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생각이 좋다는 게 무엇인지 이 책 읽고 다시 새겼다. 자기 임무에 충실한... 이 책은 분량도 적고 가방에도 쏙 들어가서 휴대하기 좋지만, 또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는 무게감이 있기도 하다. 이 분야를 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혹은 작가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면 좋은 지침서가 되기도 하겠다. 무엇보다 독자에게도 만족스러운 책이 아닐까 한다. 나는 진짜, 궁금했거든. ^^


독자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한다는 온라인 서점 엠디. 나는 진짜 단순하게 생각했다. 작가는 글을 쓰고, 출판사는 그 글을 책으로 만들고, 서점은 그 책을 판다. 이렇게 생각하면 단순한 과정으로 보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거. 글을 쓰는 것도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일 테다. 출판사가 책을 만드는 일도 참으로 복잡한 과정이 있었다. 서점에서 책을 파는 일 역시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홈쇼핑의 뒷이야기를 들으면서 엠디의 고단한 업무를 본 적이 있는데, 서점의 엠디도 마찬가지였다. 출간된 책만 파는 게 아니었다. 물론 기본 중의 기본은 책을 파는 일이겠지만, 독자가 책을 주문하고 서점에서 판매하는 단순 과정이 아니었다는 거다. 특히 요즘에는 책파는 게 아닌 곳이 바로 온라인 서점 아니었던가.


엠디. 그들의 업무도 다양했다. 특히 오전 8시에 업무를 시작한다고 해서 놀라기도 했다. 누구나 비슷하게 9시에 일을 시작하는 게 당연한 거로 알았기에, 온라인 서점의 고객센터도 9시부터 전화 연결이 되었기에 말이다. (문의 사항 있으면 시계 보면서 전화기에 번호 누르고 9시가 되기를 기다리는 게 습관이 되었음. 시간 잘못 맞추면 상담 연결 바로 안 되어서 화가 나기도 했기에) 그런데 8시에 업무를 시작한단다. 고객이 주문한 책과 재고 확인은 물론 출판사 발주까지 마무리해야 오전이 끝난다. 이들의 일은 대부분 전화 통화로 이루어지고 만나야 할 사람, 해결해야 할 회의도 많다.


, 무슨 책 파는 일이 이렇게 복잡한가 싶었다. 거기에 요즘에는 서점에서 책만 파는 게 아니지 않은가?! 굿즈를 샀더니 책이 따라왔다는 말, 낯설지 않다. , 나 정말 이런 얘기 굳이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한때 온라인 서점에서 주는 컵에 미쳐서 책을 정말 많이 샀다. 읽고 싶어서? 아니, 컵 받고 싶어서. 근데 받고 보니 또 아까워서 컵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했다. 상자 포장 그대로 아껴두고 쌓아두고 있던 게 10년이 넘었고, 엄마가 맨날 내다 버리라고 하실 때마다 이 귀한 것을 왜 버리라고 하느냐며 싸우고, 근데 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애물단지 아니겠나. 그랬다. 나는 이 컵들을 바라보고 모셔두기만 했다. 그러다가 엄마랑 싸우기를 몇 년. 이번에 이사하면서 그 컵을 죄다 가지고 와서 잘 쓰고 있다. 맞다. 컵은 무언가를 따라 마시면서 사용해야 그 의미가 있다. 그렇게 나는 10년도 훨씬 넘은 컵을 이제야 사용하고 있다. 아직도 튼튼하다. 아마도 깨질 때까지 사용하게 되지 않을까?


처음부터 엠디의 업무가 이런 건 아니었을 거다. 온라인 서점이 처음 생기면서 편집자라는 이름으로 일을 시작했다는 저자.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 그 당시에 엠디로 일하는 건 지금보다 입사 구멍이 좀 넓었던 것 같다. 이력서와 도서 리뷰 몇 편으로 심사했다고 한다. 온라인 서점의 시작은 독자인 나에게도 눈이 확 뜨이는 판매점이었다. 시골에 살면서 서점 찾기도 어렵고, 서점에서 모든 책을 다 파는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할인해서 판매해주는 곳이니 얼마나 좋았던가. 무료배송이 할인해주는 책을 파는 곳이 생겼다는 건 책이 있어야 하는 이들에게 단비 같았을 거다. 그런 시장에서 책을 판매하는 이들의 업무가 점점 확장되었던 건 온라인 서점의 역할이 달라지면서부터다. 그리고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온라인 서점과 독자 역시 마음 자세를 바꾸어야 했다. 일정 부분 이상의 할인은 금지되었고, 우리가 목숨 걸고 사수하고 싶었던 공짜 굿즈도 이제는 돈을 지급해야만 내 것이 된다. 경품의 규모도 같이 변했으니, , 슬프고 슬픈 일이다.


무엇보다 온라인 서점의 메인 화면에 보이는 책 추천 카테고리. 나도 한 번씩 클릭해보고 들어가 보는 곳이다. 새로 나온 책, 오늘의 책, 베스트셀러, 거기에 로그인까지 한 상태라면 개인 맞춤형 추천까지 해주는(아마도 이건 AI?) 정도이니 어느 정도는 만족스럽다. (이 맞춤형 추천이 100% 내 취향은 아님) 암튼, 이렇게 주기적으로 바뀌는 화면을 만드는 이도 엠디라고 한다. 이런 것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나는 엠디의 업무를 간단히 여겼다. 말 그대로, 책을 팔기 위해 뭐든 다 하는 사람이 되어 그 공간에 파묻힌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출판사 편집자를 만나고, 새로 나온 책을 읽고, 책을 팔기 위한 전략에 빠져든다. 굿즈를 위한 시장조사와 회의를 하거나, 신간의 매출을 위해 추천 리뷰도 작성해야 한다. 책을 많이 팔기 위한 온갖 이벤트 기획 역시 엠디의 몫이다. 수많은 책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그들의 일이기도 하지만, 눈곱만큼이라도 책이 좋아서 뛰어든 곳일지도 모르지만, 그들 역시 경쟁이라는 시장 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엠디의 많은 역할을 내가 다 적지는 못하겠다. 너무 많아. 많아도 너무 많아. 누군들, 자기 일이 단순하거나 쉽지는 않을 테다. 그런데 온라인 서점 엠디의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아서, 그저 책이 좋다고 읽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은 감히 엄두를 낼 수조차 없을 정도로 고단해 보였다. 그래도 좋으니까 하는 거겠지? 그들의 업무 중에서 나는 이게 정말 궁금했는데, 그 많은 책을 다 읽고 소개하는 걸까 싶었다. 비록 소개하지는 못하더라도 많은 책을 접해야 그들의 안목도 넓어지고 세상에 이런 책이 있다는 걸 알아야 책을 걸러내는 역할도 할 것인데, 도대체 그 많은 책을 언제 읽느냐 하는 거였다. 그 비밀은 정말 간단했다. 저자가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에 맞게 책을 골라서 소개해주는 것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 책을 실제 출간된 책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내가 지금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한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기 생각을 말하고, 책을 꾸며내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면 된다. (아하. 끄덕끄덕) 세상의 책을 다 읽을 수는 없고, 부득이하게 읽지 않은 책(읽다가 만 책)을 이야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 방법도 꽤 유용하다. (나도 이런 적 있음. ㅠㅠ)


