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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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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내게 가장 많은 영향과 자극을 준 에세이 작가를 고르라면 단연 정혜윤이다. '침대와 책'을 벗삼아 그녀의 문장을 읽을 때면 나는 '세계가 두 번 진행되'는 꿈을 꾸었고, 언젠가 '사생활의 천재들'이나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된 그들 중 한 명으로 소개되는 삶을 소망하게 되었다. 그녀의 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은 <삶을 바꾸는 책 읽기>인데(네이버 포스트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리즈의 제목을 이 책 제목에서 빌리기도 했다), 신작 <마술 라디오>는 그 책을 아주 많이 닮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라디오 PD로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인터뷰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활자로 되살렸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다. 아니, 거리의 현자들, 학위 없는 인생 박사들이라고 해야 할까. 경매가 파한 후 어촌의 뱃머리에서,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시장 구석에서, 제주의 해변에서, 성남의 떡집에서...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채집'했다.  

 

 

여기에 저자는 그동안 읽은 수많은 책 속에서 구한 문장들을 버무렸다. 이를테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작은 물고기는 놔주고 금지 어종은 풀어주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건 내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라는 현답을 한 통영의 어부 아저씨를 보면서 저자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올리고(조르바는 이렇게 말했어. '당신이 밥을 먹고 무엇을 하는지 말해달라. 그럼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어부는 이렇게 말한 셈이지. '당신이 밥을 먹고 무슨 고생을 하는지 말해달라. 그럼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대표해 송전탑에 올라간 한상균 전 지부장을 보면서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는 식이다(내가 마지막 잎새 한 장일 수 있는 가능성, 아니면 마지막 잎새를 그려 넣는 베어맨 노인일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도 못한 거야). 

 

 

사람들의 이야기와 책을 연결하는 시도는 저자가 이전에 쓴 책들에서도 여러번 한 바 있지만, 이 책에서는 그 시도가 더 강렬하게 혹은 애틋하게 다가왔다. 오늘 하루도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저같은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숨겨져있을 줄이야, 하는 발견도 그렇지만, 해고 노동자 문제와 세월호 사고 등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처보다도 마술 같은 기적을 기대해야 하는 비극적인 일을 최근에 너무 많이 겪은 탓이 아닐까. 라디오 PD로서 사회의 구석진 곳에 마이크를 들이밀며 살아온 저자의 삶은, 어쩌면 이제껏 내가 책을 읽으며 작가라는 틀에 맞춰 상상한 저자의 삶보다도 훨씬 더 고달프고 가혹했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디오PD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도 굳이 작가로서의 이중 인생을 택한 것은 흔히 생각하듯 답답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나 새로운 도전이 아니라, 힘든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앙금과 미련을 해소하기 위한 그녀만의 의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언젠가 인터넷 서점에서 정혜윤이 쓴 책에 대한 리뷰를 찾아본 적이 있는데 난해하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식의 평이 꽤 보였다. 나 역시 그녀가 언급하는 책을 모두 읽은 것도 아니요,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전하는 메시지를 100%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문장이 다른 작가들의 그것과 비교하면 독특하게 느껴진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에 대해 뒷말을 남기지 않는 법. 작품을 읽고 해석하고 나름의 메시지를 추출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책은 작가와 독자가 소통하는 매개체이고,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내 마음에 들 수는 없는 것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작가 한둘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거니까. 그러나 어쩌다 알게된 작가에게 반해 그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은 운명이고 아주 드문 파장이다. 세상에 대한 뜨거운 관심, 엄청난 독서량에서 비롯된 넓고 깊은 식견, 웬만한 소설보다도 낭만적이고 기발한 문장들까지..... <삶을 바꾸는 책 읽기>라는 근사한 제목의 책을 쓴 저자답게 삶과 책을 맛깔나게 버무리고 있는 작가 정혜윤. 여기에 그녀의 직업적 무대인 라디오까지 더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반했다.

 

 

 

밑줄 그은 문장들

 

 

나는 그동안 내가 나한테 너무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어. 즉 나의 괴로움, 내 삶의 무게, 나의 성장, 나의 미래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썼어.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에 헌신한 게 아니라 자아에 헌신 중이었던 거지. 그러느라고 24시간 내내 무척 바빴어. 내게도 제3의 밧줄이 있었던 셈이야. 소득+지출+자아. 로맹 가리의 행복한 세상과는 반대였지. 내가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없지 않음에도 그랬어. 괴로웠어. 왜냐하면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바라본 하늘은 한층 더 까마득하게, 결코 따라잡을 수 없게 높게 보였거든. 하늘에서 내려온 한 줄기 밧줄 같은 가느다란 비행운이 지나갔어. 


