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스 리딩 스마트 Hackers Reading Smart Level 2 - 최신경향의 흥미롭고 유익한 지문 l 최신 중학교육과정이 철저히 반영된 문제 제공 해커스 리딩 스마트
해커스어학연구소 지음 / 해커스어학연구소(Hackers)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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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재는 책 뒷면에 나와 있듯 렉사일 지수 770이상부터, 또 어휘 110~150개 수준에서 읽게끔 고안된 읽기 교재입니다. 교재는 모두 1~4레벨까지, 네 단계로 나뉘어 있는데 그 중 이 책이 레벨 투이니 중하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딱 펼쳐 보니,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매우 닮은 모습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배우는 중학교 교과서를 딱 떠올리면 되겠습니다. 영어 실력을 늘리려면(국어 실력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영어 교과서만 읽어서는 안 되고 다양한 읽을거리(이른바 reader)를 널리, 또 꾸준히 읽어야 합니다. 이 책은 교과서를 이미 다 공부하고 나서 약간 지루함을 느끼는 아이들이, 영어 실력도 키우고 재미도 동시에 느끼게 할 만한 그런 읽을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국 출판사, 예를 들어 프린스턴 리뷰라든가 하는 곳에서 라이센싱한 건 아닌 듯 보이고(제 생각입니다), 현재는 국내 탑이라고 봐야 할 해커스에서 자체 개발한 교재인 것 같습니다. 


총 열 개의 unit으로 이뤄졌습니다. 각 유닛은 패션, 동물, 장소, 기술 등 주제 하나씩이 주어져 있습니다. 유닛에 제목은 안 붙었는데 보통 교과서가 일일이 매 과마다 제목을 달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죠. 그 이유 중 하나가, 본문을 읽고 그에 알맞은 제목을 고르는 문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한 개의 unit마다 네 개의 지문이 나옵니다. 또 각 지문마다, 이 지문에 쓰인 단어가 몇 개인지 그 수가 표시됩니다. 그러니 학부형이나 교사는 아이의 수준을 감안하여 세밀하게 지문을 골라 학습을 시킬 수 있고, 이 점이 학교 교과서와는 크게 다른, 이 시리즈, 즉 reader로서 본연의 기능을 최대한으로 다하게 위한 장치라고 하겠습니다. 


모든 지문에는 문제 네 개씩이 딸려 있는데, 제목 묻기, 빈 칸 채워넣기, 문장이 들어갈 만한 적절한 곳 찾기, 내용 요약하기 등의 유형이 번갈아가며 나옵니다. 성인이 되어 접하게 될 텝스나 토플, 토익 등 공인영어능력시험의 RC 유형과 똑같습니다. 


지문에 실린 단어의 뜻은, 지문의 오른쪽 페이지 하단에 모두 몰아 정리해 놓았습니다. 지문에 나온 단어는 그대로 설명을 싣고, 지문이 아니라 오른쪽 페이지 문제 중에 나온 단어는 앞에 <문제>라고 따로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 상당히 친절한 태도입니다만 저 개인적 생각으로는 아예 칸을 따로 질러 구분했으면 더 좋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네 개의 지문과 그에 딸린 문제가 끝나면 "REVIEW TEST"가 열 문제 정도 따로 나옵니다. 이런 구성은 사실 거의 모든 영어 교재가 공통적으로 취하는 태도이지만, 특히 해커스의 다른 중고등 교재들이 일관되게 취하는 체제이기도 합니다. 일 년 전쯤에 개인적으로 이 출판사에서 나온 중고등 어휘 공부 교재들을 다 리뷰한 적 있으니 필요한 분은 참조하십시오. 


해커스 교재를 풀며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하는 부분은 해설이 참 좋다는 겁니다. 이 교재를 보면, 뒤에 분권이 이미 되어 있는 제2의 책, 해설집이 있습니다. 이 해설집은, 앞에 나온 네 개 지문 x 10 유닛 = 총 40개의 지문에 우리말 해석을 싣고(여기까지는 당연합니다), 밑줄을 쳐서 단어 하나하나 밑에다 뜻도 달아 놓아서 아이들에게 직독직해 버전을 따로 만들어 놓았다는 겁니다. 물론 깔끔하고 정돈된 우리말 순서에 따른 완전 해석본도 그 옆에 따로 배치했습니다. 보통 영어 공부하면서 중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고등학생들도 가장 아쉬워하는 게, 지문 밑에 단어 뜻 바로 달아 놓고 직독직해본이 좀 제발 있었으면 좋겠다고들 합니다. 이 교재는 현장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바로 이 포인트를 정확히 짚고 반영, 구현했다고 생각됩니다. 


유닛마다 네 개의 지문이 있고 그 지문마다 네 개의 문제씩이 딸렸는데 유닛에서의 마지막 지문(즉 네번째 지문)에 딸린 문제 세트는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로 묻습니다. 당연하지만 해설집에 보면 이 문제들 역시도 다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해설집에는 이런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마주보는 페이지 하단 둘을 이어서 "구문 해설"을 따로 하는데 구문은 문법과 독해의 중간 영역으로서 독해와 영작이 자유자재로 되려면 이 구문의 세계를 반드시 정복해야 합니다. 


해설집에는 물론 리뷰 테스트(각 유닛 끝마다 나오던 총복습 문제 세트)에 대한 번역과 해설, 정답이 다 나옵니다. 이러니 참 교재가 아쉬운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유닛의 각 지문에 딸린 문제 중에는 간혹 "심화형"이라든가 "서술형"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p75, unit 06-4의 문제 3번 같은 게 심화형 문제의 한 예입니다. 그런데 딱히 심화인지는 잘 모르겠고, 이 문제 같은 경우 다음 진술이 옳으면 T, 그르면 F를 기입하라고 지시하는 유형입니다. 진술을 살짝 비틀어서 헷갈리게 한 것도 아니고, 셀 바이 일자가 경과하면 물건을 팔지 못한다, 80% 이상의 미국인들이 멀쩡한 음식을 버린다, 같은 것도 함정 없이 맞는 진술입니다. 아쉬운 건, T/F를 판단할 때 지문 전체를 고루 판단해야 당부를 가릴 수 있게 하지 않고, 해당 단어가 나오는 문장을 눈으로 대충 찾아 그 한 문장만 읽어도 답이 바로 나온다는 점이었습니다(더 눈치가 빠른 애들이라면, 아예 본문은 읽지도 않고 이 고립 진술만 읽고도 바로 답을 고를 것 같습니다). 이것은 심화형이 아니죠. 다만 이 교재가, 중하급 학습자 기준인 레벨 2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습니다. 


