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학교의 상상력
이한 지음 / 삼인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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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20대 초반의 나이에 <학교를 넘어서>(2010. 민들레)를 발간하며 "오늘날 학교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외치는 것은 마치 쌀을 매점매석한 뒤 모래를 섞어 팔아먹는 고약한 상인이 자기가 없으면 모두 굶어죽을 것이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고 선언하면서 '탈학교 사회'를 꿈꾸기 시작했고, 그 뒤 대안학교 등 여러가지 노력을 실제 경주했다. 이 책은 저자가 <학교를 넘어서> 초판 발간 이후 진행된 논쟁을 거쳐거 자신의 '탈학교의 꿈'을 교육 공공성, 청소년 의식과 진보운동, 교사직의 성격, 탈학교 운동 등에 대해 좀 더 논리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학교를 넘어서>에서 저자는 "학교의 진짜 역할이 다름 아닌 '사회통제' 작업과 '사회계층화' 작업"이고, 학교는 "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 그 두 가지 본분을 다하기 위해 폭력을 생산해 내는 가해자"라고 주장하였다. 학교교육은 무늬만 '공교육'일 뿐 그 실상은 블평등하고 억압적인 교육이라고. 저자는 이 책에서 다시 한 번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점, 문제의 근원을 지적한 후 그 근원을 해결하기 위한 궁극적인 대안이 '학력의 폐지'와 '직무 능력 평가 제도의 사회화'임을 밝힌다. 그는 이 책에서 학력이 노동 시장에서 능력의 지표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이러한 관행과 제도가 과연 합리적이고 정당한지를 살펴본다.

나는 저자가 제기하는 '탈학교 사회'는 이반 일리히의 'Deschooling Society'와 어느 정도 비슷한 개념이자 문제의식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근대 산업사회가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가치의 제도화'라 할 수 있다. 학습을 학교제도로, 건강을 의료제도로, 이동을 교통제도로, 정의를 사법제도로, 행복을 상품소비로 만들어 내는 가공할 산업사회의 장악력이다. 하지만 이반 일리히의 '가치의 제도화'와 저자의 '탈학교 사회'는 다른 면도 제법 보인다. 그라고 한국사회의 교육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의 근원적인 원인이 '학력사회'라는 저자의 진단은 약간 빗나간 것 같다. 물론 학교를 사회계층화와 사회통제의 도구로만 생각하면 저자의 지적이 타당할 수도 있지만, 무한입시경쟁과 교육의 붕괴에 의한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화라는 측면에서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분석하면 저자의 진단은 어긋난다. 그 부분에 대한 근원적인 원인은 학벌사회와 대학서열체제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학력 사회의 문제점을 주로 제기한다. 그는 실제 학교가 직무 훈련을 제공해 주는 효과적인 장소가 아님을 지적하며 학교 교육기간을 수료하였다는 증표인 졸업장은 직무 활동에 필요한 지식, 기술의 소지를 판별하는 직접적이고 유용한 증명서가 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지능이나 학교 성적은 학교 내 상황에서의 성공이나 실패를 예측할 뿐 실제로 직무 수행 능력을 예측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력 사회는, 대학 졸업자가 늘어나면 졸업증만으로 고용하는 측이 고용을 질에 대한 판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취업희망자들이 자신의 경쟁력이 남들보다 나아지지 않기 때문에 더 높은 학력이나 추가 증명서를 준비하여 학력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이 발생하고 확대된다. 
또한 서열화된 대학체제 속에서 지대 딱지가 생겨나고 교육의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학력폐지법' 제정과 추진을 주장한다.
그리고 학력 폐지에 대한 대안으로 '대안적인 교육 조직과 서비스'의 생산, 분배를 제시한다. 그는 교육애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네트워크'임을 말하면서 그 속에서 교육을 생산하고 습득하고 분배하는 시스템이 기능해야 함을 말한다. 그와 더불어 공교육 예산을 수요자들에게 교육 보조금으로 그리고 누진적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교육 공공성은 평등과 자율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현재의 학교는 그와 반대로 독점과 불평등, 억압과 수동성에 기초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그는 현시개의 청소년들이 깔끔한 근대적 주체로 성장하지 못하고 균열을 보이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기존의 가치 질서에서 탈각된 부분들은 상품 소비의 질서에 채워짐으로써 '저항적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당시 사회 일각에서 제기했던 '교실 붕괴에 대한 저항'이라는 해석을 거부한다.
 