어쩌면 남녀노소 모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세상과 소통하는 이 시대에, 종이책을 팔고 있다는 것만큼 아날로그적인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비록 우리의 서점은 웹 속에 존재하지만, 이 모니터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않으려고 한다. 비록 우리와 고객과의 만남은 온라인에서 이뤄지지만, 책을 통해 이뤄지는 행복과 경험은 분명 우리에게도 도달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일은 실재하는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책 파는 법 169페이지)


읽다가 보면 엠디의 영역이 어디까지인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사실 그 영역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었다. 지금 그들이 하는 일도 어쩌면 내일 달라질지도 모른다. 내일 또 책 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변화하는 시장에 맞게 엠디도 독자도 변화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소개 글의 한 문장처럼, 엠디의 하루가 고달플수록 독자의 만족도는 올라간다. 엠디와 독자가 서로 눈에 보이는 존재는 아니지만, 온라인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서로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 책을 팔고 책을 사는 위치에서 서로가 원하는 걸 위해, 만족하기 위해 존재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온라인 서점을 이용했다. 아마 온라인 서점의 시작과 거의 같은 시기에 나도 온라인 서점 이용자가 되었을 거다. 내 기억이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이용자로 온라인 서점을 겪어온 나의 시간과 온라인 서점 엠디로 살아온 저자의 시간이 비슷할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온라인 서점의 변화를 똑같이 보아왔으리라. 그 변화 속에서 만족한 것도 있고 불편한 것도 있다. 그래도 매 순간 독자가 요구하는 것을 새기고 반영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저자의 글로 보인다. 물론 그 노력은 책을 팔기 위한 궁극적인 임무와 목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대상인 독자의 만족도를 위한 일이라는 것도 맞다. ‘내돈내산의 만족을 위한 독자의 요구는 아마도 계속되겠지. 그렇기에 독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도 엠디의 일이겠지. 고단하고 힘들겠지만, 책을 매개로 한 당신과 나 사이의 만족도를 위해 계속 애써주기를. (미안합니다. 역시 저도 책을 돈 주고 사는 사람이기에, ‘내돈내산책의 만족을 항상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독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부디 책 읽는 것을 부담스러운 활동으로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거다. 사람들은 책 좀 봐야 하는데하는 말을 습관처럼 하고 책을 읽으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도 심심찮게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면서 정작 책에 대한 기억은 방학 내내 추천도서 목록을 읽고 독후감 몇 편을 써냈던 선에 멈추어 있다면 어찌 독서가 행복할 수 있을까? 어찌 독서에 가까워질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책을 읽는 것은 의무나 책임이 아니라 아무 부담 없이, 그저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 이 생각은 서점에서 일하기 전이나 일하고 있는 지금이나 변함없다. (책 파는 법 73페이지)


책을 가까이하면서도 다 알지 못했던 하나의 세상을 본 것 같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다 알지 못한다. 병원에 수없이 드나들면서도 의료진의 입장을 다 알 수 없던 것처럼, 책으로 엮인 세상 역시 마찬가지다. 전에 읽었던 출판 관련 이야기도 흥미로웠는데, 일상이 된 온라인 서점 속 엠디의 세상도 재밌다. 일로 보면 그저 자기 밥벌이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독자로 살면서 책을 파는 공간의 이야기도 즐거웠다. 이런 이야기, 우리가 직접 부딪히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세상의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자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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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5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엠디가 일하는 범위가 엄청 넓군요. 굿즈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ㅎㅎ 리뷰를 보니 책을 좋아하더라도 그게 직업이 된다면 그렇게 즐겁지 않을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ㅜㅜ

구단씨 2021-04-17 22:18   좋아요 1 | URL
네. ^^
저는 굿즈만 담당하는 담당자가 따로 있는 줄 알았어요. 독립된 부서로 굿즈를 목적으로 일하는... ^^
근데 참 도서 엠디가 많은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초딩 2021-05-08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행복한 주말 되세요~

서니데이 2021-05-08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1-05-09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즐거운 날 되세요~
 



여행을 즐기지 않았다. 짐을 꾸리는 일부터 낯선 곳에서 고생하던 시간이 별로라면서, 그런데도 시간이 된다면 어딘가로 움직이는 마음이 참 모순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귀찮다고 여기는 내가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싶었던 순간이 작년 내내 계속이었다. 코로나로 변한 일상이, 처음에는 좀 견딜 수 있다고 여기던 마음이 점점 힘들어졌다. 움직이기 싫어서가 아니라, 여행하고 싶어도 불가능해진 현실 앞에서 당황했다. 우울하고 슬펐다.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던 일상이, 언제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도 된다면서 미루기만 했던 일들이 불가능해지니 코로나 이전의 날들이 감사했다. 별일 없이 지내던 일상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커피 한 잔의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 날들이었다. 거기에 마스다 미리의 작품은 그 소소한 날들이 어떤 것인지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의 오늘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오늘의 인생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우리가 스쳐 보낸 일상의 단편들을 그려낸다. 어쩜 우리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웃지 않는 페이지가 없었다.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 당황해서 소리 내지 못하고 나오는 웃음. 그래, 우리 이런 맛에 웃으면서 살아왔었지 싶은 이야기에 혼자 적어놓은 일기를 보는 기분이었다. 인생의 하루하루가 이렇게 모여서 삶이 완성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평온한 날들의, 평범한 날의 소박한 기록이었다. 너무 특별해서 기억하고 자랑하고 싶은 날이 아니라, 너무 평범해서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는 순간들을 사진 찍어놓는 듯하다. 사실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 날보다 어떤 사건이나 특별한 날이 더 잘 기억나는 건 맞다. 그러면서도 그 특별함 속에 자리한 평범한 날들이 잊히지도 않는다. 가끔 그렇게 별일 없는 날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는 걸 보면, 역시 인생을 채우는 시간 속에서 평범한 일상의 기억이 더 애틋하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가 이렇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듣다 보면 우리의 일상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하는 것. 작가가 부리는 마법일지도.


<오늘의 인생2, 138페이지>

 

오늘의 인생 2는 그 마법의 연장선에 있다. 여전한 날들의 평범함, 그 평범함 속에서 우리가 무심코 찾아내는 삶의 기쁨인 기록이다. 거기에 작년 한 해 우리가 고통스럽게 견디던 코로나의 일상이 담겼다. 이 위기가 닥치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던 날들일 것이다.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고, 식당이나 커피점에 앉아서 먹지 못 하는 일이 생기는, 매일 브리핑하는 확진자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고, 내 옆을 지나가는 누군가를 피해야 하는 공포까지. 무엇 하나 평범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상을 지낸다. 하루하루 식사를 하고, 공부하고, 일하는 날들을 이어간다. 평범하지 않은 날들 속에서 평범함을 살아간다. 작가의 일상을 또 한 번 마주하면서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세계가 이렇게 변하게 되었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로 우리는 여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본다.

