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경제경영, 자기계발 분야와 인문학을 접목하는 것이 요즘 출판계의 트렌드인가 보다. 얼마 전에 읽은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는 인문학에서 경제학의 원리를 찾았고, <공병호의 고전 강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자기계발의 교훈을 찾았다. 인문학의 위기 속에 이런 식으로라도 인문학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반길 일이 아닌가 싶다. 아니, 원래 인문학은 텍스트, 그 외의 학문은 텍스트를 해석하기 위한 수단 내지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학자, 작가들의 연구 방법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

 

이번에 읽은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도 이러한 트렌드를 이어가고 있는 책이다. 변화경영사상가로서 활발한 저술 및 코칭 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 구본형은 이번 책에서 서구의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신화에서 자기계발의 비법을 찾았다.

 

수많은 텍스트 중에 저자는 왜 신화를 선택했을까? 알다시피 신화에는 변신, 변화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제우스는 아름다운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동물, 심지어는 빗물로 변신을 하기도 했고, 그 전까지는 평범했던 인물이 어떤 사건을 통해 영웅으로, 왕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이 '변화경영' 사상가인 저자의 마음을 울렸고, 신화 속 이야기를 변화경영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해보면 훌륭한 교훈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제까지 신화를 그저 이야기로만 읽었는데, 저자를 보니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분야의 관점으로 해석을 하면 사람에 따라 수백, 수천가지의 변용이 가능할 것 같다. 나는 신화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앞으로의 숙제다.

 

이 책은 각 챕터마다 제우스, 비너스, 시시포스, 이카루스, 피그말리온 등 잘 알려진 (그러나 여간해서는 제대로 읽어본 적이 거의 없을) 신화 속 명 장면이 등장하고 저자의 해석과 견해가 더해지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신화 이야기야 원체 재미가 있지만, 저자의 글이 하도 좋아서 글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또한 이야기마다 뒤따르는 저자의 설명이 탁월하고, 조셉 캠벨, 칼 융 등 다양한 인물의 삶이나 어록이 인용되어 저자의 해박한 지식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나는 '피그말리온' 챕터에 나오는 루 살로메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까지 여러 책에서 단편적으로 읽다가 이번에 자세히 알게 된 것도 있지만, 그녀의 삶을 피그말리온 이야기와 연결한 점이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희대의 인물들의 가슴에 사랑의 씨앗을 뿌린 여성으로서뿐만 아니라, 어느 남성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그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완성한 여인, 루 살로메. '염원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깎아, 단 하나의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낸' (p.109) 그녀의 삶이 참 멋지게 느껴졌고, 닮을 수만 있다면 닮고 싶다. 

 

이 책 자체도 배울 거리가 매우 많지만, 나는 저자의 삶의 행보 자체도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작년 초여름에 저자의 <깊은 인생>을 읽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 책에서 저자가 역사학도에서 직장인, 그 후엔 변화경영 전문가이자 사상가, 작가로 변화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특히 조셉 캠벨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일 년이 조금 넘은 지금 그의 신간을 보니 여전히, 그리고 끊임 없이 변화하는 삶을 살고 계시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고, 살아보고자 하는 모습에 점점 가까워지고 계신 것 같아서 독자로서 뿌듯하고 또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더욱 저자의 글이 마음에 와닿고, 변화하는 삶을 살고 싶으면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저자의 행보를 지켜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셜 정치혁명 세대의 탄생 - 네트워크 세대는 어떻게 21세기 정치의 킹메이커가 되는가?
한종우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예전에는 선거운동 하면 후보자들이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여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하거나, 지하철이나 길거리, 시장 등에서 유권자들을 한명 한명 만나며 유세를 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선거운동의 특성상 후보자들이 만나는 유권자들도 학교나 직장에 있는 청년층보다는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선거운동 풍경은 조금 다르다. 과거의 모습이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형태의 선거운동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간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이 활발해지더니, 얼마 전부터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 서비스를 통한 선거운동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매체들은 후보자 개인과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하고 쌍방향으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또한 그동안 주요 유권자층에서 배제되다시피 했던 젊은층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미래의 유권자인 청소년층도 인터넷을 통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일도 적지 않다.

