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전쟁 2 - 백악관 워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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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 잠시 등장했던 묘령의 처녀 아이린은 이 2권에서 그저 남주 인철의 곁을 지키며 그 매력을 부각하고 고비마다 요긴한(결정적인) 어시스트를 하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기능을 합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주제의 부각에 기여를 한다고 봐야겠는데, 더 이상 말을 하면 내용 누설이라서 여기까지만 언급하겠습니다. (물론 최이지도 나옵니다)

"그래봤자 다 꼭두각시들이지...." 좀 위험하기까지 한 발언이었는데 이건 OOO이 경솔해서라기보다 어느 정도는 OO 앞에서 자기 신분을 과시도 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겠고, (조금 스포일러지만)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거부감(양심의 명령과 타고난 기질)의  발로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이 2권의 마무리를 보며 작년 이맘때 방영된 영드 <셜록> 새 시즌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는데, 물론 두 인물(누구와 누구?)은 외모, 나이, 동기 등에서 무척 차이가 크긴 하지만 재능과 무모한 선택 때문에 영어의 몸이 되었다는 점만큼은 같죠.

개인의 인생도 그렇고 집단(기업, 공동체 등)의 장래 개척도 그렇고 한 국가나 전 지구의 운명도 결국은 이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어떻게 중지를 모아 유효하고 도덕적이기까지 한 방정식의 해(解)를 찾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2권에서 (캐릭터) 문재인 대통령은 이른바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 문제를 거론하며, 당찬 재원 최이지의 서한(1권에서 나왔던)이 암시한 이슈를 골똘히 파고듭니다. 문 대통령뿐 아니라 임종석 비서실장도 등장하는데, 국가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동시에 풀어내며 주변국도 만족시키고 평화도 유지하는 방안이 대체 무엇이겠냐는 겁니다.

어쩌면 이 문제는 마치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끼의 대작들에 나오는 인생의 과제처럼 심오한 울림을 확산하는데, 고전에서 제기된 질문과 차이가 있다면 이 작품 속의 난제는 형이상학의 전유물이 아니라 당장 우리 모두가 죽고사는 일이 달렸다는 점이겠습니다. 근세 유럽에서는 이에 가장 가까웠던 게 1648년 베스트팔렌 체제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소설이나 현실이나 400년 전 현황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문제가 꼬여 있으며 파국이 닥칠 시 인류가 당면할 비극도 훨씬 심각하죠. 여튼 김진명 작가는 떡밥을 던져 놓고 회수를 게을리하는 무성의는 보이지 않습니다. 답은 소설 후반부에 매우 선명히 제시되는데, 감격과 동시에 약간의 전율을 느낄 독자도 있겠습니다.

2권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푸틴, 시진핑 등 국제 정치의 거물들이 원 이름 그대로 등장하며 각자의 잔인하고 영악한 잔머리를 열심히 굴려대는데 판돈은 승자가 챙기겠지만 말판의 졸(卒)이 되어 희생제단에 바쳐지는 건 물론 힘 없는 대중과 백성들입니다(이런 비극은 현재 운 좋게 한국인들만 강건너 불구경하듯 피했을 뿐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티벳, 남미, 아프리카 어느 곳 민중에게는 이미 살을 저며내듯 아픈 현실입니다). 키신저 같은 이는 트럼프와 극우 세력에게 "한국을 그냥 버리고 중국의 세력권에 넘겨 주면 우리가 편하다. 맘 잘 맞는 일본만 파트너로 곁에 두고 가벼운 날개로 비행하는 게 훨씬 낫지 않냐?"고 충고합니다. 본래가 친중파이기도 하고(1970년대 당시 닉슨을 보좌하여 미중 데탕트를 이끈 장본인이죠), 냉혹한 현실주의자이기도 한 그의 (실제) 지론에 가깝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키신저뿐이 아니라 지난 십년기 전반에 세력을 잡았던 네오콘 일각도 마찬가지이며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 일부 인사들도 이 문제에 대한 이견 때문에 경질된 적도 있습니다.

"참 나, 배은망덕한 꼴 더 이상은 못 봐주겠군. 그냥 버리는 카드로 생각하고 말지 뭐." 허나 꾼들의 셈속은 또 그리 간단한 계산에 그치지 않습니다. 트럼프는 여기서 난다긴다하는 모사꾼들과 상대국의 파트너들을 찜쪄먹는 놀라운 술책가로 묘사되는데, 과장되고 바보스러운 언행으로 놀림감이 되곤 하는 그이지만 실제 기량은 좀처럼 측량이 어려운 고수이기에 그만한 부를 일구고 대통령까지 되었겠죠. 이 소설 속에서는 OOOO 측이 그를 선택한 덕에 대권을 쥔 걸로 나오는데(물론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힐러리나 전임자 오바마나, 심지어 젭 부시 측도 OOOO 측이 요구하는 "일전불사" 결단에 대해 미온적이었기에 선택에서 배제되었다는 식입니다.

OOOO은 왜 전쟁을 원할까요? 여기서부터는 작가의 상상력입니다. 나폴레옹 전쟁, 혹은 그보다 한참 이전 시기부터 세상은 거상과 부호들이 배후조종하는 노름판이었다는 겁니다. 이해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단계까지 충돌하면, 전쟁으로 판을 쓸고 끝장을 봐야 합니다. 이 싸움에서 진 군주들은 밑천을 상환 못 했으니 퇴위, 추방 등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되고, OOOO들은 어떤 식으로건 투자 원금과 "그 이상"을 챙기고야 맙니다. OOOO들은 현재 미국에다 잔뜩 재산을 투자한 상태입니다. 미국 달러화로 표시된 재산은 달러가 기축통화이기에 실제 가치 그 이상을 갖습니다. 미국의 패권이 흔들리면 OOOO는 투자처를 옮기면 됩니다. 지금까지 수백년에 걸친 역사 동안 그리 해 오면서 그 막대한 부를 유지해 왔습니다. 헌데 이제는 그리 못 하는 게, 중국은 지배 엘리트들이 이를 막습니다. "거기 들어간 순간 내 돈은 내 돈이 아니라고 보면 돼." 이게 맞는 인식이든 그르든 간에, 더 이상 현재의 지위를 유지 못 한다고 그들이 판단하고 결단을 내리는 순간, 전쟁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주장입니다.

