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 한국어를 잘 이해하고 제대로 표현하는 법
이강룡 지음 / 유유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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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글쓰기와 의사소통 전반을 통틀어 우리는 언제나 좁은 문으로 가야 한다. "나쁨은 쉽게 취할 수 있지만 훌륭함을 얻는 길은 멀고 가파르다"라고 말한 소크라테스와 그 말을 그대로 옮겨 적은 플라톤의 의도도 그러하다. 많은 사람들을 좇아 틀린 표현을 속 편하게 쓰면 그는 넓은 문으로 향하는 번역자다. 많은 사람들이 자주 쓰더라도 틀린 건 틀린 것이며 귀찮고 불편하더라도 이를 극복하며 자신부터 제대로 쓰겠노라 결심하고 실천한다면 그는 좁은 문으로 가는 번역자다." (p.53)


지난 8월 22일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이강룡 저자의 강연회에 참석했다.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예습 삼아 이 책을 읽고, 강연 후 복습 삼아 이 책을 읽었으니 강연까지 포함해 도합 세 번은 읽은 셈이지만, 여러 번 읽었다고 해서 내용을 다 아는 것은 아니요, 읽은 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아는 대로 행동해야 하는데 하는 부담만 팍팍. 그래도 알면서 반성하는 것이 전혀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고, 자기 위로를 해본다. 총 6장으로 된 이 책은 글 고르기, 용어 다루기, 맥락 살피기, 문장 다듬기, 문법 지식 갖추기, 배경지식 활용하기 등 제목만 보면 고루한 글쓰기 책같지만 저자의 경험과 널리 알려진 글에서 비롯된 사례가 풍부하여 읽기 쉽고 이해도 잘 된다. 


번역 하면 외국어를 우리말로, 우리말을 외국어로 바꿔서 쓰는 게 전부라고 오해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해석보다 나은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번역을 아르바이트로 처음 시작했는데, 그 때 한 번역을 지금 보면 부끄럽기 그지 없다. 번역이 외국어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덤빌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이 책을 읽었다면 글자 표기와 맥락, 문장 간의 호응 등을 예리하게 따지고 섬세하게 고치는 것은 물론, 좋은 글을 골라 읽고 번역하는 눈도 일찍 길렀을 것이다. '좁은 문' 대신 '넓은 문'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짐하거나 뻗대지 않고 묵묵히 근거를 마련하여 보여주는 그런 글은 무척 단단하고 훌륭하리라"는 저자의 말처럼, 정확히 알고 직접 실천해본 것만을 글로 쓴다면 글도 삶도 알차질 것이다. 


무엇보다 간절한 것은 글과 일치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나는 참 다짐하는 글을 많이 쓴다. 책을 읽으면 몇 가지 다짐을 하게 되는데 그 중 실천하거나 꾸준히 이어가는 것은 별로 없다. 강연 때도 판단이나 주장보다 근거가 많은 글을 쓰라는 말씀을 듣고 그러리라고 다짐했건만, 여태껏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알면서 반성하는 것이 전혀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자기 위로도 이제 그만둬야 할 때가 온 것일까. 번역보다도 글쓰기가, 글쓰기보다도 제대로 사는 일이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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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답을 바꾼다 - 탁월한 질문을 가진 사람의 힘
앤드루 소벨 & 제럴드 파나스 지음, 안진환 옮김 / 어크로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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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자신에게 초점을 둬서는 안 된다. 당신 혼자만 떠들면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다. 당신만 얘기하면, 스포트라이트는 당신에게 쏠리는 셈이다. 당신의 이야기만 늘어놓으면 상대방에게 이야기할 권한을 주지 못하게 된다. 그저 소극적으로 듣고 반응하는 데서 그치지 말라. 상대방에게서 정보를 끌어내고 활기 넘치는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라. 그 두 가지의 차이를 명심하라. "더 자세히 얘기해주세요"는 상대방의 생각과 경험의 다음 단계를 열 수 있는 마법의 열쇠다." (pp.106-7)


