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를 깨닫지 못하는 어른들
호시노 요시히코 지음, 임정희 옮김 / 이아소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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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어떤 통계를 보면, 15세 미만 아동의 10퍼센트 이상이 발달장애 증상 중 한 가지를 나타내고 있다는 결과도 나와 있다. 그 가운데 많은 경우가 발달장애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어른이 되고 있다고 한다. '장애'라는 말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발달장애는 지능 발달하고만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 성적이 상위권에 드는 아이 중에도 발달장애 아이가 있다. 뭘 숨기겠는가. 발달장애 연구와 치료에 종사하고 있는 나 자신이 사실은 발달장애인이다. (pp.4-5)


 

 

 

발달장애가 15세 미만 아이들 중에 10% 이상이 가지고 있는 증상이라면 30명이 수업받는 교실에서 적어도 3명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 유난히 산만하고, 쉴새없이 떠들고, 주변 정리는커녕 알림장도 제대로 못 쓰는 친구들이 한 반에 몇 명씩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발달장애 증상과 비슷한데, 슬프게도 선생님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친구들을 무턱대고 야단만 쳤다. 그 친구들이 어쩌면 모차르트나 피카소처럼, 발달장애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재능을 키워주기는커녕 약간의 발달장애 증상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마음에 상처만 입혔으니...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어린시절에 발달장애 증상을 보이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서야 나타나는 경우다. 저자도 어른이 되어서야 자신이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학창시절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떨고 공상을 즐겨서 주의가 산만하다는 지적을 많이 들었으나, 학습장애가 눈에 띄기는커녕 좋은 성적으로 의과대학에까지 들어갔을 정도이니 오히려 우등생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그러나 대학 입학 후 청소를 안해 자취방이 온통 쓰레기 더미가 되고, 목욕한지 두 달이 넘도록 아무 생각 없이 다녀서 노숙자 소리를 듣고, 급기야는 운전학원에서 '평생 운전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을 하고 면허를 받고나서야 자신이 발달장애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발달장애를 가진 정신과의사라니, 그야말로 인생의 메리-고-라운드...!)
 

 

정신과 의사마저 이런데 의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발달장애가 있어도 깨닫지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발달장애가 있는지 의심도 못 하고 야단만 친 선생님들도 다 무지해서 그랬던 거라고 생각한다. 무식이 죄지... (그래도 어린 마음에 그 친구들이 참 불쌍했다...) 일단 어떤 사람이 발달장애일 수 있는지 증상을 소개한다.  

- 늘 차분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한다

-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하지 못한다

-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행동해버린다

- 기한을 지키지 못해 일이 쌓여간다

- 걱정과 불안으로 감정이 폭발한다

 

-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고 남의 말을 안 듣는다

- 부정적 사고, 심해지는 열등감

- 금방 싫증 내고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지 못한다

- 회사일은 잘 하는데 집안일은 엉망

- 계획성이 없고 관리 능력이 부족하다

 

- 수면장애, 낮 시간에 졸립다

- 남성에게 많은 틱장애, 여성에게 많은 발모벽

- 흥미 있는 것에 광적으로 빠져든다

- 애초부터 친구를 사귀려는 의욕이 없다

- 운동이나 손끝을 쓰는 동작이 서투르다 등등

 

 

 