[ 2012년 8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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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죽었다 한마당 글집 3
에버레트 라이머 지음, 김석원 옮김 / 한마당 / 198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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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1970년대에 미국에서 발간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으로부터 무려 40년 전 주장이고 그 사이에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렀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주장에 많은 공감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내가 70년대에 학교를 다녔기 때문인지 아니면 저자가 말하는 70년대의 학교제도의 현실이 지금도 계속되어서 그런지 그것은 이 책을 읽어야만 알 수 있다. 아무튼 나는 두 가지 모두가 원인인 것 같다.
 
저자가 "학교는 죽었다"라고 책의 제목을 선정한 이유는 타당해 보인다. "오늘날의 학교는 국가에 의해 독점되어 있다. 따라서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가르치고 높은 수준에 이를수록 통치하고 지배하는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학교는 국가에 봉사하는 자질을 길들인다. 마치 중세의 국가와도 같은 존재가 된 학교는 모든 가치와 규범을 규정하는 사회의 재판소가 되어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학교는 이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하느님의 뜻과는 달리 말을 잘 듣고 잘 보인 자에게는 좋은 선물, 즉 튼튼한 동앗줄을 내려주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나쁜 선물, 즉 썩은 동앗줄을 내려주는 교회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런 의미에서 인간의 잠재력을 개발해주고 전인적인 인간으로 키워준다는 본래의 사명을 상실한 학교는 이제 죽었다." 이 글에서 중세 종교 관련한 내용만 빼면 21세기 학교제도애 대해 비판하는 글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저자는 당시의 학교를 거부한다고 선언한다. 기술, 즉 테크놀로지가 거대한 물결이 되어 미국사회를 뒤덮어버린 상황에서 학교는 기술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에서 권력을 갖는 사람들이 이 지배관계를 통해 이득을 얻게 보장해주며, 더구나 학생들이 이 지배 관계를 거부할 줄 모르도록 무능력화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학교는 초급과정에서 고등과정까지 모두를 끝없는 경쟁으로 내몰아 그 학교제도와 운영과정이 옳고 그르고 혹은 그 경쟁이 가치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제쳐두도록 만든다. 그는 사람들이 교육에 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테크놀로지의 노예 혹은 테크놀로질는 이름에 의하여 다른 것들의 노예상태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테크놀로지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자유인을 만들기 위한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교제도를 거부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의 교육에 대한 개념 규정이야말로 지금도 보통 사람들의 상식적인 생각과 희망일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무엇이고 무엇을 하는 곳인가? 저자는 그것을 1. 학생을 보호하는 기능, 2. 사회적 역할의 선별(사회계층화 작업) 기능, 3. 이론이나 원리 혹은 사상을 주입시키는 기능, 4. 기술과 지식을 개발시키는 통상적인 교육기능이라고 분류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사회 통제를 위한 효율적인 기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저자는 그런 학교의 역할이 자본주의 사회 뿐 아니라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남을 지적한다. 그는 학교제도가 개인에게끼치는 가장 큰 해악을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어디서 재울 것인가 하는 문제는 미리 다른 사람에 의하여 결정되어 버리고, 모든 배움을 전적으로 남에게 의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라고 배우게 된다. 배울 가치가 있는 것은 학교애서 가르치는 것밖에 없으며,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도 누군가가 학교에서 틀림없이 자기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라는 믿음이 주입된다. 아이들은 학교가 제공하는 가치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가치관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태도까지 배우게 되고. 그리하여 체제 속에서 별다른 마찰 없이 지내는 방법을 학교에서 배우게 된다. 즉 환경에 순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우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아이를 입학 전보다 퇴행시키게 되는 것이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가치를 주입시키는가? 저자는 70년대에 미국 정부가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 가치, 신화 혹은 이데올로기가 기회평등, 자유, 진보, 능률임을 지적하고 이 가치 또는 이데올로기의 이면에 강요된 불평등의 현실, 지배와 억압이 증대되는 현실, 빈부격차의 현실, 여론조작의 현실을 감추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저자는 학교의 제도화와 독점화가 산업사회의 운영논리에서 비롯되었음을 설명한다.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구성원에게 필요한 소비물자를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가 건전하거나 경제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 생활을 향상시킨다고 말할 수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것이다. 사람들이 상품화된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면서 이렇게 훈련될수록 점점 더 자신의 환경을 자신이 형성하기는 어렵게 될 것이다. 그의 노력과 돈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행에 따라 새로운 상품을 구입하는데 모두 소비되고 말며, 개인의 생활 환경이란 자신의 소비양식에 수반되는 부산물로서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이반 일리히, <제도 혁명에의 호소> 중에서)
그는 인간의 욕구가 제도적으로 충족되게 됨에 따라  그 제도들은 그의 생산물을 한정하며 그것을 향유하는 것도 통제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즉 기존제도는 점차로 1. 팔요를 충족시켜주는 재화나 서비스를 규정하고(학교의 경우 교육 Education을 학교활동 Schooling으로 대체), 2. 이를 필요로 하는 자들이 이러한 규정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며(사람들은 교육을 학교활동과 동알시하도록 유인된다), 3. 필요로 하는 사람 중에 일부분은 그 생산물을 향유할 수 없도록 배제해 버리며(어느 수준에 이르면 학교는 단지 일부의 사람들만이 다닐 수 있게 된다), 4.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자원을 매점매석한다(학교는 교육에 유용한 자원을 독점한다). 그는 이렇게 일반화시킨 것은 교육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 여행 등 다른 여러 가지 인간의 욕구에 대해 모두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제도를 '지배적 제도'라 규정하고 이렇게 제도를 인간사회 전 영역에 확대시키는 이유를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학교제도는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지배적 제도'의 공통점은 한 단체 또는 개인에게 상대방에 비해 우위를 확보해 주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우위가 지속되면 이 제도에 따른 가격을 계속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저자는 '민주적인 제도'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민주적인 제도는 "다른 사람에게 우위를 제공한다거나 사람들이 그에 종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지 않으면서, 복지기관어럼 서비스를 제공하고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제도다. 그것은 산업사회의 생산체제의 형태를 취하기보다는 조직망의 형태를 취한다. 그는 이러한 민주적인 제도를 만들기 위해 교육의 경우 교육자원과 교육인력을 재조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민주적 교육제도란 교육자원은 교육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판단으로 선택하도록 하고, 교육재정은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배분해야 하며 기존의 학교시설과 교육인력은 학생들과의 네트워크와 유기적인 연결망을 통해 서로 연결되도록 한다. 

