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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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작가님 책은 <김탁환의 쉐이크> 이후로 두번째다. <김탁환의 쉐이크>는 글쓰기에 관한 책이니까 소설로서는 <노서아가비>가 처음인 셈. <김탁환의 쉐이크>에는 저자가 어떻게 책을 구상하고 글을 쓰는지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철저히 준비하고 매일 매일 노동하듯 글을 쓰는 것. 그 미련한 방법으로 저자는 지난 10년 간 40여 권의 소설이라는 엄청난 양의 저작을 남겼고, 그 중 여러 작품이 드라마, 영화화 되며 대중으로부터도 큰 사랑을 받았다.


'러시안 커피'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소설 <노서아가비>는 고종 황제가 커피를 즐겼다는 역사적 사실과 왕이 마시는 노서아 가비에 치사량의 아편을 넣은 사내가 있다는 <매천야록>의 기록에 기반한 '팩션(팩트+픽션)'이다. 이전에 쓴 <리심>도 개화기가 배경이지만 비극적인 결말을 맺은 것이 저자는 다시 한번 개화기를 배경으로 <노서아가비>를 집필했다고 한다.


저자는 <노서아가비>를 '개화기 유쾌 사기극'으로 만들고 싶었다는데 바람대로 잘 된 것 같다. 아픈 과거를 뒤로 하고 도망치듯 조선땅을 떠난 소녀가 청나라와 러시아를 누비며 멋지게 사기를 치는 희대의 사기꾼 '안나'로 변신해가는 모습은 같은 여자로서 보기에 즐겁고 유쾌했다. 비록 그녀는 역사속 위인도 아니고, 실존 인물은 더더욱 아니지만, 어쩌면 이런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가정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신분도 다르고 입장도 다른 인물들이 러시안 커피라는 매개체로 이어지며 사건이 전개된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달면서 쓴, 쓰면서 단 커피의 맛처럼 - 조선말 개화기의 쓰디쓴 역사가 소설이라는 달콤한 코팅이 입혀져서 매력적이게 그려진 점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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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꿈이었을까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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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정주행하는 중이다. 들으면서 책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고 느낀 점도 많다. 그 중 하나는 내가 소설을 많이 안 읽었다는 것. 외국문학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도 꾸준히 읽고, 일본문학을 나름 즐겨 읽는 편이지만 한국 소설은 좋아하는 작가만 편식?편독?해온 것 같다. 마침 어제 들은 '빨책'에 얼마전 <태연한 인생>이라는 신작을 내신 소설가 은희경 님이 직접 스튜디오에 나오셨길래, 이참에 작가님을 비롯해서 한국 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도서관 가서 여러권 빌려왔다. (은희경의 '그것은 꿈이었을까', 김중혁의 '펭귄 뉴스', 김탁환의 '노서아가비' 등등)


소설의 주제나 줄거리에 관한 감상보다도, 일단 문장이 좋았고, 비틀즈의 음악과 함께 흘러가는 구성이 좋았다. 소설의 몽환적이고 음울한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은 이 책이 하이텔에 연재가 된 소설이라는 점이다. (하이텔이라니...! 응답하라 1997!!!이 책은 개정판으로, 초판은 1999년에 나왔고, 그보다도 먼저 하이텔에 연재가 되었다고 하니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 연재 소설은 그다지 새로운 게 아닌 모양이다. 당시만 해도 PC 통신에 소설을 먼저 연재하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 출간한다는 것이 참 신선한 시도였을 것 같은데, 이제는 팟캐스트를 통해 저자의 육성으로 작품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져서 소설을 찾는 시대가 되었으니 참 신기하다. 미래에는 과연 소설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어떻게 읽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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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치 물의 여행처럼. ... 정말 그뿐일까. ... 한번 존재한 것이 영원히 존재한다면 얼마 전 오려두기를 했다가 잘못해서 날려버린 진의 컴퓨터 파일은 어디에 존재해 있다는 것일까. (p,50)

 

진은 인생이란 택시 잡기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가 잡히고 안 잡히고는 전적으로 운이겠지. 둘 중 하나잖아. 어떻게 보면 확률이란 성립이 안 돼. 잡힐 확률이 구십구 퍼센트라고 하더라도 하필이면 내가 일 퍼센트에 속해서 택시를 못 잡을 수도 있는 문제니까. 그런 줄 알면서도 택시가 잘 잡힐 만한 곳을 조사하고 통계를 내고, 또 그 정보를 알아내고 그 정보가 지시하는 위치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그렇게 해야 하는 게 인생이겠지. ... 세상은 무위를 용납하지 않으니까. (p.150)