 

특이하면서도 그럴 수 있음을 공감한다. 겨울날의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드라이를 켜고 머리카락을 데우는(?) 일이라니. ^^ 이런 부지런함이 있을까 싶어 웃음부터 났는데, 차가웠던 머리카락이 따뜻해지면 기분이 좋다는 말에 격한 끄덕임을 보냈다. 그럴 수 있다. 차가움보다는 따뜻함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손끝에 닿는 그 느낌이 그대로 마음이 전해져온다고 생각하면, 겨울 아침의 드라이하기는 충분히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작가가 보여주는 그 간결한 선의 그림이, 많은 생각보다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그대로 담아내면 된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길을 걷다가 멈춰서서 어딘가를 바라보는 작가는 우리이기도 하다. 많은 일에 지친 것 같다며 차 한잔 간절하지만 아무 가게에도 들어가기 싫은 마음을 품은 모습은 낯설지 않다. 주택가 어느 골목에서 나는 저녁밥 냄새에서 그리움을 찾기도 한다. 삶의 곳곳에서 묻어나는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 다가와서 솔직하다고 해야 할지... 가끔 감추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은가. 아닌 척, 괜찮은 척,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안 듣는 척하면서, 일상의 사소함에 관심 없이 살아가고 싶어지는 마음. 어쩌면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세계에 속하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을 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안도를 전한다. 작가가 전하는 일상의 가장 큰 힘은 공감일 것이다. 별것 아니라고 여겼던 하루하루가 이렇게 충만할 수도 있구나 싶은 감동일지도 모른다. 아이스크림 하나 먹어야지 하면서 향하는 걸음이 가볍고, 차 한잔에 수다 떠는 시간이 정말 행복하고, 전철에서 아빠의 어깨에 기대어 자는 아들의 모습에 언젠가 기억할 오늘을 상상하고, 꽃가루를 피해 도쿄를 떠난 여행지에서의 만족감 같은 일이 일상을 반짝이게 한다.


<오늘의 인생2, 64페이지>

 

어쩌면 지나간 오늘은 붙잡을 수 없는, 지나간 하루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자기보다 어린 학생들을 마주하면서 종종 그들이 가진 젊음과 가능성을 언급한다. 그 나이여서 아름다운, 그 나이가 지나면 알게 될 순간들을 말하기도 한다. 사실 언제나 그렇다. 이상하게도 인생의 많은 일은 지나고 아는 경우가 많더라. 그래서 때로는 후회가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나간 날들을 떠올리며 애틋해지기도 한다. 지나갔으니 어쩔 수 없는 세월이지만, 계속 이어지는 인생이기에 오늘의 인생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내일의 나를 기대하면서 사는 날들일지도.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휴일을 보내면서 꼬박 집 정리를 하고, 길가의 고양이에 시선을 빼앗기고, 갓 구워나온 빵 냄새에 정신을 못 차리고 주문하는, 기분 전환 삼아 빨간 지갑을 사러 갔다가 그냥 나오고, 헬스장에서 영상을 보며 운동하고, 여행길에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접어두는, 아무리 봐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내는 작가의 이야기이기에 그 소박한 한 마디에 마음이 향한다. 코로나가 끝나면 하고 싶은 것들을 다짐하는 작가의 바람으로 시작하는 이 책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우리는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불안을 안고 산다. 마음대로 만날 수 없고, 어디로든 떠나는 것도 망설일 수밖에 없는 날들이다. 그런 오늘의 인생이 감사하다. 언젠가 마주할 내일, 오늘의 인생을 기억하며 애틋함에 수다의 주제로 오를지 모른다. 그때의 우리는 이랬다고, 그때의 불안은 정말 힘들었다고, 그래도 살아온 오늘이기에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울고 웃으면서 채워진 오늘의 인생이라고 말이다.

 

 

소심하게 덧붙이자면,

작가가 책 속에서 언급하는 또 다른 책들의 제목을 메모하는 즐거움도 컸다는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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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태어난다. 일종의 숙제라면 숙제이고,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의 숙제를 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인생의 숙제를 풀든 풀지 않든, 어떻게 풀든 결국 죽는 순간 그 결과는 자신이 안아 드는 것일 테다. 기대여명을 알게 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특별한 보너스일지도 모른다. 보통은 자기가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 채로 살다가 죽기 때문이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63페이지)

 

지인의 아버지는 희귀백혈병으로 투병 중이시다. 아들과 50% 확률로 맞는 골수를 이식받았고, 곧 좋아질 거로 여겼지만 문제가 생겨 다시 입원하셨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곧 좋아지기를 기다린다고 했지만, 만에 하나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가족들이 모여서 의논도 하고, 앞으로의 일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나의 남동생의 장인어른과 여동생의 시아버지는 위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주변 사람들의 암 소식은 너무 흔하게 들려왔다. 병명 자체만으로도 공포가 생기는 병이 암이 아닐까. 언젠가부터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익숙한 병이 되어버렸고, 혹시나 우리도 암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병원을 찾고 검사를 받는 일이 낯설지 않다. 아마 두 가지가 겹치니 그 공포는 배가 되는 것일 테다. , 병원. 특히 암은 죽음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있는 병도 아니다. 암에 걸렸다고 다 죽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암은 죽음에 가까이 있는 병이기는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암과 함께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암 전문 의사로 항암치료를 해오면서, 그가 만난 암 환자와 가족들을 보면서 느낀 것들을 기록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무엇을 보고 느끼게 될까.

 

2019년 전체 사망자의 27.5%가 암으로 사망했다고, 한국인이 사망하는 장소의 77.1%는 병원이라고 한다. 그만큼 암과 병원은 우리 삶과 가깝다. 암 환자들의 마지막 모습은 어떨까. 저자는 18년 차 종양내과 의사로 일하면서 많은 암 환자를 만났다. 완치가 아니라 생명 연장의 목적으로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와 가족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궁금했다. 나는 의료진이었던 적이 없으니, 언제나 환자 본인과 가족의 자리에서 보게 될 터이다. 그러니 같은 상황 같은 죽음을 두고 저자와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으로 의료진의 시선을 알 기회가 생긴 셈이다.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삶과 죽음의 순간이 생생하다. 암을 앞에 두고 대응하는 방식은 너무 닮았으면서도 달랐다. 아마도 그건 살아온 세월과 삶의 방식, 환경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다.

 

의사이면서 한 인간으로 삶의 의미를 마주한 저자의 기록은, 저자는 물론이고 이 책을 읽는 모든 이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지금까지 만나온 많은 환자의 선택을 지켜보며, 그들이 채워온 삶과 병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그의 삶의 태도에 하나를 더한다. 그들의 삶과 죽음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살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그들의 시간이 담담하면서도 위태롭게 들리기도 했다. 그건 내가 경험한 삶과 죽음의 모습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마주할 죽음의 순간을 상상하면 아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남과 죽음을 한 번씩은 겪으니까, 내가 태어나는 순간을 누군가가 지켜봤다면 내가 죽는 순간도 누군가는 지켜볼 테니까 말이다.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죽음이 된다는 것. 그걸 생각하면 죽음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삶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죽음을 삶의 끝이라고 간단하게만 생각할 수는 없을 듯하다.

