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 - 승자의 맞은편에서 바라본 세상,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부활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조구호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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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배운 역사와는 또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 구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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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외롭다면 잘되고 있는 것이다
한상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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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가 거기서 거기지', '별 다른 얘기 있겠어?' 이렇게 자기계발서를 욕하면서도 계속 읽고 있는 이유는 뭘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자기계발서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서' 계속 읽고 있는 것 같다. 서점에 가서 제목이나 표지가 마음에 들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단 들춰는 본다. 대강 보다가, 소설이나 다른 책 같으면 그냥 넘길 만한 대목인데도, 자기계발서는 워낙 기대한 것이 없다보니 어떤 문장이 마음에 콕 박히면 '이거이거 끝까지 괜찮은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고, 급기야는 '끝까지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읽은 자기계발서만 벌써 몇 십권은 훌쩍 넘은 것 같다. 에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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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외롭다면 잘되고 있는 것이다>도 그렇게 만난 책이다. 제목이 워낙 임팩트가 강해서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마침 도서관에 있길래 '뭐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빌렸다. 그런데 아무 할 일이 없어서 시간이나 때우려고 집어들었다가 단숨에 읽어버렸다. 기대보다 괜찮았다.

 

2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세상에는 플러스형 인간과 마이너스형 인간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판단 기준은 간단하다.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한다면 플러스형이고, '되고 싶은 것'을 추구한다면 마이너스형 인간이다. '하고 싶은 것'이 '되고 싶은 것'보다 먼저이며,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p.78)

 

나는 한참 힘들던 시기에, 차라리 더 힘든 길을 선택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혼자 떠났고, 그곳에서 한층 깊은 외로움에 빠져들었다. 그 후에야 깨달았다. 외로움 속으로 정말 깊숙이 들어가면, 그곳에는 '남들은 다'라고 할만한 '남들'마저 없다는 것을. (p.124)

 

일단 외로움의 정의부터. 우리가 외로움 하면 주로 떠올리는 영단어는 단연 '론리니스(loneliness)'다. 내 곁에 아무도 없고, 연락할 사람조차 없는 허전하고 허무한 마음이 바로 이 론리니스다. 하지만 론리니스를 넘어서는 외로움의 단계가 따로 있다. 바로 절대고독의 경지인 '솔리튜드(solitude)'다. 솔리튜드라고 하면 나는 왠지 이육사의 '광야'가 떠오른다. 역사와 공간마저 초월하여 존재의 경계에 선 순간에 느끼는 감정. 뭐 나는 아직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지만, 남들이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 존재와 맞부딪치는 것을 절대고독, 솔리튜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말하면 어려운 얘기처럼 들리지만, 저자는 이 어려운 얘기를 가벼운 소실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썼다. 설리, 정은, 도균, 오 대리 등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나오고, 직장문제, 연애, 가족, 친구 문제 등 일상적인 고민들이 이어져서 마치 트렌디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사회인이라서 그런지 직장문제에 대한 얘기가 가장 앞부분에 나온다. 성적에 맞춰, 부모님과 선생님의 조언에 맞춰 대학을 선택하고, 그 대학 간판에 맞춰 직장을 선택하는 사람들. 운좋게 그 선택이 자기 적성에 딱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적성과 맞지 않아 괴로워하고, 어떤 사람들은 적성이 무엇인지조차 평생 모르고 살다 간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책을 읽으면서 결국 외로움과 맞설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선생님이, 친척들이... 이렇게 남들이 하라는 것을 하지 않겠다고 말할 용기가 없고, 그랬다가 그 사람들에게 버려지고 소외될 것이 두려워서가 아닐까. 하지만 진짜 외로움은, 연인이 내 마음을 몰라주고, 친구가 내 말을 못 알아 듣고, 수많은 인파 속에 있는데도  그 안에 존재조차 알아주는 이가 한 명도 없을 때 온다는 걸,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홀로 방안에 있을 때보다 더 큰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를 알면서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큰 대학, 큰 조직이 무슨 소용일까. 외로움을 피할 때 더 큰 외로움이 밀려들 뿐인데...