전쟁은 명분과 승전 가능성 사이를 절묘히 저울질한 후(누가?) 발발 시점이 결정됩니다. 히틀러도 소련이 그 시점을 넘겨 군수물자를 충분히 갖추면 더는 상대하기 버겁겠다 싶은 포인트에서 기습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도 중국이 이대로 자꾸 크면 현 상태에서의 우위마저 유지 못하게 되고, 그럴 바에는 지금이라도 전쟁을 벌이는 편이 낫다는 겁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말입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소설 속에서 지나치게 단순화한 상황 설정이긴 하지만, 미국 지배층의 위기의식과 현실 판단도 큰 그림에서는 이 소설 속의 시나리오와 그리 벗어나지 않는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트럼프, 시진핑, 푸틴 등이 벌이는 이 그레이트 게임 속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위상은 뭘까요? 김진명표 소설의 감동은 바로, 저혀 수를 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뜻밖의 발상으로 우리 약소민족의 생존 돌파구도 찾고, 세계 평화에 결정적 기여도 하자는, 어찌 보면 순진하고 어찌보면 애국심으로 충만한 그 결말의 과감한 단색적 제시에 있습니다. "독일 국민에게 고함"을 쓴 피히테도 생각나고, "어쨌든 결단이 필요함"을 역설한 칼 슈미트도 떠오릅니다.

(이하 약간 내용 누설 있습니다)
이 2권의 부제는 "백악관 워룸"입니다. 누가 뒤에서 부추기건 간에 개전을 주도하는 건 미국이고, 다만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적으로 돌린다면 이른바 back to back 포지션으로 협업의 진(陳)을 짜고 대항하는 두 강대국을 무슨 수로 미국이 상대하겠습니까? 이건 현 시점에서도 미국이 답을 못 찾는 난제 중 하나죠. 트럼프(극중 캐릭터)는 노회하게 수 하나를 내고(혹은 OOOO이 시킨 대로만 따라했는지 모르지만), 이제 중국을 압살하기 직전입니다. 이길 수밖에 없는 작전을 짰다고만 얼버무리는 대목도 있지만(또, 중국이 보유한 채권과 달러를 모두 무효한다고까지! 헉) 여튼 여기까지 국제 정세의 구도 제시는 꽤 그럴싸합니다. 이제 다시 미국의 단일 패권 세상이 열리고, 그 대가로 한반도는 잿더미가 되는 걸까요? 여기에서 인철과 ᇫᇫᇫᇫ는 묘안을 내어 파국을 막습니다. 대한민국은 진짜 세계 평화의 균형자가 되는 셈인데 픽션 속의 이 흐뭇한 결말이 현실에 조금이라도 수렴하게 하려면 우리 국민 모두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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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전쟁 1 - 풍계리 수소폭탄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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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선생의 소설은 일단 읽기에 참 재미있습니다. 20년도 훨씬 전에 발표되어 그에게 일약 명성을 안긴 데뷔작 <무궁화꽃이 ...>도 그 표방한 주제에 대해서야 찬반이 엇갈렸을망정 숨가쁘게 흥미진진하게 독자를 몰아가는 이야기 실력만큼은 누구의 넋이라도 홀딱 빼 놓을 만큼 탁월했었죠. 장편(직전작) <사드>만 해도 4년 전 출간 당시에는 미군이 운용하는 이 요격, 탐지 시스템에 대해 시사에 어지간히 밝은 사람들이나 입에 올리던 토픽이었습니다. 김진명 작가 정도나 되는 분이 소설 소재로 삼았기에 그나마 인지도가 높아졌다고나 해야 맞겠는데, 2016년 중반 당시 정부가 한반도에 이를 전격 배치하고 중, 러 측이 이에 거세게 반발하여 국제 분쟁으로까지 비화하고서야 비로소 우리 국민은 물론 전세계가 그 심각한 함의를 깨달았으니 말입니다. 이때부터 그는 슬슬, 소설가를 넘어 "예언자"의 범주에 한 발을 걸쳐 놓았던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신작 역시, 제목만 "미중 전쟁"인 게 아니라, 그 무대도 전세계에 걸쳐 있고, 인물들도 강대국을 이끄는 실존 인물들이 실명 그대로 나오는가 하면, 주제와 메시지 역시 한 민족의 절박한 생존 문제를 떠나 세계 평화(혹은 전쟁)를 두루 논할 만큼 꽤나 심각합니다. 이를 픽션화한 활극 속에 넣고 감상하니 일단 재미는 있습니다만 문제는 작품 속의 세상이 우리 우주와 그리 먼 거리를 두지 않았을 만큼 서로 닮아있다는 점입니다.

