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보는 눈 - 왜 통일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이들을 위한 통일론 세상을 읽는 눈
이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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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종석 저 < 통일을 보는 눈 : 왜 통일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이들을 위한 통일론>을 읽고 / 2012. 06, 256쪽, 개마고원


2012년 봄 국회의원 총선거를 전후하여 국내 정치권, 특히 여당인 새누리당이 주도하는 '종북 논쟁'의 폐해를 절감한 유권자들이 많았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그런 한심한 국가적 에너지의 낭비를 지켜보고 있자니, 연말 대선에서는 다음 대통령의 자질 평가와 관련해 북한문제와 통일정책에 대한 비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가늠자가 되어야 했음을 많은 이들이 느꼈을 것이다. 그 종북 논쟁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때마침 오랫동안 북한문제와 통일문제를 연구해온 학자이자 참여정부 시절 통일부장관을 역임한 저자가 그간의 연구 성과와 정책 현장 경험을 무르녹여 밀린 “숙제를 푸는 심정으로” 이 책을 내놓았다. 물론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저자는 한반도를 둘러싼 통일화경이 완전히 변했다고 지적하면서, 무엇보다 냉철히 봐야 할 것은 중국의 변화 발전에서 비롯된 통일환경의 격변을 말한다. 남한의 전통적인 한미관계를 중심으로 하더라도 한중관계와 북중관계 모두가 엄청나게 변화해 있는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남한에서 '붕괴론'이나 '남침론' 등 대결 일변도로 북한을 바라봤던 과거의 도식적인 북한관과 통일관을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저자는 "통일비용이 너무 막대할 것이기에 차라리 통일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으나, "북한이 갑자기 붕괴해서 흡수통일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무려 수백 조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남한 역시 최악의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대신 "장기적인 화해협력 경로를 밟는다면 30년 동안 연간 1조 5,000억 원 정도만으로도 감당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 비용은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투자적 성격을 지닌다고 말한다. 북한에 전기, 상하수도, 도로 등을 건설하는 데 사용될 것이므로. 게다가 이 사업은 한국 기업체가 맡을 것이기에 국내 기업들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그렇지만 저자는 기업들이 아닌 자영업자, 노동자, 농민, 학생, 주부에게는 어떤 이점이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는데, 이 부분은 저자의 한계 또는 실수라고 본다.)


저자는 어쩌면 거꾸로 "북한과의 대치와 분단 때문에 발생하는 손해를 따져 비교해보는 게 현실적일는지도 모른다"면서 남한이 치르고 있는 분단비용을 짚어 보인다.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되는 국방비의 과다한 지출, 안보불안으로 인한 한국 경제의 피해(한반도 리스크), 항시적인 사회적 불안심리, 한창 때 청년들의 군복무가 주는 사회적 손실, 종북 논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사상과 민주주의의 미발전 등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매년 수십 조원에 이를 것이다. 민족 동일성의 훼손이나 민주주의의 후퇴로 인한 비용 그리고 전체 국민의 스트레스로 인한 비용은 돈으로 환산할 수조 차 없다.

유형무형의 이 분단비용들은 남북이 완전한 평화를 이루기 전까지는 계속 지출될 것이다. 분단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과 통일을 이루는 데 드는 비용, 이 두 가지의 비교에는 사실 또 하나의 ‘계산’이 추가되어야 더 정확해진다.


그리고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통일에 드는 비용을 걱정하지만, "통일을 이룬 이후의 효과는 앞서의 그 비용을 넘고도 남는다"고 주장한다. 

먼저 중국을 중심으로 동북아가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되고 있는데 그 변화에 발맞추려면 남북의 화해와 협력은 꼭 필요하다. 그동안 남한은 북쪽이 가로막혀 사실상 섬나라나 다름없어도 미국·일본과 주로 교역했던 때는 그래도 별 문제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러시아와 더 많은 교역을 하고 있다. 통일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와 바로 국경이 닿는다면 교역은 더 활발해지고 한국은 드디어 반도 국가라는 장점을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동안 부산항은 10만㎢ 면적에 인국 4,900만이 사는 대한민국의 항구로서 세계 5위의 무역항이 됐는데, 통일을 한다면 5,500만㎢ 면적에 인국 40억이 사는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무역항이 될 수 있다.


남북이 경제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는 효과도 대단하다. 경제학자들은 "내수와 무역이 조화를 이루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려면 인구가 1억 명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남북의 인구를 합치면 7,300만 명이고 여기에 해외동포를 더하면 8,000만 명의 경제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어 이 규모의 경제에 가까워진다.

남북이 하나가 되는 경제공동체의 장점은 단순히 인구 증가에만 있지 않다. 북한은 남한과 달리 천연자원이 풍부해서 남북이 자원협력을 하면 연간 수백억 달러의 부를 창출할 수 있다. 값싸고 우수한 북한 노동력과 투자할 곳을 찾고 있는 남한 자본의 결합은 이미 개성공단에서 그 효용이 증명되었다. 2010년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0년 9월까지 개성공단이 남한경제에 미친 생산 유발 효과가 5조 2,668억 원이며, 부가가치 유발효과도 1조 5,275억 원이었다고 한다. 국내에서 2만7547명의 취업자도 유발시켰다고 한다. 개성공단 하나로도 이런데 전면적인 경제 협력이 이루어지면 효과가 얼마나 될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바람직한 남북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인 "북한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잘못된 정보와 편견에 근거해서 북한을 바라본다면 어떤 정책이든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남한 사회가 북한에 대해 흔히 갖는 모순적인 태도와 잘못된 인식을 짚고 있다. 

북한에게 그럴 역량이 없는데도 ‘통미봉남’을 한다고 걱정하는 태도, 천안함 침몰 사건에서 진상를 밝히려 하기보다도 이를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구태, 속출하는 북한의 국민소득을 1,000달러라고 과다하게 잘못 측정하는 것, 평화적인 대화를 바란다면서 대화의 당사자인 북한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런 잘못된 태도와 인식이 왜 발생하고 뭐가 문제인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저자는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이 아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북한에 ‘퍼주기’만 했다는 주장도 조목조목 비판한다. 

우선 포용정책 이후에 북한의 대남도발은 꾸준히 감소했다. 금강산 관광사업이 시작되면서 북한군은 해군 함정을 금강산 북쪽으로 이동시켰다. 육로관광이 시작되면서는 군부대도 후방에 배치되었다. 개성공단의 군사적 가치는 더 크다. 개성공단이 건설되면서 서부전선에 배치된 북한군의 전차와 자주포가 개성공단 이북으로 이동했다. 사실상 휴전선이 북쪽으로 올라간 셈이다. 전문가들은 개성공단의 안보적 가치는 국군 몇 개 사단과도 바꾸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고 한다. 

