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세계 - 미국 외교정책과 구질서의 위기,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리처드 하스 지음, 김성훈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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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세계 정세가 요동치지 않았던 시절은 없었습니다. 한국사만 해도 900여차례가 넘는 외침을 겪었다고는 하나, 독일 등 유럽의 중근세사를 살피면 도대체 이렇게 전란과 분쟁이 잦았던 땅에 어떻게 사람이 터잡고 살 수나 있었는지 고개가 갸웃해지곤 합니다. 언제나 대립과 갈등이 잦아들 날이 없던 세계였지만, 그 중 상당 국면은 "요동과 위험의 원인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이며 적은 어떤 이들인지"에 대한 인식만큼은 명확했습니다. 가장 최근의 정세 위협 요인이었던 미소 냉전 역시 "누가 싸우는지, 왜 싸우는지"에 대해서만큼은 모두가 다 알고들 있었죠. 뜻밖의 돌발사태로 의외의 해법이 찾아지긴 했으나 그 일이 아니었어도 미소 대결은 아마 원만한 타협, 혹은 점감하는 긴장의 소강으로 마무리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헌데 작금의 세계 정세 불안은 모든 것이 불확실성에 싸여 있습니다. 미국과 북한의 갈등이 고조되지만 과연 이 두 나라가 전쟁 상대로 격이 맞기나 할까요?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중이 협력한다고 하지만 과연 두 초강대국이 서로 진정어린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고 보는 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IS 등 극단주의 세력은 표면상 미국과 서유럽을 겨냥해 테러 등 도발을 감행하지만, 이들은 그럼 러시아와 중국 등과는 우호적인 관계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고, 러시아나 중국의 지역 분립 세력과 언제든 연대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양국은 국가 분열 사태를 막기 위해 진압과 격멸에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나아가, 과연 중국과 러시아는 언제까지 불안한 동맹을 유지할까요? 표트르 대제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을 때까지 동진한 이래 두 거인은 단 한 시점도 사이 좋게 지낸 적이 없습니다. 같은 이념 하에 공산주의 국가를 세운 시절조차 둘은 일촉즉발지경까지 치달았습니다. "누가 나의 적이고 친구인지, 무엇을 위해서 싸워야하는지" 그 당사자들조차 갈피를 못 잡는 게 현재의 국제 정세입니다. 저자 리처드 하스 교수의 인식은 이런 질문에서 그 단초를 마련합니다. 책 제목의 DISARRAY는 그만큼 드러난 현상 모두가 아직 무슨 실체인지 감을 잡기 어렵고, 전례 없던 이런 불확실성이 위기를 키우는 중요 요인 중 하나라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주장 중 하나가 '새로운 세계질서 2.0’입니다. 이 신질서를 뒷받침하는 가장 큰 원리는 "주권에도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명제입니다. 영어로는 sovereignty인 이 오랜 개념은, 번역어로는 "주권"인데 과연 낱말 속에 "권" 자만 있지 의무나 책임을 뜻하는 요소(형태소)가 없습니다. 사실 이 말은 봉건제 하에서 상위의 통치자나 교황에게 함부로 간섭 받지 않을 권리를 내세우는 데서 비롯했으니 그에 의무 같은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겠죠. 주권 자체도 간신히 명색만 유지할 판에 무슨 한가로운 의무를 고려했겠습니까.

중국은 남중국해 일원에 영해로서의 특수 성격을 주장하면서 이른바 "구단선론"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인공 섬도 지어 놓았고 역사적 연원도 충분히 존재하니 이 라인 안으로 넘어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인데, 이걸 두고 흔히 A2/AD라는 말(전략의 일환)을 쓰기도 합니다. 여튼 이때 중국이 내세운 명분이 "주권 행사"인데, 중국을 두고 구차하게 그 주권이 부인당할 만한 한계국가라고 인식할 자는 아무도 없다는 이유에서 뭔가 주장이 참 궁색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제까지 아무나 다 잘만 다니던 공해가 일국의 영해로 바뀌는 판에 근거라는 게 고작 "주권 행사"라니. 여튼 주권이라는 근거에서 그토록 강력한 현상의 변경이 초래될 정도라면, 이제는 주권에 시시한 방어적 개념만 부여하고 말 게 아니라, 그 강력해진 외양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도 함께 지워야죠. 본디 모든 권리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아니었습니까.

세계 평화는 강대국 간의 알력으로만 신음하고 위협 받는 게 아니라 약한 나라들이 고질적으로 치르는 시련과 문제 때문에도 심각하게 흔들립니다. 저자는 과연 국제정치학계의 대석학답게 섬세한 개념 구분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데요. 예컨대 국가로서의 위신은 유지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발언권이 약한 나라는 weal power, 그렇지도 못하고 자국 내부의 통일성이나 정체성도 간신히 연명해 가는 나라는 weak state로 명명을 달리하는 식입니다. 미국이 1990년대 초에 페르시아만 일대에서 대규모 군사 작전을 폈을 때 쿠웨이트의 주권을 회복시킨 후 그 선을 넘지 않고 일단 작전을 종료했으며, 대신 이라크에 대해서는 이른바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여 재기를 막은 사실은 유명하죠. 이때 아직 소련이 망하기 전이었는데 냉전의 공식 종료 이후보다 오히려 저때가 미국의 위세가 가장 등등하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세상에 "비행 금지 구역"이라니! 그러나 군사력이 현저히 불균형을 이룬 판에 당장 쳐들어가서 정권 자체를 와해시키지 않는 걸 고맙게 여겨야할 판이라고 할까요.

르완다 사태, 아이티 사태(모두 1990년대 전~중반에 벌어진 국제 위기였습니다) 모두 각각의 국가들이, 자국 국민 일부를 무력으로 공격하거나(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외국인 쿠웨이트뿐 아니라 엄연한 국민인 쿠르드족 거주지에 독가스를 살포한 적이 있습니다), 자국민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한 사실이 있다는 게 공통점이라고 저자는 지적합니다(p127). 후자의 경우 "보호하지 못했다"는 수동적 국면에서 그친 게 아니라 공격을 은연중에 방조, 교사한 혐의까지도 받는 거죠. 이른바 R2P는 이제 하스 교수에 의해 "주권의 새로운 의미로 편입될" 국가 내적 의무 중 하나로, "자국민을 정당하고 적법하게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는 이미 주권을 논할 자격을 잃는다"는 함의에까지 이어집니다.

