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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 1000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말하는
오츠 슈이치 지음, 황소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죽기 전에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모색하지 않으면, 생사의 갈림길에서 가슴 치는 후회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고통과 고뇌로 넘쳐난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수없이 많은 장애물과 부딪치는데, 이런 팍팍한 현실을 놓고 보면 인생은 고통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 실제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괴로워한다. 단순히 살아 있는 시간만이 행복이고, 죽음은 불행하다고 믿는다면 인간의 일생은 틀림 없이 불행하게 마감된다. (pp.133-4)
세월호 사고가 있은 지 어느덧 많은 날이 흘렀다. 사고 자체도 끔찍하거니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는 수색 작업과 일련의 혼란도 안타깝지만,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사망자와 실종자들이 아무런 준비나 인사의 말 없이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지만, 막상 죽음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태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나도 건강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사람에게 갑자기 닥쳤으니 그 자신과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살아 있을 때, 함께 있을 때 좀 더 잘해줄 걸,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해줄 걸 하고 후회를 할 때는 이미 늦다. 사고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거나, 말로 하기 부끄러우면 문자로라도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다 이런 깨달음 덕분이 아닐까 싶다.
일본의 호스피스 전문의 오츠 슈이치가 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죽음을 앞둔 호스피스 병동 환자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무엇일까? 명문대에 들어갈 걸, 대기업에 다닐 걸, 강남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살 걸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보았더라면 등등 평범하고 쉬운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죽음 앞에서는 삶이 좀 더 명확하게 보인다는 말도 있듯이, 삶의 끝을 앞둔 이들에게는 진짜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더 또렷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이익, 부와 명예, 사람들의 이목을 신경쓰느라 정작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열심히 공부해서 직업을 가지고, 땀흘려 돈을 벌어 집을 사는 일 모두 결국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무엇이 되었든 간에 좋아하는 일을 더 자주, 오래 즐기기 위한 수단인데 말이다.
실은 이 책을 구입하면서 삶에 대한 뭔가 대단한 통찰을 얻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고,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라는 게 좀 더 거창하고 대단한 것일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기대했던 통찰은커녕 조언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이라서 다소 실망스러운 감도 있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잘은 모르지만, 수십 년을 더 산들 내 인생에 뭔가 파격적이고 엄청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은 것 같다. 행여 그런 일이 일어난들 어차피 죽을 것이고 이 넓은 우주에 티끌보다 작은 존재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가족들과 한 상에 모여 밥을 먹고, 건강한 두 발로 씩씩하게 걷고 열심히 일하고,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기도 하는 모든 일이 언젠가는 찰나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기적이니까.
나는 죽을 때 무엇을 후회하게 될까? 후회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한들 후회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 깨달음이야말로 이 책이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