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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단식 - 머리를 쓰지 않고 발로 뛰지 않는 IT 중독을 벗어나라
엔도 이사오 & 야마모토 다카아키 지음, 김정환 옮김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디지털 시대에 책을 좋아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예전엔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가장 흔한 대답이 음악감상, 그리고 독서였다. 하지만 요즘은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이상한 사람까지는 아니라도 별난 사람, 신기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또는 카페 안에서도 책을 읽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SNS서비스 대화에 열을 올리거나, 정신없이 게임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는 사람들을 훨씬 자주 마주친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지극히 아날로그 적인 매체인 책을 읽고 있노라면 시대에 발맞춰가지는 못할 망정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고독감이 든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에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지만 최근에는 인터넷 중독, 게임 중독, 스마트폰 중독 등 디지털 시대의 부작용이 늘어나면서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과 자기점검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경영 전략의 세계적 석학 엔도 이사오 교수와 IT업계 CEO인 야마모토 다카아키가 쓴 <디지털 단식>가 바로 그러한 책이다.
나는 처음에 저자가 다름아닌 IT업계 CEO라는 점이 너무나도 놀라웠다. 이 책은 문제의식 면에서 보면 얼마 전에 읽은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과 비슷한데, 그 책은 저자가 호주의 언론인이고 디지털 기기에 중독된 세 청소년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충분히 고민할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IT업계 CEO라면 누구보다도 디지털 기술을 사랑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IT 기술, IT 기기를 보급하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어야 할텐데, 되레 '디지털 기기로부터 멀어져라', '디지털 단식하라'고 주장한다는 건, 업계에서 미운털이 박히는 것은 물론이요, 자기 밥그릇마저 위태해질 얘기 아닌가.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왜 IT업계의 CEO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 책을 썼는지 이해가 되었다. IT업계 종사자임에 앞서 한 조직의 CEO로서, IT 중독으로 인해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이 전에 없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인간의 처리 능력을 넘어섰고, 그로 인해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사람들을 만나며 보내는 아날로그 시간이 격감했으며, 이로 인해 조직의 효율성이 하락하고 창조성이 약화되어, 분명히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업무에 할애하고 있음에도 조직의 성과는 늘어나지 않는, '이유 없이 바쁜 상태'가 만연한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세계적인 경영 석학 엔도 이사오의 도움을 받아 개인뿐 아니라 조직이 디지털 중독에서 벗어나 효율성과 창의성을 높일 수 있도록 일종의 '처방전'을 모색했다.
업무 시간에 상사 몰래 컴퓨터,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면 - 이제 디지털 단식 하라
90년대에는 컴퓨터, 21세기에는 휴대폰, 스마트폰 등 최신형 IT기기가 등장할 때마다 기업에서는 앞다투어 직원들에게 기기를 보급하고 조직의 성과가 향상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가. 좋은 점도 분명 있지만, 컴퓨터로, 휴대폰, 스마트폰으로 업무와 상관없는 일을 하면서 업무시간을 때우는 '월급 도둑'도 늘어났다. 직장인 입장에서도 하루에도 수십 건의 이메일을 확인하고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드느라 정작 '일다운 일'은 못한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클 것이다. 현장에서 뛰며 직접 배우는 것보다 인터넷, IT기술을 다루는 것에 더 익숙한 신입사원이 늘어날 수록 이러한 고민은 커질 것이다. 듣자하니 요즘 신입사원 중에는 상사가 어떤 자료를 찾아오라고 하면 정말 그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오기'만 하고, 그 자료가 어떤 결론을 담고 있고, 업무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등을 '생각해오지'는 않는 사람이 많아서 조직에서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선배로부터의 교훈,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힘... 어쩌면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해악이 효용을 넘어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디지털 중독 등 디지털 기기의 폐해를 다룬 책들 중에서도 이 책은 직장, 기업의 업무방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입사원, 중간관리자, CEO 등 조직내 지위에 따라 어떤 문제 현상을 일으키기 쉽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나누어 설명되어 있어서 디지털 기기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를 안고 있는 직장인, CEO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