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동노 외 옮김 / 창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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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 [서평]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저, 한기욱 등 공역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Korea's Place in the Sun>를 읽고 / 2001. 10., 751쪽, 창비

박세길, 조성오, 한홍구, 강준만 등 국내 역사학자들의 한국 근현대사를 읽은 후, 미국인 역사학자로서는 드물게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전공으로 하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 대학 교수의 현대사 서적을 반갑게 읽는다. 그는 1986년에 첫 발간한 <한국전쟁(Korean War)의 기원>으로 한반도에서도 많이 알려진 편이다.(두 책 모두 '한국(인)'은 'Korea(n)'으로 남북을 아우르는 표현이며, 역자들이 번역상 편의 때문에 한국(인)으로 표기한 것 같다.)
그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발간한 이후,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불행하게 이끈 원인과 남북한의 문화적 역사적 전통이라는 과점에서 연구를 계속하여 1997년 이 책을 다시 발간했다. 한국어판을 위해서 특별히 원고지 150매 정도를 추가했다고 한다.

책의 원제목은 'Korea's Place in the Sun : a modern history'다. 저자는 원 제목이 '해 뜨는 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그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실로 우리의 흥망성쇠와 주기적인 일식을 관장하는 세계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선진산업국들이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는 산업시대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태양게에 한국은 이제 막 합류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제목에서 의미한 바이기도 하다."
커밍스 교수와 <한국현대사> 한국어판이 반가운 이유는 서문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책을 발간하게 된 궁극적인 이유를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 문장으로 말한다. "이 책을 한국인(Korean)의 화해와 통일에 헌정하고 싶다."

몇 마디 문장이 아니라 실제 책을 읽은 후 국내 역사학자들의 역사서와 비교했을 때, 커밍스 교수의 한국현대사 연구에서 두드러진 차이는 한민족의 5천년 역사 전체에 연속적으로 이어져오는 사상이나 철학, 또는 사회문화적 흐름, 연관성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근대 이전의 한국사에서 '미덕'을 발굴하여 1960년대 이후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추진 과정에서 공통된 '미덕'을 발견했음을 주장한다. 또한 고려와 조선에서 형성된 파벌주의와 학벌주의가 현대의 남북한, 특히 남한에 뿌리깊게 잔존하는 모습과 고구려와 발해의 중국에 대한 저항이 북한의 자주독립 정신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신라가 외세를 끌여들여 백제와 고구려에 승리한 것이 고려 말기의 원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와 조선 중기 이후 명나라에 대해, 말기에 청나라에 대해 의존한 모습과 연관성이 있으며 현대에 들어와서도 기득권층이 대부분 친일파로 변졀하였고 미군정이 들어오자 또다시 미국에 굴종하는 모습으로 이저졌다는 역사적 해석이 독특하면서도 시사점이 있다.(학문적 연구로서 타당성 검증과 별개로...)

저자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이 19세기 말부터 싹트고 자라온 내전이자 국제 전쟁이고, 짧게는 1948년 9월 미-소군의 한반도 점령 이후 자주독립과 통일 위한 전쟁이자 길게는 20세기 초에 시작된 제국주의의 침탈에 대한 자주독립 투쟁의 최종전이라는 성격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판단은 결코 바뀐 적이 없다. 무엇보다도 1950년 6월에 전쟁이 시작된 것은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전쟁에 대한 내 책의 전체적 강조점은 내전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역사 속에서 자라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가가 그 복잡한 역사를 알고 있는 한, 수많은 요인으로 빚어지는 전쟁에 대해 어느 한쪽을 비난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p.08)
대부분 학자나 정치가, 언론은 "한국전쟁이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두고 격렬하게 논쟁하지만, 저자는 미국의 남북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처럼 한국 전쟁 역시 "언제, 누가 시작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쟁의 성격이 무엇"이며 어떤 결말을 맺었고 어떤 교훈을 얻느냐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커밍스 교수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증하고자 하는 내용 중 하나로 독자들이 주의 깊게 읽어야 할 부분이 바로 위 인용문과 관련된 내용일 것이다.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의 성격이 '내전'이며, 그 내전은 가깝게는 1945년 8~9월 미-소 양 강대국이 한민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임의로 한반도를 군사점령하면서부터 자라났고, 길게는 20세기 초 미국-영국-중국-일본 등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군사적 전리품 나눠먹기식으로 일제가 한반도를 강제합병시키는 것에서부터 자라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커밍스 교수는 이 책 <한국현대사>에서는 현대의 남북한 체제와 문화를 비롯하여 20세기 초중반 한반도를 격동으로 들끓게 한 한민족의 전통과 문화가 어떤 특징과 장단점을 형성하고 있는지 분석하기 위하여 적지 않은 한민족의 사료와 문서들, 즉 고대사와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와 조선에 대해 방대하게 연구했다. 서구인으로서 '미덕(美德)'이라는 한자와 '마음(心)'이라는 한글의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의 열정이 아름다웠다. 실제 그는 그런 노력을 통해 '미덕'과 '마음'이 한국인들에게 의미하는 바를 거의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현대 남한의 사회체제와 문화는 물론 북한의 사회체제와 문화도 지난 5천년 간 이어져온 한민족의 전통과 뿌리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 전통과 뿌리가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이루어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국인을 비롯하여 서구 학자들 중에서 커밍스 교수만큼 한반도와 한민족에 대한 이해와 애정에 기초하여 한국(Korea)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적다는 것이 한민족으로서는 불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한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브루스 커밍스 교수에게 열 번이라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커밍스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냉전과 전쟁, 분단체제라는 민족사적 불행과 아픔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친일파 후예인 수구세력들이 삭제하고 감추어버린 한국 근현대사의 진실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수구세력이나 친일파 후예들이 아닌 모든 한국인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과 관계없이, 남북 갈등과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바라는 이들이라면 꼭 한 번 읽을 것을 권유한다.
우리의 자식들, 후손들에게까지 분단의 아픔과 분단을 악용하여 부당하게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유지확대하려는 악당들에게 이 사회를 물려줄 수는 없으니...

마지막으로 커밍스 교수의 한국현대사 연구에서 아쉬운 점은  미국인으로서 학자적 입장에서 한반도에서 진행된 사건과 상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관련 자료도 한반도와 한민족에 관한 것들을 중심으로 수집하여 연구한 결과인 셈이다. 따라서 한민족의 입장 또는 미국의 국제관계사라는 관점에서 연구하지 않은 한계는 존재한다. 그것이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나 한홍구의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등 국내 역사학자들의 현대사 저술과 다른 부분이다. 일종의 당파성이나 주체적인 관점이 없다고 할까...
그런 면에서 커밍스 교수와 이미 작고한 존슨 교수가 함께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같은 미국인 학자로서 찰머스 존슨 교수는 19세기 이후 미국의 군사외교적 정치경제적 역사를 다룬 <블로우 백>과 <제국의 슬픔>을 21세기 상반기에 출간했다. 그 책 안에는 제국주의 및 군국주의로서 미국이라는 국가 또는 지배집단이 19세기 이후 자국 내에서 어떻게 작동되어 왔으며, 한반도를 비롯한 제3세계를 상대로 어떤 전략과 행동을 취했는지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각 장의 내용 소개와 평가는 아래와 같다.