unit 08-4, p99의 4번 같은 문제는 빈 칸에 단어를 채워 넣는 유형이니 대단히 어려워보이지만 왼쪽 본문에 똑같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지간히 둔하지 않다면 애들이 다 힘들이지 않고 답을 써 넣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15의 4번 역시 표시는 심화형이라고 나오지만 잘 보면 옆 지문의 단어를 거의 그대로 옮겨 쓰는 수준입니다. unit 10-4, 1번처럼 아예 본문의 순서를 바로잡게 하는 문제, 이런 게 진짜 어려운 문제입니다. 논리적인 구조, 혹은 서사의 자연스러운 형태가 무엇이다 하는 관념이 머리 속에 자리를 잡아야 풀이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p37의 4번은 옆 지문의 교훈(moral)을 묻는데 이런 게 심화형다운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이 책처럼 수준별 교재로 구성된 시리즈는 가급적이면 1~4까지를 모두, 아이한테 보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수학의 경우 당연하고 쉬운 문제를 잘하는 애한테 일일이 풀게 할 이유는 없고 그냥 고급으로 뛰어넘어도 됩니다. 그러나 영어의 경우 하급 리더라고 해도 고급 지문이 하급 지문의 모든 요소를 포괄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쉬운 문장은 쉬운 문장대로 밟아 나가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잘하는 애한테도 레벨 1 레벨 2를 가급적이면 생략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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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시선 -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
이윤희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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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 서두에서 "왜 훌륭한 미술가는, 여성이 칭송을 듣는 일이 드문가?"라는 질문부터 던집니다. 사회 모든 분야가 남성 중심 아닌 곳이 없었으나, 심지어는 미술 역시 결국은 남성 위주로 돌아갔다는 점은 새삼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아무래도 여성의 타고난 섬세한 감성이란 게 있어서 미술만큼은 꼭 그러란 법이 없었을 듯한데 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결국 여성이 어느 분야에서도 능력을 못 발휘했다는 건 사회 구조 자체가 억압적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는가?" 이 질문은 1970년대에 들어 다시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고 합니다(p53). 실제로 저자는 책에서, 심지어 프랑스 혁명 이전에도 유력한 활동을 벌이던 여성 화가들이 있었음을 지적하고 그들이 남긴 작품도 소개합니다. 힘 있는 필치와 작풍을 보고 당시 맹활약하던 몇몇 유명 남성 화가들을 대뜸 떠올릴 만하지만 그런 선입견을 정면으로 배반하듯 저작 명의가 여성들입니다. 이처럼 이 책은 팩트에 기반하여 여성 화가들의 실력과 성취를 독자에게 잘 소개하고, 흥미롭게도 도판까지 곁들이기에 우리 독자들은 자신의 두 눈으로 힘있는 실증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져자는 비제 르브룅의 일화를 소개하며 현재까지도 인기 있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오래된 믿음마저 사실은 남성들이 조작하거나 조장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책을 읽어 보면 저자의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같은 주장이라고 해도 어떤 저자가 내세우냐에 따라 그 무게가 다른 듯합니다. 


마네의 <올랭피아>가 당대에 문제적 그림이었음은 우리 독자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성의 이상적인 나신은 아름답다며 찬양을 받아도, 실제 창녀의 군데군데 망가진 리얼한 누드는 "음란하다"며 비난을 받았다는 게 너무도 아이러닉합니다. 저자는 그 아릅답지 못한 현실 창녀의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었다는 이유 말고도, 마네가 당시 욕을 먹었던 이유는 "그 주제에" 화면 밖(의 남성들)을 똑바로 쳐다보는 그 대담한 시선에 더 큰 불쾌감을 당시의 (남성) 관객들이 느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미술사 대부분의 시기 동안 그림을 주도적으로 관람하고 비평적 언사를 표현해 온 관객은 남성이었다(p82)." 그래서 그렇게나 압도적으로 많은 여성 누드가 화폭에 담아지거나 조각으로 표현되었다고 저자는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이유만으로는 남성 누드 역시 오랜 역사를 두고 즐겨 쓰이던 소재였던 점이 시원하게 해명되지는 않습니다. 


본격적인 서양 문명의 손길이 아직 닿지 않았던 곳의 토착민들이 사진을 처음 보고 보인 반응은 카메라로 찍는 행위가 찍히는 이의 영혼을 뺏어간다는 경각이었습니다. 사실 이건 전혀 터무니없는 건 아닌 게, 이 책에도 나와 있듯 누군가를 카메라로 찍는 행위는 "공격적, 폭력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잘생긴 사진작가(처럼 보이는 남자)들이 행여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기라도 하면, 어떤 여성들은 은근히 포즈(?)를 취하기도 합니다. 여성 사진작가 로리 앤더슨은 길에서 찍은 남성들의 시선 부분을 일부러 지웠는데, 이는 그들의 초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공격적인 시선을 제거하기 위한 미학적 의도라고도 합니다. 이제 남성은 평소처럼 지나가던 여성을 일방적인 욕망이 담긴 시선으로 볼 수 없는데 적어도 앤더슨의 세계 안에서 그는 거세되었기 때문입니다. 


