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감옥에서 -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권혁태 옮김 / 돌베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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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이라는 부제에도 나타나듯이, 이 책은 재일조선인 2세인 서경식이 썼다. 부끄럽게도 이런 분야에 대해서 영 아는 것이 없어서 저자가 이제까지 재일조선인 문제에 대해 일본, 한국 양국에서 활발히 활동해오신 분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재일조선인, 일본어, 일본문화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는데 인터넷으로든 책으로든 답을 구하기가 어렵던 차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읽고나니 알고싶었던 답보다도, 오히려 새롭게 생긴 의문이나 문제가 더 많다. 재일조선인과 모어, 모국어의 문제뿐 아니라 역사교과서, 사죄, 책임론, 한국정부의 입장 등 한일 관계는 결코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한번 절감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학교 때 친구 하나가 생각났다. 아버지 직장 문제로 초등학교를 일본에서 다니고 중학교 때 한국에 건너온 친구였는데, 일본 학교에서 일본어 단어 하나를 뜻을 잘못 알고 틀리게 말한 것 때문에 일본 아이들한테 오해를 사서 이지메를 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때까지 나는 일본, 일본어, 일본문화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는데, 그 친구 얘기를 듣고나서 괜히 분하기도 하고, 그런만큼 제대로 알아야 겠다 싶어 그 때부터 일본어도 배우고 일본문화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얕게나마 조금씩 알아갈수록 좋다고 여겨지는 점도 있는 반면, 실망한 점, 아쉬운 점도 있다.  

특히 역사문제가 그렇다. 일본의 권력자들의 문제라고만 여기기에는, 예상외로 일반 국민들이 제대로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점이 많은 것 같다. 그것이 정치가 아닌 교육, 언론, 심지어는 드라마나 엔터테이먼트 같은 쇼비즈니스 등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주입되고 있는 것을 목격할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나처럼 잘 모르는 사람의 눈에도 보이는데, 철 들 무렵부터 뼈저리게 이런 문제를 두고 고민해왔을 저자의 눈에는 얼마나 선연히 비치고, 또 비통할까.   

다소 어려운 주제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일본은 세계에서 드물게 나치주의와 홀로코스트에 관한 서적이 많이 번역 소개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연구 수준도 높은 나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지적 축적들을 자국의 역사나 현실의 사회 문제와 결부해 고찰하는 경우는 드물다. ... 일본이 히틀러의 독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와 동맹관계였던 점, 따라서 일본 역시 홀로코스트에 대한 가해 책임의 일단을 면할 수 없다는 점을 자각하는 일본인은 너무도 적다. (pp.160-1) 

나 개인이 한국 베트남 파병의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한국인'으로서 정치적 의미에서 '집단적 책임'은 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전후에 태어난 일본인들은 일본국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해 '죄'는 없지만 일본인으로서 '집단적 책임'은 면할 수 없다. (p.251) 

패전이 '요고레(더럽혀짐-옮긴이)'인가? 그렇지 않다. '침략'이야말로 '요고레'인 것이다. (p.267)

... 일본국 그 자체가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보이게도 만든다. 그러나 이는 커다란 착각이다. 그들에게는 피해자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들에 대한 가해자는 다름 아니라 자국의 권력이다. (p.285) 

원래 '책임'이란 타자와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니 "감당할 수 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책임이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만일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는데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책임을 지지 못하겠다"고는 말할 수 없을 터이다. (p.291) 

만약에 천황제가 없어지면 일본은 완전히 해체될 것이라는 거죠. 왜냐면 일본이라는 국가가(중략) 근대 이후에 다른 지역과 달리 굉장히 독특한 건, 전근대적인 문화적 심벌을 끌어들여서 근대국가의 통일적 구심점으로 삼았다는 점이거든요.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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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아지면 달라진다 - ‘1조 시간’을 가진 새로운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이충호 옮김 / 갤리온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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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던 도중에 딸이 갑자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화면 뒤쪽으로 달려갔다. 친구는 딸이 영화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 뒤에 있는지 보려고 그러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딸은 화면 뒤에서 케이블 사이를 샅샅이 살폈다. 친구가 "왜 그러니?" 하고 묻자, 딸은 화면 뒤에서 머리를 쏙 내밀면서 "마우스 찾아요."라고 대답했다. (p.288) 

<많아지면 달라진다> 맨 마지막에 나오는 예화다. 컴퓨터로 영상을 볼 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마우스 커서가 사라지는 것처럼 영화 화면도 그런 줄 알고 오해한 아이가 깜찍하다. 나야 초등학교 때 처음 컴퓨터를 봤고, PC통신이라는 게 그저 신기하기만 했는데(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다), 내 자식은 컴퓨터, 휴대폰, 스마트폰을 마치 생필품처럼 당연하게 느끼겠지. 