한국에서 당장 학교제도를 해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고 해체하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학교제도가 지난 20세기부터 어떠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을 어떻게 자율적인 삶에서 벗어나게 하는지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80년 가까운 인생을 살면서 보이지 않는 세력과 제도를 통해 '내 인생이 아닌 남을 위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경계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 2012년 7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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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88
정진상 지음 / 책세상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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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 대한 저자의 인식은 강준만 교수(<입시전쟁잔혹사>), 김경근 교수(<대학서열깨기>), 김동훈 교수(<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김상봉 교수(<학벌사회>)와 비슷하다. 우리 사회에서 단 한 번의 수능시험 성적과 그에 따라 배정되는 대학 졸업장은 일종의 '신분 증명서'다. 한 단계라도 높은 신분증을 취득하기 위해 오늘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입시 지옥의 터널을 힘겹게 통과하고 있고, 적지 않은 학생들은 '낙오자'로 분류되어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격리당한다. 중등교육이 대학입시에 종속되어 무한 경쟁의 장이 되고, 대학은 또 다른 시험 준비와 취업 준비 기관으로 전락한 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이 책은 이러한 교육 모순의 근본적인 원인이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서열채제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학벌주의에 있다고 지적하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라는 개혁안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의 국립대학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구성하며, 지역 국립대학의 학구별 통합, 전문대학원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이 책의 구상은 대입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 대학을 평준화함으로써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자는 것으로, 우리 교육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실천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두껍지 않은 책 속애 왜 대학서열채제가 문제인지 핵심적인 사항을 정리한 후 곧바로 몇 가지 교육문제 개혁안을 비교, 검토하면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개혁은을 실천할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 '국랍대 통합네트워크(안)'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정에서 제기된 몇 가지 공통적인 질문과 우려에 대하여 설명한다. 보통 문제제기하는 내용들은 대학 경쟁력, 엘리트 교육, 대학서열채제 변동, 대학의 자율성, 전문대학 문제, 정부의 실행의지 등이다.

