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다닐 때, 그런 선배가 있었다.

어떤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꼭 제품사용 설명서를 먼저 정독하고 물건을 대했다.

특히나 전자제품 같은 경우 설명서를 첫 페이지에서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정독한 후에 물건을 개봉했다.

 

 

 

 

 

 

 

 

나는 속으로, '뭐가 이리 꼼꼼해?' 라고 잠깐 생각했었고, 곧 그러려니 했다.

사람이 외모부터 성격까지 다 다를수밖에 없으니, 저런 모습도 당연하게 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 같으면 제품사용 설명서 대충 읽거나 아예 읽지 않고 제품 사용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다 그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사용설명서를 펼치거나 한다.

그 선배가 그런 꼼꼼함을 보였던 것을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그 선배는 제품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실수가 거의 없었다.

마치 예습 철저히 하고 시험 보는 사람처럼... ^^

 

 

알라딘 이용한지 10년이 훨씬 넘었다.

작년에는 알라딘과 10년 계약까지 체결했다.

2023년까지 플래티넘회원 등급을 부여받았다.

주구장창 알라딘을 애용할 거라는 마음의 자세를 다잡았다. (원래 그랬지만서도... ^^)

 

그렇게 애용하던 알라딘에서 늘 궁금한 게 있었다.

'왜 알라딘에서는 현금영수증 발행을 안해주지?'

 

 

처음 사용할 때는 모든 결제를 카드로 해결했기 때문에 현금영수증이란 단어는 떠올릴 필요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동안 알라딘에서 구매하면서 카드 외 다른 결제수단을 종종 이용하게 되었다.

알라딘 상품권, 네이버책쿠폰, 문화상품권, 도서상품권, 알라딘 적립금, 등등...

그렇게 사용하면서 결제 과정에서 현금영수증 신청하는 항목이 안 보이더라.

(이건 알라딘 주문시 결제과정에서 현금영수증 신청하는 항목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못 봤던 거다.

10년 넘게 수도없이 주문해왔으면서도 못봤다는 게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지만, 사실이다.

이렇게 멘붕이 깊어지고 있다. ㅡ.ㅡ;;;)

 

 

암튼,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알라딘은 환전하면 따로 상품권으로 표시되는 게 아니고 알라딘 적립금으로 한꺼번에 표시되기 때문에

적립금으로 결제해서 현금영수증 발행이 안되나보다, 그래서 내가 주문할 때 적립금으로 결제하면 현금영수증 발행하는 항목이 자동으로 안 보이게 되었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질문도 자주 넣으면서 왜 이런 것은 궁금해 하면서도 한번도 문의해볼 생각을 안 했을까...)

 

 

어제, 바로 그 현금영수증 발행 때문에 멘붕이 왔다.

알라딘 이용한지 10년이 넘었건만, 이걸 나만 몰랐나 싶어서 상당한 시간 좌절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어제 책을 주문하다가 보니 이상한 문구가 눈에 보인다.

어제 책 주문하면서 알라딘 상품권, 문화상품권, 알라딘 적립금, 쿠폰,

이렇게 4종류의 결제수단을 이용했다.

그런데 '현금영수증은 결제완료 후 '증빙서류 신청하기에서 신청'하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건 뭐지?

원래 있었던 문구였나?

낯선 문구에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기억해뒀다가 결제 완료 후에 '증빙서류 신청하기'를 클릭해봤다.

 

 

럴수럴수 이럴수... ㅠㅠ

거기서도 현금영수증을 발행 받을 수 있는 거였다. (아, 정말... ㅠㅠ 한참을 더 울어야 해...)

 

근데, 이런 거... 이런 경험...

나만 한 건 아니지??? ㅠㅠ

 

혹시나 나처럼 몰라서...

알라딘 결제과정에서 현금영수증 발행받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면,

이제라도 발급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의 바보 같은 경험을 공유해본다. (아자아자!!)

 

결제 완료 후, 아직 배송 시작 전 단계에서 신청할 경우에는

주문배송 페이지에서 '증빙서류 신청조회' 클릭하면 된다.

 

배송이 완료된 경우라면 주문배송 페이지에서 '거래명세서'를  클릭하면 된다.

 

그러면 새로운 팝업창이 뜨면서 거래명세서가 나온다.

그럼 맨 위쪽 첫번째 항목 현금영수증 클릭하면 현금영수증 발행 페이지로 전환된다.

총 주문 금액에서 현금영수증 발행될 수 있는 금액이 새로 확인되고

그 밑에서 형금영수증 발행받을 휴대폰 번호나 형금영수증 카드번호를 입력하면 끝.

 

주의할 점은, 상품 출고 후 2일~3개월 이내의 것만 신청할 수가 있다는 것.

그러니까 주문 완료 후에는 잊지 말고 꼭! 현금영수증 발행 받아야 한다는 진리. ^^

 

그리고 내가 지난 주문건, 어제 한꺼번에 다 신청하면서 확인해 보니

주문금액과 현금영수증 발행되는 금액이 다를 때가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경우 적립금(마일리지에서 전환된 적립금, 이벤트성 발급된 적립금, 등등)으로 결제된 경우이거나

쿠폰 사용 금액이 빠진 듯하다.

