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해커스 은행FP 자산관리사 1부 최종핵심정리문제집 - 개념정리부터 실전까지 1주 완성ㅣ실전모의고사 3회분ㅣ이론정리+문제풀이 무료 인강ㅣ하루 10분 개념완성 자료집 제공 2022 해커스 은행FP 자산관리사
해커스 금융아카데미 지음 / 해커스금융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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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을 보면 은행이나 증권회사에서 PB라는 직함을 가진 이들이 나와 증시 현황이나 경제 전반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금융기관 안에서도 가장 실력이 뛰어난 이들이 배치되는 곳이 PB팀이겠는데, 이런 팀에서 일하는 자산관리사를 FP, 파이낸셜 플래너라고 부릅니다. 금융기관 입사시 이 자격증이 우대되는 건 당연하며, 비전공자라고 해도 응시 가능합니다. 또 재무설계사와는 달리, 예를 들어 한국 FPSB가 지정한 교육기관에서 소정 과정을 일단 수료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독학이 가능하다는 게 이 자격증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1부는 자산관리 기본지식, 세무설계, 보험 및 은퇴설계 등 세 과목입니다. 과목만 보면 어려워 보이지만 이 책 p14에 제시된 학습플랜을 보면 2주 정도 안에 끝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즉 초보 수험생이라고 해도 너무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며, 문제집을 실제로 풀어 보면 어느 정도 정형화한 문제가 나오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만큼, 필요한 내용만 깔끔하게 정리된 교재, 시험에 실제 나오는 유형만 잘 정리한 교재로 공부해야 쓸데없는 노력을 피할 수 있습니다. 


1부 자산관리 기본지식을 보면 경제학 문제라고 할 수도 있고, 어쩌면 경제시사상식 문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문제들에는 출제 빈도가 ★, ★★, ★★★ 세 단계로 나누어 표시됩니다. p65의 25번 문제를 보면 출제빈도가 별 셋입니다. ①을 보면 채권자가 유리하다고 나오는데, 인플레가 진행되면 돈 가치가 떨어지며, 이때 채권자는 나중에 돈을 받아 봐야 당초의 가치를 지닌 금원이 아니므로 불리합니다. 다만 이런 것도 부의 재분배 효과가 달성되는 면이 있습니다. ④가 좀 어렵지만 인플레 하에서는 돈을 가지는 게 불리하므로 기회비용 또한 당연히 생깁니다. 원자재나 주식 등을 보유한 사람은 더 많은 이익을 보았겠으므로 현금 보유자 입장에서 이런 게 다 기회비용입니다. ②③④⑤는 사실 뻔하게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며 ①을 혹 잘 모른다 해도 감으로 ①을 답으로 고를 수 있습니다. 


암기를 반드시 요하는 사항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p99를 보면 29번 문제에서, 개인정보보호법상 민감정보가 아닌 것을 고르게 합니다. ⑤는 페이지 하단의 해설을 보면 고유식별정보라고 나옵니다. 정보의 성질이 다른 것입니다. 이 역시 이른바 암기의 휘발성이 높은 사항은 아니고 누구라도 ⑤가 나머지 넷과 성질이 다르다는 걸 눈치챌 수 있습니다. 


p94를 보면 여신전문금융업법의 여러 암기 사항을 묻고 있으며 출제빈도는 ★★★라고 나옵니다. 신용카드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법 조항은 그동안 여러 차례의 개정을 거쳤으며 특히 모집인이 길거리에서 가입자를 모집하는 것은 법문에 정면으로 반합니다. 요즘은 이런 경우가 없으므로(다른 회원제 카드는 가두 모집을 하기도 합니다), 아마 많은 수험생들이 어려움 없이 정답을 고를 수 있겠습니다. 


p95의 22번 문제를 보면 상속법(민법 중)의 규정을 묻는데 바로 이런 문제가 어렵지 않냐고 할 수 있으나 사실 이것도 문항을 읽어 보면, 정답인 ④가 일정기간 상속자가 의사표시를 않으면 포기로 의제된다고 하는데 정당한 상속인이 관청에 대해 의사표시를 않는다고 포기 의제를 할 것 같으면 이는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에 대한 본질적 내용의 침해 아니겠습니까. 법에 대해 지식이 없어도 이걸 맞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지 싶습니다. 상식선에서 해결이 가능하며, 공부를 통해 법에 대해 잘 알면 더 자신 있게 답을 고를 수 있겠습니다. 


