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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나이 이제 서른인데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 결혼은커녕 썸남도 없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다. 5년째 운영하고 있는 서평 블로그가 그나마 자랑인데, 그 흔한(?) 파워블로그 한 번 된 적 없거니와 이틀이 멀다 하고 글을 쓴들 공모전에서 상을 타거나 출판사로부터 책 내자는 제안 받는 일 따위 없다. 그렇다고 비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없다.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 뿐. 이런 나, 대체 뭐가 문제일까.
대학 시절 화요일 자정이면 라디오를 켜고 '캣우먼' 임경선의 상담에 귀 기울였던 것을 떠올리며 신간 <태도에 관하여>를 펼쳤다. 지난 11년간 글쓰는 틈틈이 신문과 라디오를 통해 인생 상담을 한 저자는 최근 새삼 '결국 나는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간절하고 싶었던' 것이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여러 가지 태도 중에서 저자가 가장 아끼고 신뢰하는 다섯 가지는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 자발성이라고 하면 독립적이고 적극적인 태도, 성실함이라고 하면 한결같이 노력하는 자세를 일컬을 것 같은데 꼭 그렇지는 않다. 다섯 가지 태도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세상의 관념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 대조하는 것도 이 책의 독법 중 하나일 수 있다.
'누가 뭐라든 난 이걸로 됐어'라며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돌이켜 보면 왜 과거의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을까 안타깝다. 만일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며 또 하나의 인생을 자신에게 주어진 옵션이라고 착각하고 제멋대로 상상하던 나는 뭐랄까, 내가 현재 살고 있지 않은 대안의 삶에 멋대로 싸움을 붙인 후 알아서 지고 있었다. 대안의 인생, 그런 건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행여 있더라도 분명 내가 선택하지 않은 '저쪽 인생의 나'도 똑같이 '이쪽 인생의 나'를 시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pp.24-5)
'일단, 어쨌든, 움직여보는 것', '고통스러워도, 손해 본다고 해도, 상처받는다고 해도, 온몸과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는 자세를 예찬하는 걸 보면, 저자는 '자발성'을 불완전한 상황을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로 여기는 것 같다. 반대로 불완전한 상황을 지레짐작하고 포기하는 건 최악의 태도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현재 살고 있지 않은 대안의 삶에 멋대로 싸움을 붙인 후 알아서 지'는 것이다. 내가 그랬다. 이십대 시절의 꿈을 이룬 나,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는 나, 유명 블로거가 된 나, 저서를 몇 권이나 가진 나 등등 수많은 '가상의 나'를 상상하며 '현실의 나'를 부정했다. 그렇다고 현실을 바꿀 시도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나마 믿는 것이 '성실함'인데, 이것조차 저자의 관점이 내가 알던 관념과 조금 다르다. '변화'는 '변하지 않는 것'에서 오고, 내가 좀 더 나아질 수 있고 내가 나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을 가지며, 실패를 쉽게 납득하지 말라는 걸 보면, 저자가 생각하는' 성실함'이란 차라리 철저함, 지독함에 가깝다(일본어 표현 중에 '스토익함' 정도?). 저자의 기준에 따르면 나는 너무 쉽게 변하고, 자신에게 무르며, 실패에 관대하다. 한 번 뿐인 삶을 살면서 너무 미련하게 굴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흘러가는 시간과 기회를 하염없이 떠나보내기만 하는 것도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동안 성실함이 유일하다시피 한 장점이었는데 이제 그 수위를 높여야겠다.
제가 책에서 하고 싶었던 핵심적인 이야기는 사랑에 대해서는 자존심이고 뭐고 가능한 한 관대한 태도를 취하자는 거였어요. 저는 아직도 사랑을 낭만과 슬픔으로 보나 봐요. 더불어 일은 성실하게. 인간관계는 자기 마음에 정직하게, 세상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그런데 상담을 하다 보면 사람들은 거꾸로 사랑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상대나 자신을 통제하려 하고 갈등이나 이별에 대해서는 가혹해지는 걸 봐요. 반면 일에 대해서는 조금 더 노력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때에 스스로에게 필요 이상으로 관대해지고, 차선책 모색을 위해 포기를 하는 게 아니라 상황 탓이나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현실에 안주하며 주저앉는 것이 조금 안타까워요. (p.239)
책의 후반부엔 저자와 정신과 전문의 김현철의 대담이 나온다(오래 전부터 애정해온 두 분의 '콜라보레이션'이라니 기쁘다!!). 저자는 '그 사람이 정신과 의사라서 좋다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정신과 의사라서 좋다'라고 생각할 때의 '어떤'이 결국 태도이며, 이것이 그 사람의 매력을 가장 잘 부각시켜주는 요소라고 설명한다. 저자가 오랫동안 팬을 자처해온 무라카미 하루키를 봐도 그렇다. 그가 일본 소설가로는 드물게 전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부와 명예를 거머쥔 유명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대로 좋아하는 걸 표현한다, 세속적인 성공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엄숙하게 굴 필요도 없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자세로 자연스럽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가. 화려하지 않고, 허세부리지 않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작은 것에 행복해하는 사람이 좋다. 작가라면 똑똑하고 글 잘 쓰는 작가도 좋지만, 어딘가 부족해 보여도 꾸준히 자기 스타일의 글을 쓰며 조금씩 발전해가는 작가가 좋다. 블로거라면 매체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지 않고 대단한 정보가 있지는 않아도, 사람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극소수라도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블로거가 좋다. 배우는 일본 여배우 고바야시 사토미 같은 사람이 좋고, 가수는 리사 오노 같은 사람이 좋다. 대단한 인기를 자랑하거나 역사를 바꿀 정도의 업적을 세우진 않았어도, 자기 영역에서 깊게, 진하게, 진득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좋다.
떠오르는 것이 많은 걸 보니 그동안 아주 생각 없이 산 건 아닌가 보다. 아직은 저자처럼 몇 가지로 추릴 수도 없고 나만의 관점으로 정리해 글로 쓰는 것도 무리지만, 언젠가 경험이 쌓이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무르익은 때가 오면 그때까지 나는 어떤 태도를 사랑하며 어떻게 노력했는지, 내 버전의 <태도에 관하여>를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그렇게 살아야 할 터. 태도란 녀석이 새삼 무겁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