 

 

혹시라도 나처럼 모르고 지나간 경우라도 3개월 이내의 것은 발행받을 수 있으니,

꼭 확인해보시고 소득공제에 보탬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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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09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렇게혜윰 2014-06-10 0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몰랐어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발급받았네요. 근데 3개월은 아닌지 두 건만ㅠㅠ 담부턴 제때 챙겨야겠어요!!!

구단씨 2014-06-11 00:01   좋아요 0 | URL
아핫~!
저만 몰랐던 건 아니었군요. ^^ (다행 다행...)

2014-06-26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6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분명 한 달 전 이맘때도 연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한 달을 사이에 두고 다시 연휴라고 하는 시간이 저물었다.

귀찮은 몸을 이끌고 가서 투표를 했고, 연휴라고 몰려든 조카들의 괴성에 귀가 얼얼 했고,

조금 웃었던 것도 같고, 많이 피곤하기도 했다.

 

일주일이 넘어가도록 뭘 읽지는 않았지만 읽고 싶은 마음은 아주 간절했던 순간.

그래도 몸이 피곤하니 잠을 좀 자두어야겠다고 마음 먹고 일요일의 늦잠을 즐기려고 했는데

때 맞춰 도서관 희망도서가 들어왔다는 알림 문자가 온다.

이곳 도서관은 이용자가 느끼기에 참 불편한 것이 많은데 그중 한 가지는 희망도서 신청 후의 과정이다.

희망도서를 신청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런 문자가 온다.

"000님이 신청하신 희망도서가 오늘 오후 3시에 비치될 예정입니다."

요일은 대부분 금요일부터 토요일, 일요일에 입고된 경우가 많았고,

책을 찾아가라는 시간은 들쑥날쑥이다.

희망도서 신청자에게 우선 대출권을 줘야 맞는 건데, 여긴 참...

우선 대출권을 주긴 준다. 당일 몇 시간만.

비치될 예정이라는 그 시간 안에 찾아가지 않으면 신간자료 서가에 꽂아버린다.

당일에 문자를 보내고, 당일에 찾아갈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 가지 않으면 바로 우선권 박탈.

 

 

암튼, 오늘의 늦잠을 포기하고 확인한 문자를 보고 기억을 꺼내본다.

내가 무슨 책을 희망도서로 신청했더라?

도서관 홈페이지에 로그인 하고, 희망도서 신청 목록을 살펴본다.

아, 이 책이었구나. 출간 때 참 많이 읽고 싶어서 고민했던 책인데...

용윤선의 울기 좋은 방.

커피와 함께 하는 이야기라는데 내가 만나고 싶은 것은 커피가 아니라 그냥 이야기였다.

도서관 서가에서 서서 이 책을 아무 페이지나 펼쳐봤다.

10여 페이지 읽었을까.

아, 나는 이 책을 좋아할 것 같다, 는 생각을 했다.

담담한 듯하고, 담백한 것처럼 들리는 말투, 혹은 문장이 좋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살짝 두꺼운 분량이었지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녀의 이야기를 몇 편 듣고 보니 좋아진다.

다 읽어봐야 더 많이 느낄 수 있겠지만, 그녀의 발걸음이 닿는 곳의 이야기가 차분하게 들려올 듯하다.

이미 만난 몇 줄의 문장에서 벌써, 그 차분함이 밀려오고 있다.

 

 

 

생각난 김에 궁금한 책 몇 권 더...

 

 

 

가을방학의 노래 몇곡을 들은 게 전부다.

그래서 정바비의 산문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낯설면서도 궁금했다.

전업작가가 아닌 사람이 쓰는 책에 대해 호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크게 반감도 없기에

그 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읽어본 다음에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평상시에 평범하게 말하는 듯 들리는 그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엮어졌을 때의 매력은

아무 페이지나 아무 때나 펼쳐 읽어도 좋다는 것.

나는 그런 책이 조금 더 편하다. 앞 뒤 구분없이 아무 페이지나 펼쳤을 때 읽어도 그들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는...

흩어진 글을 한곳에 모아서 읽는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라디오를 틀어 놓고 흘러나오는 노래의 가사를 빠른 글씨로 적었던 적이 있다.

정말 아주 오래 전 얘기다. 지금보다 더 라디오를 즐겨 듣던 시절의 이야기...

나에게 이 책은 이승환을 좋아하고 이승철을 좋아한다던 교복 입은 여고생들이 생각나게 한다.

오태호라는 이름 때문이다. 노래만 듣던 시절에 가수의 이름만 알고 지내던 때,

이승환과 오태호라는 이름을 동시에 기억하게 했던 인물이다.

난 아직도 그의 얼굴을 모른다. 노래와 함께 그의 이름 석자만 기억한다.