이 책의 저자 클레이 셔키는 인터넷 기술의 발전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주로 연구하는 언론학자로, 포린 폴리시에서 세계 최고의 지성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을만큼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책은 이번에 처음 읽어보았는데, 전작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도 많은 주목을 받은 책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존의 미디어인 TV는 시청자를 수동적인 '객체'로 격하시켰지만, 인터넷 기술이 발달하고 이를 활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여가시간을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주체'들이 늘어난 현상에 주목했다. TV가 여전히(또는 아직은) 강력한 매체인 것은 사실이지만, 젊은 세대들은 TV보다 인터넷, 스마트폰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이 젊은 미디어는 TV와 달리 사용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에 없던 일을 가능하게 했다.   

 

동방신기의 웹사이트는 수십만 명의 젊은이가 모일 수 있는 장소와 이유를 제공했다. 학교 운동장과 커피숍에서 주고받으면서 그냥 사라지고 말았을 대화가 이곳에서는 전문 미디어 회사들만 누리던 두 가지 특성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접근성과 영속성이었다. (p.52) 

여러가지 예가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첫머리에 등장하는 예시가 바로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로, 2008년 촛불집회에 동방신기의 팬사이트에 가입된 여중고생들이 참여한 일이다. 얼마 안 된 일이기도 하고 당시 직접 목격하기도 한 일인데 외국 저자의 책에서 보니 어찌나 신기한지...  

저자의 설명대로 사적인 의견이나 대화가 인터넷 공간을 통해 공개되고 파장을 일으키는 일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증했다. 심지어 이제는 TV, 신문 등의 견해가 웹상을 통해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웹상에서 일어난 사건이 TV, 신문을 통해 보도되는 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얼마전 미국 뉴스에서 데미 무어와 애쉬튼 커처가 결별했다는 보도를 보았는데, 보도 내용이 예전 같으면 직접 취재를 하거나 다른 언론의 취재 내용을 편집한 것이었을텐데, 이번에는 그들의 트윗을 인용하는 게 전부였다. 그들의 팔로워들이 시청자보다, 아니 TV보다도 먼저 그들의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수많은 사건이 카메라폰으로 기록되고 인터넷에 업로드되어 전 세계 사람들이 보았다. ... 이전에는 그런 사건들을 기록할 때 전문 사진 기자에게 의존했지만, 갈수록 우리는 점점 더 서로의 인프라가 되어가고 있다. (pp.40-1) 

다수가 늘 소수보다 옳은 것은 아니다. 다수의 대중이 소수의 전문가보다 늘 옳다고는 볼 수 없다. 이 책에도 그런 논의가 나온다. 과연 다수의 대중이 생산한 지식을 믿을 수 있을까? 이것 참 딜레마다. 하지만 '소수의 전문가'라는 하나의 선택지만 있는 것보다는 '소수의 전문가' 또는 '다수의 대중'의 견해 중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싶다. 그렇기 때문에 반신반의하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일단 인터넷에 어떤 의견이 있는지 검색부터 해보는 습관이 들었나보다.  