 

우리가 사랑하면서도 외로움에 쩔쩔매는 것은, 상대에게는 엄격하며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이중 잣대를 적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의 잘못은 어떤 것이든 용서받을 만하며, 만일 용서받지 못한다면 사랑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 상대의 허물은 용서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용서가 안 되니까 괴롭고, 배신감을 주체하지 못해 외롭다. ...  분노의 8할은 과거의 일 때문에 일어난다. 나머지 2할 역시 지금의 것만은 아니다. 현재의 무엇인가가 과거의 아픈 상처를 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p.100)

 

엄마는 딸의 출발점이다. 여자로서의 모든 인생이 엄마로부터 출발한다. 엄마가 죽어도 그 영향은 그대로 남아 딸을 평생에 걸쳐 지배한다는 말도 있다. 엄마에게 물려받은 세계관 때문이다. ... 남자들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기 엄마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낯선 엄마'가 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한다. 자기들이 세상을 이끌어간다고 믿지만, 그게 착각일 뿐이라는 것을. (pp.334-5) 

 

이야기는 직업과 일에 대한 이야기에서 조금 더 근원적인 문제, 사랑과 인간관계,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심리학에 대해 조금씩 공부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정말이지 모든 문제는 가족으로 통한다. 특히 부모님과의 관계. 연애 문제, 친구 문제도 결국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느꼈던 결핍이나 의존, 애착 같은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는 설리라는 인물이 대표적인 예로 그려진다. 완벽을 추구하는 어머니, 그리고 끝내 그런 어머니 곁을 떠난 아버지. 이 두 사람과의 관계에서 설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니 같은 여자가 되고 사랑하는 남자를 아버지 같은 남자로 만들고 미워하고 괴롭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아버지보다도 더 중요하다. 사실 예전에는 가족이나 결혼보다도 여자는 여자대로 자신의 삶을 살고 사회적 성공을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요즘은 사회적 성공만큼이나 아이가 정서적인 안정을 형성해주고 부모와의 유대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 것 같다. 근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내딴에는 잘해준다고 한 일을 아이가 고스란히 받아줄 수 있을까? 아이는 아이대로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불편하게 느끼지 않을까?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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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문화비평가 마셜 매클루언이 말했다. "모든 문화와 문명의 형태는 외로운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대상을 위해 만들어낸 인공 대체물 같은 것이다. 직장이나 취미, 가족, 종교, 심지어는 사랑까지도. 인간은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런 것들을 발명해냈다." 매클루언의 말은 이렇게 수정되어야 한다. '인간은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문화와 문명을 만들었지만, 정작 그 문화와 문명의 발전을 이끌어간 것은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p.278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솔리튜드 훈련'이라는 것을 받게 된다. 솔리튜드 훈련은 혼자를 의식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면서 외로움을 희망과 가능성의 시간으로 바꾸는 연습을 말한다. 이 훈련은, 설리의 말을 빌리면 '노후를 위한, 그것도 수령자가 가입자 본인인, 세상에서 유일한 대박 보험'이다. 산다는 건 결국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길, 남이 있어야, 매체가 있고 물질이 있어야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외로움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전에 미리 외로움과 친해지고, 외로워질 시간을 어떻게 행복하게 채울 수 있을지 준비를 해두면 앞으로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이미 책이나 음악 같은, 혼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취미가 있어서 다행이다. 물론 책도 남들이랑 같이 읽으면 더 재밌고, 음악도 남들로부터 지식이나 새로운 관점을 얻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언젠가 혼자일 때, 심지어는 책이라는 물질이 내 손에 없고 음악을 들을 길이 없어져도, 나는 책 생각, 음악 생각을 하며 혼자 충분히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지금 생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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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물건 -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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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TV가 너무 좋아서 방송국에 취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TV를 일주일에 십 분도 채 안 보게 되었고, 이러다가는 TV가 없어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대신 인터넷으로 미국과 일본 방송을 본다는 게 함정...) 그런데 요즘은 TV를 꽤 본다. 주로 버라이어티. 일단 일요일에는 시즌2로 바뀐 <1박 2일>을 꼭 본다. 그 전엔 한번도 안 봤는데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방사수는 못하지만 다시보기 서비스로 <힐링캠프>를 챙겨본다. 이효리 편도 좋았고, 최근에 방영된 법륜스님, 정대세 선수 편도 좋았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편이 바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님 편. 전부터 매체를 통해서 자주 성함을 듣기는 했지만 어떤 분인지는 잘 몰랐는데, 이 방송을 통해 살아오신 얘기도 듣고, 한국사회, 한국 남자들에 대한 파격적이면서도 통찰력있는 견해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방송을 보자마자 바로 교수님의 책 두 권 <남자의 물건>과 <노는 만큼 성공한다>를 구입했다. 두 권 다 좋았지만, 같이 읽은 동생도 더 재밌다고 한 <남자의 물건>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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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하려고 산다. 재미있으려고 산다. 한국 사회에는 행복과 재미를 이야기하면 한 급 아래로 내려다보는 어쭙잖은 어숙주의가 존재한다. 자유, 민주, 평등과 같은 가치를 이야기하면 폼 나 보인다. 그러나 자유, 민주, 평등은 수단적 가치다. 행복과 재미는 궁극적 가치다. 물론 수단적 가치가 확보되어야 궁극적 가치를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자유, 평등, 민주라는 조건이 이뤄진다고 자동적으로 사는 게 행복하고 재미있어지는 것이 아니다. (p.33)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남자의 물건'에 관한 책이다. 이어령, 신영복, 차범근, 문재인, 안성기, 조영남, 김문수, 유영구, 이왈종, 박범신 등 이 시대를 대표하는 중장년층 남성 명사 10인이 아끼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 물건을 통해 그 사람의 인생과 성격 등을 알아보는, 이른바 '물건을 통해 매개된 존재의 스토리텔링' (p.8)이라고 할 수 있다.