김 선생의 무대 세팅은 그저 평균 수준의 작가가 지닐 법한 상상에 머무는 게 아니라, 그 돌아가는 이치나 위태위태한 국면 각각의 묘사가, 이 현실과 별 차이가 안 날 정도로 정교합니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기에 이런 기괴한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단 말인가?" 이런 의문이 드는 분들은 한번 책을 폁쳐 읽어 보십시오. 고민을 많이 하면 한 분들일수록 "이 안에 이토록 많은 답이 있었군!" 하는 감탄이 절로 들 것입니다. 물론 어떤 건 지나친 논리의 비약도 있고, 현실에 맞지 않는 무리한 단언(캐릭터들의)도 보입니다만(2권 리뷰에서 잠시 짚겠습니다) 소설적 재미를 위해 그 정도는 독자들도 눈감고 넘어갈 수 있으며 오히려 은근 즐기기까지 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주인공은 인철인데 김 작가님의 전작들에서처럼 애국심 충만하고 능력 뛰어나며 젊고 미남이기까지 한, 아주아주 평면적인 사기 캐릭터입니다. 그는 페터 요한슨이라는 45세의 신들린 펀드 매니저와 접촉하다, 해당 인물이 갑자기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매우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됩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탐욕을 부리는 건 잡범, 범죄자들뿐 아니라 높으신 분들, 가진 자들도 간혹, 우아하게 즐기는 일종의 "스포츠"인데, 혹여 일이 잘못되더라도 정말 거물급이 책임까지 지는 지경까지 가는 건 우리가 거의 못 봅니다. 대개는 말단 실무자가 모든 혐의를 쓰고 대신 죽으며, 대신 남은 가족이 어느 정도의 보장과 배려(숨은)를 받는 선에 모든 비위가 덮이는 식이죠.

헌데 이 요한슨 씨는 그런 조무래기도 아니고 지극히 두뇌 회전이 빠르며 결기 또한 누구에 뒤지는 축이 아닙니다. 누굴 대신 죽이고 빠져나왔으면 나왔겠고, 혼자 죽느니 모시던 높은 분 몇은 보복 삼아 같이  물귀신처럼 끌어들이고 죽어도 죽을 인물이죠. 그런데 살해, 암살도 아니고 깔끔하게(?) 외관상 완벽한 자살로 생을 마무리했습니다. 이거 뭔가 있는 겁니다. 막후에 도사린 게 여간 큰 거물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십억, 조, 단위로 부를 축적한 이들도 주위에서 흔히 보는 수준의 부자는 아니지만, 이건 그 정도가 아니라 세계 일정 부분을 갖고노는 레벨의 실력자들이 뒤에 버티고 있단 소립니다. 우리의 인철이 지금 심각한 수렁에 한 발도 아니고 두 발이 다 빠진 셈인데, 김진명 선생이 만든 주인공답게 그는 정의감과 지적 호기심을 발휘하여, 그저 목숨만 건져 나올 생각이 아니라 거대한 음모를 밝히고 싶어합니다. 위기 앞에 이처럼 쫄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오히려 판을 뒤엎을 전략까지 구상하는 건 본인이 여간 잘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스텝이라 하겠습니다. (뭐 김진명 소설이니까요)

비엔나(빈)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누백년 수도였으며 이곳 번화가와 극장을 거쳐간 세기의 예술가들만 해도 부지기수입니다. 학자나 사상가나 걸출한 문인들은 또 얼마나 많이 배출되었습니까. 헌데 양차 대전 패배 이후 지금은 가난한 내륙국으로 국세가 쪼그라들어 그저 서유럽 평균 정도로 생활을 영위하겠거니 싶은 정도지만, 이 소설을 읽고 처음으로 그처럼이나 많은 자금이 오가며 세계의 금융 중심 중 한 곳 노릇을 이어가는지는 소설을 읽고 처음 알게 된 분들도 많을 겁니다. 슈나이더 총재와 인철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과 눈치 싸움도 볼만하지만, 사실 이 소설의 진짜 묘미는, 그저 실명으로 대놓고 등장하는 세계 거물들의 생생한 개성 묘사에 있습니다. 정말로 저 사람들, 대중의 시선이 안 미치는 곳에서는 저런 행동과 생각을 일삼겠거니 싶은, 너무나도 실감나는 서술 때문에 독자는 거의 미치기 직전입니다. 특히 트럼프나 푸틴을 보십시오. 이들의 충돌과 미묘한 타협과 배신 등 정신없이 돌아가는 정치 게임은 2권에서 밀도의 극한을 달리는데, 이런 솜씨는 댄 브라운도 쉽게 흉내내기 어려울 듯합니다.

인철 같은 잘난 청년한테 또 여자가 안 따를수 없는데, 일단 이 1권에서는 최이지가 등장합니다. 출중한 미모에다 수개 국어에 능통한 어학 실력에다 날쌘 몸놀림에 정확한 판단력에 빵빵한 집안까지... 남자들은 인철을 보며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어도 여성 독자라면 배가 아파 페이지를 못 넘길 만한 "미친 엄친딸"입니다. 이런 분이 또 위기에 몰린 남주를 아슬아슬한 시점에서 구하는 걸 보면 참 정해진 공식을 밟는다 싶어도 매번 그런 클리셰에 끌리는 게 우리 독자들이니 어쩌겠습니까 이거. 김 작가님 세대는 확실히 불어, 독일어 구사 능력에 대해 각별한 동경을 품는다는 걸 이 대목에서도 확인하게 됩니다.

케이맨 제도는 외국 장르소설이나 헐리웃 영화에서 이른바 조세회피처로 단골 세팅되는 카리브해상의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여기에 대해 활극 장르물 많이 읽으신 분들은 이미 내 고향이나 되는 양 관련 사연을 훤히 꿰고 있겠지만 김진명 작가 버전으로 듣는 이야기는 또 맛이 다릅니다. "음, 그래, 뭐 역시 그쪽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구만." 그러나 방심해선 안 됩니다. 익숙하고 흔한 교차로에서 "살인"이 진짜 벌어지는 일이 없듯, 얼굴 검고 이름자도 지방색이 풀풀 풍겨도 당사자가 정말 그 고장 사람이란 법도 없고 케이맨 제도 역시 장소의 맥거핀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예상을 반드시 빗나가는 한 수가 예비돠었으니 기대는 잔뜩 걸어도 됩니다.

비록 캐릭터 최이지의 입을 빌려(아니, 대통령[이 신작의 한국 대통령은 대놓고 문재인 현 대통령으로 설정되었습니다]께 보내는 친서 속에서) 설파되는 제안이지만, "어떻게 이 나라가 장기 불황의 수렁에서 빠져나와 활기찬 무역 대국으로 다시 살아나며, 건전한 내수의 엔진이 재가동될 수 있을지"에 대해 탁월한 견해가 여러 페이지에 걸쳐 이어지는 건, 작가 김진명의 평소 지론과 국가관의 반영이라고 봐도 좋을 듯합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다 맞는 말씀으로, 위정자도 위정자이지만 먼저 우리 국민들부터가 낡은 사고를 버리고 현실을 직시할 필요를 느끼게 하는 고언이었습니다.