 

1990년대에 이루어진 많은 연구는 잠재적 사용자들에게 만약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 대답으로는 "정보를 찾는 데 쓰겠다."거나 "숙제를 하는 데 활용하겠다."는 종류가 가장 많았다. 그렇지만 이미 온라인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았더니, 그 대답은 아주 다르게 나왔다. "친구와 가족과 연락을 유지하는 데", "사람들과 사진을 공유하는 데", "관심이 같은 사람끼리 대화를 나누는 데"와 같은 대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p.261) 

최근 며칠 동안, 의도한 것도 아닌데 인터넷 기술의 발달과 사회의 변화에 대한 책을 연달아 세 권 읽었다. 맨 처음 읽은 책은 인터넷 기술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내용이었고, 다음에 읽은 책은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상반되는 내용의 책을 읽고 머리가 복잡했는데, 이 책을 읽고 정리가 되었다. 좋다, 나쁘다는 인터넷이 탄생하여 발달하는 것을 목도한 현 세대만의 고민일지 모른다. 책, 신문, 라디오, TV, 전화 등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매체에 대해서도 당시에는 찬반양론이 있었을 것이다. 장점도, 단점도 있지만 여전히 사용되어지고 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위에 인용한 것처럼, 이미 온라인 세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책, TV 대신 인터넷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주 미디어로 활용하고 있다. 새로 태어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인터넷을 주 미디어로 활용할 것이다. 그 유명한 마샬 맥루한의 말대로 미디어가 메시지이고 마사지라면,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하는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세상이 오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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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마인드
리처드 왓슨 지음, 이진원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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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무한도전> 'MH상사' 편에서 상사 역을 맡은 유재석이 다른 멤버들한테 워드로 회의 자료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워드를 쓸 줄 모르는 정준하가 직접 손으로 쓰고 그려서 만든 회의자료가 워드로 만든 자료보다 나아서 화제가 되었다. 방송을 보면서, 처음에는 나도 다른 무도 멤버들처럼 정준하가 미련하다고 생각했는데, 만들어진 자료를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보면 정준하 같은 직원이 능력이 되든 안되든 맡은바를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진짜 괜찮은 직원이 아닐까.

내가 보낸 이메일의 응답률은 고작 5퍼센트에 불과했다. 전화 통화는 완전 시간 낭비였으며 불과 5명만이 대답해줬다. 다만 타자로 친 편지의 경우 응답률이 38퍼센트로 이보다는 훨씬 더 좋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숫자들은 펜으로 쓴 편지의 응답률과 비교했을 때보다 훨씬 더 낮았다. 펜으로 쓴 편지의 응답률은 무려 74퍼센트나 됐다. (p.155)

미래학의 3대 거장 중 한 명인 리처드 왓슨의 저서 <퓨처 마인드>에도 비슷한 부분이 나온다. 저자는 설문조사 문항을 각각 이메일, 전화, 타자로 친 편지, 손으로 쓴 편지로 보냈는데, 그 중 손으로 쓴 편지의 응답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손편지라니. 이메일이나 타자로 치면 금방 끝날 일을 누가 일일이 편지를 써서 보낼까 싶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값지게 느껴지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디지털 문화가 발달할수록 그 반향으로 아날로그 문화에 대한 욕구가 커질 것이고, 깊은 사고를 하는 사람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고보니 몇 년새 손글씨, 핸드메이드 제품, 요리, 인테리어 등 직접 손으로 창조하는 활동이 높은 인기를 끌고 있고, 명상, 수련 등 정신적인 활동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기업과 언론은 하루가 멀다하고 최신 기종의 디지털 기기를 광고하고, 그것을 사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의 모습을 홍보하지만, 한편에서는 디지털 기기를 끄고 자기 안으로 몰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우리가 매우 바쁘면 두뇌는 더 이상 이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생각들을 지지하고 말 것이다. 지나치게 바쁘거나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는 속임수, 위선, 노골적인 거짓말이 팽배하게 된다. (p.42) 

디지털 문화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나쁜 것은 디지털 문화가 발달하여 사람들이 정보에 많이 노출될수록 진짜 중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가려내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디지털 기기가 발달해도 그것을 작동시키고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것을 말해주기 위해 저자는 이 책에서 일부러 쓴소리를 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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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이후의 세계 -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낼 인터넷의 미래
제프리 스티벨 지음, 이영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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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구글이라는 기업에 관한 책일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구글로 대표되는 인터넷의 현재와 그 미래에 대한 책이었다. 저자 제프리 스티벨은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40세 이하 인물 중 가장 영향력 있는 40인'에 선정될만큼 IT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의 연구는 인터넷을 인지과학과 접목시켰다는 점이 특징인데, 이 책에도 인터넷이 인간의 뇌와 어떤 유사점이 있고 차이점이 있는지, 앞으로 인터넷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저자에 따르면 인터넷은 인간의 뇌의 작동방식과 매우 유사하고, 기술이 발전하여 차이점이 극복될수록 점점 더 비슷해져서 종국에는 '인터넷과 인간의 뇌가 수렴되는 시대(p.6)'가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인터넷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과학 지식뿐 아니라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학문, 즉 인지과학이나 심리학 같은 분야가 더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한다. 