 

물건이라고 해도 대부분 대량생산된 똑같은 '제품'들인데 어떻게 소유자의 개성과 인격을 나타낼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대량생산된 제품 중에서도 사람마다 고르는 물건은 제각각이다. 내가 자주 들르는 커뮤니티에는 가방이나 지갑, 필통에 담긴 소소한 소지품을 공개하는 게시판이 있다. 이 곳만 보아도 사람의 취향과 개성이 전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꽃무늬에 집착하고, 어떤 사람은 특정 브랜드 제품만 구입한다. 유난히 분홍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노톤의 물건만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뭐, 명사들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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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남녀 차이를 '상자'와 '책상'으로 비교해 설명한다. 여자의 물건은 대부분 '상자'다. 상자는 여자의 자궁 같은 것이다. 생명을 잉태해 시간을 소유하는 것처럼, 여자는 상자 안에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보석을 담는다.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남자는 시간을 소유하는 대신 공간을 정복하려 한다. 그래서 옛날 남자들은 달리는 말에 그토록 집착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금전적 여유가 조금만 생기면 남자들은 자동차 전시장을 기웃댄다. 보다 빠르고 폼 나는 차를 타고 달리는 만큼 그 공간이 자기 것이 된다는 환상 때문이다. (pp.164-5)

 

책에 소개된 명사들의 물건들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을 몇 가지 소개해 본다. 먼저 이어령의 책상. 공부하는 사람한테 책상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나한테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께서 열심히 번 돈으로 사주신 책상이 첫 책상이었다. 원목으로 된 아주 좋은 책상이었는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몸이 커지는 바람에 사촌동생에게 물려주었다. 지금 쓰는 책상은 고등학교 때 구입했다. 아주 튼튼하고 널찍하지만 방에 비해 너무 커서 조금 작은 것으로 바꿀까 몇 번을 고민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어령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책상이라는 것은 '끝도 없는 광활한 지식의 영토를 달릴' 때 필요한 준마 같은 것이라고 하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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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목적을 사는 게 아니라, 과정을 사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목적이 중요하다. 그러나 목적에 의해 과정이 생략된 삶을 사는 것처럼 불행한 삶이 없다. 군대 간 이들은 제대 날짜만 생각한다. 유학 떠난 이들은 학위 따는 날만 기다린다. 언젠가는 제대하고, 언젠가는 학위를 딴다. 그러나 제대 날짜를 기다리고, 학위 따는 날을 기다리며 지나간 내 젊은 날은 과연 내 삶이 아니란 이야긴가? 그렇게 제대하면 뭐하고, 그렇게 학위를 따면 뭐하는가. 그 사이에 '우리 기쁜 젊은 날'은 맥없이 사라져버리는데. (p.187)

 