그걸로도 충분했다. 이승환의 목소리를 통해 듣던 그가 만든 노래면 되었으니까.

이승환 외에도 그가 만든 노래를 부른 가수는 많다. 많은 곳이 히트곡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태호의 노래는 이승환의 목소리여야 하는 이상한 공식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이름이 반갑다. 책으로 만나게 되는 그 만족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으니...

소개글이나 미리보기를 통해서 본 이 책 속의 사진이 내 눈에 더 들어오는 건 노파심이길...

 

 

 

이 미친 그리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의 시는 모르고 그의 이름만 알고 있었다. 림태주.

아직 시집은 한 권도 내지 않은 시인이라니... ^^

그런데도 그에게 팬클럽이 있단다. 그가 없이도 그의 팬클럽은 자가발전하고 있단다.

좀 아이러니하지만, 그 팬클럽의 유지가 이해될 것도 같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림태주라는 사람, 림태주의 글을 만난 사람들이 형성하는 공감대가 있을 테니까...

책 제목이나 내가 느끼는 이 책의 선입견은 서늘함이었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난다... ^^

 

 

 

Jason Mraz - 정규 5집 Yes!

제이슨 므라즈의 음반이 나온단다.

한 달 후에 나오는 것을 벌써부터 예약판매 한다. 

예약판매 기간 동안에는 이 음반 한장도 무료배송해준단다.

별도로 구매해놓고 한달 동안 기다림의 즐거움을 느껴봐야겠다.

정말, 듣고 싶은 목소리...

 

 

 

 

 

 

도서관에서 책 두권을 들고 나오는데, 사서가 앉아있는 자리 뒤쪽에 세워진 우산 하나가 보인다.

일기예보에서 비가 내릴 거라고 하더니 누군가 준비성은 참 좋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저 우산, 어디선가 본 것만 같아...

조금 더 가까이 가보니 우산 손잡이에 메모가 붙여 있다.

아, 저거 내 우산이다.

거의 한달 전쯤에 도서관에 우산 놓고 왔던 게 생각나서 찾으러 가겠다고, 잠깐만 보관해 달라고 했었는데...

그 잠깐이 한달이 되었나보다. 그걸 까맣게 잊고 있다가 막상 보니까 생각난다.

뻘쭘한 얼굴로 사서 데스크로 되돌아가서 뒤에 있는 우산을 가리키며 찾으러(?) 왔다고 말했다.

알바 학생이 별 말 없이 건네주는 것을 들고 왔다.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있다.

당장 내일의 비소식이 아니어도 곧 장마가 시작될 테지.

반갑지 않은 비, 지겨운 장마...

그래도, 아무리 비가 싫어도 우산은 챙겨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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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8 22: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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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8 22: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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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17: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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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2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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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은 세계를 축소한 하나의 소우주로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곧 가정을 변화시켜야한다는 것이다.

가족은 빙산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물 밑에 큰 얼음 덩어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가족의 운명은

매일 벌어지는 일상의 그림자에 깔린 서로의 느낌과 요구를

이해하는 데 달려 있다.

- 버지니아 사티어 Virginia Satir

 

 

 

 

 

 

 

 

 

 