꿈을 꾸지 않게 되면 떨어질 곳도 날아오를 곳도 없어진다. 누군가는 위에서 걷고 또 누군가는 아래에서 걷겠지만 어쨌든 그때부터 반복되는 시간의 평지를 걷는다는 점은 다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걷다보면 죽음과 만난다.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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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의 인생 수업 - 여자를 위한 아름다운 고전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2
펄 벅 지음, 이재은 옮김 / 책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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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초등학생용 동화나 위인전 같은 책만 읽다가 중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어른들이 보는 세계문학 코너에서 고른 책이 펄 벅의 <대지>였다. 여성 작가로서는 드물게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미국인 여성의 시각에서 중국의 사회상이 반영된 소설을 썼다는 것이 어린 눈에도 퍽 신기하고 멋지게 보였던 모양이다. <대지>를 읽고 나서 <대륙의 딸들> 같은 중국 관련 소설을 줄줄이 읽기 시작했으니 나에게 펄 벅은 제법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로부터 십 여 년이 흐르고, 이번에 나는 펄 벅을 소설이 아닌 자기계발서로 만났다. 제목은 <펄 벅의 인생 수업>. 부제는 '여자를 위한 아름다운 고전'이고, 책 소개글로는 '대문호 펄 벅이 전하는 여자라면 한 번쯤 읽어야 할 아름다운 인생의 지혜'라고 되어있다. 일단 나는 소설가인 펄 벅이 자기계발서를 썼다는 점이 신기했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처럼 자기계발서라는 장르가 유행하지 않았으니 펄 벅이 자기계발서를 썼다고 보기는 어려울 지 모르나, 내용상으로 봤을 때 요즘 나오는 자기계발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펄 벅 특유의 -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문화와 미국의 문화를 비교하는 글 전개 방식이 더해져서 읽는 재미도 있고 설득력도 있었다.

 

펄 벅은 이 책 외에도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등 여성을 위한 글을 많이 썼다. 펄 벅은 서문에서 '여성들을 몰아가는 파시즘의 경향(pp.8-9)'을 우려하여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당시는 제 2차 세계대전 무렵으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참정권이 인정되던 그 전까지의 추세가 수그러들었다. 펄 벅은 이런 서구 사회를 비판하는 동시에 여성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역설했다. 당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 등 서양 국가들에 비해 훨씬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은행장으로, 사업가로 성공하는 여성들을 종종 볼 수 있었고, 일 하는 여성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집에 있는 여성도 어머니이자 아내, 집의 안주인으로서 당당하게 자기 역할을 해냈다. 반면 서구의 여성들은 사회 진출의 문이 넓혀졌는데도 의욕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사회 활동을 하는 여성들을 질투하고 비하하며 열등감을 드러냈다. 펄 벅은 이러한 세태를 꼬집으며 여성으로서 보다 자기 실현을 하며 살라고 주문했다.

 

뿐만 아니라 여성성의 정의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좋은 아내가 되고 현명한 어머니가 되는 것은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지, 그것만이 여자가 할 일인 것은 아니다. 펄 벅은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삶은 여성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지만, 그 특권이 자기 삶의 발목을 붙드는 족쇄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이러한 내용의 글은 요즘 나오는 자기 계발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펄 벅의 글은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에 쓰여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아직까지도 당시 펄벅이 기대했던 만큼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방증이 아닐까. 펄 벅의 글을 사랑하고, 여성으로서의 삶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누군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무수히 많다. 단지 지금껏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은 여성이라는 특권에 빠져 지내면서 사회현상을 지각하는 능력이 뒤처졌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죽은 사람처럼 살고 싶은가? 자신을 매몰시키고 주위 사람들까지 구덩이로 끌어들여 불행을 재생산하고 싶은가? 선택은 이 글을 읽는 여성 자신의 몫이다.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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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본능]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소비 본능 - 왜 남자는 포르노에 열광하고 여자는 다이어트에 중독되는가
개드 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더난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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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신간평가단 도서는 매달 단원들의 추천도서를 취합하여 그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책 중에서 두 권이 선정된다. (출판사 사정에 따라 3순위, 4순위가 선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데 이번달 신간평가단 도서 두 권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장르도 내용도 묘하게 겹쳤다. 먼저 읽은 댄 애리얼리의 신작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은 행동경제학에 기반하여 인간의 심리와 경제학적 행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관해 쓴 책이라면, <소비본능>은 진화심리학을 통해 소비라는 인간의 경제적 선택을 설명한 책이다.