이란의 경우는 보다 복잡합니다. 미국은 특히 오바마 행정부 당시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는 방침을 꽤 오래 유지했고, 제거(elimination)보다는 제약(constraint)이라는 틀로 해법을 마련하려 들었습니다. 국제 조약에 있어서 합의 문언은 그 타당성보다는 체결 당시의 협상력에 의해 좌우되는 게 안타깝지만 냉혹한 현실인데, 저자는 당시 국제 유가의 등락이라든가 이란 주변의 정세에 비추어 더 유리한 협상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큰 폭으로 양보한 건 매우 유감스러운 결과였다는 한 마디를 빼놓지 않습니다.

인도- 파키스탄 간의 긴장은 이미 오랜 역사를 지닌 해묵은 과제 중 하나입니다. 1990년대 후반에 파키스탄, 인도 양국이 핵무장을 완료함에 따라 남아시아 일대의 지정학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는데, 그전까지는 명분상으로야 어떠했든 자원과 영토와 인구 수 면에서 열세인 파키스탄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추세였습니다. 저자는 "이미 상당수 무슬림들이 인도 사회에 동화되어 잘 살고 있는 형국에 별개의 무슬림 국가가 북동부에 따로 분립하는 자체가 인도에 대한 모독"으로 해당 국가의 지도자들이 인식한다고 정리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인도 아대륙 전체에 대한 지배권은 10세기 이래 파키스탄(현재의 명칭) 일대의 펀잡인들이 특유의 무공과 의지로 내내 유지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권력 구조 하부만을 간신히 지탱해 온 인도인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게 조상 대대의 명예에 비추어 모욕적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종교 대립 문제가 아니죠. 여러 정치 세력이 아슬아슬한 연합으로 형식상 민주정체를 끌고 온 인도와는 달리 파키스탄은 군부 정권이 국가를 장악한 독재 시스템이었습니다. 지아 울 하크가 사고로 죽고 민주화의 봄이 열리는가 했으나 이내 무능과 분열상만을 노출하고 곧바로 무샤라프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며 종래의 독재로 다시 회귀했죠.

"주권적 의무" 개념의 정립은 생각보다 쉬운 과제가 아닙니다. 심지어 그 창안자인 하스 교수 본인에게조차 그렇습니다. 의무의 개념은 곧바로 그 국가가 "정통성"을 과연 가지고 있느냐로 연결되는데, 이로써 그저 강대국에 대한 항변권 정도의 의미에 그치던 "주권" 개념은 더 입체적인 성격이 새로 입혀지는 셈입니다. 정통성이 부족한 주권은 권리만 내세울 뿐 의무는 내던지다시피한 불완전한 명분이며, 이는 예컨대 1989년 당시 민주화를 요구하며 천안문 일대에 모인 군중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덩샤오핑 정권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지적입니다. 이 책에서 내내 강조되는 건, 도대체 자국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기본권을 탄압하는 국가가 과연 대외적으로 주권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 하는 의문입니다. 명백한 부조리를 두고서도 "현실적 제약"이라는 비겁한 핑계를 대며 외면하는 데에서 현재의 국제 정세 불안이 유래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닙니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유럽 근세의 정치적 위기가 봉합되고 disarray가 진정되었듯, 북핵 위기이건 혹은 그 어떤 지역적 긴장이건 전쟁 없이 마무리되려면 국가 모두가 참여하는 이성적인 논의의 장이 우선 열려야 하며, 그때 이 "세계 질서 2.0과 주권의 신개념 정립"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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탭 TAP - 모바일 비즈니스에서 승자가 되는 법
아닌디야 고즈 지음, 이방실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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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상품의 외관과 기능, 디자인만큼이나 큰 혁신이 필요한 분야가 바로 광고입니다. 어제까지 요긴하게 쓰이고 시대의 트렌드를 상징하는 듯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상품과 서비스들이 오늘은 까맣게 잊혀져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지만, 우리들 소비자들도 그게 마땅한 세상의 이치나 되는 것처럼 자신의 변덕과 지조 없음을 합리화합니다. 그리 쉽게 잊을 요량이었으면 애초부터 돈 들여 살 필요도 없지나 않았는지, 이처럼 기호와 취향이 쉽사리 바뀐다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부질없는 트렌드나 유행처럼 나 자신도 참 뜬구름 같은 영혼이 아닌지 다소의 자괴감마저 들곤 하죠.

기업이든 그 기업의 홍보를 대행하는 업체이든(이 책의 취지에 따르자면 어떤 중간 단계를 거칠 필요 없이, 똑똑한 기업이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양상이 더 바람직하겠지요), 소비자를 번거롭게 하지 않고 자사의 상품과 서비스의 특장을 잘 납득시키는 메시지를 보낼 방법만있다면 여한이 없을 겁니다. 대부분의 광고는 귀찮고 번거롭고 불쾌하며, (책 중 표현에 따르면) creepy하기까지 합니다. 반면 어떤 광고를 만날 때면 그 광고가 팔아대는 아이템이 불가사의하게도 "바로이거다!" 싶을 만큼 마음에 쏙 와닿기도 합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후회감이 들어도 구매와 지불은 이미 완료된 후죠. 소비자에게 일시 눈속임 술수를 부리라는 게 아니라 타인과 대중의 마음 그 정곡을 찔러 내 웨어를 안 사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요령은 누구나 배우고 싶은 알짜 노하우,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진짜 혁신은 애드버타이징을 넘어선 커뮤니케이션 섹터에서 언제나 간절히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관계자들이 뻔한 현실을 애써 외면했을 뿐이죠.

tap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p14 중반부 이하 참조). 하나는 "소비자들이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는 동작"을 가리키고(이는 소비자가 시장을 향해 메시지를 청하는 동작입니다), 다른 하나는 기업들이 "이런 소비자가 남긴 흔적을 활용"하여 최적의 메시지를 보낼 방법을 탐색하는 전략입니다. tap이란 단어에 "기존 정보를 솜씨껏 활용하다"라는 뜻이 있는 줄은 많은 분들이 처음 알 법도 합니다. 판매자를 향해 "톡톡" 두드려 오는 소비자의 마음을 잘 헤아려 "여기 저 듣고 있어요."라며 톡톡 두드려 가며 구애자의 눈빛에 화답하는 기업의 센스 있는 리액션, 바로 시장에서 성공하는 위너의 날랜 몸짓과 지혜로운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암만 좋은 상품이라도 우격다짐으로 소비자에 떠넘겨서는 안 되며, 강매나 강권은 요즘 세상에 기업이 자기 무덤을 파는 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세일즈, 마케팅은 뭔가 찜찜한 걸 팔아치우는 게 아니라 쌍방이 모두 행복한 소통과 만족으로 웃으며 이루는 눈빛과 미소의 교환과 같습니다.

