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들은 페미니스트로 자랄 것이다
오렐리아 블랑 지음, 허원 옮김 / 브.레드(b.read)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래도 페미니즘의 원조는 프랑스입니다. 파리고등사범에서 차석을 차지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당대 지성인들과 대중에 큰 지적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 책의 저자 오렐리아 블랑이 많은 기고를 한 저널 <코제트>는 "프랑스 여성 간행물의 법칙을 바꾸었"으며 "프랑스 페미니즘의 르네상스"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이 책 책날개).

어떤 사내애라고 해도 어머니의 따뜻한 보호를 받고 자랍니다. 그러나 일정 연령이 되면 부모의 보살핌보다는 또래 집단으로부터 더 압도적인 사회화의 세례를 받기 마련인데, 이때 사내아이들은 여성에 대해 때로는 끔찍한 편견, 왜곡된 지배욕이 묻어나는 말을 내뱉기도 합니다. 이게 그저 멋있어 보이려고 과시성 심리로부터 배설된 생각 없는 멘트이건, 혹은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주워들은 말을 함부로 내뱉은 것이건 간에, 이런 말을 듣는 어머니의 마음은 매우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건, 남성 지배의 실체를 깨닫는 것에서 시작한다(p12)." 그러므로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 해도 그가 페미니스트로 거듭난다, 혹은 새로이 각성한다는 건 전혀 언어적 모순이 아닙니다. 어떤 성이 다른 성을 합리적 이유 없이 "지배하려 드는 것"은 분명한 폭거이며, 그런 독재, 전근대의 폐습은 마땅히 극복되어야 하죠. 이런 세계관에서는 모든 이가 페미니스트로 거듭나야 세상이 깨끗한 모습으로 정화됩니다. 물론 이는 모든 이를 위한 정의이며 평등이어야지, 비뚤어진 또다른 지배욕을 관철하고 현실화하기 위한 정치적 책동이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제발 남자답게 행동해라. 강하고 거칠어져라(p16)." 이런 식의, 비뚤어지고 위험천만한 사회화가, 무방비상태에 놓인 사내아이들을 향해 이뤄져서는 안 됩니다. 사실 나쁜 짓은 남성들로부터만 행해지는 건 아니어서, 폭력적이고 무책임하며 선동적이고 사회를 분열로 이끄는 언행은 놀랍지만 여성으로부터도 생산되며 매우 유해한 영향을 끼칩니다. 이들 역시 어찌보면 남성 중심 차별적 사회 구조의 희생양으로서, 크게 보아 남성들이 일단 원죄 의식을 갖고 문제해결에 전향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죠.

요즘은 한국에서도, 초음파검사를 하고 나서 오히려 아빠들이 "딸"이란 소식에 안도하며, 몇십 년 전처럼 성감별을 통해 여아를 중절하는 한심한 풍조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 책 저자는 검사 결과 태아의 성별이 "남"임을 눈치 채고 오히려 실망했다고 합니다. 만약 딸이라면 앞으로 어떤 세계관을 전수하고, 무엇을 공유하고... 등에 대한 계산이 섰었는데, "아들"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맞이할 생각을 하니 막연했다는 겁니다. 하긴 한국에도 요즘은 유독 아들 키우기를 힘들어하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그런 엄마들이 이 책 저자처럼 철두철미한 페미니스트라는 보장이야 물론 없으나, 아마도 이 책 저자와 이론적인 면 외에 많은 대목을 공감하거나,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까도 짐작해 봅니다.

"지나치게 페미니스트적인 방법으로 양육하는 걸 두려워한 나머지, (결국) 충분히 페미니스트적인 방법으로 양육하지 못했음(p40)"을 후회하는 게 카미유 마스클레 같은 이들이 분석한, 전 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입니다. 그러니 마스클레나 이 책 저자 같은 분들은 이른바 "세컨드 웨이브 활동가"에 속합니다. 그들 전세대 활동가들은 일단 "여전히 이 사회는, 가부장제라는 안락한 담요를 마련하여 남자아이들에게 들어가라(p41)"고 부추기고 있다는 현실을 개탄하고 또한 자책합니다. 이들이 이런 반성 하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들"을 어떻게 키울지에 치열한 고민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돼지"는 아주 예전, 거의 2차대전 당시까지로 거슬러올라가면 파시스트들에게 즐겨 붙던 멸칭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이 욕설이, 2017년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운동을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성범죄자 하비 와인스틴에게 붙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반복 사용된다고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남자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p46)"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붐이 일었는데 여기서 전혀 달리 시작한 두 흐름이 서로 만나는 셈입니다. 와인스틴 같은 "돼지"에게 적어도 공감하거나 방조하는 추한 범죄 진영으로부터는 멀리 떨어뜨려 놓아야 하지 않겠냐는 겁니다.

2016년 파리사클레 대학교의 과학자들은 흥미로운 결과를 내놓았는데 "남자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여자아기들의 그것에 비해 날카롭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더 불편하며, 따라서 더 즉시 달래주어야 한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물론 연구결과는 이런 통념이 사실에 반함을 규명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남아, 여아에게 어린 시절부터 (차별적인) 사회화가 암암리에 이뤄지는 건 상식에 속하나, 이처럼 심지어 갓난아기 시절부터 근거 없는 차별적 인식이 아이들을 떠나지 않고 배회한다는 건 섬뜩한 면마저 있습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남자>는 지난세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고 한국에서도 많은 청춘남녀가 즐겨 읽었다고 하죠. 저자는 저 책을 쓴 존 그레이가 성차별주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성의 차이를 매우 과장하여 기술했다"고 비판합니다. 보통 우리는 중학생 정도만 지나도 새로운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며, 이는 이른바 신경 가소성과 관련 있는 문제라고들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는 15년 전 카트린 비달의 연구를 통해 상당 부분 근거가 무너졌고, 저자는 특히 이 연구 결과를 "대단한 발견"으로 높이 평가합니다.

결론은, 개체의 특성과 "능력"은 일생을 두고 변한다는 것이며 어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거죠. 또 성 호르몬의 분비 여부가, 여성의, 또는 남성의 어떠한 특성을 현저히 감소시킨다는 식의 허황된 연구도 근래 와서 대부분 반박되거나 철회되었다고 하네요. 이런 연구 결과는, 어떤 고정된 성별 특성이 있다기보다, 개인 간의 이런저런 편차가 훨씬 유의미하고 주목될 필요성이 크다는 쪽으로 결론이 이어집니다(간성 이슈라든가).

가부장제는 앞서 p41 같은 곳에서 마치 남자들에게 유리한 어떤 보장 장치처럼 받아들여진다고 했으나, 이에는 반드시 함정이 있다고 저자는 다시 주의를 환기시킵니다(p70). 마치 범죄집단처럼, 들어갈 때는 마음대로이나 이로부터 탈퇴할 자유가 없으며, 혹 이런 위치에서 벗어나면 "추락, 퇴보"의 낙인이 찍힌다는 것입니다.