관음, 혹은 성 관련 컨텐츠를 소비하는 자세란 시대를 불문하고 서로 닳았습니다. 역사의 단면을 다룬 상상화도 아니고, 왜 먼 지역의 미개하고 개탄스러운 풍습을 화폭에 담았을까? 저자가 3-3에서 이야기하는 건 성매매, 물론 결혼시장이라는 미명으로 위장하지만 사실은 처참한 인신매매를 다룬 그림들이 왜 이렇게 많이 남았냐는 질문입니다. 답은, 당대 파리나 런던에서도 얼마든지 이뤄졌을 인신매매를 화폭에 담기라도 했다면, 아마도 실제 그런 시장에 몸을 담고 매매를 해 봤을 권력, 돈 있는 남성들이 대번에 그림 시장에서 불쾌감을 느꼈으리라는 이유라는 겁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결국 이름난 명화의 창작, 거래 동기 중 상당수는 그저 예술이란 이름으로 윤색되었을 뿐 불측하고 더러운 욕구 충족에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거죠. 


누구의 잘못인가? 에덴 동산에서 축출당한 건 남녀가 똑같이 잘못한 건데도 어느 시대에나 이브가 더 욕을 먹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봐도 잘못은 동등한데 이 역시도 "이브가 더 잘못함"이란 일종의 정답을 어느 세대나 다 강요당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아담과 이브만큼 그림과 조소에서 자주 형상화된 주제도 없고, 이들 중 어떤 그림은 모호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나 대부분은 이브 쪽에 자연스럽게 비난이 쏠리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도 분명합니다. 프란츠 폰 스툭의 작품에서는 아예 이브와 뱀이 한몸인 것처럼 묘사된다고 합니다. 악녀로 손꼽히는 역사상의 여걸들이 뱀을 애완동물로 키웠다는 이야기도 지어낸 것일 가능성이 크죠.


히브리의 여러 설화도 대단히 남성 위주이지만 다른 경우에 비해 여성 의존적 화소도 자주 등장하는데 특히 이 민족이 환란에 처해 있을 때 더 두드러집니다. 유디트는 어떤 색적인 팩터로 유명해진 게 아니라 민족을 위기에서 구한 여걸인데 심지어 이 캐릭터에 대해서도 성적 분위기를 가미하기도 합니다. 젠틸레스키의 유명한 그림은 화가 자신이 여성이다 보니 오히려 예외에 속하며 심지어 남자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한 여걸에 대해서조차 몽롱한 분위기를 입혀 성적 대상화하는 전통이 뚜렷한 건 정말 못 말릴 일이다 싶습니다. 


어렸을 때도 참 당혹스러웠던 게 어린이들 보라고 만들어 놓은 명화 도감에도, 아니 여성 누드가 나오는 건 또 그렇다 쳐도 왠 약탈, 납치... 성폭력의 직접 단계만 묘사 안 했다뿐 그 전단계를 소재로 삼은 게 너무 많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다음에 무슨 일이 펼쳐질지 기대라도 해 보라는 듯 여성들은 그림 속에서 절망과 공포와 무력감을 그대로 드러내고, 약탈자인 남성들의 표정은 세상 둘도 없는 쾌락을 맛보기 직전인 듯 자긍심과 득의양양함으로 꽉 차 있습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납치 단계에서부터 이미 옷이 벗겨져 있습니다. 이런 묘사가 이뤄진 건 사실 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남성 위주의 시장에서 이런 그림이 고가에 거래가 되었다뿐 다른 이유가 없다는 게 저자의 솔직한 답입니다. 다만 노골적인 음란물의 혐의를 벗기 위해 인체 묘사의 이상적인 터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성경이나 신화의 맥락을 애써 집어넣었을 뿐이라는 것. "여성에 대한 폭행의 장면이 아름답게 묘사되는 건 정당한 재현 방식인가?(p189)"


안그래도 새로 만들어지는 <백설공주>의 주인공에 히스패닉 여성이 캐스팅되어 화제가 됩니다. 캐리 메이 윔스는 흑인 여성으로서 가장 평온하고 자신에 몰입할 수 있는 순간, 즉 거울을 보는 때마저도 백인 남성들이 심어 놓은 강박관념, 즉 흑인 여성은 주제를 알아야 한다는 가상의 폭력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아를 작품으로 표현했습니다. 여성 미술가들은 연대의 수단으로 거울을 즐겨 채택하는데 이에는 일정한 맥락이 깃든 것입니다. 대체 왜 타고난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떳떳지 못하게 여겨야 하는가? 저자는 이 대목에서 미술을 넘어 사회 체제와 의식 곳곳에 스민 차별과 혐오의 기제를 조명하며 무의식중에 새겨 넣은 세뇌와 기만의 악순환에서 스스로 벗어날 것을 촉구합니다. 


저자는 책의 맨앞에서 나혜석이라든가 프리다 칼로의 경우 예전 세대에게는 낯선 이름일 수 있으며, 요즘 어린이들이 보는 책에 유독 자주 선정되어 다뤄지는 건 그녀들의 작품도 작품이거니와 그들이 살고 간 불꽃 같은 생애의 매력이 더 클 수도 있다고 잠시 언급했습니다(p16). 책 후반부인 p238 이하, 또 p249 이하에서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이 집중 조명됩니다.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그간 인식되어 한국 어느 세대의 교과서에서도 자주 등장했고 칭송되었습니다. 마치 그녀가 남긴 예술 작품들이 현모양처로서의 삶을 증명이라도 하며 또 그런 윤리적(?)인 삶과 분리되는 순간 덩달아 평가절하나 되어야 한다는 듯 말입니다. 하지만 요즘 어린 세대에게 소개되는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은 신화 속에서 박제화한 그런 삶과 상당히 거리가 멀었으며, 나이 든 이들이 보면 당혹스러울 만큼, 아니 단죄를 하고 싶을 만큼 분방하고 자유롭게 살다 간 이들입니다. 


예를 들어 나보코프 같은 소설가는 당대의 금기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서간 면이 있으나, <롤리타> 같은 건 명백하게 페도필리아입니다. 이 사람이 21세기에 살았다면 오히려 더 큰 비판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소아청소년 상대 성문화는 칼 같이 단죄를 받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폴란드계 화가 발튀스가 자주 소재로 삼은 "소녀"들을 다각도로 고찰하고 이런 남성 작가들이 즐겨 묘사하는 방식과, 여성 작가들의 시선과 터치를 선명하게 대조시킵니다. 바람직한 건 관음적 요소가 배제된 후자의 선택이라는 결론입니다. 