저자가 제시한 '국립대 농합네트워크(안)'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소개하면,
1. 대학과 대학원 제도
1) 서울대학교를 포함한 기존의 국립대학들을 하나의 통합네트워크로 구성한다.
2) 대학의 공교육체제로서의 전환이라는 원칙에 따라 일정한 수준이 되는 사립대학들을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편입한다.
3) 서울대학교는 따로 학부생을 모집하지 않는 대신 학부 강의를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학생들에게 개방한다.
4) 학부 과정은 4년으로 하되 1기 과정 2년에는 인문사회 계열과 자연 계열, 두 계열만 두고 2기 과정 2년은 학부제로 운영한다.
5) 법대, 사범대, 경영대, 의치대, 한의대, 수의대, 약대 등 전문직을 위한 학부과정을 폐지하고 이 과정들을 전문대학원으로 설치한다.
6) 지역의 국립대학들을 현재의 거점대학을 중심으로 학구별로 통합하고 몇 개의 캠퍼스로 조직한다.
7) 대학원은 일반 대학원과 전문대학원으로 구분한다. 학문을 위한 일반 대학원은 학구별 특성화를 유도한다.
8) 전문 직업을 위한 전문대학원은 학구별로 인구 비율에 따라 입학 정원을 조정한다.

2. 학부 입학제도
1) 신입생 선발의 단위는 대학별, 학과별이 아니라 전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총정원으로 한다.
2) 대학 입학 자격은 인문사회계와 자연계 두 계열로만 나눈다.
3) 대학 입학 자격은 고교내신성적과 계열별 대학입학자격시험을 통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총 입학 정원 계열별로 부여한다.
4) 계열별 대학 입학 정원 중 30%는 별도의 대학입학자격시험을 통해 입학 자격을 부여한다.
5) 현행 수능시험을 폐지하고 이를 대학입학자격시험으로 대체한다.
6) 대학 입학 자격을 획득한 학생들은 먼저 1,2,3 지망으로 대학(캠퍼스)을 지원해 배정받고, 정원이 초과되어 대학을 배정받지 못한 학생들은 추첨을 통해 배정받는다.
7) 학부 2기 과정의 각 학부(인문학부,사회과학부,자연과학부,공학부,농학부,해양학부,가정학부등)는 학부 1기 과정 이수자 중에서 무시험 전형으로 진입생을 선발한다.

3. 대학원 입학제도
1) 일반 대학원은 학부 과정의 성적을 중심으로 한 서류 전형으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2) 일반 대학원의 각 학과는 신입생 선발에서 다른 대학(캠퍼스) 출신 학생에게 50% 범위 내에서 우선권을 부여한다.
3) 일반 대학원의 특성화를 위해, 위의 원칙 아래서 각 대학원의 전공 학과에 최대한 자율적인 신입생 선발권을 부여한다.
4) 전문대학원은 학부 과정 이수자 중에서 학부 과정 성적(50% 반영)과 별도의 선발시험 점수(50%)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5) 전문대학원은 지역 균형 인재등용 제도의 취지에 따라 동일 학구의 학부 출신에게 우선권(80%)를 부여한다.

4.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운영
1) 대학 학적과 관계없이 모든 졸업생에게 동일한 '국립대학 학위'를 수여해, 졸업장이 아니라 성적표가 사회적 평가 기준이 되도록 한다.
2)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내의 어떤 대학(캠퍼스)에서도 학점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한다.(상대평가제 도입으로 과열지망 방지)
3) 서울대학교는 학부 과정 강의를 개설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학생들에게 개방한다.
4)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수준을 상향 평준화하기 위해 대학의 엄격한 학사관리가 필수적이다.
5) 대학평준화로 인한 학생들 사이의 실력 차이에서 오는 교육의 수월성 문제는 동일한 교과목에 대해 수준별로 복수 강의를 편성함으로써 해소한다.
6) 대학 공교육체계의 원칙 아래, 국립대학의 등록금을 단계적으로 인하애 결국 무상 교육으로 전환한다.
7) 국립학 간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신입생 통합 선발을 제외한 모든 학사를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8) 대학에 학사 관리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립학교법을 개정해 사립대학이 교육의 공공성 실현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9) 교수임용제도를 개선하고,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속한 대학 교수들의 상호교환제도를 확충한다.