뇌는 개별적인 정보들이 아니라 패턴을 통해 인식을 한다. 뇌는 기억에 저장된 지식을 활용해 예측을 한다. 뇌는 직관을 가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 직관은 나이가 들수록 더 다듬어지고 향상된다. 나이가 들수록 뉴런은 죽지만, 그 대신 지혜가 높아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뇌는 약점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탁월하게 생각하는 기계가 될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난 검색엔진도 뇌의 직관력에는 도저히 근접할 수가 없다. (p.89) 

하지만 컴퓨터가 인간의 뇌의 수준을 금방 따라잡기는 어려워 보인다. 인간의 뇌는 20대 이후로는 기능이 쇠퇴하고, 그 쇠퇴하는 분만큼을 경험과 지혜 등으로 채운다고 한다. 하지만 컴퓨터는 기능이 쇠퇴하지는 않지만, 경험과 지혜를 쌓지 못한다. 인풋을 처리하여 아웃풋을 만드는 것. 컴퓨터는 프로세서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인간의 뇌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구글을 비롯한 유수의 IT업체에서는 뇌과학자를 고용하여 연구를 하고 있으며, 종국에는 인간의 뇌와 유사한 인터넷이 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미래학자 커즈와일은 1998년에 이런 예측을 했다. "2019년이 되면 1000달러짜리 컴퓨터가 인간의 뇌와 비슷한 연산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 수많은 상업적인 거래가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이루어질 것이다. ... 사람들 사이의 소통은 대부분 사람을 직접 거치지 않고 행해질 것이다. ...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지능을 갖췄다는 뜻 - 옮긴이) 컴퓨터가 널리 퍼질 것이다." (p.210) 그는 당시 2009년에는 고해상도의 화면을 가진 개인용 컴퓨터가 나오고, 유선통신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인간의 뇌의 수준을 따라잡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아직은 멀게만 느껴진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좋은 미래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이 발을 확장하여 자동차를 만들고, 눈을 확장하여 영상매체를 만든 것처럼 뇌를 확장시킨 컴퓨터가 만들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심지어 인간 자신은 날지도 못하는데 비행기를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그러니 저자의 주장대로 조만간 인터넷과 인간의 뇌가 수렴하는 시대가 올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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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영토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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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마침 최근에 읽은, 프랑스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미셸 우엘벡의 최신작 <지도와 영토>에도 스티브 잡스의 이름이 나왔다. 주인공 제드가 그린 <IT 산업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라는 작품이 바로 그것인데, 여기에 묘사된 잡스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병마와 싸우느라 여윈 스티브 잡스는 고통스럽고 수심에 찬 표정을 지으며 수염이 듬성듬성 난 꺼칠한 턱을 오른손으로 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자리를 드문드문 채운 무심한 청중 앞에서 아마 두번째 설교를 토해내야 하는 순간 난데없이 의혹에 사로잡힌 순회목사를 연상시켰다. 그럼에도 게임의 주인은 오히려 지고 있는데다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쇠잔한 스티브 잡스인 듯한 분위기였다. ... 주의 깊게 살펴보면 잡스가 반드시 지는 게임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가 퀸을 희생시키는 대신 세 수 만에 비숍-나이트 체크메이트를 만들 경우 승산이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라면 신제품에 대한 전광석화와 같은 직감으로 시장에 돌연 새로운 규범을 제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pp.228-9) 