제1장 '미덕'에서 저자는 근대 한국의 배경에 대해 소개하는 부분으로 서기 1년부터 1860년대까지를 망라한다. 그는 이 장에서 한국의 과거 중 동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건져내려고 한다. 그는 조선을 봉건국가가 아니라 '농업관료제' 사회라 새롭게 규정한다. 타당한 분석이라 공감이 된다.
이 장은 미국인들, 미국 정치가들이나 행정가, 언론인, 학자,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한국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언어, 장단점, 특징과 고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알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영어권 독자들이 한반도와 한민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포함시킨 단락이다.

제2장 '이익'은 1860년에서 1904년까지를 다루는 근대사의 첫 장으로, 이 시기의 한국은 열강의 출현에 의해 근대의 인장이 찍힌다.
왕조와 사대부들의 기득권 정치와 도탄에 빠진 민중들의 삶. 사회 전분야에서 변화의 흐름이 일어나지만 이를 제도적 문화적 행정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지배계층. 살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항쟁을 일으키거나 만주로 중국으로 탈출하는 민중들. 제국주의 열강들의 제3세계 침탈과정에서 한반도에 들어닥치는 군사력과 한반도 내 전체 민족과 민중의 삶과 국가를 보호하지 못한 채 좌충추돌하는 지배계층. 민중들의 최대 저항인 갑오농민전쟁과 외세를 등에 엎고 지키지도 못할 기득권을 지키려는 특권층들. 가슴 아픈 역사적 사실이다.
그동안 국내 제도교육 과정의 국사 시간에 수능과 시험만을 위한 역사교육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커밍스 교수가 인용하거나 분석하는 내용 중에 처음 보는 정보나 처음 접하는 설명구가 많아 유익한 장이다.

제3장 '망국'은 1905년에서 1945년을 다루는 데, 일본의 한국합병, 즉 한국보다 더 빨리 산업시대에 적응한 일본이 한동안 이웃나라를 올라탈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설명이다.
일제 식민지 강점 기간 동안 한국인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처절하게 저항하는 한국인과 일제에 머리 숙이고 기득권을 나누어 가지려는 친일파 매국노들, 그리고 이도저도 나서지 못하고 하루하루 생존을 영위해가며 버티는 민중들이다. 저자는 국내 언론이나 역사책에 누락되어 있는 친일파 매국노와 항일무장투쟁 등 민족지사들을 이름과 사실 행적과 활동에 대해 상당한 정보와 자료를 근거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 이후 해방때까지 일제의 필요에 의해 친일파 매국노 한국인들이 대거 식민지 관료체계에 편입되어 5~8년 동안 집중적으로 동족을 착취, 수탈, 탄압,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제4장 '열정'은 1945년에서 1948년까지, 제5장 '충돌'은 1948년에서 1953년까지를 다루는데, 일본 패배의 잿더미에서 시작해 하나의 반도 내에 자리잡은 두 개의 완전한 분단국으로 끝이 난 한국의 결정적인 위기를 탐사한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한국전쟁의 기원>과 동일한 장이다. 커밍스 교수는 미-소 양대 강국이, 특히 미국이 애초에 한반도를 군사점령하지 않았다면 한국인들이 스스로 친일파 매국노를 처단하고 자주독립국가를 세웠을 것이며 한국이 미래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 평가한다. 비록 그 과정에서 일부 친일파들이 처단되었다 하더라도 1945년~1953년에 이르는 수백 만명의 인명피해는 없었을 것이고 내전과 분단도 없었을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해방 후 북한사회이 전개과정을 복기하면서 한반도 전체가 사회주의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비록 한반도가 일시적으로 사회주의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민족이 판단하여 선택할 문제이고, 마찬가지로 내전을 통해 수백 만명이 희생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설사 사회주의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몇십 년 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결국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되돌아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점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이 장들에서 그는 미국의 잘못된 정책과 판단, 군사적 강제점령과 친일파 매국노에게 남한의 권력을 안겨주고 남한을 군사경제적으로 종속시킨 것 등에 대해 매우 강력하게 비판을 가한다.

제6장 '한국의 일출(1953~1997)'과 제7장 미덕 II (1960~현재의 민주주의 운동)'은 끊임없이 쑤셔대는 독재적이고 간섭주의적인 남한 정부 아래에서 산업적 힘으로의 도약과, 상대적으로 산업화되고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국가를 궁극적으로 창출해낸 힘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바라본다.
6장과 7장은 남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관련된 장이다. 커밍스 교수는 남한의 경제적 성장과 민주주의 정착이 일부 지배계층의 능력이 아니라 남한 민중들의 피와 땀이 서려 일구어진 성과물임을 강조한다.
남한 지배계층의 외세의존적 태도와 군사경제적으로 미국 등 서구에 종속되어 있는 문제와 관련하여 그는 신라의 지배계층이 당나라를 끌여들여 삼국을 통일한 선례와 그 이후 지속된 외세의존적, 사대주의적 경향과 문화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제8장 '태양왕의 나라, 북한(1953~현재)은 김일성의 북한을 탐구한다.
커밍스 교수는 북한의 정치외교 체제나 문화가 한편으로는 고구려에서 시작된 북방민족의 자주적 독립적 성향과 문화에서 비롯된 측면과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 말기에 나타난 척사파의 노선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또한 북한이 주체사상과 정치체제 및 문화가 고려 및 조선의 사상문화 중 일부를 승계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저자는 정보와 자료 상의 한계로 북한을 제대로 파악하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을 솔직하게 전제한다.)

제9장 '미국의 한일들'은 처음 미국 영토에 도착한 조선인들을 시작으로 그 이후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미국인이자 한국인으로, 중간자로 자리잡은 재미교포 이야기를 다룬다.

제10장 '세계 속의 한국의 위치'는 김정일의 권력에의 접근에서 시작해, 1990년 한미 관계의 위기, 한국의 통일전망 등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장에서 커밍스 교수는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체제가 막을 내린 직후인 1990년대를 전후하여 남과 북의 정치외교군사적 변화를 분석하고 특히 냉전체제 해체에 상응하는 북한의 변화와 이에 맞서 한반도에서 냉전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 지배집단의 갈등을 살펴본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탄 개발이 사회주의 진영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북한의 자위이자 자구책임을 보여주고, 미국이 냉전체제 해체에 맞게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평화적인 환경으로 변화시켜야 함에도 미국의 내부적인 사정과 목적으로 북한을 계속 군사경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위협하여 결국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개발을 강제한 책임이 크다는 점을 지적한다.

※ 제가 개인 블로그에 이 책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소감을 밝혀놓은 게 있습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사 연구에서 인상 깊은 대목"이라는 제목으로... 64회로 나누어 정리하였으니 궁금하신 분은 링크(http://blog.daum.net/hy2oxy/8691691)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 2014년 3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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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만세 - 걸쭉한 넉살, 삐딱한 불온함, 끝내 가슴 뭉클한 프랑스대혁명 이야기
마크 스틸 지음, 박유안 옮김 / 바람구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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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마크 스틸(Mark Steel) 저,  < 혁명 만세 : 걸쭉한 넉살, 삐딱한 불온함, 끝내 가슴 뭉클한 프랑스대혁명 이야기 >를 읽고 / 2008. 12, 349쪽, 바람구두

2년 전 후배에게 선물받은 책인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프랑스혁명'에 대해 공부하는 기회에 책꽂이에서 꺼냈다. 작년 초에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나서 이 책을 읽어야지 생각했다가 또 미뤘는데 이제야 겨우 읽었다.