책 후반으로 갈수록 작가들의 충격적인 표현 방식이 소개되어 독자는 흔들리게 되는데, 이 책 앞표지에 쓰인 말 "훔쳐보지 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겠다."가 떠오릅니다. 확실히, 성적 욕망은 나만 혼자서 상대를 훔쳐본다는 상황 세팅 자체가 흥분을 고조시키며, 그저 대상이고 피사체가 되어야 할 그녀가 프레임 밖으로 나올 듯 나를 대등하게 지켜본다면 산통 다 깨지는 겁니다. 그림을 통해 그간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요해 온 누군가를 동시에 보게 되고, 어떤 바람직하지 못한 프레임이 깨지고 나면 그녀뿐 아니라 이제 내가 새롭게 보인다는 점이 놀랍고 흥미롭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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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트 게임 - 새로운 판도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5가지 무한 원칙
사이먼 시넥 지음, 윤혜리 옮김 / 세계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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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든 축구든 이닝이나 제한 시간이 있으며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경기가 끝나고 승자 패자를 정해야 합니다. 또 팀제 프로스프츠의 경우 1년 정도를 시즌으로 삼아 우승팀을 따로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예를 들어 비즈니스의 경우 그런 식으로 승자를 정하지는 않습니다. 1990년대 영원히 망하지 않을 것 같았던 한국 재벌 기업들 중 상당수는 망해서 없어졌고 현재 뉴스에 나오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이름만 대우일 뿐 그룹 창업자 김우중씨도 죽었고 그 후계자가 맡아서 경영하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20년 전에는 이름도 못 들어본 기업들이 지금은 대기업 반열에 올라 활발히 사업을 벌이지만 이들 중 과연 몇이나 십 년 후에 살아남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p20에서 저자는 비즈니스야말로 무한게임의 대표적 예라고 하는데 바로 이런 현상을 가리킵니다. 영원한 승자도 없고 또 영원한 패자도 없는 게임입니다. 사실 1980년대를 기준으로 삼더라도, 어떤 기준을 잡으면 삼성이 1위였고 다른 기준을 잡으면 현대, 심지어 럭키금성(현재의 LG, GS 등의 전신)이 더 높은 순위를 점할 때도 있었습니다. 애초에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데 설령 단기간으로 잡는다 해도 승자 패자를 어떻게 정하겠습니까.


그런데 저자는 유한게임일 때와 무한게임일 때 플레이어들의 전략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책에 그런 말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독자인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이 점은 특히 유한게임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프로야구 같은 데에 잘 들어맞는다 싶었습니다. 프로야구(현재 명칭 KBO 리그)에서는 몇 번의 시즌을 우승했냐를 두고 감독이나 팀의 업적, 성취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단기의 고성적이나 우승에 집착하다 보면 특정 선수를 혹사하며 운용할 수가 있습니다(이른바 "갈아넣기"). 특정 연도에 반드시 우승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처럼 "갈아넣기"를 일삼다 보면 결국 그 팀은 향후 몇 년, 혹은 십 몇 년 동안 하위권에서 맴돌 수 있고 그 혹사된 선수들도 커리어가 훨씬 짧아지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유한게임의 대표적인 폐해라는 것입니다. 


무한게임이 되면 게임이 장기전이 되므로 기업의 단기 실적에 집착(p152)하지 않고, 오래살아남아 장기간 호실적을 올리거나 아예 게임체인저가 되는 선택이 가능해집니다. 흔히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절대적인 미덕으로 꼽기도 하는데, 임기가 정해진 단기 CEO들은 그해 주총에서 주주들에게 내세울 업적만 중시하기 때문에 기업의 장기 투자를 소홀히할 수 있습니다. 이재용씨가 감옥에 있을 때 삼전은 단기 실적에 치중하느라 무리하게 원가를 절감하려 들어 결국 지난번 고스파동이 일어났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책 p28 같은 곳에서는, 특히 유한게임에 치중하는 경영자들은 변화 자체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다 장기를 보고 과감히 행동하는 경영자들은 오히려 안정된 현재 자체를 두려워합니다. 1990년대 전반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했던 이건희씨의 결단이라는 게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다는 느낌입니다. 그는 이미 부친으로부터 한국 최고의 기업을 물려받았고, 경쟁 기업이었던 현대의 당시 삽질 때문에 그저 그 당시의 위치만 지켜도 아쉬울 게 전혀 없던 처지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진 걸 과감하게 특정 분야에 베팅하여 몇 십 배로 자산을 불렸고, 경영 혁신도 "최고의 품질"에 초점을 맞추어 오늘날 지구인이 다 알다시피하는 글로벌 일류 기업을 만들어냈습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삼성 임원진이 해외 소비자들이 삼성을 일본 기업으로 안다면서 이런 착각이 도움이 된다는 인터뷰가 있었는데, 지금은 갤럭시나 삼성가전 덕분에 코리아라는 나라도 덩달아 알게 됩니다. 외국의 IT 인재가 삼성에 입사하러 왔다가 그 나름 높은 기준 때문에 좌절하고 돌아가기도 하는데 일단 외국의 청년 인재에게 한국 기업이 입사의 꿈을 심어 주기도 한다는 자체가 놀라울 뿐입니다. 


독자인 제 생각으로, 지난시절의 삼성이야말로 또 고 이건희 회장 같은 사람이야말로 인피니트 게임이 뭔지를 제대로 알았던 예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박정희 때 거지 나라에서 이제 먹고는 살 수 있는 나라로 바꾸었다, 이런 레벨하고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냥그저그런 수준에서 일류로 도약하는 건 넥스트 레벨 이슈이기 때문이죠. 흙수저가 건실한 중견 기업을 일으킬 수는 있는데(이것도 물론 보기 드물지만), 이런 기업이 재벌급으로 도약하는 건 완전히, 완전히 다른 난이도입니다. 


