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학력 학벌주의
이정규 지음 / 집문당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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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전 부분에서 갈수록 '불공정'과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불공정'과 '불평등'은 특히 경제와 사회문화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불공정'과 '불평등'은 쉽게 '차별'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경제분야에서의 불공정과 불평등의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특혜,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생산자 및 공급자의 소비자에 대한 불공정 거래, 조세 및 재정에서의 불균형,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빈부격차의 심화로 나타난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분야도 경제문제다.
사회문화 분야에서의 불공정과 불평등도 만만치 않다. 수도권과 지방간의 불평등, 대도시와 중소도시간의 불평등, 국세와 지방세의 불평등, 지방자치제도의 미흡함, 전문가 집단의 일반직종에 대한 불공정과 불평등, 학력차별과 성차별, 장애인에 대한 차별, 지방대 및 지방 출신에 대한 차별, 지역주의에 근거한 차별, 학벌만능주의에 따른 차별과 대학서열체제 등이 문제다.
 
그렇다면 학력과 학벌은 어떤 역할이나 기능을 하고 있는가? 저자는 머리말에서 "한국사회에서 학력과 학벌은 개인의 삶의 기회 선택 뿐 아니라 개인가 집단의 사회적, 경제적 특권과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고, "학력과 학벌은 우리사회 불평등의 핵심 요인이자 공교육 위기와 혼란의 근원으로 질타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만약 그렇다면 학력과 학벌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인류 사회 전체가 공유하고 동의하는 가치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 공평하고 평등한 사회, 안락하고 행복한 사회라 한다면, 이러한 사회를 유지하고 가능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가 '기회의 균등'이다. '기회의 균등'에서의 핵심 요소는 '동일한 출발선'이라 할 수 있는데, 정치경제적 지위와 능력을 이용하거나 학력과 학벌을 이용하여 출발선이 다르게 된다면 기회의 균등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21세기의 시대정신 중 하나가 공정과 공평이라면,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학력,학벌주의의 청산 역시 사회 전체적으로 힘을 쏟아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언론에서 다루는 사회문제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직도 많은 이들이 학력주의나 학벌주의에 대해 심각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를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언론이나 여론을 주도하는 중산층들이 대부분 대학 이상의 학력과 서울대, 연대, 고대 이상의 학벌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초중고생을 아이로 둔 학부모 중에서 학력이 전문대졸 이하인 경우, 오히려 학부모들이 학력주의나 학벌주의에 심취해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소득과 자산이 학력이나 학벌 때문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산직이나 서비스직, 비정규직이나 영세상공인의 경우 언론이나 여론을 형성할 자신감과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학력, 학벌주의에 직접적인 희생자인 아이들과 학생들은 직접 주체가 되기 어려운 성장시기이며, 대학입시전쟁 이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 못하게 하는 가족, 학교, 사회적인 조건이 작용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1987년 이후 사회가 민주화되었다는 인식 아래에서 방향성을 상실한 사람들이 '성공'과 '부자'를 향해 각개약진 방식으로 흩어졌다. 그 이후 약 25년간 사회 전체를 '승자독식 무한경쟁 사회'가 지배해 버렸다. 개인들의 이러한 인식과 행동에는 정부와 기득권층, 여론주도층의 이데올로기 분위기도 한 몫 거들었다. 쉽게 예들들어 TV와 라디오, 신문과 출판물에서는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전혀 아무런 거부감 없이, 비판 없이 전파되고 받아들여졌다. 처세술과 자기계발, 경쟁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사회에서 학력과 학벌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학력과 학벌이 우리의 문화사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는지 분석한다. 그는 한국의 역사문화적인 관점에서 학력주의와 학벌주의의 형성과정과 동인을 추적하여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여기서 저자는 '학력주의'란 "학력의 실질적인 가치보다는 상징적인 가치가 능력과 실력으로 간주되어 과도하게 중시되는 관행과 경향"으로, 학벌(만능)주의란 "학연에 바탕을 두고 파벌을 이루어 정치적 파당이나 붕당, 사회경제적 독과점, 문화적 편견과 갈등 및 소외를 야기하는 관행이나 경향"으로 정의한다.
이 책은 학력과 학벌, 학력주의와 학벌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저서로서는 두 번째다. 김상봉 교수의 <학벌사회 : 사회적 주체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2004, 한길사)는 학력과 학연, 학벌(주의)를 철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저서였다. 참고로 강준만 교수의 <입시전쟁잔혹사>는 조선 후기 이후의 과거제도와 교육제도, 그리고 입시제도를 분석한 것이다.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학력, 학벌주의가 발생된 시점을 고려 초기 광종이 실시한 '과거제도'로 삼는다. 광종은 "당시 왕권을 위협하던 공신과 호족들의 세력을 약화 내지는 억제함은 물론, 왕권을 강화하고 군주에 충복할 수 있는 인재를 관리로 선발, 채용하기 위하여 과거제도를 실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학력의 가치는 과거를 통하여 관직을 획득하는 것에 그 극대점을 두었다"고 분석한다.
그는 조선시대를 '학력주의와 학벌주의의 발육기'로 규정한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는 "왕권의 강화를 위한 관리 선발의 수단일 뿐 아니라 양반집단의 세력 신장을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시대는 유생양반을 중심으로 당파가 성행하였다. "학연과 파벌로 이루어진 당파 혹은 붕당은 현대판 학벌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말 개화기 및 일제시대는 '학력주의와 학벌주의의 태동기'였다. 조선말 갑오개혁을 통해 신분제도와 과거제도가 철폐되었으며, 신분에 관계 없이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구양반 계층은 관학교육기관에서, 상민이나 평민계층은 선교사들이 세운 사립학교에 입학하였다. 일본제국주의는 한반도의 식민 통치와 더불어 학력의 제도화를 구축하였다. 일제의 학력의 제도화는 식민통치를 위한 수단이었으며, 당시 관공립 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대부분 구양반 계층이었다. 그리고 일제의 관공립 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사회 주요 분야의 요직을 차지했고, 이러한 위치는 해방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저자는 미군정기 및 대한민국 시대를 '학력주의와 학벌주의의 형성,정착기'로 규정한다. 특히 미군정이 재기용한 대부분의 고위공직자들은 "일제하에서 고학력과 학벌을 통하여 사회경제적 지위와 이익을 획득하였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그는 "현대 한국사회의 학벌주의의 뿌리는 일제시대에 그 연원을 두고 있으나 학벌주의의 발동은 미군정시대에 그 기회를 맞게 되었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 시기에 학력주의를 강화시키고 학력의 가치를 극대화시킨 주요 요인들은 "분단국가로서의 정치 상황, 피폐한 경제 현실, 미비한 제반 사회제도, 전통문화와 식민문화의 유산, 공교육체제 강화, 국민의 교육열 등의 복합적 요소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1990년대~2000년대 정부 및 공공기관 등의 자료를 토대로 학력과 학벌의 가치, 흐름, 격차 등을 분석한다. 그는 학력별 공무원 합격자, 학력별 직종별 취업자 수, 학력에 따른 산업별 종사자 수, 연도별 학력별 임금격차, 직종별 평균임금 격차, 산업별 학력별 임금격차 등의 데이터를 통해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학력은 "사회지위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직업 선택뿐만 아니라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합리적인 기제로 인식되어, 더욱 더 높고 나은 사회경제적 보상을 위해 학력의 종,횡적 분화와 경쟁의 심화를 초래"하고 있음을 밝힌다. 이런 흐름은 고학력 경쟁이 유발되고 학력 인플레이션이 진행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또한 출세주의에서 파생된 현재의 서울대를 정점으로 여타 몇몇 출신대학을 위주로 한 학벌주의 역시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오늘날 준신분화되고 있는 학벌주의는 업적주의 내지 능력주의에 기인한 학력의 순기능보다도 형식주의 혹은 명목주의에 기인한 역기능을 우리사회에 파급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단 한 번의 대학입시 결과에 의하여 개인의 학력만을 검정받은 후에, 그 결과 학연에 근거한 학벌주의에 의하여 일생동안의 삶에 프리미엄을 얻어 자신의 개인적 영달과 영화를 위해서 소아적인 지식인으로서의 길을 간다면, 그것은 이생에 있어서 개인의 능력에 대한 보상의 평가방법과 과정이 불합리하고 불공평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지식인은 사회공익성을 위하는 진정한 엘리트가 아닌 소위 출세지향적이며 기회주의적인 '기능적 지식인'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p.160)
 
