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테라피 - 개정판, 감각을 열고 자신을 믿어봐
윤수정 지음 / 흐름출판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스무살 무렵, 적성을 찾아보겠다고 이런 수업 저런 수업 기웃거리며 다니던 때가 있었다. 전공에 만족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 내가 모르는 나의 적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호기심에 학교에서 광고 수업을 하나 듣고, 남들 다 하는 것 같아서 신림동 모 건물에서 대학생 대상으로 개설된 마케팅 강좌를 일부러 신청해서 들었다.  

그 결과ㅡ 비록 발만 슬쩍 담가본 것이기는 하지만 둘 다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적성보다도, 광고와 마케팅이 소비자로 하여금 불필요한 소비를 하도록 자극하고 상품의 본질은 보여주지 않는 것 같았고, 이를 통해 현실을 왜곡하고 부정을 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결국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크리에이티브 테라피>를 읽기 시작했을 때, 광고계에 오랫동안 종사한 카피라이터가 쓴 책이라는 것을 알고 이 책도 결국 광고, 마케팅이 나와는 맞지 않는, 또는 먼 세계 이야기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책이 되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저자 윤수정은 광고사와 영화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했고, 현재는 우리나라 최초 영화 전문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하면서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크리에이티브 테라피'라는 책과 동명의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화려한 광고인의 이력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학창시절 문예반이었고 대학에서도 국문학을 전공했을 정도로 글쓰기를 좋아해 카피라이터가 된 그녀는 화장품, 옷, 구두, 가방 등 자신과는 먼 상품들을 선전하는 카피를 쓰는 데 실패해 회사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을 때마다 자신을 위로해주는 것은 영화라는 것을 깨닫고 전직하여 '영화 전문 카피라이터'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었다. 애용하지도 않는 상품을 거짓으로 홍보하면서 화려하게 사느니, 길이 멀고 험할지라도 자신이 먼저 본 영화의 감동과 매력을 짧은 글로 전하는 일로 승부를 보겠다는 소신과 용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이런 소신과 용기를 가진 저자는 현재 일반인을 대상으로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크리에이티브 테라피'라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광고의 핵심이 창의성, 즉 creativity 이니 저자가 크리에이티브 강의를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여느 광고, 마케팅 강의와 달리 전공생이나 그 분야 종사자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크리에이티브는 '온전한 자신의 마음만으로 세상의 산과 언덕을 넘도록 도와주는 자전거(p.295)'로서 삶에 힘을 주고 보탬이 된다. 그래서 강의와 이 책의 제목도 크리에이티브 '테라피'. 심리 치료에서 이 먼저 자신을 이해하고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크리에이티브도 먼저 나를 알고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것에서 비롯되고, 이것이 결국 스스로를 치유하고 세상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기 때문이다.   

저자가 카피 작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들여다볼 때마다 남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마음이 자랐고, 이 뛰어난 감성으로 <워낭소리> 를 비롯한 수백만 관객을 울린 작품의 카피를 썼다. 저자가 진행하는 강의에 참석한 학생들 중에도 크리에이티브 수업을 통해 자신에게는 도무지 없는 줄만 알았던 창의성을 발견하여 생활 태도가 달라진 사람도 있고, 자신만의 크리에이티브 타입을 찾아 개발하여 진로를 찾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크리에이티브가 치유의 힘이 있고, 광고계 종사자뿐 아니라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책이 이제까지 가지고 있었던 광고인, 마케팅 종사자에 대한 편견을 깨주었고, 카피 하나에도 진실을 담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크리에이티브라는 매개체를 통해 소비자가 아닌 일반인, 즉 사람들의 삶과 연결시키기 위해 힘쓰는 모습이 느껴져서 좋았다. 이런 책이라면 광고나 마케팅을 몰라도, 크리에이티브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라도 가볍게, 편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감히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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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쓴 <Eat, pray, love>는 무려 158주 동안이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40여 개국에서 번역되었을만큼 엄청난 사랑을 받은 소설이다. 

사실 이런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렇게 관심이 생기지 않았고, 국내에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에도 별 흥미가 안 생겼는데(그런 주제에 두 가지 버전의 페이퍼백 중에서, 단지 표지에 '줄리아 로버츠가 나왔다는 이유로' 아주 조금 더 비싼 영화 버전을 고른 것은 아이러니다), TED에서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 강연 영상을 보고 '이 책을 꼭 읽어야겠구나' 싶었다. 저자가 말을 참 털털하게 하고 인상이 좋아서, 저렇게 행복해보이는 사람이 쓴 책을 읽으면 나도 행복해질 것 같았달까. 어떤 분이냐면...  