책에는 20세기 전반 소련의 과학자였던 바빌로프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스탈린에 의해 탄압 받고, 동시에 그의 조국은 2차대전이 터지자 레닌그라드 공방전 등 나치 독일의 침략에 의해 엄청난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바빌로프의 대의에 찬성하던 동료 과학자들은 이런 이중고에도 굴하지 않고 본연의 업적에만 몰두했다고 하는데, 요즘 돈 몇 푼만 더 쥐어주면 불순한 나라의 불순한 기업에 매수되어 일회성 도구로 쓰이다가 결국 어느 나라에도 귀속되지 못하는 불쌍한 일부 엔지니어들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화지요. 이런 정의로운 과학자들 역시, 저자의 관점에 의하면 인피니트 게임을 모범적으로 수행하는 좋은 사례입니다. 


여기까지 책을 읽고도 독자들이 이미 눈치를 챌 수 있겠지만, 저자가 "유한 게임"이라 부르는 판에서 플레이어들은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목표에 보다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무한 게임 플레이어, 적어도 자신이 지금 무한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고 자각하는 이들은 보다 긴 안목으로 상황을 봅니다. 오늘 보고 내일 다시 안 보겠다 싶은 사람하고는 얼마든지 안면몰수하고 더티한 게임을 할 유인이 생기는 법입니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무한게임을 하는 사람의 특징은 "대의 명분을 보고 간다"입니다. 


오래가는 기업은 그 수뇌가 단기 이익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회에서 보면 머리 잘 돌아가는 사람, 운 좋게 큰 돈을 손에 넣고 한때 행세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그 잘나가는 기세가 언제까지 가느냐가 문제인데, 모든 사장 모든 회장이 그 끗발 그대로 가는 게 아니고, 그릇과 깜냥이 안 되는 인간은 반드시 무리수를 두다가 꼴아박고 전과자가 되거나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해서 전보다 못한 처지로 떨어집니다. 


우리가 무슨 정주영이다 이병철이다 하는 뭐 이런 사람들은 그런 단기적인 이익에 집착하기보다 훨씬 먼 그림을 보고 승부를 걸었기에 그 기업이 이처럼 자식 대에까지 오래 가는 거지, 무슨 자선사업가로 살았다거나 심성이 착해서가 아닙니다. 그 사람들도 다 이기적이고 탐욕적이었으나, 적어도 남들 눈에 그 속이 훤히 내비치는 얕은 수는 안 썼다는 거죠. 졸부, 사기꾼이나 잡범을 보면 제딴에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기발한 수를 내는데, 남들이 절대 눈치를 못 챌 것이라고 엄청 의기양양해 합니다. 남이 보면 속이 그 훤히 들여다보이는 꼴이 참 우습기 짝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니 수중에 돈이 오래 머물지를 않는 것입니다.


인피니트 게임 플레이어는 이처럼 주변 사람들로부터 진정하게 마음을 사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단어 선택에도 신중합니다. 저자는 예를 들기를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오늘 나에게는 계획이 있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했던 그 유명한 연설에 주목하자고 합니다. 꿈이 있다고 하니 설령 흑인 민권 운동에 두려움을 느끼고 경계했던 백인들조차, 저 연설을 듣고 인류 보편의 양심과 가치에 호소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인피니트 게임 플레이어는 사려깊습니다. 사려깊다는 평판을 듣기 때문에 그의 활약과 노력이 많은 이들에게 공감 받고 또 오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미국 자본주의에 크게 실망하고, 이 체제가 과연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하며 회의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게, 2008년 주식시장으로 대변되는 금융 시스템이 대단히 큰 모순에 가득하고, 소수의 비합리적인 이익에만 종사한다(실제 기여하는 바도 적은)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일이 잘못되면 책임을 져야지, 오히려 거액의 성과금을 나눠갖는다, 뭐 이래서는 안 되죠. 차라리 그런 돈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을 전개하는 사업가한테 가도 가야 마땅한 것이고.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밀턴 프리드먼이 한 말, 즉 "기업의 목적은 언제나 이익 극대화이다"를 거론하며, 이제는 이런 마인드로 기업을 운영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합니다. 


무한게임 리더는 직원을 자원으로만 보지 않고, 먼 여정 동안 같이 가야 할 동료로 보기 때문에 직원에 대한 처우부터를 달리합니다. 구태 블랙 기업이나 일부 악질 사회단체에서 직원들을 그저 expendable로 보고 함 부로 쓰고 함부로 버리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희생하게 만드는 걸 보면 이들의 안목이 얼마나 좁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말로는 노동이 최고 지상의 가치인 양 떠들지만, 실제로는 일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마치 자신들이 그들에게 큰 은혜나 베푸는 양, 자본가가 노동자를 하대하는 것보다 더 졸로 취급합니다. 영혼을 무슨 집단내 촤상위 포식자에게 위탁한 것처럼 얼빠진 혼자만의 충성을 바치는 최말단 분자의 모습을 보면 불쌍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건 사람이 아니라 좀비라고 봐야 마땅합니다. 


이 책에서는 그저 주주에게만 최선을 다하는 회사가 아니라, 주주가 아니라도 예컨대 공장이 위치한 지역 내 주민이나 불특정 다수 소비자처럼 자신의 회사와 직간접으로 이해를 함께하는 이른바 셰어홀더들도 중시하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포드라든가 잭 웰치 같은 사람들도 그 당시 기준으로 보면 지역 주민이나 노동자에게도 매우 전향적인 태도로 대한 것입니다. 판을 길게 보고 더 깊은 사려를 베풀어 사람을 대하는 것과, 날품팔이처럼 내일 이후로는 이 사람을 안 볼 것으로 작정하고 이용 대상으로 삼는 쓰레기들의 미래가 결코 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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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되는 소액 땅 투자 바이블
이승주 지음 / 세종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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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슬픈 일이지만 직장에서 레귤러한 급여만 받아서는 부자가 되기 힘들 뿐 아니라, 내 집 마련도 무척 힘들다는 게 이미 사회적인 중론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투자라는 걸 해야 하며, 이 투자가 행여 투기가 되지 않게 공부를 많이 하고 사회가 돌아가는 판을 읽는 안목을 키우는 노력이 또한 필수가 된 요즘입니다. 주식 투자, 코인 투자도 최근에 큰 인기를 끌었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 "불패"라며 선망해 온 투자 대상은 부동산이겠습니다. 