그런 여러 성과로 인해 노무현정부 5년간은 남북한 교전이 없었고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정부 이후 대화가 단절되고 관계가 악화되면서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음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을 압박하여 개방으로 이끌겠다는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가 단절돼도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면서 체제를 유지시켜 나갈 수 있다. 남북의 경제협력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북한은 중국과 경제특구를 공동개발하고 지하자원 개발권을 중국에 주는 등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모두에게 개방적으로 변하기는커녕 중국과 협력하면서 출구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다시 포용정책이 주목받고 있다. 새로 들어설 정부는 북한과의 대립 구도를 벗어나 화해와 협력의 길로 가야 한다. 이 책은 그 새로운 대북정책이 어떤 모습이 돼야 할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새로 시도되는 포용정책은 더 진화한 포용정책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정부 차원의 교류를 넘어, 정당과 시민사회도 널리 참여하는 포괄적인 교류가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한반도 평화가 경제발전 및 복지증진과 직결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평화-경제-복지가 선순환을 이루도록 하는 폭넓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기존의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도 협력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경제 파트너로 한국 경제에 갈수록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협조 없이는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힘들다. 변화하는 정세를 고려해 동북아에서 다자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반도의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이 또한 차기 정부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책을 모두 읽고 나서 평가해보면, 저자 스스로 '종북 논쟁'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남한 내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편견과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북한에 대해 실사구시를 하거나 긍정적인 측면을 제시하게 되면 국가보안법이나 반북이데올로기 등 저자의 지위와 안정을 위협할 요인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저자를 이해해줄 수 있는 측면이 존재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극우적인 선입견이나 반북 이데올로기에만 편중된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해줄 만 하다.

또한 저자는 한반도와 남북 관계는 그냥 남북 만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과 미국, 남한과 미국, 한-미-일의 복잡한 삼각관계, 중국, 그리고 남과 북간에 또다시 구조적으로 아주 오래된 갈등관계에 놓여있다는 점을 간과 또는 누락하고 있다. 한국현대사 100년을 이어오는 역사적 과정이 함축되어 있는 것임을 저자도 잘 알고 있음에도 누락시킨 것은 이 책의 커다란 흠이다. 특히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논의하면서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빠뜨린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원칙적으로 이 책이 불합격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자국의 동아시아 군사패권 전략이나 태평양 전략에 따라 얼마든지 한국 정부와 기득권층의 정책을 방해하거나 북한과의 정치군사적 갈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 2013년 10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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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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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 저, 전미영 역 < 긍정의 배신 bright-sided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나 >를 읽고 / 2011. 04., 304쪽, 부키

<노동이 배신>과 함께 공부모임 교재로 채택된 책이다. 처음 책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에서 책 소개를 간략하게 훑어보았을 때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고, 숙제하는 기분으로 책을 구했다.
그런데 책을 받은 후에, 목차를 읽어보고 소개글과 저자의 머리말을 읽으면서 급관심이 생겼났다.

예전에 <시크릿>을 읽으면서 <오프라 윈프리 쇼>를 보면서 현실을 넘어 서는 '마음'과 '태도'를 강조하는 그들에게 적지 않게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과 비슷은 처세술이나 긍정적인 심리를 특별하게 강조하는 책을 읽으면서 책 내용과 저자에 대해 늘 비판적이고 불만스러웠는데, 이 책을 통해 '긍정적 사고' 또는 '긍정주의'의 기원과 구체적인 사례 그리고 논리적인 관점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이 책은 '무분별한 긍정주의를 고발'하는 책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20세기 후반기부터 서구사회와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사회.문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가 '긍정'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은 자신이 유방암 진단을 받고난 이후부터다. 그녀의 생각과 달리, 암을 선고받고 비관의 나락으로 떨어져 마땅할 듯한 투병자들 사이에 의외로 낙관과 긍정의 에너지가 가득한 묘한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암이야말로 인생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알게 해 준 선물이라는 투병자들의 수기, 불행하다고 느끼면 죄의식이라도 가져야 할 만큼 '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일상적 충고들, 한술 더 떠 단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태도를 갖는 것만으로도 암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입증되지 않은 과학까지 결합해 핑크 리본과 곰 인형으로 상징되는 유방암 문화를 형성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긍정주의'의 허구성과 폐해를 느낀 후, '긍정주의'가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그 이론적, 역사적 흐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다양한 사례와 인물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긍정적 사고의 핵심에는 '불안'이 놓여 있다. 긍정적 사고를 위한 훈련은 수많은 모순적인 증거에 직면한 상황에서 믿음을 주입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훈련을 제공하는 이들은 '자기 최면'이나 '마인드 컨트롤' 또는 '생각 조절'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인다.
저자가 연구한 결과, 긍정적인 사고가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들어서였다. 그리고 20세기가 되자 긍정적 사고는 주류에 진입해 민족주의와 같은 강력한 신념체계들 속에서 자리를 마련했고, 자본주의의 필수요소로서 자기 가치를 설득해 나갔다. 긍정주의는 본격적인 산업의 일부로도 자리잡았다. 한국의 방송에서 인기 강사인 '김미경'씨는 한국판 지그 지글러(zig ziglar)라 할 수 있다.

'긍정주의'의 폐해는 무엇일까? 예를 들어 1994년 미국 최대의 통신회사 AT&T는 2년 동안 1만 5,000명을 정리 해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당일, 직원들을 '성공 1994'라는 동기 유발 행사에 보냈다. 행사의 주연급 연사인 동기 유발 강사 지그 지글러가 전한 메시지는 이랬다. "(해고를 당하면) 그건 당신의 잘못입니다. 체제를 탓하지 마십시오. 상사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세요."
청년실업자들이나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직장인이 제도의 불합리성과 사회복지 제도의 미비함에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자신의 긍정성 부족을 탓하고 동기 유발에 더욱 매진하게 만든다면, 이러한 긍정주의는 경쟁과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시장에 모든 판단을 맡기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원하는 최적의 이데올로기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긍정적 사고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잔인함을 변호한다. 낙천성이 물질적 성공의 열쇠이고 긍정적 사고 훈련을 통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라면, 실패한 사람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는 정치행정 분야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제43대 대통령인 조지 w. 부시(george w. bush)는 고교 시절 치어리더였다. 미국의 발명품임에 분명한 치어리더는 긍정산업의 핵심인 코칭과 동기유발의 선조 격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거의 언제나 낙관론을 요구하고, 비관론과 절망과 의심을 싫어했기 때문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부시 앞에서는 우려를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2001년 9.11 테러 이전, 여름부터 곳곳에서 테러를 의심할 만한 징후들이 감지되었음에도 연방수사국, 이민귀화국, 부시, 라이스 등 어느 누구도 그런 불편한 단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미국의 개신교는 신복음주의 '긍정주의 신학'으로 물든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들은 돈과 권력 이외에 전통적인 원죄, 은총, 회개 등이 중요하지 않다. 미국의 4대 종교 중 3대 종교는 확실한 '긍정주의 신학'이고 나머지 1개 교단마저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 한국의 개신교는 미국과 얼마나 다를지 궁금했다.