출제예상문제 파트가 끝나면 약점 극복 실전 테스트가 이어집니다. 이 문제 pool은 해당 페이지 하단에 바로 답이 나오지 않으며, 문제가 끝나면 해설과 정답을 함께 모아서 제시합니다. 실제 자산관리사 시험도 그렇습니다만 계산 문제도 출제가 되는데(당연하지만), 예를 들어 p123의 16번을 보면 통화승수와 예금통화액을 묻습니다. 몇 페이지 뒤인 p136에 계산 과정과 답이 나옵니다. 아주 기본적인 공식만 알고 있으면 너무나도 쉽게 답이 나오는 그런 유형입니다. 중학교 수준이라고 해도 될 정도죠.


세무설계 파트는 그래도 세법 지식을 묻기 때문에 좀 어렵습니다. 상식과 고교 졸업 수준 지식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고, 아무래도 전공 지식이 좀 있어야 합니다. p164 07번 문제를 보면 그로스업을 묻는데 공인회계사나 세무사 시험 등의 소득세법 과목에서 가장 어려운 항목으로 꼽히죠. 다만 자산관리사 시험에서는 전~~~혀 어렵지 않게, 고작 단순 암기 사항으로 나올 뿐입니다. 답은 ③인데 아니 외국법인으로부터 배당받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하긴 요즘은 서학개미가 많으니 사정이 좀 다릅니다만) 그게 의무사항이겠습니까. 공부를 전혀 안 했다고 해도 감으로 ③이란 걸 알겠죠. 물론 시험은 이런 좋은 교재를 통해 자기 나름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가야지 운에 맡겨서는 안 됩니다만. 


상속법(민법의 일부)상의 지식도 묻는데 p200의 07번 같은 건 상속재산에 해당하지 않는 걸 묻고 있습니다. 답은 ②피상속인 명의의 친목단체 예금인데 이런 건 명의신탁을 받아 본인 명의로만 갖고 있을 뿐 실질 소윧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상속재산이 아니죠. 반대로 콘도회원권 같은 건 중요한 상속재산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보험 및 은퇴설계 파트가 비교적 어렵게 느껴졌는데 관련법규정이나 제도상의 암기사항을 숙지해야 할 것이 제법 많기 때문입니다. p278에 보면 보험나이 같은 문제도 나오고, p286 이하에 보면 각종 보혐 종류와 특징에 대해 묻는데 보험제도에 익숙지 않은 이들이 그저 상식만으로 해결하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어떤 기본서에도 다 정리되어 있을 법한 사랑들이고 대한민국에서 시행하는 자격증 시험 중 이 정도의 암기도 요구하지 않는 시험은 없습니다. 그런 만큼 책에서 권하는 대로 철저한 학습 플랜을 세워서, 더도 덜도 말고 딱 2주만에 시험을 통과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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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컬처 - 우리 세대가 갈망하는 새로운 내일
요하네스 하르틀 지음, 김희상 옮김 / 나무생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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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환경은 오염되고 강력 범죄는 늘어나며, 인종과 나라, 문화권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는 요즘입니다. 인류는 언제나 풍요롭고 안정된 이상향을 꿈꿔 왔는데 그 대유어 중 하나가 "에덴 동산"이겠습니다. 저자는 거의 디스토피아적인 암울함이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지배해 가는 작금, "에덴 2.0"이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개인적 차원에서, 또 공동체적 지평에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며 또 무슨 각성이 필요한지 독자에게 아름다운 문체로 전달합니다.


p53에 나오듯 일찍이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이라는 원리"를 논한 적 있습니다. 이러한 희망은, 그저 인간을 하나의 생명체, 여러 가지 과학적 원리에 의해 기계처럼 작동하는 유기체로만 보는 시각에서는 싹트기 힘들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20세기말 인류는 드디어 게놈 지도를 갖게 되었습니다만 이것의 결론은 침팬지 등과 인간이 98% 이상 닮아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침팬지는 우리들과 너무도 다른 삶을 살며, 우리 인간은 침팬지보다 훨씬 복잡한 동기에 의해 움직이고,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도 판이합니다. 저자는 카이 미셸 같은 학자의 관점을 소개하며, 기독교의 구약 성서에 나오는 에덴 동산 이야기도 결국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독해가 가능한 "인류의 일기(신의 계시가 아니라)"라고 말합니다. 우리 인류가 우리 사는 지구를, 사회를 하나의 정원으로 보기 시작할 때, 미래를 향한 그윽한 유토피아적 비전은 어느새 모두의 마음에 같은 방향을 그리며 싹틉니다. 