프랑스에서는 18세기 말부터 약 100여년 간 부르조아지와 소작농민, 빈민들이 살인적인 봉건왕조와 악덕지주의 예속과 수탈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과 자유와 평등을 향해 프랑스혁명을 전개했다. 
저자는 프랑스혁명을 이 책 안에 흥미롭게 담아 냈다. 이 책은 딱딱하고 어려운 사회과학 논문도 아니고 지루하게 사실을 나열하는 역사서도 아니다. 프랑스대혁명 시기에 벌어진 사람들의 힘든 삶과 문화, 혁명을 결심하고 행동에 나서는 사람들, 왕조와 귀족과 부르조아지와 상퀼로트와 빈민들과 농민의 이야기를 책의 부제처럼 '걸쭉한 넉살'과 '삐딱한 불온함'과 '끝내 가슴 뭉클'하게 엮어냈다.

직전에 읽은, 피에르 세르나(Pierre Serna) 등이 펴낸 <무엇을 위하여 혁명을 하는가>를 보면 프랑스 내에서도 기득권 우익세력의 프랑스혁명에 대한 폄하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마크 스틸은 영국에서도 프랑스혁명에 대한 왜곡과 폄하가 대대적으로 벌어져 왔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1970년대 후반 BBC방송의 어린이 프로그램 <블루 피터>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화려한 옷과 보석에 대한 취향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라고, 그리고 프랑스혁명을 '곱게 봐줄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끔찍한 이야기'라고 설명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런 식으로 영국에서는 소설, 다큐멘터리, 영화 등 여러 매체들이 다루는 프랑스혁명 이야기는 제대로 된 평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마크 스틸을 말한다.

마크 스틸은 영국 내에서 프랑스혁명에 대한 왜곡과 평가절하가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영국이 엘리자베스 왕족이 존재하는 입헌군주국 문화가 지속되어 있는 현실과 영국 내 기득권층들이 자본과 언론, 문화계를 장악하여 프랑스혁명에 대한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프랑스에 대한 영국인의 감정을 이용한 비합리적인 폄하를 유도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학자나 지식인들 역시 프랑스혁명에 대한 진실을 전하고 혁명에 대한 평가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1789년 프랑스대혁명 전야의 앙시앙레짐(구체제)의 모습에서부터 나폴레옹이 쿠테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공화주의가 무너지는 1799년까지의 프랑스대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때로는 재미있게 전개한다.

"인권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귀족의 특권, 국내 관세, 무역의 독점 따위를 없애버렸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게 되었다. 프랑스인은 반란을 일으킬 권리가 있다는 게 헌법에 의해 보장되었고, 단두대가 물레바퀴를 대신해 처형 도구로 쓰이게 되었다. 이참에 아예 사형 자체를 없애자는 시민대표도 한 명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로베스피에르였다."(p.111)

마크 스틸의 위 문장은 프랑스혁명의 특징 몇 가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귀족의 특권, 국내 관세, 무역의 독점'을 폐기한 것은 프랑스혁명의 시작이 부르조아지들의 이익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반란을 일으킬 권리'는 주권자인 인민으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천부적인 권리가 국가나 정부보다 앞선다는 것을 의미한다.(프랑스와 한국의 결정적인 차이다.) 
기요틴 박사가 발명했다는 단두대는 자유주으적 조치로서 도입되었다. 그 전까지의 인기 처형법은 물레바퀴에 매달아 척추가 부러져 죽을 때까지 돌려대는 방법이었는데, 그에 비하여 한결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형 자체를 아예 폐지하자는 로베스피에르는 현재에도 '극악한 통치자'라고 오명을 받고 있는 1793~1794년 시기 공화국의 공포정치를 주도한 산악파의 핵심 정치인이었다.

"그렇지만 당통은 이용당한 자유주의자가 아니었으며, 아늑한 혁명만을 꿈꾸면서 미치광이들에 맞서 혁명을 지키고자 애쓴 인물도 아니었다. 그는 제2차 혁명과 국왕 타도에 있어 그 누구보다도 핵심 장본인이었다. 법무장관으로서 그는 9월 대학살에 면죄부를 주기도 했다. 그는 왕의 처형을 위해 동분서주한 로비스트였고, 혁명군대의 창설을 주도한 핵심인물이었으며, 자신의 체포 직전까지도 거의 모든 혁명 조치들을 적극 지지한 혁명가였다.
오늘날 그가 주장한 내용의 절반 정도를 외치는 인물이 있다면 아마 '미친 개같은 맑스주의 무정부주의자로서 탈레반을 지지하는 똘아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가 체포된 이유는 혁명력 제2년의 진보 프로그램을 지켜내기 위해 여러 기구들을 해체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반면 로베스피에르는 이들 기구의 유지를 주장했다. 그랬다가가는 혁명력 제2년의 진보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와해될 게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다.
로베스피에르가 온갖 욕을 먹는 반면 당통이 한껏 대접 받는 또 다른 이유로는 그가 혁명가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전형이란 건 원래 일부분만의 진실만을 담아낼 뿐이다. 어떤 운동, 어떤 캠페인에든, 단호하고 유머를 모르는 로베스피에르형 인물이 있고, 피켓을 들고오기로 했으면서 두 시간씩이나 늦게 빈 위스키병 들고 비틀비틀 나타나는 당통형 인물들도 있는 법이다. 
눈여겨볼 만한 가치를 지닌 어떤 사회운동이든 이 두 가치를 모두 포용해야만 한다. 한쪽이 다른 쪽 머리를 잘라버리는 사태가 벌어지면 정말 곤란한다."(p.273)

위 문장은 프랑스혁명 과정을 주도한 두 가지 유형의 혁명가들의 모습과 그에 대한 간략한 평가, 두 유형의 혁명가들의 포용과 연대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혁명이 성사되려면 수백만도 넘는 사람들이 옛 질서에 맞서 일어서야 한다. 혁명의 성패는 이런 이들이 얼마나 힘차게 맞서느냐에 달렸다. 그러니까 텔레비전 뉴스에서 이런 멘트가 흘러나올 리는 만무한 것이다. '오늘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결과는 수백만이 넘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흥, 대통령 그 양반 정말 밥맛 아니니?'라고 생각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오로지 이런 생각들이 힘찬 행동으로 가시화될 때라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머리 맞대고 격론을 벌여,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자신들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고, 목수네 가게로 튀어가 널빤지를 얻어와 근처 향수가게 지붕에 올라가 들러올린 다리의 쇠사슬을 끊으려고 드는 실행의 힘이 있어야, 시큰둥한 분노들이 비로소 혁명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열정이 식어, 새 사회가 기능하겠다는 희망과 믿음이 다시 의문스러워지면, 혁명의 걸음걸이는 덜컹대고 자빠진다."(p.280)

위 문장은 혁명에 대한 마크 스틸의 탁월한 해석이다. 술집에 모여 독재자를 비웃고 조롱하고 정치인을 싸잡아 욕하고 손가락질 하는 것으로는 천만 명이 있어도 혁명은 불가능한 것이다.