어렸을 적 내 소원은 외동딸이 되는 것이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대부분 큰딸이거나 외동딸이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게 어린 내 눈에도 보일 정도로 좋아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던 건 ‘아, 혼자라면 저런 사랑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부럽다, 나도 외동딸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가졌더랬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서는 그 바람을 금방 포기했다. 지금의 내 형제자매들이 모두 사라져야 외동딸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가족이 많아서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너무 일찍 알았던 듯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외동딸이 되는 것을 바랐던 게 아니고, 아주 조촐한 가족을 원했던 것 같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늘 시끄럽고 사고 많았던 소란스러움을 견디기 어려웠던 거라고 이제야 이해가 되는 시간이었다. 없는 형편에 가족이 많아서 힘든 것도 있었지만, 자라면서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던 괴리감이 컸다. 결과적으로 보면, 가족 구성원의 수가 많아서 힘든 게 아니라 자꾸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부딪히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해를 강요하는 것들이 생겨나는게 무서웠던 거라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왜 나를 이해해주지 않느냐?’는 멘트가 두렵다. 입장 바꿔서 생각하면 똑같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 못하는 거다. 상대방도 같은 마음으로, 왜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느냐는 자세로 있기 마련이니,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거다. 그 타협점이라는 게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가족인데’ 그것도 못 해주냐는 말을,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가족이니까’ 상처 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으면서도 그게 상처가 되는지 어떤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까. ‘가족이니까’ 자신을 봐달라고만 하는 것은 '이해'라는 타협을 찾을 때 인정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여전히, 모르겠는 것 투성이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그녀는 스물두 살, 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취직과 함께 객지 생활을 시작했다. 여유롭지 못한 환경이었으니 그녀의 객지 생활이 쉬웠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돈을 벌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는 생각에 그녀는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그녀가 일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뭐였는지 알고 난 후 나는 한참을 울었었다. 딱 그녀다웠다. 그녀가 일을 시작하고 얼마 후 작은 식당을 하는 엄마에게 업소용 냉장고를 사드렸다. 엄마가 일을 쉬실 수는 없으니, 좀 더 편하게 일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200만원 상당하던 업소용 냉장고를 할부로 구매해서 보내드렸다. 그리고 일주일쯤 후, 그녀가 엄마를 만나러 고향에 내려갔을 때 마주한 것은 표현하지 못할 지독한 슬픔이었다. 그녀의 아버지 하시는 일의 부도로 오랫동안 빚 독촉을 받았던 것은 나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한꺼번에 빚을 갚을 수는 없었으니 조금씩 갚아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아니면 그나마도 갚지 못해 빚 독촉에 시달리거나... 그녀가 엄마를 만나러 갔던 그날, 채권자들이 엄마의 식당에 새로 들어온 냉장고를 끌어내고 있었다. 새 냉장고가 들어온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던 날, 냉장고 할부금 내는 것을 시작도 못했던 그 때. 엄마도 딸도, 눈물바다였다. 어딘가로 실려 가는 냉장고를 붙잡지도 못했고, 내려놓으라고 말해도 들리지 않는 소리였을 뿐이고... 아마 지금은, 그때가 그녀의 기억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날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끝이면 좋았을 것을,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녀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늘어난 것은 스트레스로 인한 살과 그녀의 명의로 된 빚이었다. 은행 대출, 카드사 대출, 그리고 또 뭐가 더 있으려나. 아버지의 채권자들은 끝이 없었고, 어머니의 생활비도 보태드려야 했고, 오빠의 사업자금도 도와줘야 했다. 그들이 그녀에게 돈을 달라고 강요를 하거나 협박을 한 적은 없다. 빈번하게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들려주는 그 아쉬운 목소리를, 가족이란 이름의 그 안타까움을 그녀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디 노름에 빠진 것도 아닌데,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도와주지 못할 게 뭐가 있겠나 싶었을까. 그녀는 저절로, 그렇게 효녀가 된 것이다. 그녀는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그 시간동안 제대로 쉰 적도 없이 일했지만 그녀에게 남은 건 여전히 빚이었다. 슬픈 일이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 빚이 그녀를 위해 쓰인 적인 단 한 번도 없었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서도 그녀에게는 남편이 모르는 빚이 남아 있었다. 원금을 해결할 수 없어 간신히 이자만 내고 있을 때 채권자의 최후통첩이 날아왔다. 어쩔 수 없었다. 남편에게 얘기할 수밖에... 워낙 검소한 남편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불면의 밤을 보내던 그녀에게 남편은 예상 외로 그 일을 해결해주었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무언의 대화가 오고갔을 것이다. 그녀 자신의 빚이지만 친정이라는 이름이 함께 따라온 그 원인에 대해 그녀는 남편 앞에서 한번 고개를 숙이게 된 것이다.

 

 

이은조의 소설집 <수박>을 읽으면서 세상의 모든 관계와 효녀라 불리는 사람들을 떠올려 봤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녀가 떠오르는 건 너무 당연했다. 이제 그녀에게는 빚이 없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녀가 대출받기 위해 걸어야 할 담보가 없으니까. 그녀는, 그러한 상황이 오히려 마음 편하지 않을까. 더 이상 자의든 타의든, 효녀로 살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서글프고, 아프고, 안타깝고, 그럼에도 한 마디로 정리되지 않는 단어. 가족이라는 존재가 참 무겁게 들리는 5월이다. 집안 행사가 5월에 몰려 있기도 하지만. ‘가정의 달’이라는 타이틀이 버거운 것도 사실인 지금이니까. 어제 이곳의 낮기온이 섭씨 28도였다는데, 나는 너무 추워서 겨울 스웨터를 꺼내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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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포근했던 날이 언제였느냐는 듯, 갑작스러운 추위로 옷깃을 여미던 주말이었다. 마치 때가 되었으니, 조금은 슬퍼도 되는 날이니, 날씨마저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듯이... 몸도 마음도, 상당히 추웠던 날이다. 덕분에 때아닌 감기가 다시 찾아왔지만, 괜찮았다. 그까짓 감기쯤 너그럽게 받아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엄마의 엄마를 보내드리는, 조금은 슬펐던 그 의식으로 감기쯤이야 뭐 별건가, 싶은...

 

 

금요일 오후...

