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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학교 - 세상 어디에도 있는 인생성형학교
착한재벌샘정(이영미) 지음 / 행복에너지 / 2018년 8월
평점 :

얼마 전 독일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봤다. 독일에서 미국으로 여행을 떠난 야스민은 황량한 사막 위에 자리 잡은 바그다드 카페에 머무르며 '작은 기적'을 실현한다. 거창하고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다. 더러운 곳을 청소하고, 지루해하는 아이와 놀아주고, 간단한 마술과 농담으로 사람들을 웃긴 게 전부다. 하지만 패배 의식에 젖어있고 무기력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야스민이 선사하는 웃음과 여유는 큰 위로가 되었고 희망을 주었다. 영화가 끝날 때쯤엔 등장인물들이 모두 모여 웃고 떠들고 춤까지 춘다. 야스민이 없었다면, 야스민이 먼저 변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기적이다.
야스민이 학교 선생님이고 책을 썼다면, <말랑말랑학교> 같은 책을 썼을 것 같다. <말랑말랑학교>의 저자 착한재벌샘정은 31년째 중,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있는 현직 교사다. 저자는 교사로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는 각 교과목의 지식을 배우고 시험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곳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책은 아이들이 꿈과 비전을 가지도록 도와주기 위해 만든 5단계 커리큘럼을 따른다. 공부 상처 들어주기, 현재 상태와 문제점 파악하기, 연습을 통한 변화 체득하기, 변화의 즐거움을 느끼며 삶에 적응하기, 자신만의 비전 만들기 등을 각각 상처학, 문제학, 변화학, 행복학, 비전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수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의 가르침은 학교를 졸업한 지 십여 년이 넘은 나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각자 자신들의 지난 48시간의 행적들을 자세히 적어 보라는 숙제를 냈다. 잠자기부터 방귀 뀐 것까지 최대한 자세하게 적도록 했다. 종이에 적은 것들을 보면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제대로 할 줄 안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찾게 했다. 그랬더니 많은 아이들이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어도 잘 못하고 수학도 잘 못한다며 의기소침해했다. 그러자 저자가 물었다. "정말 그럴까요? 선생님을 한 번 보세요. 제대로 보이나요?", "내 목소리는 잘 들리나요?"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제대로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사람도 아주 많이 있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찬찬히 찾다 보면 내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 수 있고, 그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최선을 다하라, 죽을 만큼 노력하면 안 되는 없다!'라는 말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정말 죽어도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포기하면 안 되니까, 네가 조금 더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듣고 싶지 않으니까 안 되는 일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다.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만납니다. 컵 안의 물이 반이나 남았는가, 반밖에 남지 않았는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네가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다르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너의 탓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생각해요. ... 중요한 것은 그 반 컵의 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아무리 물이 반이나 남아 있다고 생각해도 이 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면요?" (74쪽)
아이들이 학교에서 지식만 배워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선생님. 남을 부러워하고 타인의 인정을 구할 시간에 자신을 들여다보고 타인과 공존하는 즐거움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선생님. 이런 선생님을 학창 시절에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책으로라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