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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 MIT 경제학자들이 밝혀낸 빈곤의 비밀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지음, 이순희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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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카스 스와루프의 대표작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빈민가 출신의 주인공 소년은 종교 싸움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을 살게 되지만, 수많은 역경을 딛고 결국 퀴즈쇼의 영웅이 된다. '고진감래' 식의 줄거리만 들으면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 같지만 찬찬히 보면 생각해 볼 거리가 많다. (원작 소설을 읽으면 더 도움이 된다.) 영화 속에서 빈민가 사람들은 오늘 당장 먹을 밥도 없으면서 영화는 죽어라고 열심히 본다. 조금이라도 더 일해서 돈을 벌면 좋으련만, 종교적 차이, 문화적 차이를 이유로 싸움을 벌이기에 더 급급하다. 제대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조차 기껏해야 얻을 수 있는 일자리라고는 선진국 대기업이 아웃소싱하는 회사의 저임금 일자리뿐. 고개를 들면 (부자들의 소유임이 분명한) 고층 빌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세워지고 있다. 이 사람들이 하나같이 열광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퀴즈쇼. 그들의 눈에는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퀴즈쇼의 우승자가 되는 것이, 열심히 일해서 제 힘으로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승산이 있고 이치에 맞게, 즉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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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는 이같은 빈민들의 생활양식을 경제학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라니?'. 제목만 보고 사실 처음엔 의아했다. 원제를 찾아보니 'Poor Economics'. 우리말로 풀이하면 '빈곤 경제학,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학' 정도가 되는데, 우리말로 번역되면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라는 다소 파격적이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으로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이 왜 더 합리적일까? 책을 읽은 사람으로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글자 그대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학자나 정책가, 넓게는 부자들과 다른, 나름의 판단 기준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빈민들을 위한 경제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기준에 맞는, 그들의 판단을 고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가령 책에 제시된 의료 문제를 보자. 선진국 출신의 학자, 정책가 대부분은 빈국의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품을 제공하거나 예방접종을 하는 식의 안일하고 막연한 대안을 내놓는다. 하지만 빈민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신념과 문화가 있고, 또한 사람마다 심리적인 반응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대안은 한계가 있다. 그보다는 행동경제학에서 나온 그 유명한 '넛지(nudge)', 즉 '찔러넣기' 개념을 활용하여 아주 기초적인 의료 활동은 따로 선택할 수 없는, 주어진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낫다. 

 

 

학교를 중퇴하거나 학교에 아예 발도 들여놓지 못한 아이들 가운데 태반은 누군가의 잘못된 판단으로 희생된 것이다. 부모가 너무 일찍 포기했거나 교사가 가르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경우 혹은 학생 자신이 자신감을 잃은 경우다. 이들 중에는 경제학 교수나 대기업 대표가 될 잠재력이 있는 아이도 있지만 결국에는 일용직 노동자나 소매점 주인, 약간 운이 좋은 경우 하급 사무직원이 된다. 그들이 잃어버린 빈자리는 대개 입신의 기회를 제공할 여력이 있는 부모의 평범한 아이들로 채워진다. (p.140)

 

 

교육 문제를 보면, 대부분의 빈국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걸쳐 타국의 식민지였던 역사적인 경험이 있다. 이로 인해 교육 제도가 제국의 상층부를 위한 엘리트를 양성하는 엘리트 위주의 교육, 그리고 필연적으로 입시와 결과 위주의 교육으로 변질되었다. (식민지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이로 인해 선진국 교육이 당장 잘 하지 못해도 장기간 아이의 잠재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는 것과 달리, 빈국의 교육은 소수의 - 집이 부자이거나, 비록 집은 가난하지만 똑똑한 - 아이들만 혜택을 보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교육은 19세기 학교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사는 언젠가 과거의 일이 되고, 경제는 나아질 수 있지만 제도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고치지 않는 한 계속 남는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빈국이 아니지만, 빈국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도 백년지대계라는 교육 시스템을 고치지 않느다면 언젠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체현상을 겪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미국에는 자식이나 손자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노인이 많다. 그러나 사회보장연금이나 노인의료보험처럼 자식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갈 방도를 갖추는 것은 노인이 존엄성과 자신감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노후를 대비하는 사람은 자신을 부양해줄 것을 기대하며 자녀를 많이 낳을 필요가 없다. 자신을 부양할 의사나 능력이 있는 자식이 없어도 의지할 수 있는 공적 대비책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효율적인 인구 억제책은 자녀(그중에서도 특히 아들)를 많이 둘 필요가 없게 하는 것이다. 건강보험, 노령연금 같은 효율적인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거나 수익성 높은 노후 대비 금융상품을 개발하면, 출산율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딸을 차별하는 의식도 사라지게 된다. (pp.182-3)