다음소프트 송길영 부사장의 추천사를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 만화 드래곤볼을 보면 일곱 개의 구슬을 찾아다니는 주인공들이, 일곱 개를 모두 모았을 때 소원이 성취된다는 부푼 꿈을 안고 벌이는 모험...." 책을 다 읽고 나서 든 느낌은, 과연 마케팅의 비결은 어쩌면 이 저자가 소개하는 아홉 가지(두 개가 더 많아요) "포스"에 다 녹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 시장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매체가 미흡하거나 듬성듬성했을 때는 저마다 상황에 맞춰 각각의 막연한 방법론을 전개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나 백 년 전 니콜라 테슬라가 예견했듯, 대부분의 개인들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가상의 망을 통해 외부와 열심히 소통하는 지금, 소비자의 편의가 증진된 만큼이나 기업들도 시장에서 한판 승부를 봐야만 할 시점과 수단이 눈앞에 바싹 닥쳐온 셈입니다.

첫째는 맥락을 잘 살펴야 한다는군요. 구체적으로는 고객이 누구인지 아는 게 이 "맥락"을 아는 단계이며, 그의 신상과 정체성을 알라는 게 아닙니다.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어떤 양상, 방법(mode)으로 행동하는지는 경우에 따라 다 달라지며, 그가 무슨 기분(mood)인지도 역시 수시로 변하게 마련입니다. 어쩌면 사람을 아는 것보다, 이 맥락, 즉 모드와 무드를 아는 게 마케팅에서는 더 본질인지도 모르고,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전자는 알 필요가 없는 정보일 수도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기업에 제공하는(엄밀히 말하면 소비자가 3자 정보 제공에 동의한 후라야 하지만) 정보 중 가장 핵심적인 건 "위치"입니다. 제아무리 좋은 서비스와 상품도 이를 소비해 줄 당사자가 머나먼 곳에 떨어져 있으면 어필하기가 어렵죠. 그 사람이 근방에 왔을 때 날래게 접근해서 권유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 관련하여 재미있는 예시와 제안이 책에 많이 나오는데요. 우선 상품과 소비자 간의 단순 거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1.5km 거리지만 반대 방향에 놓인 샵과, 3km 떨어졌지만 지금 그가 향해 가는 도중에 자리했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까?" 질문에 대한 답은 누구로부터도 같게 나올 겁니다. 이런 종합적 상황 정보를 두고 "geo-awareness"라고 부른다는군요.

마케팅에서 예전부터 강조해 오던 팩터 하나가 "모멘트 오브 트루스(truth)"입니다. 소비자가 마음을 결정하는 바로 그 순간인데, 개발자나 벤터, 마케터 입장에서는 오래 전부터 고안해 온 제품이 과연 어필에 성공할지 아닐지 여부를 놓고 온갖 시나리오를 다 짜오다 이제 이 짧은 순간에 다다라 그 답을 비로소 보게 된다는 뜻이죠. 이 책에서는 그 순간을 더 짧은 단위, 더 짙은 밀도로 정의합니다. TV 방영 시간대 중에는 "프라임 타임"이라는 대역이 있는데, 무슨 뜻인지 구체적으로 몇 시 대 근처를 말하는지는 관계자 아니라도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항이죠. 이처럼 대략 몇 시부터 몇 시까지가 황금 시간대라는 규정은, 이제 시대에 많이 뒤떨어진 낡은 틀이 되었습니다. 상품군마다 그 잠재적 소비자에게 제대로 어필할 수 있는 시간대가 다 따로 정해져 있으며, 책에서는 아예 구체적으로 몇 시 몇 분인지까지 업계에서는 모색한다고 합니다. 이걸 두고 "마이크로 모멘트"라고 합니다.

이 "시간" 팩터뿐 아니라, 다른 여덟 가지 요소에 대해서도, "단기" 아닌 장기 판매에까지 두루 적용될 만한 논의일까요? 저자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합니다(이 서평 둘째 단락 중간쯤에서 저도 언급했습니다) p147에서는 필립 코틀러의 한 저서를 인용하여 "장기적인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모바일 마케팅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확언합니다. 사실 모바일 중심이 아니라 이미 "모바일 온리"를 운위하는 세상에서 이런 논의(과연 모바일 마케팅이 장기적으로도 효과가 있을지를 따지는 것)는, 답이 빤히 정해진 판에 번거로운 우회 절차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앞에서 "위치" 팩터가 소비자의 로케이션을 뜻했다면, 나 좀 봐주세요 하는 판매자의 위치, 어필 과제는 책에서 "부각성"으로 표현됩니다. 어쩌면 모든 담당자, 책임자 들이 가장 골머리를 싸매는 과제이겠는데 원어는 salient(명사형은 saliency)입니다. 먼저 본 걸 선명히 기억하는 건 초두효과, 반대로 나중 것만 기억하는 건 최신효과라고 부릅니다. 이 장은 다른 챕터들에 비해 짧은데 주로 논의의 초점은 "무슨 쿠폰이 어떻게 누구에게 효과있게 다가가느냐"에 놓여 있습니다. 책 읽으면서 쿠폰에 죽고사는 게 나뿐이 아니고 모든 소비자가 비슷한 태도이며, 몰 관계자들도 이 문제에 얼마나 목을 매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네요. 어떤 메커니즘으로 특정 쿠폰이 내게 왔다가는지 알고 싶다면 특히 이 장을 주의깊게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비좁은 공간이 특히 의미있는 이유". 이른바 혼잡도에 대한 논의는 이 책에서 가장 잘 쓰여진 대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던데요. 행동경제학이나 마케팅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소비자 자신도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모를 절묘한 이치를 확실한 근거와 예시와 함께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저자도 그런 의견을 내놓는데, 도대체 왜 혼잡도가 증가한 만원 지하철 안 같은 곳에서 애드 메시지에 대한 증가(감소가 아니라)하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영악한 마케터라면 이유를 따지고 들 시간에 고객의 명확한 행동 패턴을 철저히 따라가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이 효과가 얼마나 지속성이 있는지를 캐려면(혹은 이런 책 한 권을 써서 까다로운 독자들을 납득시키려면) 역시 이유 제시가 필요합니다. 저자는 그 명석한 두뇌로 "모바일에의 몰입도와 공간 혼잡도의 선형 비례 관계"를 짚습니다.