며칠 뒤에 나는 로베르토 볼라뉴의 <2666>을 읽었어. 2권에서 어떤 교수의 꿈에 보리스 옐친이 나와. 옐친이 꿈에서 말해. "(중략) 인생은 수요와 공급, 혹은 공급과 수요라오. 모든 게 그것으로 요약될 수 있소. 하지만 그렇게는 살 수 없소. 역사는 공허의 쓰레기 구덩이로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고 있소. 인간의 테이블이 역사의 쓰레기 구덩이로 무너지지 않으려면 세 번째 다리가 필요하오. 그러니 받아 적으시오. 방정식은 바로 공급+수요+마술이오. 그런데 마술이 무엇이오? 마술은 서사시이며 동시에 섹스고 디오니소스의 안개며 놀이요." (pp.32-3) 

 


인간은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야. '인간은 대답을 추구하는 질문'이란 말이 있어.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 살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이것이 삶의 형태를 만들어. 누군가는 말했어. 인생은 자신의 '질문'을 찾는 과정이라고. 자신이 풀어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어. (중략) 나에게도 늘 반복되는 하나의 질문이 있었지. "뭐가 문제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지?" (중략) 그러나 이것을 과연 내 인생의 질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pp.48-9)

 

 

단테는 지옥은 감옥이 아니라 요새라고 생각했어. 지옥은 감금되어 있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닫아 잠근 곳이라고 생각한 거지. (중략) 우리도 다른 이야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순간이 있잖아. 우리도 나의 선택, 나의 결정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이 자유인 줄로만 알고 다른 가능성은 다 마음에서 몰아낼 때가 있잖아. 우리의 닫힌 마음은 그렇게 지옥을 닮았어. (p.69)

 

 

책이 사막의 기후나 바람을 견뎌내지 못하고 찢긴다면 현실의 바람은 맞설 수 있을까? 그 또한 견뎌내지 못하고 너덜너덜 찢기고 마는 걸까? 나도 곧잘 생각하곤 했었어. '책이란 뭘까? 책을 읽어버린다는 게 뭘까? 읽지 않았다면 모를까, 읽어버렸다면 다르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읽는다는 게 현실 앞에선 무력하기만 한 건가? 무력하다면 무력함이 힘이어야 하지 않을까?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쥘 베른이 던진 유서 깊은 질문도 이와 같아. 이론은 그렇지, 그러나 실제는?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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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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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는 소설 <빙과> 시리즈 1~3을 연달아 읽었다.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는 그 중 두번째 편. 앞서 시리즈 첫번째 편인 소설 <빙과>의 후기에도 썼듯이 이 소설은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 <빙과>의 원작소설이다. 우연히 애니메이션을 보고 흥미를 느껴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소설 원작으로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만들 경우 나는 보통 소설의 편을 드는데 이 소설의 경우에는 애니메이션이 워낙 좋아서 소설에 대한 만족도는 그보다 덜하다(소설의 완성도나 수준이 낮다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애니메이션과 비교했을 때......). 하지만 극중 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보다 자세히 알 수 있고, 소설과 애니메이션의 차이를 비교하는 재미를 생각하면 역시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얼른 4,5권이 국내에 출시되었으면 좋겠다. 조만간 원서로 읽겠지만......)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의 기본 줄거리는 이렇다. 지탄다의 삼촌이 연루된 <빙과> 사건을 해결한 후 고전부원 네 명은 축제 때 선보일 문집 제작에 골몰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지탄다의 소개로 가미야마 고등학교의 '여제' 이리스 후유미가 속한 2학년 F반 학생들이 만든 미스터리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게 된다. 아마추어 학생들이 만든 탓인지 영화의 질은 형편없었다. 게다가 미스터리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트릭 해결 부분이 없는 미완성작! 알고보니 영화의 대본을 만든 학생이 갑자기 입원하는 바람에 트릭 해결 부분을 완성할 수 없었고, 이리스 후유미는 고전부원 네 사람이 영화의 완성을 돕도록 부탁을 한 것이었다. '에너지 절약주의자' 오레키 호타로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지탄다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하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트릭 해결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는 이리스 후유미라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줄거리 자체도 흥미롭지만 재능은 있으나 의욕이 없는 호타로와 의욕은 있지만 재능이 없는 자칭 '데이터베이스' 사토시의 대립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는 단순히 두 인물 간의 대립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재능을 가진 자'와 '후천적으로 노력하는 자'의 갈등이라는 시리즈 전체의 구도와도 상관이 있다. 2학년 F반의 아마추어 학생들이 만든 질 떨어지는 영화, 그리고 그들이 내놓은 트릭 해결 부분에 대한 미진한 답 역시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오레키 호타로가 등장해 영화 전체의 질을 높이는 완결 부분을 만들고 트릭까지 해결해버리는데, 문제는 그가 이런 것을 자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지탄다 에루와 이리스 후유미라는 두 인물의 부탁 내지는 조종, 명령에 의해 했다는 것이다.


