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서하진]소설가로 산다는 것


어느 직업에나 어려움이 없지 않겠으나 대한민국에서 소설가로 사는 일은 참으로 지난하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금전적인 부분일 터. 후배 소설가에게 들은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하면 이렇다. 30대이고 미혼인 후배가 어느 날 결혼정보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냥 끊을까 하다 자신이 대체 몇 점짜리 신랑일까 궁금해지더란다. 키는? 체중은? 출신 학교는? 부모님은? 사는 지역은? 자가인가, 전세인가? 세세한 질문이 이어졌다.

결혼정보회사가 매긴 점수는

신체 건강하고 외모로 보자면 남에게 빠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던 후배는 178cm, 72kg, K대학, 교수, 청담동, 자가의 순으로 차례로 답을 했는데 다음 질문이 직업이었다. 잠시 망설이다 소설가라고 정직하게 답을 한 순간 저편의 상대는 아,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고는 죄송하다, 실례가 많았다 하고 전화를 끊더라는 얘기였다. “당연하지. 소설가는 그런 직업 순위 20위 밖이다”라고 다른 소설가 한 사람이 지적하자마자 평론하는 후배가 자탄을 뱉었다. “평론가는 아예 항목에도 없어요.” 좌중에 왁자한 웃음이 터졌지만 모두의 표정은 씁쓸했다.

소설가의 수입은 대체 얼마나 될까. 단편소설 한 편을 쓰면 100만 원 내외의 고료를 받고 연평균 4편쯤의 소설을 발표하니 400만 원, 2년 정도 모은 소설을 묶어 출간하고 받는 인세가 초판 3000부이면 300만 원, 그러니 연평균 550만 원가량? 월평균 45만 원이면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선정 기준인 월 43만 원을 가까스로, 그야말로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니 결혼정보회사 직원이 “실례가 많았다”고 전화를 끊은 것도 결코 무리라고 할 수 없다.

소설을 쓰면, 책을 내면 엄청난 인세를 받고 부자 대열에 끼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키스 더 걸(Kiss the girl)’로 잘 알려진 미국 스릴러 작가 제임스 패터슨은 1년간 5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하고 저 유명한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매일 10억 원(!!)의 인세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수억 원의 수익을 올리는 작가, 억대의 세금을 걱정하는 작가가 없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소설가는 밥 벌어먹기 어려운 직업이라는 일반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최인호, 안티가 있거나 말거나 끊임없이 화제의 책을 써내는 이문열이 있고 후일담 설화 귀신, 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담을 종횡으로 오가며 베스트셀러 소설을 양산하는 황석영이 있다.

내는 책마다 수십만 부, 심지어 백만에 육박하는 판매부수를 올리는 공지영 같은 작가도 있고 결혼 상대에게 최고급 외제차를 선물했다는 모 작가의 이야기도 있다. 이뿐이랴, 인세 수익만으로 고환율 시대에 아이의 유학비용을 거뜬히 감당하는 여성 작가의 놀라운 이야기도 있다. 어느 행사장에서 황모, 김모, 후배 작가 김모와 합석한 일이 있었다. 소득이 미미한 해가 있는가 하면 책이 많이 팔려 최고 세율의 소득세를 내야 하는 때가 있으니 작가에게는 좀 다른 방식의 세금 부과 기준이 필요하지 않나, 라는 황모 선생님의 말씀에 다른 두 작가가 열렬히 호응을 보내는 거였다. 소설가의 모임에서는 처음 만나는 화제여서 귀를 쫑긋 세우는 나를 누군가가 슬쩍 잡아당겼다. “너는 거기 왜 끼어 있니”하면서.

“왜, 나도 억대 고료 작가야. 10년 단위로”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사실 등단 15년 동안 10여 권의 책을 냈고 출판사에 미안하지는 않을 정도의 판매액을 올렸으니 수익으로만 따지자면 나는 평균 이하의 작가는 아니다. 꾸준히 청탁을 받고 열심히 원고를 쓰는 작가의 경우가 이러하니 대부분 소설가의 상황은 이보다 훨씬 열악하다. 잡문을 쓰지 말라는 스승의 말씀은 가슴 깊숙이 묻어두고서 장르를 넘나드는 글을 쓰고 얄팍한 봉투를 위해 경향 각지의 강연장을 돌아다닌다. 어쩌다 ‘이달의 우수 도서’에 선정되는 행운이 생기면 판매액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느라 밤잠을 설친다. 예술위원회에서 분기별로 우수 발표작에 주는 300만 원을 짐짓 태연한 척, 속으로는 황감해하며 받고 어느 단체, 어느 기관의 후원금을 행여 놓칠세라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혹 눈먼 상 하나가 떨어지지 않나 목을 매고 기다린다.