 

 

인구 문제도 있다. 6,70년대에 유행한 산아제한 구호 중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자녀수와 경제력은 반비례 관계라는 인식이 높다. 인구가 줄면 경제력이 높아진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사실일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그로 인해 여아 살해 같은 인권 차원의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또한 자녀수와 경제력이 반드시 인과관계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책은 전통적인 사회적 기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잘 운영되도록 서포트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각국의 사회 문화를 (선진국의 그것으로) 획일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문화는 유지하면서 나쁜 점은 개선하고 좋은 점은 살릴 수 있도록 정책가들이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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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층, 또는 빈국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 이전에 왜 지원해야 하느냐, 지원하면 어떤 효과가 있느냐 하는 원조의 이유와 효과에 대한 논란도 있다. 더 나아가면 '과연 빈곤이라는 것이 존재하느냐' 라는, 빈곤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품는 학자들도 있다. 이 책 초반에도 그러한 논의가 나온다. 어쩌면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격일 수도 있고, 빈곤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인간이 스스로 헤집고 나올 수 없는 덫과 같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눈을 감고 완전히 등을 돌리는 것은 답이 될 수 없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빈곤 문제에 관해 의료, 교육, 인구, 금융 등 다양한 측면으로 접근하여 보다 심도있게 빈곤문제를 고민할 수 있게 한 점이 좋았다.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의 사례가 등장하여 읽는 재미도 있었고, 담비사 모요나 아마르티아 센 같은 유명 학자들의 빈곤에 관한 입장과 이론들을 자세하게 정리한 점도 좋았다.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통념을 뒤집고 비판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비합리성을 강조하는 경제학의 최근 경향과도 맞아떨어지고, 행동경제학과 심리학에 관한 논의까지 들어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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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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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 <헌법의 풍경>에 이어 세번째로 김두식 교수님의 책을 읽었다. 김두식 교수님이 쓰신 책들은 '한 번 읽으면 멈출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쩌다보니 모 감자칩 광고 카피와 비슷한 말이 나왔다.) 이 책 역시 책을 든 순간부터 좀처럼 멈추기가 힘들었다. 다만 이 책이 앞에 읽은 두 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앞에 읽은 두 권은 내용이 다소 심각하고 고발적이었던 반면, 이 책은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욕망'에 관한 저자의 내밀한 고백을 담은 책이라서 개인적이고, 읽기에도 훨씬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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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이슈들은 어찌보면 잡다하고 뜬금없다. 이제는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듯한, 그 유명한 '신정아 사건'과 영화 '색.계' 등 다소 자극적인 주제부터 저자의 가족과 어린 시절, 학창 시절에 관한 개인적인 추억, 그리고 이전 책에서도 주제로 삼았던 한국 기독교와 사법제도 같은 국가적, 사회적인 이슈까지 다양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책 전체를 보면 '색'과 '계'라는 두 개념의 대결 구도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색'과 '계'는 알다시피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던 양조위, 탕웨이 주연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말이다. '색'은 단어뜻 그대로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 감성, 야수성, 일탈 같은 것을 상징한다면, 이와 반대로 '계'는 규범, 이성, 절제 등을 상징한다. 이렇게 보면 한 예로 신정아는 전형적인 '색'에 속하는 인물이고, 신정아 사건은 '색'과 '계'가 충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저자는 법학자이자 기독교 신자로서 철저히 '계'에 속하는 인물이고, 그와 반대되는 형이라는 인물은 '색'에 속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책에서 나는 특히 저자의 가족과 어린 시절, 학창 시절에 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가족 중에서도 어머니와 형에 관한 언급이 많은 것으로 보아 저자는 이 두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러나 두 사람이 저자에게 영향을 준 방식은 정반대였다. 어머니는 고등학교 윤리 교사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언뜻 보기에 저자와 비슷한 성품을 가진, 철저히 '계'에 속하는 분이신 것 같다. 그러나 부와 권력을 탐하지 말라는 평소 가르침과 달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 유일하게 사준 위인전이 부의 상징인 '강철왕 카네기'와 권력의 상징인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였다는 것...! (그런 점에서 역시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우리 어머니는 위인전을 전집으로 사주셔서 다행이다. 적어도 내게 본받고 싶은 위인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니...) 어린 저자의 눈에도 어머니의 마음이 참 모순적으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 기억이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저자를 '색'과 '계'의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든 걸 보면.