"자코뱅은 몰락 이후 단두대에서 희생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에 의해서도 '선택적 탄식 신드롬'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상태에 바진 사람들은 어떤 특정 사건에 대해서는 엄청난 공포를 느끼면서도 다른 곳에서 벌어진 엇비슷한 사건에 대해서는 희한하게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타가 무너지는 걸 보고 비탄에 잠긴 수많은 정치가와 언론인들이 실은 체첸에서 5만의 민간인이 죽어도, 니카라과에서 수만이 희생되어도, 레바논 수용소에서 1,800명이 살육된 사건에 대해서도, 꿋꿋이 평상심을 유지하던 이들이었다.
프랑스대혁명 기 공포정치야말로 가장 고전적인 사례다. 역사학자, 영화제작자, 교과서 집필자 등은 로베스피에르에게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지만 왕당파 군대에 의해 살해되거나 자코뱅을 타도하고 집권한 세력들에게 희생된 더 많은 사람들은, 소설에서건 영화에서건 전면적 취급은 고사하고 자잘한 관심도 받지 못했다."(p.291)

위의 문장은 단순히 '신드롬'이라는 식으로 넘겨버릴 게 아니라 오히려 방송과 신문, 영화와 소설, 교육과 교과서 등을 장악한 기득권 문화권력의 의식적 무의식적 결탁을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베토벤에게 프랑스대혁명은 개인성의 승리를 상징하는 사건이었으며, 오스트리아 주재 프랑스 대사가 그의 3번 교향곡을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라고 제안하자 아주 기뻐했다. 혁명군의 승리를 담아내고 옛 가치의 몰락을 예찬하는 장송곡 등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최초의 작품이었다. (중략)
어쨎든 그 교향곡은 작곡되었고 완성된 악보를 막 인쇄소로 넘기려는 찰라 한 친구가 들어와 나폴레옹이 공화국을 허물고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태를 파악한 베토벤은 분노에 찬 나머지 헌정 페이지를 찢어내버리고 '보나파르트'란 말을 어찌나 박박 긁어냈는지 종이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다."(p.320)

베토벤의 3번 교향곡 [영웅]이 나폴레옹 개인이 아니라 프랑스혁명을 일으킨 혁명의 모든 영웅들을 위한 교향곡이었음을, 나폴레옹이 군사독재자가 되었을 때 베토벤은 나폴레옹 이름을 짖이겼음을 이번에 알았다.

저자는 영국 연예인이다. 그쪽에서는 '삐딱한' 코미디언으로 알려져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마크 스틸의 사례를 보면 영국사회가 한국사회보다 '열려'있고, '이성적' '지성적'이며,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인 것 같다.

그 이유는 마크 스틸이 TV에서 오로지 걸쭉한 입담으로만 '혁명 6부작'을 진행할 정도로 인문학과 코미디를 접목시키는 일에 열심이라고 출판사가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혁명, 성혁명, 러시아혁명, 산업혁명, 미국혁명, 진화의 혁명이 그 6부작의 면면인데, 마크 스틸 특유의 새로운 역사교육 장르가 형성되고 있다는 영국 언론의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또한 마크 스틸은 진보정당 후보로서 런던시의원에 출마한 경력까지 있을 정도로 정치활동에도 열정적인 사람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가 영국 방송계나 연예계에서 아무런 출연거부나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것이 한국 헌법이 말하는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직업의 자유, 정치의 자유라 할 것이다.

한국은 진보정당은 커녕 보수정당인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정부정책에 대해 호불호만 표현해도 방송국에서 퇴출시킨다. 시그렇게 보면 한국은 자유 국가도 아니고 민주주의 국가도 아닌 것이다.
또한 한국 방송계나 예술계의 특성상 인문학과 사회과학, 철학적인 수준을 갖추고서 공중파에서 연예인이나 예술가 활동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김제동 등 몇몇 정도일 것이다. 실제 인문학과 사회과학, 철학, 역사의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조인, 언론인, 정치인, 관료들에게서도 그런 기초 수준이 보이지 않는데 연예인이나 예술인에게 바란다는 것이 내 잘못일 것이다. 물론, 그들이 '지성' 대신 유흥이나 접대, 뇌물, 조작, 거짓말, 폭탄주의 전문가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주권자가 어떤 정치를 원하느냐는 주권자가 정치에 얼마나 참여하고 어떤 인물을 대리인으로 선출하느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처지의 계급계층이 아닌 개인이나 소수의 이익을 위해 정치와 정당에 개입하는 이들은 이익과 권력의 화신들이 장악하는 정치, 정당에 대해 불평불만을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이 그런 정치와 정당을 만들었으니...

프랑스 인민들이 대혁명을 일으키던 때, 한반도에서는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집권하여 일부 개혁적인 사대부들과 함께 왕조, 봉건제 또는 농업관료제를 개혁하려고 시도하다가 좌절되었으며, 그후 약 100년간 세도정치와 부정부패로 인해 인민들의 삶이 극한까지 파괴되었다. 인민항쟁(반란)은 끝없이 일어났으나 무능하고 기회주의적인 지식인들은 끝내 인민들을 외면했다.
2014년 대한민국은 19세기 ~ 20세기 중순의 조선을 반복하느냐 아니면 18세기 후반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 정신을 되살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책임과 역할이 운동가들과 지식인, 깨어있는 인민들에게 주어져 있다. 그들이 무능하고 탐욕스럽고 기회주의적일 때 역사는 반동으로 귀결될 것이다. 200년 넘게 잃어버린 혁명을, 혁명정신을, 혁명의지를 되살려 내야 앙시앙레짐을 벗어 던질 것이다.

- 마지막 문장 :

"마오쩌둥의 참모였던 저우언라이는 프랑스대혁명에 대해 아주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 혁명의 파급효과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걸 애기하기엔 너무 일러요."
그럴듯하지 않은가? 당시 혁명가들이 맞서 싸웠던 것들과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혁명의 물결은 그 후 100년이 넘도록 퍼져나갔다.

오늘날의 기득권 집단에게 있어 프랑스대혁명은 평등을 떠들어대는 무리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 어떤 혼란이 펼쳐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본보기와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은연중에 대혁명에 대해 썩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살육의 아수라장만 부각시키면서 대혁명을 소개하는 데는 뭔가를 경고하려는 저의가 확실히 배어 있다. "지금 그대로가 좋은 겁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저항하라고 하는 사람들의 꼬드김이 참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요. 그렇지만 그 사람들 말대로 했다가는 쇼핑센터 한복판에서 창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머리통들을 구경하게 될 겁니다."

기득권층은 무엇에 기대고 사는가? 그건 바로 수동성이다. 혁명의 정반대인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지상의 온갖 부당한 일들에 맞서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싸우지 않을 이유야 끝도 없이 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설령 이에 맞서 싸우는 경우에도 사람들의 생각은 대개 이렇다. "대통령이 바뀌면, 혹은 세계은행 총재가 바뀌면 좀 더 공평해지겠지..."
어느 누구도 본인 스스로 사회를 운영해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5년 동안은 그렇지 않았다.

이 일, 즉 수백만의 사람들을 한번도 가능하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 속으로 적극 뛰어들게 한 이 사건으로부터 당신이 어떤 결론을 끄집어내건, 이 프랑스대혁명의 이야기는 인간이 빚어낸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스펙터클한 이야기이다. 희망과 저항, 희극과 비극의 이야기이다.
혁명은 놀라운 등장인물들을 수십 명이나 탄생시켰고, 또 거의 그 전부를 궤멸시켰다. 그 젊은 목숨들을 대가로 수백 년 동안 지속될 혁명의 명성이 쌓이게 된 것이다. 로베스피에르, 당통, 데물랭, 마라, 생쥐스트, 브리소, 롤랑 부부, 바뵈프, 프바, 구통 등...
거의 모든 주요 인물들이 자신들이 쓰던 드라마 속에서 죽어갔다. 겨우 미국으로 건너간 토머스 페인조차도 필라델피아의 알거지 신세로 최후를 맞았다.