실존 인물들이 실명을 걸고 벌이는(?) 대혈투는 2권부터 본격 전개되니 이 1권에서는 작가가 세심하게 깔아둔 밑밥을 꼼꼼히 발견해 내는 재미에 치중하시면 좋겠습니다. 여기 읽을 때는 몰랐는데 2권에서 여기 대해서도 하나하나 반전이 마련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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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인 스노우 팝콘북
단야 쿠카프카 지음, 이순미 옮김 / 서울문화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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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걸 인 스노우"는 둔기로 머리를 세게 맞고선 회전목마 아래로 떨어져 목이 부러져 즉사한 소녀 루신다의 사체가 눈 속에 파묻힌 채 발견된 사실을 가리킵니다. 내린 눈이 모든 걸 덮었으니 증거가 남지 않았으며, 이 살인 현장을 본 사람도 현재까지는 아무도 없습니다. 무심히 내리는 눈은 쌓이고 쌓여 모든 걸 덮습니다. 한때 불타올랐던 사랑, 집착, 연민, 증오, 질투, 순간의 정념과 판단 미숙으로 저질렀던 과거까지도 말입니다. 죽은 소녀도 장례식장에서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아련한 추억과 사랑의 대상으로 기억되었으나, "눈 속에 파묻히기 전" 그녀의 실상, 실체, 본모습이 어떠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누구의 본 모습이 어떠한지는, 혹시 그(그녀)의 스토커가 가장 잘 아는 법일까요? 이 또한 장담할 수 없습니다. 스토커는 대개 자신의 기대를 대상에 투사할 뿐이며,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소년 캐머런은 더군다나 성격이 좀 이상한,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예술가 기질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러 모로 가득한 별난 애입니다. 캐머런은 이웃에 사는 어느 소녀(말 그대로 "걸 넥스트 도어"더군요)를 두고, 짝사랑인지 동물적 본능에 끌린 스토킹인지 그도저도 아니면 광화사처럼 예술로의 승화 매개로 삼은 건지 모를 이상한 동기에서, 참으로 이상한방법으로 매일같이 엿보고 다닙니다. 소녀의 부친 헤이스 씨는 이 소년의 상궤를 벗어난 행동 패턴을 눈치 채고 점잖게 경고도 줍니다. 그 정도 경고만으로도 이 소심한 소년은 눈물에 콧물에 소변(...)까지 지렸을 만합니다.

캐머런은 소설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그 모친 신시아는 본문 중에서 그저 "엄마"로 자주 호칭될 만큼, 거의 1인칭 주인공으로 봐야 마땅한 캐릭터인데도 그 정도 자리까지 오르지는 못합니다. 소설에는 글쎄 매사에 시니컬하다고 봐야할지, 감정 형성에 큰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지(그 동생 에이미는 "언니는 인간 맞어?"라고 묻기까지 하더군요), 아니면 사춘기 소녀 특유의 열등감과 불안감 때문에 원치 않게 괴짜 코스프레를 하는 건지(속은 무척 여리고 감성적이면서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름은 제이드인데도 "셀리"라는 다른 인격을 하나 만들어 내어 노숙자 하워드와 소통하고 가명(가당찮게도 예명?)으로 극본도 쓰는 걸 보면 경계선 인격 장애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여튼 읽으면서 참 기분 나쁜 개성이다 싶었습니다. 생긴 것도 시원찮은 애가 행동까지 저러고 다니니(원래 더하죠) 대체 누구한테 사랑을 받겠나 싶고 말이죠. 여튼 놀랍게도 작품 중 1인칭을 함부로, 시종 일관 쓰는 특권은 이 제이드(셀리)의 것입니다. 뭔가 의미심장하죠.

캐머런의 (도망 간) 부친과 젊은 시절부터 파트너로 내내 활동했던 경찰관 러스(러셀 플레처)는, 캐머런의 부친 리와 많은 비밀을 공유했습니다. 경찰직에는 어울리지 않게도 섬세한 성격과 감정의 소유자였던 리는, 아름다운 부인 신시아가 멀쩡히 곁에 있는데도 다른 여인과 바람을 피웁니다. 이 여인이 심하게 폭행당한 후 죽자, 리는 (당연하게도) 용의자로 입건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고, 마을 사람들은 경찰 제 식구 감싸기라며 사정없는 비난을 퍼부으며, 이 와중에 리는 가정을 버리고 도피합니다. 리의 마지막 당부는 "러스, 내 아이를 잘 돌봐줘."였습니다. 원치 않게 친구(선배) 아들을 제 아들처럼 주시하게 된 러스도 러스지만, 소년 캐머런 역시 아버지의 이 불미스러운 스캔들이 내내 업보처럼 자신을 따라다니게 됩니다.

예술 쪽에 특별한 재능이 있어도 한 분야로만 발달하는 게 보통인데, 캐머런은 희한하게도 음악과 미술에 모두 능합니다. 학부형들과 친구들 앞에서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할 때, 그는 말그대로 무아지경에 빠져듭니다. 기억이 안 난다고 해서 이 정신적으로 불안한 아이가 무대 공포증 비슷하게 큰 사고나 쳤단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마치 다른 영혼이 빙의한 듯 신들린 연주를 해냈다는 소리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중후한 미남자인 오 선생님(일본계라고 하네요)은 사실주의 화풍의 천재라며 또 이 캐머런은 감싸고 도는데, 그 모친 신시아에게 다분히 흑심을 품은 까닭도 있지만 이 양반 거짓말은 또 안 하는 타입이라, 재능의 평가에는 거품이 전혀 끼지 않습니다.