20년 전만 해도 버스 같은 밀폐된 공공장소에서조차 태연히 담배를 피우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담배를 싫어하는 이들이 워낙 많아 이런 행동을 쉽게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건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데 저자는 이제 단순한 금연을 넘어 관계의 빈곤이 내 폐를, 내 장기를, 내 영혼을 좀먹지는 않는지 돌아보자고 제안합니다. 저자는 관계가 결핍된 인간은 이미 존재 기반이 흔들리는 중이며, 현대 사회는 개인 사이의 유대가 거의 끊어져 각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시피하고, 그런 까닭에 "각자의 우주에 고립되어 있다(p75)"라고까지 말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또다시 진화생물학적 논거를 듭니다. 왜 척추동물 최후의 진화(현 시점 기준) 단계가 하필 포유류일까요? 포유류란, 어미가 새끼를 품에 안아 젖을 물려 키우는 유일한 족속입니다. 우리 포유류는 태생부터가 고립되어 살아갈 수 없게끔 설계가 된 것입니다. 


고독사는 요즘 들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독신자는 그의 슬픔과 스트레스를 다른 누구와 공유할 기회가 없고, 그 결과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건강이 크게 상하기 쉽습니다. 저자는 "장기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는 중병과 조기 사망을 예방해 주는 실증적 결과가 확인되었다(p102)"고 상기시키는데 우리 독자들도 이 점 알고 있으며 또한 공감합니다. 인간이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발전시켜 왔고, 그보다 더 확장된 가족(대가족)이라든가 마을 공동체, 나아가 헤겔이 인륜 최고의 형태라 말한 "국가"를 이룬 것은 필연적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저자는 확실히, 능률과 효율만을 최고로 치는 전체주의 국가 시스템이 인류의 행복과 건강에 해롭다는 결론도 내립니다. 특히 저자가 경계하는 건 집단 경제인데, 이는 저자가 중시하는 공동체적 삶이라든가 유대 관계와는 정반대를 지향합니다. 그런 집단 경제에서는 개인의 창의와 여유가 조금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는 소련에 의해 집단 농장이 만들어졌던 1932~33의 우크라이나를 그 예로 듭니다(p163). 선한 농부들은 그 억압적인 체제 하에서 무수히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끔찍한 역사의 악몽이 있었기에 지금도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가망 없어 보이는 전쟁에 그토록 결사적으로 참여하여 조국의 적을 무찌르려 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만들려 애쓰지만 저자는 이런 노력보다는 의미를 찾아 내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독자에게 권합니다. "의미는 진정성 있는 언어로 표현된다(p196)."그래서 우리들은 연인 사이에, 친구 사이에, 가족 사이에, 스승과 제자 사이에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며 단지 정보 교환만을 꾀하는 게 아니라 감정과 생각과 그윽한 정을 공유하려 드는 것입니다. 저자는 p207 이하에서, 특히 프랑스의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68세대, 그들을 부모로 둔 MZ 세대가 서로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도 언급합니다. 어떤 경우에나 우리에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결론은, "개인의 차원 그것을 넘어서는 연대와 공감의 존재"를 구축하는 과제입니다. 


"무의미함은 생명을 앗아간다(p216)." 그래서 저자는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공명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내라"고 이 책의 곳곳(p258 등)에서 강조합니다. 의미는 잉여나 사치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가장 뛰어난 점은, 저자의 일관되고 아름답게 표현된 주제의식과 사상도 사상이지만, 다양한 학자들과 인류사적 지성들의 여러 명언이나 아포리즘이 끝도 없이 인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인문 고전이나 현대의 필독서 십여 권을 함께 읽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아무리 뜻깊은 의미를 찾았다 해도 이를 한눈으로 응시하면 안 됩니다. 사람에게 두 눈이 주어져 원근의 응시를 할 수 있게 한 것 역시 생명체가 진화하며 올바른 길을 찾아내기 위한 필사적 노력의 산물입니다. 의미를 두 눈으로 보라(p226)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울림이 깊습니다. 유발 하라리 역시 이 책 여러 군데에서 인용되는 저자 중 한 사람입니다. 