 

반면 형은 여러 면에서 저자와 정반대의 인간형이다. 전형적인 모범생인 저자와 달리, 형은 어린 시절부터 사고뭉치였고, 커서는 공부도 잘 하면서 놀기도 잘 하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부류의 인간으로 거듭났다. 글 한 편을 쓸 때도 여러 사람의 입장에서 읽어보고 문제가 없게끔 고치느라 화제가 된 적도 없었다는 저자와 달리, 형은 언제나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솔직하게 글을 쓰고, 그 글 때문에 논란이 된 적도 여러번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형이 있었기에, 웬만해서는 '계'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자의 억압된 '색'이 형을 통해 대신 분출되기도 했고, 이제는 '형을 따라 나도 한번' 이라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이러한 '색'과 '계'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 저자가 궁극적으로 주장하고 싶은 말은 '색', 즉 욕망이라는 것에 좀 더 솔직해지자는 것이다. 물론 자기 욕망에 너무 충실해서 주변 사람은 물론이요,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치면 안 되겠지만, 그런 수준이 아닌 한 아주 개인적인 욕망에 대해서는 솔직해져도 괜찮지 않겠냐는 것이다. 성공하고 싶은 욕망,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 인정받고 싶은 욕망,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또 너무나도 당연한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욕망이 없다는 듯 짐짓 아닌 척, 초연한 척, 엄숙한 척 할 때 욕망과 현실, 색과 계 사이에 충돌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사실 나도 저자처럼 '색'보다는 '계'에 가까운 인간이다. 욕망보다는 이성과 규범을 더 중시하며 살았고, 이 때문에 놓친 것도 있고, 후회 되는 일도 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고, 하루 아침에 '계'로 살던 인간이 갑자기 '색'으로 살 수도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내게 그런 '색'의 욕망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 받아들이는 것 정도는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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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책을 비롯하여 작품이라는 것은 작가가 일정 기간 열심히 노력하여 작업한 결과, 즉 최종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을 보여주는 매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김두식의 이전 작품이 결과물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번 책은 인간적으로나 작가적으로나 저자 김두식의 캐릭터가 앞으로 점점 변화해 갈 것이라는 예고편 같은 느낌이었다.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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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왜 부조리한가 - 경제학.철학.통계학.정치학으로 풀어낸 법의 모순
레오 카츠 지음, 이주만 옮김, 금태섭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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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로스쿨 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도 어느새 몇 년이 흘렀다. 몇 년 전 로스쿨을 도입한 목적 중 하나는 법학 이외에도 다양한 전공 출신의 법관을 양성하여 법 적용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함인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그 목적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로스쿨 제도에 있어 선배격인 미국을 보면 그 목적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 최초로 하버드 법학대학원 석좌교수로 임명되어 화제가 되었던 석지영 교수를 예로 들어볼까. 석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발레를 배우고, 10대 때 발레리나의 꿈을 포기한 후로도 음악을 공부하고 대학에서는 문학을 전공하는 등 법학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보이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로스쿨에 진학, 검사로 재직한 뒤 하버드로부터 교수로 임명받았고, 현재는 자신의 과거 전공을살려 법과 예술을 접목한 새로운 연구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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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왜 부조리한가>의 저자 레오 카츠도 로스쿨 제도의 수혜를 입은 인물이다. 학부는 물론 석사 전공까지 경제학인 저자는 (그것도 경제학으로 매우 유명한 시카고 대학!) 로스쿨 진학 후 재판연구원과 변호사를 거쳐, 현재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로스쿨 교수로 재직하며 법학과 경제학을 접목하는 연구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는 주로 법학의 수수께끼, 난제, 모순점 등 실질적인 법 집행보다는 법의 논리를 비롯한 법학의 본질적인 부분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의 연구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학부 전공인 경제학을 비롯하여 정치학, 통계학, 철학 등 다른 학문을 이용하여 법의 허점을 치밀하게 파고들었다. 똑똑한 사람들만 모이기로 유명한 법의 세계에서, 그들의 머리를 짜내 만든 법학에 어떤 허점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순환론이다. 순환론은 경제학과 정치학 전공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투표의 역설, 애로의 정리, 사회선택이론 등을 통해 나온 이론인데,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 여러 개가 모여 사회적인 차원으로 커졌을 때는 전혀 다른, 비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주장이 맞물리는 법정에서, 더군다나 다수결 원칙을 따르는 배심원제를 택하고 있는 미국 법정에서 이 같은 순환론으로 인한 오류는 크게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을 집행보다 전 단계인 법의 정립, 법의 연구 단계에서부터 법학자들이 많은 고민을 하고 최대한 지혜로운 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려운 학술 용어는 가급적 피하고 다양한 사례를 활용했다. 앨, 클로이, 베아라는 가상의 인물이 나오는 사례는 책에 내내 등장한다. 이 밖에도 고용인이 자발적으로 유독물질을 사용하는 것에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에 걸렸을 때 고용주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오염물질을 배출할 권리를 사고 파는 것은 옳은가(탄소배출권), 환자가 자발적으로 죽음에 동의했을 때 의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안락사) 등 이미 사회적으로 여러 차례 거론된 이슈도 나온다.