이처럼 소설은 한 마을의 다양한 개성 다양한 기질 다양한 사연 다양한 과거(!)를 지닌 인물들을 돌아가며 조명합니다. 이 사연은 때로 먼 과거를 배경으로 전개되기도 하고, 루신다가 죽기 불과 며칠, 몇 달 전까지만으로 거슬러올라가기도 합니다. 미스테리도 미스테리지만, 작은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살며 표면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평온한 일상을 꾸려내는 듯한 사람들이, 그 속에는 저마다의 지옥과 활화산을 품고 산다는 실상이 무척이나 충격적입니다. 그리고 이를 우리 독자에게 캐스팅하는 이는, 1인칭 화자의 특권을 혼자 누리는 바로 그 소녀 제이드이고 말입니다.

경찰관 러스는 제이드와 캐머런에 비하면 겉도는 인물, 아저씨인 것 같아도(물론 스물 한 살 청년 시절 과거도 자주 플래시백됩니다) 아픔과 트라우마와 미칠 듯한 갈등(겉으로는 안 드러납니다)을 겪는 이는 바로 이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라틴계 이네스와 일찍 연을 맺었으나, 어느날 정성들여 차려 준 멕시코 전통 음식을 너무 맵다는 이유로 손도 대지 않자 이네스는 그날부터 남편에게 정이 확 떨어집니다. "이 바보 같은 그링고는 내 안의 감정, 정서, 영혼을 전혀 이해 못 하고 있다." 근데 제 생각에는, 이네스 입장에서, 남편이 음식에 손도 안 대었다는 것보다, 싫으면 싫다고 말이라도 분명히 하지 좀비처럼 멍하게 있었다는 게 더 진저리쳐졌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러스의 처남인 거인 이반은 형을 살고 나와서는 느닷 신흥 종교(가톨릭의 변종이라고 하네요?흠)에 귀의해서는 매부에게 준엄하게 충고까지 합니다. "자네는 범죄자들을 체포하고 다니니 스스로가 꽤 우월한 사람처럼 느끼지? 범죄자 중에 당신보다 훨씬 인간다운 사람이 많다는 걸 죽어도 자넨 모를거야." 이 말에도 러스는 딱히 반박을 못 합니다. 리의 그 사건이 있은 후로 러스의 몸에서는 뭔가 혼이 빠져나간 것만 같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사연이 "DNA처럼 나선형으로 꼬여들어가는(책 중에 그런 표현이 나옵니다)" 중에, 우리는 정작 "눈 속에 파묻혀 죽은 소녀의 죽음" 그 진상에 대해서는 잠시 잊기도 합니다.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평소부터 루신다를 질투하고 미워하던 제이드? 가질 수 없는 걸 가지고 싶어했던 캐머런? 알고보니 뒤에서 호박씨 까는 엉큼남 오 선생? 덩치도 크고 반사화적 성향 가득한 전과자 이반? 범인은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목격자가 안 나타났던 이유도, 충격적인 사건의 실상과 결정적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었고요. 전에 제가 읽은 어느 한국 작가의 장르 소설과 분위기, 결말이 무척 비슷한데 내용 누설이 될 수 있으므로 서평 중에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미스테리물로 보기보다 사람들의 어두운 기억과 상처를 교묘히 더듬으며 공감과 충격을 유도하는 이야기 솜씨가 놀라운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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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미소
줄리앙 아란다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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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자신의 인생이 큰 고비를 맞을 때마다 누군가가 다가서서 따뜻한 미소를 지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 게 어디 있냐? 삶은 본래 고난의 연속이요, 각자가 알아서 헤쳐 나가야지."라고 퉁명스레 내뱉는다면, 물론 말이야 맞는 말이겠으나 그 사람 본인은 참 각박하고 여유 없으며 이미 황폐화한 삶을 사는가 보다 하고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암만 맞는 말이라 해도 우리는 일일이 입 밖에 내어 그 불쾌한 진실을 재확인할 만큼, 필사적으로 스스로의 기분을 망치려 들 만큼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자기 기분만 망칠 뿐 아니라 남들 비위까지 상하게 하는 민폐입니다. 이런 걸 모른다면 이미 "망쳐질 기분"조차 스스로 없애버린 답 없는 인생이며, 이런 사람이 남과 함께 사는 법이야 당연히 알 리가 없습니다.