 

저자가 마주한 환자와의 실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다양한 상황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들이 살아온 시간을 엿보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했다. 죽음의 순간을 두고 동생에게 2억 원을 갚으라고 하는 남자, 평생 술과 도박으로 가족을 돌보지 않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이 딸에게는 다행인 일이 아니었을까 싶은 사연, 암 투병 이후의 시간을 감사하며 긍정의 힘을 뿜어대는 환자, 시한부 삶을 맞이한 여자와 결혼을 이루는 남자의 사랑, 사후 뇌 기증을 신청하고 떠난 사람, 남편이 완치되길 바라면서 서울과 부산을 오가던 부부, 이혼했지만 각자 암 투병 중인 부모를 돌보며 일터와 병원을 바삐 오가는 아들, 암과 치매를 동시에 앓는 80대 아버지는 모시는 예순을 바라보는 딸,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하나씩 이뤄가며 남은 시간을 채우는 노인 환자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어느 정도라는 말을 듣고 그 시간을 채워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삶을 채우고 있지만 결국은 죽음으로 향해 가는 그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는 각자의 몫인 듯하다. 반드시 죽음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주 그 숙제를 떠올린다. 주어진 삶을 어떻게 얼마나 의미 있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물음. 그 물음과 답은 자기가 만들어가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이 숙제를 풀든 풀지 않든, 어떻게 풀어가든 죽음에 다다르며 그 결과 또한 자기가 받아들여야 한다. 모르지 않은 일인데도, 왜 자꾸만 그 답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삶이 되어가는지, 언제나 어렵다. 의미 있게 살아가는 일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안다는 것은 행운일까 아닐까. 가끔 그런 상상을 하면서 오늘과 남겨진 시간을 생각한 적이 있다. 만약 나의 목숨이 시한부라면, 시한부라는 사실을 아는 게 좋을까 모르고 지내다가 죽는 게 좋을까 하는 질문을 떠올린다. 나는 언제나 전자의 선택을 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정해져 있다면, 나는 남은 시간을 잘 정리하면서 내 마지막을 준비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말기 암 환자라도 그럴 것 같다. 하염없이 병상에 누워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보다, 나와 내 주변의 것을 조금씩 정리하고 마음을 나누면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싶다고. 저자의 말처럼 기대여명을 알게 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특별한 보너스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는 끝을 맞이하는 것보다, 슬프지만 끝을 알게 된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보낼 오늘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종착역으로 가는 환자의 곁에는 같이 그 길을 걷는 가족이 있고, 그들은 곧 한 사람의 끝을 함께하면서 조금이라도 덜 아쉽고 행복하게 걸어갈 수 있게 노력한다. 마음을 다하려고 애쓰며 헤어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저자가 환자와 그 가족들을 지켜보면서 읽은 이야기는 끝이 없다. 저마다의 선택과 결과 앞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하나의 인생이, 한 가족의 삶이 변해가는 장면을 눈에 담는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를 생각한다.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된다. 누군가의 부모이고 자식이고 배우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 많은 이야기 속에서 계속 묻는다. 우리의 남은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마주칠 법한 평범한 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누구보다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일, 느닷없이 찾아온 운명을 받아들이고 본인 몫의 남은 삶을 평소처럼 살아내는 일.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37페이지)

 

4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1장과 2장에서 환자의 암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3장과 4장에서는 의사로 살아가는 일과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시간과 싸우며 환자를 보는 병원의 환경, 마지막에 다다른 환자의 연명치료가 정말 필요한 것인가 하는 고민을 담았다. 암 투병 이후 완치된 젊은 환자의 미래도 같이 걱정한다. 병을 앓았다는 이유로 취업에서 실패하고, 현실은 언제나 살아가야 하는 냉정함을 뿜어대는데 생존의 위협에 또 시달리는 고통이 뒤따르는 암 투병 이후의 시간을 처음 알았다. 다시 건강해졌으니 다행이고 좋은 결과라고만 여겼지, 현실에서 암이 공격하는 또 다른 일상이 있었다는 게 무서웠다. 몸의 건강만 되찾았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었던 거다. 의사의 자리에서 겪는 많은 고충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환자나 보호자는 의료진이 처한 현실을 다 알지 못한다. 의료진 역시 마찬가지로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을 다 알지 못한다.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일까, 다 알지 못하는 그 마음 때문에 때로는 오해하고 서운해한다. 내 자리에서 보이는 것만 두고 생각하고 말하고 싸우고 운다. 의료진이 환자를 대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들의 역할을 충분히 소화하기에도 벅찬 상황이 있더라는 것. 그러다가 비로소 환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보이는 것들을 감싸 안는다. 자기가 환자가 되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그 순간부터, 자신이 진료하던 환자의 시선과 마음이 보이는 거다. 역지사지라고 해야 하나. 누군가 아프게 되는 건 싫지만, 나는 의료진이 이렇게 서로 다른 상황을 알아가는 기회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연명치료에 관한 부분이었다. 연명치료를 선택하는 게 최선이기만 한 걸까? 환자의 남은 삶이 연명치료로 행복해질까?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건수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나도 경험했다. 아버지가 처음 응급실에 실려 가고 수술대 위에 되었을 때, 시간이 지나고 다시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병원에 한 번 드나들 때마다 온갖 서류에 서명하고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때마다 나도 연명의료계획서에 사인을 했다. 처음에는 이 서류에 어떻게 뭐라고 서명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고민이 많았는데, 그 처음 서명을 위해 가족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위급한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그 연명치료를 수락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그 목숨의 주인은 환자 본인이지만, 환자가 그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호자와 가족들은 어떤 선택이든 결정을 해야만 하는 어려운 위치에 선다. 의식을 잃은 환자의 갈비뼈가 부러지는 순간까지 심폐소생술을 하는 게 정말 최선이었을까 묻는 저자의 말에, 우리 가족의 판단이 틀리지만은 않았다는 안도가 생긴다. 어쩌면 또 다른 순간에 우리는 같은 문제를 두고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어렵지만, 저자가 말하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하는 질문에 같은 무게로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살아 있으나 죽음보다 못한 상태인, 존엄과 멀어지고 있는 환자의 마지막을 위한 결정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일. 몇 번을 생각해도 어렵기만 한 주제를 두고 참 많은 생각과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듯하다.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생명은 고귀한 것이라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행복하다고 이야기하기는 쉽다. 입으로 도덕을 외치고 윤리를 말하는 일도 참 쉽다. 똥 치우며 병수발하고 비용 부담하긴 어려워도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만 있을 뿐 인간다움을 완전히 잃는다면 그때에도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혹 당신이 그런 상황이 된다면, 혹은 인지 기능 없이 단순히 숨만 쉬는 상태가 된다면 그런 상태로 몇 년 더 사는 것을 간절히 원하게 될까?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254~255페이지)

 