 

사실 경제학에 다른 학문, 특히 심리학을 접목하는 추세는 최근 몇 년 간 아주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는 2000년대 초에 벌어진 엔론 사태나 아직도 여파가 가시지 않은 글로벌 금융 위기 등 일련의 사건을 경험하면서 인간의 합리성에 기반한 고전파 경제학과 수학 및 통계를 신봉하는 실증적 연구 흐름이 도전을 받았고, 그 대안으로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위를 설명하는 행동경제학이 주목을 받게 된 덕이 크다.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하는 데 있어 비교적 사회과학의 성격이 강한 인지심리학이나 소비자심리학을 적용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책 <소비본능>은 자연과학, 그 중에서도 생물학에 가까운 진화심리학을 끌어들인 점이 특이하다. 진화심리학은 다윈의 진화론에 기초하여 인간의 행동의 근원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p.21) 인간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배운 사회과학도의 눈으로 보기엔 진화심리학이 영 낯설게 보이지만, 과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보면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도 설득력이 있고 매력적으로 보인다. 인간 역시 생태계의 일부이고 다른 생물종과 비슷한 유전적 형질을 공유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지구의 역사에서 고작 몇 천 년을 살았을 뿐인 인간이 몇 십억년을 다르면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저자는 이 책에서 의식주 같은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행위를 비롯하여 구애와 구혼, 결혼생활, 가족 구성 등 관계적 행위, 스포츠, 음악, 패션 등 문화적 행위까지 다양한 인간의 행위를 진화심리학의 관점으로 분석했다. 재미있는 점은 저마다 다르게 보이는 행위들이 근본적으로는 선택에 기반하고 있고, 선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곧 소비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를 이끌어내야 하는 마케터, 경영자들이 인간의 선택 행위를 이해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선택 행위의 본질인 진화심리학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가령 남성은 수컷의 특성상 젊음과 번식력의 중요한 지표인 여성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중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가요 가사만 보아도 남자 가수들의 노래에는 '예쁘다, 아름답다, 섹시하다' 등 여성의 외면을 칭찬하는 말이 많다. 반면 여성은 부와 직업, 학력 같은 남성의 사회적 지위를 중시한다. 언뜻 남성의 선택과 다르게 보이지만, 남성의 높은 사회적 지위가 여성의 번식력을 높이고 더 좋은 양육 환경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근본은 같다. 그래서 여성 가수들의 노래에는 돈이 없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애인을 비난하거나, 칭찬을 하더라도 '착하다, 따뜻하다, 나를 감싸준다' 등등 성품에 관한 말이 많다. (pp.189-96 참조) 뮤지션들이 이러한 성별 특성을 이해하고 음악을 만든다면 대중의 마음에 더 호소할 수 있을 것이고, 자연히 노래의 인기도 높아질 것이다.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도 진화심리학을 통해 자신의 소비 행위를 돌아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왜 그 노래를 좋아하는지, 많은 제품 중에 왜 이 제품만 선호하는지, 왜 명품을 사는지, 짝퉁을 사는지, 가방을 모으는지, 비싼 시계를 사는지, 외제차를 사는지, 그리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 등등 이제까지 내가 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선택과 결정들은 어쩌면 모두 본능이 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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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우리는 왜 부정행위에 끌리는가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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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한 해의 시작이니까, 여름은 노출의 계절이니까 등등의 이유로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사람 참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이어트를 결심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성공 못한 사람들은 가을에 도전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계절 가을에 다이어트를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맛있는 음식이 정말 많다. 날씨가 서늘해져서 따뜻한 음식을 더 찾게 되고, 매운 음식은 매운 음식대로, 단 음식은 단 음식대로 여름보다 더 맛있다. 가장 큰 고비는 뭐니뭐니해도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일찌감치 명절 음식 준비하면서 먹고, 명절이라고 먹고, 명절 끝난 다음에는 음식 치운다고 먹다보면 살은 모르는 새에 찌게 마련이다. 체중계에 올라가면, 아니 늘어난 살만 봐도 한숨이 푹푹 나오고 당장 살을 빼야 한다는 결심이 서지만, 결국에는 이 달콤한 말 한 마디에 오늘도 먹고 내일도 또 먹는다. 오.늘.까.지.만.