소년(소설 중후반부로 가면서 청년, 장년으로 성장합니다만) 폴 베르튄은 아주 평범한 프랑스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평범하다는 건 평범한 사람들만큼의 행복을 누리고 자라났다는 게 아니라, 그 시절 평범한 프랑스 농민들처럼 고되고 희망 없는 삶을 살 뻔한 처지였다는 뜻입니다. 농촌 생활이란 일이 몹시 고될 뿐 아니라, 농업이라는 저부가가치 산업의 본질적 속성 때문에 중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손에 쥔 재산은 그것대로 적은, 빈곤과 고통의 악순환에 갇힌 절망의 생으로, 이 소설 속에서는 묘사됩니다. 프랑스는 중세 이래 풍요로운 1차 산업의 소출로 왕성한 국부를 누린 나라라서, 다른 곳은 몰라도 프랑스의 농촌만큼은 각별한 낭만이 있을 줄 착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1789년 대혁명 당시에도 농민들의 삶은 그저 목숨만 간신히 붙어 있었을 뿐, 천대와 멸시와 중노동의 고통으로 점철된 지옥상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비교적 젊은 작가님의 작품이라서, 이런 분들의 데뷔작이 흔히 그렇듯 자전적 사연 아닐까 짐작했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1인칭 주인공 폴 베르튄은 1930년대에 태어나 성장기 주요 국면에 나치 독일의 침략이라는 큰 트라우마를 겪었고, 이 과정에서 아버지를 잃습니다. 농촌의 가장들이 종종 그렇듯 책임과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불쌍한 식구들 위에 폭군처럼 군림하려는 욕구만큼은 무척 강한데, 소년 폴 베르튄은 부친의 죽음을 보며 오히려 (죄의식 가득한) 해방감을 느끼는 걸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우리 독자들은 그의 "해석,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사태를 객관적으로 재구성할 필요도 있는데, 소년 폴에게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그의 증언과 고백이 모두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만는 않을 겁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죠. "나치놈들에게 용감히 대들다가 목숨을 잃은 거야." 폴은 냉소적으로 받아들입니다만 우리 독자들이 꼭 (어린)폴의 판단에 전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을 겁니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지만 가세는 여전히 어렵고 폭군의 자리는 맏형 "자끄"가 바로 계승하니 폴은 여전히 행복을 못 누리는 처지입니다. 이 젊은 폭군 자끄에 대해서는 딱히 옹호할 여지를 저도 못 찾겠습니다. 아버지는 어쩌면 나약한 몽상가 기질만 다분한 막내 폴이 딱하게 여겨져 "저런 식으로는 이 거친 세상 못 살아나간다. 현실의 한계가 빤한데 나라도 가슴 아프지만 독한 심성을 길러줘야 하지 않겠는가" 같은 걱정에서 폴을 그리 가혹하게 대했는지도 모릅니다. 허나 자끄는 자기 부친에게서 나쁜 본만 받았을 뿐, 어린 형제들을 배려하는 마음씀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영리한 폴과 정치적 타협을 시도하는가 하면, "네놈의 그 악마 같은 미소가 너무 싫어! 네 그 미소가 아버지를 죽인 거야!" 같은 황당한 반응도 드러냅니다.

폴 스스로는 자각 못 하지만 남이 보기에 그는 미소가 참 아름다운 소년인 듯합니다. 이 미소는 애정 가득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고, 어려서부터 그를 지켜 봐 온 달님(그저 la lune이란 일반명사일 뿐인데, 소년 폴은 Lalune이란 이름을 지닌 인격체처럼 받아들입니다)이 더 다사로이 보듬었고, 조금 더 커서는 이웃집 소녀 마틸드를 짝사랑하면서 한층 깊이를 더한 자질, 매력입니다. 폴은 국가가 지운 병역의무를 다하기 위해 몸을 담게 된 군대에서 "제2의 자끄"라 할 부대장을 만나는데, 양차 대전의 PTSD 때문에 좀 정신이 나간 폭군형 관리자입니다. 이 부대장이 미친 듯 발악하며 폴도 구타하고 나중에는 폴의 친구(군대 동기) 장까지 때리는데, 광기의 발작인 터라 정말 무방비상태의 장을 죽기 직전까지 폭행합니다. 이때 폴은 (어디서 그런 주변머리가 생겼나 싶게) 기지를 발휘하여 뒤에서 부대장을 가격하여 기절시키는데(ㅋㅋ), 책임을 추궁받을 게 뻔하다고 생각이 미치자 폴 자신도 바닥에 드러누워 불의의 사고나 당한 듯 연극을 합니다. 이 미친 부대장이 처음에 폴을 찍어놓고 괴롭힌 것도 "그 미소"가 싫어서였다고 하니, 악마에게 혼을 빼앗기고 폭력에 찌든 불쌍한 인간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우리는 눈치챌 수 있습니다.

상급 책임자가 나서서 폴에게 경위를 묻습니다. 위생병은 폴, 장, 부대장을 후송할 때 폴 역시 부상을 당한 게 확실하다고 오판을 했고, 책임자 역시 이 정직해 보이는 청년이 거짓말을 할 리 없다고 여깁니다.

"자네는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군. 허나 명심하게. 여기는 좋은 사람을 반기는 곳이 아니야."

"여기"는 물론 병영이겠지만, 어디 좋은 사람을 반기지 않는 곳이 군대뿐이겠습니까. 세상 전체가 다 마찬가지죠. 핍박받고 가난할 뿐 마음은 선량한 사람들이 모인 듯했던 농촌도, 알고 보면 얼마나 큰 악의와 광기가 지배하는 곳이었습니까. 나치가 하루아침에 패망하자 악귀처럼 돌변하여 패잔병들을 농민들이 린치하던 모습을 폴은 생생히 기억합니다(아 물론, 독일군 병사들도 못된 짓 많이 한 걸로 나옵니다. 폴의 아버지도 그 과정에서 후유증으로 죽었고요. 하지만 악을 악으로 갚는 순간 놈들과 똑같은 인간이 되는 거죠). 복수라는 허울 좋은 핑계를 걸고 자신의 추악한 광기 해소에 기회를 악용하던 그 농민들의 모습. 린치 중에 죽어가던 독일군 장교 중에는 (규율을 어기고) 폴의 생명을 살려 준 인정 많은 (어느 소녀의) 아버지, 한 집안의 가장도 있었습니다. 마틸드를 짝사랑하는 폴의 모습이 안타까워, 혹은 이렇게 괜찮은 녀석이 내 딸도 지극정성으로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고 여겨, 폴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지 않았을까요. 사람이 가장 초라해지는 건 자신의 은인에게 합당한 보답을 못 하고 현실에 굴복할 때입니다. 폴은 그 독일군 장교 아저씨(얼굴도 모르는 카트린의 아버지)가 린치를 당하고 죽을 때 아무 도움도 못 준 걸 평생의 수치로 간직합니다.

멀쩡한 부인을 놔두고 정부와 바람을 피우려 도피하는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누구나 그 무책임한 남편을 손쉽게 비난할 수 있습니다. 허나 어느 선장님은, 나중에 추궁(?)하던 폴에게 이렇게 변명하는군요.

"나는 내 아내에게서, 모든 순수함을 잃고 삶의 비천한 질곡만을 몸에 감고 다니는 어느 늙은이, 곧 나 자신을 보았네, 하지만 그녀(정부)에게서는 삼십 년 전 순수했던 젊은이의 풋풋한 희망을 보게 된다고. 자네가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나? 인생이 그리 단순하게 선악이 재단되는 과정 같나?"