 

(출처 네이버 인물 정보)
이런 분이다. 동영상으로 보면 더 예쁘다. (그나저나 정치학 전공이셨다니 더 반갑네)  


국내에 그렇게 널리 알려진 분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많이들 알 것이다.

 

바로 <코요테 어글리>! 
리앤 라임스의 <can't fight the moonlight>이 삽입된, 케이블에서도 꽤 자주 방영되었던 바로 그 영화다. 기억에 나는 중2나 중3 때쯤 학교에 누가 비디오를 가져와서 같이 봤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의 원작이 된 글을 쓰신 분이 바로 이 분이다. 즉, 평범한 삶을 살다가 갑작스럽게 '코요테 어글리'의 바텐더로서의 삶을 살게되었던 영화 속 주인공의 모델이라는 것. (다만 영화 속 주인공은 작가가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는 여자였던 점은 다르다.)  

재미있게 본 영화라서 이 사실을 알고 많이 놀랐는데, 나만 몰랐나?ㅎㅎ  

   

 

본론으로 돌아와서...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이 책에는 저자가 1년에 걸쳐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 발리를 여행하며 '먹고(Eat)', '기도하고(Pray)', '사랑하는(Love)' 이야기가 담겨있다. <코요테 어글리>처럼 이 책 역시 저자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논픽션에 가까운 소설 혹은 에세이다. 여행기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해서 각각의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두 끌어들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처음에 나오는 이탈리아 부분은 여행기에 가깝다. 주인공(이자 저자인) 리즈가 이혼한 뒤 이탈리아로 훌쩍 떠나 이탈리아어를 배우며 먹고 노는 얘기가 이어지는 부분이다. 별다른 사건은 발생하지 않고, 바쁜 일상과 이혼 수속으로부터 벗어나 오랜만에 자유를 만끽하며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4개월 후 인도로 넘어가면셔 글의 분위기가 살짝 바뀐다. 리즈는 인도의 한 수련원에 머물며 명상과 수행을 하면서 영적인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한다. 깨달음을 얻으면 결혼생활을 하면서 느낀 번민이나 불안, 상실감이 덜해질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중이 안 되고, 졸리고, 몸이 들썩들썩 거리고, 잡생각이 나고... 깨달음을 얻고자 갔지만 깨달음을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만 깨닫고 온 셈이다. 

주인공이 바라던 신비로운 체험은 그 다음 인도네시아 발리에 갔을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발리에서 리즈는 예전에 자신의 인생을 예언했던 점술가(이자 치료사)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의 소개로 자기처럼 이혼하고 딸 하나를 키우며 어렵게 살고 있는 치료사를 만나 친구가 된다.  

여기서 리즈는 그저 전처럼 먹고 기도하며 수동적으로 지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몇 가지 '기적'을 행한다. 늙고 지친 점술가를 위해서는 그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자료들을 보관할 수 있게 도와주고, 혼자 힘으로 딸을 키우는 친구를 위해서는 세계 곳곳에 있는 지인들에게 메일을 보내 기부를 받아서 친구가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신비로운 체험이나 영적인 깨달음은 기도나 명상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자신의 힘으로 열심히 살다보면 절로 얻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 . . .

혹자는 별 어려움 없이 살아온 뉴요커 저자가 단 1년 간의 여행으로 삶의 모든 지혜를 얻은 양 글을 쓴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게다가 여행 끝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는 엔딩이라니, 로맨스 소설과 별 다를 게 없는 결말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물질적인 풍요가 곧 정신적인 충족감을 보장해준다고는 할 수 없다. 겉으로 보기에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괴로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오랜 기간 유지해온, 그토록 행복해보였던 결혼생활을 갑작스럽게 정리한 것이고, 경력도 돈도 포기하면서 여행을 감행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게 되기는 하지만, 이 사랑은 전 남편과의 사랑이나 다른 연인들과의 사랑과는 전혀 다른 형태다. 남자는 발리에, 자신은 미국에 살면서 가끔씩 만나는, 삶과 사랑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로 한 것이다. 예전 같으면 남자 생각에 밤잠도 못 이루고 생활을 전부 바쳤을 그녀로서는 상당한 발전이다. 이는 여행을 통해 그녀가 사랑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덕분이다. 그러니 배부른 여자가 쓴 허무맹랑한 얘기도 아니고, 여느 로맨스 소설과 다를 것이 없는 얘기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여행을 통해 자신이 가진 능력과 힘을 깨닫고,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지내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과정이 담긴, 여성의 성장기 내지는 성숙기(記)다. 

