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끝내는 DELE B2 - BONA 쌤의 출제 포인트를 짚어 주는 종합서 한 권으로 끝내는 DELE
BONA 외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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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능력검정시험으로 DELF가 있듯이 스페인어 공인 시험으로는 이 DELE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B2 등급은 아마 스페인어로 자격을 따려는 이들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응시하는 레벨이겠습니다. 마스터 등급이라면 등급 취득 자체만을 위해 어떤 코스를 밟아 단기간에 도달하기에는 무척 어렵겠습니다만 B2라면 잘 짜여진, 또 출제 경향을 잘 파악한 교재나 강좌를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교재도 무척 두껍고, 두꺼운 만큼 현행 B2 시험에 나올 만한 사항은 이 한 권에 다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교재는 두 부분으로 나뉘었는데 독해, 듣기, 작문, 회화의 네 영역을 공략하는 챕터 1이 있고, 챕터 2에서는 모의고사 2회분을 담았습니다. 각 영역은 prueba, 즉 테스트, 문제로 불리며, 각 영역은 tarea, 즉 과제, 학습 여러 단위로 이뤄졌습니다. 각 영역이 끝날 때마다 연습문제가 딸려오며, 정답과 해설은 문제 세트 바로 뒤에 이어집니다. tarea는 처음에 유형 해설을 해 주고 전략을 제시한다면, ejercicios가 뒤에 이어져 실전 문제 유형을 풀게 합니다. 또 연습문제(ejercicios)에 나온 새 단어를 바로 다음 페이지에 모두 모아서 따로 학습하게 돕습니다. 아무래도 이 시험을 처음 치는 이들은 모든 것이 낯선 만큼, 연습문제 지문과 선지들을 바로 다음 페이지에 한국어로 다 번역해 두었습니다. 틀린 문제가 있다면, 이 번역을 보고 왜 내가 틀렸는지 체크해 볼 수 있습니다. 

독해 지문을 보면, 현대 사회에서 이슈가 될 만한 여러 현상들을 분석적으로 다룬 아티클들이 많습니다. 델프나 DELE 모두 이런 경향이 있는데 스페인이나 프랑스나 사회과학이 발달한 나라들인 만큼 이런 종류의 지문이 즐겨 출제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p49에서 보듯 여러 가상의 인물들(주로 대학생)이 등장하여 자신의 학업 포부나 계획, 때로는 개인 취향을 밝히는 지문도 있는데 이는 아이엘츠나 토플 등 영어시험이나 타 외국어 능력검정시험에도 두루 즐겨 출제되는 유형이겠습니다. 

해설도 꽤 자세한 편이라서 왜 이 선지가 답이 되는지, 출제 의도가 무엇인데 이게 답이 되어야 했는지 딱딱 짚어서 알려 줍니다. 다시 말하지만 해설이 참 자세한 편입니다. 토익이나 텝스(영어) 해설책도 설령 고득점 타겟 교재라고 해도 이렇게 독자를 납득시켜 가며 출제 의도를 밝히는 태도를 드물게 본 듯해서 제 개인적으로는 좀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해설에는 그 문항에 대한 설명만 있는 게 아니라 "함정피하기"라고 해서 앞으로 유사한 문제가 나올 경우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구체적인 전략이 나옵니다. 기본 문법은 타 코스나 교재를 통해 좀 배워 놓아야, 이 해설 파트에서 무슨 지적을 하는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p127을 보면, "tan+형용사의 동등비교라면 답이 보기 b의 como가 되지만, mas와 menos는 반드시 que와 연결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이건 사실 중2 수준의 영문법만 잘 이해해도 아무 문제 없이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기도 합니다. como는 영어의 동등비교 전치사 as와 거의 같습니다. 또 mas는 영어의 more과 비슷하고, menos는 사실 어근이 우리가 아는 minus입니다. 그러니 뜻이 영어의 less와 같지 않겠습니까. que는 이때 영어의 than과 같으므로 당연히 우등(열등) 비교에 쓰이는 전치사입니다. 