왕당파 희생자들도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왕족은 모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프랑스혁명의 지도자들이 그토록 경멸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너무나 드문 일을 해치웠기 때문이 아닐까?
보다 공정한 사회를 그리면서 이들은 그런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다했다.
진보주의의 대변자였던 이들은, 잘 차려입은 지역 정치가로 잽싸게 변신하여 지역 텔레비전에서 상공인들과 악수나 나누는 장면 따위는 연출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이들은 공격 받을 때마다 무장한 인민들의 힘을 총동원하여 적들에 맞서는 길을 택했다.

이름도 알 길 없는 수백만의 혁명 참가자들에게 있어 거창한 대의명분과 작디작은 과제는 따로 떨어진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다음 달에 먹을 걸 어떻게 든든히 장만해둘 것인가?"라는 문제는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야 할까, 우리는 어떤 권리를 타고 나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따위의 문제들과 서로 얽혀있는 것이었다.
이웃들을 이끌고서 가게를 점거함으로써 가격 인하를 꾀했던 시민들과, 여성 인권의 신장을 주장하는 팸플릿을 찍어낸 시민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발미의 언덕을 굳게 지켰던 사람들, 혹은 베르사이유궁으로 왕족들을 잡으러 가며 격렬하게 요동치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진정시키던 사람들은 다름 아니라 천문학의 역할이나 가장 효율적인 영농기업, 혹은 혁명 후에도 스포츠가 있을까 없을까를 두고 밤새도록 토론하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게 대혁명의 가장 꾸준한 파급효과가 아닐까 싶다. 한 예를 들자면, 1840년대에 이르러 대혁명의 영웅들이 초창기 노동운동의 영웅으로 다시 떠올랐다.
머서티드빌의 역사를 다룬 1860년대의 어느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인권론]과 [이성의 시대]를 높이 평가하던 몇몇이 산속의 모처에 모여 큰 돌 밑에 감추어두었던 그 책들을 꺼내 아주 뜨겁게 함께 읽곤 했다"
아주 뜨겁게는 고사하고, 조금이나마 뜨겁게라도 읽으신 분이 대체 있을까/ 최근에 나온 영국 정치인이 쓴 글들을?

어느 인터뷰어가 토니 블레어에게 뭘 꿈꾸는지 물은 적이 있는데, 그때 블레어의 대답은 21세기 초 주류 정치가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잘 요약해 보여준다. "요즘 전 잠 잘 시간도 없어요. 꿈꿀 시간은 더 없지요."
꿈도 못 꾸는 게 무슨 자랑거리란 말인가. 게다가, 꿈꾸는 시간 때문에 잠 자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건 도대체 말이 안 된다. 10분짜리 꿈을 꾼다고 10분 더 늦게 일어나 이렇게 외치진 안는다 이 말이다. "으악, 안 돼. 그 망할 놈의 꿈 때문에 기차를 놓쳤네."

프랑스대혁명은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쪽을 응시하도록 만들었다. 무제한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혁명은 또 수백만의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원대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만물은 서로 얽혀 있다는 것,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했다.
이제 모든 개념을 의심해볼 수 있게 되었다. 상상력의 나래가 펴지고, 인간의 창조성의 모든 잠재력이 활짝 펼쳐지게 되었다. 프랑스대혁명은 이런 인식이 모든 대륙으로, 모든 노예들의 땅으로, 혁명의 소식이 전파된 곳 구석구석 퍼지게 했다.
꿈꾸는 법을 까먹은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이쪽 끝이라면, 프랑스대혁명은 저쪽 끝이다.

그 모든 핏빛 공포에도 불구하고 혁명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영감을 자극했다. 부유층 360명이 극빈층 20억 인구와 같은 부를 차지하고 있는 이 사회의 구성 방식이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혁명은 농부나 노예, 우체부나 세탁부 여인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럼으로써 자신들도 바꿀 수 있다는 걸 일깨워주는 증거가 되었다. 귀족이나 성직자, 왕보다 이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p.328~331)

[ 2014년 3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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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철학 이야기 일하는 사람의 철학 이야기 1
김세준 지음, 소희 그림 / 615(육일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추천 [서평] 김세준 저 <일하는 사람의 철학 이야기>를 읽고 / 2011. 12., 261쪽, 도서출판615

이 책은 20년 이상 후배에게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관점에 대해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을 소개해주기 위해 지인에게 추천받아 읽은 것이다. 칸트나 헤겔, 니체나 플라톤의 책은 읽어보라고 소개하기에는 노력 대비 얻을 게 많지 않을 것 같아서 큰 틀에서 철학 또는 세계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기 위해 선택했다.

덕분에 나 역시 오래간 만에 철학, 세계관 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지천명을 앞 둔 나이에...^^

저자는 "왜 철학이 필요한가?"라는 질문과 함께 철학이야기를 시작한다. 특히 저자는 21세기 들면서 한국사회의 젊은 세대들의 정신적 혼란과 무기력, 일베나 자살(절망)과 같은 극단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를 '철학의 빈곤'에서 찾는다.
"대한민국을 '자살공화국'으로 만든 1차적 원인은 물론 경제적 빈곤이다. 하지만 철학적 빈곤도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이다"(p.04)

한국에서 청년과 청소년들의 자살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한국은 현재 정신과를 찾는 인구 역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죠) 가운데, 자살이 늘어나는 경제적 빈곤과 빈부격차, 불공정 사회를 바꾸어 희망과 가능성을 심어주는 것이 젊은이들의 자살행진을 멈출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은 그냥 바꾸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하며, 자신이 바꾸기 위해서는 저자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철학은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지적 무기입니다."(p.06)

저자는 고대사회에서 철학이 출현한 배경과 소크라테스 등 유명 고대철학자, 햄릿이나 오이디푸스 등 그리스 희곡, 중국의 사상가에서부터 칸트, 니체와 같은 근대 철학자의 철학이론을 소개하면서 지금까지 인류가 다루어 온 철학이 어떤 사회적 배경이나 계급계층의 필요에 의해 나타났는지 살펴본 후, 철학이 다루는 근본적인 문제를 정리한다.
그가 제기하는 대표적인 철학의 근본문제는 "세계는 무엇으로 구성되었고 어떻게 움직이는가"라 할 수 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물질과 정신의 문제 또는 존재와 의식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물질과 정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철학을 분류하면 유물론과 관념론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근대 이후 엄청난 진전을 만들어낸 자연과학의 성과로 인해 물질과 존재가 정신이나 의식에 앞서고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과 세계는 끝없이 변한다는 것이 철학의 근본임을 지적한다.
물론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철학을 모두 유물론과 관념론으로 간단하게 분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류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개인들과 사회집단,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닌 지구상에서는 유물론과 관념론 뿐 아니라 그 이외에 유물론과 관념론의 중간 어디엔가 위치한 철학도 존재할 것이다. 또한 철학의 근본문제를 물질과 정신의 관계, 존재와 의식의 관계, 또는 세계의 인식가능성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제기하는 철학사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점차 진화한 역사를 돌이켜보면 철학은, 철학이라는 단어의 유래인 '진리에 대한 사랑' 즉 세계에 대한, 세상에 대한, 진리에 대한 추구임에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철학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인류에게 그리고 각 개인에게 여전히 남는 문제는 철학적 물음의 시작인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즉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문제, 어떻게 살 것이냐의 문제,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기존 철학의 답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사람과 세상과의 관계, 사람이 사회나 공동체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냐의 문제는 각 개인에게는 행복과 생존을 다투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철학이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기존의 철학들이 사람 개개인의 판단과 의사결정, 행위와 운명에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사람들이 판단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철학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일하는 사람의 철학 이야기>는 서론과 본론의 중간쯤 가다가 멈추었다는 느낌이다. 예상대로 저자가 애초부터 2부작이나 3부작으로 책을 준비했다는 것이고 서점에는 <일하는 사람의 철학 이야기 2>가 출판되어 있다. 이 책을 읽고나니 2부도 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도 이 책은 철학의 기원과 개념, 철학의 탄생과 변천, 철학이 다루는 문제, 철학이 인류에게 끼친 영향,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대해 독자가 가져야 하는 관점, 기존 철학이 해결한 문제와 남긴 문제, 개인의 판단과 행위에서 철학이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20대 젊은이에게는 많은 정보와 관심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플라톤이나 칸트, 니체, 헤겔, 마르크스 등 철학을 이끌어온 철학자들의 이론이나 저서를 읽게되었을 때, 독자들이 철학이라는 중심 주제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작은 토대를 마련해줄 것이다.