많은 이들이 "혐오"라는 잣대를 사용하며 타인의 행위를 단죄하는 요즘입니다. 저자는 "대체 혐오라는 게 무엇인가?(중략)누군가 자신의 종교나 조국, 정부를 겨눈 비판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형사 처분을 하는 게 온당한가?(p269)"라고 묻습니다. 또 이처럼 혐오라는 막연한 잣대로 형사 처벌까지 가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일견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적 평등을 도모하려는 듯 보이나) 그 안에는 악마가 숨어 있다"고 하며, 표현의 자유를 심하게 억압하여 자기 검열을 유도한다고 지적합니다. 


머리에 칩을 심어 능력을 개선하는 이른바 트랜스휴먼 논의는 예전부터 똑똑한 저자들과 학자들에 의해 흥미로운 논의 주제가 되어 왔습니다. 이 책이 미래학도 겸한 주제이다 보니 저자는 여기에 대해서도 한 마디를 잊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앙상한 기계론, 환원론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 저자가 여기에 대해 호의적일 리 없습니다. 이런 논의는 우리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방해하고,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으로부터 도피하거나 피상적으로 대응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고 합니다. 혹 사람 머리에 칩을 심는 게 가능해진다 쳐도 어느 세월에 실용화가 이뤄지겠습니까? 현실은 간단한 백내장 수술조차 각종 부작용으로 문제를 빚는 판에 말입니다. 신장, 심장 등 장기 이식은 첫발을 뗀지 40년이 자났건만 사실상 제자리걸음입니다. 이게 가능할 것 같으면 지금쯤 장기 부실 때문에 곤란을 겪는 이가 없어야죠. 


p280에서 저자는 이 책의 제목 일부이기도 한 "에덴"이 뭘 말하는지 비교적 선명히 풀어 줍니다. 간단히 말해서 바로 저런 "트랜스휴머니즘"에 반대되는 논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저자는 (앞에서도 누누이 강조했듯) 어떤 특정 종교의 교의를 대변하는 건 또 전혀 아니라고 이미 못을 박았습니다. 그렇기는커녕 앞에서 "혐오"라는 이름으로 종교 등을 무작정 보호하는 입법 움직임이 우려스럽다고까지 했습니다. "인간은 인간을 무한하게 넘어선다." 이는 블레이즈 파스칼의 말인데, 칩의 도움이 아니라 해도 이미 인간은 인간인 자체로 인간을 넘어설 수 있기에 존엄한 것입니다. 또 "몸이 가지는 유한함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극복하자"고 하며 이 책 전체에 걸쳐 일관된 주제를 다시 드러냅니다. 자연도 인간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며 어떤 기능을 잘 수행하기에 아름다운 게 아니라고 합니다. 확실히, 이 모든 생각이 모두의 공감을 얻어 지켜지고 다른 의미가 새로이 발견되는 사회야말로 모두의 낙원이자 이상향인 에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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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여성 철학사
리베카 벅스턴.리사 화이팅 외 지음, 박일귀 옮김 / 탐나는책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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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 시절에 도덕, 윤리 과목을 배우며 동서양 역사에 어떤 철학 사조와 철학자들이 있었는지 열심히 배웠지만 그 중 여성 철학자 이름은 어느 하나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공부를 게을리해서라기보다 교과서에 아예 여성 철학자가 소개되지 않았다시피해서인데, 사실 주목, 재조명하려 들면 수천 년 역사 중 여성 한 명이 없을 리 없습니다. 이 책은 그간 우리가 소홀히 봐 온, 위대한 여성 철학자들을 조명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소개한 글들마저 현역 최고의 여성 철학자들이 집필했습니다. 내용이나 형식 양면에서 올스타전 혹은 만신전(판테온)이라 할 만합니다. 


우리 나라 교과서만 그런 게 아니라 영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p7 저자 서문에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시몬 드 보부아르 두 명만 등장한다.."며 정평 있는 어느 다이제스트 철학 대중서의 태도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말이 나오니 말입니다. 뭐 저 정도라면 우리 나라 책들도 안 빼놓고 언급하는 편입니다. 특히 보부아르는 근대 페미니즘의 아득한 조상님과도 같은 사람인데, 몇 년 전 프랑스 총리 마크롱이 공개석상에서 "페미니즘 같은 해로운 풍조가 미국으로부터 수입되어 프랑스의 지적 풍토를 어지럽히고..." 같은 말을 해서 엄청 웃은 적이 있습니다. 마크롱은 유구한 지적 토양을 자랑하는 프랑스 정계에서도 초 엘리트 출신으로 꼽히는 사람인데 저런 무지를 드러내다니... 물론 극성 페미니즘은 1960년대 미국 중심의 우먼 리브에서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긴 했습니다만.