듣기 지문은 사람들의 대화 형식이 아무래도 자주 출제되는데 모든 어학시험 듣기 영역에 공통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페인어는 영어나 불어와 달리 모음이 아, 에, 이, 오, 우처럼 딱딱 떨어지는 편이고 강세도 고정강세(페널티마에 떨어짐. 일부 단어들 예외)이므로 한국인들 귀에 비교적 잘 들어옵니다. 따라서 단어 학습만 철저하게 해 놓아도 어느 정도는 다 알아들으며 듣기 난이도가 타 외국어와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p191의 privilegio(특권, 특허), ruta(길), tolerar(인내하다), p275의 obstaculo(방해) 등은 영어에도 비슷한 말이 있으므로 그리 어렵게만 다가오지도 않습니다. 

작문 영역도 대단히 내용이 알찹니다. 문제 유형은 예를 들어 p314를 보면 자료를 주고 해당 문제의 원인을 짚은 후 그 대책을 논하게 하는 게 있는데 물론 스페인어로 논리정연하게 작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단 모범답안을 제시하고 이를 한국어로 옮긴 후, 무엇에 중점을 두어 답을 써야 하는지 포인트를 딱딱 짚어 주는 게 좋았습니다. 이게 템플릿 노릇을 일일이 할 수도 있고, 모범 답안을 따라쓰기만 해 봐도 실전 감각이 꽤 늘어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회화 영역은 (쉽게 말해) 말하기 영역입니다. p367 같은 곳을 보면 감독관 앞에서 특정 주제에 대해 3, 4분 정도 이야기하게 하며 이것이 수험생의 과제(tarea)입니다. 또 감독관과 2, 3분 정도 대화를 나누게 하기도 합니다. 어학 교재 중 말하기 파트를 연습시키는 교재가 보통 그러듯이, 이 책도 실전 DELE 기출을 철저히 분석한 후 일종의 템플릿을 제시합니다. 템플릿(으로 볼 수 있는 컨텐츠)의 양이 넘치면 넘쳤지 모자라지는 않은 게 이 교재의 특징입니다. 

교재의 두꺼운 볼륨에 너무 압도될 게 아니라 그만큼 내가 이 책에서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시험 준비를 알차게 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교재 컨텐츠가 풍성한 건 분명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겠으니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만족이었습니다. 

*시원스쿨에서 제공한 교재를 공부하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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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
리처드 J. 라이더.데이비드 A. 샤피로 지음, 김정홍 옮김 / 북플레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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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길지도 못한 백 년 인생을 사는 목적은 권력도, 돈도, 쾌락 추구도 아닙니다. 물론 이런 목표들도 중요합니다만, 그 모든 건 결국은 마음이 평안해지고 진정한 행복을 얻고 도달하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합니다. 만약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말초적 쾌락을 한껏 누려도, 테살리아의 에뤼식톤처럼 목이 끝없이 타들어가고 배가 채워질 날이 없다면 그 모든 호사가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두 분 저자 리처드 라이더, 데이비드 샤피로는 이미 여러 감동적인 교훈과 효과적인 지침을 담은 베스트셀러로 국내 독자들도 잘 아는 분들입니다. 특히 데이비드 샤피로는 "가방 다시 꾸리기"라는 캠페인으로 미국에서 명성을 얻기도 했는데, 이 책의 영어 원제도 같은 구절입니다. 이 책은 원래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2011년에 한국 독자들을 만났었고, 이번에 출판사를 달리하여 독자들을 맞이합니다. 역자는 김정홍씨, 대체로 원래 텍스트 그대로입니다. 원서 초판은 무려 30년 전에 출판되었더랬습니다. 

물론 비유적인 의미에서겠습니다만 이 책은 원제가 "가방 다시 꾸리기"이며 그에 걸맞게(?), 예를 들어 p74 같은 곳을 보면 "여행 체크리스트"가 제시됩니다. 여행 자주 다니는 이들은 알겠지만 여권, 지도, 여행자 수표, 티켓, 손가방, 세면도구 등이 길을 떠나기 전에 챙겨야 할 필수 품목들입니다. 그 중에는 재미있게도 "모험 정신, 여행 동반자" 같은 것들도 포함됩니다. 독자들은 이미 눈치챘지만 여기서 여행이라 함은 푸켓, 보라카이 등으로 떠나는 그런 물리적인 체험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여행을 떠나는 우리들의 채비를 지적하려는 저자의 비유입니다. 준비를 단단히 마치고 떠나는 여행은 보람도 가득하고 사고도 적듯이, 우리네 인생도 철저하게 점검하고 도중에 리패킹도 야무지게 하면 성과도 많고 곤란함도 적게 겪습니다. 