저자는 우선 최근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기획부동산을 지적하며 조심할 것을 촉구합니다. 소액으로 지분 투자만 하는 것도 가능하며 큰 수익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일단은 솔깃하게 들리는 게 사실입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하나의 팁은, "공유지분 등기로만 진행하는 법(p57)"입니다. 기획부동산에서는 공동지분 등기라는 방법을 쓰는데, 이것은 책 p56에 나오듯 타 지분 소유자의 동의를 일일이 얻어야 처분이 가능한 등 온갖 제약이 따르고 사실상 (나는 돈만 대고) 사업의 방향은 기획부동산 측이 시키는 대로만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재산권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총유"도 있는데 이건 뭐 개인의 목소리가 거의 반영이 되지 않는지라 재산권이라고 부르기도 어렵죠. p261을 보면 종중 땅 같은 건 아예 개인 땅으로 치지도 않는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명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예전에는 조선, 동아, 중앙 같은 메이저 신문의 지면에는 광고란 역시 삼성, 현대, 대우 등 재벌기업이나 제공하는 게 보통이었고 광고를 통해 시대의 다양한 얼굴을 엿보는 순기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게 과연 정론지인지 전단지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온갖 난잡한 광고가 판을 치는데 그만큼 종이신문의 위상이 하락하여 광고 미디어로서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소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올바른 정보를 얻으려면 신문을 보라고 충고합니다. "궁금하면 검색 한 번 하고 말지" 같은 생각을 말라고도 합니다. 사실 검색도 실력이 천차만별이며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 속에 올바른 정보를 찾으려면 평소에 실력을 키워 놓아야 합니다. 


신문을 봐도 그 내용을 올바로 이해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 경제신문은 난도가 더 높겠지요. 저자는 경제신문 읽기가 잘 안되는 이들을 위해 "목적을 가지고 읽기 시작하라"며 좋은 충고를 해 줍니다. 목적의식이 없으면 기사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이해도 안 됩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목적의식을 미리 장착하면 그때부터는 글이 다른 의미로 이해되기 시작할 뿐더러, 혹 모르는 말이 나와도 그 뜻을 찾아가며 의욕적으로 읽고 머리 속에 지식을 정리하는 과정이 진행됩니다. 사실 이건 경제지식뿐 아니라 영어 독해 실력을 늘릴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 안되겠거든 영어로 된 "야한 소설"을 읽으면서 실력을 키우라고도 하죠. 목적의식(?)이 확실히 생기니 말입니다. 


신문을 보고 얻은 정보를 다 믿어야 하는가? 물론 아닙니다. 그 중에는 엉터리 정보도 있고 무슨 주식 종목에 호재가 있다고 섣부른 보도를 내었다가 결과적으로 오보를 내어 독자나 투자자를 분개하게 만드는 것도 많습니다. 어떤 게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능력은, 결국은 오랜 연습을 통해 자신이 키우는 수밖에 없고 사실 정답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이 책을 읽어 보면 저자님 역시 처음에는 초짜로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가 지금 안정적으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경지에 이른 어떤 뿌듯함이 느껴집니다. 사실 기사를 읽다 보면, 와 이런 기사를 쓰려면 발품깨나 팔고 고생깨나 했겠다 싶은, 노력의 결과물로 짐작되는 게 무척 많습니다. 그런 걸 인터넷을 통해 (아닌 것도 있지만) 대부분 공짜로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안정적으로 종이신문을 (한 부에 천 원 정도를 주고) 매일 읽어 보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해 본 사람은 이게 맞는 말씀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부동산 투자를 처음 하는 사람은 온갖 낯설고 어려운 용어 때문에라도 좌절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저자는 p60 같은 곳에서 환지와 대토 사이의 차이를 처음에 헷갈렸던 체험을 공유합니다. 꼭 어떤 일타강사가 잘 정리해서 가르쳐 줘야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목적의식이 확고하면 결국은 이리저리 부딪혀 가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처럼, 저자가 시행착오를 솔직히 공유하면서 친절히 독자에게 이런저런 요령을 가르쳐 주는 친절함이 좋았습니다. 처음부터 되는 사람 따로 있고 안 되는 사람 따로 있다면 누가 부동산을 시작하겠습니까. 


주식도 그렇지만 부동산 역시, 대체 뭐가 싼 땅이고 뭐가 비싼 땅인지 그 기준부터 잘 잡아야 실패가 없습니다. p80을 보면 어떤 분이 저자께 "저렴한 땅이 있는데 왜 비싼 땅을 사는지를 모르겠다"고 한 일화가 나옵니다. 저렴하다 아니다의 기준이, 자기가 들었던 것보다 낮으면 그걸 그냥 싸다고 여겨버리는 건데 이런 건 투자에서 절대 멀리해야 할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판단입니다. 이런 지적은 참 초보로서 가슴이 아픈 대목이겠는데, 이게 저자 같은 고수에게는 확 다가오는 건데 초짜들은 모르는 겁니다. 그렇다고 포털 사이트에 나오는 가격만 죽 보고 그 나름대로 가격 감각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저자는 그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현장을 부지런히 다니고 현장에서 실제로 형성되고 호가되는 가격을 봐야 감각도 올바른 감각이 생긴다는 거죠. 


저자는 부동산 투자를 놓고, 책 서두에서 대뜸 한국인만이 가질 수있는 유리한 점도 이야기해 줍니다. 우선 한국은 미리 계획 발표를 하고 그에 따라 개발이 진행되기에(법이 이를 강제하니까요) 결과를 알고 투자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아 어떤 사람은 계획 결과를 미리 알고.... 하는 말이 나오겠지만 그건 내부자 정보에 가까운 불법이고, 외국은 애초에 계획 같은 게 없으며 이런저런 개발업자들이 각자 진행하다 어떤 균형점이 나중에 형성되는 게 보통입니다. 또 한국은 공시지가, 지적 정보 같은 게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누구에게나 오픈됩니다. 이 점 역시 확실히 일반 투자자가 사기 피해를 그나마 덜 받을 수 있게 보호되는 장치임이 틀림없죠. 