의사가 들려주고 있지만, 의사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안에 우리가 언제나 함께 참여한 대화이자 기록이다. 우리는 인간이고 언제 어디서든 질병과 마주할 수 있다. 질병이나 병원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기도 하다. 동생이 아파서 1월의 절반을 서울에서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이제는 엄마가 아프셔서 병원 생활을 이어간다. 지금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길 거로 여긴 적이 없다. 언젠가 그럴지도 모를, 나이 들어가는 부모의 건강을 염려하기는 했지만, 뜻밖의 일 앞에서 이렇게 당황하고 걱정하면서 병원을 전전할 줄 몰랐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읽다 보니, 저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가깝게 다가온다. 의사는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존재이고, 병원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머무는 곳이 되었다. 내가 환자가 될 수도, 보호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은 언제든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러니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닌 게 되더라는 깨달음은 저절로 따라온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하면서, 언젠가 나와 가족에게 찾아올 죽음의 순간도 항상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낯설지 않은 경험담에 많이 공감하면서, 삶과 죽음을 겪어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지금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또 다른 숙제이자 의무라고 말하는 문장들에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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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2-10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 그림이, 잎사귀처럼 보였다가 살아 움직이고 싶어했던 잠자리 날개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아름다운 글 잘 읽고 갑니다.

scott 2021-02-10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페이퍼는 문장마다 읽고 음미하고 새겨둘 구절이 많아서 이페이퍼는 아끼면서 읽을겁니다. 구단님 설 연휴 가족 모두 평안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노예제도에 대한 책을 읽었다.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상관없었다. 집에 있는 책 중에서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 싶은 책은 모조리 읽었다. 심지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까지 읽었다. 다 읽지는 못했다. 부드러운 사랑의 유대로 이어진 행복한 유색인들이라는 각색만은 참아낼 수 없었다. (킨 221페이지)


시간여행이란 화두를 떠올리면 참 낭만적인데, 이 소설이 보여주는 시간여행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설레지도 않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불안하다. 두근거리면서 상상하는 즐거움은 저기 밀어두고, 혹시나 그 시간에서 내가 현재로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은 두려움이 앞선다. 즐거운 여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이 소설처럼 한번 시간여행을 할 때마다 공포에 떨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976년의 LA. 작가이지만 가난한 흑인 여성 다나는 일하면서 백인 남자 케빈을 만나고 결혼한다. 흑인과 백인의 구분이나 차별이 없어진 시대였지만, 둘은 주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여전히 그들끼리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두 사람은 사랑했고, 같이 살기로 하면서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고 짐을 풀기 시작한다. 그때, 다나는 현기증을 느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1815년 미국 메릴랜드의 어느 숲속이었다. 붉은 머리의 백인 소년 루퍼스가 물에 빠져 있었고, 다나는 살려달라는 루퍼스의 목소리를 듣고 그 시대로 간 것이다. 어떻게 된 건지? 어쨌든 다나는 눈앞의 소년을 살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이 상황을 누구에게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바로 눈앞에서 본 케빈을 제외하고는.


처음 다나가 루퍼스를 구하러 가서 1800년대에 머물렀던 시간은 불과 몇 분이었다. 그 시간이 현재에서는 단 몇 초였다고 케빈은 말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두 번째 시간 여행. 루퍼스는 조금 더 자란 소년이었고, 불을 낼 뻔한 상태에서 다나를 불렀던 것. 그렇게 몇 번씩 다나는 루퍼스가 죽을 위험에 처할 때마다 불려온다. 시간을 거슬러 1800년대로 말이다. 흑인 여성 다나가 루퍼스의 시대에 적응할 수 없던 이유는 너무도 많았다. 미국의 남부, 흑인을 노예로 부리던 시대였다. 농장주들은 돈으로 노예를 매매했고, 한 인간이 아니라 자기 소유물로 여기며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오직 자기를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어주는 용도로 이용하는 도구로만 대했다. 여전히 인종의 벽은 높았지만, 현재의 미국 사회에서 흑인과 백인의 결혼을 이루어낸 다나가 어떻게 루퍼스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다나는 한 가지를 염두에 두고 루퍼스의 부름이 올 때마다 1800년대로 돌아간다. 다나의 조상이 루퍼스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시간을 잘 건너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루퍼스의 성장을 돕는다.


부유한 백인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나고 자라는 루퍼스는 어떤 사람으로 자랄까 궁금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다나의 시간 여행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며, 흑인 여성 다나를 노예가 아닌 친구로 대하려고 했다. 물론 자기 기분 내킬 때만. 아니길 바랐지만, 루퍼스는 무자비한 아버지를 닮은 면도 있었다. 갖고 싶은 것에 모든 것을 걸을 수 있는 남자가 되어갔다. 어릴 적부터 마음에 두었던 흑인 앨리스를 사랑했고, 폭력과 잔인한 행동으로 결국 앨리스를 옆에 둔다. 어쩌면 루퍼스가 다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자기 아버지와 똑같은 잔인한 농장주로 자랐을지도 모르지. 루퍼스는 앨리스를 사랑한다고 믿으며, 그 자신은 아버지와 조금은 다른 너그러운 백인이라고 착각하고 살아왔는지도. 그는 다나 역시 친구라고 여기며 자기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애정을 쏟는다. 앨리스와는 다른 의미로 다나를 사랑하지만, 상대의 마음이나 간절함 따위는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기적이고 잔인한 백인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다.


흥미로운 시간 여행 소설이지만, 왜 시간적 배경을 1800년대로 정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면서 작가에 대해 찾아보니, 이 소설은 작가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생생한 장면을 상상하게 했다. 1800년대는 노예제도가 가장 혹독했던 시대라고 한다. 그 중심으로 흑인 여성 다나를 보내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거다. 1900년대의 엘리트 여성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갑자기 책에서나 봤던 위험한 시간으로 들어가는 게 어떻게 보일지. 작가의 삶을 이루기 위해 일용직도 마다하지 않는 그녀의 열정이, 1800년대에서는 위험에 처한 상황일 뿐이다. 흑인 노예가 그것도 여성이 글을 쓰고 읽을 줄 알고, 아는 게 많고 때로는 건방져 보이기까지 한다면 어떨까. 고용주에게는 골치 아픈, 노예들 틈에 두면 위험한 노예일 뿐이다. 소설 속 다나는 옥타비아 버틀러가 소설을 쓸 수밖에 없던 현실을 담은 인물이기도 하다. 1960년대는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이 꽃을 피우던 시가라고 한다. 노예로 살았던 선조들에게 격분하면서 부모 세대를 원망하고 저주했다고.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도 있다. 그들은 부모 세대가 버텨온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는 거 아니겠는가. 사는 것처럼 살지 못했지만, 때로는 의지를 불태우다가 죽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들은 주어 방식으로 삶을 이어왔으며 투쟁을 계속해왔던 거다.