목록을 보면서 느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발달장애와 비슷한 증상이 한두가지 이상은 있을 것이다. 자신한테는 해당사항이 없더라도 주변에서 발달장애가 의심되는 케이스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가족, 친구, 상사나 회사 동료 등... 발달장애 하면 흔히 연상되는, 주의가 산만하고, 주변 정리를 잘 못하고, 쉽게 욱하는 성격만이 발달장애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대인관계가 미숙하고, 의사소통이 어렵고, 유달리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 또한 발달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조용한 사람이라고 해서 발달장애와 무관한 것은 결코 아니다. 외향적이든, 내성적이든 모두 약간씩은 발달장애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정도가 심해져서 생활하는데 불편을 느낄 정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정신과에서는 이를 '장애'라고 부르는 것 같다. 다들 조금씩 가지고 있는 증상인만큼 발달장애라고 해서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고,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을 안 좋은 눈으로 볼 이유도 없다. 그보다는 '저 사람 발달장애가 있는데 아직 깨닫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식으로 이해하고, 전문의와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개인적, 사회적 차원으로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여성은 남성에 비해 타인에게 공격성을 나타내거나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발달장애가 더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한다. 발달장애를 가진 여성은 집안일이나 잡다한 주변 일을 못하거나, 자기평가 즉 자존감이 현저하게 낮은 경우가 많고, 우울증, 과식, 불안장애, 쇼핑중독 등을 동반하기 쉽고, 생리전증후군이 심해지기 쉬운 특징이 있다고 한다. 뭐든 지나치지 않게, 균형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 건강한 정신,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고 바람직한 인격을 만드는 데 있어 최고의 비법인 것 같다.

 

 

당신이 형편없는 게으름뱅이거나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불균형(disorder)으로 인한 문제이므로, 균형을 잡아주면 되는 것이다. (소개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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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 최고the Best가 아니라, 유일함the Only으로 승부하라!
김정태 지음 / 갤리온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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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드러내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다. 스펙은 '지식'에 관한 것으로 '행동'을 보여주진 못한다. 그 사람이 진정 어떠한 사람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저는 어디를 졸업했고, 현재 하는 일은 무엇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일 뿐이다. 여기에 감정을 덧입히면 다음과 같을 수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는 장면을 영화 보듯 소파에 앉아 지켜봤던 적이 있어요. 그때 난민의 어려움을 처음으로 접했고, 난민을 돕는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롤 모델을 찾기가 힘들고, 이해해주는 사람도 찾기 힘들었죠. 난민 NGO에서 난민과 관련된 강좌를 들었고, 졸업하고 현재는 경험을 쌓기 위해서 중동 지역에 중고 제품을 수출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처음과 같은 방법으로 소개하거나, 면접에서 답변을 한다면 십중팔구 문전박대를 당할 것이다. 하지만 '영웅의 사이클'과 '거룩한 불만족' 그리고 흐름을 이어가는 일련의 '행동'을 포함한 스토리로 다가갈 때, 집으로 초대받을 확률은 높아진다. (p.39)



한동안 스펙이 화제였다가 작년까지만 해도 스토리, 스토리텔링 얘기를 어디가도 들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쏙 들어갔다. 그렇다면 요즘 최고의 화두는 무엇인가? 내 생각엔 '멘토'인 것 같다. 언론이나 방송을 통해서도 많이 듣고, 출판계에서는 유독 자기계발서 제목 중에 '멘토'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책이 자주 눈에 띈다. 스펙, 스토리만으로도 부족해서 이젠 타인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온 모양이다.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는, 어쩌면 이제는 너무 식상해져버린 제목이 붙은 책을 읽었다. 내용도 식상하냐고? 음... 스펙을 원하는 사람이 보면 새로울지 모르지만, 스토리를 원하는 사람이 보기엔 속은 기분이었다. '스토리는 기회를 부른다', '업이 직을 가져다 준다', '다수가 선택한 길이라고 안전하란 법은 없다' 등등 메시지는 멋지다. 하지만 문장을 곱씹어 읽어보자. 스토리는 수단일뿐이고, 기회, 직(職), 안전함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스펙을 쌓는 것과 다를 게 뭔가.

 

저자가 진정으로 스토리가 스펙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면, 나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성공 사례가 여러번 나온다. 저자는 이렇다할 자격증이나 소위 '빽'도 없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국제기구(유엔 산하기구 유엔 거버넌스 센터)에 취업했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청년역량개발을 위한 프로젝트와 워크샵을 진행하고 사회적 활동도 하며 열정적으로 살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가 겪은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그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뭔지 고백한 대목들은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내 주변에 이런 선배, 이런 멘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저자는 '멘토'를 테마로 다시 책을 내는 것도 좋을듯...)