이 책은 그렇다고 페미니즘 역사에 주제를 한정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지금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보편적인 철학 사조의 유산에 여성들이 기여한 바가 얼마나 큰지를 밝히는 게 주 목적입니다. 물론 그들은 인간인 동시에 여성이었으며 그 빼어난 재능을 동시대 체제가 얼마나 억압했는지에 대해 뼈저린 아픔을 가졌겠으므로 이에 대해 그 저작 속에서 한 마디 안 할 수는 없었겠죠. 책은 중국의 역사가 반소, 그 오빠 반고의 저작 명의로만 보통 소개되는 <한서>의 공동 저자부터 논의를 시작합니다. 


현대 중국은 공산 혁명으로부터 시작했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여성에 대한 족쇄를 가장 과감하게 걷어내고 부부 사이의 평등을 화끈하게 추구한 나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p37을 보면, 허베이성 전통문화연구소 간부인 딩쉬안이라는 분이 연설한 내용이 일부 인용됩니다. 이분은 바이두 백과에도 다분히 조롱섞인 문구로 소개된 분인데, 이 책에는 안 나옵니다만(이 책뿐 아니라 어디에도 잘 안 나옵니다) 한자로는 丁琁(정선)이라고 씁니다. 21세기에 "처녀성"을 미덕(을 넘어 일종의 "지참금")으로 강조하고 그 외에도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했는데 공산혁명을 했다는 나라에서 저렇게 높은 위치에 있는 분의 성의식이란 게 이 모양입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진보의 기치가 어느 정도나 허상에 가까운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후한의 역사가 반소를 첫 타자로 내세웁니다. 인종, 성별, 문화권에의 평등한 비중 할당을 의도한 결과이겠습니다. 우리 나라도 중국고전문화에 정통한 분들이 참 많지만 이상하게도 반고만 강조할 뿐 반소의 기여에 대한 언급이 매우 적습니다. 사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건 사서인 <한서>가 아니라 그녀가 쓴 실용윤리서인 <여계>인데, 이 책은 오늘날 여성들이 읽으면 무척 실망스러운 내용입니다. 마치 소혜왕후의 <내훈>을 연상케도 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숨막힐 듯한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이 시아버지, 남편, 시어머니의 등쌀 속에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남을지를 가르치는 일종의 생존 키트로 의의를 부여합니다. 한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유가가 다른 제자백가의 영향을 완전히 누르지 못한, 일종의 다원성이 살아 있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며 역시 긍정적 의의를 찾습니다. 또 저 정선, 즉 덩쉬안을 구태여 언급한 건 여전히 구태, 전근대성을 극복 못 한 중국의 현실 속에서 여성들이 과연 누구로부터 지혜를 찾아야할지를 상기하려는 의도였다고 저자가 스스로 밝힙니다. 달리 말하면 중국은 반소의 시대인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발전이 없었다는 뜻도 되겠네요. 


히파티아는 무슨 피타고라스라든가 시인 사포라든가 플라톤처럼 오래된 사람이 아니고, 저 반소보다도 200여년 뒤에 활동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이 매우 끔찍했고 독립적 여성에 대한 반감도 죽음의 한 원인이 되었기에 이 순교자가 꽤 오래 전 사람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죠.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지만 이미 헬레니즘이 망한지 오래된 시점이었고 어쩌면 이 비참한 죽음이 그리스 고전 문화의 우아함 그 종말을 상징하는 바도 적잖이 있습니다. 여튼 "수학 잘하는 여성"이 멋있는 건 사실이며, 19세기 러시아의 여성 수학자 소피아 코발레프스카야 같은 이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히파티아를 소개한 의의는 물론 그녀가 철학자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당대 수학자들은 상당수가 철학자를 겸했죠. 