위치와 이동궤적은 또 다른 개념입니다. 이미 수 년 전부터 노드스트롬(백화점)이나 패밀리달러(할인점) 등의 업체는 물론 베네통 같은 브랜드에서도 개별 고객들의 이동궤적에 대한 유의미한 분석을 시작, 어느 정도는 매뉴얼화한 시나리오 세트를 완성해 가는 중입니다.  2001년작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온 맞춤형 광고 시퀀스가 그리도 큰 인상을 남겼는지 어느 책이나 보고서를 봐도 이 예를 거론들 하는데, 이 책에서 인용하는 NYT의 보도에서는 이미 SF가 현실이 되어 버린 업계의 현황을 확인해 줍니다.

워너메이커의 명언은 오늘날까지도 마케팅부서의 난제를 잘 요약합니다. "분명 홍보에 쓰이는 돈 반 이상은 낭비되고 있는데, 문제는 그 돈들이 어디서 어떻게 낭비되는지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 난제를 두고 저자는 "테크놀로지 믹스" 팩터로 요약합니다. 우선 사용자들은 여러 스크린을 사용하여 "장터"에 접근합니다. 여러 개의 스크린이라 해서 어렵게 생각할 건 전혀 없고, 누구든 스마트폰 하나로만 채널 삼아 물건을 사지는 않죠. 저만 해도 책은 PC를 통해 이것저것 따져본 후 구매를 결정합니다. 어떤 건 이상하게도 꼭 TV 홈쇼핑을 통해야 싸게 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품목이 따로 있습니다. 기업은 한 매체에 몰빵하지 말고, 각 "스크린"이 이룰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따진 후에 메시지 안배를 결정해야 한다는 충고입니다. 각 디바이스가 대체 관계인지 보완 관계인지도 잘 따져 봐야 합니다.

"효율보다는 균형을 따져라." 지난 2차, 3차 산업혁명시대가 효율, 능률 일변도의 단색적 척도로 모든 걸 평가했다면, 이제는 소통의 진정성 유지를 위해서도 (혹은 정말 광고의 직접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소비자의 감정선에 안착하기 위한 균형 감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하긴 누구라도, 설령 최상이 상품을 구매할 기회를 손에 넣을망정, 그 과정에서 감정이 상하는 걸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정보를 얻어내되 필요 최소한으로, 가장 무리 없이 유쾌한 방법으로 고객과 소통하고, 지혜를 발휘하여 우아한 어필을 하는 길이 이 책에 많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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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해방하라 - 지적인 삶을 살기 위한 최고의 방법
이드리스 아베르칸 지음, 이세진 옮김 / 해나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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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종(species)에 속하는 동물끼리 견준다면 과연 특정 능력의 편차가 크게 벌어질까요?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우수한 뇌 기능에 기대어 이처럼 놀라운 문명의 진보를 이뤘습니다. 같은 사람이라면 뇌를 활용하는 범위, 능률, 성과가 서로 엇비슷해야 상식에 맞는데, 우리 주변에서 확인하는 현상들은 그렇지가 못하다는 게 이상합니다. 어떤 분들(기업 중역이나 재산가)은 "써 보니까 사람 능력은 다 거기서 거기야. 얼마나 좋은 기회를 손에 쥐느냐가 중요하지."라는 말도 하시던데, 정말 그럴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좋은 기회란 건 어쩌면 숨겨진 재능과 잠재력을 계발할 기회를 뜻할 수도 있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해서 아무 능력도 의욕도 없고 마인드셋도 틀려먹은 사람까지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무엇이 계기가 되었든 "아 이러면 되는구나"같은 각성을 어느 순간 맞이했다면 그 사람은 그때부터 뛰어난 인재로 거듭날 수도 있겠습니다. 타고난 조건이 모든 결과를 좌우하지는 않는다는 게 요점이며, 심지어 "타고난 조건"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도 의문은 의문입니다.

저자는 비교적 나이가 젊은 분인데, 프랑스에서 스타 지식인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고 하네요. 이십대에 박사 학위 세 개를 취득했다면 그 두뇌의 수월성이야 익히 짐작이 갑니다만 이런 분이 "타고난 두뇌는 결정적인 게 아니며, 어떻게 후천적으로 잘 계발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를 외친다면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지과학은 이미 한국에서도 1990년대 초반부터 이정민 교수 등 선구자들에 의해 깊이 연구된 바 있으며, 오늘날 여러 협동과정이나 AI 관련 분야에 중요한 초석을 놓았음은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연구보다는 강연과 저술 활동에 집중하며 새로운 시대에 널리 요긴히 쓰일 인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자신만의 창의적인 의견을 널리 전파하는 걸 보며, 미래는 이처럼 기존의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프로메테우스적 선발자가 앞서 열어젖히는 것임을 새삼 확인합니다.

"좋아서 하는 자, 즐겨서 하는 자를 아무도 이길 수 없다."란 말이 있죠. 어쩌면 천재는 남과 다른 뇌구조를 갖고 태어나서라기보다, 거꾸로,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뇌 구조가 남들보다 더 빨리, 더 항구적으로 그리 형성되어 가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좋아지면 그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온갖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을 다 써 가며 애정을 결국 쟁취하려 들곤 하는데, 바른 공부도 어쩌면 이와 같다는 겁니다. 정말로 그 분야 지식이 알고 싶다면 나의 모든 타고난 잠재력과 지적 자원을 총동원해서 목표를 달성해 내고야 마는 게 인간입니다. "사랑 없으면 탁월함도 없다!" 저자의 말인데,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신나는 명언이 꽤 많이 나옵니다. 마치 열정적인 강연자의 한바탕 신명나는 수다를 녹취록으로 옮긴 듯해서, 이 분야에 전혀 소양이 없거나 뇌 계발 같은 주제에는 평소 관심도 없던 독자들도 무척 재미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순수하고 진정한 호기심에서 비롯한 활동이라야지, 그저 남한테 비뚤어진 과시욕이라든가, 자신에 대한 그릇된 과대평가에서 출발한 학습이라면 백날 천날 해 봐야 제자리걸음이죠.