가방을 푼다(p110)는 건 여행을 도중에 (무슨 이유에서건) 중단함을 뜻합니다. 좌절, 좌초, 패배, 탈진, 번아웃... 웬만한 정력을 갖춘 사람 아니고서는 한두 번의 "가방 풂" 없이 당초의 여정을 내내 지속하기가 힘듭니다. 가방이 풀어질 때는 억지로 행군을 이어갈 수 없고 일단은 멈춰야 합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저자들은 이런 시기일수록 나 자신에게 어떤 질문들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이 좀 더 나은 곳이 되리라고 정말 기대할 수 있는가? 여태 같이 지내 왔던 사람 말고 다른 사람과 함께 남은 여정을 다닐 수 있겠는가? 자, 이제 가방을 다시 꾸리려면, 일시적인 비난, 지인들과의 단절, 수입 감소 등을 정말로 감내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날카롭게 질문들을 던집니다. 

리패킹이란 그런 작업입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단 멈추었을 때, 다시는 무기력하게 넘어지지 않도록 마음을 무장하고 기어를 단단히 감는 재도약 재기에의 각오를 쟁여 넣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가방을 다시 쌀 때에, 전에는 공간을 잔뜩 차지하고 있었지만 다시 보니 별 필요도 없었던 그런 것들, 이것들을 기방에서 탈탈 털어내어 내 어깨를 가볍게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저자는 이 교훈을 전달하며 어느 화가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그 화가는 순간 떠오른 착상대로 아, 이러이러한 것들이 나한테는 원래 필요가 없었음을 확신하고, 아무 미련없이 폐기했다는 것입니다. 그 화가는 이후 대중적으로 더 성공했고, 예술적 성취도 더 크게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한우물만 파는 집념과 헌신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라이프스타일이란 다양한 체험과 상황에 두루 적용될 수 있게, 어떤 다목적을 지향하고 또 기능할 수 있는 것이라야 당사자 본인의 삶이 일단 편해집니다. 다목적 라이프스타일의 구축을 위해 어떠어떠한 요소가 필요할지, 저자들은 p160에서 하나의 공식을 제안합니다. 재능과 열정과 환경이 두루 더해지고, 이에 꿈이라는 촉매제가 제대로 곱해지면, 이런 효과적이면서도 뿌듯한 감정을 샘솟게 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히트 자계서가 책 안에 고유한 포뮬러 하나씩을 담아서 대중적으로 성공했는데, 이 책은 말하자면 (talents + passions + environment) x vision이라는 새 공식을 만든 셈입니다. "다목적 라이프스타일"은 원서에서 Lifestyle Rich in Purpose이란 용어로 제시되었습니다. 