그럼 아들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핑크색 옷을 입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혹은 인형을 갖고 놀아도 별 주의를 주지 않게 가르치라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는 초4 때 만화가 아닌 소설판 <캔디>가 출판되어서 무척 읽고 싶었는데 그걸 부모님이 한사코 못하게 하시더군요. ㅎㅎ 그렇다고 지금 딱히 (못해본 걸 하고 싶어서) 그 책(구할 수도 없습니다)을 읽고 싶다거나, 애니판을 정주행하고 싶다거나 하는 욕구는 없습니다.

집안일을 함께하고, 식탁에 발을 올려놓는다거나 하는 권위적이고 무례한 제스처를 하지 못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KBS 드라마인 <사랑과 전쟁> 아이돌 특집편 중 하나를 보면 젊은 남편이 회사에서 권고사직 당하고 집에서 앞치마를 입고 살림을 하자 그 모친(시어머니)가 질겁, 아니 절망을 하고선 며느리에 대고 호통, 아니 절규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당사자가 아니면 이런 상황의 심각성을 잘 모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는 "저건 좀 심하군" 같은 반응을 보이다가도, 막상 자신의 아들이 그러고 있으면 대부분의 모친들이 손사래를 칠 겁니다.

"남성성을 새로이 규정하여, 타고난 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자유를 찾아 주자(p113. 또 p137)." 사실 이는 성교육, 젠더 교육의 주제도 되겠지만 애초에 성 역할 말고도 개인, 자신의 개성, 진정한 욕구, 적성(허황된 에고나 막연한 질투심, 주제파악 못하고 과장하는 폭주가 아니라) 등을 찾아주고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쌓아올리는 교육과 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라진 믿음의 망령(p124)" 이는 막스 베버가 한 말입니다. 물론 베버의 말을 장자크 쿠르틴, 마이클 키멀 등이 재해석한 것이고요. 사내아이들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입회식 등의 자리에서 오줌 받아내기, 지독한 모욕 참아내기 등의 의식을 거쳐야 하는데 이 역시 왜곡된 남성성의 오랜 유산 중 하나라고 합니다. 또 지금 이 순간 역시 전장에서 장렬히 전사하는 군인, 배와 함께 침몰하는 선장 등 영웅적인 죽음을 맞고 또 맞이해야 하는 갖가지 허상을 주입 받는데 이 역시 생존과 쾌락과 안온을 추구하는 생명체의 본성에 반하는, 생각하면 할수록 개인이 괴로워지는 망령에 가깝다는 겁니다.

"소년에게 울 자유를 줘라." "남성성은 남자 수만큼 다양하다" 유해한 남성성을 타파하고 새롭고 유연한 남성성을 세우는 건 성차별로부터 여성을 해방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남성들을 편히 살게 해 주는 방법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또 기사도보다는 예의를 갖추게 가르치자며, 기사도는 일방적인 여성 모시기이므로 본질적으로 성차별일 뿐 아니라 그 이면에는 "로맨스, 결혼" 등 어떤 불측한 대가의 요구가 숨어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반면 매너, 예의는 사람 사이의 관계 기술일 뿐 그에 반드시 애정 관계의 개시가 수반되는 게 아니죠.

포르노물의 범람, 성폭력 역시 왜곡된 성역할, 성의식, 성차별의 산물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아이한테 뽀뽀를 하는 건 애정의 표현이라며 합리화하기 쉬우나 애정을 받고 안 받고는 아이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도 어른들이 명심해야 하며 아이들에게도 그리 가르쳐야 한다고 합니다.

p40에도 그런 말이 나왔지만 p206에도 역시, 활동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자신의 아이를 별나게 키우지 않는지 하는 망설임과 확신 부족입니다. 그러나 성역할에 대해 고정된 인식을 버린 아이가, 성역할뿐 아니라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훨씬 유연하고 창의적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어쩌다 남자까지 차별 철폐를 외치게 되었나?" p221에는 쥘리앵 바이우라는 활동가가 나오는데 이분은 남성입니다. 또 토마 랑슬로비아네라는 분도 나오는데 그는 사적인 영역에서조차도 과감히 차별의식을 타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스스로를 "투쟁가"로 규정합니다.

활동가들이나 동조자들은 결코 남녀평등이라는 지점이 "도달 못 할 유토피아"라 여기지 말고, 1세대 운동가들의 성취를 긍정 평가하면서 전향적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게 저자의 말입니다. 이 책은 운동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평가적 시선으로 운동의 자리매김을 시도하는 입체적인 시도를 하는 듯 보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 나는 어디에서 왔어? - 9살의 빛 안 가르치는 책
황이산 지음 / 하빠꿍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안 가르치는 책" 사실 누가 뭘 얼마나 그렇게 많이 알아서, 타인에게 가르치려 들겠습니까. 맨스플레인이라는 말이 비웃음의 목적으로 쓰이듯, 남자가 여자한테건 혹은 어른이 어린이에게건 일방적으로 뭘 가르치는 건 벌써 소통의 실패를 암시, 예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 워즈워스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는데 이 책의 저자인 황이산 어린이는 "뭘 가르치려 들지 않으면서도" 어른 독자에게 참으로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그러면 저자님의 목적은 달성되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당연히, 그건 아니고 오히려 훌륭한 소통에 성공했다고 봐야죠. 이 책은 "안 가르치는 책"이지만, 책의 기획, 편집자인 최미희 선생님(동시에, 하빠꿍출판사의 대표)은 다음 번에는 "잘 가르치고 잘 배우는 것에 관한 고민과 구상을 담아내"실 계획이라고 합니다. 역시 기대가 되네요. p10을 보면 최미희 선생님이 아마 황이산 어린이의 엄마이기도 한 듯합니다.

저자인 황이산 어린이는 현재 12살이며 이 책은 그가 9살 때 그림을 그렸고 11살 때 "책을 꾸리는 작업"을 마쳤다고 합니다. 또 기획자의 의도는 "다른 어린이 독자들이 이 책에 그림도 그리고 글도 넣으면서 책을 매개로" 9살 어린이와 대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p6). 사실 독서를 마치면서 하나 아쉬웠던 게, 이런 기획 의도에 맞게 저도 어린이를 하나 데려와서 그림도 그려 보게 하려고 했는데 해당 어린이의 사정상 그렇게 못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라도 한번 권해 볼 생각입니다.

"엄마 나는 어디에서 왔어?" "하늘나라에 있다가 네가 엄마를 선택해서 지구에 온 거야." "그럼 죽으면 어디로 가?" "다시 하늘나라로 가지."(p12) 이 대화는 참... 출생과 죽음에 대해 가장 간명하고도 희망적으로 설명한 것 같습니다. 생각은 잘 안 나지만 내가 그저 지상에 던져진 게 아니라 내가 엄마를 선택해서 태어났다고 여기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게 다 자유의지, 어떤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여길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 책은 텍스트도 텍스트지만 어린이의 그림이 책의 핵심인데, 사진을 여러 장 찍어 독후감에 싣고 싶지만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구해서 감상하시라는 취지에서, 또 저작권 문제가 있을까봐 생략했습니다. 그림은 아이답게 서투르기도 하고 자유롭기도 합니다. 아이의 그림은 아이다워야 우리 어른들이 그로부터 뭔가 정화되는 느낌을 얻을 수 있습니다(아이들이야 그런 의식도 하지 않겠지만).