나는 그날 책을 한 권 훔쳐 나이절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어떻게 케빈과 내가 이 시대에 수월하게 끼어들어갔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는 정말로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우리는 쇼를 바라보는 관찰자였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역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배우였다. 집에 갈 날을 기다리는 동안에 그들과 비슷한 척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형편없는 배우였다. 우리는 실제로 역할 속에 녹아든 적이 없었다.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었다. (킨 184~185페이지)


이해하지 못하는 시절에 관해 함부로 판단하고 욕할 수 없음을 다나는 보여줬다. 처음 그녀가 흑인 노예가 있던 곳으로 시간 여행을 했을 때는 감당할 수 없었을 거다. 자유와 의지는 언제나 우리 안에 있기에 당연한 거였는데, 그 시절의 흑인은 노예로 살아가면서 그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 당연했다. 설마, 그들의 가슴 속에서도 노예의 삶이 당연하다고만 여겼을까? 아니면, 그들 나름대로 버티는 삶을 이어가면서 피 끓는 투쟁을 멈추지 못했을 거로 생각한다. 다나는 루퍼스와 대화하고 그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읽어주면서 여느 노예와 다른 일상을 보낸다. 그녀가 다른 시대에서 왔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그녀를 자기와 다른 존재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다나 역시 스스로 자기가 그곳에서 노예로 있는 흑인들과 다르다고 여기지는 않았을까? 그녀가 현재를 살면서 배웠던 지식과 당연한 것들이 그녀를 당당하게 만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가 한번 두 번 채찍질을 당하면서 얻은 건 공포였다. 두려움 앞에서 의지를 꺾고 수긍하는 자세였다. 루퍼스의 말을 어긴 벌로 밭으로 나가서 일하고 쓰러졌던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배운 것은 현실에 수긍하는 법이었다. 권력을 가진 이의 말을 어기면 이렇게 매질을 당하고, 힘든 일을 해야 하고, 언제 돌아갈지 모를 상황에 절망하며 쓰러지는 일. 이게 그녀가 배운 현실과의 타협이면서 권력자의 통제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이었으며, 노예 시대의 폭력에 길드는 모습이었다. 조금씩 다나의 태도가 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두려웠다. 그녀는 현대로, 처음 왔던 모습 그대로 멀쩡하게 돌아갈 수 있을까.


현재를 아우르는 여러 가지가 시간 여행을 하는 다나의 이야기 속에 있다. 아니라고 할 수 없게 지금도 여전히 보이는 인종 차별과 폭력, 노예라고 직접 부르지는 않아도 권력자들이 휘두르는 힘에 고통받는 사람들, 여성이기에 이중적으로 가해지는 인종차별과 성폭력 등 인간 사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문제들이 1800년대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물론 이 소설은 단순히 그런 배경뿐만 아니라, 작가가 다나에게 반영한 애증이라는 인간 감정도 눈여겨 볼만 하다. 다나는 루퍼스가 살려달라고 할 때마다 시간을 초월해 그에게 간다. 그 소년을 위기에서 구해야만 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그의 아버지와 다른 백인 남자로 성장하는 것을 보고 싶기도 했다. 어쩌면 그녀의 조상이 될 사람이기도 하기에 말이다. 그러면서도 루퍼스를 지켜볼 때마다 조금씩 변하는, 점점 그의 아버지와 닮아가면서 노예를 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증오한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그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이해하면서도 그녀에게까지 위험을 가할 때마다 그를 증오하고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한다. 현재로 돌아와서 안도하면서도 루퍼스와 있던 곳을 집으로 여길 정도로 그리워하고 안도하기도 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 애증의 감정이 어떤 결말을 만들어냈을지 생각하면...


처음에는 그저 상상과 판타지로 만날 자세를 가졌었는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다나가 시공간을 초월한 순간들이 무엇을 바꿔놓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게 됐다. 그때의 노예제도가 다나의 등장으로 얼마나 다른 길을 걸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루퍼스가 있던 와일린 가의 흑인 노예들은 다나의 존재로 자기 의지와 자유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바라본다. 현실의 불안과 불평등에 고민하고 투쟁할 자극이 되는 존재. 한 세기를 거슬렀던 다나의 시간 여행은, 여행 그 이상의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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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06 0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여행은 보편의 관점에서 봤을 때 노예제라는게 얼마나 공포스러운 제도인가를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잘 보여주는것 같았어요. 저도 이 책 참 좋아하는데 구단씨님 리뷰 읽으니 더 좋아지네요. 😁

구단씨 2021-01-06 01:45   좋아요 1 | URL
오랫동안 미루다가 이제야 읽었어요.
읽기를 잘 한 것 같아요. 너무 좋네요. ^^

psyche 2021-01-06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좋았어요. 주인공이 느끼는 공포가 어찌나 생생했던지 책을 읽은 날 악몽에 시달렸다는...

구단씨 2021-01-09 20:40   좋아요 0 | URL
진짜 생생했어요. 만약 그 상황에 있는 사람이 나라면? 이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 읽게 되더라고요.

scott 2021-02-10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나의 시간여행은 21세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구단님 이달의 당선 축하합니다.^.^

구단씨 2021-02-19 21:4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어느 한 시대에, 시간에 머물러 있는 소설은 아닌 것 같아요.
 

일주일에 한두 번쯤 엄마 집에 간다. 엄마가 해주신 밥을 먹고 싶기도 하지만, 혼자 지낼 엄마가 같이 밥 먹어줄 사람이 필요하진 않을까 싶은 나의 오버이기도 하다. 근데 정말로 엄마는 누군가 오니까 그대로 챙겨놓고 밥을 먹는다고 하시더라. 나도 마찬가지. 집에서 혼자 밥 먹어야 할 상황이 되면 그냥 굶거나 대충 한두 가지 꺼내놓고 먹거나. 누가 보면 참 부실하다고 할 테지만, 저절로 그렇게 된다. 먹는 것만 부실해지면 다행인데, 점점 일상이 귀찮아지고 정리를 미루면서 하나둘씩 뭔가 쌓여간다. 건강을 챙기겠다면서 사다놓은 운동기구가 옷걸이나 빨랫줄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그때그때 정리하지 않으면 자꾸 미뤄지고 쌓여가고, 집에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좁아져가고, 어느 순간 쳐다보기만 해도 막막하고 한숨이 나올 테지. 집 밖으로 나가는 물건보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물건이 더 많아지면 이건 뭐, 최악이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집 안으로 들어오는 물건이 점점 많아진다면, 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근데 사실, 우리가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잖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선뜻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하고, 아끼는 거 버리는 거 망설여지고, 이거 버리기 아까운데 싶어서 들었다 놨다 하면서 추억에 잠기기도 하는... 그러니까 이런 거 아닐까. 공간만 있다면 내가 아끼고 소중한 것을 다 품에 안고 살고 싶다는 바람. 하지만 우리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살아야 하고, 비우는 것 없이 계속 들여오기면 한다면 정말 숨이 막혀서 죽을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자, 그럼 정리가 답이다. 공간이 들어올수록 답답함은 사라지고, 내가 무엇을 원하고 좋아했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아끼는 것들을 버릴 수 없어서 갖고 있기만 할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눈에 두고 보면서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언뜻 보면 저자도 그저 공간을 정리해주는 전문가인 것 같지만, 저자의 책을 읽다 보면 그동안 정리정돈이나 살림 노하우를 담아놓은 책과 다른 점이 있다. 그 공간의 사람을 읽고 위로한다는 거다. 왜 정리가 필요한지,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무엇을 바라면서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지 읽는 능력. 저자에게는 그게 있다.