p224에서 저자들이 인용하는 경영 컨설턴트 톰 디스(Thomas Thiss)라는 분도 이미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쓴 이름난 저자입니다. 그는 어린 손녀에게 우유를 먹일 때, 베토벤의 교향곡을 들을 때, 그가 여태 느껴 온 어떤 경제적 성공이나 명성이 가져다 준 쾌감 못지 않게, 어쩌면 진정한 마음과 영혼의 안식을 얻었다고 겸허하게 술회합니다. 인생이란 원래가 이런 것입니다. 때로는 거센 풍랑 때문에 전진이 방해되어도, 결국 단호한 결심과 순리를 좇는 명철한 이성을 갖춘 자가 제 항구에 안착하고야 마는... 우리 모두 무엇이 우리 인생에서 본질인지, 가장 회복력 높은 타임아웃(p276)을 통해 나 자신의 진로를 재점검하는 지혜와 여유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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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바꾼 전쟁의 역사 - 미국 독립 전쟁부터 걸프전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과학적 사건들
박영욱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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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그저 상대를 절멸시키려는 인간의 악독한 의지에 의해서만 수행될 것 같지만 사실은 첨단 기술, 과학 원리의 치열한 응용이 많이 개입하는 장(場)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 중에 극적인 발전을 본 분야도 많은데 심지어 선형계획법 같은 수학의 원리가, 제한된 자원과 예산 하에서 최소 비용, 최대 효익을 거두려는 전쟁 수행 수뇌부의 의도에 의해 크게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전쟁과 과학이 서로 이만큼이나 긴밀한 관계를 맺고 발전했는지를 확인하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도 들지만, 죽이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몰린 인간들에게서는 못 짜낼 지혜가 없다는 사실에서 어떤 경외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국민(나시옹)"이라는 집단의 기치 하에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각자의 재능과 실력을 남김없이 발휘하게 했다는 점에서 인류사적 의의가 큽니다. p46을 보면 나폴레옹 1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벌써 이때 그가 거느렸던 학자 가스파르 몽주가 선형계획법을 (초기 형태로나마) 고안해 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 역시도 전근대 체제였다면 그의 천재적 재능이 세상에 쓰이지 못했을 인물인데, 프랑스가 지금도 세계적 수준의 과학, 수학을 뽐내는 건 이 책 제3장에 자세히 나오는 에콜 폴리테크니크 같은 명문학교가 제대로 작동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러시아와 튀르키예(터키)가 사안에 따라 협력하는 모양새지만 근세 이래 이 두 나라는 화해가 안 되는 앙숙이었으며 나중에는 투르크 제국이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과 손을 잡기까지 했으니 러시아로부터의 위협과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p76을 보면 산업혁명 이후 이런저런 기술을 보유한 회사들이, 전쟁의 압박에 내몰린 여러 나라들에 무기를 수출하여 엄청난 이익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세머 제강법이야 영국의 기술자 헨리 베세머가 발명했지만 프리드리히 크루프, 그리고 그의 아들 알프레드 크루프가 산업화하여 큰 돈을 벌었으며 지금까지도 뒤셀도르프에 본사를 둔 티센크루프 주식회사로 번영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저들 업자들을 "1세대 글로벌 방산기업"이라 성격 규정합니다. 

1년 반 전쯤에 짐 라센버거가 쓴 <콜트>라는 멋진 책에 대해, 책좋사에서 당첨되어 리뷰를 쓴 적 있습니다. 지금 이 책에도 콜트 리볼버 이야기가 나오는데 과연 (작게는) 미국의 역사, (크게는) 세계사를 바꿔 놓은 명기의 발명이라 부를 만합니다. 미국은 특히 남부의 기후와 지형 조건을 이용하여 대규모 면직 공업을 발전시켰는데, 남부는 아마도 1차 산업은 노예 노동을 통해 자신들이 맡고, 공산품은 영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분업 체제를 상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부의 압도적인 생산력은 남부와 (기울어져가는 제국인) 영국이 그런 몽상에 빠지게 가만 놔두지 않았고, 후발 주자들의 복제가 쉽지 않게 고안한 고부가가치 제품인 여러 무기를 생산하려는 미국 업자들의 야심은 날로 커져 갔습니다. 

책 초반부에서 나폴레옹 1세가 아꼈던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는데, 대서양 건너편 미국 사람인 실바누스 세이어도 이 학교에서 배운 사람이며 나중에 웨스트포인트에 미 육사를 만들 때 큰 영향을 받았다고 책에 나옵니다(p146). 세이어는 나폴레옹 1세와 16년 정도 차이가 날 뿐인, 거의 동사대인이라고 봐도 될 정도인 인물입니다. 이 책에서는 "과학 기술을 중시하는 전통"이 에콜 폴리테크니크형 군사학교에 면면히 살아 있다고 누누이 강조합니다. 한국도 과거에는 미 웨스트포인트를 본받아(p150) 과학 쪽의 비중이 커리큘럼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현재는 과연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느 조직이건 애플 폴리셔, 출세지상주의자가 승자가 되는 풍조가 지배적이라면, 그 조직의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할 뿐입니다. 