아이는 혜아가 보고 싶다고 하는데 이건 죽고 나서 하늘나라로 요정이 되어 올라갈 때를 가정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가장 친한 친구는 혜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엄마"의 말은, "얘는 지금 하늘나라에 요정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입니다. 그러니 이 말, 즉 요정 관련은 엄마가 말해 준 게 아니고 아이가 그냥 보충해 낸 거죠.

pp.28~29에는 산, 물, 새 등을 그렸는데 어린이의 얼굴이 산등성이만큼 크고 다칠 염려도 없는지 산등성이를 얼굴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냥 산 주변을 날개 없이 날아다니는지도 모릅니다. 책엔 "물이 파랑이란 법은 없다! 산이 초록이란 법도 없다! 새가 은색!"이라고 나오는데 말만 들어도 시원한 것 같습니다.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그림 그릴 때, 그런 법칙에 왜 얽매여야 합니까. 그림이건 글이건 자신의 정직한 느낌, 창의적인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림은 수학이 아니고, 수학도 그렇게 무엇인가에 묶여 있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고정관념(p29) 따위는 버리고 어린이처럼 화폭 안에서 훨훨 날아다닐 줄 알아야 어른도 헹복할 수 있습니다.

황이산 어린이는 사람을 그릴 때 머리색깔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좀 보수적(?)인지, 착한 콩쥐에게는 검은머리, 못된 팥쥐에게는 갈색머리를 얹어 주었네요. 그런데 저 앞으로 돌아가서 pp.13~20에는 주인공이 노랑머리, 혜아한테 파랑머리, 다른 사람, 요정한테 갈색머리를 해 준 걸로 보아 갈색이 딱히 나쁜 뜻은 아니고 그냥 랜덤인 것 같습니다. 혹은 팥쥐더러 죽은 뒤 하늘나라에 가선 착한 요정이 되라는 뜻으로, 즉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배려로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튼 그냥 (착한) 사람은 검은 머리를 하는 것 같아요.

이 책에서 가장 웃긴 건 못된 팥쥐를 나름 응징하느라고 달리기맨이 갑자기 나타나 팥쥐를 "물리쳤다"는 겁니다. 그림(p34)을 보면 팥쥐가 명랑만화의 캐릭터처럼 빙빙 돌아가는 회오리눈을 하고 쓰러져 있는데 이게 달리기맨이 "물리쳐서" 그런 거라고 합니다. 달리기맨과 콩쥐는 >.< 눈을 하고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데 제 눈에는 둘이 스케이트를 멋지게 지치는 걸로 보이고 팥쥐는 얼음 위에 미끄러져 넘어진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pp.44~45에는 컬러가 없고 흑백인 큰 그림이 나오는데 아이가 하는 말이 "외롭구만...."입니다. 어미가 "~구만"인 것도 어른 말투라서 웃기고, 뒤에 말줄임표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땅에다가는 마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처럼 2+2, 4+4 등을 쓰는데 또 답은 안 구하고 문제만 뚫어지게 봅니다.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노는데 자신만 공부해야 해서 외롭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음 페이지를 보면 크게 "친구되게 해 주세요"라고 써 놓았습니다. "친구가 생기게 해 주세요"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친구가 되게 해 주세요"라는 뜻일까요? 그렇다면 참 어른스럽습니다.

p63에는 "나는 왜 남자친구가 없지?"라고 합니다. 그건... 글쎄요. 어른들도 이성친구, 배우자가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런 건 생각해 봐도 답이 안 나오고, 어른들에게 물어 봐도 답을 해 줄 만한 사람이 없을 듯합니다.

pp.64~65에서 핑크잠자리의 변신 그림을 보고 "엄마"는 "아이들은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하지?"라며 놀라워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페이지의 그림이 부쩍 정확하고 정밀해진 데다 뭔가 정성이 엄청 들어간 듯, 집중해서 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잠자리도 크기가 엄청 큰데 황이산 어린이는 앞에서도 강조를 하고 싶은 건 크게 그리는 습관이 있어 보이니까요. 머리가 분홍색이니까 이 아이는 혜아(p14) 아닐까요? 혜아의 얼굴색도 가만 보면 강약을 조절해서 피부색의 부분 차이를 그 나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보통 같은 면은 똑같은 채도로(마치 포스터컬러처럼)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서 이 어린이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p.70~71에서 어린이는 과학자, 발명가 같은 사람인데 안경이 푸른색인 게 눈에 띕니다. 책상 위의 로봇도 푸른색인데 이게 좌우로 죽 이어집니다. 아이는 아마 테크놀로지, 첨단 이런 이미지를 푸른색으로 표현하고 싶어한 게 아닌지. 이 주제색이 좌우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림의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ㅎㅎ 죽기 전에 말하고 싶은 걸 모두 말한다(p87), 아마 어떤 동화나 만화를 보고 인상적인 장면을 재현한 것 같습니다. 식물(새싹)의 말은 괄호 안에 넣어 직접 들리는 게 아니라는 걸 표현한 것도 어른스럽네요.

알라뱀, 이집트에서 온 아이, 영웅 양수라 등 우리 어른들의 눈으로는 알 수 없는 여러 캐릭터(?)들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상상과 꿈, 희망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던 시절이 얼마나 오래 전이었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과연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 - 나를 잃지 않고 나와 마주하는 경계의 감정
이창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이란,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그게 제대로 된 사람입니다. 맹자도 수오지심을 4단(p260) 중 하나로 꼽았으며, 칸트 역시 구부러진 재목(=타락한 인간성)으로부터 올곧은 제품(=덕행)이 나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를 보면 사람이 아닌 동물, 예를 들어 반려견 등도 부끄러운 감정(아무리 원시적인 것이라지만)을 표현하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사람이 느끼는 수치심은 특별히 어떤 게 다른지, 또 수치심이 결여된 "괴물의 마음"이란 또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책을 읽게 되었네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면 "부끄러운 존재"가 되지 않을 텐데... 책에서는 일단 신자유주의가 사람들을 부끄러운 존재가 되게 하고 있다고 말하며 그 증거로 시도때도 없이 무엇인가에 대해, 누군가에 대해 증오하는 행태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드러내는 현상이라고 말하네요(p60. 이 서두는 책 저 뒤 p355에서 발전적으로 마무리됩니다). 이어서 저자는 "수줍음은 일차적 감정"이며, 이 수줍음에서 발전한 게 부끄러움이란 감정이라고 합니다(p61). p63에는 "부끄러움은 보다 복잡하고 고등한 감정"이라 말하며 다시 "수줍음"과 구별 짓습니다. 이들 감정은 우리 인간성의 기본 바탕이 되는 동물성에도 기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이것 관련해서는 이 책 4부에 자세히 나옵니다).