어린 시절 나는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귀찮아 하셨고, 하루는 ​사전을 한 권 사주시면서 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찾아서 보라고 하셨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웬만해서는 남에게 질문을 안 하는 성격이 되었다. 학교에서도 선생님에게 질문하기보다는 혼자서 답을 찾았다. 스스로 공부하는 게 몸에 밴 덕분에 공부나 취업 준비도 학원에 의존하지 않고 잘했다. 질문을 안 해서 놓친 것도 많다. 주저 없이 질문했더라면 부모님, 선생님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의 지혜와 경험을 좀 더 배울 수 있었을 것이고, 뭐든 혼자서 해내겠다고 끌어안고 있는 성격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질문의 힘, 왜 이제서야 깨달은 것일까?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 앤드루 소벨이 쓴 <질문이 답을 바꾼다>를 읽으면서 질문의 힘을 절실히 느꼈다. 저자에 따르면 질문은 그저 몰라서,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질문은 생각을 자극하여 의견을 재고해보게" 만들고 "문제의 틀을 재구성하고 문제를 재정의한다". "우리가 가장 확고하게 믿는 가정에 찬물을 끼얹으며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이끈다". 유능한 비즈니스맨은 몇 개의 질문만으로도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캐치하며 일을 성공적으로 처리한다. 훌륭한 리더는 몇 개의 질문만으로도 직원들의 소망이나 불만을 파악한다. 하다못해 연인이나 친구와 대화를 할 때도 질문을 잘 하면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을 수 있다. 질문은 답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대화로 이루어지는 모든 관계를 바꾸는 열쇠다.


인생에 적용할 수 있는 질문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오늘 당신의 사망 기사를 써야 한다면, 당신과 당신 삶에 대해 어떤 내용이 적히길 바랍니까?"가 그렇다. 저자는 대학교 때 이 질문을 받고 의사 대신 비즈니스 전문가라는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인생에 초연하고 솔직해지는 것처럼, 사망기사를 쓴다는 생각만으로도 사람은 헛된 욕망이나 남들이 주입한 가치 대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본능이 살아나는 것이다. 나도 사망 기사를 써보았다.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이자 서평가, 외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해 해외에서 거주하는 일도 많았고 국내에서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으며, 출판과 문구 사업에도 관여했던 000, 사망하다"... 씁쓸하기도 하지만, 죽었을 때 꼭 이런 사망기사가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질문이 내 삶도 바꿔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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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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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에도 관심이 없다. 윤회에도, 영혼에도, 예감에도, 텔레파시에도, 세계의 종말에도 솔직히 별 흥미가 없다. 완전히 불신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 종류의 일들이 있다고 해도 뭐,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단순히 개인적으로 흥미가 없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수의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의 조촐한 인생 곳곳에 다채로운 재미를 더해주곤 한다." (pp.16) 


... 라고 담담히 말한 하루키처럼 나 역시 기담에는 그닥 흥미가 없다. 나는 그 흔한(?) 귀신도 본 적 없거니와 귀신이 나오는 공포 영화에도 관심이 없다. <도쿄기담집>이라는 책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도 호기심이 들기보다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딱히 '기담집'이라고 하지 않아도 하루키 소설 대부분이 기담에 가깝지 않았던가? 게다가 배경도 거의 다 도쿄인데...! 그러나 나보다 먼저 하루키 팬이 된 동생의 강력추천과, 마침 비채에서 개정판이 나오는 기막힌 타이밍으로 예약 구매까지 해서 읽어본 결과... 아니, 내가 왜 이 책을 이제야 읽었지? 이 책을 안 읽고 하루키 팬이랍시고 떠들고 다녔던 지난날이 부끄러울 정도다.