과학기술은 돈이 되느냐? 원래는 기초과학이 실용성을 과연 가졌냐에 대해 산업혁명의 고향인 영국에서조차 회의적인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자는 패러데이에게 대놓고 이런 전자기학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냐는 둥 무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죠. 그러나 이 책 제14장에도 나오듯 토머스 에디슨 등 발명가형 사업가들이 등장하고부터, 과학과 기술은 정말로 돈이 되기도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고 에디슨이나 벨 등의 이름은 지금도 AT&T, 제네럴 일렉트릭 등에 남아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본인도 상대성이론, 광양자설 등이 엄청난 위력의 폭탄 개발로 연결될 수 있을지에 대해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과학의 발전과 그 파급의 힘이란 심지어 그 성과를 이뤄낸 과학자 본인의 입장에서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인데, 원자핵무기의 개발은 인류 역사를 그 전과 후로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p189). 책에서는 왜 오펜하이머 등 일부 과학자들이 소련 등으로 기밀을 빼돌리려는 움직임에 대해 비교적 관대했었는지에 대해, 인류 공적인 나치를 박멸하는 데 당시 소련이 기여한 바가 크며 핵무기 같은 치명적인 수단을 오로지 미국만이 독점적으로 보유하는 것에 대해 경계를 품은 이유가 있었다며 당대의 역사 맥락을 전체적으로 고려할 것(p221)을 독자들에게 권유하기도 합니다. 

첨단 군사기술 발전은 주로 미국이 이루지만 그로부터 파생되는 스핀오프 현상은 원 기술 보유 측도 어떻게 통제할 수 없으며, 그래서 작금의 현실은 20세기 양극 체제 냉전과는 달리 불확실성이 더 크게 확산하는 추세라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앞선 시대에도 송나라에서 최초 개발한 화약이 정작 대포로까지 발전한 건 유럽이었으며 대포를 전쟁에 적극 활용한 건 사파비나 오스만이었습니다. 책에서는 일관되게, 군사 기술이 어디서 어떻게 발전되어 대량 살상에 응용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니 각자가 현명하게 이 불확실성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 나라도 수십 년 동안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대치를 이루는 와중에도 이 정도의 번영을 이뤘고 (가성비 위주라는 외부 평가가 지배적이기는 하나) 독자적인 방산 산업의 발달도 이룬 만큼 더 현명한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책은 주장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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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탄소크레딧 시장 101
박동원 외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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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구미에서는 1990년대에 탄소 배출권 시장에 대한 구상이 이뤄졌고 이의 현실화를 위해 치열한 토론이 이뤄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1997년에는 교토 의정서가 발효되어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각국의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탄소 배출권이란, 무작정 탄소 배출을 금지하면 이것이 현실화하기 어려우므로, 마치 종량제 봉투처럼, 탄소를 배출하려면 돈을 내고 시장(탄소배출권이 거래되는)에서 탄소배출권을 산 다음에 배출하라는 취지에서 도입되었습니다. 이것이 제도로서 완전히 정착한 후에는, 마치 유가증권을 투자하고 양도하듯이 장단기 가치를 보고 거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지금도 일각에서는 그렇게 하는 중입니다. 

여태 저도 여러 권의 탄소시장 관련 책을 읽고 리뷰도 써 왔습니다만 지금 이 책이 그 중 최고였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원래 이 분야가 내용이 좀 어렵고 전문적일 뿐 아니라, 세계적 현황을 통계 자료만으로 바로 파악하는 게 까다로운데, 이 책은 일단 많은 통계가 수록되었을 뿐 아니라 인포그래픽화가 잘 되었습니다. 아무 지식이 없는 초보자라고 해도 책만 쑥 훑어도 이 시장에 대해 대략의 감이 잡힐 정도입니다. 올컬러 편집이어서 눈도 덜 피곤합니다. 뿐만 아니라 체계있게 각종 자료 출처 소개를 곁들이기 때문에 심화 서치를 위한 기초도 잘 놓아 줍니다. 여러 모로 너무도 마음에 들고 도움이 되는 책이었습니다. 