5. 부대적 제도 개혁
1) 공공부분애소부터 지역균형인재등용제도 도입 ? 고시제도의 개혁
2) 사립학교제도의 개혁(사학의 공공성 확보, 대학운영의 민주화, 부패방지의 제도화)
3) 조세제도의 개혁(부차적, 단계적)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여 지난 2004년 학벌주의 타파와 대학서열체제 해체를 위해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범국민교육연대'를 발족하고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정책대안으로 정부와 정치권, 시민들에게 제시했다.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결국 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과 교육부는 이를 무시하고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을 밀어붙였고 결과적으로 무한입시경쟁과 사교육 팽창, 고교평준화 위협, 대학경쟁력 상실로 이어졌으며 참여정부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2007년 12월 국가권력은 10년 만에 기득권에게로 넘어갔다.(물론 교육문제 해결 실패가 대선 실패의 모든 원인은 아니다)

위에 제시된 교육개혁안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사회의 교육부분에서 크게 변화된 부분이 없기 때문에(곽노현, 김상곤 등 진보교육감의 활약은 가장 핵심적인 과제해결에서 취약하다)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5개 분야의 교육개혁안이 올해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교육부분에서의 논의를 촉발시키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여 차기 정권에서 단계적으로 실현된다면 학벌주의 타파와 대학서열체제 해체를 통해 초,중,고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쓸데없는 사교육이 대폭 사라질 것이며 대학생들이 무모하게 고시시험에 매달리는 현실이 상당부분 극복될 것이라 믿는다. 즉 졸업장이 아니라 능력과 자질을 통해 인정받는 사회가 한 발 앞으로 다가올 것이다.

최근 민주통합당에서 대선 정책공약을 수립하기 위해 '국공립대 연합체제(안)'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대학개혁과 교육개혁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민주통합당 내의 누가 '국공립대 연합체제(안)'을 꺼냈는지 모르겠지만 민주당의 정책안은 조금 어설펐고 보수와 진보 양측으로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공격당하면서 여론에서 사라졌다. 민주통합당의 '국공립대 연합체제(안)'의 세부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학벌타파와 대학서열체제 해체라는 취지와 목표는 동일했다.
지난 민주통합당의 공청회는 제목도 다르고 구체적인 정책내용도 다르지만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정책대안이 8년 만에 민주통합당에서 '국공립대 연합체제'라는 이름으로 고개를 든 것이라 할 수 있다. 2004년 당시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민주통합당(과거 열린우리당)이 학벌주의와 대학서열체제가 우리사회의 심각한 질병임을 동의하여 대선 공약으로 추진하려고 준비 중인 것이다. (그동안 교육개혁운동을 끈질기게 진행해온 분들 입장에서는 격세지감을 느낄만 할 것도 같다.)
민주통합당의 교육개혁안이 비록 조금 부족하다 하더라도 학벌타파와 대학서열체제 해체라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한 발을 뗀 것이라 인정하고 그들의 정책이 좀 더 많은 논의와 토론을 통해 제대로 된 교육개혁안이 되도록 주변에서 격려하고 채찍질 했으면 좋겠다. 교육개혁은 우리의 아이들의 앞날이 달린 문제이니까...
진보적인 인사로 알려진 서울대의 모 교수는 당시 페이스북에 한국의 착취-피착취 구조와 권위주의 구조를 혁파하는 것이 교육개혁보다 우선순위라면서 교육개혁에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정보도를 위한 언론개혁, 최저생계를 위한 최저임금투쟁, 안정적인 고용을 위한 비정규직 투쟁, 공정한 법집행을 위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이 모두 중요하듯이 교육개혁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이 시대의 과제이자 아이들을 위한 절대절명의 과제임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2004년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은 문재인 현대통령 후보이고, 참여정부 국무총리는 이해찬 현 민주통합당 대표이고, 2005년부터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김진표 전원내대표다. 2012년 대통령 선거의 과정이 매우 중요한 것 같은데 아직 교육문제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지 않다. 문재인, 이해찬 두 사람의 교육부분 공약도 불투명하다. 과거의 실패와 과오를 깨닫지 못하면 미래에 또 다시 오류를 반복할텐데...
 