많은 분이 집을, 그리고 지나간 세월을 정리하고 싶어 하지만 부끄럽고 확신이 없어서 주저하거나 망설이곤 합니다. 집 정리는 다이어트와 비슷합니다. 한번 다이어트에 성공해본 사람은 이후에 다시 쪘다 빠졌다는 반복하더라도, 살이 빠졌을 때의 느낌을 알기 때문에 다시 성공할 확률이 높고 성공한 상태를 유지하기도 쉽습니다. 지금 당장은 좀 부끄럽더라도 작심하고 다 덜어내고 정리해보면, 또 살면서 짐이 늘고 어수선해지겠지만 언제든 좋았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좋았던 상태'가 어떤 것인지 직접 경험해보고 느껴본 사람만 가능한 일이죠.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드립니다 141~142페이지)


다른 매체나 방송에서 보고 저자가 이 일을 꽤 오래 했을 거로 여겼다. 어디선가 들으니 저자가 이 일을 시작한 건 3년여. 3년 만에 이런 이슈를 만들 수 있는지 의아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의 마음을 읽은 결과일 테다. 누구나 가슴 속에 품은 바람을 알아채고, 그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일이 반응을 일으키는 건 당연하다. 가끔 TV에서 저장강박증에 걸린 사람을 보고, 일명 쓰레기집이라고 불리는 그곳을 보면서 한숨만 푹푹 쉬었다. 누가 봐도 쓰레기인데 뭐가 그리 귀중하다고 저걸 쌓아두고 살까 싶어서 말이다. 그들을 인터뷰하고 어렵게 속내를 듣고 보면 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인간의 마음에 비워진 공간을 그렇게 물건으로 채우고 싶었던 거라고. 그걸 끌어안고 있어야 허한 마음 조금이라도 채워질 거로 믿었던 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집이라는 공간 안으로 무언가를 자꾸 끌어들이는 것도 그와 비슷한 마음일 것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 부족한 감정이 물건으로 다 채워질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비워내고 정리하는 게 마음을 치유하는 답이 된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저자는 그렇게 읽어낸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는 법을 찾아냈고, 사람들에게 눈으로 보이는 정리 이상의 결과를 안겨주었다.


정리의 시작은 의외로 간단하다. 누구를 위한 집인지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정리의 방향은 정해진다. 과감하게 잘 비우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숨기지 말고 그대로 드러내는 거다. 물건을 분류하고, 내가 생활하기 편한 동선으로 꾸린다. 전문가의 조언이나 타인의 고정관념 같은 건 버려도 좋다. 내가 좋은 게 가장 좋은 거 아닌가. 의미 없는 물건이 나열된 공간을 재배치하고 효율성과 안락함을 높여야 한다. 공간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내 마음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된다면 행복할 테니. 무조건 새로운 가구나 정리할 상자를 사는 게 아니라, 정리하는 방식을 찾는 게 우선이다. 어쨌든 가구도 상자도 공간을 차지하는 건 마찬가지이니까.


여러분이 좋아하는 물건은 집의 가장 큰 공간에 혹은 좋아하는 공간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집도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책은 무조건 서재에, 와인은 반드시 주방에만 두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고정관념을 깨는 순간, 집은 머물고 싶은 곳이 됩니다.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드립니다 25~26페이지)


이런 집에 살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나 혼자 산다면, 거실에 TV나 소파가 아니라 심플한 책장을 두고 싶다고, 주방에 식탁을 두고 식사를 하거나 책을 읽고 싶은 공간으로, 방에는 꼭 침대 하나만 두어야겠다고. 물론 나 혼자 사는 공간을 생각했을 때 말이다. ^^ 다른 가족 구성원과 함께 산다면 집은 나만의 공간은 아니므로 서로가 원하고 바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각자 필요한 공간을 생각하고 의논하면서, 이 집은 어떤 공간으로 구성하고 만들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저자가 이 일을 하면서 단순히 공간 배치를 하거나 비우고 정리해주는 게 아니었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다. 무엇을 정리하고 싶은지, 어떤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하는 여러 가지 사연과 생각을 듣는다. 의뢰인의 마음을 충분히 읽고 공간의 구성을 계획한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의 현재 상황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가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 아빠의 방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을 때 놀랐는데, 차근차근 설명을 듣다 보니 이해가 된다. 아직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보통 아이는 엄마(부모)와 같이 자는 경우가 많고, 바로 옆에서 돌봐줘야 하니 항상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 늦게 퇴근하고 들어와 자는 아이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안방을 드나드는 것보다, 조금은 편히 쉬고 잘 수 있는 현관에 가까운 방을 아빠의 쉼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좋다고 한다. 실제로 이런 배치는 의뢰인에게 호응이 좋았다고 하니, 말하지 않아도 아는 저자의 능력이 대단하다.


무조건 버리는 게 정리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비움의 매력을 어필하는 듯하지만, 비움도 나름 이유가 있어야 한다. 내가 가장 소중하고 필요하다고 여기는 걸 버릴 필요는 없다. 그 양이 많다고 해도 정리만 잘하면 그 집에 머물 이유가 충분하다. 정리하고 싶은 카테고리의 물건을 다 꺼내어 놓고, 우선순위를 매긴 다음 버리거나 남겨두거나 정한다. 그러고 나면 한곳에 모아두고 정리하는 게 남는다. 베이킹하는 의뢰인의 예를 들어줄 때는 놀라웠다.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던 베이킹 도구들이 다른 가족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는데, 의뢰인이 포기할 수 없었던 베이킹을 더 즐겁게 하게 만든 정리는 기적 같았다. 방 하나에다 집안 곳곳에 방치되었던 베이킹 도구들을 모아놓았다. 듣고 보면 이렇게 간단한데, 우리는 왜 그 방법을 몰라서 자꾸 어수선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것인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불편한 것을 그냥 참고 살거나 불편한 줄 모르고 산다고 한다. 일일이 기억할 수 없지만, 나에게도 그런 생활의 단면이 있을 것이다. 가구나 물건도 조금만 바꾸면 굉장히 편리해지는데, 그걸 모르고 살거나 알면서도 그냥 두고 살았던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고 한다. 오른손잡이 아이의 책상에는, 연필꽂이와 책꽂이는 오른쪽에 스탠드는 왼쪽에 있는 게 효율적이다. 옷장이나 행거에 옷을 걸을 때도 방향에 맞추어 걸어놓는 게 옷이 덜 상하고 관리하기 쉽다. 물건을 잘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치와 사용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 것. 집이라는 한정적인 공간 안에서 우리가 편히 지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비우기이지만,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추억은 잘 정리해서 볼 수 있는 곳에 있어야 가치가 있다. 아무리 소중해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면, 그건 추억도 뭣도 아닌 게 된다.