작은이모가 왔다. 나이 75세. 몇십 년 만에 기차를 타봤다고 했다. 그것도 혼자서. 너무 무서웠다고. 나이가 드니 겁이 더 많아졌다고. 그동안은 자식들이 태워주는 차를 타고 이동했던지라 혼자서 낯선 곳으로 오는 일이 두려웠다고 했다. 이모의 말로는 40여 년 동안 고향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내 기억에서도 그렇다. 엄마랑 같이 이모를 만나러 간 적은 있어도 이모가 이곳으로 온 적은 내 기억에 처음인 듯하다. 이모가 고향에 오지 못했던 이유는, 먹고 살기 바쁘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 마음을 아주 모르지 않기에 이해를 하려고 하지만,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이모는 쉬지도 않고 이야기를 했다. 어디 가서 말할 데도 없다면서 답답한 속내를 한참 풀어놓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도 그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안 들을 법한 나도 그냥 듣고 있게 된다. 밖에 나가서 말하자니 흉이 되고, 그 속을 이해할 사람 없으니 함부로 이야기도 못 하고. 무엇보다, 다 흘러가버린 시간 속에서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두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그 작은 기쁨을 맛보셨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주무신다고 누우시더니 바로 코를 골고 있다. 재밌다. 장거리 기차여행이 힘들었을 테고, 낯선 곳으로의 발걸음이 긴장되었을 테고, 심란한 마음이 무거웠을 테고...

 

 

토요일 아침...

아침을 먹고 나갈 준비를 하면서 옷을 갈아입던 작은이모가 말한다.

“나이를 먹으니 왜 이렇게 눈물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이모, 얼마 전에 누가 그러던데? 눈물은 마르지 않는대.”

“그래, 그런가 보다...”

나이를 먹으니 눈물이 많아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특별한 의식을 위한 날이니 눈물이 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기도 하고...

곧 큰이모까지 오셨다. 그렇게, 칠순을 넘긴 노인 셋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당신들의 엄마 아빠(나에게는 외조부모)가 계신 곳으로 발길을 향한다.

외삼촌이 살아계셨을 때는 외삼촌이 알아서 관리하셨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냈다. 그런데 2년 전에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 당신들의 부모가 누워있는 그 자리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엄마의 형제 중에 살아계신 분은 한국에 세 명, 미국에 네 명. 물리적으로 오고 가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지만, 다들 살아갈 날이 머지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다들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화장하기로 한 것을 행하는 날이었다.

 

예감했다. 그 자리가 어떨지를. 오랜만에 만난 그녀들은 서로의 안부를 제대로 묻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다. 칠순이 넘은 노인들이 당신들의 엄마 아빠를 이제는 완전하게 보내드려야 하는 그 마음을,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몇십 년을 땅속에 계시다가, 하얀 가루가 되어 날아갈 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를. 그래도 언젠가 내가 부딪힐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젠가 내가 보일 모습이 그러할 것이니...

간단하게 예를 갖추고, 포클레인이 묘를 파고, 조심스럽게 드러낸, 얼마 남지 않은 뼛조각. 울적한 마음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이 아니었을까...

나에게도 엄마가 있고, 언젠가 저렇게 보내드려야 할 텐데, 생각만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들의 눈물에 동요했다. 지금 다 알지는 못해도 알아야 할 눈물의 의미 때문에. 영원한 안녕을 위해 꼭 한번을 치러야 할 의식처럼, 경건하면서도 슬펐던 시간... 이제는 지나간 시간이면서 가슴에 묻어야 할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저녁에, 이모 가시는 길을 배웅하고 돌아오다가 괜히 울컥했다.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하는 시간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시간 오지 말라고 때 쓰고 싶은 시간이기도 하기에. 가슴에 묻는 아픔과 고통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기에...

밤에, 엄마에게 물었다. 어떠시느냐고. 엄마는 답이 없었다. 나도 참, 어리석다. 어떤 답을 듣겠다고 그런 질문을 던졌을까...

 

 

조금 오래된 얘기다.

큰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엄마와 둘이서 서울행 고속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도착하려면 10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두 여인이 있었다. 60대와 80대로 보이는 여자 두 명. 그들은 우리와 같은 버스를 탔고, 우리 좌석과 대각선 방향으로 앞쪽에 타고 있었다. 조금 더 젊은 쪽이 나이 든 쪽을 엄마라고 불렀다. 모녀 사이인가 보다. 손주, 혹은 증손주를 두고 있을 나이의 두 사람이 엄마라는 호칭으로 주고받는 대화가 애틋했다. 혹시나 엄마가 멀미할까 싶어 몇 번이고 괜찮으냐고 묻는 딸, 괜찮으니까 그만 신경 쓰고 편히 앉으라는 엄마.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는 엄마의 몸을 부축하고 차에서 내리는 딸, 걸음이 조금 느린 엄마를 안고 화장실로 향하는 모습. 잠시 후 다시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도 계속되는 그들의 대화, 그들의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엄마 때문이다. 엄마가 내내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보다가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하는 엄마의 말을 나는 듣고 말았다. “엄마 보고 싶다...”

당연한 건데 나는 참 자주 잊고 살아온 듯하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고, 그 엄마를 불러보고 싶은 마음을 전혀 모르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오직 나의 엄마의 자리에만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다는 엄마의 말이 낯설었나 보다. 그 당연함이...