AT&T나 부시와 같은 사례와 흐름은 IMF 이후 한국사회에도 상륙한 것으로 보인다.  IMF 이후 경제적, 정서적 불안에 사로잡힌 한국인들에게 긍정주의와 황금만능주의는 짝이 되어 10년 넘게 한국사회 전체를 지배했다. 정치분야에서는 이명박 전대통령의 "내가 해봐서 알아"가 유사한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를 미국사회 전체에 수십 년 동안 긍정주의가 끼친 악영항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한다. 

그녀가 주장하는 인생에서의 진정한 가치는 긍정이냐 아니면 비관이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에서 출발하느냐 아니면 마음가짐에서 출발하느냐가 핵심임을 지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미소와 웃음, 포옹, 행복, 그리고 즐거움을 더 많이 보기 위해서는 '긍정적 사고'라는 대중적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대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류가 지금까지 해온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와 의료 서비스처럼 사회적 안전망이 더 탄탄하고 파티와 축제, 길거리에서 춤을 출 기회가 더 많은 곳이 내가 그리는 유토피아다.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가 충족된다면(이는 내 유토피아의 전제다), 삶은 영원한 축하 무대가 될 것이고 모든 사람이 무대 위에서 재능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희망하는 것만으로 그런 축복받은 상태에 이를 수는 없다. 우리는 스스로 초래했거나 자연 세계에 놓여 있는 무시무시한 장애물과 싸우기 위해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나 역시 '긍정주의'에 대한 저자의 대안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십분 공감이 된다.

○ 인상 깊은 문장 : 

- "심리학자들이 각 나라 사람들의 상대적 행복도를 측정한 결과 놀랍게도 미국인들은 긍정성을 자랑스레 내세움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한창 활황일 때조차 행복한 축에 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각국의 행복도에 관한 100건 이상의 자료를 종합 분석한 자료에서 미국인의 행복지수는 23위에 머물러 네덜란드인과 덴마크인, 말레이시아인, 바하마인, 오스트리아인은 물론 음울한 사람들로 알려진 핀란드인보다 순위가 낮았다. 한편 세계 우울증 치료제의 3분의 2가 미국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도 미국인들이 느끼는 고통을 시사해 준다." (머리말/ p.22) 

- "긍정적 사고는 분노와 공포라는 실체적 감정을 부정하고 쾌활함의 분칠 아래 묻어 두도록 요구한다. 불평을 듣느니 가짜 쾌활함을 상대하는 것이 나은 만큼 의료 종사자나 환자의 친구들에게는 몹시 편리하다. 하지만 환자 자신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점 발견에 관한 한 연구는 "유방암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선의를 갖고 이점을 발견하려 노력하는 것조차 둔감하고 서투르다고 보고, 되풀이해서 반감을 표시했다. 환자들은 그런 노력을 자기에게 지워진 고유한 짐과 과제를 경시하는 불쾌한 시도로 해석했다."고 밝혔다. 2004년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긍정적 사고의 신조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가 나왔다. 암 선고를 받고 이점을 더 많이 자각한 여성들이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비해 (정신 기능의 저하를 포함해) 삶의 질이 더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1장 암의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pp.68~69)

- "심리학자들은 억압된 감정은 그 자체가 해로운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말로 그런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긍정적 사고가 '실패'해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암이 퍼지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럴 때 환자가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충분히 긍정적이지 못했다고, 애초에 암이 생긴 것도 부정적인 태도 탓이었다고 자책하게 된다. 이 지점에 이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충고는 "이미 피폐해진 환자에게 추가적인 부담이 된다."고 종양학 간호사 신시아 리텐버그는 썼다. 뉴욕 슬로안케터링 기념 암센터의 정신과 의사인 지미 홀런드는 암 환자들이 일종의 희생자 비난을 경험한다고 밝혔다. 
- "10년쯤 전부터, 정신과 육체는 연결되어 있다는 대중적 믿음을 토대로 우리 사회가 환자들에게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부담을 지운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끼게 되었다. 나를 찾아온 많은 환자가 선의를 가진 친구로부터 "암과 관련된 글을 모조리 읽어 보았는데, 네가 암에 걸린 건 네가 암을 원했기 때문이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여기에 더해 환자가 "항상 긍정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암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하지만 너무 힘듭니다. 내가 슬퍼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화를 내면 결국 암세포를 더 빨리 자라게 할 테니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라는 말을 할 때면 나는 더더욱 고통스럽다."
긍정적인 사고에 실패한 암 환자는 제2의 병과 같은 부담을 더 지게 될 수도 있다."(1장 암의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pp.70~71)

- "[시크릿]은 언론으로부터 비교적 따뜻한 응대를 받았지만, 식자층의 경악과 조롱을 받았다. 비판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대체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문젯거리가 풍부했다. dvd에는 쇼윈도에 진열된 목걸이를 보고 감탄하는 여성이 등장하는데 다음 장면에서 그녀는 그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다. 그저 목걸이를 '끌어당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게 전부였다. 책 내용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 동안 체중을 줄이려고 애썼던 저자는 음식 때문에 살이 찌는 것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음식이 살로 갈 것이라는 '생각' 탓에 실제로 체중이 는다는 것이다."(2장 주술적 사고의 시대: 끌어당김의 법칙/ p.95)

- "긍정적 사고는 고용주의 손에 의해 19세기의 주창자들이 짐작도 하지 못했을 용도로 바뀌었다. 떨치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라는 권고가 아니라 직장에서의 통제를 위한 수단, 더 높은 실적을 내라고 들들 볶는 자극제가 되었다. 노먼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을 낸 출판사는 1950년대에 일찌감치 기업 시장으로 눈을 돌려 "기업 임원 여러분, 이 책을 직원들에게 주십시오. 커다란 이익을 낼 것입니다."라는 광고를 냈다. 광고는 영업사원이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이 파는 상품과 자기가 속한 조직에 새로운 신뢰를 갖게 될 것이며, 내근 직원들의 효율성도 높아져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장담했다. 동기 유발이 채찍으로 사용되면서 긍정적 사고는 순응적인 직원의 품질 보증서가 되었고, 1980년대 이후 다운사이징 국면에서 고용 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채찍을 쥔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4장 기업에 파고든 동기 유발 산업/ p.146)