일단 우리가 한국인인 만큼,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의 현실이 어떠한지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지난 정부 때부터 재생 에너지 정책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고, 지난 대선 토론회 당시 RE100이라는 아젠다가 거론되어 새삼 대중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더랬습니다. 여전히 한국의 현실은 녹록지 않고, 책에서도 특히 p71 같은 곳에서 친환경에너지 사용 여건이 열악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2022년 현재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9.2%라고 나오는데 사실 한국의 인식 미비, 낮은 참여도 등을 감안하면 이 정도도 그나마 낮은 편이라고는 못하겠다는 생각도 솔직히 듭니다. 2030년까지 21.6%까지 올릴 계획이라고 나오는데, 우리도 글로벌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하루바삐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더 올려 우리와 후손들이 더 쾌적하고 안락한 상황에서 살 수 있게 힘써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신뢰와 연대의식으로 무장한 동료라는 점을 깊이 새긴다면, 이런 탄소 배출 자제의 컨센서스와 시스템이 마련되었을 때 그에 충실하게 적응하고 실천에 옮기는 이들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에는 남의 선의를 악용하는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친환경주의가 하나의 시대정신이 되자 이제는 친환경도 아니면서 친환경인 척 가면을 쓰고 대중의 호감을 그릇되게 장악하려는 나쁜 행태를 그린워싱(p112)이라고 부릅니다. 너도나도 친환경을 입에 담고 외치고 다니니 대체 누가 가짜이며 누가 진짜 환경을 아끼고 걱정하는지 분간하기가 어려우니, VCMI(자발적 탄소시장 무결성 이니셔티브)에서는 그 진정성을 검증하기 위해 CCP,  즉 무결성 이행지침을 마련하여 각 회사나 단체, 조직이 얼마나 실제로 탄소 저감을 실천하고 있는지 그 표준을 마련합니다. 

그 표준이라고 하는 건 CCP, claims code of practice라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뿐아니라 표준적인 한국어 번역은 "무결성 이행 지침"인데, 아무리 봐도 "무결성" 부분이 안 보여서 제가 (이 책에서 가르쳐 준) 여러 소스 웹사이트들을 직접 찾아 봤습니다. 무결성은 VCMI에서의 I가, initiative의 약칭이긴 하지만 동시에 integrity의 앞글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또 그냥 code of practice라고 해도 될 것을 구태여 앞에 claims라고 붙인 게, 그만큼 이미 손상된 자연의 복구를 시급히, 행동으로 이뤄내야 한다는 어떤 절박함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유가증권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고 가격이나 시장에서의 평가도 천차만별입니다. p123을 보면 이제 교토 의정서를 대신하여 세계 기후변화 대처의 중심 규범이 될 파리 협정이, 새롭게 구체화한 여러 크레딧을 자세하게 소개합니다. VCMI에서 맨 앞 V라는 글자는 voluntary의 약자인데, 이 책 p90을 보면 그 "자발적"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를 또 해명해 줍니다. "자발적"은 규제를 받아 억지로(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p92의 대조표에 잘 나오듯 할당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탄소 저감책을 마련하여 이를 인증 받은 다음 그 크레딧을 시장에 내다파는 것입니다. 특히 CBAM이라는 것을 EU가 마련하여 탄소 저감에 미온적인 외국 기업에 대해 탄소 비용을 징구(徵求. p96)한다는 전망인데, 우리 기업들이 이에 특히 주의하여 앞으로 수출 대책을 잡아야 한다는 게 책의 심각한 제언입니다.    

친환경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국제 규범이 엄격하게 요구하는 당위규범입니다. 근본 규칙이 바뀌고 있는 만큼 우리들도 살아남기 위해 영리한 전략을 새로 치밀하게 수립해야 할 시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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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스페이스 실록 - 너의 뇌에 별을 넣어줄게 파랑새 영어덜트 4
곽재식 지음, 김듀오 그림 / 파랑새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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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작가님이 쓴 책들은, 특히 한국의 먼 역사 중에서 과학 관련 토픽을 잘 추출하여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점이 좋았습니다. 예전에는 박성래 서울대 교수님이 이런 부문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요즘은 곽재식 저자님 책에서 그런 효용을 얻습니다. 