작가들의 상황 너무 절박하다

물론 누구를 탓할 바가 아니다. 소설보다 더 기막힌 일이 무시로 일어나는 우리 사회에 책임을 돌릴 수는 더구나 없다. 하지만 “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뭐”라고 버려두기에는 우리 작가들의 상황이 너무도 절박하다. 안 팔린다, 안 읽는다, 하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오쿠다 히데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사고 읽는다. 그러니 답은 이미 나와 있는 듯이 보인다. 재미있게 쓸 것. 판타지와 공포와 연애와 스릴러를 버무릴 것, 재주가 있다면 코믹을 채택할 것, 무엇보다도 엄숙주의를 과감하고 냉정하게 버릴 것. 그리하여 기필코 ‘무릎팍 도사’에게 부름을 받을 것…. 지금 한국의 소설은, 한국의 소설가는 체질개선의 절대적인 요구에 직면해 있다.

서하진 소설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님은 갔지만… 박경리선생 추모 열기
 

‘모진 세월 가고 /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박경리 ‘옛날의 그 집’ 중)
고인은 버리고 갈 것만 남았다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버린 것 중 가벼이 볼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하소설 ‘토지’를 비롯, 소설작품까지 들먹일 것도 없이 유고로 남긴 시집만 해도 34쇄 10만부가 넘게 팔려나갔다. 그 무게를 감당하기 쉽지 않은 작가 박경리(1927~2008년)가 떠난 지도 새달 5일이면 1년이 된다.
박경리 1주기를 맞아 추모 열기가 뜨겁다. 추모집과 연구서 등 각종 책이 잇따라 출간되는가 하면, 그를 소재로 한 전시회도 마련된다. 추모제도 열린다.


 
▲ 화가 김덕용이 목판에 단청기법으로 그린 박경리.
우선 고인의 기념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영주)이 고인을 추모하는 글을 모아 1주기 추모집 ‘봄날은 연두에 물들어’(마로니에 북스 펴냄)를 냈다. 지난해 영결식과 추모식에서 각계 인사들이 읽었던 추모글을 비롯, 고인이 떠난 후 후배 문인들이 잡지와 신문에 기고했던 관련 글들을 모았다.
책은 소설가 신경숙·공지영, 시인 도종환 등 문인들이 대거 참여해 가까이 지켜본 고인의 모습과 인품을 면면이 소개한다. 또 고인의 전기도 함께 정리했고, 사후 추모행사와 선양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안내해 뒀다. 방송 및 해외언론에 비친 고인의 모습도 정리해 담았다.


 
▲ 토지문학공원 내에 있는 작가 생전의 집필실.
최해국기자 seaworld@seoul.co.kr
고인의 문학적 업적을 정리하는 연구서도 나왔다.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가 토지를 중심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분석한 ‘박경리와 토지’(강 펴냄)를 냈다. 김 교수는 책에서 박경리 ‘토지’의 핵심키워드를 ‘산천’이라고 분석하면서 “‘소설이란 무엇인가’에서 ‘우리소설이란 무엇인가’로 물음을 전환하도록 촉진시킨 계기를 마련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대표작 토지 외에 “사소설 형식을 빌린 ‘악마적 글쓰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있는 작품”이라며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등도 다뤘다. 부록으로 토지의 배경인 평사리 마을 지도, 최참판댁 가옥 구조, 인물 가계도도 함께 실어 이해도를 높였다.


