강사의 이야기를 그린 표제작 <천사들의 도시>는 프랑스로 입양된 입양아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감독의 이야기를 그린 장편 소설 <단순한 진심>의 원형 같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결혼 이민을 왔으나 현재는 주방 가구점에 사는 신세로 전락한 고려인 여성이 나오는 단편 <인터뷰>는 폐업한 가구점에서 몰래 생활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여름을 지나가다>와 유사한 모티프를 지닌다. 


데뷔작 <여자에게 길을 묻다>에선 저자가 이 때에도 소통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은 거인증에 걸린 언어 장애인 여성을 데리고 속초로 향하는 '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나'는 8년 간 동거한 남자와 최근에 사별했는데,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사회에 나와 매일 같이 노동을 해야 했던 힘든 시기를 말없이 함께 견딘 그를 잃고 막막해 하는 상태다. '나'와 동행하는 거인증 여성은 때로는 당장이라도 버리고 싶은 짐 같고 때로는 존재만으로 의지가 되는 친구 같은데, 어쩌면 이는 목숨이나 인생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싶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달의 후쿠오카 - 행복의 언덕에서 만난 청춘, 미식 그리고 일본 문화 이야기 일본에서 한 달 살기 시리즈 5
오다윤 지음 / 세나북스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후쿠오카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방문하는 일본의 도시 중 하나이다. 그런 후쿠오카에서 여유 있게 한 달 정도 살아보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 일을 직접 해본 사람이 있다. 바로 <한 달의 후쿠오카>의 저자 오다윤 작가이다. 저자는 2023년 1월 18일부터 2월 19일까지 총 33일간 후쿠오카 한 달 (약간 넘게) 살기에 도전했다. 


이 책은 한 달 살기 시작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매일의 기록이 일기처럼 정리되어 있다. 한 달 살기를 계획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숙소가 아닐까 싶다. 일본에서 장기간 머물 수 있는 숙소 종류로는 먼슬리맨션, 유스호스텔, 게스트하우스, 캡슐호텔 등이 있는데, 저자는 일본의 고급형 캡슐호텔 체인인 '나인아워즈 하카타 스테이션'을 이용했다. 평균 1박 2만 5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호텔급 시설, 개인 라커룸, 투숙객 전용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저자는 도쿄대 대학원 연구생으로 유학했고 5년간 도쿄에서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일본어에 능통하고 일본 문화에도 해박하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연 배우 마쓰시게 유타카가 후쿠오카 출신이라든가,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 두 주인공이 후쿠오카로 짧은 여행을 떠났을 때 방문한 장소, 멘타이코(명란젓), 모츠나베(곱창전골) 등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음식들이 실은 한국 음식에서 유래했다는 점 등 다양한 정보를 알려줘서 재미있고 유익했다.


저자는 후쿠오카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 규슈에서 가까운 소도시(기타큐슈, 이토시마, 야나가와)나 다른 현(나가사키, 유후인, 벳푸)도 열심히 여행했다. 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여행지는 후쿠오카 주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근교 여행지라는 이토시마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 한가로운 해변의 풍경을 담은 사진을 보니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하와이'라는 저자의 찬사에 저절로 공감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입니다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일 일만, 앞날 일만 생각할 때일수록 그리움은 따뜻하다." <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입니다>는 일본의 에세이스트 겸 만화가 마스다 미리가 자신이 평소에 신경 쓰는 사소한 것들을 짧은 글과 만화로 소개하는 형식의 책이다. 책 초반에 감자 샐러드, 몽블랑, 아이스크림, 달걀 샌드위치 등 음식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 중 하나인 몽블랑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흥미로웠고, 달걀 프라이가 들어간 달걀 샌드위치를 선호한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할 뿐 미니멀리즘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지만 서점에 가면 정리정돈 책 보는 걸 좋아하는 것, 쾌적한 장소에서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을 때면 집 근처 무인양품에 들어간다는 것이 나와 똑같아서 신기했다. 타카라즈카 팬인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뭔가를 열광적으로 좋아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내가 내 장르의 찐덕후인 친구들 보면서 하는 생각이라서 웃겼다('나는 찐덕후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찐덕후라던데...). 


마스다 미리 책답게 옛날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저자는 고등학생 때 동네에 하겐다즈 매장이 처음 생겼고 무인양품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시급이 500엔이라고 해서 놀랐다(참고로 저자는 1969년생이다). 나는 2005년에 대학생이 되어서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시급이 3천 원도 안 되었건만. 80년대에 슈퍼 계산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구들은 계산기 치는 연습을 열심히 했다는데, 생각해 보면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슈퍼에서 계산기로 물건값을 계산했던 것 같다. 요즘은 슈퍼도 보기 힘든데... 


"아름다운 존재는 거리 곳곳에 있지만 어떤 사람은 "그게, 아름다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은 "어머나, 아름답네"라고 하겠죠. 나는 신호등이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것은 사거리 신호등이 전부 '빨강'이 되는 순간입니다. 파란색으로 바뀌기 전의 한순간. 다양한 사람의 작은 아름다움이 거리에 흩어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5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2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만큼이나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도 다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SF 소설집이다. 총 열한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이중 세 편은 '싱귤래리티 3부작'의 프리퀄 격인 '포스트 휴먼 3부작'이라서 한 번에 이어서 읽으면 좋다. 중학생 매디가 이모티콘만으로 이루어진 의문의 채팅 메시지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인데, 지구상의 똑똑한 사람들의 뇌가 전부 다 인공지능화 되어 '구름(cloud)' 위의 신처럼 기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매우 재미있고 흥미롭다.


중국계 미국인인 켄 리우는 전작 <종이 동물원>에서 동북아시아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소설의 배경 내지는 소재로 차용한 바 있는데,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수리 불곰>은 1907년 자신의 가족을 몰살한 불곰을 잡으러 만주에 간 일본인 박사와 그의 길 안내를 맡은 만주족 아이의 이야기이고, <풀을 묶어서라도, 반지를 물어 와서라도>는 1645년 청나라 군대가 10일 동안 양주성 주민 약 8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진 양주 대학살을 배경으로 한다. <북두>는 무려 임진왜란이 배경인 이야기라서 한국인 독자들이 상당히 반가워할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