○ 인상 깊은 문장 :
-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들에게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황금만능주의와 소비지상주의, 자유주의와 쾌락주의 등 온갖 비인간적 가치를 주입하고 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주입된 자본주의의 가치들을 마치 영원불변의 진리처럼 맹신하여 자본의 노리개가 되어 서로를 적대하고 경계하며 삶을 소비하고 있습니다."(p.38)

- "자연과 세계에 대한 사람의 무지와 그로부터 비롯된 공포가 종교를 틴생시켰습니다. 원시적인 종교적 관념은 세계를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지만 미지의 공포로부터 원시인류를 구원해 주었습니다."(p.46)

-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자신보다 신을 더 믿었기 때문에 성립됩니다.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신탁을 따랐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이디푸스 왕은 운명을 거부한 자의 비극이 아니라 운명의 노예가 된 자의 비극입니다"(p.75)

- "유대인대학살은 니체의 철학적 상상력과 히틀러의 정치적 실천력이 빚어낸 인류 역사의 훙측한 괴물입니다. 공교롭게도 지금은 유대인들이 신의 이름으로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에게 똑같은 범죄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p.93)

- "사람은 물질적 존재이지만 자체에 의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의식의 세계는 오직 사람과 사람의 실천을 통패서만 현실로 나타납니다. 때문에 세계를 물질과 의식의 두 측면으로 나누면 사람과 사람의 실천을 위치가 애매해집니다."(p.119)

-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물질뿐입니다. 세계에는 물질 이외에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계는 물질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의식은 물질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물질운동의 특수한 결과일 뿐입니다. 의식은 사람의 두뇌작용에 의해서만 발생합니다."(p.150)

- "지구는 시속 1,670km의 속도로 자전하면서 동시에 시속 108,000km의 놀라운 속도로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지구 위에 지구보다 빠른 물체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태양계는 우리 은하계의 중심을 초속 230km로 돌고 있습니다. 지구는 적어도 3가지의 회전운동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지난 45억년 동안 단 1초도 멈추지 않았고, 앞으로 50억 년 동안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지구가 운동을 멈춘다면 그 순간 지구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운동은 지구의 존재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인류도 마찬가지입니다."(p.197)

- "영화뿐 아니라 사람의 모든 창조물은, 그것이 전적으로 사적인 노동의 결과물일지라도,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것입니다. 그 어떤 뛰어난 개인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천재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새로운 발견도, 획기적인 발명도, 천재적인 창작도 인류가 차려놓은 밥상에 그저 숟가락만 얹은 것 뿐입니다."(p.245)

[ 2014년 2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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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배신 - 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서평] 바바라 애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 저, 전미영 역 < 희망의 배신 Bait and Switch : 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 >를 읽고 / 2012. 10., 304쪽, 부키


<긍정의 배신>을 통해 긍정을 강요하면서 억압되고 잘못된 현실을 왜곡하는 '긍정주의'의 본질을 폭로하고, 자신이 직접 산업현장에 뛰어든 체험을 바탕으로 저술한 <노동의 배신>을 통해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가 선의와 성실을 다바쳐도 먹고 살 수 없는 '워킹 푸어' 노동 현실을 폭로한 저자 애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3부작' 완결판..

<긍정의 배신>은 자기계발서, 초대형 교회, 긍정심리학 등 긍정주의가 사람들을 체제에 순응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도구이자 신념 체계로 작동하고 있음을 파헤쳐,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사회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독자들 사이에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노동의 배신>은 저자가 3년에 걸쳐 웨이트리스, 청소부, 월마트 직원 등으로 일하면서 가난하기 때문에 돈이 더 드는 워킹 푸어의 진짜 현실을 드러내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하다'는 '신화'를 깨뜨렸다.


저자는 이번에 화이트칼라 구직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소박한 희망마저 배신당하고 일자리 불안과 과다 노동에 지쳐 가는 신자유주의 시대 미국 중산층의 암울한 현실을 고발한다.

10개월 동안 이력서를 고치고, 취업 박람회 등 온갖 행사를 쫓아다니고, 화장은 물론 성격까지 고분고분하게 바꾸며, 돈과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기업에 들어가려고 애쓴다. 그 과정에서 능력과 경력보다는 쾌활하고 복종하는 태도를 더 중시하는 기업 문화를 목격한다. 

몸 바쳐 충성해도 버림받고 몰락해 가는 화이트칼라의 모습을 그린 이 책은 출간 직후 미국에서 전문직 노동조합이 결성될 정도로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에서 출간된 직후 수천 건의 공감 댓글이 저자의 홈페이지를 달궜다. 이런 호응을 바탕으로 이듬해 화이트칼라를 위한 조합 조직 'United Professionals'가 설립되기도 했다.


먼저 저자는 구직 세계의 법칙에 따라 자신을 취업의 길로 인도해 줄 커리어코치를 구하고 연줄을 찾아 네트워킹 행사를 쫓아다닌다. 그런데 그 세계에서 마주친 것은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대책 없는 낙관주의다. 저자의 커리어코치는 나이 때문에 걱정하는 저자에게 '본인이 37살이라고 생각하면 37살이 된다'는 황당한 믿음을 강요한다. 또 '전문직 이직'이라는 사이트는 '승리자의 태도'를 가지라면서 예전 고용주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 취업하기 어렵다고 조언한다. 