"이미 학력은 사회평등화의 기제로서의 순기능보다 사회불평등을 조장하는 역기능의 도구로 전환되었으며, 학벌은 공공의 복지와 행복을 위한 엘리트의 상징성보다는 개인의 영달과 동류 집단의 이익추구를 위한 '소아적 식자(識者)의 간판'으로 전락되었다고 볼 수 있다.(p.167)
 
저자가 학력주의와 학벌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제시하는 정책 방안은 기존 연구자들과 대체로 비슷하다. 따라서 여기에서 또 다시 열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가치는 현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인 학력주의와 학벌주의가 제도교육이 정착된 해방 이전에, 즉 과거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한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역사적, 문화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학력주의와 학벌주의라는 불평등 의식과 문화가 한국인들의 문화적 유전자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는 의미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어떤 문제인지 아는 것부터 해결은 시작되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모두가 인식하고 나서야 할 것이다. 학력주의와 학벌주의로부터 피해를 받는 이들뿐 아니라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고 있는 서울대, 연고대 출신들 역시 책임을 통감하고 나서야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 2012년 9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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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한 글쓰기
오도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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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굳이 시나 소설처럼 문학작품이 아니더라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글 한 줄 쓰기는 어렵다. 그래서 페이스북의 담벼락 글이나 트위터의 기발한 140자 글을 읽다보면 주눅들 때도 많다. 하물며 기자들의 기사, 정치인들의 발표문, 변호사들의 변론글, 작가들의 작품,  고전작품을 생각하면 기가 질리기도 하다. 글 쓰기는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글 쓰기는 글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만이 가능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한글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을까 생각해보자. 한글이 대중들에게 베포되기 전에는 중국의 한자가 조선 사회의 유일한 글이었다. 당연히 사대부와 양반들만이 글을 사용했고, 백성들은 글에서 소외된 채 착취받고 고통받기만 하였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도구가 없었다. 역사시간에 배운대로만 말하면, 세종대왕이 약670년 전에 백성들의 어려움을 '어엿비 너겨' 집현전 학자들과 한글을 만든 것이다. 이제 한국인들은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누구나 글을 읽고 쓰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글을 써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글을 써보지 않았을까?
한국인이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초등학교 입학 전후에 시작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일기도 쓰고 작문도 한다. 그런데 국가가 주도하는 제도교육 12년과 대학교육 4년을 경과해서도 사람들은 글 쓰기를 두려워 한다. 교과서나 교육 취지만 고려하면 중학교만 나왔어도 글쓰기는 충분할 것이다. 그럼에도 중졸이든 고졸이든 대졸이든 모두가 어려워 한다. 왜 그럴까?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제도교육 12년이나 대학교육 4년 동안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쉽고 자유롭게 펼치고 서로 나누고 배우도록 하지 않고 학교가 제도교육의 틀에 맞추어 가르치기 때문이다. 특히 성적 위주, 시험 위주, 대학입시 위주로 이루어지는 학교 교육은 아이들에게서 말과 글을 빼앗아 갔다. 심지어 논술마저도 대학입시에 맞추어 성적이 나올 수 있는 논술을 가르치고 있으니 오죽할까 싶기도 하다. SNS상에서 자주 목격하는 욕설과 비방은 무섭기까지 하다. 이념을 떠나 정치적 적대관계를 떠나 세상과 사람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 테두리에 가두어 놓고 배설하는 욕설은 민망하기 그지 없다.
두번째는 글쓰기의 상품화와 독점화다. 이놈의 자본주의 사회는 무엇이든지 상품화한다. 무엇이든지 상품가치를 매기고 그에 따라 차별을 부추긴다. 소위 전문가라는 작자들이 이상한 기준과 수준을 설정해 놓고 자신들의 잣대에 맞으면 상품화를 부추기고 조금이라도 다르면 폄하하고 비하한다. 글의 내용과 진심을 보려하지 않고 6하 원칙이니 문법과 상징을 들이댄다. 그렇게 글쓰기를 밥벌이로 하는 자들이 글쓰기를 독점해 버렸다. 언론이나 인터넷 포탈, 논문지나 잡지마저도 엘리트나 유명인들의 글만을 모아놓고 마치 그런 글들이 최고인양 장벽을 친다. 그렇기 때문에 중학교 출신도, 대학 출신도 글쓰기에 주눅이 들고, 16년이라는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입한 다음에도 여기 저기를 찾아다니면서 글쓰기 강좌에 다시 등록한다. 이게 무슨 낭비인지... 그런 사회적인 현실은 글쓰기가 학력이나 직업, 자산이나 소득에 따라 자연스럽게 차별이 이루어진다.
 