박사 학위를 세 개나 딴 분이니만큼 그 관심사와 전공 분야를 어느 하나에 한정할 수 없겠으나, 저자의 열렬한 이슈 표적은 그 중에서도 "지식 경제학"에 놓인 듯합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지식 경제학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학문 분야"인데, 지식경제를 저자의 방식으로 정의하면 당연한 결론이긴 합니다. 그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역사 자체가 곧 지식경제의 발달사와 일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는 곧 공통의 거대한 "두뇌"를 구축해 가는 과정이며, 모든 개인과 문명과 집단은 이 두뇌를 공유 저수지처럼 이용하며 필요한 만큼 물을 대어다 쓴다는 논리, 비유입니다. 이 논의 도중에, 미국 NSA가 저지르는 해저 케이블 망 해킹을 은근히 비꼬기도 하는데(이런 유머감각과 자유로운 발상이, 대중을 매혹하는 명강사의 비결 중 하나입니다), 저자가 옹호하는 건 이런 비겁하고 비도덕적인 술수가 아니라, 모든 인류가 제한없이 액세스하고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기여를 할 수 있는 공동 데이터베이스의 창안을 뜻합니다. 이는 물리적 실체를 가진 것일수도 있고, (현재 우리가 누리는 초기 형태처럼) 느슨한 비유적 형태의 구조일 수도 있습니다.

맹시(盲視) 현상은 이른바 "눈 뜬 소경"과도 같이, 멀쩡히 두 눈으로 보고도 알아채지 못하는 기이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머리로 본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자는 이 이슈를 짚으면서도 인간의 두뇌만이 가진 고도의 효율과 능률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필요 없는 정보를 덮는 건 시력이 아니라 당사자의 뇌가 내리는 결단과 습성인데, 공부(책에서 배우는 것뿐 아니라 인생에서 겪는 모든 체험이 다 공부이죠) 과저에서 꼼꼼하고 성실하게 모든 정보를 점검하고, 어설픈 감정을 개입시키면서 제멋대로 가치 평가를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같은 책을 봐도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캐치하고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열린 마음을 갖고 그릇을 크게 잡았으니 새로운 정보가 쏙쏙 섭취되고 기존의 스키마가 더욱 확장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반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편식하듯 정보를 섭취(왜곡)하는 게 버릇이 든 사람은, 무슨 책을 읽어도 기존의 편견만 재확인, 강화, 편향 확증할 뿐 도통 발전을 못 합니다.

저자는 역시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라, 현상학파의 창시자인 에드문트 후설의 개념을 인용하여, 이 과정을 "노에마들의 진입 경쟁"에 비유합니다. 철학과 자연과학을 극과 극의 위상에 갖다 놓고 하층민처럼 진부한(근거 없는) 상식으로 왜곡하는 돌대가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깨닫지 못할 경지죠. 사실 저자의 교육 방법론을 아무리 확대 적용한다 해도, 이처럼 악성의 반사회 퇴행 분자, 근본이 비뚤어진 정신을 교화시킬 방법은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승자 독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건 안타깝게도 이 노에마의 두뇌 안착 경로에서도 비슷한 특성을 지닌 듯하나, 앞서 말한 것처럼 당사자의 두뇌가 유연하게 작동하면 보다 넓은 범위의 정보를 원활히 처리할 수 있음은 당연합니다. "못된 사람"은 일일이 정보에다가 자기 감정을 투사하니, 들어오던 정보도 그 편협한 가시 철조망에 다 튕겨나가, 결국은 아무것도 머리 속에 남기질 못하는 겁니다.

저자에 따르면 코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합니다. "한 인간을 구하는 자는 전 인류를 구하는 것이다." 물론 선행하려는 의지와 동기를 널리 진작하기 위해 구사한 레토릭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말로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여서, 인간의 생명과 선한 마음씨의 가치는 어느 기준으로도 비교 형량할 수 없다"는 뜻으로 새길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저자는 "하나의 신경망을 구하는 자는 전 세계를 구하는 것"이란 재미난 말을 합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자, 남의 이익과 명예와 권리를 훼손하고도 태연히 "좋아서 그랬다고 장난이라고" 가당찮은 궤변을 떠드는 자는, 본인은 꿈에도 모르겠지만 뭔가 정상적인 신경망 가닥이 괴사한 까닭에 저런 정신나간 범죄를 태연히 저지르는 거죠. 이런 자들은 감옥 안에서라도 그 불구의 신경이 교정되어야 마땅합니다. 저자의 논리는 명쾌하고 비유법은 유창합니다. "신경은 신성하다."

모든 것에 순응하기를 강요하는 잘못된 교육방식은 결국 왜곡된 인간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낙오자 그룹 일부가 범죄자로 타락하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못 느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저자는 모든 단계가 즐겁고 유쾌하며, 따라서 인생 내내 희열에 가득찬 반복 학습, 개량을 위한 시행 착오가 가능한 학습이 되려면 교육은 곧 게임이 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합니다. "순응해야 할 것은 오직 자연의 이치뿐이다." 재미있는 건, 인지과학과 경제학을 동시에 천착한 저자답게, "경제는 산업 혁명을 통해 자연을 배신하는 듯했으나, 자연은 어느 시기에도 경제를 배신한 적이 없다." 같은 기막힌 명언으로 역사의 이치를 정리하는 대목입니다. 인간의 잠재력을 최대한 현실화시키는 개혁이야말로, 인간을 타고난 선한 천성으로 도로 복귀시키고, 모든 개인이 주어진 즐거운 삶을 누리며 가소로운 허세가 아닌 정직한 기여를 사회와 공동체와 지구에 베풀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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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프라핏 - 사회를 변화시키며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
신현암.이방실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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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프라핏"이라고 하니 아, 이익을 크게 내는 기업인가 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이익을 많이 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부터 하신 이들도 많을 듯합니다. 실제 제 주변 지인들도 그런 반응이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서울대를 나오고 화려한 커리어를 지닌 저자 두 분께서 정의하는 "빅프라핏"은 그런 게 아닙니다. 마이클 포터의 "가치 사슬" 개념에 기반하여, 이 사회와 대중이 요구하는 의미 있는 사업(이윤 추구 개념을 넘어선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지속적이고 건강하며 누구로부터도 지지 받는 "아름다운 이익, 그레이트 프라핏"을 뜻합니다.