구직자가 갖춰야 할 가장 '올바른' 태도는 '순응'이다. 외모에서도 기업에 순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올바른 옷차림과 적절한 액세서리'를 갖춰야 한다. 이미지 매니지먼트 회사는 이렇게 조언한다. "권위적이어선 안 되고 가까이 다가가기 쉽다는 인상을 주어야 해요. 같이 일하기 편하겠다는 느낌을 주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은 <긍정의 배신>이 고발한 '긍정주의'가 재취업 현장에 스며든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인성 검사도 받는데 '고대의 지혜'가 담긴 에니어그램이나 MBTI 등 기업에서 널리 쓰는 이런 검사들은 실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기업이 선호하는 것은 '인성'을 강조해 직원들이 순응하게 만들려는 속셈이 깔려 있음을 간파한다. 이것은 '내가 해고된 것은 결국 내 탓'라는 희생자 비난 이데올로기로 이어진다. 회사에서 쫓겨난 것도, 취직을 못하는 것도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 된다. 이런 식으로 사회 경제적 불평등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더욱이 전문직 실업자들에게는 구직 자체가 일종의 '직업'이 된다. 화이트칼라 세계에는 '실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실업'이 아니라 '이직'이며, '실업자'가 아니라 '구직자'다. 커리어코치나 네트워킹 회사들은 예전 직장 생활을 필사적으로 '모방'하고 바쁘게 지내면서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자리를 찾는 화이트칼라들은 구직자라는 '일'을 하느라 현실에 불만을 제기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단어와 개념을 조작하여 노동자와 실업자가 처한 심각한 구조와 현실을 가려버리는 상징조작과 말장난이 미국이나 한국이나 점점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자영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주변에서도 친오빠, 형부 등이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들었다. '험하지 않아' 보이면서도 진입 장벽이 낮은 부동산 중개업은 화이트칼라가 '만만하게' 뛰어드는 업종이다. 

그러나 1년 만에 실패하는 비율이 86퍼센트에 달하고 '생존자'도 70퍼센트가 연 소득 3만 달러가 안 된다. 프랜차이즈 사업도 마찬가지다. 2008년을 기준으로 자영업자 수가 559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31.1%에 이르고, 그 중 절반이 창업 3년 이내에 문을 닫는 우리나라의 현실 또한 미국과 다르지 않다.

화이트칼라가 선택하는 또 하나의 일자리는 저자가 제안 받은 보험, 화장품 판매처럼 수수료만으로 먹고사는 영업직이다. 그러나 이런 업종에 발을 들였다가 사기를 당해 돈만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사기가 아니라 해도 수수료가 너무 적어 생활이 어려운 실정이다. 1년에 5만 달러 이상 버는 사람은 8퍼센트에 불과하고 절반은 1년에 1만 달러도 벌지 못한다.


저자가 직접 경험한 현실의 대부분은 미국뿐 만이 아니라 바로 한국이 처한 현실이자 한국인의 일상이고 한국 중산층에게 다가올 미래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중산층과 전문직, 퇴직자를 꼬드겨 빈곤의 나락에 빠뜨리는, 화이트칼라를 꾀는 프랜차이즈, 부동산, 영업직 등의 '미끼 상술'은 이미 한국에서도 IMF 이후부터 판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업 밖으로 밀려난 구직자 못지않게 '생존자'인 기업 내의 화이트칼라 역시 '시름시름 죽어 가고' 있다. 이제 기업은 직원을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본다. 수익이 나지 않으면 언제든 내다 버린다. 그런 CEO에게는 주주에게 이익을 안겼다며 오히려 높은 보수가 주어지는 상황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서비스직을 아웃소싱 한 50개 미국 기업 CEO의 보수 인상폭은 다른 회사 CEO에 비해 5배나 높다. 이것이 바로 현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다.

이제 기업은 '포식자의 세상'으로 변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열정'과 '에너지'와 '헌신'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 특히 의사나 과학자 같은 '진짜' 전문직과 달리 일반 화이트칼라들은 '임원실'을 차지한 이들에게 완전한 충성을 서약하고 '자기 자신'까지 판매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자리의 안정성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 잃는 상황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충성을 바쳐도 '배신'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서는 '가장 성격이 좋고, 충성심이 제일 강하고, 가장 복종적인 직원이 감원 1순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기업에서 밀려난 화이트칼라는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면서 아래로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일자리를 잃었다가 다시 취직한 사람들의 수입은 전 직장에 다닐 때보다 평균 17% 줄어든다는 미국의 통계 결과가 이를 말해 준다. 한국의 경우는 17%가 아니라 50%를 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단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함 때문에 학력이나 능력과 무관한 저임금 전업 일자리, 즉 월마트나 스타벅스 매장 직원으로 취업한다. 하지만 이런 '생존용' 임시 일자리에서 온종일 육체노동을 하는 동안에는 구직 활동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업 안에 있을 때는 '노예'로, 기업에서 밀려나고 나면 빈곤에 대한 공포를 안고 워킹 푸어로 전락하는 화이트칼라.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소박한 희망마저 무너져 가는 것이 오늘날 미국과 한국 중산층의 아픈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언론이나 대학과 연구소, 지식인들은 한국사회의 중산층의 현실, 재취업 시스템의 붕괴, 해고와 실직과 자영업의 연결구조 등에 대해 애런라이크처럼 대중적으로 고발하는 저서를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김미경이나 박경철 류의 온갖 성공학이나 처세술, 마인드 컨트롤 같은 긍정주의 강사들이 언론과 출판시장을 장악했다.

그런 모습이 더욱 한국사회의 현실과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 도대체 언론의 왜 존재하며 '지식인'이란 무엇일까...


미국이나 한국이나 행정부와 정치권은 현실을 인정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커녕 오히려 재벌, 기득권자들의 편을 들면서 기업들이 해고와 실직을 더 쉽게 만들고 경제민주화와 사회복지를 더 악화시키는 등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미국의 클린턴/오바마 정부가 집권했을 때나 한국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집권했을 때도 상황이 악화되는 데 아무런 제동을 걸지 못했음을 돌이켜 볼 때, 미국이나 한국의 여야 거대 정당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한국의 중산층과 빈민에게, 실업자와 워킹 푸어에게 미국의 민주당과 한국의 민주당에게 정권을 맡기자고 선동하는 지식인들과 언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떤 해결책이 가능한가? 애런라이크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뭉쳐 자신들의 존엄성과 가치를 주장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단순한 문장이지만, 정말정확한 진단이자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노동자든 농민이든 중산층이든 빈민이든 자신이 처한 구조와 조건을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서는 어떤 정당도, 단체도 그냥 대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대중조직을 결성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하며, 그 대중조직을 기반으로 진보정당과 연합을 하든지 거대 정당을 압박하는 것이 기업과 자본가를, 언론과 사회문화 현상을, 행정부와 입법부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범주'에 대한 것이다. 

사실 중산층, 특히 화이트칼라라는 계층 개념은 가진 것이라고는 자신의 몸(신체와 지능을 포함한) 밖에 없는 '일하는 사람(노동자)'을 생산직과 사무직, 서비스직이나 전문직으로 분리시키게 된다.

노동하는 공간이나 노동의 내용, 방식 등이 달라도 '노동자'라는 큰 범주에 속하는 것이며, 결국 자본주의 체제나 신자유주의에서 처하는 조건은 동일한 하위 개념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2014년 1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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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3 - 돌베개인문.사회과학신서 70
박세길 지음 / 돌베개 / 199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강추!! [서평] 박세길 저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3 : 1980년에서 1990년대 초까지>를 읽고 / 1998. 10., 314쪽, 돌베개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3>는 전두환 일당의 1979년 12.12 군사쿠테타 및 1980년 광주민중 학살과 뒤이은 광주민중항쟁에서 시작하여 1990년 김영삼이 역사의 대역죄인으로 등장하는 '3당 합당'까지 이어진다.
1980년대의 출발은 미국과 전두환 일당에 의해 민중들의 흥건한 피와 처참한 패배주의로 시작된다. 하지만 민중들과 새로운 세대는 한국전쟁 후 한 세대에 걸친 선배들의 헌신적인 투쟁과 희생을 목격하면서 스스로 역사의 주인임을 자각하기 시작하여 조금씩 투쟁의 돌파구를 열어가다가 마침내 역사적인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을 일구어낸다.
비록 1987년 양 김씨와 민족민주운동의 분열로 인해 외세의존적인 군사독재 일당이 재집권에 성공하고 1990년 또다시 김영삼 등의 배신으로 보수대연합에 국가권력을 찬탈당하지만, 민중들과 민족민주운동 진영은 서서히 역사의 주인으로 발돋움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저자 박세길은 1941년부터 시작된 일제의 태평양전쟁과 한민족 말살책동, 이에 굴복한 수많은 지식인들의 변절과 친일행위를 딛고 중국과 만주, 국내에서 끈질기게 저항하여 8.15 해방에서부터 굴곡되고 ??겨진 한민족의 삶을 다루었다. 북한의 역사 또한 공개된 자료와 정보를 중심으로 균형있게 다루었다.