한국사회의 많은 부분이 그렇듯이 글쓰기라는 표현행위도 분위기 상으로는 많이 대중화되었다. 글쓰기라는 행위가 보편화 되었다기 보다 '글쓰기에 특별한 계급이나 자질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보편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신, 그런 보편화는 기존 구조에 의해 또 다른 상품화를 가져온다. 유명인들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어떻게 글을 잘 쓰게 되었는지, 어떻게 글을 쓸 것인지에 대한 교재나 강습이 광범위하게 생겨났다. 하지만 스스로의 필요성과 자질을 토대로 자신의 글쓰기를 유도하지 않는 대부분의 글쓰기 교재나 교양강좌는 '상품화' 내지 '밥벌이'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런 현실에서 이 책은 의미가 크다. 저자가 애기하는 글쓰기는 우리가 기억하는 '작문'이나 '논술'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존 학계나 전문가가 말하는 '작문법' 같은 것이 애초에 필요 없다. 저자는 보통 사람들처럼 시가 뭔지도 모르고 시인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하여 오랫동안 좌충우돌하던 자신의 경험에서부터 청소년, 농민, 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글쓰기 수업을 하며 마주쳤던 어려움을 정감 있는 말투로 풀어놓는다. ‘글’이라고 하면 왠지 어렵게 느껴진다. ‘말’은 곧잘 하면서도 ‘글’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글이라면 말과 달리 뭔가 좀 그럴듯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바로 이런 생각을 깨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글을 쓰려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람, 쓰고 싶은 이야기는 넘치는데 펜을 잡으면 손가락이 딱 굳어버리는 사람, 먹고살기도 바쁜데 무슨 글쓰기냐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들의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줄 ‘속 시원한 글쓰기’의 세계를 제시한다.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의 핵심은 "자신을, 꾸미지 말고, 거침없이 토해내라"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내 행동, 내 생각, 내 모습을 그대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멋지게 꾸미고 싶은 마음에, 잘 알지도 못하는 성인군자나 유명학자의 말을 인용하거나 이런저런 비유를 끌어와 표현을 부풀리곤 한다. 내가 진짜로 느낀 것도 아닌데 마치 그런 것처럼 써내려간다. 멋지게 꾸미고 싶은 마음은 그만 내려놓고,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에 집중하자는 게 저자의 조언이다. 자기가 아니면 그 누구도 쓸 수 없는 이야기가 있으니 말이다. 지구 위에서 사는 수 십억 사람 중에서 유일한 것은 내 생각과 느낌일 뿐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저자가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만난 수강생들의 글과 신문이나 잡지에 소개된 평범한 사람들의 글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화려한 글이 아니라 그 자신이 아니었으면 하지 못했을 이야기를 솔직하게 적어낸 이런 글들을 보고 있으면 삶에서 우러나오는 글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된다. 더불어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생긴다. 즉 ‘글이라고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내 속에 있는 얘기를 옆의 친구에게 말하듯 그대로 글로 옮겨 보라.’ 이것이 글쓰기와 친해지는 첫 걸음이다.
 
"‘말과 달리 뭔가 좀 그럴듯해야 하고, 입에서 제멋대로 나오는 소리가 아닌 고상한 단어를 골라 써야 할 것 같다. 형식도 있어야 하고, 문법도 알아야 글을 쓰는 거 아닌가.’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여기선 이 말을 지겹도록 되풀이해 ‘씹을’ 것이다. 이 생각을 깨야 글쓰기는 골치 아프고 어려운 일이 아니란 걸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p.12)
그리고 "글을 쓸 때는 솔직하게, 쓰고 나선 뻔뻔하게"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솔직하게 글을 쓰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 남에게 보여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글로 썼는데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그 글은 제 생명을 잃는다. 물론 남에게 보이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조금은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처음 한두 번이 어렵지 한번 뻔뻔해지면 그다음에는 쉽다는 것이다.
우선 주변 사람들에게 쓴 글을 보여주고 반응을 들어보라. 그냥 ‘좋네’ 하고 마는 사람들은 아마 제대로 안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냥 글만 휙 던져주지 말고, 쓴 글을 직접 읽어줘라. 옆에서 속삭이듯 읽다보면 스스로 입에 걸리는 부분도 나올 것이고 자기한테는 문제가 없지만 듣는 사람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대목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런 부분을 고쳐나가면 한결 좋은 글이 된다. 그래서 SNS에 올려 지인들의 생각과 의견을 겸허하게 듣거나, 서로 멘토가 될 수 있는 한 두명이 필요할 수도 있다.
글쓰기 선생으로서 저자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수업이나 주변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의 좋은 글을 신문사나 잡지사에 보내도록 끊임없이 독려한다. 일단 활자로 찍혀 나온 자기의 글을 경험하게 되면, 주변에서 말려도 글쓰기를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글은 소통하려고 만들었다. 감추고 있으면 글이 제 생명을 잃는다. 남에게 보이는 일이 쉽지는 않다. 제 속살을 보이는 일과 같은데 어찌 쉽겠는가. 하지만 세상에 드러내야 글쓰기가 왜 즐겁고, 행복한지를 알 수 있다. 글쓰기의 참맛은 소통에 있다. 나는 뻔뻔함이 지나칠 정도다. 글 한 꼭지를 쓰면 온갖 호들갑을 떨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여준다. 글 좀 쓰는 사람이 있으면 발목을 붙들고 귀찮게 한다."(p.64)
 