이 말에 이상하게 진한 공감이 되더군요. 물론 아내를 그리도 메마르고 황폐한 존재로 만든 장본인은, 바로 "고생을 시킨 못난 남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늙고 지친 선장님의 "도피"도 뭔가 사람 마음을 짠하게 만들지 않습니까? 젊은 폴은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튼 도피를 도와 준 대가로 그의 배에 "아무 경험도 없는" 풋내기인 자신을 고용해 줄 걸 요구합니다. 이 선장은 황당해하지만, 청년 폴에게서 30년 전 풋풋했던 자신의 이상과 순정을 발견하고, 이후 폴이 벌이는 갖가지 무모한 짓에 "다시 젊어진 마음으로" 신나게 가담까지 합니다. 물론 폴이 띠는 "마법의 미소"도 큰 몫을 했겠지요.

세상사 풍파가 아무리 인생을 높은 파고에 몰아넣어도, 하늘 위에 두둥실 떠 만인의 삶과 일천 가닥 실개천에 두루 따스한 미소를 불어넣는 달님이 있기에, 우리는 세상에 아직 희망이 남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달님의 미소를 밤하늘로부터 받아 각박한 세상에 뿌리고 다니며 "아직 여기, 살만한 곳임"을 두루 깨닫게 하는 폴 같은 사람이 있기에, 우리는 연대와 악수와 포옹이 먼 달나라 이야기만은 아님을 다시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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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1-04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을 겪은 세대들의 작품은 언제나 절절한 치열함이 있었어요. 생각의 막을 깨는 경험이었던 거 같았죠. 인간이 성장하는 큰 도약판이기도 했겠지요. 그 성장이 긍정적 결과와 정립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빙혈님, 2018년에도 건강히 즐거운 독서 생활 꾸려 나가시길요/

빙혈 2018-01-04 21:04   좋아요 1 | URL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치열함 끝에 부쩍 자란 정신의 키로, 더 순수해지고 더 이웃과 가족에 정직해지려는 영혼의 뭄부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AgalmA님도 새해에 하시는 일 모두 잘 풀리시고 원하시는 성과 모두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유로 - 공동 통화가 어떻게 유럽의 미래를 위협하는가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박형준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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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보의 비대칭성 이슈는 경제학자들을 꽤 오래 괴롭혀온 난제 중 하나입니다. 신고전학파가 그 이른 시절 "완전 균형, 완전 청산"을 (감히) 주장할 때부터, 왜 그럼 현실에서는 그 깔끔하고 아름다운 지복점을 찾기 어려운지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의문들은 지엽말단의 예외나 일시적 교란으로 취급되고 말았을 뿐, 아름다운 경제학 이론의 대(大)체계에 근본적인 회의를 부르지는 못할 요인 정도로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의 쾌거 이후로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이 현상이 그저 일시적 예외가 아닌, 이론의 정합성을 근본에서 무너뜨릴 수 있는 상수 자격으로 더 심각하고 진지한 조명을 받게 되었죠. 더 중요한 상황 변화는, 이른바 인터넷 혁명을 계기로 일뱐 대중들도 엘리트들 못지 않게 중요 정보에의 광폭 노출이 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정책 결정에까지 제법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런 입장을 견지해 온 그가 "유로 화의 근본 위기"를 들고나온 건 시의적절할 뿐 아니라 학자적 양심과 지평에 비추어 일관되고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합니다. 단일 유럽의 통화인 유료는 그 태생 시점에서는 많은 축복을 받고 시작했습니다. 진보 진영은 생산요소 중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실업률 0의 달성에다 상품 가격의 균등화까지 머지 않은 미래에 이뤄질 것을 기대했습니다. 보수 진영 역시 싼 값에 노동력을 쓸 수 있다는 희망을 다분히 품었고요. 예전 노 대통령은 단일 통화 출범 즈음(그의 대통령 취임보다 훨씬 앞선 시점의 일)을 회고하며 "사람 사는 세상이 이게 올바른 모습 아니겠는가."라는 코멘트도 한 적 있습니다. 이랬던 유로화가, 재작년의 브렉시트 파동, (그 훨씬 이전)그리스, 이탈리아, 에스파냐, 아일랜드 등의 불확실한 경제 전망 때문에 그 존재의 근본에까지 회의의 그늘이 드리워지는 겁니다.

유로의 장래에 대해 냉소적인 건 삼십 년 전에는 대개 보수 진영과 유대 자본 측이었습니다. 세계는 달러를 기축통화 삼아 그럭저럭 잘 돌아가는데 왜 "인위적으로" 새로운 장치, 제도를 비싼 비용을 들어 만들어내는가, 그를 부양하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추가 비용이 투입되겠는가, 취지는 좋아도 각국의 경제력이 천양지차인데 어떻게 부실과 거품이 끼지 않겠는가 등등이었지요. 스티글리츠 교수의 입장은 (자칫 잘못보면 결론은 비슷한 듯 해도)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요약하면 "유로는 초심을 잃었기 때문에 지금 좌초 위기를 맞은 것이다" 정도입니다.