수줍음의 기본적인 신체 표현은 "얼굴 붉힘"입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귀 이(耳)와 마음 심(心)이 합해진 글자가 부끄러울 치(恥)라고 합니다. 또 우리말의 "부끄러움"도 그 어원이 "붉어지다"에 있다고 하네요. 여기서 저자는 다윈의 견해를 원용하며, 두려움과 부끄러움은 공통점이 있긴 하나 상당히 다른 감정이고, 그 증거로 수줍음에는 방어 자세가 수반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p79에는 다시 맹자의 말이 나오는데 그 유명한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입니다. 저희가 고교생일 때에는 (ㄷ, ㅈ 앞에 오는 不은 "부"라 읽고, 그 외에도 부실기업 등 몇 가지 예외가 있다) "불"의 독음을 저리 배웠는데 책에서는 부불작어인이라고 여튼 나옵니다. 고교생일 때 저 말을 배운 이유가 물론 한문 시간을 통해서이기도 했지만, 이 책에도 나오는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 연관이 바로 지어지는 명구라는 점을 국어 시간에 배웠기 때문이었죠(더 자세한 내용은 이 책 저 뒤 p304 이하 참조). 이어서 책에는 부끄럽다는 愧(괴)라는 글자가 기원이 매우 오랜 <시경>에 이미 등장하며, 그 외에도 <강희자전>의 용례를 파고듭니다. 부끄러움의 먼 연원이 이토록 깊은 것임을 비로소 알았으며, 인문서를 읽는 보람이 바로 이런 데에 있습니다.

어느 유명한 영화에 나오는 대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에서 나오듯 일본어 "가오" 역시 부끄러움과 연관되며 "顔"을 읽는 일본식 독음에서 연유했습니다. 바로 앞 페이지에는 우리말 속어 "쪽팔리다"에 대한 분석도 있습니다. 얼굴이 팔려나간다라는 뜻인데 이것이 확실히 부끄러움의 원초적 표현인 건 분명해 보이네요.

"쑥스럽다"는 이 책 p88에 "숙맥불변"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설명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숙스럽다, 즉 숙(=쑥)과 비슷하다, 이 정도로 어원이 설명되는 셈이겠네요. 바로 뒤에는 "면구스럽다"의 어원이 나오는데 이것도 요즘은 매우 드물게 쓰일 뿐이죠. 제가 어떤 분께 이 말을, 제 나름 예의를 갖추느라 썼는데 그분은 "나이가 몇인데..."라며 의아해하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ㅎㅎ 이렇게 역효과가 난다면 제가 말을 잘못 쓴 셈이라 당시의 저의 실수가 참 면구스럽네요. 여튼 이 책에서는 좀처럼 학자들이 시도하지 않는 "면구스럽다"의 어원까지 설명해 주는데, 그 기원을 "면괴"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습니다.

선비를 대접하지 않으면 사회적 기강이 확립되지 않아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뜻이 <조선왕조실록(중 태종실록)>에도 나오는데 이것을 예의염치, 즉 사유(四維)라 부른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본디 염치는 "청렴함과 부끄러움을 모두 일컬었던 말"이라 다시 자세히 설명합니다(p83). 그러니 이 단어에는 그저 원초적인 부끄러움이 아니라, 물욕을 절제하고 그를 통해 행동거지를 바로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는 선비의 복합적인 행동 규범(과 그를 뒷받침하는 심성) 규정이 다 담겼다고 하겠습니다.

2부부터는 "수치의 아래쪽 감정, 즉 부정적 측면"을 고찰합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토픽이 아담과 그 처의 이야기입니다. 본디 부끄러움 같은 걸 모르고 낙원에서 교합을 이루며 잘 살았으나 악마의 꾐에 빠져 갑자기 수치를 알게 되었으며, 신의 명령에 불복종함을 이유로 낙원에서 축출당했다... 이는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완전함을 갈망하여 뱀의 유혹에 따라 선악과를 먹었으나, 돌아온 결과는 여전히 불완전한 자신들에 대한 각성. 또 그로 인한 부끄러움"이라고 합니다. "수치의 감정은 완전함에서 타락한 감정이지만, 타락의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야 하는 신호를 가리키기도 한다(p125)." 즉 수치심을 못 느끼는 사람은 계속 그런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음을 이런 우화, 신화로 표현했다고 봐야죠. 혹은, 그런 의미를 부여할 줄 알아야 수치심도 알고 다른 것도 알 수 있는 건강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인간의 실존(p128)입니다.

기독교의 신약성서에서 바울도 로마서 등에서 "의인"을 강조(p129)하는데 특히 프로테스탄트에서 이신칭의 등을 중요 교리로 삼는 것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겠습니다. 또 문학 작품 <실락원> 등에서 그 작가 밀턴은 "아담에게 수치가 없었던 게 아니라, 정욕을 인내하고 통제했기 때문에 수치가 발현되지 않았다(p137)"고 저자는 해석합니다. "열매를 따먹기 전에는 이런 관능적 쾌락을 탐하는 성관계를 나눠 본 적이 없었고...(p143)" 확실히 생식과 개체 복제가 아니라 순전히 쾌락을 위해 성교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수치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내면의 소란도 다룰 수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p147).

프로이트가 말한 리비도는 본디 "자신을 향한 사랑"에서 출발합니다(p167). "리비도의 본능 충동이 개인의 문화적 이상(이에 대한 논의는 이 책 1부에 자세히 나왔습니다)와 충돌할 때 그 리비도적 충동이 병을 유발시키는 성질을 가진 병발성 억압으로 바뀐다(프로이트 <나르시시즘 서론>을 이 책 p169에서 재인용)"는 구절이 참 의미심장합니다. "승화가 리비도의 질적인 변형이라고 한다면, 이상화는 리비도를 제어하고 조절하는 것(p172)"이라며 승화와 이상화를 구별하며 특히 후자는 간접적 성격이라 합니다.

"건전한 나르시시즘은 인간에게 품위와 지위를 요구한다(p210)." 책에서는 가상의 인물 혜수 씨를 설정하여, 잘나가는 직장에 다니며 화려한 의상을 걸쳤지만 남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 (핏이 잘 사는 체형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며,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놓친 채 돈과 성공만 좇은 자신이 문득 부끄러워지기도 한다며 그녀의 이런 감정의 정체를 분석합니다. "자존감을 붇돋는 것은 타이밍과 강도만 맞으면 수치를 이기는 좋은 처방"이라고 합니다(p213). 이는, 말이 이렇게 표현되어 있으나 책을 읽어 보면 혜수 씨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특히 여성)에게 실용적인 충고가 될 듯하네요.

"과도한 수치심은 자기 파괴적 성격을 넘어서,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공격적 태도와 철면피로 확장된다(p216)." 이는 에릭 에릭슨의 8단계 이론과 관련하여 책에서 인용됩니다. 회피, 부정, 통제는 이런 수치심에 기반한 방어 기제들인데 우리가 구체적으로 실생활에서 이런 식으로 방어기제를 발동하는지와 연결시키면 재미있는 분석, 혹은 자기 성찰이 가능할 것 같아요.

반면 브래드쇼 같은 이는 수치심이 악성 나르시시즘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는 경계선 성격 장애, 열등감, 완벽주의 등을 낳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는군요(p220). 그에게는 이것("수치심이란 곧 악마")이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었다(p221)고까지 저자는 단언합니다. "수치스러운 자신을 혐오해 진실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한다(p223)"라고도 하는데, 이런 예도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지만 본인은 전혀 알지 못하며 오히려 자신에게 부여된 특별한 명분이나 정의를 자신이 대변하는 양 큰 착각에 빠져 폭주하죠. 옳고 그르고를 참 쉽고 간단하게도 척척 가르고 다니는데 가관도 아닙니다. 저 뒤 p330 이하에 브래드쇼의 개념이 다시 자세히 분석됩니다.