p48 이하를 보면 정문경(精紋鏡)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학교에서는 "잔무늬거울"이라고 배운 내용입니다. 저자는 이 토픽에서 태양에 사람들이 부여한 주술적인 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천문학은 가장 철저한 물리 지식과, 타고난 모험 정신, 강한 창의력으로 무장한 인재들이 종사하는 분야이지만 그 출발은 점성술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성(星)이라는 글자가 벌써 별을 뜻하죠. 막강한 자연의 힘에 대해 뭔가 이를 해석하고 대응하려는 노력이 종교, 태양 숭배 풍조를 빚고 그 부산물 중 하나가 아마도 정문경이었겠으나 이의 제작이 중단된 건 인간의 호기심 지향이 객관으로 진입하려는 하나의 징후였겠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객관적 관념론인 유학 천착에만 머무른 게 아쉽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금성과 화성은 지구와 비교적 가까이 붙어 있기에 예전부터 새로운 생명체, 혹은 지구로부터의 이주 대안으로 꼽혀 왔던 행성들입니다. 저자도 그런 말씀을 하지만, "별"이라는 단어를 항성과 같은 뜻으로 쓰자면 태양도 (약간 이상하지만) 별에 속하며, 반대로 우리에게 좀 익숙한, 하늘에서 자주 구경할 수 있는(실제 거리가 멀든 가깝든 간에 겉보기로) 천체를 뜻한다면 금성, 화성이야말로 별 중에 별입니다. p117 이하에서 저자는 금성, 화성의 대기 조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금성의 대기는 성분이 희박한 게 아니라, 반대로 너무 진해서(무거워서) 생물의 활동에 방해가 된다고 합니다. 또 그 대부분이 이산화탄소이기 때문에 지구 생명체가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그러한 조건에 알맞게 생명체가 독자적으로 진화하지 못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p144를 보면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찾아 독자에게 들려 줍니다. 영조 임금이 신하들에게 신비로운 천문 지혜를 지닌 어느 노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는 대목인데, 조선왕조실록은 <삼국유사> 같은 책과 달라서 객관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설화는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기이한 이야기도 영조가 자신이 아는 설화라며 신하들에게 전달하는 형식일 뿐입니다. 이런 행적에 구태여 중요성을 두고 기록에 남긴 사관의 태도도 특이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세성(歲星)이라며 임금을 상징하는 존재로 부각된 별은 목성입니다. 이어 책에서는 목성의 여러 위성, 특히 타이탄에 대한 재미있는 여러 사실이 소개됩니다. 

우리들도 학교 다닐 때 천상열차분야지도 같은 흥미로운 문화 유산을 교과서에서 본 적 있습니다. 중국에서 유래한 천문도에는 오(吳), 연(燕) 등 중국 특정 지방이 하나하나 대응되었는데 이것이 중국 땅이 천하의 전부라는 대단히 협소한 세계관의 잔재라는 지적을 합니다. 놀랍게도 우리 조상들은 서양 각처에도 독자적인 문명이 자리함을 안 후에는 저런 종래의 시각이 오류라는 걸 깨닫고, 또 조선 땅도 천문에 투영 못 할 바 없음을 깨닫고 "동국분야(東國分野)"라는 새로운 기법을 개발하여 두루 활용했다고 합니다.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p287을 보면 각수(角宿)라 하여 고대 중국인들이 하늘을 볼 때 취했던 프레임들이 소개됩니다. 宿(숙)이라는 글자는 별 관련해서는 "수"라 읽습니다. 영성(靈星)은 간혹 영성(零星)으로도 잘못 기록되었는데 기록이 불충분하여 아직도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이 (점성상으로) 부여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저자는 아마도 풍년, 수확 등의 염원을 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개진합니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처녀자리의 한 밝은 별을 지목하는데(꼭 그 별이라는 게 아니라), 이 별은 스피카(Spica)라고 불리며 그 뜻은 곡물류의 차례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 대목은 저자의 독자적인 추측이며 읽는 입장에서 대단히 흥미러웠습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우리에게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이면에 얼마나 복잡하고 신묘한 원리가 깔려 있는지는 관련 학문을 공부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를 통해 마음껏 천상계를 꿈꾸고 사람 사는 바른 도리를 성찰하는 건 인간들의 특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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