박세길의 한국현대사 서술 관점은 한국전쟁 이후 1990년대 초까지 국내 역사학자와 지식인 어느 누구도 바라보지 않았던 한민족 전체의 관점,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관점, 지배자들이나 기득권자들의 입장이 아닌 민중들의 입장을 중심으로 하였다.
따라서 기존의 국사 교과서나 언론, 주류 지식인들이 감추거나 외면했던 남북한 전체의 모습,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러시아-미국-일본의 음모와 움직임, 민중들의 역동성에 그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1940년대 초에서 1960년까지의 한국현대사 1단계와 1961년부터 1979년까지의 한국현대사 2단계의 공통된 특징은 '냉전대결'과 '소련봉쇄'라는 세계최강 제국주의인 미국의 동북아 군사패권전략에 한민족과 남한 민중이 철저하게 희생된 것이었고, 그러한 특징은 한국현대사 3단계까지 이어졌다.
군사쿠테타와 광주민중학살을 통한 전두환 일당의 등장과 전국민적인 6월 항쟁을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반란 세력의 단죄 없이 1987년 헌법이 개정되고 '광주 5적' 중의 하나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보수대연합 '3당 합당'은 동북아시아에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얼마나 철저하게 친일파 후예들과 군사독재 잔당과 결탁하여 남한의 정치,경제,군사,문화 전반을 관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동기이자 결과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자주, 민주, 통일과 '일하는 사람이 주인되는 세상'을 원하는 민족민주운동 진영과 민중들은 분단체제 극복과 반외세 반독재 전선으로 단결하고 연대하지 않고는 외세와 친일-친미 군사독재 후예들의 간교한 분열책동과 무력탄압, 언론조작과 경제적 수탈에 맞서 최소한의 기본권과 생존권도 이루기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주요 고비마다 분단체제를 이용하여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를 통해 정치공작과 여론조작, 파쇼탄압과 야권분열, 기득권 유지를 획책해 온 미국과 냉전수구세력들의 지배전략은 2013년인 지금도 여전히 강력하다는 점에서 민중들과 민주진보진영에 가장 큰 숙제로 제기된다.

1961년 미국의 지지와 지원 아래 민주당 장면 정권을 군사쿠테타로 무너뜨린 박정희 군사독재체제는 1978~1979년 YH무역 노동자 등 민중들의 투쟁과 대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유신 철폐투쟁의 힘이 부마항쟁으로 폭발하였고, 이에 따라 발생한 지배집단 내부의 분열이 김재규 등의 저격으로 무너졌다.
박정희의 사망과 유신체제의 붕괴에 대해 다수의 민중들은 환호했지만, 미국과 친일-친미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리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고, 야당과 민주세력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박정희 체제에서 성장한 일단의 정치군인 집단인 '하나회'가 주축이 되어 또다시 군사쿠테타를 일으켰다. 미국의 지원과 보호를 바탕으로...

박정희와 달리 전두환 일당은 그동안 성장한 민중들의 힘을 탄압하여 말살하려 하고, 민주세력의 분열을 공작,조장하면서 언론과 행정체제를 장악하였고, 6개월 뒤 2차 5.17 군사쿠테타를 자행했다. 여기에는 무능한 보수여당인 김대중-김영삼 세력과 '5.15 서울역 회군'으로 상징되는 비겁한 학생운동 지도부가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전두환 일당은 5.17 군사쿠테타 이후 유일하게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광주시의 대학생과 민중들을 무참하게 학살하였고, 광주민중들은 결사항전으로 맞섰다.
광주민중들의 결사항전 소식은 남한 전역에 소리소문 없이 번져나갔고, 학생들과 민중들은 미국과 전두환 일당의 폭압통치를 뚫고 7년 만인 1987년에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을 만들어냈다.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은 전두환 국가반란 세력을 법으로 처단하지 못한 한계와 재벌체제를 혁파하지 못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처음으로 정당하고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유신헌법을 민주헌법으로 개정하였고 직선제로 정권을 선출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외세와 군사독재 일당의 청산이라는 민중들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전두환 일당의 분열책동에 말려든 김대중-김영삼 보수정치세력과 민족민주운동 세력은 분열을 거듭하여 광범위한 관권,금권 부정선거를 자행한 노태우 일당에게 정권을 빼앗겼다.

그렇지만 민족민주운동(진보) 진영과 노동자, 농민, 청년, 학생, 지식인 등 민중운동 진영은 분열의 아픔을 딛고 자주적인 대중조직을 광범위하게 결성하여 새로운 대체세력으로 거듭났고, 김대중 중심의 정치세력보다 세력 규모가 약하지만 권력에 대한 탐욕은 더 강했던 김영삼은 민중운동 진영의 성장에 위협을 느낀 미국과 노태우 군사독재 잔당들의 꼬임에 넘어가 김종필 유신잔당과 함께 '3당 보수대연합'을 만들어냈다. 
민족민주운동 진영과 민중운동 진영은 보수대연합을 토대로 금권, 관권 부정선거를 더한 김영삼 일당에게 1992년 선거에서 패배했다.

1980년대 남한의 경제사정은 외세의존적, 수출의존적, 매판재벌 중심으로 운영된 박정희의 부실한 경제정책의 연장선에서 노동자, 농민들의 피땀으로 전후 30여 년동안 그나마 일으켜 세운 경제성과마저 외세와 매판재벌에게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결과는 전두환 일당의 무능함과 수동적 경제정책, 외국자본의 수탈구조, 저임금-저곡가의 민중수탈 경제구조의 원인이면서도 더 심하게 왜곡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나마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남한 전역에서 노동자들 스스로의 힘으로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이루어내었고, 산업 전분야와 사회 각분야의 민중들이 수탈당하는 정도를 줄여가면서 소득 수준을 높여갈 수 있었다.

1987년을 계기로 이후 민중들의 조직과 민주진보진영이 강력하게 성장하였고 이에 기반하여 민주개혁성향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창출하여 정치,경제개혁과 남북화해, 평화통일로 한 걸음 더 전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과 2012년 연속 외세 의존과 친일파-군사독재-매판재벌 잔당이라는 특징을 가진 냉전수구세력들에게 정권을 탈취당한 이유가 무엇일까.
앞으로 1990년대 이후 20년간 한국현대사에 대해  공부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 <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3 > 중에서 인상적인 대목을 블로그에 정리했습니다. http://blog.daum.net/hy2oxy/8691710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 1, 2, 3권 전체에 대한 주요 내용은 http://blog.daum.net/hy2oxy/8691548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 2013년 12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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