 

이런 저자의 '스토리'를 그대로, 여실히 전달하기만 했더라도 저자의 메시지는 충분히 전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그저 '사례'로 처리했기 때문에 여느 자기계발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책이 되어버렸다. 감동도, 자극도 덜하다. 그러다보니 외부에서 기회를 찾지말고 내면을 관찰하여 자신만의 체험과 관심사를 바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는 귀한 메시지도 빛을 잃고, 결국 스펙을 '스토리'라는 말로 바꾼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만 낳은 것 같다.
 
  

스토리는 이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스토리를 수단으로 보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스토리텔러로서의 자격을 잃은 것이다. 사랑도, 청춘도, 그리고 이제는 스토리마저도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시대에 나는 스토리를 목적으로 사랑하니 외롭고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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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London Voice - 삶은 여행… 두 번째 이야기
이상은 지음, 신정아 사진 / 북노마드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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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상은이 좋다. 이 분 음악을 많이 들어본 것도 아니고, 88년 강변가요제 대상곡인 '담다디'는 그 때 고작 두 살이었던지라 잘 알지도 못한다. 맨처음 좋아하게 된 노래는 아마도 <비밀의 화원>. 스무살 무렵 교정하느라 한창 치과에 다녔는데, 치과 안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몇 번이나 이 노래가 나왔다. 우연치고는 너무 자주 나와서 '이 노래가 나랑 무슨 인연이 있나?' 싶었을 정도.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노래도 많이 나왔는데 내가 유독 이 노래만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때부터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되어 한동안 참 많이도 들었다. 우리나라 대중가요에서는 찾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 서정적인 가사가 좋았다.

 

이상은이라는 뮤지션을 좋아하게 된 건 그보다 후의 일이다. 집에 있다 보면 적적해서 배경음악처럼 라디오를 틀어 놓곤 하는데, 어느날 주파수를 돌리다가 <이상은의 골든디스크>라는 방송이 잡혔다. 그 때가 마침 새로운 음악 없나 고민하던 차였는데, 이 프로그램은 좋아하는 올드팝부터 최신 외국 음악, 세계음악 등 다양한 노래가 나와서 좋았다. 진행스타일도 좋았다. 말투는 털털하지만, 말하는 내용이나 느낌은 조심스럽고 차분했다. 나도 그녀 나이쯤 되면 이렇게 때묻지 않은 느낌으로 음악 얘기, 사는 얘기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London voice는 딱 이상은 같은 느낌의 여행기다. 작은 것 하나에 유난히 감동하기도 하고, 오노 요코처럼 그녀가 무진장 좋아하는 화두에는 열정적으로 달려든 여행의 기록들이다. 그래서 그녀의 팬으로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고, 읽고나니 그녀를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런던은 이상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도시라고 한다. 8년 전 미술을 배우는 유학생 신분으로 왔다가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린 후 도망치듯 떠났던, 아픈 추억이 서려있는 땅. 그래서인지 첫부분부터 다시 런던땅을 밟는 설렘, 과거의 자신과 재회하는 두려움이 엿보였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찾은 런던은, 전처럼 춥고 싸늘하고 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는 예술의 의미를 알고 싶어 번민하는 처지여서 도시마저도 스산하고 쓸쓸하게 보였지만, 이제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보헤미안 뮤지션이자 자유인이기 때문에 보는 느낌도 달라졌나보다. 만약 지금 내가 런던 땅을 밟는다면 어떤 느낌으로 보일까? 여행은 외부의 것이 아닌, 내 안의 것을 새롭게 보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녀의 경우를 보니 정말 맞는 것 같다.

 

 

8년 후 다시 런던을 찾아야 할지 꽤 많은 고민을 했다. 8년 전 아쉽게 떠나왔던 곳이기에 꼭 한번 다시 오고는 싶었지만 망설여졌다. 사랑에 다친 사람이 다음 사람을 겁내듯이, 또 같은 상처를 입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떠났다. 다행이다.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피곤하기만 했던 내가 편안하게 웃을 줄도 알고, 무엇보다 자주 웃고 있으니까. 내 모습이 어떻게 변했을지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변했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그 확신을 믿었고, 난 지금 런던이다. (pp.102-3)


여행지뿐 아니라 그곳의 음악, 미술, 그리고 그녀 주변의 이야기 등등 많은 주제가 화제로 등장한다. 음악과 미술은 그녀의 전문분야니까 빼놓을 수 없는 주제. 하지만 함께 여행하는 친구들을 비롯하여 그녀 주변사람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부분은 살짝 놀랐다. 하긴 나도 어떤 그림이나 어떤 장면을 보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그녀에게도 그런 추억들이 있을터. 그때만큼은 아티스트로서의 옷을 벗고, 주변인들에게 편안하게 이런저런 바람들을 늘어놓는 느낌이 편하고 재미있었다.