4부에서 "수치의 위쪽 얼굴"이 자세히 분석됩니다. 여기서는 다시 맹자의 유명한 언설들이 인용되며, 본래 동물성에 대한 혐오(즉 아래쪽 얼굴)에서 기인한 게, 이것이 변형되면서 인간성, 인간다움에 대한 강력한 옹호로 기능한다고도 합니다(p239). "호연지기는 집의(集義)의 기운이며, 마음에 흐뭇해야 위축되지 않는다." 여기서 "흐뭇하다"의 원 글자가 "겸(謙)"인데, 이 설명은 책 저 앞 p86에 자세히 이미 나왔더랬습니다. 이처럼 책이 동서양의 다양한 출전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지식의 바다를 누비는 것도 좋지만, 책의 모든 파트가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서로가 서로를 살찌우고 깊이를 더하는 체제도 좋았습니다.

이런 부끄러움의 감정을 모르는 부류를 저자는 "미꾸라지"라 부르는데, 저자는 다시 세 종류로 나눕니다.

1) 의심스러운 개혁, 혁명론자
2) 반사회적 성격장애
3)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하긴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그 부족한 머리로 어설프게 이해한 걸 절대진리나 되는 양 폭주하는 인간이, 그 어러석음을 지적한 사람더러 사이코패스니 뭐니 떠드는 코미디가 다 있으니, 이런 상시적 정신착란에 빠진 인간에게는 미꾸라지라는 규정도 과합니다. 이런 부적응자들은 몸에 맞지 않는 외투의 어색함, 다듬어지지 않은 과격함을 "선비다움"으로 단단히 착각하는데, 지식의 구비가 물론 선비 처신의 본체는 아니겠으나 기초 인식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자가 무슨 선비를 참칭하겠습니까.

<논어> 양화편에는 "향원"이라는 무리가 단죄되는데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서에서 바리새인, 율법학자를 호되게 나무란 것이나 비슷합니다. 공자는 이런 위선자들과 단호히 맞서 싸울 것을 권했고, 이것이 바로 수오의 양가성을 일찍부터 규정한 유가의 가르침 그 심오한 경지를 확인시켜 주는 대목입니다.

p288에는 그 유명한 "신기독야"가 나오는데 여기서 신(愼)은 물론 삼갈 신입니다. 저자는 재미있게도 "신(神)이 항상 있는데 어떻게 피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외면의 신이 문제가 아니라, 너를 바라보고 있는 내면의 신이 문제라는 건데, 마치 후한의 양진이 말한,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당신이 안다는 사지(四知)의 고사와도 통합니다.

책에서는 조리돌림, 신상털기(이른바 "독싱")에 대해서도 아주 자세히 분석합니다. 결국 이런 행동은 대상 하나를 잡아 톡톡히 망신을 주기 위한 방법인데, 저자는 "사이코패스 되기를 강제하는" 신자유주의 체체의 모순에서 이런 행태들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은 왜 우리의 몫인가?" 사회는 수치를 아는 인간들이 일궈 나가야 발전이라는 게 가능합니다. 수치가 아래로만 향하면 부정적 효과에 그치지만, 다행히도 이 수치는 위로 향한 얼굴도 동시에 가집니다. 신의 의도된 계획인지, 진화의 산물로 우리 인간이 영리하게 발전시킨 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건 이 수치 덕분에 우리 사는 세상이 얼마든지 살 만한 곳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광신도들이나 짐승들이 폭주하는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윤석열의 운명 - 오풍연 전 서울신문 법조대기자가 지켜본
오풍연 지음 / 오풍연닷컴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검찰총장직을 역임했고 현재 유력한 대선후보로 부상한 윤석열이란 분에 대해 부쩍 궁금해지는 요즘입니다. 윤 총장은 여주지청장 시절 정권 수뇌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명박 정권 시절 재임했던)을 기소했으며 2017년 서울중앙지검장에 취임한 후 전 정권인 박근혜 정부 인사들에 대한 이른바 적폐청산수사를 마무리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에는 법무장관에 갓 취임한 조국 전 민정수석과 날카롭게 대립하며 엄청난 뚝심을 발휘하여 기어이 관련자 거의 모두를 법정에 세우기도 했고 올해 3월 자진하여 옷을 벗었습니다.

음... 책에서는 "말이 자진 사퇴이지 사실상 축출당했다고 할 수 있다(p4)."는 표현도 나옵니다. 아무튼 그의 이런 대단한 강단, 결기가 그를 단시간에 주목 받는 대권주자로 부상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행보와 결단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간에 한국 같은 풍토에서 이처럼이나 좌고우면 없이 단호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선택은 무척 보기 힘들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할 듯합니다. 그는 국회에 출석하여 "정무적 감각은 없는 편입니다"라고 발언한 적도 있죠. 오히려 이 발언이 역으로 "그의 놀라운 정무감각을 증명"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 책은 오풍연 서울신문 법조 대(大)기자가 칼럼 형식으로 2021년 4월부터 2020년 4월까지 기고한 글을 모았습니다. 칼럼들이 역시간순으로 배열된 점이 독특합니다. 그간 윤석열이란 인물을 다룬 책이 여럿 출간되었습니다만 윤석열 본인이 직접 구입하여 주변에 권하기도 한 책은 이 책이 유일하다고 어느 신문 기사에서 보았습니다. 또 책의 프롤로그에는 "(윤 전 총장과) 직간접으로 소통을 하고 있다는 점은 밝힌다(p4)."라는 저자의 말이 나와 있기도 합니다.

독자로서 저는 책을 한번 역순으로 읽어 봤습니다. 책의 맨 뒤에는 윤석열 전 총장을 담은 사진들이 실려 있고, 그 앞에는 파평 윤씨의 간략한 세계(世系)가 나옵니다. 윤 전 총장의 부친이 윤기중 학술원 회원, 한국경제학회장이며 윤 전 총장이 35세손이 된다고 합니다. 파평 윤씨는 한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가문 중 하나이며 고려 이래 거의 언제나 삼한의 화족으로 꼽힌 명문 거족이죠. 엄연히 세(勢)가 불리한데도 혼자서 장판파 싸움을 벌이는 이런 결기는, 어려서부터 특별한 가풍에서 교육을 받아야 그 정신에 함양되는, 대단히 드문 자질이 아닐까 생각도 해 봅니다. 옳은 싸움이건 아니건 간에 이 정도 중과부적의 형세에서는 다들 도망부터 가고 보는 게 상례이기 때문이죠. p277에는 "이지메"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음... 윤 총장이 거의 가망 없어 보이는 싸움을 시작한 건 2019년 9월경입니다. 그때만 해도 사실상 이 정부의 차기 주자로 내정되다시피한 조국 전 수석에 대해 윤 총장(과 그의 측근[p284에, 비록 실명이 나오지는 않으나 이분을 지칭함이겠죠] 한동훈 검사 등)이 그토록 긴 싸움을 지속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 했을 겁니다. 검찰이 전격적으로 조국 장관 자택에 대해 압수수색을 단행했고, 이런 공권력 측의 액션이 아니었으면 아무리 보수 언론에서 이런저런 "단독" 보도를 내어도 그리 큰 여론의 반향을 얻지 못했지 않았겠습니까. 