 

이런 이슈들은 언뜻 보기에 법(계약)과 경제(계산)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애초에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학과 경제학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학문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저자가 직접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인간의 존엄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법과 경제는 엄연히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절대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런 절대적인 영역은 계약과 계산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인데, 법만 아는 법학자, 경제만 아는 경제학자들은 이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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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전공자라서 케네스 애로의 이론을 비롯하여 사회적 선택, 후생함수, 파레토최적 같은 용어들이 친숙하게 다가왔다. 법학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법 하면 늘 어렵게만 느껴지고 공포 비슷한 것까지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아는 경제학 지식을 활용하여 법에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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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줄 하나가 인생을 바꾼다 - 인생을 바꾸는 노트술
요시자와 유카 지음, 이인애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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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이웃님 블로그에서 서평을 보고 읽고 싶어져서 위시리스트에 적어두었다가 이제서야 읽었다. (이놈의 게으름...-_-;;;)

 

일본 자기계발서 중에는 유난히 노트 필기나 정리, 시간 관리에 관한 책이 참 많다.  이런 책들은 '~~을 하라'고 막연한 조언을 던지지 않고 구체적인 활용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에 도움이 많이 된다. '메모를 하라', '정리를 하라', '시간을 아껴 써라'. 이런 조언을 사람들이 몰라서 안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이 책을 읽은 것도 필기하고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습관을 좀 더 계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필기를 잘 한다고 친구들한테 노트를 빌려준 적도 많고, 상도 받고, 학급회의나 학생회의에서 서기를 도맡기도 했을 만큼 필기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나서 그런 생각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학생 때는 예쁜 글씨로 깔끔하게 받아적기만 해도 필기를 잘 하는 축에 속했지만, 성인이 되고나서 보니 필기한 내용을 실제 시험과 업무에 적용할 수 있어야 진짜 잘 하는 것이었다.

 

책을 보아 하니 저자 요시자와 유카도 나와 비슷한 학생이었던 것 같다. 저자는 비서 양성 학교를 거쳐 비서로서 여러 회사에서 재직한 후, 1994년 '뫼비우스'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여 컨설팅, 카운슬링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마냥 성공적인 인생을 보낸 사람 같지만, 한때는 저자도 가정 불화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 충동에까지 휩싸였다고 한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책장을 정리하다가 비서 학교 시절에 작성한 비서용 속기 노트를 발견했다. 잘 정리된 노트를 보다가 그 때 배운 속기노트 필기법을 비즈니스에 응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아이디어가 그녀의 인생을 바꾸었다.


저자가 제안하는 노트 필기법은 매우 간단하다. 오로지 노트에 세로줄 하나를 긋는 것뿐이다. 세로줄 왼쪽에는 업무나 세미나에서 배웠거나 책에서 읽은 내용을 적고(입력), 오른쪽에는 깨달은 점, 생각난 점, 행동 계획 등을 적는다(출력). 일반적인 필기법은 듣거나 배운 내용을 노트에 죽 적고, 그때 그때 생각하거나 느낀 점은 같이 적거나 아예 적지 않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나중에 필기를 봤을 때 어떤 내용이 남이 얘기한 것이고 내가 생각한 것인지 구별하기가 어렵고, 알게 된 내용을 어떻게 행동으로 실천하여 나의 성과로 연결할지는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된다. 하지만 이 세로줄 필기법을 이용하면 입력과 출력을 빨리 구분할 수 있고, 생각한 내용을 생각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행동으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이다.

 

이 책을 읽고 나도 사용하고 있는 노트와 수첩, 다이어리를 모두 세로줄 형식으로 바꾸었다. (따로 구입할 필요는 없고, 그저 자를 대고 한 줄을 찍- 하고 그어주면 된다!) 아직은 세로줄 필기법에 익숙하지 않아서 입력란만 빽빽하고 출력란은 텅 비어있는 경우도 많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필기법에 익숙해지면 입력과 출력의 비중이 점점 비슷해지고, 속도도 빨라진다고 하니 믿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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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여행법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마스무라 에이조 사진,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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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식은 치맥이 진리! 하루키는 에세이가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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