- "급격히 성장하는 분야인 경제 자기계발서들도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다운사이징에 적응하도록 일조한다. 다운사이징 선전의 고전인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1000만 부가 팔렸는데 기업에서 뭉텅이로 사서 직원들에게 나눠 준 것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책을 읽기 싫어하는 독자의 손에 들어갈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94쪽밖에 안 되는 얇은 두께에 활자도 큼지막하고, 어린이용 책에 적합한 우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4장 기업에 파고든 동기 유발 산업/ p.167)

- "2001년부터 2006년 사이에 주간 예배 참석자 수가 2000명 이상인 초대형 교회의 수는 배로 증가해 1210개에 달했고, 총신도 수는 약 440만 명에 이르렀다. 초대형 교회의 (그리고 많은 작은 교회의) 새로운 긍정신학은 고난과 구원에 관한 참혹한 이야기나 가차 없는 심판을 접어 두고 현생에서의, 그것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가능한 부와 성공과 건강을 약속한다. 당신은 새 차와 새 집, 탐내던 목걸이를 가질 수 있다. 하느님은 당신이 번창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2006년 [타임] 조사에서는 종파나 교회 규모를 막론하고 미국 기독교인들의 17퍼센트는 자신이 '번영신학(prosperity gospel)' 운동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며, 61퍼센트가 '하느님은 사람들이 번창하길 바라신다'는 서술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5장 하느님은 당신이 부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p.178)

- "1920년대 대공황을 앞둔 시기에는 양극화가 심해지자 부자들의 무절제와 빈자들의 비참함에 격분한 노동운동가와 급진적 활동가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아주 성격이 다른 다양한 종류의 이론가들이 정반대의 메시지를 퍼뜨리고 있다. 그들은 고도로 불평등한 이 사회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노력할 의사가 있는 사람의 삶은 조만간 훨씬,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한다."(7장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경제를 무너뜨렸나/ p.249)

[ 2013년 9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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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한국사회 - 왜 우리 모두는 아플 수밖에 없을까?
김태형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강추!!! [서평] 김태형 저 <트라우마 한국사회>를 읽고 / 2013. 04., 368쪽, 서해문집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한국사회의 구석구석에 강력하게 또아리를 틀고 있는 한국인들의 심리는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를 불안케 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와해시키는가? 누가 약자들과 선량한 이들을 분열시키고 싸우도록 부추기는가? 주변을 돌아봐도, 신문방송을 보아도 우리를 마음 아프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인들의 마음이 오래도록 불안정하고 아프다는 것은 곧 그들의 마음 속에 커다란 심리적 상처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마음의 상처를 '트라우마(Trauma)'라고 부른다.

"이러한 트라우마들은 한국인의 불행한 역사적 경험과 관련이 있다. 즉 한국인의 트라우마는 대부분 왜곡된 역사와 잘못된 사회로 인해 생겨난 집단 트라우마라는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과 관련된 개인적인 트라우마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한국인들이 동일한 트라우마애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것의 주요한 원인이 각자의 개인사에 있다기보다는 공동으로 경험했던 집단의 역사에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한다."(저자 서문)

"한국 사회의 집단 트라우마가 심한 이유는 일제 식미지와 미군정, 한국전쟁, 군부독재 등을 압축적으로 겪으면서 매우 폭력적인 과정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민주화됐다고 하는 현 시점에도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법에 의해 일부 사람들을 가두는 것이 집단 트라우마가 강한 사회임을 증명합니다." - 독일 경제학자 홀거 하이데 (2008년 9월 경향신문)

○ 세대, 계층, 분단, 지역으로 쪼개진 한국사회는 좌절과 미완성, 혼돈과 공포에 지배당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부독재, 민주정부 실패, 극우보수세력의 연이은 재집권으로 이어진 한국 현대사는 한국인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게다가 이런 상처들이 채 아물기도 전에, 돈 중심, 경쟁 중심의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서 한국인들은 세대와 계층, 중심과 변방으로 갈가리 쪼개졌다. 
저자는 이러한 한국사회의 상황을 세대 트라우마와 집단 트라우마로 나누어 세밀히 분석한다. 

우선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각 세대가 가진 마음의 상처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성인·중년기별로 나누어 분석한다.(자세한 내용은 제 블로그 http://blog.daum.net/hy2oxy/8691537를 참고)
유년기부터 반복된 좌절의 경험으로 인해 생긴 50년대생(좌절세대)의 ‘좌절 트라우마’, 포기할 수 없는 청년기의 꿈으로 인해 생긴 60년대생(민주화세대)의 ‘미완성 트라우마’, 세계관과 인생관의 혼돈으로 인해 생긴 70년대생(세계화세대)의 ‘혼돈 트라우마’, 공부기계에서 삼포세대로 이어지며 누적된 공포감으로 인해 생긴 80년대생(공포세대)의 ‘공포 트라우마’는 현재 한국사회의 치명적 고질병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세대 갈등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각 세대의 트라우마와 세대 갈등의 근본 원인은 서로 다른 경험과 트라우마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외세와 극우보수세력에게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입니다. 저 또한 이해 적극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저자는 세대별 트라우마의 치유방안에 대해서도 제시합니다.
좌절세대가 좌절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면, 먼저 패배주의와 자기혐오감에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며, 그 다음 사회를 빈곤하게 만드는 잘못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젊은이들이 노력할 경우 그런 시도를 적극 지지해주고 동참해야 한다. 또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함으로써 남은 인생을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민주화세대가 미완성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좌절세대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사회가 강요하는 '돈을 벌지 못했으니 내 인생은 실패했다'는 식의, 돈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잘못된 자기평가에서 해방됨으로써 자기의 인생을 다시금 긍정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청년기의 꿈을 부활시켜 그것을 완성하는 데 기여하는 여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10대에서 20대 초반인 자녀들을 도와주는 데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민주화세대가 미완성 트라우마를 완치하려면 청년기의 꿈, 즉 '인간다운 세상'을 완성시켜야 한다.
세계화세대가 혼돈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면, 무엇보다 세계관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이미 파산선고를 받은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개인주의적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 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세대적 결속력과 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세계화세대도 민주화세대와 마찬가지로 정신건강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는 자녀들의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공포세대가 공포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면, 무엇보다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면서 동시에 부모와의 동맹을 성사시켜야 한다. 또한 공포감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집단적인 승리의 경험을 축척해야 한다.