이 책에 실린 칼럼은 2020년 4월 1일자부터 시작합니다. 주제는 열린민주당에 대한 비판인데, 이 당은 최강욱 씨, 손혜원 씨, 김의겸 씨, 건축가 김진애 씨 등이 주도해서 만들었죠. 총선이 4월 13일에 있었는데 의외로 많은 표를 얻어 의석을 상당수 확보했습니다. 여론 중 조국 지지세 역시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고, 반면 반대 진영의 조원진 씨 등은 단 한 석도 얻지 못한 걸 보면 선거 결과가 충격은 충격이었습니다. 칼럼에는 진중권씨도 언급되는데 이분도 참 긴 시간 동안 침묵하다가 2019년 동양대 사태를 계기로 소위 "조국 담당 일진"으로 전면에 나섰더랬습니다.

2020년 4월 9일 칼럼에는 "윤 총장이 그대로 물러날 사람은 아니다. 그만한 배짱은 있어 보인다."라고 합니다. "물러난다"는 건 직에서 물러난다는 게 아니라 압력에 굴해 수사를 중단한다는 뜻이겠습니다. p279(20. 4. 17)에는 "자리에 연연하는 총장은 되지 마라.", "자리에 연연해하면 추한 모습으로 비친다. 소탐대실을 생각하기 바란다(p278)." 같은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무렵 여러 다른 신문기사에서 암시되기로는, 윤 총장 측에서 "누구 좋으라고 물러나나" 같은 말을 한다고들 했습니다.

음... 사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직에 연연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게, 정권 차원에서 왕따를 시키는 총장에게 무슨 힘이 실릴 리가 없고, 판공비 등도 제대로 교부, 집행될 턱이 없기 때문이죠. 그냥 더러운 꼴 안 보려면 당장이라도 물러나는 게 윤 총장 측에서는 오히려 옳았겠으나, 이때로부터 근 11개월을 더 직에 머물러 있었기에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으나) 당초 염두에 두었던 명분상의 목표를 (그나마) 더 챙길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게 "직에 연연하는 태도"는 아님이 명백합니다. 사마천은 "죽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무슨 명분을 챙기고) 죽음에 처하는지 고르는 게 더 어렵다"고도 했는데 윤 총장이 아마 주관적으로는 그런 심경이 아니었을까 제 멋대로 짐작해 봅니다.

p228의 20. 5. 22자 칼럼에서는 한겨레신문이 윤 총장에게 사과한 것과 관련된 논평이 나옵니다. 윤 총장은 19년 9월 국회에 출석해서 "한겨레신문은 '정론지'인데 이런 보도를 할 수 있느냐"고 항의하며 다만 "검사로서 개인사 관련 언론이나 사인에게 일일이 명예훼손죄를 묻는 등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긴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랬던 것이 근 8개월 경과 후 해당 신문사의 사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p272에는 "무엇보다 홍준표가 윤석열 영입을 반대할 걸로 보인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때는 홍준표가 황교안 전 대표에 의해 당에서 축출된 후 무소속으로 고향에서 출마하여 "생환"한 시점이죠. 보수의 건강한 재기를 바라는 입장에서는 2020년 총선 결과가 여러 모로 참 최악의 상황이었겠고, 저 진단은 심지어 저때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합니다.

단 여기서 저자는 벌써부터(!) 윤석열을 다음 보수 진영 후보로 옹립할 것을 제안하는데, 이때만 해도 윤 총장 본인의 정계 진출 의도조차도 확인이 안 되는 시점이었고, 그 전 고건 총리(보수 정당은 아니었습니다만)라든가, 반 총장 같은 예를 봤을 때 이른바 "꽃길이 안 깔리고 꽃가마 안 태워진 공직자 출신 후보가 얼마나 버틸지" 회의가 이는 판이었죠. 1년 전 칼럼이 지금 시점에서 읽어 봐도 격세지감, 위화감이 전혀 안 느껴지는 게 신기합니다.

p267의 칼럼에는 보수 진영에서 윤석열, 홍정욱을 띄울 것을 제안하는데 윤총장은 윤총장이라 쳐도 홍정욱 씨가 여태 뭘 보여 준 게 있다고 후보로까지 거론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탄핵 정국 거치며 보수는 완전 씨가 마르다시피했으므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서 대략 2018년 지방선거때부터 대망론이 그를 향해 나오기도 했으나 그 자신이 잘라 말하듯 고사했고 이후 자녀 관련 잡음이 일기도 했습니다. 마른 자리만 골라 앉으려는 그의 깜냥, 역량으로는 '18년에 등판했어도 아무 성과를 못 냈겠을 뿐 아니라 지금 나온다 해도 다된 밥에 숟가락 얹는 이상의 어떤 인상도 못 줄 것입니다. 하긴 1년 전쯤 김종인씨는 백종원씨를 영입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으니 당시 보수 진영의 인물난이 어느 정도였는지...

여기서 저자는 통합당(현 국힘)이 엉터리였음을 지적하는데 그 예로 민경욱 공천이 몇 번이나 뒤집어지고 난 후 이뤄진 걸 듭니다. 이뿐 아니라 부산 지역 일대의 공천도 엉망진창이었으며 이런 공천상의 난맥상이 유권자에게 총체적으로 부정적 인상을 준 데다 탄핵으로 파탄이 난 정당, 정권의 낡은 이미지도 벗지 못하여 기록적인 참패, 절멸에 가까운 결과가 나왔던 것입니다.

"헌법의 핵심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이며 이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게 아니다." 이는 20년 8월초 윤 당시 총장이 발언한 내용이며 이 당시 진중권씨 혹은 저자의 해석은 "검찰은 우리 나라 최고 사정기관이며 그런 검찰을 흔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였습니다. 저자는 이어서 말합니다. "검찰이 무너지면 권력형 비리 등 거악을 누가 척결한다는 말인가(p222)." 혹자는 신설 공수처를 거론하나 헌법학자 중에서는 공수처의 헌법상 근거가 부족함을 지적하는 입장도 있고, 이번 공수처 설립 과정을 봐도 알 수 있듯 수사전문인력은 결국 검찰 출신에서 충원해야 하며 그 자격도 상당히 엄격히 따지는 걸로 보아 검찰 외에서는 사실상 자원 조달이 어렵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조국 장관 사퇴 후에는 추미애씨가 새로 취임을 했는데 이후 경과는 우리가 다 봐서 아는 대로입니다. 이 책은 제목이 <윤석열의 운명>이며 따라서 그 주제는 인물로서의 윤석열론입니다만, 책의 상당 분량은 추미애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아주 과장은 아닙니다. 사실상 윤석열이 이만큼이나 거물급 후보로 대두하고 차기 대선에서 변수 아닌 상수(p6)가 된 건 추미애 전 장관의 서투른, 혹은 악의에 가득찬 행보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추 장관의 악착 같은 조치가 국민 눈에는 "탄압"으로밖에 안 비춰졌고, 그녀가 사실상 사전 선거 운동을 해 준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저자는 p92, p262 등 이 책 여러 곳에서 "검찰을 '친정'으로 여긴다.", "고시 12회 이종남 총장 때부터 모든 총장들을 지켜보았다" 등 검찰에 대한 애정이 물씬 묻어나는 언급을 하며 또한 거기에는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저자가 직접 보신 총장 중 가장 카리스마가 뛰어난 이는 김기춘 씨였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과연 그는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으며 "숨도 계산해서 쉰다는 미스터 법질서" 평판이 매우 자연스럽게 얻어진 대한민국의 슈퍼엘리트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양반이 처신을 잘못하여 박근혜도 망치고 자신의 커리어도 다 망친 채 지금 저런 모습이 되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 젊은 검사들이 지금 죽을 고생을 하는 건 바로 저런 선배들이 "더럽게 해 먹고 간 결과"라는 점 부인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들은 바가 있어서요.