 

 

모든 일정이 끝나고, 결국, 엄마는 지독한 몸살이 났다. 나의 컨디션도 최악인데, 감히 엄마의 그 상태 앞에서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무거울 그 몸살이 조금은 가볍게 지나갔으면 싶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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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 낯선 번호가 뜬다. 받을까 말까 망설였다. 모르는 번호가 뜰 경우 둘 중에 하나다. 스팸이거나 택배이거나... 근데 보통 이곳에 배송하시는 택배 기사님 전화번호는 거의 다 입력되어 있던 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택배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전화를 받았다. 후자였다. 알라딘에서 주문한 책을 가져다주겠다는 택배 기사님. 집 위치를 묻는 거였다. 큰 길 쪽에 위치한 터라 어렵지 않게 찾아오셨기에 물었다. 현대택배 기사님이 바뀌셨냐고. 기존에 배송하시던 기사님이 그만 두셔서 자기가 대신 배송해드리는 거라고, 자기는 현대택배 기사가 아니라고 했다. 알겠다고 하면서 딱히 그 택배 기사님 전화번호를 입력해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후로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그 택배 기사님 전화번호가 자주 뜬다. 요 며칠은 이제 전화도 없이 찾아오신다. 익숙해졌다는 얘기다. 아직 고정된 기사님이 오시지 않았나 보다. 기존에 그 기사님 여기 배송한지 거의 반년 정도 되었는데 벌써 그만두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가끔 알라딘에 중고팔기 하면서 알라딘 노란가방에 책 꽉꽉 채워서 보낼 때, 난감해 하시던 표정이 생각난다. 이러면 곤란하다는 표정, 무겁고 힘들다고 말했던 표정, 한쪽에 탑차 세워놓고 담배 하나 피우고 출발하시던 표정... 결국, 그만두셨구나...

 

며칠 전에 TV에서 택배 기사의 3일을 취재한 다큐를 봤다. 택배 기사의 하루를 동행 취재한 프로그램이 처음은 아니었으니 특별하게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그 내용이 어떨 건지 뻔히 알면서도 저절로 시선이 간다. 그리고 매번 볼 때마다 마음은 무겁다. 한때는 나와 여러 번 싸우기도 했던 대상인데, 한겨울에도 땀을 흘리며 뛰어다니는 그 모습은 나와 싸우던 모습과는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터뷰하던 그 많은 택배 기사들의 말에 공통점이 있었다. 노동의 순간이 기쁘고, 땀 흘려 뛴 만큼 버는 일이라 좋고, 아파서 누워 있던 시간을 생각하면 이렇게 일 하는 순간이 행복하다는 거다. 택배 기사의 연령대도 다양했다. 예전에는 주로 나이 있으신 아저씨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이십 대 청년들도 많다. 부부가 함께 다니기도 한다. 거의 잠자는 시간 빼고 모든 시간이 택배 업무에 필요한 시간이다. 바삐 움직이는 만큼 번다고 해도, 그렇게나 많은 시간이 택배 업무에 드는지 몰랐다. 가만 생각해보니 밤 10시에 배송 올 때도 있는 걸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탑의 물건이 쏟아질까 봐 후진해서 언덕을 오르는 택배 차량도 있다. 골목 안쪽까지 차가 들어가지 못해서 물건을 들고 좁을 골목을 달린다. 번지수는 맞는데 집을 잘못 찾는 경우가 힘들단다. 집을 찾아서 물건을 배송해야 다음 집으로 배송을 가니까. 수령인이 부재중일 때는 택배 기사와 수령인 사이에 아는 장소에 두고 가고는 한다. 어느 집 현관문 앞에는 방문할 택배 기사의 이름이 써진, 음료수가 담긴 봉투가 하나 걸려 있기도 한다. 고맙다는, 감사하다는 한마디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게 한다.

 

택배가 없었을 때는 어떻게 물건을 보내고 받았는지 기억하기도 싫다. 작은 언니가 결혼하고 서울로 올라갔을 때다. 엄마가 담근 김치랑 엄마가 만든 반찬이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열심히 김치를 담그고 반찬을 만든 것을 어떻게 보냈는지 아나? 집에서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서 기사님께 물품 인도하고 차비만큼의 배송료를 내고,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 언니랑 형부가 버스 도착 시각에 맞춰 나와 물품을 가져가고는 했다. 그런 일이 두 번 정도 있었는데, 정말 마음은 열 번을 보내고 싶어도 번거롭고 힘들다. 다행스럽게도 그즈음 해서 택배가 생겼다. 너무 편하게 이용하고 있는데 갑자기 택배가 없어진다는 상상만 해도 캄캄하다.

 

소비하는 생활에서 이제 택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나부터도 대부분 물건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는 하니, 택배 기사님은 몇 달에 한 번 보는 친구보다 더 자주 보는 사이다.

어느 날, 조카 아이에게 동생(조카 아이의 엄마)이 자전거를 사줬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자전거가 배송되었고, 조카 아이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신 나게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놀이터에 같이 있던 아파트 아주머니가 조카 아이에게 물었단다.

“어머~ 자전거 멋지네. 누가 사줬어?”

“택배 아저씨가요!!!”