각 챕터 마지막에 정리나 청소 팁을 알려주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미 알던 것도 있지만, 관심 없어서 그냥 방치하듯 내버려 두었던 것도 저자의 팁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옷방의 공간을 나누어 옷의 종류별로 보관하고, 잘 보이게 걸어서 보관해야 찾기 쉽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어두운색의 옷을 걸어두고, 액세서리 종류는 형태를 유지해서 보관하라고 한다. (이 부분 읽고 옷장 구석에 던져두었던 가방이 생각나서 신문지를 막 접어서 넣어두었다는 건 안 비밀. ㅠㅠ) 린스나 설탕으로 욕실 물때는 벗기고, 건식 화장실의 습기는 구석에 소금을 조금 놓아두면 되고, 수도꼭지 청소는 과일로 닦아주면 깨끗해진단다. 욕실 구석에 생긴 곰팡이는 소독용 알코올을 헝겊 봉에 묻혀서 닦으면 해결된다니, 가끔 욕실 청소할 때 힘으로만 벗기려고 했던 것을 반성하고 반영해봐야겠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꼭 입주 청소도 내가 할 수 있을 듯한, 무모한 자신감이 든다. 비싸게 돈 주고 했는데 만족감도 못 느꼈던 입주 청소 맡긴 때가 생각난다. 자신 있게 청소하고 돌아가신 사장님께 입금하고 나중에 보니, 여기저기 거슬리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던. 이 정도면 그냥 내가 할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더랬다. 물론 전문가라고 하니 내가 모르는 노하우로 내가 할 수 없는 곳까지 열심히 청소해주셨겠지만, 가성비를 따질 수밖에 없는 소비자이다 보니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더라.


읽으면서 지금 내가 있는 공간을 둘러보게 되고, 그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공간을 유심히 보게 된다. 저 공간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나는 어떻게 공간을 이용하고 있는지 자문하곤 한다. 저자는 실제로 많은 사람이 공간을 너무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정관념 때문에 불편을 불편인 줄 모른 채 살고 있다고. 주방에서 밥을 먹고, 거실에서 TV를 보고, 방에서 잠을 자고, 방 하나를 창고로 만드는 일반적인 이야기들이 새롭게 들려온다. 반드시 그래야 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많다. 가족이 함께 산다고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고, TV만 보면서 모여 있는 것도 아니다. 각자 손에 휴대폰을 들고 한 공간에 있기도 한다. 주방에서 서류 작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걸 보면, 주방과 서재가 같은 공간이 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 (책에 냄새 배려나?) 그래도 나는 내가 주방에 있는 시간이 많다면 주방 가까이에 책장 하나 두고 싶기도 하더라. 저자의 말대로라면, 공간에 제대로 된 역할을 부여하고, 쓰는 사람의 성향과 상황을 고려하면서 만든 집이야말로 필요하고 편안한 곳이 아닐까. 고정관념을 버리고 무심코 따라 하지 않으면, 인생은 나에게 맞춰 편하게 간다고 말이다.


코로나 때문인지 사람들이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 밖은 위험하니까) 그러다 보니 집은 더 중요해졌다. 단순한 먹고 씻고 자는 것을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집밖에서 했던 거의 모든 것을 집안에서 해야 하는 곳이 된 거다. 공간과 인생은 거의 같은 것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저자의 많은 사람이 공간 정리로 인생이 달라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 역시도 정리의 순간 개운함과 기분전환을 느낄 때가 많다. 가장 흔하게는 일부러 손빨래하면서 깨끗해지는 옷을 눈으로 확인하기도 하고, 한 번씩 책장의 책을 다 꺼내어 정리하기도 한다. 특히 책을 정리할 때면 내 책장에 이런 책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 소장해야 할 책과 내보내도 되는 책을 구분해서 책장을 비워둔다. 그럼 또 다른 책들이 찾아와 그 공간을 채우겠지만, 또다시 비움의 시간을 만들면 되니까 괜찮다. 한 번씩 책장 정리하면서 책장의 비워진 공간을 보면 가슴이 뚫린다. 책장 하나 정리했다고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달라지거나 정리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일상이 정리되는 시원함과 즐거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사실 안 쓰는 물건을 비우는 것만 잘해도 집은 충분히 훤해집니다. 알맞은 자리를 찾지 못하고 수납공간 바깥으로 삐져나온 물건들이 집을 계속해서 좁아지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대체로 수납공간 안에 들어가 있던 물건들 중에 버릴 물건이 많습니다. 안쪽에 쌓여 있어서 있는 줄도 몰랐던 물건을 모두 처리하고 나면 바깥에 나와 있던 물건을 품목별로 정리해서 안으로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물론, 살다 보면 새로운 물건들이 계속해서 들어올 것입니다. 그때마다 미루지 말고 꾸준히 정리한 후, 3달이 지나도 필요가 없다면 그때 놀고 있던 큰 가구들을 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드립니다 183페이지)


큰 게 아니었다. 아주 작은 변화, 원래 있던 가구의 재배치나, 방치되어 있던 물건의 제자리를 찾아주거나,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물건으로 건네지거나 하는 변화가 물건과 사람에게 새 인생을 만들어주는 순간을 만났다.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하고 마지막 집 정리를 하던 의뢰인이 집 정리 과정을 지켜보면서 변했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정리가 뭐라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준 걸까 싶지만, 그 작은 변화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큰일을 해낸 거다. 이게 기적이 아니면 뭐가 기적이란 말인가. 누군가는 그냥 평범한 주부가 하는 일이라고 가볍게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나 스스로 정리하지 못해서 점점 쌓아지는 것들을 경험했기에, 저자의 일이 결코 쉽거나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안다. 겉으로 보이는 변화 너머에 가슴을 울리는 시간을 만드는 '금손'이다. 조금만 따라 해도 일상이 바뀌고 표정이 변하고 인생이 달라질 것을, 이제는 안다. 저자가, 물건을 비우면 공간이 보이고, 공간이 보이면 비로소 사람이 보인다고 말하는 의미를 눈으로 확인했다. 일의 경험으로, 매체에서 마주한 의뢰인들의 표정으로 말이다. 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공간의 의미와 정리 때문에 행복해진 그들의 표정에서 행복이 저절로 읽힌다.


비움을 시작으로 마음을 보듬는 일이 이렇게 이루어진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작은 시작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평소에 꾸준히 정리하는 습관과 일상의 불편함을 눈여겨봐야겠다. 가끔 나를 돌아보고 싶을 때, 뭔가 꽉 찬 마음을 확인하고 싶을 때 한 번씩 우리의 공간을 채운 것들을 비워보는 건 어떤지? 정리는 이렇게 우리 인생을 새로 만들 힘을 주기도 하니까.



저녁이 되니 하나둘 집에 불이 켜진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인생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의 집이 궁금해졌다. 얼마나 비우고 얼마나 쌓아두고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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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25 0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어제 트리 하그루 놓고 갔는데 아침에 눈떠보니 사라졌으용 ㅜ.ㅜ
다시 그려 놓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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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메리 크리스마스^.~

구단씨 2020-12-29 13:31   좋아요 1 | URL
인사가 늦었습니다. ㅠㅠ
크리스마스 즐겁게 잘 지내셨나요?
코로나 때문에 모든 게 우울해지는 일년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제 남은 며칠 무사히 잘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연말 보내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 챙기시고, 그래도 해피하게 2020년 마무리되기를 바랍니다. ^^

scott 2021-01-09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이페이퍼 읽고 감동 받았는데
이달의 당선작으로!
추카~추카~
강추위 주말 따숩고 평안하게 보내세요.^.^

구단씨 2021-01-17 21:3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다시 추위가 찾아오고 오늘밤 여기는 폭설 예보가 있어요.
건강 유의하시고 겨울 즐겁게 지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