이 책의 맨 처음 칼럼은 21년 4월 1일자이며 이 책에 실린 중 가장 최근 일자에 작성된 글입니다. 여기에는 3월 31일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린 박철완 안동지청장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박철완 역시 임은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자기 모순에 빠졌다"고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비판) 역시 그의 자유다." "검사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주장"이라고도 합니다.

저자는 박 지청장의 주장에 대해 "검찰 조직만 생각했을 뿐 그 이상을 보지 못했다"며 비판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책의 다른 대목에서 "추미애와 윤석열이 너무 싸우다가 더 소중한 검찰 조직을 다치게 할 수 있다"며 만류하는 듯한 언급도 합니다(물론 비판의 중심은 추 측에 더 기웁니다만). 결국 중요한 건 우리 대한민국의 헌법질서이며, 그 수단으로서 검찰 조직의 중립성과 권한 존중이 이뤄져야 하고, 그 수단으로서 윤석열 전 총장의 기개와 결행에 대한 높은 평가도 이뤄지곤 하는 것입니다. 문재인, 조국, 추미애, 윤석열 등은 직을 채웠다가 가는 사람들에 불과하지만,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와 가치, 그리고 그를 위한 하나의 제도로서 검찰은 본분을 잊지 않고 그 직무에 영원히 충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독후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출산장려 성공시크릿 - 다산코리아 행복코리아를 꿈꾸며
박희준 지음 / 행복에너지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한국은 현재 OECD 국가 중 출산율이 가장 낮은 편(이 책 p106)이라고 합니다. 이러다가 국가의 자연 소멸을 걱정할 판이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한때는 과도한 인구 증가율 때문에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든가 "잘 키운 딸 하나..." 같은 표어가 내걸렸다(p94)고도 하는데, 보통 가정에서 아이 둘도 적게 여겼다는 뜻이니 지금의 상황과 비교할 때 상전벽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이 문제가 아니라 1960년대라면 아홉, 열도 드물지 않았으니 요즘 여성들이라면 "무슨 동물인가 하고 고개를 돌릴 듯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p92).

또 한때는 과도한 남아선호 풍조 때문에 불법 성감별과 그 후 조치 등이 큰 사회문제가 되기까지 했는데 지금은 반대로 아빠들이 예쁜 딸 하나만 두고도 행복해하니 이는 정말 다행한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출산율 저하는 여전히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부족한 생산력에 인구압만 높아서 심각한 상황이었으나 지금은 먹고살 만한데도 "잘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니 우려스러운 일임이 분명합니다. 물론 젊은 세대의 의식을 탓할 것은 당연히 아니며, 기성세대를 포함 모두가 사회 구조의 합리적 변혁에 더 노력해야 할 일이이겠습니다.

저자께서는 스스로 베이비붐 세대로 자신을 소개하며, 한국에서 튼살크림을 개발한 회사를 창업한 경영자입니다. 이후 사단법인 한국출산장려협회를 설립한 후 그 활동에 매진하시는 분으로 나오는데, 물론 회사의 주력제품과 임산부들의 수요가 직접 연관이 큰 연유가 있겠으나 이처럼 뜻 깊은 공익사업에 헌신함은 확실히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하다고 하겠습니다.

책 앞부분에는 의외로 저자분의 개인사가 펼쳐지는데 한국 베이비붐 세대 성공한 인생의 한 표본을 보는 듯하여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책에는 저자의 솔직한 고백이 나와야 독자 입장에서 호응을 보낼 수 있는데, 읽으면서 ㅎㅎ 이런 이야기까지 다 하시나 싶어 무척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제1차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의 산업화, 근대화를 온몸으로 이끈 이들이니만치 그 자부심이 남다르죠. 탄생시부터 비범했던 저자는 4~5kg 정도의 우량아인데다 피부까지 검어 주위에서 모친의 불륜을 의심하는 목소리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물론 이는 농담으로들 나온 이야기겠습니다. 오히려 이런 우스개도 격의 없이 주고받을 만큼 인덕이 있으셨다는 뜻이겠고, 아무려면 흑인종과 동아시아인의 이목구비부터가 형태적 차이를 보이는데 헷갈릴 리가 있겠습니까. 외모 관련해서는 p30에 국제공항 출입시 보안요원이 다른 출구로 안내하려던 경험도 나오는데, "필리핀 등에서 마약류를 들여오려는 의도"로 오인한 것 아니었겠냐는 멘트가 있습니다. 뭐 그렇기야 하겠습니까만 여튼 여기서도 저자의 유쾌한 성품이 엿보입니다. 책날개에 저자의 사진도 나오는데 누구나 중년 호남형으로 평가하지 않을까요.

저자는 대구고 출신인데 이 무렵에 "교련"이라는 교과목이 고교 과정에 신설되었다고 합니다. 연도가 1968년인 걸로 보아 아마 김신조 씨 등의 청와대 습격 미수 사건이 그 계기가 되었겠죠. 1974년에는 재일교포 문세광의 대통령 암살 기도가 벌어졌는데 참 이 무렵을 보면 시국이 급박하게도 돌아갔으며 지금 우리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나 보듯 한반도를 세계가 일촉즉발의 화약고로 볼 무렵이 아니었나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나 살얼음판 같던 곳을 이만큼이나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으니...

교련 수업을 하면 보통 열병, 분열, 총검술 등이 그 핵심이겠죠. 이때에도 저자는 학생대표로 사단장 자리에 서서 지휘했다고 추억을 술회하는데 여학생들에게 인기 최고였다고 합니다. 사실 성공의 유형에는 여러 종류가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이처럼 학창시절부터 유래하는 즐거운 체험, 성취감, 자신감 등이 큰 자산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위한 자산인가, 그것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어찌되었든 간에 이를 헤쳐나가는 의지와 낙천적 기질을 위한 것입니다.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람차게 보낸 이들에게는 이런 게 가능하죠.