이 책은 제드라는 예술가의 일생에 대한 소설이다. 그는 미슐랭 지도를 테마로 사진을 찍어서 예술계에 화려하게 데뷔했고, 그 후로는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등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직업인들을 테마로 그림을 그려서 또 한 번 큰 주목을 받은, 드물게 성공한 예술가다. 이쯤 되면 그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다거나 누구와 어떤 갈등을 가지고 있느냐가 이 소설의 중심 내용일 것이라고 짐작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제드에게는 몇 가지 문제가 있고 삶을 살면서 몇 차례 위기를 겪기는 하지만, 그것을 이 책의 중심내용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아쉽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먼저 묻는 건 직업이죠. 서구사회에서 인간을 규정짓는 것은 생식의 소임이 아닌, 무엇보다도 생산과정 속에서 점하는 위치니까요. (p.189) 

우리 역시 상품이오...... 문화상품. 우리도 곧 한물간 신세가 될 거요. 공산품들과 똑같은 절파를 거쳐서 말이오. 하지만 우리에겐 딱히 이렇다 할 기술 발전이나 기능 개선이 적용되진 않을 거요. 말 그대로 새로운 것을 요구할 뿐이지. (p.205)

그보다는 제드의 삶의 배경을 형성하는 사회구조, 즉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예술의 위치에 관한 소설로 보인다. 지겹다 싶을만큼 세세하게 나열된 상품과 기업, 방송국, 유명 인사들의 이름, 이름들... 이 수많은 '상품명'을 읽다 보면 내가 지금 상업 잡지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오늘날 예술의 위치라는 것은, 그 옛날 왕정 시대에 권력자들이 그렇게 사용했던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주역'인 기업들을 위해 기능하는 수단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제드의 초기 사진 역시 미슐랭에 근무하는 올가의 눈에 띄어 화려하게 데뷔 했을뿐이고, 화가로서 새롭게 경력을 시작했을 때도 사람들은 그림이 아닌, 그림 속의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같은 유명인사들에 눈길을 주었다. 그의 작품에서 그의 예술 세계를 본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팔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만 주목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은 전보다 더 발전한 것이 아니라, 여느 생산수단, 생산물과 마찬가지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내가 소비자로서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공산품이 세 가지 있소. 파라부트 신발과 캐논 리브리스 노트북 프린터, 카멜 레전드 파카가 그것들이오. 이 제품들을 열렬히 사랑하는 나는 이것들이 자연히 해지거나 낡으면 어김없이 똑같은 제품들을 재구입해서, 함께 인생을 보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요. 나를 행복한 소비자로 만드는, 완벽하고 충실한 하나의 관계가 정립된 거지. ... 그런데 이제는 이 단순한 즐거움마저 빼앗겨버렸소. 내가 좋아하는 상품들이 몇 년 만에 진열대에서 사라졌거든. 이유는 너무 간단한데, 글쎄 생산이 중단됐다는 거야. ... 하다못해 하찮은 동물도 멸종하기까지 수천, 수백만 년이 걸리는데, 공산품은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법도 없이 며칠 내로 단칼에 지구 상에서 제거되니 말이야. 이건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잘 알고 있을 생산라인 결정권자의 파쇼적이고 무책임한 횡포요. (pp.203-4)    

슬프게도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물은 그 마저도 짧은 교체주기로 인해 오래 향유하기가 어렵다. 상품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상품화된'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연예인조차 점점 더 빨리 뜨고 빨리 잊혀진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충분히 사랑하고 잊을 시간조차 가질 수가 없다. 제드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이자 그 자신이 성공적인 문화상품으로서 같은 경험을 한다. 그것도 사랑하는 아버지, 연인, 친구에게, 제 때에 제대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못했다. 사랑을 느낄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너무 빨리 그들이 떠나버린 것일까. 어느 쪽이든 비극은 비극이다.

다시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꾼 기업인이자 발명가, 그리고 새로운 디자인과 미학을 제시한 '예술가'인 그의 사망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스티브 잡스를 추모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치 전자기기를 몇 달에 한 번씩 갈아치우듯 추모 열기가 빨리 식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게다가 이 기세를 타고 여기저기서 '스티브 잡스 마케팅'을 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일생과 업적이 상품처럼 판매되고 소비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비록 잡스 역시 상품을 파는 기업인이었고, 나아가 그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든 사람이지만 말이다.  

과연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것에 슬퍼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의 훌륭한 프레젠테이션과 신제품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에 슬퍼하고 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자문해볼 일이다. (만약 후자라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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