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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 DNA - 쓸모없는 줄 알았던 정크 DNA의 비밀
네사 캐리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8년 1월
평점 :
필요와
불필요, 주류와 비주류의 분류만큼 과학 본연의 태도에서 벗어난 건 없습니다. 이야말로 인간의 가치 판단이 가장 선명하게 개입하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근자에 들어서 과연 "적자 생존"의 적자(the fittest)가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강력히
제기되는데, 당연, 자명하다고 여겼던 분야가 알고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새삼스러운 각성은, 거대한 진리의 체계 앞에서 인간의
인지 기능이 얼마나 (아직은) 미미한지 그 슬픈 한계를 깨닫게 합니다.
불필요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다, 뭐 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주객 전도의 지경까지 갔던 거라면 학자들의 충격도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대체 "매우 미묘한 방식으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수 세기 동안 거대한 크기의 천체는물론
자그마한 지상 물체의 사소한 낙하까지 거의 모든 물리현상을 설명해 왔던 뉴튼 역학은 미시 세계의 기괴한 작동을 대면하고부터는 그
유효성이 심각한 회의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이뿐 아니라 이른바 복잡계의 속성을 거론할 때 항상 대표로 꼽히는 기상 현상 예측의
어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2000년
클린턴이나 토니 블레어 등 세계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성과가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습니다만, 인간을
대상으로 한 줄기세포 연구 규제와는 무관하게, 여전히 많은 유전병 연구에서 그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단계에까지 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명이 이뤄져야 할 분야가 여전히 미지의 베일에 싸여 있어서인데, 대체 98%의 정보가 "쓸모없다"고
분류되었다면 그를 바탕으로 한 연구가 과연 얼마나 큰 실용의 영역으로 이어질지는 넉넉히 짐작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건, 그저 발상의 전환으로 시야의 맹점을 보완하는 데에 그칠 게 아니라, 아예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계제가 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고작 "유행의 변덕" 같은 천박한 시선으로 파악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과학은 여튼 나선형으로
상승하는 지성의 몸부림 그 역정이며, 어떤 비천하고 열등한 정신이, 그저 무엇 하나가 축의 양방향을 진자처럼 발전없이 왕복한다고
자기 수준에 맞춰 왜곡, 단순화하는 것과는 달라도 크게 다르죠.
저자
네사 캐리는 과감한 비유와 명쾌한 설명으로 그간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온 축복받은 두뇌입니다. 어떤 이들(제 가까운 지인
중 그래도 신뢰할 만한 식자에 낄 법한 누구)은 "쉬운 말로 문외한에게까지 납득이 가게 설명하지 못하면 그 전문가라는 사람의
이해도도 의심해 봐야 한다"고도 하던데, 아, 그건 진짜 아닙니다. 자기 머리 속에는 선명히 그려지고 응용 가능성도 시원시원히
떠오르긴 해도, 전혀 모르는 문외한에게 3원색의 채도마냥 이해시키는 건 또다른 과업이요 도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류 대중서
저자와 본격 과학도의 위상을 겸한 네사 캐리는 진정 축복받은 두뇌입니다. 이 깔끔하면서도 유익한 대중서를 읽은 후 종전의 그런
느낌, 인상을 더욱 굳히게 되었습니다.
짐작은
쉬운데 증명은 어렵고, 심증은 흔하나 물증은 귀한 법입니다. "정크 반복 DNA(얼마나 부당한 이름이었는지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통렬히 깨닫게 됩니다)"는 대개 덩치가 크고, 어쩌면 그 이유 때문에 더 손쉽게 부당한 오명을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지금껏 종전 대중서의 오도 때문에 지성 용량이나 자원을 낭비했다고 여기진 마십시오. 올바른 최신 지식의 업데이트는,
오히려 당신이 종전 지식을 더 열심히 공부했으면 했을수록 더 빠르게 더 정확히 이뤄지는 법입니다. 공부하느라 들인 수고는 결코
무위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지식은 언제나 전복, 대체, 반박되게 마련인데 이런 걸 두고 지식의 획일화 타령을 하는 자는 그저 학창
시절의 개인적 악몽을 한심히 호도, 합리화하려는 새빨간 거짓말 외에 다른 의도가 없습니다.
학자들이
"단순 서열 반복"이라 부르는, 저보다 훨씬 작은 반복 단위들은 인간 유전체 중 약 3%를 차지(p67)한다고 합니다. 이
분야뿐 아니라 어떤 학문의 영역에서도, 미지의 패턴 그 정체를 밝히는 과업은 출현 빈도가 높으면서도(용이한 일반화 가능),
개체마다 뚜렷한 대조가 가능한 단서에 의해 결정적 도움을 받게 마련입니다. 이 대목을 언급하며 저자(뿐 아니라 모든 일류
연구자)가 느낀 환희와 스릴, 영감이 어떤 것인지 생생히 전해 오는 문장입니다. 입증의 문제는 과학 영역에서 가설의 타당성 검증 뿐
아니라, 공교롭게도 범죄의 과학 수사에서 용의자의 유무죄를 실제 입증하는 데 요긴하게 쓰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전혀 다른 영역의
성과를, 비유적으로건 실체의 설명으로건 교묘히 연결하려 버무릴 줄 아는 게 (학자 스탠스를 잠시 떠나) 순수 글쓰기
재주꾼으로서만의 자질이겠습니다.