책의 후반부에서는 기사 쓰는 요령, 인터뷰하는 법 등을 소개한다. 시민기자나 르포작가가 될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샛길로 새고, 이렇다 할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마냥 침묵만 지키고 있었던 인터뷰도 멋진 취재의 일부라고 이야기한다. 실제 저자의 경험담과 그를 바탕으로 한 기사문으로 확인하고 나면, 독자들도 '나도 한번 해볼까?"라고 마음 먹을 수 있다.
 
이 책 속에 담겨있는 평범한 이들의 글은 몇 번이나 내 마음을 흔들었다. 유명학자나 기자들이 쓴 것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려운 글, 현란한 글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말해주는 글, 우리의 마음을 대시하는 글이 더 감동적인 이유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시 한 편이 있다. 노동자 시인인 박노해씨의 <이불을 꿰매면서>가 내 양심을 계속 찔렀다.
 
"이불호청을 꿰매면서
속옷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의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거지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 달라
물 달라
옷 달라
시켰었다
 
동료들과 노조 일을 하고부터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가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에게 자행되고 있음을
아프게 직시한다
 
명령하는 남자,
순종하는 여자라고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
아내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나는 성실한
모범 근로자였다
 
노조를 만들면서
저들의 칭찬과 모범표창이
꼬리에 매단 방울소리임을,
근로자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보살핌이
허울 좋은 솜사탕임을
똑똑히 깨달았다
 
편리한 이론과
절대적 권위와 상식으로 포장된
몸서리쳐지는 이윤추구처럼
나 역시
아내를 착취하고
가족의 독재자가 되었었다
 
투쟁이 깊어갈수록
실천 속에서 나는
저들의 짜꺼기를
배설해낸다
 
노동자는
이윤 낳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관계는
신뢰와 존중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호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 2012년 9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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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3 - 에우리피데스에서 알렉산드로스까지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 책과함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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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리스인 이야기> 3부작 중 마지막 편이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4세기 초 비극작품 작가인 에우리피데스에서 그리스의 도시국가가 사라져버린 기원전 3세기의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의 인도 원정까지를 다룬 것이다. 이 시기는 장구하게 이어졌던 그리스 문명의 황혼기였다. 저자는 그리스 3대 비극의 마지막 주자 에우리피데스, 헤로도토스와 함께 그리스 역사의 쌍벽을 이루는 투퀴디데스, 소크라테스를 이어 그리스 철학을 집대성한 플라톤, 세상 모든 것을 집대성한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드로스의 정복 활동과 그가 만든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그리스 문명의 양상들, 에라토스테네스와 아르키메데스 등 근대 학문에 영향을 끼친 과학자들, 끝으로 인간의 구원을 설파한 에피쿠로스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시기가 "아마도 과학만이 발전을 계속한 유일한 인간 활동으로 기억될 것이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리스 문명의 쇠락이 단순한 쇠락이 아님을 주장한다. 아니 문명의 역사 자체가 탄생과 소멸, 그리고 소멸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탄생이 이어짐을 말한다. "문명이나 신앙은 죽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탐구하고, 새로운 시와 지혜의 세계를 창조하며, 늙어갈수록 희망과 확신을 가져야 할 새로운 이유를 스스로 부여한다. 그러므로 문명의 쇠퇴기는 동시에 새로운 발견의 시기이기도 하다. 문명은 변화를 거듭할 뿐 죽지 않는다. 문명의 삶이란 말하자면 항구적인 태어남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저자의 해석으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한 그리스 도시국가의 멸망은 '현대식 '국가'라 할 수 있는 왕조를 탄생시키면서 다시 태어났고, 그리스 문학의 비극과 희극으로 신과 인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사회와 사상의 격변을 통해 플라톤에 의해 기독교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에우리피데스는 작품 <메데이아>는 자연과 신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가던 인간이, 원칙과 제도, 그리고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던 인간이 스스로의 정념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그 '악마적 힘'을 통해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지, 즉 우리도 알지 못하는 우리 마음의 복잡다단함이다. 또한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이 힘은, 우리 자신이 그 힘에 대항할 수 없고, 그 힘은 우리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임을 말한다. 저자는 또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세계의 무질서, 무정부주의적인 감정, 의지의 불안정성에서 비롯되는 비극성을 읽어낸다. 그리고 <박카이>에서는 "전지전능함을 통해 발현되는 신의 위대함을 포착"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전체는 인간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한다. "신들은 아무리 진노했다고 해도 우리 인간들처럼 행동해서는 안된다."라고...
 