 







 

 

 

 

 

나는 이 책을 맨 오른쪽 원서(페이퍼백, 무비 버전)로 읽었는데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국내에 번역된 책이 나와있기는 하지만 원서로 읽는 것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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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제국의 몰락]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달러 제국의 몰락 - 70년간 세계경제를 지배한 달러의 탄생과 추락
배리 아이켄그린 지음, 김태훈 옮김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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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럽 재정 위기로 지금은 한풀 꺾인 듯 하지만, 지난 여름 미국 경제에 대한 걱정과 불신이 절정에 달했었다. 심지어는 미국 경제가 악화되다 못해 '국가 부도 사태'에 이를 수도 있다는 예측도 있었고, 실제로 그럴 위기에 놓이기도 했으나 가까스로 비껴갔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완전히 회복세를 되찾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이런 시류를 반영하여 미국 경제, 그리고 미국의 통화이자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의 흔들리는 위상에 대한 책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UC 버클리대 교수인 배리 아이켄그린이 쓴 <달러제국의 몰락>도 그런 책 중 한 권이다. 이 책은 달러의 역사부터 다른 통화와의 경쟁, 위기, 독점, 그리고 현재의 독점 종식 상황까지 달러의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학자가 쓴 책 답게 주관적인 견해나 주장보다는 학술적인 설명과 객관적인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경제학, 특히 국제경제학에 별 지식이 없는 사람도 읽으면 많은 공부가 될 것이다.

한 국가의 경제적, 군사적 힘과 통화의 국제적 활용도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통화에 국제적 위상을 부여하는 것은 발행국의 입지다. 어떤 통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발행국이 크고, 부유하며,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강하고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발행국의 경제적 기초체력이 기축통화라는 국제적 위상의 획득과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p.26) 

달러의 위기가 문제인 것은, 달러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달러가 세계의 기축 통화라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통화는 통화 그 자체로서는 가치가 없다. 무언가 가치 있는 것으로 교환 되는지 여부, 즉 태환성이 통화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인데, 불과 몇 십년전까지 세계의 화폐는 금 가격을 기준으로 가치가 매겨졌고, 현재는 달러가 그 지위를 대신하고 있다. 즉, 달러가 금만큼 가치 있다는 믿음이 달러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세계 패권국이라는 믿음이 흔들리고, 경제적으로도 침체를 면하지 못하고 있으며, 잇다른 전쟁과 악재로 안정성마저 위협받고 있는 현 시점에서 달러가 과연 세계 통화의 기준으로서 굳건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유로화, 위안화 등 다른 통화, 나아가 IMF 특별인출권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비슷한 주제의 다른 책들이 달러의 위기에 대해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의 관점에서 어떤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을지 분석하는 데 반해(이를테면 미국과 중국, 유럽이 경쟁하는 상황 등), 이 책은 미 국내 경제가 어떻게 될지 대해 예측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주독자인 미국인들이 궁금해 할 내용도 그것이고, 미 국내 경제의 변화는 곧바로 외국의 수출입, 즉 무역, 그리고 투자와도 밀접하게 관계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니어도 주목할만하다.     

조금 얘기가 비껴가는데ㅡ, 요 몇 달간 미국 뉴스를 보면서 미국인들이 미국 경제에 대해 예측하는 것을 보았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인이 미국 경제를 보고 기대하는 것과는 입장과 시각이 매우 달랐다. 미국은 자유무역을 선도하는 국가인만큼 자국 경제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한국인이 한국 경제에 대해서 보호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외국 경제는 개방하길 바라는 것처럼, 미국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너무 순진했나?)  

막연하게 미국인들이 현 세계 경제를 어떻게 볼 것이다 라고 예측하고, 언론에서 나오는 보도를 믿을 것이 아니라, 이런 미국에서 발간되는 책을 직접 구해서 읽고 미국 언론을 접하는 것이 경제를 이해하는 데에는 더욱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달러가 위기라고 해도, 여전히 기축 통화이고 한동안은 그 지위에서 내려오지 않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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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지역 명문고 필독도서 목록에 들어있다는 책방 아저씨의 추천으로 어머니께서 <스콧 니어링 자서전>이라는 책을 사다주셨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책이었지만, 근사한 표지에, 그것도 부모님, 선생님조차 잘 모르시는 것 같은 인물의 자서전을 읽는다는 치기 어린 뿌듯함에 몇 번을 시도하여 겨우 끝까지 읽었다. 