@@

아이의 눈에 비친 택배 기사님은 물건을 배송해주시는 분이 아니라 물건을 사주시는 분이었다. 너무 자주, 익숙하게 배송받는 일이 아이의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택배 아저씨가 사줬다는 그 말은 내 동생을 웃프게 했다. ㅠㅠ

 

인터넷서점 이용한 지 십 년이 넘었다. 그 말인즉슨, 택배를 이용한 시간도 똑같다는 말이다. 그동안 택배 관련해서 참 감정 상할 일 많았다. 배송도 안 해주고 마음대로 배송완료 처리해놓고 이틀이나 더 지나서 배송해준 적도 있다. 책도 그냥 막 던지고 가서 망가지고, 귀찮게 책 교환하게 하기도 했다. 어디 책뿐이랴. 내 돈 내고 내가 물건 보내는데도 택배 기사 눈치 봐야 하느냐며 화를 낸 적도 있다. 근데, 참... 이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 그런지,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한 템포 쉬고 말을 꺼내니 열 번 싸울 일도 다섯 번 싸우게 되고, 한번 싸울 일도 그냥 넘어가게 한다. 배송하는 사람, 받는 사람, 보내는 사람 모두가 딱 한 번만 더 숨 고르고 얘기하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겠다. 썩는 물건 아니면 하루 이틀 지나서 와도 그러려니 하고, 내가 먼저 웃으면서 수고하시라고 인사하기도 한다.

 

“기사님, 저 구단씨인데요.”

“어, 구단씨~” (몇 년 전에 처음 봤을 때부터 막 반말하셨다.)

“오늘 제 이름으로 반품 송장 나온 거 있어요?”

“송장? 오늘 구단씨 송장 나온 거 없는데?”

“아, 그럼 내일 나오려나 봐요. 알겠어요. 수고하세요.”

“그냥 오늘 가지러 갈 테니까 이따가 줘.”

“저희 오늘 부재중인데요?”

“그럼 00한약방에다 맡겨놔. 내일은 바쁜 날이야.”

“아, 네. 그럴게요.”

며칠 전, 택배 반품할 게 있어서 H택배 기사님께 전화를 드려 송장이 나왔느냐고 물었다. 송장이 안 나왔다는 말에 다음 날 나오겠구나 싶었다. 그랬더니 기사님께서 내일 송장 나오면 알아서 보내줄 테니 그날(월요일) 수거해 가신다고 했다. 다음날(화요일)은 바쁜 날이라 일부러 들르기 어렵다고. 택배에서 화요일이 가장 바쁜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웬만하면 화요일에 물건을 받거나 보내는 일을 피하려고 날짜 맞춰 주문하고는 한다. 그런데 반품은 내 맘대로 송장이 나오는 게 아니므로 어쩔 수가 없다. 그날은 내가 부재중이라 기사님을 기다릴 수 없다고 했더니 집 앞 큰길에 있는 한약방에 맡겨놓고 가라고 하신다. 그 한약방은 거의 매일 기사님이 방문하시는 곳이기도 하고 나도 잘 알고 있는 집이라 맡겨 놓고 가라고 하니 그러겠다고 했다. 이럴 경우 서로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내가 직접 건넨 물건도 아니고, 송장을 받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남의 집에 물건 맡겨놓고 알아서 가져가겠다고 하는 말을 믿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믿었다. 연락처도 알고 있으니 이틀 정도 지난 후에 확인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보낼 택배 물건에 캔커피 하나를 붙여놓고 왔다. 이거 드시고 송장 나오면 문자 한 통 달라고 포스트잇에 써놓았다. 그런데 문자 없었다. ㅎㅎ 결국은 내가 전화를 해서 송장 번호 확인했지만, 화가 날 일은 아니었다. 기사님이 먼저 송장 번호 불러주고 있었으니까. 나이 드신 분이라 그럴 수도 있고, 그 바쁜 와중에 문자 한 통 보내는 일이 번거로웠을 수도 있다. 안전하게 발송된 거 알았으니, 됐다. 이 기사님은 길 가다 우리 엄마를 봐도 아는 척하신다. “구단씨 어머님 어디 가셔요~?” 남의 귀한 딸내미 이름 막 부르고 반말하신다고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거, 아시려나 몰라. ^^

 

“좋은 일 있으세요?”

“아닌데요?”

“항상 웃고 계셔서요.”

“아, 하하하...”

작년에 C택배 기사님이 바뀌셨다. 인터넷서점에서 내가 직접 주문한 책이나 선물이나 출판사에서 책을 받을 때 주로 마주하는 택배다. 그런데 이 기사님, 처음부터 너무 밝게 인사하면서 오신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집안에서도 다 들린다. 이제까지 경험한 택배 기사님 중에서 가장 반갑게, 먼저 인사하는 분이다. 그런데 내 눈에는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처음이니까 그렇지,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인상 쓰면서 올 건데 뭐, 하는 생각으로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근데 이분이 배송한지 1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하시다. 항상 밝게 인사하면서 들어오신다. 덩달아 택배 받는 사람도 괜히 기분이 좋다. 길 가다 우연히 봤는데 마주하는 고객들에게 모두 그렇게 대하신다. 이런 분이 이 구역을 오래 담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에 엄마가 김치를 보내신다고 방문요청을 했다. 좀 무거운 박스였는데, 엄마가 따뜻한 캔커피 건네면서 택배 기사님께 물으신다.