[ 2012년 7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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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학교문화와 입시드라마
김철훈 지음 / 문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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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지인들에게 우리 사회의 초,중,고교 학생들의 '입시지옥'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개의 경우 공감하고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우리 세대가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나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닌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0~40년 전이다. 학창시절에 경험했던 대부분의 것들은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단편적으로 강한 기억만 남았을 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이지만, 우리 세대가 다니던 학교, 특히 중,고등학교보다 현재 중,고등학교가 대학입시에 훨씬 몰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대학입시에 대해서 학교 전체가 요즘처럼 강하게 압박하지 않았다. 그런 압박은 사회나 언론, 부모나 친지, 사회문화적 분위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는 사회도 가정도 최소한의 생존과 먹거리가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의 학교와 교육에 대해 들여다보면 볼수록 내가 경험한 학교제도나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완전히 딴판이란 것을 자주 느낀다.
 
저자는 그런 내 문제의식과 고민에 대해 좀 다른 방향을 통해 비슷한 결론이 도출되는 분석 결과를 보여준다. 그는 한국 사회의 학교문화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의 입시 문화에 대한 교육사회학적 접근으로 '비판문화기술지'를 시도한다. 역대 정부가 교육 개혁을 위해 다향하게 시도하고 처방을 내렸지만 결코 학교 교육과 문화는 변하지 않았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다양한 이해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교육행위자들의 복합적 관계망' 즉, 학교의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시도한 것이다.(문화기술지 文化記述誌 ethnography란 인간 사회와 문화의 다양한 현상을 정성적, 정량적 조사기법을 사용한 현장 조사를 통해 기술하여 연구하는 학문의 분야이다. 문화기술지는 어떤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각 부분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을 통해 전체 시스템의 총체적 연구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학문적 용어는 어려워서 여기서 생략...ㅋㅋ)
저자는 1990년대 후반 1년 동안 'T' 광역시 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직접 관찰자 및 행위자로 참여하면서 학교현장, 학교운영, 교직문화, 학생문화 등을 기록하였다. 그 경험과 기록을 토대로 다른 학자들의 중등교육 연구내용과 일반적인 교육, 학교에 대한 연구결과를 비교하면서 해석학적 그리고 문화지판기술지 방식으로 학교문화와 사회적 맥락을 분석하였다. 저자의 학교 현장에 대한 기록과 분석은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교사와 학생을 망가뜨리고 또한 방치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학교생활 속에서 우리가 간관해 버리는 작은 일상들을 통하여 교사들과 학생들의 삶을 간략하게 그려 본 밑그림은 입시 중심 교육을 표방하는 인문계 고등학교 생활의 문화적 주제인 '진학과 질서유지'이다. 이것은 교사와 학생들에개 끊임없이 강조되는 대학 진학을 위한 학습과 성취 수준을 높이기 위한 욕구 유보의 강조로서 교칙 준수라고 할 수 있다. 인문계 고등학생들이 학교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고 내면화해야 하는 것은 진학을 위해 학교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교사와 학생들은 궁극적 목표인 진학을 위해서 모든 정열을 바쳐야 한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학생들의 성공적인 진학을 위해서 교칙 준수를 강조하게 되고 학생들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통제하게 된다."