저자 스티글리츠 교수는 우선 유로화의 운용에 결정적 입김을 끼치는 "최종 보스"인 트로이카를 맹비난합니다. 여기서 트로이카라 하면(꼭 스티글리츠 교수뿐 아니라 다른 맥락, 입장, 진영에서도 쓰이는 말이지만), IMF, 유럽중앙은행(ECB), EU 집행위원회를 가리킵니다(p30). 이 책은 "폐쇄적이고 근시안적이며 (이미 정보의 비대칭성이 상당 부부 극복된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과거의) 그림자, 환각에만 빠져 있는(이상은 독자인 저의 요약입니다) 저들 엘리트 트로이카의 과오로 유로는 고사 직전이다"라는 메시지를, 500여 페이지 분량 내내 강조, 증명, 확장, 전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도 1998년 당시 마찬가지였지만 이들 "트로이카"가 위기 국가에 찾아와서 도와준답시고 돈보따리를 들고 와서 내리는 처방이란 매우 단순하고, 효험이 의심스러울 만큼) 획일적입니다. "허리띠를 졸라매라." 한 마디뿐입니다. 첫째도 긴축, 둘쩨도 긴축만을 강조하는 이 단일 처방은 그간 많은 진보진영, 리버럴 경제학자들의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다만 한국은 워낙 모범생 국가라서, IMF가 내리는 처방(이라기보다 지시, 명령)을 한치의 망설임, 어긋남도 없이 실천, 복종했고 유격훈련 코스나 마치듯 졸업장을 따 냈습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트로이카(유럽 안 국가라면)의 이런 (가짜)만병통치약에 대해, "그 나라의 기층 민중, 서민, 중산층이 겪어야 할 엄청난 고통을 전혀 '비용'으로 계상(計上)하지 않은, 잔인하기 이를데없는 방안"으로 신랄히 비판합니다. 노엄 촘스키(물론 그 천재 언어학자 말입니다)도 그의 저서에서 비슷한 비판을 한 적 있는데, "이들 강자의 대변인들은 약하고 가난한 나라에 가서는 살인적인 고금리(우리도 당시 그랬습니다)로 서민을 괴롭히고, 자기네 나라에서는 제로 금리 정책을 강권한다." 같은 대목이 나오죠. 이 지점에서 두 석학은 견해를 공유하는 셈입니다.

긴축은 왜 나쁜가? 저자의 분석은 선명하고 설득력이 높습니다. 씀씀이를 줄이라니 (가뜩이나 침체된) 투자심리는 자본을 다른 나라로 유출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씀씀이가 줄면 사람이라고 어디 더 많이 고용하겠습니까? 단순 노동력이건 고급 인재건 해외로 유출되기 십상이니 그 나라 안의 생산품은 질과 양 모든 면에서 추락합니다. 실제로 트로이카는 그리스 위기 당시 "국민들이 해외(독일 같은 곳)로 나가 돈을 벌어와서 국가 부채를 갚으라"고 명시적으로 주문했습니다. 마치 1970, 80년대에 한국 노동자들이 중동에 파견되어 땀흘려 번 돈을 고국에 송금하던 현상, 혹은 월남전 당시 파병 군인(급여의 상당 부분은 정부 수중에 들어갔습니다)이나 서독 파견 광부, 간호부(당시 용어)들의 사례와 비슷하죠. 기층 국민의 고통과 수고는 대변 차변의 기장 요소로써 싹 무시한 발상이라야 이런 처방을 거침없이 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잔인하고 비정하며, "반민주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본"의 장부에서 보기만 한다면 그저 합리적이고, "흑자"인 발상이겠지만 말입니다.

역주에도 나옵니다만 저자는 논의의 근본 틀을 "수렴이나 발산이냐"의 이분법으로 일단 단순화합니다. 유로라는 통화, 유럽 연합이라는 단일 정치 단위(의 지향)는 "수렴'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 한 지역 안의 자원과 노력과 의지가 사방팔방으로 분산, 휘발하는 상황은 어느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만을 낳습니다. 통일은 획일화, 억압의 기제가 아니라, 모두의 노력과 정성을 보다 효과적인 방향으로 조직화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다름이 있는 곳에 불화, 전쟁이 언제나 발생했던 만큼, 유럽은 (두 차례의 끔찍한 전쟁을 겪고 나서) 더 이상의 다름과 분열을 조장하기보다, "하나의 가치로 수렴하기"를 선택했습니다. 각국의 경제상황은 천차만별이었음을 집행부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단일 통화 사용이라는 강력한 조치로, 이 "다름"은 "모두가 넉넉하게 잘 살게 되는 지복점"으로 점차 수렴해갈 것임을 그들은 확신했던 겁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책 중에도 나오지만) 이 단일 통화 유로라는 장치가 많은 결함을 안고 있음을 당시부터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심) 그들의 성공을 응원했고(여기서, 싸늘하고 이기적인 유대 자본의 심성과는 극과 극의 차이를 보이죠), 이 흥미론운 실험 귀추를 주목했습니다. 이제 이 두꺼운 책은, 거대한 실험의 중간 평가 보고서이자 동시에 저자 본인의 (학문적) 입장에 대한 임시 결산 마니페스토이기도 한 것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보급판 서문(원 서문이 있고 보급판 서문이 따로 있습니다)으로 돌아와 보십시오. "우리들 중 그 누가 트럼프 같은 위인이 미국 대통령직에 오를 미래를 예견할 수 있었던가?" 보급판과 하드커버판의 출간 시점이 1년 정도 차이 나니, 이 (추가) 서문은 그 사이의 시대적 격변에 대한 임시 보론(補論) 구실(혹은, 호외[號外] 노릇?)도 하는 것입니다. 책은 대석학이 쓴 책치고는 마치 신문 칼럼 읽히듯 쉽게 내용이 파악되고, 영어권 독자들(원서를 읽는 층)을 위한 배려이긴 하나 예컨대 SECULAR 같은 단어도 "경제학 용어로서, 어느 경제 구조에 만성적으로 배어 든 속성을 가리킴" 같은 설명을 저자 본인이 해 놓고도 있을 만큼 친절합니다. "알렉시 드 토크빌"처럼 현행 표준 외국어 표기법에 충실한 번역도 깔끔한 편집의 미덕을 자랑하고(다른 책은 "알렉시스" 같은 오류를 종종 노출합니다), 적절히 개입하는 역주는 혹 스티글리츠 교수의 평소 지론이나 이 책 자체의 지향에 덜 밝은 독자들이 행여 샛길로 빠지지 않게 적정 지점에서 주의를 환기합니다. 정확한 동시에 친절한 본문이라고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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