여성 사상가 하면 누구나 첫손에 꼽을 만한 인물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입니다만 이 책에서는 그분을 다루기 앞서 메리 애스텔을 소개합니다. 이분은 울스턴크래프트보다 무려 한 세기나 앞서 여성 인권을 테마로 다룬 논문을 썼다고 합니다(p67). 그녀는 귀족 출신은 아니었으나 부친이 석탄 소매업자였으므로 아마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으리라 짐작되며 저작들만 남아 있을 뿐 어떤 생을 살았는지, 금욕적이고 경건한 삶을 살았으며 자선에 헌신했다는 정도 외에 더 구체적인 정보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하는데, 이 역시 여성에 대한 시대의 홀대를 엿보게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페미니즘 분야 말고 일반 철학의 스탠스에서 이분이 취한 입장은 영국 전통의 경험론과는 반대 지점에 가깝다는 게 이 책의 평가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고교에서 배운 대로, 영국의 경험론 vs. 대륙의 합리론 중 후자, 즉 데카르트의 스탠스와 비슷하다는 거죠. 결혼에 대해서도 그녀는 회의적인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이분에 대한 글은 시몬 웹 박사(물론 여성 철학자입니다), 바로 뒤에 나오는 울스턴크래프트에 대한 글은 산드라 베르제 부교수가 집필했습니다. 


천재로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과학자, 철학자를 보면 의외로 그 아내, 혹은 애인으로부터 영감을 크게 받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도 그랬고 존 스튜어트 밀도 그러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여성 철학자, 행동가였던 해리엇 테일러 밀을 보면 성씨가 두 부분입니다. 첫째 남편이 활동가 존 테일러였고 둘째 남편이 바로 존 스튜어트 밀이라서입니다. p101에 보면 존 스튜어트 밀은 저 책의 저작 명의를 놓고 원래 아내에게 특별히 크레딧을 하려 했으나 테일러 밀이 사양했다고 합니다. <자유론> 서문에도 당시 건강이 위중하던 아내에 대한 특별한 헌정사가 있다고 나옵니다. 


우리가 소설가로만 알고 있는 조지 엘리엇(이름도 여성에 대한 편견 때문에 의도적으로 남성처럼 필명을 썼죠. 반면 저 앞의, 우리 시대 철학자 시몬 웹의 퍼스트네임은 Simone이므로 남성이 아닌 여성형입니다)도 이 책에 따르면 철학자로서의 업적이 크다고 합니다. 그 핵심은 "자기 인식", 즉 나 자신을 아는 일이 궁극의 평안을 가져다준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영국 소설은 문학적 성취는 잠시 별론으로 하고, 작품 속에 엄청난 사색과 철학이 녹아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조지 엘리엇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필자 클레어 칼라일 박사는 <미들마치> 등 그녀의 작품 구체적 예를 여럿 들며 자신의 주장을 논증합니다. 책 조금 뒤에는 역시 우리가 소설가로 보통 알고 있는 아이리스 머독이 소개됩니다. 


이어 에디트 슈타인, 즉 독일에서 두번째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이며 후설(20세기 초 현상학의 대가, 한국에는 이남인 교수가 이 분야 전공자로 유명하죠)의 수제자였던 분인데 재미있는 일화가 많이 소개됩니다. 또 하이데거의 편협한 태도 역시 날카롭게 꼬집히고 있습니다. 이어 해나 아렌트(이 책의 표기에 따릅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소개되는데 이 두 분에 대한 글이 분량면에서 다소 짧다는 데서 개인적인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활동가로서 잘 알려진 앤젤라 데이비스가 "철학자"이기까지 한지는 아마 의견이 갈릴 수도 있겠습니다. 이 책 후반부에는 시대상을 반영하여 소위 "유색인종(책에서 그런 표현을 쓰는 건 아닙니다)" 철학자들을 독자들과 만나게 합니다. 특히 책 마지막은 아지자 알히브리라는 다소 낯선, 모슬렘 여성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아직 생존해 계신 교수님을 다루는데 이분은 모슬렘 법과 서양법 사이의 가교를 놓은 업적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혹은 진즉에 알았어야 했을, 여성 철학자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적어도 PC 면에서 균형을 잘 맞춘 듯 보입니다. 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미권에 선정이 다소 치우친 면이 있고, 독자에 따라서는 아직 여성 철학계의 공헌이라는 게 더 진전될 여지가 있구나 같은, 책의 의도와는 반대되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 정도입니다. 페미니즘의 살아 있는 신화인 주디스 버틀러가 이 책에서 다뤄지지 않은 것도 의외라면 의외였습니다. 어렵지 않고 쉽게 쓰였으며, 다만 책을 읽으면서 따로 여러 군데를 찾아 보느라 서평 등록이 다소 늦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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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끝 소설 르네상스 12
한수산 지음 / 책세상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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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프 25기 7주차에 이 작가님의 <아프리카여 안녕>을 리뷰한 적 있습니다. 한수산 작가는 알려진 대로 1970년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끈 소설가였고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아프리카여 안녕>은 젊은이, 20대 초반 정도, 아직 정신적으로 십대 티를 못 벗은 청춘들의 성장통을 다뤘는데 그 느낌은 시대의 한계가 있어서인지 매우 미숙해 보였다고 그 독후감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이 책은 한수산 작가의 단편집이지만 어떻게 된 게 지금 와서는 단편집 자체로 주목받는다기보다 "<대설부>라는 작품이 실린 책"이란 의의가 더 큽니다. 그만큼, 옛 독서인들한테서도 지금까지 안 잊히는 작품이 바로 <대설부>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죠. 