저자는 플라톤이 "역사를 배제하려 했다"고 평가한다. 플라톤은 아주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세속의 도시, 시민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타락한 민주주의 대신에 모든 영혼이 사후의 내세에서 만나게 되는 곳, 즉 천상의 도시, 천상의 왕국인 신성한 세계를 내세웠다. 그는 신과 밀접했던 그리스의 문화와 종교 대신에 신과 인간이 완벽하게 분리되는 내세와 유일신의 토대를 닦은 셈이었다. 플라톤이 그러한 종교의 기초를 닦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가 투퀴디데스는 기원전 5세기 후반 3분기부터 어떻게 해서 그리스의 내전이, 필립포스나 알렉산드로스 대왕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도시국가들을 파괴해 나갔는지를 뛰어난 혜안으로 기술한다.
 
저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천재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아버지인 필립포스 왕이 다져놓은 초석을 기반으로 그리스의 정치적 공동체에 결정적인 치명타를 가했다. 그의 치명타는 도시국가를 파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 말하자면 현대적 국가의 형태를 창조했다. 그의 놀라운 대모험 이후 동방 세계에서는 군주들이 지배하는 거대한 왕국들이 왕조를 거듭하며 명맥을 이어나갔다. 이집트의 프롤레마이오스 왕조나 서아시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등이 대표적이다. 아마 로마의 초대 황제인 율리우스 카이사르 역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은 곧 그리스식 지혜와 힌두식 지혜의 만남이었다.
 
* 인상 깊은 문장 :

- "에우리피데스는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는 동안 이처럼 갈림길에서 망설이는 그의 모습을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신이란 곧 전지전능함이며, 전지전능함이 신을 정당화하는 요건이라면, 디오뉘소스는 분명 정당화될 수 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하건 말이다. 소포클레스도 말했듯이, “신들이 무슨 짓을 하건 그건 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 신은 우리에게 죽음을 부여할 뿐 아니라, 우리를 우리와 더불어 이 세계를 춤추게 하고 노래하게 하는 본질적인 힘이다. 신은 사는 기쁨, 쾌락이며 동시에 고통이다. 신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눈부신 신비다. 그러니 에우리피데스는 질서정연하고 이성적이고 명쾌한 정의로 이루어진 세계를 버리고 광기의 신과 총체적인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기는 동물적인 기쁨만이 중요시되는 박코스 행렬에 합류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p.86~87)
 
- "플라톤이 구상한 국가는 기원전 4세기에 이미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균형 잡힌 국가, 그 어떤 힘도 예정되어 있는 확고한 질서를 흔들 수 없는 국가라고 하는 거짓 이미지를 선사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바로 이 점이 플라톤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국가의 가장 이상한 면이다. 절대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니. 그가 제안하는 국가에서는 진보가 철저하게 배제된다. 이 국가는 영원히 완벽한 존재로 제시된다. ... 요컨대 플라톤은 역사를 배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 역사는 배제하려 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인간을 만든다. ... 플라톤이 [국가]를 쓰면서 민주주의의 사망신고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믿었던 그 세기로부터 여러 세기가 지난 후, 민주주의를 향한 행보는 안정된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코뮌과 더불어 보란 듯이 재개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1789년 ... 1848년에도 ... 계속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를 뒤흔든 열흘 ...”로 이어진다. 인류의 역사는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p.168~169)
 
- "젊은 왕은 또한 칼뤼아나(그리스식으로는 칼라노스라고 하며, 브라만을 뜻한다)라는 이름을 가진 고행자에게 커다란 애착을 보였다. 죽을 날이 가까워오는 것을 느낀 그의 요청에 따라 알렉산드로스는 장작더미를 쌓게 했다. 이윽고 장작더미에 올라간 칼뤼아나는 놀란 군대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마디 탄식도 업이 불꽃 속에서 타죽었다. 친구의 자발적인 죽음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던 알렉산드로스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 기독교의 제사장에서 견유 철학자로 변신한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 페레그리노스가 올륌피아에서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 이렇듯 알렉산드로스가 인도를 지날 무렵에는 그리스식 지혜와 힌두식 지혜가 마주치고 있었다."(p.298)

- "칼리마코스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는 동시대인에게 이제는 고전이 된 과거의 위대한 시인들의 모방을 장려하지 않았다. ... 그는 구닥다리 시 장르는 죽은 지 오래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호메로스가 부활하는 일도, 비극 작품들이 다시 소생하는 일도 없을 것이었다. 그는 서사시가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헛되이 매달리고 있는 연작시의 상투성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그는 자신의 격언시에서 “나는 연작시를 증오한다. 누구나 지나가는 상투적인 그 길.... 나는 공동 우물의 물은 마시지 않을 것이다. 대중적인 것들은 나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토해냈다."(p.441)

- "크고 작은 혁명들이 우리가 사는 우주를 전복시킨다... 혁명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으며, 때로는 이 흐름을 가속화한다. 새로운 계급, 새로운 민족, 계급 없는 민족들이 이 세계를 관통한다. 에피쿠로스가 남긴 유산은 그들의 것이다. 그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몽테뉴는 에피쿠로스에게서 잊고 있던 조상을 발견했으며, 그래서 그와 한 가족이 되었고, 그의 생각을 이어받았다... 헬베티우스는 ‘행복’에 대해서 장문의 시를 썼고, [쾌락 예찬]이라는 글도 남겼다. 아나톨 프랑스, 앙드레 지드 등도 그에게 동조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에피쿠로스를 인간 해방자들 중의 한 명으로 예우한다.
인류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했는가? 인류는 신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했는가?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에피쿠로스가 다시 부상한다. 언제나의 모습 그대로, 하늘의 은하수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p.594~595)
 
[ 2012년 9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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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2 - 소포클레스에서 소크라테스까지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 책과함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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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2>에서는 기원전 5세기경의 문인 소포클레스로부터 기원전 399년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고 죽은 소크라테스 시대까지를 다뤘다. 자연에 대한 공포와 신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난 그리스인들은 인간 만의 고유한 문화, 문명을 창조하기 시작한다.
 
