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나는 아직도 꽃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찬란한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만
저 새처럼은
구슬을 굴릴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놀빛 물 드는 마음으로
빛나는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만
저 단풍잎처럼은
아리아리 고울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빈손을 드는 마음으로
부신 햇빛을 가리고 싶습니다만
저 나무처럼은
마른 채로 섰을 수가 없습니다

아, 나는 아직도 무언가를
자꾸 하고 싶을 따름,
무엇이 될 수는 없습니다

*박재삼의 시 '나는 아직도'다. 무엇이 될 수는 없다는 체념보다 무엇이든 자꾸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피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직도 나는?.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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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불빛이 누구를 위해 타고 있다는 설은 철없는 음유시인들의 장난이다. 불빛은 그저 자기가 타고 있을 뿐이다. 불빛이 내 것이었던 적이 있는가. 내가 불빛이었던 적이 있는가.

가끔씩 누군가 내 대신 죽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내 대신 지하도를 건너지도 않고, 대학병원 복도를 서성이지도 않고, 잡지를 뒤적이지도 않을 것이라는 걸. 그 사실이 겨울날 새벽보다도 시원한 순간이 있다. 직립 이후 중력과 싸워온 나에게 남겨진 고독이라는 거. 그게 정말 다행인 순간이 있다.

살을 섞었다는 말처럼 어리숙한 거짓말은 없다. 그건 섞이지 않는다.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다시 밖으로 나갈 자다.

세찬 빗줄기가 무엇 하나 비켜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남겨놓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그 비가 나에게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있었던가. 나를 용서한 적이 있었던가.

숨막히게 아름다운 세상엔 늘 나만 있어서 이토록 아찔하다.

*허연의 시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다. 안과 밖, 너와 나?애써 구분하지 않아도 내 안에서 따로 또 같이 존재하는 것임을 안다. 이제 아찔함을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서지 않을 정도 만큼만 안고 살아갈 뿐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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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의 일

사람의 일에도 눈물이 나지 않는데 강물의 일에는 눈물이 난다.

사람들이 강물을 보고 기겁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총구를 떠난 총알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강물은 어떤 것과도 몸을 섞지만 어떤 것에도 지분을 주지 않는다. 고백을 듣는 대신,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강물의 그 일은 오늘도 계속된다. 강물은 상처가 많아서 아름답고, 또 강물은 고질적으로 무심해서 아름답다. 강물은 여전히 여름날 이 도시의 대세다.

인간은 어떤 강물 앞에서도 정직하지 않다. 인간은 어떤 강물도 속인다. 전쟁터를 누비던 강에게 도시는 비겁하다. 사람들은 강에게 무엇을 물어보든 답을 들을 수는 없다. 답해줄 강물은 이미 흘러가버렸기 때문이다.

빠르게 흘러가버리는 일
여름날 강이 하는 일

*허연의 시 '강물의 일'이다. 결코 물러서거나 뒤를 돌아보지 않는 "강물은 어떤 것과도 몸을 섞지만 어떤 것에도 지분을 주지 않는다. 고백을 듣는 대신,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강물의 그 일은 오늘도 계속된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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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미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 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 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가 가득 피어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허연의 시 '오십 미터'다. 우기에 접어든 때 연일 비가 내린다. 잠깐 볕이라도 난다면 우중충한 기분을 말리기라도 할텐데?.마음이 가난한 소년이기에 바위채송화가 가득 피어있는 길에서도 놓지 못한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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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째로 저버리는 꽃처럼
생을 놓아버린 이의 마음자리에 
두손 모아 평안을 빈다.

통곡하듯 울던 하늘이 마알갛게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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