스콧 니어링은 매카시즘 광풍으로 어둡고 혼란스러웠던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진보적인 학자로서 꼿꼿하게 소신을 밝힌 인물이다. 결국 학계에서 쫓겨나 아내 헬렌 니어링과 단둘이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지만, 자연을 벗삼아 살면서 생태주의자로서의 모범을 보여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다. 이런 행적이 어린 마음에도 멋지고 대단하게 느껴져서 지금까지도 존경하는 인물을 물으면 이 분의 이름을 떠올리곤 한다. 다만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는 바로 이 스콧 니어링의 아내 헬렌 니어링이 쓴 책이다. 유년시절부터 혼란스러웠던 청년시절, 스콧과의 만남과 연애, 결혼생활, 그리고 스콧 사후의 삶까지 기록했으니 자서전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헬렌 니어링은 유복한 가정의 둘째로 태어나서 독서를 즐기고 음악을 배우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부모님의 제안으로 유럽으로 건너가 바이올린 레슨을 받게 되고, 그곳에서 첫사랑 크리슈나를 만났다. 뜨거운 연애를 했지만 두 사람이 지향하는 바가 달랐고, 결국 헬렌은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헬렌은 우연한 기회로 스콧 니어링이라는 사람과 알게 되었고, 만난지 얼마 안 되어 사랑에 빠졌다. 스콧은 헬렌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학계에서 추방당할 위기에 놓여 있었으며, 전처와의 사이에 장성한 아들 둘이 있는 이혼남이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젊고 아름다운 헬렌이 배우자로 택하기에는 아깝다며 부모님이 말렸다. 하지만 여느 러브스토리가 그렇듯이ㅡ 두 사람은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허름한 신혼집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함께 사는 동안 정식으로 결혼하지는 않은, 사실혼 관계였다)   

 

다른 사람들이 난롯가에서 축배를 들고 있을 때 내 속의 어떤 것은 오히려 식어가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이 잔치를 벌일 때 음식을 끊고 싶은 생각이 들며, 다른 사람들이 빈둥거리며 놀 때 일하고 싶은 어떤 것이 내게 있다. 스코트처럼 내게도 금욕적이고 청교도적인 어떤 성향이 있다. (p.118) 

스코트는 생활의 질을 높이기보다 삶의 질을 높이고자 했다. 스코트는 이렇게 말했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인생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 (p132) 
세상에는 형편없는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득한데 너는 커다란 집에 산다. 인류의 3분의 2는 영양상태가 고르지 못한데, 너는 지나치게 많이 먹는 사람들을 초대해 그들을 더 과식 상태로 만든다. (p.160)

 

많은 사람이 더 나은 직장, 더 좋은 집을 찾아 도시로 이주하던 시기에 반대로 두 사람은 시골로 향했다. 한적한 시골에 있는 허름한 집을 사서 부족한 솜씨로 보수하고 장작을 패고 먹을 것을 손수 마련하며 연명했다. 하지만 행복했다. 소유욕의 노예가 되지 않고, 어둡고 혼란스런 사회에서 벗어나 순수한 이상을 지키면서 사는 삶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사람에게는 서로를 이해하는 짝이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이 만든 농장은 제법 번성하여, 두 사람이 먹고, 스콧이 단풍나무 숲에서 채취한 메이플 시럽으로 헬렌이 사탕을 만들어 팔면 따로 수익이 생길 정도가 되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상상이 잘 안 되는 생활이지만, 두 사람을 보니 요즘 같은 시대에 직접 운영하는 농장 같은 것이 있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영화관에 앉아서, 단지 일어날 듯 믿게끔 보일 뿐 거의 일어나지 않거나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의 그림을 보는 대신에, 학교 밖에서 당신의 상상력을 시험하고 능력을 일깨우며, 쓸모있고 아름다운 어떤 것들을 만들 수 있는 소질이 당신에게 있음을 느낌으로 확신시켜주는 그런 일들을 하는 데 시간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p.191)

 

차츰 스콧과 헬렌의 생활이 세상에 알려지고, 호응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두 사람의 농장에 직접 방문하는 사람도 있었고, 편지로 대신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더 많았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두 사람의 멋진 뜻이 담긴 말과 글이 책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신기한 것이, 전에는 스콧의 생애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헬렌의 삶에 관심이 가고 더욱 존경심이 느껴진다. 어두운 사회에 맞서는 삶을 살 인물의 반려자들을 보면 대개 인고와 희생으로 그려지는, 비극적인 삶을 산 사람이 많다. 하지만 헬렌의 자서전을 읽고 있자니 어느 귀부인, 재벌 부인보다도 풍요롭고 따뜻한 삶을 산 것 같았다. 물질이나 명예보다도 배우자의 믿음과 사랑을 가진 삶이 더 귀하고, 그만큼 얻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일까? 