근시안적으로 당장 눈에 밟히는 더러운 이익 추구에 몰두하면 그 획득 과정이 오래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행여 법적 제재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라도 한다면 쓸어모은 이익의 몇 배를 환수, 추징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가시적, 현실적 불이익을 떠나,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어디까지나 체제와 사회 구조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이익도 올리고 영리도 추구하며 자아실현도 이루는 겁니다. 그렇다면 만인의 박수와 환호, 나아가 "사랑"을 받으며 돈을 벌어도 버는 게 무엇보다 본인(개인이든 기업이든)의 마음도 뿌듯하지 않겠습니까? 수조 원의 돈을 꿍쳐두고 행여 여론으로부터 주목받거나 공권력의 응징이 덮쳐 올까 전전긍긍하며 잠을 못 이룬다면 그 많은 돈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돈을 멋지게 버는 것과, 그 번 돈을 멋들어지게 쓰는 건 다른 재주라고도 하지만(예전 인촌 김성수 선생의 부친이 한 말이죠), 번 돈을 뜻 있게 쓰는 게 다른 채널로 돈을 벌어들이는 인접 단계, 전초 과정이기도 하다면, 사회 참여나 봉사는 그저 선행의 차원이 아니라 이미 비즈니스 프로세스요 "돈 버는 머리"이기도 합니다. 저자 두 분은 실제로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이런 식으로 "의미 있게 돈을 쓰고 돈을 버는" 예를 취재, 체험도 했을 뿐 아니라, 이른바 "메디치식 참여와 후원"이 (그리 널리 홍보도 안 된 채) 이미 한국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집행되어 가치 사슬의 확고한 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팩트에 주목했습니다. 큰 규모와 명성, 재력을 지닌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나아가 개개인도 얼마든지 이 새로운 비즈니스 채널에 몸을 담고, 새로운 이익 창출의 한 통로나 모델로 삼을 수 있을 듯합니다. 백 마디 말보다 구체적인 여러 실제 사례를 통해 이 진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CSR은 그저 도덕군자의 훈계가 아닙니다. 저자는 피터 드러커의 유명한 어느 말(그의 말은 유명하지 않은 게 드뭅니다만)을 인용하며 시어스(백화점)의 회생 사례를 소개합니다.

"converting social problems into business opportunities"

잘못 곡해하면 약삭 빠르게 기회주의자가 되라는 소리로도 들리지만 대중과 사회가 그리 눈먼 호구들은 아니라서, 이 사람이 남의 불행을 얍삽하게 이용하려 드는지 아닌지는 바로 눈치를 챕니다. 아프리카의 빈곤 문제를 해결해 준다며 현지에 침투한 중국 자본이 어느새 검은 속내를 들키고 냉랭한 반응만 얻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과거 경영난에 처했던 시어스에 취임한 로젠버그 회장은 농촌 인구를 새로운 구매층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을 짰습니다(이제는 시어스의 사례가, 우편 카탈로그 발송을 통한 주문 유도 전략으로 널리 더 알려졌죠). 하지만 농민들이 어디 돈이 있어야 백화점 물건을 살 것 아니겠습니까? 농민의 소득 증대가 곧 백화점 수요 증진의 지름길이라고 판단한 그는 곧바로 농촌의 젊은 지도자 양성 코스, 4H 운동 발주 등을 통해 농촌의 자립, 자조 분위기 형성에 주력했습니다. 훨씬 뒤 이뤄진 한국의 새마을 운동도 이로부터 큰 영향과 참고 대상을 찾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일본은 특색 있는 이념과 경영 마인드를 지닌 상인층이 전국시대나 에도 막부 시절부터 이미 큰 세력을 형성하고 정치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중 오오미(近江) 상인들을 보면, 이른바 삼보(三方. 삼방)의 요시(良し)라고 해서, 세 부면의 당사자가 모두 만족하는 게 진정한 비즈니스의 길임을 일찍부터 강조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잘 아는 이토추 상사 역시 이 오오미 상인들의 후신이라고 하니, 지속 가능한 이윤 창출과 사회적 소통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즘도 신약 개발과 그를 통한 막대한 이윤 창출 간의 관계 설정은 여전히 해결이 어려운 과제입니다. 이윤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 누가 실패의 막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를 하겠으며, 그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 낸들 합당한 보상이 안 따르면 우수한 인재가 이에 헌신, 투신할 동기가 안 생깁니다. 이뿐 아니라 사회에 엄청난 기여, 후생을 베푼 이에게는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는 게 정의이기도 합니다. 유명해지고 적당히 칭찬 받았으면 됐네, 그걸로 만족혀." 이건 도둑놈 심뽀죠. 오무라 사토시 교수는 특히 아프리카 특정 지역에 만연한 회선사상충의 퇴치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십 년 간 인체에 머무르다 성충이 된 후 인체의 각막에까지 도달해 마침내 실명을 유발하는 무서운 녀석이죠.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기적의 3대 신약"이라고까지 부른다는데, 정작 이 약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은 돈이 없어 구매, 투약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기적의 신약 이버멕틴을 두고, 경영자이자 오너인 조지 머크 주니어는 "약은 그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가야 한다"며 대승적으로 아프리카의 환자들에게 무료 보급하는 대결단을 내렸습니다. 머크 컴퍼니는 이 결정을 통해 세계적으로 칭송을 받고 으뜸가는 메이저 의약사로 위상을 다졌지만, 솔직히 이런 인도적인 조치를 단행한 이에게 고작 그런 식으로 "사회적 보상"이 이뤄졌다고 정리하고 말기에는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드는군요. 이익의 주판알을 튕기지 않고, "do the right thing"의 통큰 결단을 내린 분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일상에서 저런 분의 천만 분의 일도 안 되는 작은 이익을 가지고도 얼마나 좀스럽게 굴곤 합니까. 그러나 당장의 이윤 획득에 연연하지 않는 선한 심성의 증명으로, 이 회사와 CEO는 다른 기업이 백 년 이백 년을 노력해도 얻지 못할 존경과 평판을 얻어낸 겁니다. 혹시 머크 컴퍼니의 이름을 아직도 모르는 이들이 있다면, 그 위대한 인도주의와 과감한 참여 봉사 정신을 주위에 널리 전파하고 홍보해 주는 게 어떨까요.