○ ‘분단 트라우마’는 언제든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극우세력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되었다!
"분단 트라우마는 한국인들의 심리를 병들게 만드는 첫째가는 원인이자 한국인들에게 밝은 미래를 박탈하는 기본 장애물이다. 따라서 한국인들의 정신을 불구화하고 정치를 기형화하며 민족분단을 영구화하는 분단 트라우마를 치유하지 못하는 한 한국사회의 발전이란 요원한 일이다."(p.208~209)

저자는 세대 트라우마에 이어 계층, 분단, 지역감정으로 생겨난 한국사회의 집단 트라우마를 들여다본다. 돈 중심의 세계관이 가져온 계층 간의 갈등은 ‘우월감 트라우마’로, 죽음에 대한 공포에 기반한 한국사회 최대의 장애물은 ‘분단 트라우마’로, 차별과 학대, 죄의식의 얽힘으로 인한 지역 갈등은 ‘변방 트라우마’로 규정하고, 이들 트라우마가 생긴 원인과 문제점, 해결 방안 등을 세밀히 분석한다.(자세한 내용은 제 블로그 http://blog.daum.net/hy2oxy/8691542를 참조)

분단 트라우마와 극우세력 콤플렉스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종북(반미)이 아니다", "NLL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다까끼 마사오'를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단순히 북한에 대한 공포로 여겨졌던 ‘분단 트라우마’가 실은 언제든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극우세력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는 대목은 명쾌하면서도 탁월하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영호남 갈등으로 여겨지는 지역감정이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로 나뉘어 어떻게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는지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 서울과 변방(지역)으로 나뉘는 새로운 지역 갈등이 나타나는 현상을 분석한 부분 역시 절로 고개가 끄떡여진다. 

한국인의 집단 트라우마인 우월감 트라우마, 분단 트라우마, 변경 트라우마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주역들은 세대별 트라우마와 마찬가지로 외세와 극우보수세력, 극우보수언론 등이다. 특히 분단 트라우마의 경우 친일파와 월남세력, 극우기독교 집단과 국가보안법이 추가된다. 따라서 한국인의 집단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공통적인 과제는 역시 외세와 극우보수세력, 극우보수언론을 이 땅에서 퇴치하는 것이다.

집단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각 트라우마별 방안은,
우월감 트라우마의 경우, 첫째 개인들이 우월감 중독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둘째, 한국사회는 사회양극화 문제를 하루라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 셋째, '돈 중심의 세계관'을 강요하는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
분단 트라우마의 경우, '북 콤플렉스'를 치유하려면 남북이 서로의 체제와 사상문화를 존중하고, 남북 사이의 교류와 협력을 확대시키고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레드 콤플렉스', 특히 '극우세력 콤플렉스'를 치유하려면 극우보수세력을 정치권에서 퇴장시키고, 그들의 절대 무기인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 "나는 특히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데 한국사회가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방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면 영호남 차별, 서울과 변방 사이의 차별을 없애야 하고, 전국적인 진보정당 혹은 계급정당이 출현해야 하며, 서울을 제외한 변방이 단결해야 한다.

○ 폭발 직전의 위험 수위에 이른 한국, 트라우마 없는 한국사회를 꿈꾸며…

몸의 상처는 눈으로 보이는 데다, 직접적으로 고통을 주기에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치료를 받는다. 반면 마음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아 파악하기 힘들고, 정신적 고통을 주기에 방치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가 쌓이고 쌓여 직접적인 문제로 드러날 때는 손쓰기 힘든 경우가 많다.

과거 불행한 현대사를 지나오며 생긴 한국인의 집단 트라우마는 IMF경제위기와 돈 중심, 경쟁 중심의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세대 트라우마라는 형태로 더욱 확대되어, 이제는 폭발 직전의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병이라고 해서 이대로 방치하다 보면 한국사회는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미 이러한 마음의 병은 높은 자살률과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 학교 폭력, 배금주의, 도덕적 해이로 표출되고 있다. 우리가 매년 지겹게 들어온,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낮다는 조사(OECD 34개국 중 32위-2012년 기준) 또한 현재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과연 한국사회가 집단 트라우마에서 해방되어,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은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들에 대한 날카로운 심리학적 분석과 함께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트라우마 없는 한국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 2012년 대선의 승부를 결정지은 한국인의 트라우마

2012년 대선은 한국인의 트라우마가 가진 파괴력을 잘 보여주는 선거였다. 각 세대, 계층, 분단, 지역 문제로 생긴 트라우마로 인해 이번 선거의 결과가 갈렸다. 유년기부터 중년기까지 지속적으로 좌절을 맛본 좌절세대(50년대생)는 주도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대세를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이들은 야권의 바람이 불면 야권 쪽으로,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여권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많았는데, 이번 선거에서 결국 여권 쪽으로 움직였다.

‘우월감 트라우마’는 경기 변동에 극히 민감한 자영업자들과 생존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보수세력에 대한 의존심을 부추기고, 부자 되기 열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또 한 번 유혹함으로써 보수세력의 승리에 도움을 주었다. 
‘분단 트라우마’는 야권 진영의 운신의 폭과 공격력을 심하게 위축시킨 반면, 나이가 많은 세대에게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함으로써 여권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마지막으로 영호남 갈등에서 서울-지역 갈등으로 옮겨가면서 한국사회에 날이 갈수록 더 극심해지고 있는 ‘변방 트라우마’ 역시 충청도와 강원도, 나아가 수도권 주민들이 여권에 표를 던지도록 만들었다.

저자는 심리학자로서 현재 미국의 주류 심리학으로, 동물과 사람을 본질적으로 동일하게 보는 진화 심리학이나 뇌 과학의 오류를 비판하며, 사회심리학 이론을 정립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 집필 강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개인의 마음은 개인이 치유해야 한다는 식의 긍정 심리학, 위로의 메시지로 포장한 자기계발 서적들의 달콤한 유혹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이 책을 통해 한국사회의 성장을 가로막는 거대한 심리적 장애물이 무엇인지를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하나하나 세밀히 분석하였다.