지금 이 작품 <대설부>는 한수산 작가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역시 시대가 많이 지났다 보니 그런 느낌을 아주 지울 수는 없으나, 적어도 왜 당시에 이분이 그렇게 인기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상당 부분 해소해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사는 젊은 세대 특유의 감각과 고민, 발랄함이 물씬 묻어나며, 그런 한편 장래에 대한 불안감, 이 젊음이 지나가면 설움을 어찌 달랠까 하는 애상이 잘 풍깁니다. 물론 요즘 MZ 세대는 재테크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느라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주인공은 한수산 작품이 거의 언제나 그렇듯 현실에 대한 감각이 흐릿하며 특유의 이상주의자 같은 기질로 여자가 잘 따르는 타입입니다(요즘 같으면 모쏠 되기 딱 좋은 조건). 이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연극에 심취해 계신 분인데 그야말로 돈안되는 것만 골라가며 몰두한다고나 하겠습니다. 주인공의 본업은 화학공학도이며 교수도 그의 장래를 유망하게 보고 지원도 해 주건만 저모양입니다. 이유는 어려서부터 무척 따르던 형이 주어서입니다.


어느날 주인공은 형의 방을 노크도 없이 찾았다가 <PLAYBOY>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알록달록한 잡지를 보고 있는 형을 당혹스럽게도 목도하게 됩니다. 이지적이고 현명한 줄로만 알았던 형이 그런 저질 매체를 즐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마! 남자를 흥분시키지 못하는 여자란, 그건 이미 폐물인 법이야."


이처럼 속물적인 면도 있지만 항상 이치에 밝고 자신의 문제를 잘 헤쳐나가던 형, 그가 갑자기 죽고 남은 건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 그리고 형이 생전에 사귀던 여성이었습니다. 이 여성에 주인공은 베아트리체의 심상을 투영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것처럼 이는 그저 당사자의 허상에 불과합니다. 주인공에게 형은 뭐랄까, 도스토옙스끼의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드미트리와 이반, 첫째 형과 둘째 형을 합쳐 놓은 사람입니다. 큰형은 야성적 충동과 정열을, 작은형은 면도날 하나도 들어갈 틈 없을 견고한 이성의 방벽을 쌓아놓고 사는 사람.