 

영국 미술과 음악의 좋은 점, 우리나라 인디씬에 대한 기대, 더욱 우호적이고 풍성한 문화적 토양이 형성되었으면 하는 소망 등등, 단순히 여행의 감상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녀만의 세심한 감성과 독특한 관점으로 보고 느낀 것들을 에세이처럼 쓴 부분도 좋았다. 다른 이가 하면 빈말 같고 듣기 좋은 말로만 들릴 것도, 이상은은 몸소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와닿았다. 왜 다 똑같은 노래를 듣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모습의 어른이 되는 걸까? 난 남들에 비해 얼마나 다르고 개성적으로 살고 있을까? 그녀를 보면 이런 내면의 소리(voice)들이 날 파고들고 반성하게 되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경험을 했다. 밑줄 한 번 긋고 반성하고...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 책 (일과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영국의 풍부한 상식)에서 인상 깊었던 건, 영국에서 사람들을 나누는 기준이 '돈'이 아닌 성격과 취미, 취향, 흥미라는 것이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말을 전적으로 신봉할 수는 없겠지만, 나이와 직업을 뛰어 넘어 누구나 자신의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사회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참, 이런 대목도 있었다. (일본이나 우리처럼) "나는 어떤 회사에 다니는 누구입니다" 식으로 자신의 학력과 경제력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처럼 자신의 '계급'을 여전히 강조하는 사회는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나는 남미에서 수입한 유기농으로 재배한 커피를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처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좀 더 구체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자기소개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예찬하는 부분이 참 끌렸던 게 생각난다.

어쩌면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도 똑같다. 내 이야기를 음악에 담고, 은근슬쩍 그렇게 나를 드러내고 싶었다. 직접적으로 내 이야기를 담은 노래는 아니지만, 가사 하나하나에서 내가 느껴지는 음악이 필요했다. 그런 음악이 좋았다. 내 작은 일부라도 음악에 담을 수 있다면... 그것이 음악을 하는 이유다. 세상이 정해 놓은 '영토'에서 아등바등하며 살기보다 오로지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우리네 삶도 한층 풍성해지리라. 그것이야말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pp.116-7)


나의 하찮은 재주로 어떤 글이야 쓰기가 쉽겠냐마는, 여행기는 감상을 글로 쓰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이 책도 읽은지 일주일 정도 되었는데, 감상문을 몇 번이나 썼다 지웠는지 모른다. 뭘 알리고 남을 설득하기 위해 쓰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감상을 남기는 건데도 뭐가 그렇게 어려운지.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더 어렵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지만.

 

이상은을 보면 언제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서 멋지다. 나도 나만의 삶, 내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녀를 보면, 그녀의 음악을 들으면, 그녀의 책을 읽으면 언제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이상은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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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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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아는 자만이 역사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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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 이야기
박래부 지음, 안희원 그림, 박신우 사진 / 서해문집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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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은 원래 내가 읽으려고 했던 책은 아니다. 정확히는, 순전히 내 실수 때문에 읽게 되었다. MBC 김지은 아나운서가 쓴 <예술가의 방>이라는 책이 있다. 언젠가 서점에서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기억해두었다가 며칠 전에 마침 도서관에 있기에 빌렸는데, 아뿔싸! 잘못 빌렸다. 출판사도 똑같고 제목도 비슷한데, 이 책은 '예술가'가 아니라 <작가의 방>이었네.

 

... 뭐, 이것도 운명이려니.  