게다가 스콧처럼 보통 사람보다 큰 뜻을 품은 강직한 사람과 보폭을 맞춰 걷는 삶을 산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이의 옆에서 평생을 최고의 동료이자 친구로서 산 헬렌이 참 대단하다. 의미 없는 만남과 헛된 명예 대신 이처럼 조화롭고 편안한 삶을 함께 살 누구 한 사람만 있어도 인생이 참 따뜻하고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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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11-19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못 봤는데, 정갈하고 따뜻한 페이퍼예요. 저는 밥상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서, 자연친화도 모르겠고, 가끔 동물친화적이기는 한 듯한데.. 제가 가끔 들르는데 이 페이퍼 늦게 봤네요. 책 표지 모아두니까 정말 예뻐요. 우리도 조화롭고 편안한 삶을 살아요, 블랙라빗님.^-^

주말 잘 보내시구요!

키치 2011-11-22 16:34   좋아요 0 | URL
덧글이 늦었네요. 저도 읽는 책만 이렇고, 실제 생활은 자연친화, 생태적인 밥상은 고사하고 과식이나 안 했으면 싶어요ㅎㅎㅎ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날씨가 많이 춥네요. 따뜻하게 지내고 계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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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없다 - 당신이 속고 있는 가격의 비밀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최정규.하승아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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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난 9기 신간평가단에서 읽은 <모든 것의 가격>에 이어 가격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다. 이렇게 연이어 신간평가단 도서로 선정되고 있는 것만 봐도, 가격 설정과 관련되는 행동경제학 분야가 현재 경제학에서 가장 '핫'한 분야가 아닌가 싶다. 가격 설정의 비합리성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균형)가격이 설정된다는 고전파 경제학의 주장이 뒤집어지는 대표적인 예이기도 하고, 마케팅, 홍보와도 이어지는 소비자 경제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지 짐작할 뿐이다. 

각설하고, 이번에 읽은 <가격은 없다>는 MIT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논픽션 작가 윌리엄 파운드스톤이 쓴 책이다. 경제학자가 아닌 사람이 경제학에 관한 책을 썼다는 점이 신선하다. 저자가 논픽션 작가여서 그런지, 지루한 이론 설명이나 독자를 심드렁하게 만들기 쉬운 주장보다는, 실제 주변에서 또는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사례들이 많이 등장한다. 

가령 '27장 식당 메뉴의 심리학(p.223-231)'에서는 시즐러, TGI FRIDAYS 같은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 비치된 메뉴판의 비밀에 대해 알려준다. 이런 레스토랑에 갈 때마다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의 스테이크를 '보기만 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런치 메뉴나 세트메뉴를 주문하곤 하는데, 이것은 결코 내가 합리적이고 검소한 소비자여서가 아니라, 레스토랑 측에서 미리 계산한 전략에 따른 것이다. 비싼 메뉴를 보고나서 싼 메뉴를 보면 (사실 비슷한 가격이거나 음식의 양이나 맛에 비해 비싼 건데도) 훨씬 저렴하게 느껴져서 싼 메뉴를 고른다는 것이다. 

또한 '32장 허공에 지불하는 가격(p.253-258)에는 하루에도 몇십통씩 보내는 문자메시지 가격의 진실에 대해 나와 있다. '이메일이나 인터넷, 그리고 음성메시지와는 달리 문자메시지는 다른 무선 네트워크에 그냥 업혀가는 것(p.257)'인데도 엄연히 한 건당 가격이 책정되어 있고, 소비자들은 통화 요금보다 저렴하게 느껴지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나도 통화는 될수록 삼가고 문자로 짧게 보내는 걸 선호하는 편인데, 그것조차 비싼 가격이라니 억울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보면 아무리 싸게 판다는 판매자의 말도 믿을 것이 못 된다. 마치 '밑지고 판다'는, 알면서도 속는 장사치들의 말처럼 말이다. 세일, 1+1, 공동구매, 재고처리(사장님이 미쳤어요!) 등등, 소비자로 하여금 득 보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판매 기법들에 결코 속으면 안 되겠다.

이런 사례뿐만 아니라 가격에 대한 오해와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착각, 행동경제학에 대한 소개 등 이론적으로도 읽을만한 부분이 많아서 좋았다. 앞으로는 가격을 볼 때 좀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해서 구매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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