그리고 그 여성은 아마도 주인공이 여성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미덕을 합쳐 놓은... 것처럼 착시를 부르는 사람입니다. 허나 여성은 결국 주인공을 남자로 봐 주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가는데 이는 당연합니다. 실험실에서부터 그를 졸졸 따르는 후배 여성도 하나 있는데 결국 형의 그 여자가 자신을 보듯, 자신도 그 후배를 끝내 여성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정념을 부르는 여름이 괴롭다면, 청춘은 차라리 만물이 시들고 난 겨울을 기다릴 밖에요. 제목은 그래서 겨울(=눈)을 기다린다는 뜻의 대설(待雪)부(賦)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은 MBC에서 단막극으로 만들어진 적 있는데, 대학원 여성 후배 역에 박순천씨, 주인공에 길용우씨가 나옵니다. 자신의 뜻을 안 알아주자 두 비커에 염산, 황산을 각각 담고와서 잔뜩 협박한 후 마셔버리는 장면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그런 강산용액이 아니라 탄산음료였다는 게 밝혀집니다. 교수 역에 이호재씨, 죽은 형 역에 당시 한창 주부층에 인기를 끌었다는 박영규씨, 형의 여인 역에 허윤정씨가 나옵니다. 세상 모든 일을 다 통달했다는 양 허풍을 치는 선배 역의 정한헌씨 연기도 볼만합니다. 저 시절 대학생들이란 유치하고 귀여운 맛이 있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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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조 이문열 중단편전집 2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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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조에서 "시(翅)"는 날개라는 뜻입니다. 받침인 支가 발음을, 깃털 羽가 뜻을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국어사전을 찾아 보면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라고 나오는데, 그럼 팔부중에는 무엇이 있는지 찾아 보면 여덟 개 중에 "금시조"가 또 없습니다.  같은 사전 안에서 설명이 완결되지 않는다는 건 사전의 품질을 의심케 하는 거죠. 물론 요즘은 사전보다 강력한 구글이 있어서 찾아 보면 나옵니다. 국어사전에도 팔부중 중 가루라를 들어 놓았는데 이 가루라가 금시조입니다. 금시조는 음역이 아니라 뜻으로 풀어 놓은 이름이라 하겠습니다. 


이 장편은 이문열 작가의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며 읽어 보면 과연 장중하고 심오한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가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대 분위기에는 좀 맞지 않는 듯한, 다소 정형적인 구조와 전개가 아닐까 하는 생각 떨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교훈과 미학적 효과는 올타임 리퀘스트에 속하며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메시지라는 건 뭐 틀림없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스승 석담은 예술이 도, 학, 삶과 유리된 채 존재할 수가 없다는 입장이며, 제자(주인공)은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고 예술은 어떤 입장이나 철학과는 따로 떨어져 그 자체의 존재 영역이 있다는 쪽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art for art's sake라고 하겠죠. 그런데 훨씬 앞선 시기,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 김동인의 단편들에 나오는 피상적이고 설익은 입장보다는 훨씬 깊이가 있습니다. 소설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의 깊이 있는 사색 그 결과를 담아야 그게 독자에게 어떤 감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이 정도 담론은 현대 독자에게는 이미 상식이 되었으므로 길게 재인용 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장편을 읽으면서, 과연 예술의 가치는 누가 알아보며 누가 값을 매기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가 5년 동안 한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이 되는지는 평등하게 주어진 한 표에 따라 돈이 있건 없건 유식하건 멍청하건 간에 모두가 모여서 결정합니다. 주식의 가격은? 개미의 시시한 돈도 모이고 모이면 그 볼륨을 무시 못 합니다. 그러나 예술 작품을 "보통 선거"로 평가하면, 뒤샹의 <분수>는 단돈 이만원에 그 모든 가치가 결정되고 말 것입니다. 예술은 첫째 백아 곁에 종자기가 있었듯이 고독한 예술혼을 해례(?)할 수 있는 영혼의 교통자들이 있어야 그 가치가 비로소 밖으로 드러납니다. 둘째 그것에 고가를 매기고 손에 넣으려는 부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결정된 미적 감각이라는 게 과연 한 시대를 대표하는 정직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돈 많은 호사가들의 변덕에 의해 좌우될 뿐일까요? 답은 알 수 없습니다. 부정적이라는 게 결코 아니고, 말 그대로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이 작품은 KBS에서 극화된 적이 있는데 석담 역에 신구씨, 고죽 역에 고 김흥기씨가 나와 볼만한 연기를 펼쳤습니다. 그러나 신구씨 특유의 사람 갈구는 연기는 이게 배역이 배역이다 보니 설득력이 있지만 김흥기씨 연기는 사실 저 인물이 뭘 말하고자 하는 건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 김흥기씨를 최고의 연기자로 평가하는데, 극이 저렇게 된 건 제 생각에 각본이 나빠서입니다. 원작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시각의 차이로 스승과 제자가 대립하는 건데, 드라마는 그게 아니라 두 인물의 신분 차이라든가 개인적 애증 관계에 초점을 맞춥니다. 뭐 그렇게 해도 하나의 (재)해석은 되는 건데, 문제는 원작 소설의 진행에서는 또 벗어날 수 없다 보니 드라마가 처음에 꺼낸 단서와는 전혀 무관하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거죠. 드라마만 보고 실망한 사람은 원작 소설을 읽어 보고 원작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할 필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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