 

+

 

<소셜 정치혁명 세대의 탄생>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정치현상을 적확하게 짚어내고 구체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저자 한종우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미국 시러큐스 대학에서 석사, 박사를 취득하고 맥스웰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사이버 세대의 정치현상에 관해 활발한 연구,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정치학자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같은 디지털 정보 기술을 활용하여 한국의 정치문화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분석 자료와 함께 보여주었다. 정치뿐 아니라 소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등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주제들이 한 데 어우러져 있어서 어떤 책일지 궁금했는데 읽어보니 역시 좋았다.

 

먼저 저자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변화 현상이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디서 이 현상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과거 알렉산더 토크빌이 당시 신대륙이었던 미국에서 발견한 '타운 미팅'을 이 현상의 기원으로 제시했다. 토크빌은 권력 상층부의 주도 없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공공 문제를 논의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타운 미팅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이라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한국의 유권자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적극적으로 정치 문제를 논의하고 투표를 독려하는 현상은 현대판 타운 미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게다가 이 현상은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도 아니다. 4년 전 미국 대선에서 정치 신인이나 다름 없던 오바마가 노장 맥케인을 누르고 대통령으로 선출된 데에는 디지털 공간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젊은 세대들의 공이 컸다. 또한 이집트, 튀니지 등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에도 트위터, 페이스북의 영향이 컸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 있는 'R세대'에도 주목했다. R세대는 다른 말로 '2030세대'로도 불리는데,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의 폭발적 보급과 동원력을 바탕으로 정치 무관심층에서 참여적 유권자로 극적으로 변모한 점이 특징이다. (p.124) 흔히 젊은 세대는 개인주의적인 속성이 강하고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말이 있는데, R세대는 다르다. 부모 세대인 386세대에 비하면 이념적인 성향도 낮고,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동기부여가 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R세대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와 휴대폰을 자유자재로 이용해 왔기 때문에 디지털 기술에 친숙하고,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 미디어 활동을 통해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도 크다.

 

특히 저자는 '생활정치'라는 개념에 주목하여 R세대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생활정치란 앤서니 기든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평등이나 해방과 같은 이슈들과는 관련이 적고, 급속한 탈전통화 추세 속에서 개인이 자신의 삶을 구축하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p.169) R세대는 정치 외에도 경제, 환경, 문화, 복지 등 다양한 이슈에 관심이 많고, 이는 바로 생활정치에 속하는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R세대는 당장 정치에 관심이 없어도 내가 좋아하는 문화, 내가 관심 있는 환경 문제에 찬성하는 후보자가 있으면 바로 열성적인 유권자층으로 돌변할 수 있다. R세대의 이러한 특징을 잘 이해하고 선거운동에 활용하는 후보자가 정치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은 당연지사다.

 

+

 

이 밖에도 책 후반부에 일본 정치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일본 정치에 관심이 많아 이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다. 비슷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한국과 미국을 비교하는 대신,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거나, 왜 일본은 이러한 변화에서 뒤처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한 책이 차후 발간되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1
김훈민.박정호 지음 / 한빛비즈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왜 진작에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초적인 경제학에 대한 개론서, 교양서는 무수히 많고, 실생활과 접목시킨다든지, 만화나 스토리텔링 등등 장르도 다양하다. 하지만 인문학과 접목한 책은 보기 드물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책이 나오자마자 얼른 구입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다보니 이제야 읽게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8월. 너무 늦었나?

 