p134를
보면, 좀 놀라운 일이지만 "한 종류의 긴 비암호화 DNA는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물론 네사 캐리를 포함한
학자들)가 이 종류의 분자를 무시해 왔다"는 정직한 고백, 혹은 자성의 한 마디가 나옵니다. 사실 무시했다기보다는 자 이용할
자신이 없어서 외면했던 단서라고 해야겠습니다. 먼 훗날 자신들보다는 더 유리한 정보 여건에서 연구를 진행할 후배들에게 미루면서
말이죠. "긴 비(非) 암호화 RNA가, 신뢰도가 높은 수준으로 감지되지 않았는데, 이는 필요한 기술의 감도가 충분히 높지
않아..." 역시 보십시오. 또, 어느 분야에서나 나타나는 측정의 신뢰도, 그리고 통계상의 표본 처리 신뢰도 문제입니다. 두
이슈가 독립적이지 싶어도 결국은 같은 말입니다. 이 책에서 수도 없이 자주 등장하는 감도, 감도... 감도가 향상되면
deviation의 significance를 따질 필요가 줄어듭니다. 이 세부적 국면에 한정해서라면, 패러다임은 교체된다기보다 더
정교화하는 겁니다. 단지 해석의 병목 현상때문에 기존 패러다임이 더 이상 안 통한다고 많은 이들이 착각할 뿐이죠.
"하지만
긴 비암호화 RNA는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처럼 뚜렷한 서열 표지가 없으며 종들 사이에서 잘 보존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캐리
교수의 결론은 "인간 유전체에서 기능적으로 연관이 있는 서열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라는 겁니다. 캐리 교수처럼
명철하고 의욕 가득한 학자도, 구절양장과도 같은 경우의 수, 수형도의 분기(分歧) 앞에서 이처럼 "인간적인 주저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 가장 활발하게 조절되는 건 아주 오래된 긴 비암호화 RNA들이고, 이것들은 대부분 발달 초기에 관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 우리와 우리의 친척들은 모두 발생을 시작할 때 비슷한 경로를 사용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 다음 문단의 한
줄이 의미심장하죠. "이들 '정크' RNA를 암호화하는 서열들은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서열보다 훨씬 빨리 진화하고 있다."
'정크'에 벌써 따옴표가 붙었고, 일부 저자들의 주장이라고 한정하긴 하며, 바로 다음 문단에서 저자 개인의 유보("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다...")를 피력하지만, 이런 입장을 (공정히?) 소개한다는 것부터가 저자의 내심을 어느 정도는 드러내는 흔적입니다.
물론, 저자는 유보적 입장의 논거 중 하나로, "염기 서열은 종들 사이에 보존되지 않더라도, 3차원 구조는 보존될 수 있다"고도
하지만 말입니다. 이 마지막 인용구 같은 시원한 반박(혹은 암시) 덕분에 네사 캐리 교수의 책이 빛나는 것이기도 하고요.
"긴
비암호화 RNA의 발현은 본질적으로 방관자 사건이다." 다시 필요-불필요/메인-정크의 소모적인 논쟁으로 들어옵니다. 방관자
사건이란 말은 바로 뒤 문장에 나오듯 "부산물"과 거의 같은 뜻입니다. 더 구체화한 설명은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데, "... 특정
지역의 유전자들이 발현될 때 억제가 완화된 결과로 나타나는 부수 현상...."이란 거죠. 이에 대해 반대하는 측은 물론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고 하며, 이들을 가리켜 저자는 "정크 마니아"라고 다소 우스꽝스럽게 부릅니다. 저자는 두 입장의 대립 속에서
절충을 하려는 듯 보이나, 잘 읽어 보면 그래도 어느 한쪽에 조금은 선호가 기울어 있습니다. "성급한 범주화"에는 언제나 무리가
따르며, 새로이 출현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보다 어설픈 범주화에 맞춰 왜곡할 위험이 크다는 이유를 드는데, 이런 교훈은
비단 분자세포생물학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서 더욱 울림이 깊어요. 범주, 정의, 이름표가 중요한 게 아닌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편의대로 붙여 둔 "우상"에 먼저 매몰되곤 합니다.