아테나이는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에게 승리를 거두었으며, 10년 뒤에는 '테르모필라이 전투'가 발발하여 그리스 연합군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또 승리를 거두었다. 이를 바탕으로 아테나이가 주도하여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을 묶은 '델로스 동맹'이 탄생한다. 댈로스 동맹은 100년을 이어가지 못했고, 시켈리아 원정에서 참패한 아테나이는 기원전 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하여 주도권을 상실한다.
이러한 역사로 이루어진 그리스의 기원전 5세기 약 100년은 과학의 시대, 철학의 시대, 문학의 시대였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그리스 문명의 전성기'라고 부른다. 그 시기에 아테나이 도시국가의 페리클레스는 그리스에 맞는 고유한(하지만 한계가 분명했던)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였고, 소포클레스와 아이스퀼로스, 아라스토파네스와 에우리피데스는 문학의 꽃을 피워냈다. 여러 철학자들 사이에서 소크라테스가 태어나 열변을 토해내던 시대이기도 했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와 그리스 비극의 풍경, 그리스의 조각 예술, 탈레스와 데모크리토스를 통해 본 그리스 과학의 태동, 다시 소포클레스와 <오이디푸스>,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지만 매우 중요한 그리스 시인인 핀다로스, 지리학자이자 여행가로서의 헤로도토스, 의학의 아버지 힙포크라테스와 그리스 의학, 아리스토파네스의 그리스 희극이 번성했다.
 
이 책에서는 문학작품, 특히 비극에 대한 저자의 소개와 분석이 뛰어나다. 이 시기의 그리스 문학작품은 당시 그리스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신과 자연과 인간에 대해 고민했는지 말해주고 있다. 대표적인 비극 작품인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3천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도 현대인들의 가슴에 무언가를 던져 준다. 아니 저자인 앙드레 보나르가 <안티고네>라는 작품 속에서 현대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껴야 하는지 알려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소포클레스의 천재성과 예술성을 밝혀낸다. 나는 작품의 작가인 소포클레스보다 작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저자에게 더 큰 공감을 얻게 되었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후계자인 두 형제가 서로를 죽인 다음 이야기로 진행된다. 두 형제의 외삼촌인 크레온이 왕위를 이어받아 원칙적인 정치를 펼친다. 애국자인 에테오클레스의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르게 하되, 반역자로 지목된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불허하고 짐승의 밥이 되도록 방치한다. 하지만 두 형제의 동생인 안티고네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안티고네는 밤중에 몰래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르고 체포된다. 크레온은 안티고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안티고네를 사랑했던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안티고네의 사면을 요청한다. 결국 안티고네는 목을 내 자살하고 하이몬은 크레온에게 반항하다가 칼에 찔려 죽고 크레온의 아내는 아들의 죽음에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크레온은 고통을 외치며 자신의 죄를 고한다.
<안티고네>는 안티고네와 크레온, 두 사람의 대결로 압축된다. 저자는 "두 사람이 다르면서 동시에 닮은, 동일한 성격을 지닌 정반대의 영혼, 타협할 줄 모르는 결연한 의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투지에 불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가차 없음으로 무장한 의지를 지녔다"고 평가한다. 한 사람은 자기 아들에게, 또 한사람은 자기 동생에게 '전부를 주지 않을 거면 아무것도 주지 말 것'을 강요한다. 자신이 택한 절대적인 선택을 남에게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저자는 두 사람이 "똑 같은 광신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분석한다. 다른 모든 소중한 것들은 얼마든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리고 비극이 끝나갈 무렵, 두 사람에게는 고독이라는 위협이 찾아온다. 다만 저자는 안티고네의 고독과 크레온의 고독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안티고네에게는 사랑으로 고양된 영혼이 느껴지는 반면, 크레온에게는 사랑이 닫힌 이기심만을 느낀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러한 크레온마저도, 우리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에 미워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그는 물론 가볍지 않은 죄를 저지른 죄인다. 하지만 그렇고 그런 추상적인 원칙에 의거해서 그를 손가락질하기엔 그가 저지른 실수가 우리가 늘 저지르는 실수와 너무나 닮은 꼴"이라 말한다. "크레온은 우리가 늘 경험하는 비극적인 일상의 일부다.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아니 자신의 위치에서 옳았으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소포클레스는 그 과실, 즉 분열되어 있는 우리의 인간성과 그 인간성과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세계에 대한 뼈저린 인식을 안겨준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는 안티고네이면서 동시에 크레온"이며, 두 사람이 겪는 갈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리스의 비극 작품에 대한 가치를 애기한다. 비극 작품은 '가치의 제안', 아니 '가치 있는 삶의 방식의 제안'이며, 모색으로서 우리 안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준다는 것이다. 안티고네와 크레온, "이 두 인물은 서로 대립하면서 의지하며 결국 포개지는 인간 삶의 양면 같은 존재들이다."
크레온은 우리에게 '국가'와 '운명', '질서'를 의미한다. 그 질서의 극한은 우리도 잘 아는 '파시즘'이다. 안티고네는 '양심'이자 '자유'다. 법이나 질서는 양심에 우선할 수 없다. 저자는 "안티고네가 자유라면, 크레온은 운명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우리에게 고대의 자연철학자로 알려진 탈레스는 단순한 자연현상들로부터 물에 대한 개념, 즉 물이 모든 원소의 근본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저자가 탈레스에게서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은 "그가 자연이나 인간이 발명해낸 기술들을 유심히 관찰했으며, 이 과정에서 어떠한 초자연적인 설명도 배제했다"는 점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서구 자연과학사에서 '원자론'을 처음 제기했다. 그는 신성을 개입시키지 않고 가장 객관적인 방식으로 이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역시 "이오니아 지방의 오래된 유물론을 계승한 것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진정으로 무신론적인 최초의 학설"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힙포크라테스를 '철저한 사실주의자'로 평가한다. 힙포크라테스는 자신이 정립해가고 있는 학문의 한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치유는 자연의 도움과 인간 신체기관의 도움이 어우러져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고대 그리스 노예제, 여성차별 사회에서 '노예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는 의학'을 펼쳤다. 그야 말로 그리스에서 가장 순수하고 완벽한 인본주의를 보여주었다. 고대 그리스의 '힙포크라테스 선서'를 읽어보면, 근현대의 의사와 의학자들이 얼마나 변질되었고 기득권에 매달리는지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당시의 그리스와 아테나이는 도시 간의 전쟁, 파당으로 인한 전쟁, 민주주의 붕괴 등으로 그리스 문명이 쇠퇴하기 시작한 때였다. 아테나이의 경제는 자립하지 못하고 동맹국들의 조공과 노예들의 노동만이 존재했다. 100년 만에 시민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노예의 수는 20만 명에서 40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아테나이에는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프로디코스 등 소피스트들이 많았다. 그들은 수업료를 받았고, 소크라테스는 "지혜의 거래는 아름다움의 거래와 마찬가지로 매춘이라 불러야 마땅하다"면서 돈을 매개로 지식을 하고파는 일을 대단한 수치로 여겼다.
아테나이 법정에 제출된 소크라테스에 대한 기소장에는 두 가지 죄목, 즉 '신을 믿지 않는 죄'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가 적혀 있었다. 그는 신성이라는 확고한 실체에 대해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을 유일하게 말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했기 때문이다. 재판관들은 죄의 유무에 대한 판결에서 유죄 281표, 무죄 220표로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죄인에게 어떤 형벌을 내려야 할지를 두 번째 재판에서 결정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한 선처를 바라는 대신 "나에게 보상을 달라.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 두 번째 재판은 거의 만장일치로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는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판관들에게 말했다. "명심하십시오! 사람들을 죽인다고 해서 진실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진실은 한층 더 강력하게 공격해 올 것입니다. 진실을 위해 종사하는 자들의 소리는 선한 사람이 됨으로써만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고발한 자들보다 훨씬 더 자신의 죽음을 원했다고 추측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그는 그냥 사는 것보다 재대로 사는 것을 원했기 때문에 시민법정의 판결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아테나이 시민들이게, 후손들에게, 그리고 21세기의 우리에게까지도 원칙을 말하고자 했을 뿐이다. 부당하게 살아남지 말라고...
 