 

재능은 있지만 그것을 활용할 의욕이 없는 자, 의욕은 있으나 재능이 없어 고민하는 자의 내적, 외적 갈등이라는 설정은 저자 본인의 갈등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라서 크게 공감이 되었다. 때로는 호타로, 때로는 사토시의 입장에서...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고 표면적으로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청춘물이지만, 아무래도 나는 이 작품이 더 깊은 의미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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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들은 왜 잘하는 것에 미쳤을까 - 잘되는 사람들의 성공비결
이근미 지음 / 가나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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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해 볼까?" 공수표만 날리지 말고, 해 보고 싶은 그것에 가까이 가라. 그에 앞서 하고 싶은 일이 나의 재능과 잘 맞는지 살펴봐야 한다. 열망에 가까이 가는 것에서 행복한 성공이 싹튼다. 나의 열망이 엉뚱한 곳에서 의미 없이 타오르다 사그라지는 건 아닌지 늘 점검해야 한다. 열망으로 가까이 가서 차근차근 실력을 쌓는 것이 미래의 멋진 나를 만나는 길이다. (pp.21-2)

 

가장 나쁜 케이스는 하고 싶지도, 잘하지도 않는 일인데 어쩌다 빠져들어 정처 없이 떠밀려 가는 것이다. 적성에도 맞지 않고 비전도 없지만 수입이 괜찮아 그냥 진행하고 있다면 속히 재정비 해야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어야 열정이 생기고, 잘하는 일이어야 역량을 결집하여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자칫 진짜 적성이 사장되어 빛을 못 볼 우려도 있다. 스스로를 잘 파악해서 역량을 끌어올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어쩌다보니 들어선 그 길,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에 취해 있다 보면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걸 모르게 된다. 화들짝 정신을 차렸을 때 이제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 힘든 시점에 와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과감히 방향을 틀자. 그러면 고수의 길이 보일 것이다. (p.23)

  


가나북스에서 나온 성공학도서 <대한민국 최고들은 왜 잘하는 것에 미쳤을까>의 저자 이근미는 기자로 일하면서 대한민국의 명사 1,000여명을 인터뷰한 경험의 소유자다. 기자이면서 방송작가이기도 하고, 등단한 소설가이면서 현재는 여러 기업체와 공공기관, 학교 등에서 강연을 하는 자기계발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녀. 참 대단하다. 이 책에는 그런 저자의 경험과 그로부터 얻은 통찰이 잘 정리되어 있다. 저자는 전현직 대통령, 기업가, 소설가 박완서, 화가 김점선 등 1,000여명의 명사들을 인터뷰하면서 자기 분야의 최고로 꼽히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일찍부터 자신이 좋아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적어도 20대 중반에 사회에 뛰어들어 10년 동안 기량을 닦아 30대 중반에는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반드시 명문대나 대기업에 들어가 정해진 루트를 따를 필요는 없다. 200권 이상의 동화를 쓴 유명 동화작가 고정욱은 동화작가들이 흔히 하는 대로 동화작법 공부를 하지 않고 여름 한철 동화책을 2,000권 읽는 식으로 '독학'했다. 삼성생명 배양숙 FC 상무는 고졸사원으로 입사했지만 지방에서 한번 서울에 올 때마다 금융세미나를 10~15개씩 들으며 공부했다. 자기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 미친듯이 노력하는 데에는 정도도 없고 장사도 없다.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개그우먼 이성미는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날마다 스케줄 일기를 쓴다고 한다. 이제껏 나는 일기를 그저 하루를 기록하기 위한, 이런저런 감상을 적어두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했는데, 내 인생의 족적을 남기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배웠다. 이제부터는 일기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학력이나 간판, 지위도 나를 보장해주지 않는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확립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저자는 자신만의 브랜드가 있는지 점검해보기 위한 질문 열 가지를 소개한다.