이 책에 나오는 경제학 이론은 경제학 원론 수준의 아주 기초적인 내용이다. 경제학을 처음 배우는 고등학생, 대학생이 읽으면 좋을 것 같고,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이 보기에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은 사실 경제학보다 인문학이다. 제목도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가 아닌가.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냥 가볍게 경제학과 인문학을 연결한 정도가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직접 읽어보니 각각의 경제학 이론과 연결된 인문학적인 콘텐츠가 장르도 다양하고 내용도 아주 새로웠다. 특히 북유럽 신화를 통해 기회비용 이론을 설명한다든지, 이광수의 소설을 통해 로스쿨 문제를 설명하는 부분은 다른 책에서는 본 적이 없는 시도였다. 학교에서 어려운 수식을 풀거나 이론을 외우는 대신 (적어도 문과생에게는 더 익숙한) 인문학 콘텐츠를 통해 경제학을 공부했더라면 경제학 공부가 좀 더 쉽고 재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 것은 분명 경제경영 분야의 도서인데도 책을 읽을수록 경제학보다 인문학 공부를 더 해보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익숙한데 북유럽 신화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고, 학창시절 문학 시간에 배울 때는 그렇게 재미가 없고 따분하게만 느껴졌던 근대 소설이 재미있게 느껴질 정도였다. 앞으로 소설을 읽거나 인문학적인 내용을 배울 때 저자들처럼 나도 경제학 전공자로서 경제학적인 마인드로 접근해 보면 좀 더 흥미가 생기고 남들과는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경제학과 인문학을 접목하는 시도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 현상을 해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알려져 있다시피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경제, 경영 등 상경계열의 인기는 꾸준하지만, '밥벌이'에 도움이 안 되는 인문학의 인기는 시들다못해 학과 폐지의 위기에 처해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문학을 통해 경제학을, 경제학을 통해 인문학을 이해하는 시도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 높일 수 있을뿐더러, '돈 안 되는 학문'이라는 인문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로 잡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짧게 보면 인문학이 돈이 안 되는 학문일지 몰라도, 결국 역사에 남고 후세에 전해지는 것은 인문학이라는 것, 경제와 경영은 그것을 활용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나서, 그 때부터는 앞으로 어떤 스타일로 글을 쓰면 좋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문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전문 지식을 전하는 사람도 아니니, 쉬우면서도 약간의 무게가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 때 떠오른 사람이 바로 빌 브라이슨. 이전에도 그의 책을 여러 권 읽어보았는데, 글 자체는 간결해서 읽기 쉽고 유머가 많아서 읽는 내내 낄낄거리게 되지만, 책을 덮을 때에는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 참 좋았다.

 

 

나는 트레일이 지겨웠지만 여전히 이상하게도 그것의 노예가 되었고, 지루하고 힘든 일인 줄 알았지만 불가항력적이었으며, 끝없이 펼쳐진 숲에 신물이 났지만 그들의 광대무변함에 매혹되었다. 나는 그만두고 싶었지만,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싶기도 했다. 침대에서 자고 싶기도 하고 텐트에서 자고 싶기도 했다. 봉우리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어했고, 다시는 봉우리를 안 보았으면 싶기도 했다. 트레일에 있을 때나 벗어났을 때나 항상 그랬다. "모르겠어. 그렇기도 하고 안그렇기도 하고. 너는 어때?" 그는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라고 말했다. (p.411)

 

 

이 책은 저자 빌 브라이슨이 친구 카츠와 함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하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다. 여행기, 종주기의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빌 브라이슨 하면 떠오르는 풍부한 지식과 시원한 유머가 이 책에도 유감 없이 발휘되어 있어서 빌 브라이슨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책에 보면 등산가나 모험가뿐 아니라 신혼여행 대신 혹은 서로의 호흡을 맞춰보기 위해 험한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하는 신혼부부가 나오는데, 나도 편하게 쉬는 여행 대신 이렇게 조금은 힘들어도 기억에 남고, 평생 함께 갈 사람을 남길 수 있는 여행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숲이, 산이 나를 부르는 기분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병호의 고전강독 3 -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진정한 행복을 묻다 공병호의 고전강독 3
공병호 지음 / 해냄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년 전인가, 서울 모 처에서 열린 공병호 소장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때가 마침 대학 졸업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는데, 그 강연에서 공병호 소장님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며 많은 자극을 받았다. 청중들의 질문에 정성스럽게 답해주시는 모습,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하시면서 즐거워하시는 모습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귀감으로 남아있다. 그 때 그 소장님의 모습을 보며 언제나 겸허하게 살고, 마음 먹은 일은 포기하지 말고 꼭 이뤄내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들었던 앞으로의 계획 중에 고전을 바탕으로 하는 책을 쓰고 싶다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나는데, 아마도 '공병호의 고전 강독' 시리즈가 그 결실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책을 받았을 때 가슴이 무척 설렜다. 계획한 일은 반드시 실현시키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책 한 권이지만 한 사람의 오랜 꿈이 실현된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책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고, 책을 대하는 마음이 경건해졌다. 그 때 이런 책을 구상하고 계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내심 어떤 책으로 완성이 될까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어 왠지 운명 같은(!) 기분도 들었다.