과연 인구가 줄어드는 한국에서 주택값이 살아날 것인가? 여기에 대해 저자는 인구 감소 추세야 맞지만 사람이 모이는 수도권의 부동산은 사정이 다르다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방의 부동산은 사정이 좋지 않다는 뜻인데,  p137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밭 중에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고, 가격은 저렴한 게 있으니 이를 고르는 요령을 설명합니다. 1) 대도시에서 40km 이내에 위치 2) 건축을 위해서는 폭 4m 이상 붙어있는 논밭 3) 1~2억 단위로 쪼갤 수 있는 논밭 4) 그저 경사가 많이 졌다는 등 하자 있는 땅. 특히 4)는 경사도가 너무 지나치면 안 되지만(허가가 안 남), 그렇지 않고 향후 입지가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면 투자 가치가 있다고 조언하네요. 물론 이것도 여러 다른 사정을 두루 따져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린벨트로 묶인 곳은 아무래도 너무 큰 모험이지 싶지만 저자는 이런저런 가능성을 다 생각해 보자고 합니다. 얼마 전 타계한 어느 시장분도 마지막까지 그린벨트 해제를 놓고 소속 당이나 청와대와 굉장히 대립이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노련한 투자 고수들은, 개발이 아직 되지 않은, 하자 있는 땅을 찾는다.(p146)" 재미있는 게, 사실 "기획부동산"이란 단어 자체는 원래 굉장히 좋은 뜻이었습니다. 아닐 것 같은 땅을 잘 발굴하여 멋진 컨셉으로 재탄생시키는 게 창의적인 사업가의 "기획부동산"인데(본래 개발업자가 하는 일이, 기획부동산 만드는 일이죠), 우리나라만 일부 악덕업자들이 전체 판을 흐리는 판에 기획부동산 하면 사기가 대번에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p153, p242)


책에는 재미있는 말씀이 많이 나오는데 사실 아주 지능이 높은 사람은 사기를 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태여 사기를 안 쳐도 돈을 벌 능력이 되기 때문이죠. 바꿔 말하면 정해진 방법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대개 지능이 낮아서 그렇게 한다는 뜻도 됩니다. 그럼 일반인 입장에서도, 조심하면 사기 당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는 거죠. 이미 전과도 있고 막장이다 싶어서 뻔한 사기를 치는 경우만 조심하면 되며, 당했다 해도 이런 수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구제책이 법적으로 있다고도 합니다. 


서류만으로 땅을 확인하는 건 아주 어리석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또 아니라고 해도 땅의 진짜 가치를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은 서류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임장이다(p173)." 임장시에는 최대한 편한 차림으로 가라고도 하는데 괜히 있어 보이려고 정장 차림으로 갔다가 옷 더렵혀질까봐 살필 것을 제대로 못 살핀다면(p177) 이것이야말로 큰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더 나아가, 답사만 잘 해도, 100만원 벌 것을 200만, 300만 더 벌 수 있다고도 합니다. 업체나 영업사원이 내미는 서류만 믿지 말고(p173), 토지이용계획서(구청이나 군청 등에서), 지적도, 토지 대장 등을 반드시 확인하라고 조언합니다(p120, p175). "다른 건 몰라도 투자는 내가 공부를 해서 확실할 때 투자를 해야 한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공부를 해서 아 이거다 확신이 들어도 100% 성공하라는 법은 물론 없지만, 이건 나의 능력 한계이므로 어쩔 수가 없는 것이고 어지간히 운이 나쁘지 않다면 확률 자체가 커지므로 결과도 더 긍정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그저 느낌만으로, 혹은 남 말만 듣고 투자를 하면 이건 이미 투자가 아니라 투전판에서 노름을 하는 것입니다. 


건물뿐 아니라 땅도 리모델링(p168, p208)이 가능하죠. 저자는 1) 환경미화가 첫째라고 하는데 리모델링 자체가 이미 겉모습을 멀끔하게 보이게 하는 데에 주안이 놓이는 작업입니다. 2) 도로면과 지대 높이를 최대한 맞춰야 하며, 3) 지나치게 큰 땅은 분할하고 4) 어떤 땅은 합병하며 5) 땅을 메우거나 깎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써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 경우 비용이 얼마나 들지, 이렇게 리모델링해서 얻을 이익과 비교하는 과정도 꼭 거쳐야 하겠습니다. "토지 투자는 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p141, p255)." 그러나 p241에 보면 기획부동산은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저런 통념을 노리고, 즉 결과가 한참 뒤에 나온다는 점을 악용하여 사기를 친다고도 하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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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소셜리즘 - 불평등·AI·기후변화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는 어떻게 형성될까?
브렛 킹.리처드 페티 지음, 안종희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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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위기를 절대 그냥 흘려보내지 마라(p51)." 이 말은 2차 대전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위기"와 "기회"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전제를 깔며, 위기를 슬기롭게 잘 극복한 개인, 집단은 이후 새로운 번영과 평화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함의도 갖습니다. 


어떤 위험이 닥쳤을 때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첫째 도피(flight), 둘째 투쟁(fight)이 있다고들 합니다. 책에서는 이런 예를 드는데,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려 들면 이는 분명 근로자의 위치를 위협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위협이 없다고 판명이 될 때까지 인공지능의 이용을 일절 금지한다, 이러기라도 하면, 인공지능 같은 좋은 기술이 사회에 쓰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즉 이래도 위험, 저래도 위험이라는 딜레마에 빠지는 건데, 저자는 특히 현대에는 주류 미디어 외에 소셜 미디어가 발달해서, 특정한 위험이 과장되거나 방향성이 왜곡될 수 있다고 합니다. 