 

사실 이 '오늘까지만 먹겠다'는 말도 자기 자신에 대한 거짓말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참 많은 거짓말을 한다. 내일부터는 운동을 꼬박꼬박해야지, TV는 몇 시까지만 봐야지, 오늘까지만 늦게 자고 내일은 꼭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지 등등. 가끔은 남한테도 거짓말을 한다. 싫은데 좋다고,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착한 사람인 척 하는 거짓말. 싫어져서 헤어지는 건데 사랑하니까 헤어져야 한다는 희망고문. 이 정도 사소한 거짓말은 누구나 하는 것 아니냐며 쉽게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소한 거짓말을 수 천, 수 만 명이 한다고 생각해보자. 그것도 회사에서, 금융가에서, 정부에서....!

 

 

저명한 행동경제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상식 밖의 경제학>의 저자인 댄 애리얼리의 신작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사소한 거짓말이 낳는 엄청난 폐해에 관한 책이다. 최근 몇 년 간 경제학계의 대세는 행동경제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적인 동물이라는 고전파 경제학의 기본 전제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인간의 비합리성과 그로 인한 경제적 영향을 분석하는 경제학의 하위 분야다. 저자는 이번 책에서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위 중에서도 거짓말에 주목했다. 왜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경제학을 떠나 윤리학, 심리학에서도 궁금해할 법한 주제다.

 

저자는 거짓말을 하는 이유와 결과를 비용편익분석, 퍼지요인 이론, 이익충돌 등 경제학적인 차원뿐 아니라 자아고갈, 자기신호화, 자기기만 등 심리학적 차원, 사회적 전염, 사회적 의존 등 사회학적 차원 등으로 다양하게 분석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자아고갈, 자기신호화 같은 심리적 차원의 분석이 아주 재미있었다.

 

자아고갈은 쉽게 말해서 이런 현상이다. 대학 시절, 강의 초기에는 앉을 자리 없이 빽빽했던 강의실이 시험기간만 되면 텅텅 비었다. 교수님이 이유를 물어보면 열에 일곱, 여덟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유를 댄다. 왜 대학생 손자, 손녀를 둔 할머니들은 유독 시험 기간에 많이 돌아가시는 걸까? (물론 강의를 듣는 대신 시험 공부를 하거나 쉬기 위한 거짓말이 분명하다. 그 중에는 진짜 할머니가 돌아가신 사람도 있겠지만...) 저자는 그 이유를 '자아고갈'이라고 분석했다. 자아고갈은 심리적 압박이 극도에 달해 도덕성이나 자기통제력이 고갈된 상태를 말하는데, 이 상태가 되면 평소 같으면 안 했을 거짓말도 쉽게 해버린다는 것이다.

 

자기신호화의 예로는 소위 말하는 '짝퉁'을 들 수 있다. 저자의 실험에 따르면 진짜 명품을 들고 있는 사람에 비해 짝퉁을 들고 있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가짜 명품을 들고 있다는 사실이 가짜, 즉 거짓말을 하도록 자기 자신에게 신호를 보내기 쉽다는 설명이다. 하기야 거짓말을 한 번 하기가 어렵지, 한 번 한 사람이 두 번, 세 번 하기는 쉬울 것이다. 가짜를 진짜인 양 들고 다니는 것도 거짓말이라면, 짝퉁을 들고다니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확률이 높다는 설명이 이해가 된다.

 

이 밖에도 다양한 사례와 실험을 통해 거짓말에 관해 분석한 점이 돋보이는 책이다. 요즘 나오는 경제학 서적 중 대다수가 심리학과 접목하거나 도덕, 윤리에 관해 논하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은 경제학과 심리학에 베이스를 두면서 도덕, 윤리적 문제를 논했다는 점에서 요즘 트렌드에도 잘 맞는 책인 것 같고, 특히나 금융위기와 각종 부정 사건으로 인해 재계, 금융계의 도덕성을 의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보아도 시의적절한 테마를 다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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