1. 나만의 전문분야가 있습니까

2. 목표를 확실히 세웠습니까

3. 미래를 위해 하루 2시간 이상 투자하고 있습니까

4. 때가 왔을 때 박차고 일어설 용기가 있습니까

5. 남의 말을 경청할 자세가 되어 있습니까

6. 실패했을 때 오히려 오기가 생깁니까

7. 강력한 추진력이 있습니까

8. 인적 네트워크가 탄탄합니까

9. 트렌드에 적응할 자세가 되어 있습니까

10. 반드시 고수가 된다는 자신감이 있습니까



언젠가 이 열 가지 질문에 모두 'YES'라고 대답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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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20시간의 법칙 - 무엇이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가장 완벽하게 배운다
조시 카우프만 지음, 방영호 외 옮김 / 알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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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상급 수준'이 목표라면 고도의 집중된 노력으로 연습에만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꽤 괜찮은 수준'의 골프 실력을 갖추는 것이 목표라면 이에 필요한 노력과 시간은 대폭 줄어든다. 기술 향상을 위해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의도적인 연습'을 해야 한다는 에릭슨 박사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려는 것이 아니다. 에릭슨 박사의 주장처럼 의도적인 연습이야말로 기술 습득의 아주 중요한 핵심이다. 그러나 목표에 도달하려면 의도적인 연습을 얼마나 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보통은 그 '얼마나'가 여러분이 예상한 연습량보다 훨씬 적다. (중략)

 

이제 1만 시간의 법칙은 프로선수들에게 맡겨두자. 우리는 집중적인 노력과 함께 영리한 방법들을 사용하여 20시간 연습을 시작할 것이다. 약간의 노력으로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 금메달을 따지는 못하겠지만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있는 것이다! 언어든 스포츠든 기술이든, 일단 무언가를 마스터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앞으로 소개할 처음 20시간의 법칙을 활용하여 목표로 삼은 대상을 빠른 시간 안에 정복해보자. 먼저 목표를 명확히 정하고 새로운 기술 습득에 필요한 기본 원리를 배운다. 그 다음 연습방식을 개선해 나가면서 지능적으로 연습한다면 아주 빠른 속도로, 꾸준히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다. (pp.19-20)

 


한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 이상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김연아, 박지성 등 세계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 대부분이 1만 시간의 연습을 했다고도 한다. 그렇다고 무언가에 도전하기 위해서 반드시 '1만 시간의 법칙'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야 김연아, 박지성처럼 세계 무대에서도 인정받는 능력을 가지고 싶다면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취미로 또는 흥미로 피겨 스케이트를 배우고 축구를 즐기고 싶은 것이라면 굳이 처음부터 '1만 시간의 법칙' 앞에 주눅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건 내 주장이 아니라 <처음 20시간의 법칙>의 저자 조시 카우프만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세계 정상급 수준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꽤 괜찮은 수준, 취미 수준으로 즐기고 싶다면 이 법칙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한다. 그 대신 제시하는 것이 바로 '처음 20시간의 법칙'인데, 말 그대로 무언가에 도전해 단 20시간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저자는 이런 식으로 요가, 우쿨렐레, 윈드서핑, 바둑 등의 취미에 도전해 20시간 안에 백지 상태에서 꽤 괜찮은 상태로 기량 향상을 보였다. 