"감옥에 있을 때도 꼭 미운 사람이 하나는 있어요. ... 그래서 그 사람이 출소하잖아요? 나가면 그날 저녁은 참 행복해요. ... 그런데 며칠 있으면 또 그런 사람이 생겨나요. ... 그러면서 깨달았지요. 그 사람에게 물론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이 환경이 그런 대상을 필요로 하는구나." (pp.190-1)

 

신영복 교수님 인터뷰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 세상에는 미워하는 마음이 참 많다. 남을 미워하고, 조직을 미워하고, 제도를 미워하고, 사회를 미워하고... 나도 마찬가지다. 누가 밉기도 하고, 현실이 밉기도 하고, 남이 미운 얘기하는 얘기도 밉다. 그런데 신영복 교수님 말씀을 읽고 미움이라는 게 누가 나한테 그런 마음이 들도록 만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원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마음에 미움이 없다면 미운 사람이 있어도 밉지 않을텐데. 나는 특히 남이 남을 미워하는 얘길 듣는 게 참 싫다. 어머니가 가족들을, 지인들을, 하다 못해 개까지 밉다고 하는 얘길 들으면 내 마음에 미움이 일어나는 것 같아서 힘들고 괴롭다. 근데 어쩌면 그게 어머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내 마음에도 미움이 있기 때문에 더 힘들고 괴로운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이 마음을, 미움을 어떻게 풀면 좋을까. 신영복 교수님은 서예를 하시면서 마음을 다스린다고 하시는데, 나한테는 어떤 처방이 좋을까.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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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놓고 보니 진지한 내용만 있는 것 같은데, 차범근, 안성기 인터뷰도 굉장히 재밌고, 문재인, 김문수 인터뷰도 (인터뷰 자체가 재미있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김정운 교수님의 해석이 참 재밌었다. 차범근 감독님은 사실 내가 아주 어릴 때 현역으로 활동한 분이고 감독으로 데뷔하신 이후의 모습만 본터라 전성기에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하셨는지 잘 몰랐는데 이 책을 읽고 확실히 알았다. 안성기 님도 배우로만 봐왔는데 미술에 조예가 깊다고 하셔서 신선했다. 온 국민이 인정하는 '국민 배우'가 겨우 5천원짜리 캔버스를 산다고 아내에게 타박을 듣는 대목도 재밌었다

 

이렇게 책 내용을 다시 떠올려보니 책 앞머리에 여자에게는 화장품, 가방, 옷, 구두 같은 소중한 물건들이 많이 있지만 남자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대목이 새롭게 다가온다. 왜 여자들한테는 화장품이나 옷 같은, 외모를 꾸미는 데에 필요한 물건들만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반론도 반론이지만, 그것들을 빼면 과연 여자들에게는 어떤 소중한 물건들이 있을까,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음, 나한테는 책, 추억의 물건들이 담긴 상자, 딱 이 두 가지뿐인데, 이 둘로 어떻게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두고두고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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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남자의 물건>과 <노는 만큼 성공한다>를 연달아 읽고나니 다른 저서들도 읽어보고 싶어져서 냉큼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남자가 아니라도 <남자의 물건>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이 책도 여자, 심지어는(?) 결혼 안 한 여자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한다. 이렇게 이전 저서들을 다 읽을 쯤이면 이 책의 후속편 내지는 김정운 교수님의 다음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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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의 반란!
대니얼 카너먼 지음, 이진원 옮김 / 김영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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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경제학 책에 따르면, 최근 경제학계에서 가장 '핫(hot)'한 이슈는 바로 경제학과 심리학의 만남이라고 한다. 행동경제학, 경제심리학, 소비자심리학 같은 학문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워낙 유명해져서 새롭지도 않은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 전의 몇 십 년에 걸쳐 경제학계에서 주류를 이루었던 논쟁들이 대개 경제학과 수학, 통계학 등을 결합하는 경제학의 실증에 관한 내용, 또는 시장에서의 정부, 또는 제도의 역할 등을 다루는 규범적인 내용이었던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퍽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경제학과 심리학이 만남으로써 '합리적 경제인' 이라는, 아담 스미스 시절부터 내려온 경제학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부터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이슈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바로 대니얼 카너먼이다. 1979년에 쓴 논문으로 행동경제학을 창시했고, 심리학과 경제학을 결합함으로써 경제학의 새 지평을 연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심리학자로서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워낙 '대세'인 분이다보니 여러 책을 통해 이 분의 이름과 이론에 대해서는 자주 접했지만 정작 저작을 읽어볼 기회는 없었는데, 이번에 이제까지의 그의 연구를 총정리한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책이 출간되어 그의 글을 바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총 5부에 걸쳐 이제까지 그가 연구한 내용들을 꼼꼼하게 소개했다. 내용은 많지만, 핵심은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반론'이다. 그 유명한 '뮐러리어의 도형'에서처럼(양쪽 끝에 화살표시가 붙은, 서로 길이가 다른 것 같으나 실제로는 같은 두 개의 평행선) 인간은 길이가 같은 선을 다르다고 인식하기도 하고, 인과관계가 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또한 인간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때 '자아 고갈'이라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자아 고갈 현상은 포도당을 섭취하면 잠깐 동안이지만 약화되는데, 이로 인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밥을 먹기 전과 후의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식사 전후의 가석방 승인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났다고 한다. (p.67)