○ 인상 깊은 문장

"좌절세대는 순응의 대가, 즉 한평생 극우보수세력이 시키는 대로 성실하게 일하고 노력한 결과가 결국 좌절이었다는 사실에서 교훈을 찾아 저항에 나서기보다는, 반복된 좌절의 경험으로 인해 여전히 세상에 순응하는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좌절세대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고 그들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반복된 ‘좌절’이 준 상처이기 때문에 이들의 대표적인 트라우마를 ‘좌절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세대는 한국사회를 바람직하게 개혁하는 데 실패했다는 자괴감을 떠안게 되었고,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한국사회가 옛날보다 더 나빠졌다고 생각하며 과거의 민주화운동이 다 헛고생에 불과했다는 허무감과,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느라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는 패배감까지 느끼고 있다. (중략) 나는 이들의 가장 큰 트라우마가 청년기의 꿈이 완성되지 못한 것과 불가분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므로 이들의 트라우마를 ‘미완성 트라우마’라고 부를 것이다."

"이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청년기에 받아들였던 개인주의적 세계관과 인생관으로는 바람직한 사회개혁도, 행복한 미래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으면서 세계관적 · 인생관적 혼돈을 경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화세대의 가장 큰 트라우마는 ‘혼돈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다."

"공포세대는 그야말로 공포에 짓눌려 있는 세대이므로 이들의 가장 큰 트라우마는 ‘공포 트라우마’가 될 수밖에 없다. 공포세대가 공포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면 무엇보다 부모와의 동맹을 성사시켜야 한다. 좀 심하게 말하면, 공포세대의 부모들은 한국사회와 더불어 이들에게 공포 트라우마를 강요한 주범이다."

"오늘날 한국인들은 ‘내가 너보다 더 잘났다’는 우월감을 느끼는 데에서 삶의 기쁨을 찾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려 한다. (중략) 나는 모든 한국인들 사이에 널리 확산되어 있는 이런 집단심리, 즉 병적으로 우월감을 추구하면서 우월감에서 삶의 기쁨을 찾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려고 하는 마음의 병을 ‘우월감 트라우마’로 정의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는 해방 이후의 좌우 대립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분단 트라우마가 극대화되었으나, 시간이 흐르고 남북 간의 화해가 추진되면서 레드 콤플렉스와 북 콤플렉스는 지속적으로 약화된 반면 극우세력 콤플렉스는 여전히 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따라서 탈냉전의 21세기를 맞이한 현재 시점에서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분단 트라우마의 기본 내용은 ‘극우세력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다."

"지역차별은 그 차별로 인해 이익을 얻는 지역주민, 피해를 입는 지역주민, 옆에서 구경을 하는 지역주민까지 모두 정신적으로 병들게 한다. 즉 지역차별을 당해왔던 호남인만이 아니라 그 차별로 인해 일정 정도 혜택을 입은 영남인, 지역차별을 목격해왔던 나머지 모든 한국인이 변방 트라우마의 희생자인 것이다. 나아가 점점 심해지고 견고해지는 서울공화국 체제로 인해 한국인의 변방 트라우마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 2013년 8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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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과 수설 - 400년을 이어온 성리 논쟁에 대한 언어분석적 해명
이승환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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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승환 저 < 횡설과 수설 : 400년을 이어온 성리 논쟁에 대한 언어분석적 해명 >을 읽고, 2012. 10., 456쪽, 휴머니스트

사실 개인적으로 조선 성리학에 대해 잘 모른다. 예전에는 그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가르친 대로 '망국적인 당쟁'이라는 선입견만 가지고 있었고, 나이가 든 이후 여러 책과 정보를 접한 후에는 '당쟁'이라는 이미지가 일제의 식민지 사관인 것을 알고 기존 편견을 지우려고 애쓰는 편이었다.
그러다가 작년 초 이덕일의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석필, 1997)을 읽고서 '당쟁' 또는 '붕당'으로 이야기되는 조선시대의 사상논쟁과 그 논쟁의 뿌리, 과정 등을 일부 알게되었다. 조선 성리학의 뿌리로 일컬어지는 "동인의 뿌리는 퇴계 이황으로 퇴계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으로 시작"되었고. "서인의 뿌리는 율곡 이이로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으로 시작"되었다는 것과 "동인과 서인의 정책의 차이는 토지를 둘러싼 싸움"이 컸다는 정도로 정리한 상태였다.

"퇴계학파와 율곡학파 간의 성리 논쟁은 왜 400년 동안이나 평행선을 달려왔는가?"

<당쟁으로 조는 조선 역사>는 '이기론(理氣論)'의 내용이나 쟁점이 아니라 당쟁의 과정과 주요 인물들과 사건, 당쟁의 배경 등을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사상이론이나 쟁점을 자세히 알기는 어려웠다. 저자는 이덕일과 달리 '이기론(理氣論)' 자체를 다룬다.
특히 저자는 조선 이후 400년 넘게 이어져온 '이기이원론'과 '이기일원론'이 왜 끝까지 평행선을 달리기 되었는지에 대해 오래도록 연구했다. 그의 연구결과는 서로가 '프레임'이 달랐다는 것이다.

저자는 학계를 뒤흔들 만큼 중요한 두 가지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동양철학을 비롯하여 기호학, 언어학, 논리학, 심리철학 등을 넘나들며 조선 유학 연구에 새로운 방법론과 뜨거운 쟁점을 제시한다. ‘횡설(橫說)’과 ‘수설(竪說)’이라는 기호학적 프레임을 통해 퇴계-고봉, 우계-율곡, 외암-남당 등 조선 유학사 속 성리 논쟁에 대한 독자적인 시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정복심(程復心)의 [사서장도(四書章圖)] 초간본을 공개하며 [학기유편]에 얽힌 비밀을 명쾌하게 풀어낸다. 
퇴계와 퇴계학파는 ‘리(理)’와 ‘기(氣)’를 사람의 마음에 깃든 대비적인 관계로 파악했고, 율곡과 율곡학파는 양자를 각기 형이상의 원리와 형이하의 재료로 파악했다. 개념에 대한 시각차로 인해 발생한 두 학파의 갈등은 단순한 철학 논쟁에 그치지 않고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를 관통하는 쟁점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바로, ‘리’와 ‘기’ 두 가지 기호를 수평적으로 배치한 ‘횡설(橫說)’, 수직적으로 배치한 ‘수설(竪說)’이라는 기호학적 프레임을 통해 그 의미층위를 밝혀내고자 했다. 퇴계학파가 견지했던 ‘횡설’의 프레임과 율곡학파가 견지했던 ‘수설’이 논리적으로 부딪히게 되었던 원인을 차근차근 논증해가면서, 결론적으로 성리 논쟁을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는 통합적 프레임을 제시한다. 
출판사는 저자의 연구결과가 조선 유학 역사 속 해결되지 않았던 오랜 질문에 대한 해명일 뿐만 아니라 성리 논쟁 연구를 새로 쓰는 단초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단과 칠정(四端 七情), 도심과 인심(道心 人心), 도와 기(道 氣), 성과 형(性 形) 등의 성리학 개념들을 종합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성리학의 세 가지 프레임 가운데서 상하의 프레임과 좌우의 프레임을 두고서 격돌했다. 횡설과 수설이 바로 그것이다. '횡설'은 '리'와 '기'를 좌우로 배치하여 서로 갈등하며 승부를 다투는 가치론적 대비 관계로 파악하는 기호 배치 방식이고, '수설'은 이 두 기호를 상하로 배치하여 '리'가 '기'에 타고 있는 존재론적 관계로 파악하는 기호 배치 방식이다. 좌우로 된 프레임(횡설)은 좌파와 우파처럼 서로 갈등관계에 놓인 '가치론적 속성들(도덕과 욕망처럼)'을 이분법적으로 표시하기에 시지각으로 효과적이고, 상하로 된 프레임(수설)은 형이상의 '원리'와 형이하의 '재료'라는 '존재론적 속성들(육체와 의식처럼)'을 승반 관계로 표시하기에 시지각적으로 적합하다."(p.15)