* 인상깊은 문장 :
 
-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판관들과의 대화였다. 이 대화야말로 아테나이 민중들과 나누는 결정적인 대화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진의를 알리고자 시도했으며, 자신의 임무를 설명했다. …… 다시 말해서 자신의 목숨을 몇 년 더 연장해주는 차원을 떠나 사회의 병폐 중에서도 최악의 병폐인 불의로부터 시민들의 영혼을 구제하고자 했다. 피고 소크라테스가 주도한 논쟁의 최종 목표는 아테나이의 구원이었던 것이다. “당신들이 나에게 사형을 선고한다면, 그 결정은 내가 아닌 당신들에게 부당하게 해를 입히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나는 지금 당신들을 변호하고 있습니다.”"(p.478~479)
 
[ 2012년 9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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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1 - 호메로스에서 페리클레스까지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옮김, 강대진 감수 / 책과함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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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은 자신들의 문명의 뿌리를 고대 그리스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유럽과 북아메리카 대륙에는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된 지명이나 인명이 많다. 신화와 전설도 21세기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학문과 문화가 재해석된다.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영화 <300>과 <알렉산더>, 그리고 <트로이>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서구인들과 서구문화, 그리고 서구에서 출발한 학문들은 고대 그리스를 잘 알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리스 ‘신화’ 이외에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은 많지 않다. 서구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고대 그리스에 대해 알려면 신들의 이야기가 아닌 그리스 신화를 창조해낸 그리스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적절하다. 저자 앙드레 보나르는 역사의 눈으로 그리스를 바라본 전문가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그리스인의 모습과 생활상, 그 사상까지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리스인 이야기 3부작>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논문이나 연구서가 아니기 때문에 인용이나 복합한 고증 내용은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보통 우리가 딱딱하게 여기는 지배자나 왕 중심의 '통사'도 아니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에서 실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인문과 사건, 그리고 문화와 작품을 중심으로 그리스 역사를 풀어간다. 자연을 이겨내고 문명을 이루어가는 그리스인의 발자취를 찾고 설명해준다.
그래서 이 책에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와 다른 재미가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 등 고대 그리스 문인들의 작품을 문명으로 나아가는 그리스 시인의 역작으로 평가하는 등 고대의 작품에 대한 저자의 안목이 탁월하게 느껴져 절로 감탄이 나올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이 책은 3부작 중 첫 번째로 '그리스 문명의 탄생'에서부터 그리스 중에서 가장 처음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었던 아테나이의 페리클레스 시대까지 다룬다. 그리스 문명 탄생의 역사적 배경, 그리스 문명 초창기의 사건들, 그리스 민족의 전쟁사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녹아 있는 인본주의, <오뒷세이아>를 통해 본 그리스 민족의 바다 정복기, 그리스 최고의 서정시인 아르킬로코스와 자유주의 시민의 탄생, 미지의 뮤즈 삽포와 사랑의 아름다움, 아테네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기원 그리고 상업의 발달과 솔론의 사회개혁, 노예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통해 본 그리스 민주주의의 한계, 인간 중심의 철학인 그리스의 종교, 그리스 비극의 정점인 <오레스테이아> 3부작, 아테네 민주주의의 완성자 페리클레스 등을 다룬다.
1부는 신과 인간에 대하여, 비극과 희망에 대하여, 운명과 정의에 대하여 그리스인들이 문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재미있게 말해준다.