저자는 이후 대웅제약에 취업하여 일등 영업사원으로 경력을 쌓습니다. 아무래도 당시 한국이 산업화가 막 시작된 만큼 특히 사무직에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이런 소화제류가 큰 인기를 끌던 시대상이 반영된 듯합니다. 이것이 1980년대의 일이며, 이후 저자는 당시 노태우 정부 하의 주택건설 붐이 시대 조류임을 알아보고 중국 측과의 합작을 통해 건설업 진출을 시도하게 됩니다. 사실 이 무렵(1989)이면 아직 중국과는 정식 수교가 이뤄지지 않았을 시절인데도 의욕 있는 사업가들은 중국 드나들기를 밥먹듯 했죠. 이때 진출한 사람들이 말하자면 "찐"이며 21세기 이후엔 이미 호시절이 다 지나가고 난 후입니다.

이때로부터 한참 후에 중국에 진출한 이들이 여러 이유로 사업을 접게 된 건 흔히 보는 바이지만 저자의 경우는 천재지변이 계기였기에 사정이 좀 다릅니다. 모르긴 해도 아마 그 일만 아니었으면 시대가 시대였으니만치 이 단계에서 벌써 큰 성공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이 일을 두고 "중국에서 사업을 하지 말라는 계시"라며 긍정적으로 해석하는데 사업가에게는 이런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튼 저자는 건설업을 접고 다시 신생 제약회사 영업부장으로 복귀하는데 1년만에 매출이 열 배로 오르는 등 역시 영업쪽이 완전 체질임을 증명합니다. 이때 성과급으로 3천만원을 회장님한테 제안받았으나 사양하고, 대신 후배 영업부 직원들의 품위 유지비 건과 저자분 개인 창업시 3억 무이자 차입을 약속 받고 방을 나왔다고 합니다. 이후 저자가 씨에이팜을 창업한 건 2001년의 일입니다. "맘비"라는 회사 캐릭터 고슴도치도 이때 탄생했는데 저자가 특별히 한국의 출산율 제고에 대해 본격 관심을 둔 게 이 무렵인 듯합니다. 이것이 정부 공익사업에 민간 기업이 딱히 대가도 받지 않고 참여한 것이라 사내 반발도 컸는데, 대신 기은 측에 매출이 크게 늘어난 효과가 있는지라 결국 잘 추진되었다고 하네요.

남성이 정관수술을 받으면 예비군 훈련을 면제해 주는 제도가 시행되었었는데 이 역시 지금 보면 아득한 옛날 일로만 보입니다. 지금은 정부에서 출산 장려금(p196 이하)까지 지급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자는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야 비로소 관련법 제정과 위원회 발족이 이뤄졌음을 지적하며 만시지탄의 아쉬움을 표현합니다.

저자는 일본을 두고 "미야모토 무사시의 나라"로 표현하는데 확실히 이런 과묵하고 화끈하며 성과를 내 줄 때 임팩트 있게 폭발시키듯 하는 캐릭터를 좋아하시나 봅니다. 여튼 대학폐교, 테마파크 입장객 감소, 산부인과 - 소아과 퇴출, 빈집 증가 현상 등 국운이 거의 내리막길로 접어든 듯한, 한때 세계를 집어삼킬 듯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일본의 현재 모습을 보며 우리는 결코 저렇게 되지 않아야 한다며 경각심을 일깨웁니다.

저자는 군생활 당시 단기하사로서 장교와 몸싸움을 벌일 만큼 선명한 추억(?)을 가지기도 한 분(p44)인데, 그래서인지 여군의 복무 여건 개선에 정부와 사회가 각별한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합니다. 여군 제도 자체야 예전부터 있었지만 여대생이 학군복을 입고 캠퍼스를 다니는 모습이라든가 여성 부사관, 군무원 등이 부쩍 늘어난 것은 비교적 최근의 풍속도입니다. 사회가 이처럼 빠르게 바뀌는데도 아직 인식이 미흡하고 이분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미비한 것은 유감스럽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출산율을 연계하여 이런 문제를 고찰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중앙기관이 지방으로 이전되는 등 청년층의 지나친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한 정책이 시행되었으나 아직까지도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합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니 결혼은 고사하고 젊은층의 정상적인 연애마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저자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서라도(p157)"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출산율을 제고하지 않으면 장차 큰 재앙이 닥칠 것을 우려하는데 이에 공감하는 정치권의 움직임도 최근에 뉴스로 많이 본 것 같습니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말이 모 가수(1980년대 저자께서 한창 대웅제약에 근무할 당시 일본에 진출했던 김연자씨)의 노래 가사에도 나온다고 하시는데 저자는 이 대목에서 백석과 자야, 바이런과 캐롤라인 램의 사연을 거론하며 젊은 남녀가 여건이 안 돼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는 것만큼 큰 비극이 없다고 말합니다. 저자분 자신이 젊은 시절 멋진 로맨스를 해 봤고 지금도 열애의 상대방분과 멋진 가정을 꾸리고 있기에 이런 자신감 있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분 눈에 요즘 젊은애들이 얼마나 안되어 보이겠습니까.

어차피 기업은 사회적 존재이며 청년층의 결혼, 출산 제고를 위해 일정 부분은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기혼자가 늘고 그들 사이에 자녀가 늘어 소비가 진작되고 사회가 다시 번영으로 이끌어지면 그 수혜를 모두 기업이 입는 것입니다.

책에는 현재 정부 차원에서 시행되는 출산 장려책이 아주 상세하게, 또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겠고, 이 책에서는 현재 재정 상황에서도 충분히 지원 가능한 다른 좋은 정책들을 저자 개인의 견해, 또 (사)한국출산장려협회의 연구 결과로 소상하게 전개됩니다. 주주는 국민인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그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건데 어떻냐는 식입니다. 책에는 케인스와 뮈르달의 연구(1930년대)부터 해서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인구 감소를 통한 문명 쇠퇴에의 우려가 언급되는데 이 문제가 얼마나 뿌리 깊은 연원을 갖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영리 민간단체인 (사)한국출산장려협회는 2007년부터 부단히 그 설립이 추진되었으나 2018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결실을 보았는데 책 p76 이하에 그 사정이 자세히 나오며 현 청와대 김정숙 여사와 오찬 회동을 가진 일도 재미있게 책에 소개됩니다. 이 협회가 현재 역점을 두어 추진하는 사업은 이른바 오온 운동으로서, 온은 고유어로서 백(100)이라는 뜻이며 다섯 가지의 "온"을 전개하자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라고 할 때의 온(관형사)이 바로 이 단어의 흔적입니다.

1) 3. 1운동 백주년의 구국정신을 계승한다.
2) 100명의 K-PEACE 교육홍보대사를 위촉한다.
3) 출산보국 백년 대계의 기틀을 마련한다.
4) 100가지 저출산 해법을 마련,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다.
5) 저출산, 고령화 대비 예산이 100조원에 이를 수 있게 노력한다.

약간 억지같이도 보입니다만 저출산이 국가 활력 침체, 경제 불황, 잠재력 소멸, 국가 쇠망의 결과로 이어질 게 명약관화한 이상 팔짱 끼고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바로 실천으로 이어져야 할 과제이겠으며, 저자는 우공이산의 패기와 의지로 이 사업에 매진할 것임을 천명합니다.

책이 예쁘게 만들어져서 소장하기에 좋았습니다. ㅎㅎ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