교직 문화는 반복적인 생활과 입시 중심의 현실에 적응하고 부합하는 모습인 '무력감과 형식성'으로 나타난다. 학교는 교장을 중심으로 '투입-산출모형'의 맹신으로 학생들에게 수많은 학습을 강요하며 '결과 제일주의'를 지향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입시에서 더 많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포괄적 문제풀이 수업'을 선호한다. 입시와 관련 없는 교과는 본래의 수업 모습을 잃어버리고 국영수 등 주요 과목의 들러리 역할만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무력감을 경험한다. 또한 업무 과중과 입시에 초점을 둔 학사행정으로 교사들은 거의 모든 일에 형식적 절차를 강조한다. 특히 학생생활기록부 작성은 일정한 틀에 맞추어 획일적으로 작성된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긍정적 보상보다 부정적 강화물로서 체벌을 즐겨 사용한다. 담임 교사들은 과밀학급을 운영하기 위해 반장 중심의 '집단주의 학급 운영'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학생들을 분류하여 그에 맞는 역할을 부여하고 학부형들의 지원체제에 대응한다. 학교 제도와 시스템이 교직문화를 지배하는 것이다.
직무에 대한 교사의 동기부여 체계는 포상, 담임 배정, 격려, 보상 등이 있다. 입시 압력과 단조로운 학교생활을 견디기 위해 교사들은 적극적인 역할 수행, 전략적 순응, 시간 때우기, 각종 취미생활이나 오락에 심취하는 것 등을 생존전략으로 채택한다. 그러나 제도적 압력에 대하여 교사들은 최소한의 경계 안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저항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억압적인 생활을 강요하는 입시 및 진학 중심의 학교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다. 이것은 특히 성적에 의한 차별과 체벌이 그 전형을 이룬다. 학교는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학생들을 학습으로 유인하기 위해 의식조회, 체육대회, 종합전과 가요제 등 여러 가지 의례적 행사를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입시에 적극적인 학생이나 소극적인 학생이나 긍정적인 생활에서 소외되기는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교사에 대한 대응, 축소, 지향의 놀이문화, 대중매체와 관련된 각종 취미생활, 비행과 일탈, 낙서를 통한 자기 표현 등 여러 전략들을 사용한다. 특히 학생들은 다양한 놀이문화를 통해 자신의 환경을 변화시키며, 동시대의 인기 있는 여러 취미생활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체벌과 좋은 수업에 기준을 두고 교사들을 분류하며, 교사의 심리나 행동 늑성을 최대한 이용하여 자신들의 승리를 연출해낸다. 학생들의 가장 두드러진 저항은 다양한 일탈과 비행을 통한 교칙 위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진학만 강조하는 학교 분위기와 학생들의 진학을 향한 열망으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대부분의 저항은 순응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인문계 고등학교 문화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내부 요인은 학교 의사결정구조, 전통과 의례적 행사, 물리적 환경, 개인적 문화습성, 문화적 연결고리로서 생존전략을 들 수 있다. 그 외부 요인은 대학입시제도, 상급 교육행정기관, 대중매체문화, 학부모와 동창회, 사설입시 관련 기관, 학교 주변 업소의 상업성이라 할 수 있다. 특하 하양식 의사결정구조와 입시제도는 교사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교직문화를 수동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학생문화는 입시문화의 압력과 욕구 충족을 위한 대중매체문화의 자발적 수용이라는 이중저구 구조 내에서 무비판적, 현실순응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사설 입시 관련 기관의 상술은 학교와 가정 사이의 약간의 시간적 공백도 놓치지 않고 학생들의 삶에 파고든다. 학생들의 놀이문화를 생성시키는 지역사회의 업종들은 오락실, 당구장, 노래방 등이 있다. 학교 주변 업소의 상업성은 학생문화를 성인문화처럼 만들어 버린다."
 
 
[ 2012년 7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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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넘어서 - 2010년 개정증보판
이한 지음 / 민들레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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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詩習之 不亦說乎)'... 중학교인가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이다. 공부나 학습, 교육에 대해 생각할 때 문득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구절이다.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에 공자가 한 말이라지만 당연한 말이면서도 21세기에도 관통하는 더할 나위 없는 진리라는 생각도 든다. 공자의 삶을 생각해보면 공부하는 것이 군자가 되어 나라의 정책을 펼치거나 백성을 위해 일하기 위함이가도 했지만, 역으로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말 그대로 스스로가 '배우고 익히는' 것이 공부이자 학습이고 그것 자체로 기쁘고 즐거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부는 '고행'이고 '지옥'이 될 것이다. 지난 번 읽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중애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한국 아이들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학부모들도 그렇고 교육자들도 그렇다. 그래서 총선이나 대선 때만 되면 자신이 교육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정치인들은 앞다투어 교육공약을 발표한다. 지난 20년 이상 정치인들은 이런 저런 심각한 공약을 선거 때 제시했다가 막상 정치권력을 획득하면 근본적인 교육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기보다 '대학입시제도'를 개편하거나 되먹지도 않는 명분과 이유를 대면서 섣부른 교육정책을 실시하고 결국 아이들을 더 극심한 입시지옥으로, 학부모들을 사교육 광풍으로 몰아넣는다. 이 땅의 정당과 정치인들이 과연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고통과 좌절에 진심으로 공감하는지, 관심이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여러 전문가나 교수, 학자들이 제시하는 교육문제 해결책을 읽다보면 "아! 이렇게 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싶은 내용도 보인다. 그러면서도 근본적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의식은 벗어나지 않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그것은 '근대사회의 제도화'와 '인간 스스로의 자율'의 대립이다. 근대사회 이후 인류는 인간의 기본 생활과 의식주, 건강, 학습, 자치, 안전 등 모든 분야에 법과 제도를 적용하여 왔다. 외형적인 이유는 인구폭발에 따라 복잡해진 인간사회의 현상과 관계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결국 특정 집단의 '이익'이 강화되고 보장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의 자치와 규율은 국가라는 제도와 공무원이라는 집단을 형성시켰고, 건간에 대한 관심은 '의료'와 '의사'라는 제도를 탄생시켰다. 안전은 군대와 직업군인을, 주거는 건축사와 건설회사를, 위생은 상하수도와 공기업을, 보행은 자동차와 도로를, 식생활과 더위와 추위와 어두움은 석유와 석탄과 기업과 통제기구를 가져왔다. 이 모두가 산업사회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이제 사람들에게 먹거리마저 외부에 의존하게 만들고 있다. 공부와 학습 역시 학교라는 제도와 교사, 교수라는 자격증을 가진 이익집단을 형성시켰다. 근대 산업사회의 '제도화'의 공통점은 그 제도와 집단에서 벗어나는 순간 곧바로 '부정'으로 낙인찍는 것이다. 건강은 오로지 자격증이 있는 의사가, 폭력과 살인은 면허가 주어진 경찰과 군인이, 공부는 자격증이 있는 교사만 가능하다, 인간 스스로가 공부하거나 치료하거나 방어하거나 먹거리를 만들면 '국가와 법률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처벌한다. 
이런 문제의식의 요점은 한마디로 "근대사회의 제도화는 인간의 모든 자율성을 감소시키고 박탈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반 일리히()의 저작을 통해 이런 식의 문제의식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이반 일리히의 <학교없는 사회 Deschooling Society>의 문제제기와 비슷한 맥락에서 교육과 학교를 다룬다.