저자는 서문에서 고대 그리스의 본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선입견 속에 깊이 새겨진 '신화'를 깨뜨릴 것을 요구한다. 다른 지역,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그리스, 그리고 그리스인도 처음에는 "원시적인 종족"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 중의 그리스'라 할 수 있는 "고대의 아테나이에서도 미신 같은 것이 존재했고, 원시인에게서나 볼 수 있는 '엽기적인 풍속'도 그대로였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기원전 5세기에 벌어진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총사령관 "데미스토클레스는 승리를 위하여 디오뉘소스 신에게 아테나이 최고집정관의 친조카들을 제물로 바쳤다. 그는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세 사람의 목을 졸라 죽였다". 오늘날 유물론의 창시자로 알려져있는 데모크리토스는 "월경 중인 여자 아이들은 수확을 앞둔 밭 주위를 하루에 세번 뛰어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월경 때 흘리는 피가 해충을 박멸하는 항생제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렇게 미개한 원시 종족 수준이었던 그리스인들이 자연의 법칙을 깨달아 알고 자연에 대해 반격을 가하는 과정이 바로 '문명'임을 말한다. 발칸반도에서 여러 번 남하한 그리스인들은 원래 유목민이었다. 그러다가 헬라스라는 땅에 나려와 자리를 잡고 척박한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그들이 상업을 하게 된 것은 단순히 모자란 것들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올리브나무애서 나온 기름과 포도에서 짜낸 포도주를 이웃 아시아 땅에서 만든 옷감과 교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배를 타기 시작한 것은 늘어나는 인구를 먹이기 위해 밀과 보리를 흑해 북쪽에서 얻어오려면 바다르루건너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목민이었다가 농민이 되었기에 그리스인들은 바다를 알지 못했다. 바닷가에 살던 원주민에게서 새롭게 배운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어에는 '바다'라는 단어가 없었고 원주민들이 썼던 단어 '탈랏사(thalassa)'를 베껴 쓸 수 밖에 없었다.

밭에서 힘든 노동을 하고 사나운 배를 타면서 생사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그리스인들은 다른 원시인과 마찬가지로 '노동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자는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노동요의 리듬을 개발해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것이 시, 즉 서사실고 설명한다. 오래된 영웅들의 삶을 풍부하고도 절제된 리듬에 담아낸 것이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희망과 용기가 솟아났다. 그 중에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다.
이렇게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와 서정시, 극시들은 언어로 빚어낸 그리스의 과거와 현재가 담겨 있다. 그 속에는 그리스인들의 고통과 희망이 들어 있다. 상상의 세계 속에서 마주치는 꿈과 환상이 있다.

그리스 인들은 무섭고 사나운 자연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세상의 창조주로서 '신'을 상정하게 되고, 그 신들에게 의지했다. 신들의 형상은 가장 이상적인 인물의 형상으로 삼았다. 그와 동시에 그리스인들은 자연을 극복하고 인간을 좀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수학을 만들고, 천문학을 개발했다. 물리학과 의학의 기본 지식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그리스 지역의 지리적 현황과 경제구조는 그리스가 자연스럽게 도시국가로 발전되도록 이끌었다. 도시는 문명의 힘으로 사회가 되고,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은 평등하게 문명을 향유할 권리를 가졌다. 그래서 불완전하게나마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를 고안한 최초의 민족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그리스인 이야기 3부작>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 인상 깊은 문장 :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그들은 기질이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인간이면서, 인류의 두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위대한 아킬레우스는 통재로 불타고 있는 한 시대에서 마지막 빛을 발한다. 약탈과 전쟁으로 얼룩진 아카이아인들의 시대는 이제 아킬레우스와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 훗날 우리 속에서 언제든 다시 부활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헥토르는 새로운 시대를 선언한다. 가족과 땅과 공동체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시대가 왔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단지 잘 싸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타협할 줄도 안다. 협정을 맺을 줄도 안다.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다음 세대에서 더 넓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할 것이다.
<일리아드>가 위대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위대한 시편은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라는 상반된 인간형을 통해서 인간의 고결함과 정의로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있었고, 그들이 인류의 역사를 번갈아 가며 이끌어왔으며, 지금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계속 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p.94)
 
"오뒷세우스는 지혜로운 인간의 상징이다. 인간의 지혜는 실질적이고 창조적이다. 세상에 대한 의미 없는 지식을 쌓아놓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적절한 대안을 제시할 줄 아는 그런 지혜다. 신과 적들은 인간이 가는 길목마다 방해꾼을 심어놓고 인간을 끊임없이 불행의 나락으로 인도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지혜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다. '재주꾼' 오뒷세우스가 이기는 이유다."(p.121)
 
"혹시라도 그리스가 민주주의를 발명했다고 한다면, 그 발명품이란 어린아이의 입안에 난 이와 같다. 반드시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할 민주주의였다. 곧이어 그리스는 죽고 새로운 민주주의가 다시 태어날 것이다."(p.235)
 
"신을 끊임없이 의인화해서 그리스 종교가 노리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인간이 도달해야 할 목표를 설정해서 보여주는 일이다. 인간이 다다라야 할 최후 지점이 올림포스의 산이다. 그 간격을 그리스 사람들은 끊임없이 좁혀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이르면, 다시 말해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면, 신은 인간의 세계로 내려와 도시와 공동체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p.260)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등 아이스퀼로스의 비극이 보여주는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의 투영이다. 그래서 진보적이다. 아픈 부분을 자극하고 혁명을 독려한다. 얼핏 보기에는 화해를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 화해하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불의에 맞서 싸우라고 부추긴다. 그래야 공동체에 화해가 있고 발전이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비극은 진보를 넘어 혁명적 자세에 가깝다."(p.279)

[ 2012년 9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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