 

비합리성의 또다른 예로 '후광효과'를 들 수 있다. 후광효과는 첫인상이 이후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하는데, 인터뷰나 면접을 할 때 서류 평가점수와 별개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서류 점수가 좋을 수록 인상도 좋고 잠재력도 높은 것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러한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평가사항을 정해놓고, 자신의 직관이나 인상은 무시하고 오로지 그 기준에 맞춰 평가하는 것이 평가의 정확성을 높인다고 했다. 이제까지 인터뷰, 면접이라는 것이 면접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그런 면접일수록 타당성이 떨어지고, 그만큼 회사나 조직에 손실이 될테니 기피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피면접자인 경우가 많은 사람으로서 조금은 위안이 된다.

 

내가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한 연구는 바로 '경험 측정'이었다. 어떤 연구인지 짧게 설명해보자면, 60년을 평생 행복하게 산 사람과 65년 중 60년은 행복하게 살고 마지막 5년은 전보다 덜 행복하게 산 사람이 있다면 누가 더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실험 결과 많은 사람들이 전자라고 답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두 사람 다 60년을 행복하게 살았다는 점에서 똑같다. 비록 마지막 5년을 전보다 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해도, 그 기간 때문에 전체 인생을 평가절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떤가. 책만 해도, 앞의 200장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마지막 50장이 재미없었다면 우리는 보통 그 책을 '재미없다'고 말하고, '재미없는 책을 읽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앞의 200장을 읽은 즐거운 경험은 사라진다. 사랑이, 추억이, 인생이, 결국 마지막은 모두 비극으로 끝난다고 해서 그 시간 전체를 비극으로 기억한다면 너무 아깝고 아쉽지 않을까?

 

 

그러고보니 최근 학계의 트렌드 중 하나는 '경제학 뒤집기'인 것 같다.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도 그렇고, 최근에 나온 마이클 샌델 교수의 신작 역시 도덕 철학의 입장에서 경제학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만큼 경제학 이론 중에 허구적인 전제도 많고, 현실과 맞지 않는 내용도 많기 때문이겠지만, 또 그만큼 경제학이 현대 사회와 다른 학문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인 것도 같다.

 

경제학을 배우고 있고, 심리학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에 대해 알게 되어 좋았고, 앞으로 후속 저작이나 다른 책들을 통해 더욱 깊이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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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 한 사회생물학자가 바라본 여자와 남자
최재천 지음 / 궁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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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름만 보고 남자분이신줄 알았어요." 내 이름을 먼저 알고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런 말을 하며 놀란다. 내 이름이 여자한테 흔히 쓰이는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싸이xx에서 검색해보면 나와 성도 같고, 이름도 같고, 출생연도까지 같은 여자사람이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있기는 하다.) 그래도 나는 내 이름이 좋다. 아버지께서 직접 사주작명 공부를 해가며 어렵게 첫 자를 정하고, 끝자는 항렬을 따라 정성들여 지어주신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항렬자가 여자 이름에 흔히 쓰는 자가 아닌 탓에, 어머니는 딸인데 굳이 항렬자를 쓸 필요가 있느냐며 여자다운 이름으로 하자고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도 엄연히 이 집안의 자손이라며 항렬자를 고집하셨고, 그 결과 나와 내 여동생은 '남자 이름 같다'는 말을 들으며 이름에 걸맞게 씩씩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시대가 변해서 요즘은 '남자 이름 같다' 말보다는 '중성적인 이름이다' 라는 말도 아주 종종 듣는다. 그러고 보면 내 이름과 비슷한 이름이 TV 드라마 여주인공 이름으로 쓰이기도 하는 것 같다. 내 이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요즘 젊은 부모들이 선호하는 이름들도 대개 민준, 민서, 시우, 지우처럼 언뜻 들어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가는 이름들이라고 한다. 앞으로는 남성적인 가치와 여성적인 가치를 모두 아우르는 사람이 성공하기 쉽기 때문에 이런 이름들을 선호한다고 하는데, 우리 아버지가 미리 앞을 내다보신 것일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얼마전 최재천 교수님이 2003년에 내신 책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를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발견했다. 성구별 없이 중성적인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최근에서야 나타난 트렌드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찍이 십 여 년 전부터 이런 생각을 하셨다는 것이 놀랍다.