 

+


3부째를 맞이한 '공병호의 고전강독' 시리즈는 1,2부에서는 서양 철학 사상의 원류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다뤘고, 이번 3부에서는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메인이다. 고전강독이라는 제목 답게 각 챕터마다 원전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번역본이 먼저 제시되고 그에 대한 저자의 풀이와 견해가 해설처럼 덧붙여진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자기계발서라기보다는 인문서, 철학서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고전 번역본만 보면 낯선 어휘도 있고 딱딱한 개념이 많이 등장하는 데다가, 추상적인 문장이 많아서 어려웠다. 하지만 저자의 해설 부분은 저자가 직접 겪었거나 주변에서 관찰한 경험담, 사례도 나오고, 현대어로 쉽게 풀이가 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쉬웠다. 이렇게 읽으면 어려운 고전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고전강독 시리즈가 계속 나온다면 고전이 한결 친숙하게 느껴질 것 같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들 니코마코스를 위해 쓴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재미있게도 저자 역시 이 책에 아들과의 애틋한 추억이 담겨있다고 한다. 저자의 막내 아들이 군입대를 하고나서 저자는 아들이 떠나고 없는 방에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그 책이 바로 '니코마코스 윤리학'이었다. 마침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기도 했지만, 아들이 학교에서 이 책을 공부하면서 여백에 메모를 하기도 하고, 밑줄을 그은 부분을 보니 마치 입대한 아들과 대화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고, 저자는 입대한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고대와 현대의 두 부자(父子)가 같은 책 한 권을 통해 교감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니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렇게 읽게 된 이 책에서 저자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윤리학'이라는 제목만 보면 이 책이 윤리나 도덕에 관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직접 저자가 읽어보니 요즘 말하는 '자기계발서'의 고전이라고 봐도 좋을만큼 개인의 행복과 성공에 관한 이야기로 풀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술한 수많은 책 중에서 이 책을 이번 시리즈의 주제로 선정했고, '행복과 성공에 관한 인류 최고의 고전'으로 이 책을 평가한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고대 그리스의 인물인 아리스토텔레스가 현대의 자기계발서의 고전을 제시했다는 저자의 주장이 이해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 역시 책을 읽어보니 먼 옛날 고대 그리스에서 쓰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자기계발서를 연상시키는 구절들이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인간의 모든 행위와 선택은 결국 행복을 향한 것이다, 행복을 위해서는 탁월성을 갖춰야 한다, 탁월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한다 등 현대 자기계발서라고 해도 감쪽 같이 속을 만한 경구들을 보며 역시 기본적인 원칙과 철학은 시대를 관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자기계발서의 창시자로 일컫는 사람이 미국의 데일 카네기인데, 최근에 읽은 책들을 보면 그는 결국 자본주의, 산업시대에 한정된 자기계발서를 쓴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특정 시대, 특정 상황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도리와 역할에 관한 근본적인 해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근래에 나온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깊이와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고대의 사상가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인간에게 있어 더없이 중요한 것은 행복,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충분히 활용하며 사는 것이었지만, 요즘 나오는 자기계발서를 보면 그저 직장에서 성공하고, 돈 많이 벌고,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서 필요한 팁만 제시된 것도 많다. 인생에는 물질적인 풍요나 남과 비교해서 얻어지는 우월감보다 중요한 것이 많은데 현대인들은 그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고전을 읽고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공병호의 고전강독' 역시 그런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으로서, 자기계발을 위해, 성공을 위해 먼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는 책인 것 같다.

 

+


이렇게 다 읽고보니 미처 못 읽은 공병호의 고전강독 1,2, 그리고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여름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과 교감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