이 책은 1998년 처음 초판이 나왔고(이 책을 처음 썼을 때 필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는 학생이었다. 그는 저 끔찍한 선착순 달리기에서 맨 앞에 들어온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2003년 개정판에 이어 2010년 개정증보판으로 새롭게 출간된 책이다. 저자와 출판사는 초판이 나오고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의 교육 현실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애 재출간했다고 말한다. '공교육 정상화'와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한 줄 세우기 교육'이 오히려 강화되고 있고 아이들의 삶의 질은 더욱 나빠져, 교육 문제 이전에 인권 문제로 접근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한국의 학교는 어떠한가? 저자는 "오늘날 학교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외치는 것은 마치 쌀을 매점매석한 뒤 모래를 섞어 팔아먹는 고약한 상인이 자기가 없으면 모두 굶어죽을 것이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고 선언한다." 저자가 판단하는 바로는 학교의 진짜 역할이 다름 아닌 '사회통제' 작업과 '사회계층화' 작업이다. 학교는 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 그 두 가지 본분을 다하기 위해 폭력을 생산해 내는 가해자이다. 학교교육은 무늬만 '공교육'일 뿐 그 실상은 블평등하고 억압적인 교육임을 말한다. 

저자는 한마디로 '탈학교 사회'를 꿈꾼다. 교육의 본래 가치는 자율과 자유와 평등이며 현재의 학교 제도는 이런 본래 가치를 역으로 훼손하기 때문에 학교 밖에서 교육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각종 노력, 즉 학습공동체나 학습협동체, 학회, 대안학교나 홈스쿨링 등이 활성화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또 이러한 대안 교육이 정착되기 위해 교육보험제도와 교육화폐제도, 교욱지원시설과 지식개발 사업, 분야별 평가제도와 학습네트워크를 제시학 제도적인 뒷받침을 위해 학력폐지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 책을 페이스북에 소개했더니 일부 페친들이 '과거의 학교 이야기'라고 치부하거나 '대안학교 마케팅 교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나 역시 초판이 발행된지 12년이나 지났고 그 사이에 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여러가지 노력과 진보교육감을 탄생 등으로 학교의 실태가 분명히 개선되었을 것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배움을 독점'하는 현행 학교제도가 건재하게 존재하고 여전히 입시지옥과 무한경쟁이 존재하는 한 학교가 본래의 교육가치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국가기구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 또한 현실일 것이다. 그리고 배움과 학습을 제도가 독점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취지에 내가 동감하기에 저자의 주장과 시도에 긍정적이다.
저자가 '탈학교 사회'를 주장한다고 하여 '교육기관'과 '제도교육' 그 자체를 한꺼번에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제도교육'을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획일적인 강요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 2012년 7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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