 

 

<도쿄기담집>은 소설집으로서는 드물게 소설 다섯 편이 고르게 재밌거니와 저마다 개성이 강렬하다. 맨처음에 실린 <우연 여행자>는 줄거리만 봐서는 흔한 불륜 소설인데 결말에 가서는 인생사에 대한 교훈마저 느낄 수 있었고, 개정판 표지 디자인에 영감을 준 듯한 <하나레이 해변>은 아들과의 사별 후 감정을 추스리지 못했던 주인공이 뜻밖의 사건들을 겪는 과정이 묘하게 오싹했다.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는(제목이 뭐 이렇게 길다냐!) 뒷이야기가 궁금해 장편으로 늘렸으면 싶고, 반대로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은 소설이 단정하게 완결된 느낌이 좋았다. 마지막 <시나가와 원숭이>는 학창시절의 사건이 현재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라든가 기이한 원숭이의 출현 같은 것이 하루키 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설정이라서 반가웠다. 

 


생각해보니 나는 귀신이며 기담에는 관심이 없지만 이렇게 소설가의 입을 빌어 기담을 듣는 건 좋아하는 것 같다. 엄밀히 따지자면 기담의 '기(奇)'보다는 '담(談)'쪽을 좋아하는 것이지만... 어찌됐든 <도쿄기담집>을 읽어보니 기담, 도시전설 특유의 재미도 있고, 곳곳에 숨어있는 '하루키 월드'의 특색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해서 좋았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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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인류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담으로 세상 읽기 지식여행자 14
요네하라 마리 지음, 한승동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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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목적이라 한국인 독자에게는 다소 지겨울 수 있지만, 저자의 박학다식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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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 -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
말콤 글래드웰 지음, 선대인 옮김 / 21세기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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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에게 힘을 주는 원천인 것처럼 보이는 요소는 종종 커다란 약점을 낳는 원천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은 때때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 약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문을 열어 기회를 만들어내고, 자신을 가르치고 일깨우며, 그런 처지가 아니었다면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p.20)


단점이나 약점이 좋아서 마음이 끌리는 것들이 더러 있다. 남들 눈엔 촌스럽다지만 내 눈엔 그저 예뻐보이는 천가방, 무겁고 거추장스럽지만 가방에 없으면 허전한 종이책, 부정확한 발음마저 순박하고 때로는 로맨틱하게까지 들렸던 남친의 목소리 등등... 어쩌면 ​나의 단점이나 약점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좋게 보일지 모른다. 이를테면 아무리 파워워킹을 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 두툼한 허벅지는 건강의 상징, 점심 메뉴를 두고 심하게는 한 시간도 고민해 본 우유부단한 성격은 신중함, 마이너한 것만 좋아하는 개성 강한 취향은 세상에 쉽게 물들지 않는 꼿꼿함으로. 자기 위안이라고? 뭐 그럴 수도 있고...


말콤 글래드웰의 <다윗과 골리앗>​에​는 약점이 강점이 되고, 강점이 약점이 되는 사례들이 다수 실려 있다. 대표적인 예가 난독증이다. 런던 시티 대학교의 줄리 로건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들 중 3분의 1이 읽기 장애, 즉 난독증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장애에 굴하지 않고 '읽기를 뛰어넘는 능력'을 키움으로써 성공을 거머쥐었다. 교과서를 읽는 대신 강의에 더욱 집중해 기억력과 암기력을 키웠는가 하면, 엄청난 양의 변론 자료를 읽지 않는 대신 유려한 화술을 이용해 변호사로 성공하거나, 합격점을 받기 위해 선생님을 설득하다가 설득의 달인이 된 사람도 있었다. 난독증이라는 역경이 성공의 발판이 된 것이다.


명문대 진학이 실패의 구렁텅이가 될 수 있다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입학 후 중, 고등학교 때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음울하게 생활하는 명문대 학생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반대로 성적에 조금 못 미치는 학교에 들어가서 성적우수 장학금을 독식하거나,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며 남다른 스펙을 쌓는 학생들도 많이 보았다. 소위 '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가 되는 게 낫다'랄까.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큰 연못의 작은 물고기가 되는 게 낫다'고 믿는 풍조가 만연한 것 같다. 세스 고딘의 <이카루스 이야기>를 인용하자면, 너무 높게 나는 것만 걱정한 나머지 너무 낮게만 난달까? 단점이니 장점이니, 약점이니 강점이니 해도 '관점'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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