“날씨도 추운데, 짐도 무겁고, 힘드시죠?”

“아이고, 어머님.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건 그런데... 그래도 힘들지요.”

“힘들어도 열심히 해야죠. 하하하.”

그렇지.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몸이 아프면 일하기 힘들어지는 일이라, 밖에서 움직이는 일이라,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운 날은 저절로 시선이 간다. 내 몸이 아프면 짜증나고, 사람을 마주하는 일이라 별의별 상대를 다 만날 텐데... 그래서 이분의 하이톤 인사가 대단해 보인다. 그냥 나오는 인사가 아닐 듯해서.

이분은, 우리가 부재중일 때는 배송 안 하고 그냥 갈 수는 없으니 기사님과 나만 아는 비밀 장소(?)에 택배 숨겨두고 전화하신다. 어디 어디에 놓고 간다고. 아주 오래전에 어떤 기사님은 아무런 연락도 없이 그냥 현관 앞에 놓고 가시고는 했다. 불쾌했다. 이런 이유로 놓고 가니 나중에 확인하라고 말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화를 낸 적도 있다. 택배 온 줄도 몰랐는데, 물건 분실하면 책임지실 거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그냥 놓고 갈 수도 있는 상황을 이해 못 한 게 아니라, 놓고 갔다는 확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다. 웃으면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태도 하나에서 얼굴 붉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거, 지금은 잘 알고 있다.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C택배 영업소가 있다.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는 H택배 영업소가 있다. 택배 보낼 일이 있을 때는 보통 3분 거리의 C택배를 이용한다. 처음에 부부가 같이 택배 배송을 하셨는데, 지금은 그분들이 영업소를 열었고, 택배 기사님 2~3분이 함께 일하시는 걸로 안다. 번거롭지 않게 하려고 송장도 몇 장씩 미리 갖다 놓고 사용하고는 한다. 물건 보낼 일이 있을 때는 송장까지 다 붙여서 들고 가기도 하고, 음료수를 가지고 가기도 한다. 주로 화요일은 피하는 편이고, 오전 일찍 방문하는 것도 피한다. 택배 영업소가 오전 9~10시쯤 되면 문을 연다. 그래서 물건을 들고 간 적이 있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오전 11시쯤 다시 갔다. 그때야 기사님들이 있으셨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물류 작업하고 그 시간이나 되어야 배송 때문에 영업소로 온다고 하셨다. 기사님 두 분이 테이블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계셨는데, 송장을 쫙 펴놓고 정리하고 계셨다. 뭐하나 싶어서 궁금한 마음에 물었더니 담당 지역 배송할 송장인데 주소에 맞게, 배송 순서에 맞게 정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하... 미리 정리해서 순서를 정해야 시간도 절약하고 효과적이겠구나 싶었다. 대충 그런 식으로 배송하는 거 알고는 있었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 신기해 보였다. 세상에 쉬운 일 없는데, 택배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드는 순간이다.

 

내가 TV를 통해서 본 다큐 속에서 그들은, 직접 마주한 택배 기사님은, 노동의 현장에서 자신의 땀으로 일구어낸 만족감을 얘기했다. 자신이 배송하는 물건을 보고 좋아하는 고객의 표정에 기뻐했고, 방문하는 집마다 노크하느라 장갑의 가운뎃손가락에 난 구멍을 보여주며 웃었다. 물건을 이고 지고 뛰어다니느라 불편한 한쪽 팔, 한쪽 다리를 얘기했다. 월급날 입금된 숫자를 보여줬다. 그렇게 뛰어다녔는데 그 금액일까 싶어서 갸우뚱 했지만, 그 내역에 대해서, 택배 일의 더 세세한 사정에 대해서 내가 다 알 수 없으니 넘어가자. 하지만 그들의 하루를 지켜보고, 통장에 입금된 숫자를 본 내 마음은 서글펐다는 거... 그 금액 중 절반 이상이 영업차량의 기름 값이며 온갖 세금으로 다 나갈 테지만, 뛴 만큼, 땀 흘린 만큼 버는 그 일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얼굴에 내가 느낀 서글픔을 보태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은 새벽부터 물류 집하장으로 나가 허리 펼 시간도 없이 몇 시간을 택배 분류하고,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그 좁은 골목을 뛰어야 하며,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운전석에 앉아 차가운 김밥 한 줄을 먹으면서도 택배 일을 계속할 것이다. 그 노동의 현장에서 땀 흘리며 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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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0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4-07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4-03-2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수필한편 같아요

구단씨 2014-03-21 21:45   좋아요 0 | URL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이, 그렇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