스튜어트 브리트 교수의 명언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광고 없이 영업 활동을 하는 건 칠흑같이 어두운 암흑에서 연인을 향해 윙크하는 것이나 같다." 많은 중소기업은 사회 참여와 csr 구현을 원하면서도, 그 방법을 몰라 결국 지레 중도 포기하고 합니다. 저자들의 제언은, "일단 시도해 보라. 그 역시 봉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업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면, 영리 추구에 쏟는 열정과 집중력으로 올바른 채널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입니다. 끝까지 목표를 향해 전력하지 않는 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봉사" 이상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봉사가 아니라 일이라고 여기면 그 정도에 그치겠습니까? "빅 프라핏 사업 모델"은 그래서 기존 영업과 시너지 효과도 낳고, 이 시대의 위너 기업이 어떤 채널까지도 다양히 열어 놓거나 참여하는지 정확한 안목까지도 넓혀 준다고 하겠습니다.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 대중은 우리는 어떻습니까? 기업의 횡포나 이기적 행태에 대해 지탄과 원망만 할 뿐, 정작 그들이 잘하는 일에 대해서 칭찬과 관심을 베푸나요? 이기적이고 속 좁은 소비자만 잔뜩 깔린 사회에 대해서는 어느 기업도 통 크게 기여하지 않으려 들 겁니다. 잘하는 선행, 착한 회사에 대해서 우리 대중들도 눈을 밝게 열고 열린 마음으로 포용하려 들어야 모두가 상생하는 훈훈하고 밝은 사회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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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 마스터플랜 - 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Dream Up 프로젝트!
국제미래학회 지음 / 광문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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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1980년대부터 제조업 강국의 위상을 세계에 각인시켰던 당찬 국가였으나, 90년대 후반부터는 IT 분야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여 현재와 같은 확고한 무역대국의 입지를 다진 바 있습니다. 현재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선진국 중심으로 거세게 일며 글로벌 경제구조 자체의 변혁을 꾀하는 중이지만, 이에 대해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정부 차원의 조지적 대응 움직임은 대단히 미약합니다.

B5판에 가까운 큰 규격에다 시원시원한 크기의 폰트, 370여쪽을 넘기는 분량, 한 권의 거대한 백서, 보고서 같은 이 책은 그 제목이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 마스터플랜"입니다. 이 이슈를 다룬 책은 시중에 수도 없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만, 마스터플랜 성격으로 과제와 이슈를 일목요연히 정리한 책은 자주 눈에 띄지 않고, 더군다나 "대한민국"의 현황에 포커스를 두어 분석한 책도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정책 결정자나 책임 있는 당국자는 물론, 사기업의 CEO, 심지어 경제활동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는 개인이나 학생들조차 어떤 이정표나 가이드라인을 하나 확실히 마련하고 곁에 두어 수시로 참조해가며 체계적으로 업무나 일상을 수행, 영위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 서재에서 조용히 페이지 넘겨가며 탐독한다기보다는, 업무용 데스크에 비치해 두고 수시로 참조하며 쓰기에 적합한 내용과 형식의 책입니다.

작년 상반기에 있었던 이세돌-알파고 대결이 여전히 이 책에서도 주요 화두로 언급됩니다. 사실 미국이나 서유럽에선 (AI 이슈가 우리보다 훨씬 자주 부각되고 업계나 학계의 성취도 훨씬 앞서가긴 해도) 저 사건 자체는 그리 큰 화제로 떴다고 보기 힘든데,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워낙 바둑인구(게다가 상대적으로 노령층인데 이 세대가 조직의 의사 결졍에 큰 영향을 끼치죠)가 많은 덕에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는 듯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회고하는 대로, 컴퓨터에게 문제 해결 과정을 위임하려는 시도는 1950년대부터 이미 있어 왔고, 머신 러닝 자체도 훨씬 이전부터 이론화가 이뤄지긴 했었으나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푸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p37) 때문에 그 이상의 의미 있는 진척이 미뤄졌었죠.

이제 빅데이터의 축적, (목적에 따라 규격화, 표준화한)입수, 활용이 가능해지고 연산장치의 혁신적 성능 개선이 이뤄짐에 따라 실용화, 상용화가 눈 앞에 다가온 상황입니다. 당장 내년인 2018년부터 비즈니스 컨텐츠의 20%가 기계에 의해 제작되리라는 전망인데, 이미 직장이나 소속 조직에서 실감하는 분들도 많겠습니다. 81%의 CEO들이 "의사 결정 과정에서도 AI가 영향을 끼치리라"는 전망(p39. eMarketer 자료 재인용)인데, 이들 상당수가 가치관 면에서 보수적이고 고연령층이라는 점에서 저 수치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구가 발전함에 따라 인지(cognitive) 컴퓨팅, 기계 지능 등으로 분야가 더 세분화하고, 그간 선견지명 있는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했듯 기계의 (그 동기를 알 수 없는) 결과 산출에 무작정 의존할 게 아니라, 훈련된 신경망이 내린 결정에 대해 설명이 가능하도록 하는 XAI(=익스플레인 AI) 연구에 초점이 맞춰지는(p40) 게 현재 미국 정부 섹터의 최신 동향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상하게도 그 근본 원리를 이해도 못 한 채 앙상한 결론만 뽑아내어 사이비 종교 교리 선전하듯 목청만 높여 떠드는 천박하고 혐오스러운 움직임이 있는데, 이처럼 정체 불명 근거 부재의 맹신적 폭주는 과학의 본질을 이해 못하는 지적 열등자가 남들보다 나은 대접만은 악착같이 챙기고 싶어하는 비뚤어진 욕구와 뒤틀린 인성의 산물이라고 하겠습니다. 3류에도 못 끼는 암기형 낙오자가 그저 남들 하는 시늉만 내며 어설프게 전문가 범주에 날림으로 끼어 보려는 시도는,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철저히 그 부실과 허위가 폭로될 것입니다.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구글도 에너지 효율에 대해서는 일일이 언론과 비평가 그룹에 해명하며 시시콜콜히 단계별 개선 사항을 홍보하는 모습인데 뭔가 그들도 신경이 어지간히 쓰이기는 하는가 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최소 열량 소모로 고효율을 달성하는 인체 신경망 구조가 놀라울 뿐인데, 책에서도 "더 적은 데이터와 더 작은 사이즈를 갖는 학습 시스템"이라든가, "시뮬레이션 환경" 등의 아젠다를 중요 항목으로 강조합니다. 단, "학습과 추론에 적합한 하드웨어"나 "기억을 가지는 신경망" 등은 아직 (특히 한국의 산-학 연계 구조에선) 매우 갈 길이 먼 과제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가상화폐 분야에서도 근래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세력에서 여러 보안 침훼, 저해 시도를 펼치고 있습니다만, 인공지능은 이 영역에서도 이른바 compromised된 데이타를 체계적으로 적발해 내는, anti-fraud 기능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자율 주행 분야에서도 보다 진보된 신경망을 통해 움직임과 이동성을 개선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모든 좌절과 실패를 남탓 환경탓 시스템 탓으로 돌리는 퇴행적이고 범죄적인 사고에만 능통한 원 트랙(해프 트랙?ㅋ) 원시 신경망을 가진 자가 뉴런이 어떻고 시냅스가 어떻고를 떠드는 것만큼이나 희극적인 꼴도 없는데, 이른바 "생성적 적대 신경망(자족적 고립적 폐쇄적 AI가 아니라, 경쟁적 환경에서 진취적 진화를 달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뜻합니다)"의 응용, 도입은 특히 이 자율 주행 분야에서 큰 효능을 산출하지 싶습니다.