20시간 안에 새로운 기술을 마스터하는 방법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방법은 총 네 단계. 먼저 기술을 하위단계로 분리하고, 하위단계의 기술을 연습하며 시행착오를 줄인다. 세번째로 연습에 방해되는 물리적, 정신적, 감정적 요인들을 제거하고, 마지막 네번째로 연습에 몰입한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를 따라 나도 요가와 중국어 공부라는 두 개의 도전 과제를 설정해 보았다. 요가는 책에 소개된 사례라서 그대로 따라하면 될 것 같고, 중국어 공부는 책에 소개된 사례는 아니지만 저자의 설명을 따라 기술을 하위단계로 분리하고 꾸준히 연습해봐야겠다. 저자는 스톱워치를 활용해가면서까지 20시간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데 나도 그래야겠지? 올 여름, 다양한 취미에 도전해서 지금과는 다른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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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이기적인 반란 - 멈춘 내 인생을 움직이게 만든 저녁 사용법
윤정은 지음 / 팬덤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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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히 하고 싶다는 거와 실제로 해서 만족할 수 있는 건 다르다. 잘할 수 있는 건 다르다. 충고하고 싶은 게 고민만 하지 말고 주말이나 일주일에 하루 저녁 시간을 내서 그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봐라.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면 그 시간을 이용해 시도해봐라. 고민을 하는 건 좋은데 고민만 하면서 계속 세월을 1년, 2년 보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p.39)

매일 반복되는 생활이 지겨워서 부리는 투정을 들을 때마다 의문이 솟는다. 매일 반복되지 않는 일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자유직의 대명사로 불리는 미술가, 음악가, 작가, 디자이너, 자영업자 등이 오히려 더 끔찍하게 같은 행위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계속되는 반복과 일상의 지루함을 견디는 것이야말로 실력을 키우는 방법이다. (p.45)

 

행복해지기 위해 인생을 살자. 가슴이 뛰는 목표가 있다면 퇴근 후에 경험하고 도전해보자. 길은 앞길도 있고, 뒷길도 있고 샛길도 있다. 여러 갈래의 길 앞에서 망설이고 우물쭈물하는 시간에 모든 길을 돌아보자. 만약 그 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길이 없다면 나만의 길을 만들자.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하기 위해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매일 아침 강제수용소로 끌려가는 노예가 된다. 노비 문서는 이미 오래전에 불태워졌는데, 현대판 카스트 제도를 본인이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오늘이다. 노비가 아닌 주인이 되자. (p.103)


우리네 인생에서 대부분의 일은 '안 해서' 못 하는 거지 '못해서' 못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면 된다. 시간은 남아서 쓰는 것이 아니라 찾아서 쓰는 것이다. (p.158)

 

 

퇴근 후에 뭘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학교 때는 학교 생활과 아르바이트, 인턴을 병행했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는 지금도 퇴근 후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실은 책을 읽는 것도 그나마 이게 가장 에너지 소모가 덜한 취미이기 때문이다. 쿠션 몇 개를 두툼히 받치고 침대 위에 누워 책장 넘기는 손과 눈만 움직이면 되니 이 얼마나 편한 취미인가! 이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대학원에, MBA에, 학원에, 온갖 취미 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나로서는 엄두도 안 난다.


하지만 이젠 각성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야 지금은 직장이 밥은 먹여주지만, 평생 먹여주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고 있는 요즘, 제2의 밥줄을 찾기 위해서라도 생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팍팍 든다. 그래서 집어든 책이 윤정은의 <퇴근 후 이기적인 반란>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주일 중 '삼' 일 '저녁' '세' 시간을 반복해서 한 가지 행위를 지속하는, 이른바 '삼삼한 저녁의 법칙'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밥먹고 씻으면 얼추 여덟 시에서 아홉 시 정도 되는데, 이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남는 세 시간 동안 일이 아닌 자기계발에 필요한 행위를 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이 시간을 주로 데이트나 독서, 운동 등에 할애했는데, 데이트도 없고 독서도 시들한(?) 지금은 다른 일에 도전해봐야겠다. 뭘 해볼까? 공부? 자격증? 새로운 취미 도전?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오늘 아침 어디선가 읽은 글에서 삼십 대의 장래에 대한 고민은 십 대나 이십 대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는 내용의 문장을 보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삼십 대에는 그동안 쌓은 경험들로 인해 자기 파악이 더 잘 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장래에 대한 고민이 헛되거나 막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내가 요즘 하고 있는 장래에 대한 고민도 막연한 현실 부정, 잘못된 주제 파악만은 아닌 것 같다. 무언가를 반복해서 한다는 건 그만큼 애정이 있고 열정이 있다는 것인데,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요 유명해지는 것도 아닌 책읽기와 글쓰기를 여태껏 해오고 있는 건 다 그만한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어떤 이에게는 이게 죽기보다 싫은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일들에 대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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