코비드 19 역시 미국 일각에서 백신 접종 거부 운동이 일어나서 문제가 된 적 있습니다. 저자는 과거 콜레라, 홍역, 소아마비의 경우에도 이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과거에는 소셜 미디어라는 게 없었고 기껏해야 일부 이해가 부족한 층의 입소문 정도가 있었을 뿐이라, 백신 접종 거부 움직임을 통한 사회경제적 피해는 그리 심하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어떤 첨단 기술에 대해서라도, 초창기 이의 도입에 대한 거부 움직임은 항상 있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스트리밍 기술이 그것인데 냅스터, 비트토렌트(p74) 등도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엄청 큰 저항을 받았더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웹상에서 컨텐츠를 즐기는 가장 유력한 통로가 바로 스트리밍입니다. 이처럼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란 거부하고 싶어서 거부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질병에 대한 새로운 백신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서비스는 여태 인류가 누려 보지 못한 엄청난 규모의 편의와 즐거움을 창출할 것입니다. 또 이를 처음 개발한 소수의 개인이나 회사들도, 아마 20세기 제조업을 영위하던 어떤 대기업도 장악하지 못한 거대한 권력과 부를 손에 넣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불평등 지수의 심화로 이미 우리가 일부나마 겪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소수 기업이나 개인들이, 손에 넣은 그 부와 영향력을 사회적으로 아무 문제 없게끔 잘 다룰 성숙함이나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요? 저자는 이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습니다. 


현 시점에서 세계 경제의 가장 으뜸가는 화두는 단연 인플레이션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혹은 우리 나라도 급격히 상승한 물가를 잡으러 동분서주하고, 당장 경제주체들에게는 큰 희생이 따르는 금리 인상을 큰 폭으로 단행합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MMT라는 학파가 있어서, 적어도 기축 통화국의 경우 아무리 화폐를 많이 발행해도 경제 시스템이 새로이 만들어내는 편익이 이를 흡수할 수 있기에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각국이 눈앞에 다가온 물가상승에 고전하는 걸 보며 이런 입장은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인플레이션, 나아가 스태그플래이션은 여전히, 반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인류의 발목을 잡는 골칫거리였던 것입니다. 


저자는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상기시키는데 이에는 당시 석유 공급 부족 문제가 큰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와 지금, 혹은 2008년과 지금이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블록체인이 있고 없고를 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산형 시스템의 출현으로 인해 금융은 큰 변모를 겪게 되고, 무엇보다 "기존의 시스템 외에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있음"을 우리에게 깨닫게 한 게 큰 성과라고 합니다. 인공지능의 영향, "분권화와 같은 테크노소셜리즘(p159)"의 바람이 부는 날, 기존의 패러다임은 폐기된다고 저자는 내다봅니다. 


미래는 근본적으로 불확실합니다. 불확실성은 곧 두려움을 낳습니다. 이 두려움이 과연 우리를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로 몰고갈까요. 아니면 "더 나은 미래라는 공통의 대의로 뭉치게(p190)" 할까요? 사실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큰 어려움을 겪는 순간에도 꿋꿋이 살아남았습니다. 벌써 저자가 이런 불확실성의 효과가 거꾸로 인류를 공통의 대의로 단합시킬 수 있다고 보는 자체가, 우리에게 희망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또 그런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전하리라고 어떤 확신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지난 트럼프 정부 하에서 미국은 특히 이민자들에 대한 정책 문제로 크게 대립했습니다. 저자는 이민과 이민자 자체가 경제 혁신과 활력을 불어넣는 커다란 동력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미국 유수의 기업 CEO 자리에까지 오른 여러 엘리트들 중 얼마나 이민자 출신이 많은지도 열거합니다. 이들은 탁월한 재능과 그 재능을 효과적으로 발현시키는 교육에 의해 그 자리에까지 이를 수 있었으며 저자는 이와 관련 미래를 바꾸는 동력은 혁신된 교육 제도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로스터 시스템, 커뮤니티 멘토링 등이 이를 가능케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도 합니다. 


자본주의에는 많은 결함이 있고 저자는 대체로 자본주의 자체 논리로는 이런 잘못을 수정하기 힘들다고 보는 듯합니다. 중국의 미래 역할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파악하며 책 앞부분에는 "인류 역사 대부분은 중국 중심으로 작동했으며 앞으로 다시 그 흐름으로 복귀한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어째 혁신이나 패러다임 교체의 기조와는 다소 동떨어진 주장 같이도 보이지만, 홍콩의 2019년 민주화 바람에 대해서는 또 긍정적으로 보는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기본소득 이슈 역시 저자는 매우 호의적으로 파악하며,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시범 실시된 UBI에 대해서도 기분 좋게 소개합니다. 삶의 선택권 제공, 시민들의 자율적 참여 확대라는 바람직한 결과가 이 사업으로 확인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시스템일수록 투명성이 더욱 강조됩니다. "투명성이 오늘날만큼 가능해진 시대도 없었다." 플라톤은 이른바 철인정치를 주창했는데 이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독재와 전제로부터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자는 싱가포르의 효율적인 시스템을 예시하며, 그러나 이런 "자비로운 전제국가"에 사는 시민들이 과연 행복하겠냐고 묻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중국인들이 현재 크게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는데, 그 이유는 "자신들의 정부가 중산층의 삶과 경제적 부를 개선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랍니다. 20년 전만 해도 1억에 가까웠던 중국 극빈층이 2020년 기준 0에 가까워졌다는 통계도 이 책에서 제시되는데 평가는 글쎄 독자의 몫이겠습니다.  


일대일로라고 해서 중국은 세계를 상대로 인프라 건설을 시도하며, AiiB라는 것도 이 명칭 안에 인프라라는 말이 들어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웬만해선 해당 국가들에 대해 대출금을 회수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그 이유는 중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신경제 식민주의"가 아니라, 세계 무역에의 지배이기 때문이라서입니다.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조금 이해가 힘들긴 합니다. 또 불과 며칠 전 스리랑카 국가 부도 사태, 정부 붕괴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 역시 중국 측의 채권 회수와 무관치 않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책 말미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인공지능은, 이 테크노소셜리즘의 시대에 가장 핵심적인 기술 기반이 될 것이며, 이의 발전과 채용에 인류는 무조적 적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를 위해서 인류의 비전은 종래의 GDP 지상주의 같은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이고 정성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인공지능은 장차 현대인의 삶을 떠받칠 스마트 시티 운용의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며, 자동화된 정부는 큰 정부(의 큰 간섭)을 방지할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선택의 지금 우리의 몫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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