몇 년 전에 출간되어(한국에서는 개정판 혹은 리커버판까지 시중에 나왔죠) 큰 화제를 모은 <에너지혁명 2030>이 지도적 위상의 여러 지성인들에게 영향을 심대히 끼치긴 한 듯합니다. 이 책 중에서도 여러 대목에서 원용되는데, 이와 관련한 논의에서 한 예를 들며 화력 발전소에서 원격 조정 로봇을 이용하여 보일러 튜브의 결함을 판단, 평가, 개선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이게 한국의 사례인가 봅니다. 물론 (각국에서 지양, 퇴출 아이템으로 거론되는)화석 연료 의존형 시스템에서 이뤄진 혁신이라 응용, 확장, 보급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속도와 정확성의 동시 개선이라는 쉽지 않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 분명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뭐 바로 다음 대목에는 미래의 프로젝트인 "스마트 시티 저탄소 컨셉"을 뚜렷이 지적, 언급하기도 하니 과제의 근본적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의심이 없는 태도입니다.

전기차의 배터리 기능에 대해서도, 재생 에너지의 저장과 생산 기능 제고는 물론, 독립되고 분산된 에너지 네트워크의 창출을 언급(81)함으로써, 그저 환경 보존과 자원 고갈 대비라는 일차원적 목적, 대증(對症)적 어프로치가 아니라 산업 구조와 인간 경제 활동 구조의 근원적 혁신을 지향합니다. 한 가지 난제가 (방법론적으로도 바람직하게) 개선되면, 이에서 파생된 지혜가 도미노처럼 인접 혹은 원거리 영역에 두루 외부 효과를 끼치는 점이 그저 놀랍고, 역시 미래는 긍정적이고 낙관적 퍼스펙티브에서 통찰할 필요가 있음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전기차 관련 그랜드 비전은 p123이하에서 보다 자세히 전개됩니다. 책에서도 2017.10 기준 모두 25대의 자율주행 차량이 국토부 허가를 받아 운행 중이라고 밝히며(p125), 또 지자체 레벨에서도 여러 사업이 선견지명 있는 행정가, 관료, 사업자 들에 의해 이미 추진되고 있습니다. 자율 주행차는 인공지능과 딥러닝 분야의 혁신에 어쩌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핵심 기여를 받는 섹터인데, 책에서는 BMW(여긴 당연한데)와 엔비디아(여기가 의외죠?)등의 기업이 CES 2017에서 시연해 보인 여러 놀라운 기술적 진전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걸 피상적으로 언론 기사만 읽고 넘어간 분들은 "맨날 그 얘기가 그 얘기 아님?"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데, 언젠가 티핑 포인트를 넘기면 그때부터는 큰 "컬처쇼크"로 다가옵니다. 환경과 트렌드에 대한 정확한 감각이 (개인의) 마인드셋도 지배해야 각자의 업무에서 적실 적확한 아이디어 산출이나 깔끔한 기안이 가능해집니다. 시야 자체가 왜곡되면 심지어 기술적 디테일도 머리 속에 엉망으로 정리되어 어디 가서 망신이나 당하기에 딱 좋을 뿐입니다.

개인 무인 항공기 보유 개념으로 "1가구 1드론" 시대가 머지 않아 열리라는 전망은, 설령 이 분야에 관심이 적었던 이들도 은근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책에서는 토머스 프레이의 말을 인용하여 "유동성 미디어 플랫폼으로 드론을 활용한"(p155에 이 언급이 나오는데, 기술의 진보와 사회 현상을 이처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통찰하는 실력이 진정 놀랍지 않습니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지성은 단순 암기 사항의 카피 낭독이나 말꼬리 잡고 늘어지며 획일화니 어쩌니 소모적인 시비를 거는 게 아니라, 이처럼 일찍이 없던 개념을 결합, 총괄하여 제시, 정리, 예측하는 능력입니다) 새로운 직업군의 창출을 예견하는데, 바로 이런 전망과 구체적 패러다임화야말로 "마스터 플랜 백서"의 본연적 기능입니다.

인접국에 비해(단 중국은 개별 기술은 우릴 앞서가는 분야가 있어도, 총괄적 컨셉으로는 재래식 제조업에 비교우위를 갖는 나라라서 "4차 산업혁명"을 단위로 파악하면 여전히 뒤처진 면이 있습니다) 매우 그 동력과 성취상이 미진하지만, 여튼 가까운 장래에 전면적이고 불가파한 현실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므로, 우리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집행과 실천과 지속적 전진이 가능한 과제를 설정하고 현장에서 독려해야 합니다. 책에서는 참 멋진 표현을 구사하며 독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데, 윗선에 상신, 혹은 보고하는 문건은 무릇 이 정도가 되어야 성의와 실력을 인정받게 마련이죠(뭐 이 책이야 최고 석학들의 솜씨이니만치 당연하지만). 붐업, 점프업, 스트롱업, 글로벌 파워업의 4단계를 추진하자는 제언인데, 이 설계에 따르면 점프업은 2020년까지는 완결되어야 하고, 나머지 후속 두 단계도 거의 동시에 진행되어 2022년까지는 의미 있는 경제적 과실이 국내 산업계 전반에 파급되어야 한다는 거죠.

특히 중요한 건, 어느 단계의 "혁명"에서도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자원인 "인재의 발견과 양성"입니다. 쭉정이와 알곡을 준별하는 기준은 첫째 창의성, 둘째가 업무와 과제에 임하는 진정성입니다. 변명과 합리화와 왜곡이 버릇처럼 취미처럼 몸에 밴 자는 어느 조직에서건 퇴출되게 마련이고, 직장 동료들은 물론 가족, 부모로부터도 관계 소외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거센 도전은 오히려 우리에게 전인적 인재로 거듭날 것을 촉구하는 진화에의 동력으로 받아들일 때, 미래의 직장은 지루하고 고된 먼데인(mundane) 업무의 반복이 아니라 희열과 쾌감의 놀이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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