 

여자 아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은연중 그 이름에 걸맞게 살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일이다. 아예 여성 이름과 남성 이름이 정해진 영어권의 사람들도 최근 다양한 이름들을 만들어 부르고 있다. 우리말은 영어에 비해 훨씬 덜 성차별적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딸이든 아들이든 아름답고 지적인 이름을 지어줄 수 있다. (p.34)

 

최재천 교수님 책은 얼마전 <통섭의 식탁>을 읽고나서부터 틈틈이 찾아 읽고 있다. 수학의 '수', 과학의 '과' 자만 들어도 치를 떨었던 전형적인 문과 인간인 내가 오로지 자의로 과학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니...! 사실 이전까지 과학 하면 어려운 이론과 용어도 많아 좀처럼 가까이할 엄두가 안 났는데, <통섭의 식탁>을 읽으면서 과학이라는 것이 우리 생활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으며(당연하다!), 인문학, 사회과학 같은 학문과 마찬가지로 사회를 이해하고 통찰하는 데에도 새로운 관점을 줄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 읽은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역시 과학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고 통찰할 수 있는 책이다. 여성주의, 페미니즘에 관한 얘기를 많이 듣지만, 대부분 인권과 평등권 같은 권리 차원의, 당위적인 논리에 기반한 경우가 많다. 그에 반해 이 책은 교수님의 전문 분야인 사회생물학에 기반하여 자연을 근거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결코 열등하지 않고 오히려 우월한 사례도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양성평등의 당위성을 이끌어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도발적이고 급진적인 내용 때문에, 예상대로, 출간 당시 대한민국 마초들로부터 '남자망신 다 시킨다'며 원색적인 비난까지 들으셨다고 한다. 하지만 양성평등의 당위성을 사회생물학에서 찾는 것은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은 내용이라고 하니 일부 남성들에게만 반발을 산 것은 아닌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이 책이 여성의 권익을 무조건 옹호한다기 보다, 양성의 차이와 동등성을 인정함으로써 여성의 권리도 신장하고, 남성들 또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역할을 찾자는 내용인 것 같다. 책에 보면 '여성의 시대가 오면, 남성들도 무겁기만한 책임의 굴레를 벗고 인간답게 살 날이 오리' 라는 말이 나온다. 여자로서 '여자답게', '여성스럽게' 사는 것도 참 억울하고 불편한 일이지만, 남자가 '남자라서', '남자이기 때문에' 느껴야하는 부담과 억압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얼마 전 읽은 김정운 교수님의 <남자의 물건>에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나왔다. 남자 화장실 중에는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눈물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감정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감정인 슬픔과 분노의 산물이다. 그런데 그저 남자라는 이유로 대한민국 남자들은 인간으로서 감정을 표현할 권리를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난 내가 여자로 태어나서 불쌍하다는 생각만 하고 살았는데, 이런걸 보면 남자들도 불쌍하다. (아 아버지...)

 

 

그러고보니 최재천 교수님이 이 책 제목을 기막히게 잘 지으셨다. 남자도 화장을 하고 여자도 복근을 키우는 시대, 이것이 바로 현재 2012년 대한민국의 모습이 아닌가. 어떤 이는 말세라고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른다. 세상이 미쳤다고,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비비크림을 바르며 외모에 자신감을 키우는 남자들과 운동하는 재미에 푹빠져 삶의 활력을 얻는 여자들의 모습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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