"프래더-
윌리 증후군 환자 중 25%는 완전히 정상인(결손 부분이 전혀 없는) 염색체 2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p184)"
문제의 15번 염색체를 부모 양쪽에서 물려받은 게 아니라, 둘 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사실에 학자들은 주목합니다. 이런 패턴은
오직 각인의 맥락에서 바라봐야 바른 해답이 나온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학자들을 어렵게 만드는 건, 대체 왜 그럼 다른 문제에서는
각인 패턴이 아닌 다른 원리, 가설을 적용해야 쉬운 설명이 가능하냐는 건데, 이처럼 다양한 맥락의 통일적 적용, 우선순위까지
남김없이 해명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연구결과가 축적되어야 할지 아무도 모르니 그저 아찔하기만 합니다. 이때 "각인"은
콘라드 로렌츠의 그 각인과 철자가 같습니다만, 이 저자 네사 캐리 등이 근자에 혁명적으로 발전시킨 후생유전학(우리는 네사
캐리라는 이름을 이 성과 때문에 지금 아는 거죠)에서는 전혀 다른 뜻을 갖습니다. 네사 캐리의 다른 히트작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 배운 적 있습니다.
"먼저
시동을 걸기나 해야 무슨 작동이란 게 일어나는 법이다." 생각해 보면 아찔할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인데, 예컨대
"프로모터", "인핸서" 같은 용어도 교과서를 펼치며 공부하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이처럼 일반화한 말- 프로모터니 인핸서니-로
이름이 붙으면 더 어렵게 다가와요). 허나 이처럼 부가티 베이론(이런 고급 승용차를 사려면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할지- 캐리
교수님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이라서인지 아니면 본인이 자동차 마니아라서인지 유독 이런 비유가 잦네요)을 들어 비유를 하시니 조금
긴가민가하면서도 일단 독자들은 큰 개념을 쉽게 잡을 수가 있습니다, 감사하게도요. 암튼 프로모터나 인핸서(라고 이름 붙은
구역들)나 예전에는 다 "정크"로 간주되던 학자들의 불청객이었습니다.
정크가
알고보니 특정 기능을 요긴히 강화한다는 것도 놀라운데, 어떤 인핸서는 그냥 인핸서가 아니라 슈퍼인핸서라고 합니다(p215.
다능성 줄기세포의 엄청난 의의에 대해서 혹 생각이 안 나시면 앞 p143으로 다시 돌아가 복습해 보십시오). "마스터조절인자는
배아줄기 세포에서 아주 높은 수준으로 발현되지만, 전문화한 세포에서는 그보다 아주 낮은 수준으로 발현된다." '아주'라는 부사가
문장의 전반부, 후반부에서 두 번 다 사용되었다는 데에 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저 상대적 경향성만 지적하려는 게 아닌
의도죠. "많은 질환들을 치료할 대체 세포들을 만들 가능성"에 학자들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06년의 이 대발견은
네사 캐리의 전작 대중서(같은 해나무 출판사에서 이충호 선생의 번역으로 나와 있습니다)에도 언급이 있습니다.
RNA
분자들에서의 기묘한 스플라이싱(p315) 예를 설명한 대목을 보며, 우리는 지금 순수 자연과학이 확실히 전세기, 전전세기와는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실감치 않을 수 없습니다. 단지 단백질 암호화와 무관하다는 이유 하나로 그간 무시되었던 이 수많은
정크야말로, 그간 해명되지 않던 무수히 많은 난제에 접근할 열쇠였음을 발견하는 이 과정은, 특정 학문의 방법론적 성과, 혁신을
넘어, 해변에서 조개 껍데기와 조약돌을 주으며 노닐던 인류가 어떻게 저 광대한 대양을 주시해야 하는지 그 겸손한 자세를 새삼
일깨웁니다. 물론 모든 정크가 알고보니 귀금속 벌크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FSHD 단백질을 발현하는 근육세포들을 환자 자신의
면역계가 파괴하는 것일 수 있다는 가설은, 이 특권적 위치(캐리 교수만의 독창적 표현)의 단백질을 면역계가 낯설어한 나머지 위협적
외부 요소처럼 간주해서일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정크는 이처럼 오작동(?)할 때 특정 질환을 결정적으로 발병시킬 수 있는데,
그건 얘가 정크라서가 물론 아니라 우리가 이 정크(아니지만)의 하는 일을 제대로 파악할 때 오히려 특정 질환의 예방과 질환에
결정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고마운 단서 구실을 합니다.
과학자들의
앞길에 놓인 보다 근원적 난제는, 어느 인과 관계가 최우선순위에 놓일 결정적 원리이며, 어느 인과 관계들이 대등한 자격에서
비슷한 비중으로 가중치를 받으며 결합 작용하는지를 결정하느 것입니다. 정크가 정크 나름대로 독자 기능을 함이 분명히 밝혀지면 새로
이름표를 붙여 주면 끝입니다. 그게 아니라 (정크인지 정크 아닌지도 모를 녀석들이) 상위 다층의 프로세스에서 미묘한 기능을
숨어서 행하는 경우가 골치를 썩이는 겁니다. 이걸 언제 다 분류해서 길들여가며(생텍스의 어린왕자처럼) 인간의 인식 우주에 제
자리를 찾아줄지, 그저 아찔하기만 하지만 이처럼 정크(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에 의미를 부여해 가는 우리 인간의 자태와 노력은
여전히 아름답기만 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