그런데 원래 실수나 우연에서 비롯되는 일 중에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이 많다고 하듯이, 이 책도 행운 같은 책이었다. 내용도 좋았고, 국내 주요 문인들의 작품세계에 대해 알게 되어 앞으로 책 읽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작가의 방>은 한국일보 수속논설위원 박래부 기자가 여섯 명의 문인의 방을 직접 방문하여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여섯 문인의 면면이 화려하다. 이문열, 김영하, 강은교, 공지영, 김용택, 신경숙이라니...!!! 인터뷰를 한분씩 따로 엮어도 책으로서 부족하지 않을 것 같은데, 한 책에서 다 만나게 되다니 사치스러운 기분마저 든다.

 

이문열의 서재는 머리 싸매고 난해한 고전을 읽거나, 사색하거나, 자신의 새로운 글을 길어 올리는 창작의 산실이다. 또한 지칠 때 차 마시며 쉬는 곳이기도 하며, 쓰임새에서는 또 다른 사적 열망을 키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집필용 책상 옆에 우스운 인연으로 갖게 된 검도용 죽도 한 자루가 놓여 있기도 한 그의 큰 서재는, 그 자체가 평생 추구해 온 탈이념적, 복고주의적 이상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혹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딧세이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문열의 방 p.13)

 

주변 환경과 건물은 밝고 화사하건만, 자폐아의 방 같다는 그의 서재는 피노키오를 삼킨 고래의 뱃속처럼 유독 폐쇄적 분위기를 고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만하지 않은 창조와 창작의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것이 또한 그의 방이기도 하다. (김영하의 방 p.63)


예술가의 방이든 작가의 방이든, 처음에 누군가의 방에 대한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 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대단한 사람들은 방도 대단할까, 어떤 은밀하고 사적인 비밀이 있을까 하는 지극히 일반적인 궁금증 말이다. 확실히 작가들의 방은 뭔가 달랐다. 작가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장서들,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과 사진, 장식품들... 하나하나 특별하고 개성적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방들은, 정확히는 서재 내지는 작업실이라고 보는 편이 더 맞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내가 기대한, 은밀하고 사적인 모습을 보고 싶다는 기대는 조금씩 무너졌다. 뭐, 애초에 그들이 남들과 똑같이 밥 먹고 옷 갈아 입는 공간을 보고 싶다는 기대를 한 내가 바보였지만. (대체 그걸 봐서 어쩌겠느냐...)

 

오히려 이 책은 슬프고 무겁다. '작가의 방'이라는 제목은 너무 신변잡기적이어서, 마치 저자가 일부러 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다. 여기 나온 작가들의 작품만 보아도 알 수 있지만, 다들 전쟁, 민주화 등 시대로부터 비롯된 깊은 아픔과 고통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마치 그 아픔과 고통을 토해내고 분출하듯이 작가들은 글을 썼고, 그런 그들의 산고를 지켜본 것이 바로 그들의 방이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점점 마음이 엄숙해지고, '작가의 방'을 넘어 '작가의 삶', '작가의 숙명'이라는 주제로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직 생각이 다 여물지 못해 글로 풀어쓸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아픔과 시대적인 비극을 거름 삼아 작품이라는 열매를 맺어 사람들의 감성과 사상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작가의 삶이고 숙명이 아닐까.

 

그들(작가들)은 책을 거름 삼아 또 다른 책을 생산해 내고 있었고, 그들의 서재는 고서점 같기도 하고 과거의 온갖 정신이 누워 있는 박물관 같기도 했다. 그 방은 과거의 무덤이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신생아실이었다. (글쓴이의 말 p.5) 


여섯 작가 중 나는 신경숙, 공지영, 강은교 같은 여성 작가들 얘기가 더 좋았다. 내가 여자라서 우대하는 게 아니라, 일단 이 분들이 소개한 방이 내가 기대한 '방'의 개념에 더 가까웠고, (김영하는 대학교에 있는 개인 연구실, 김용택은 본가 서재를 소개했다) 특히 신경숙의 <외딴 방>에 얽힌 이야기는, 저자가 신경숙을 취재하고 싶어서 이 책을 기획한 게 아닐까 싶을만큼 자세히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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