 

 

 

 

 

 

이 책을 통해 공맹사상, 주자학, 그리고 성리학에서 사용했던 단어들의 개념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리(理), 기(氣), 심(心), 성(性), 정(情), 발(發) 등 성리논쟁에 사용된 핵심 개념들이 보통 수십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 다의어라는 점이다. 저자는 이런 점을 통해 바로 이 개념의 다의성이 당대의 성리 논쟁이 서로 간에 합치될 수 없었던 구조적인 문제였음을 예증해낸다. 
퇴계사상의 독창성이 리발(理發)·리동(理動)·리도(理到)로 대변되는 ‘리의 능동성’에 있다고 본 학계의 주장과 달리, ‘리의 능동성’ 테제가 송대 고백화(古白話)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되었다고, 율곡계열의 학자들이 견지했던 승반론(乘伴論)이 현대 심리철학, 윤리학, 미학에서 사용하는 수반이론(supervenience theory)과 필적할 만큼 뛰어난 분석 도구라는 저자의 주장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저자는 또한 '횡설 : 수설'의 프레임이 단지 성리논쟁에 국한된 이해의 틀이 아니라 이 프레임을 근대 전야의 다양한 문명담론에 적용함으로써, 위정척사, 동도서기, 중체서용, 화혼양재 등의 구호에 내포된 ‘허’와 ‘실’을 기호학적으로 밝혀내고 있다. 

그런데 21세기에 사는 한국인들도 조선시대 유학자들처럼 '횡설 : 수설' 프레임에 빠져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치열한 이론이나 노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진보진영 학자들, 진보정당 이론가들, 정치인들, 일꾼들 사이에서...
논쟁과 경쟁이 치열하다가 엇나가거나 애초에 경쟁이 선의가 아니라 무언가 자리와 권력을 탐하기 위함이라면 조선의 유학자들처럼 '서로 죽이기'라는 나락으로 빠지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아니 이미 그러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 2013년 7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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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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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에릭 호퍼(Eric Hoffer) 저, 이민아 역 < 맹신자들 The True Believer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을 읽고 / 2011. 09., 255쪽, 궁리출판사

공부모임 교재로 채택되어 읽게 된 에릭 호퍼의 대표 저서. 이 책은 '거리 위의 철학자'로 유명했던 에릭 호퍼를 위대한 사상가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책을 읽은 소감은 서구의 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이 20세기 초중반 대중(민중)의 광범위한 저항운동을 폄하하고 비난하기 위해 반갑게 맞이하였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 이유는 호퍼가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운영방식을 바꾸고자 나섰던 이들을 줄곧 개인적으로 무능하고 이기적이며 자기부정과 권태에서 출발한 광신도라 규정하기 때문이다.

1951년에 첫 출간된 이 책을 1990년 대한교육공사가 한국에 처음 번역 출간했던 제목은 <대중운동의 실상>이었다. ‘실상’이라는 단어에서 뭔가 ‘불온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 책은 “민주화와 노동운동 등 사회 운동'을 억누르려는 정부와 저항적 대중운동을 삐딱하게 보고자 하는 권위주의적 관변학계 지식인들에게 일종의 복음이 되었던 책”(장정일의 독서일기, 한겨레 2011. 10. 14.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00866.html)이기도 했다.

물론 장정일은 이 책의 순기능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적 통찰로 충만한 이 책은, 딱 소리와 함께 야구장을 가로지르는 ‘빨랫줄 타구’처럼, 대중운동을 좌우·선악 양단으로 구획하지 않는다. 호퍼는 수구나 진보 공히 대중 동원이나 선동에 취약하다고 보며, 대중운동을 무조건 악으로 타매하기보다 “정체된 사회를 각성시키고 혁신하는 요인”으로 긍정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는 맹신자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개성과 주체성을 돌보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오늘의 주체가 일망감시와 통치성에 속속들이 식민화된 지금, 지은이의 채근은 성공한 예외자의 순진한 해결책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번에 출간된 제목은 'The True Believer'에 맞는 번역인 '독실한 신자'가 아니라 '맹신자'다. 이 제목 또한 출판사와 역자의 의도와 편견이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신념이나 사상 따위를 다른 것으로 바꿈"이라는 뜻을 가진 '전향'이라는 단어를, 좌절하거나 현실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대중운동에 뛰어드는 것을 지칭하는 데서도 출판사와 번역자의 수준 또는 악의가 느껴진다.

에릭 호퍼는 서문에서 여러 대중운동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책을 발간했다고 말한다. 그는 모든 유형의 헌신과 신념, 권력 의지, 단결과 자기희생에는 어떤 획일적인 속성이 있다고 말한다. 광신적 기독교 신자, 광신적 이슬람교 신자, 광신적 민족주의자, 광신적 공산주의자, 광신적 나치가 서로 다른 것은 분명하지만, '광신'이라는 점에서 한 부류로 취급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대중운동'은 반체제 저항운동뿐만 아니라 인간이 집단을 만들어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든 운동을 아우른다. 초기 기독교 운동, 종교개혁 운동,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나치즘, 일본의 근대화, 시오니즘 운동 등을 포괄하는 의미다.

호퍼는 태동기 대중운동에 참여하는 많은 이들은 자신의 삶이 순식간에 극적으로 변한다는 전망에 이끌리기 쉽다고 주장한다. 대중운동의 지도자도 이러한 대중의 열망을 꿰뚫어보고 보잘것없는 현재를 극복하면 영광스러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대중을 선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밋빛 미래에 이끌리는 이는 주로 좌절한 사람이며, 현재의 자신을 경멸하는 좌절한 사람은 자기의 삶이 통째로 바뀌는 급진적인 변화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변화를 갈망하는 이러한 좌절한 이들의 심리 상태 때문에 모든 초기의(태동기) 대중운동은 좌절한 사람들한테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호퍼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자신이 쓸모없다는 자기혐오에 사로잡힌 사람일수록 자신에게서 벗어나 좀 더 완전하고 숭고해 보이는 무언가를 추종하기가 쉽다. 숭고한 대의에 에너지를 쏟음으로써 자신의 하찮은 삶, 망가진 인생으로부터 도피한다는 것이다. 실로 좌절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열정적으로 매달릴 어떤 대상이 필요한 것이므로 그것이 종교든 사회혁명운동이든 민족운동이든 가리지 않는다. 따라서 호퍼에 따르면 광신적 공산주의자가 광신적 애국주의자나 광신적 가톨릭 신도로 바뀌는 일은 이치에 맞다. 맹신자에게는 대의명분이나 이상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느냐 여부에 있다.

자기혐오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을 거부하고 하나의 조직에 완전하게 하나된다는 호퍼의 주장은, 조직이나 대의를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일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고 조직이 그리는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해 폭력을 동원해야 한다면 더 없이 무자비해질 수 있다는 논리로 비약된다. 
따라서 호퍼의 책은 시공을 초월하여 극단적 테러리스트, 자살폭탄자의 심리를 '광신도'로 해석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호퍼는 결론을 대신하여 좋은 지도자의 예로 링컨, 간디, F.D. 루스벨트, 처칠 같은 지도자를 꼽는다. 이들은 히틀러, 스탈린, 루터, 칼뱅과는 달리, 좌절한 영혼을 대중운동의 재료로 삼지 않았다. 이들 "지도자의 자신감은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며, 자신이 인류를 명예롭게 대하지 않는 한, 아무도 명예로울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에릭 호퍼가 대중운동의 본질에 대한 단상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다분히 선험적이고 단정적이다. 특히 대중운동에 참여하는 개인들이 "자신이 쓸모없다는 자기혐오에 사로잡힌 사람일수록 자신에게서 벗어나 좀 더 완전하고 숭고해 보이는 무언가를 추종하기" 쉽고 "숭고한 대의에 에너지를 쏟음으로써 자신의 하찮은 삶, 망가진 인생으로부터 도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압과 세뇌에 의해 노예같은 삶을 살던 개인들, 민중들이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나서기 위해 각성하고 자립하는 운동을 심하게 폄하하고 왜곡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호퍼가 대중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속성을 규정하는 방식에는 대부분 합리성이나 논리적인 연관은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는 좌절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불만과 증오가 생겨난다거나 쉽게 남을 믿는 사람이 남에게 사기치는 경향이 강하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이는 상식적으로도 이론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사람이 좌절하게 되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며, 또한 그를 좌절하게 하는 요인이 내부나 외부에 존재하느냐에 따라, 고립적인 환경인지 집단적인 환경인지에 따라, 교육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에 따라 당사자나 집단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는 자는 외부에서 맹종할 대상을 찾을 수도 있지만, 역으로 삶을 포기하면서 움직임 자체를 거부할 가능성이 있기도 하다. 호퍼는 사람들의 특정한 처지와 심리상태에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자신의 의도에만 한정시키는 오류를 범한 셈이다.

독일의 경우에도,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인해 심각한 좌절에 빠진 독일 민중들이 히틀러를 선택한 것은 히틀러의 대중 선동이 크게 작용하였으나 그 이전에 민중들이 지지하고 참여했던 독일 사회민주당 등 진보좌파 진영이 노선과 정책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이탈리아 공산당도 마찬가지였다.

호퍼의 주장에 타당성과 시사점이 있는 부분도 있다. 대중운동의 대오 속에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 뛰어 들었거나 광신적, 맹신적 속성을 가진 개인이 일부 존재할 수 있으며,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 모두에게 맹신적 속성이 내재해 있을 수 있다. 그런 불완전한 개인이나 개인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그리고 그런 맹신적 개인이 대중운동 내에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대중운동이 애초 목적에서 변질될 수 있음을 잊지 않도록 호퍼가 경고해주는 셈이다.
특정 최근 논란이 된 '일베(일간베스트)'의 일부의 경우 극단적인 자기 혐오에서 비롯된 가능성이 있으며, 정치인 지지자 중에서 명백히 '빠' 성향을 보이거나 극단적인 이념성향, 공격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경계할 일이다.

광신적 대중운동이나 이념운동에 빠진 사람은 '광신적'이라는 특성 때문에 또 다른 광신적 운동으로 변질된다는 지적은 크게 공감이 된다. 1980년대에 이념적으로 과격하고 광신적이었던 김영환 씨 등의 뉴라이트 세력이 친일을 찬양하고 사회운동에 적대적인 사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극좌와 극우는 통한다"라는 말이 근거 없이 생겨난 것은 아니다.

"선전 선동만으로 내키지 않는 마음을 억지로 움직이지는 못하며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주입시키지도 못하고 이미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을 설득하지도 못한다"(p.156)는 호퍼의 주장 역시 시사점이 크다. 희망이 없는 선전선동만으로는 대중운동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지적이다. 2008년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지금까지 시민의식을 가진 이들과 민주당 등 정치권이 정권과 기득권에 반대하는 선전선동만으로 대중과 유권자에게 지지를 구하다가 2012년 총선, 대선에서 연거푸 패배한 것이 호퍼의 그런 주장을 입증한 셈이다.
한국의 사회운동 진영과 진보정당 진영이 선전선동 이외에 '희망'과 '대안'을 꾸준히 모색해야 함을 경고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대중운동에 대거 참여한 대중들이 "자기희생을 각오하는 열정"을 쏟아 붓는 반면 이런 주체가 만들어놓은 그 대중운동의 열매를 가져가는 이들은 "개인의 성공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는 호퍼의 주장은 선견지명이 있다. 1980년대 사회운동의 성과를 야당 정치인이 독식하고, 그 이후의 대중운동 역시 일부 출세주의적 운동가들이 보수 정치권에 몸담으면서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을 약화시켜온 것이 한국의 대중운동, 진보정당 운동사였기 때문이다.

[ 2013년 6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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