추모열기는 문학계에만 국한돼 있는 것이 아니다. 박경리를 추모하는 전시회도 열린다. 고인의 음력 기일인 24일을 전후해서는 토지문화재단이 원주 박경리문학공원에서 추모 사진전과 시화전을 열었었다. 거기에 이어 5일부터는 5월 한달동안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박경리 1주기 특별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와 화가 김덕용’ 전시회가 열린다. 화가 김덕용은 박경리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서 고인을 주인공으로 한 삽화를 그린 인연으로 이번 전시를 열게 됐다. 김덕용 특유의 오래된 나무판에 단청기법으로 그린 삽화와, 박경리를 소재로 한 신작 등 30~40여점이 갤러리 2층에 전시된다. 1층에는 고인의 유품, 생전 사진이 전시된다. (02)519-0800.
새달 4~5일에는 박경리 추모공원 등 통영시 일대에서 여러 문인과 지인들이 참석하는 1주기 추모제도 열릴 예정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저 그림이 좋아 스크랩해 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들의 명언 ◈



1.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도 '시나리오가 좋지 않으면 결코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다'는
미신을 신봉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 어니스트 레먼


2.시나리오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것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세상에 가득 차 있는 저 모든 형편없는 시나리오들이 이 사실을 증명한다. - 톰 릭먼


3. 영화의 핵심은 어떤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4-5분간의 사건들이다.
나머지는 모두 이 순간들에 임팩트와 반향을 주기 위하여 존재한다.
시나리오란 그 순간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 로버트 타우니



4. 희곡과 시나리오에서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창작과정 자체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
다만 시나리오에서는 그것이 스크린 위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을 빼놓고는. - 어니스트 레먼



5. 원작이 훌륭하다고 해서 영화까지 훌륭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각색과정에서 흔히 발견되는 잘못은 원작의 문학성을 그대로 고수하려는 시도이다. - 윌터 번스틴



6. 영화는 소설이 해낼 수 없는 일을 훌륭하게 해낸다.
영화에는 내러티브를 풀어가는 놀라운 도구인 사이즈와 스코프라는 것이 있는 까닭이다.
영화와 소설은 전혀 다른 예술양식이다. 그 둘 사이에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그저 대사가 사용된다는 것 정도이다. 시나리오 작가가 영화 속의 한 신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문제는,
소설가가 소설 속의 한 장면을 어떻게 T는가 하는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 윌리엄 골드먼



7.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 윌리엄 골드먼



8. 나는 시나리오 작가이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현장에서 감독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장에서도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언제나 협동을 필요로 한다.
내가 보기에 작가주의 이론이란 학자들이 그저 어떤 개인을 손쉽게 찬양하거나,
비난하려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 그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이론일 뿐,
실제로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 로버트 타우니



9. 영화는 필연적으로 협동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 빌 위틀리프



10. 기본적으로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사람은 일곱이다.
이들이 제각기 최선을 다해야만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진다.
그들을 무순으로 나열해보자면 감독, 제작자, 배우들(원화면 동화맨), 촬영감독(레이아웃),
미술감독(아트디렉터), 편집자,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이다.
때로는 영화음악가가 막중한 역할을 해낼 때도 있다. - 윌리엄 골드먼



11. 모두가 자신이 맡은 바를 제대로 해낼 때면 그들 각자의 작업들이 하나로 융합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물론 작가는 작가이고, 배우는 배우이며, 감독은 감독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각자가 맡고 있는 작업들을
한데 융합시키며 일할 때라야 진정으로 함께 일한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로버트 타우니



12. 스토리는 캐릭터와 함께 시작된다. - 프랭크 대니얼



13. 작가는 결코 알 수 없는 반면 관객은 언제나 알고 있다.
작가가 제아무리 자신이 쓴 작품의 성공을 확신한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스태프들 내부의
시사실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관객은 언제나 작가에게
그가 결코 알 수 없었던 어떤 것을 갑자기 알려주는 법이다. - 어니스트 레먼



14. 영화에서 가장 큰 죄악은 관객을 지루하게 만드는 것이다. - 프랭크 대니얼



15. 우선은 다루려고 하는 내용을 잘 알아야 한다.
내가 결코 듣도 보도 못한 어떤 것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빌 위틀리프



16. 관객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은 그가 고통을 받고 있다거나 짓눌려 있다거나 하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관객은 그가 자신이 처해 있는 처지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감정이입을 한다. - 윌터 번스틴



17. 제1장에서는 등장인물들과 전체의 스토리가 처해있는 상황을 다룬다.
제2장에서는 그 상황이 진척되어 갈등의 최고조에 이르게 되는 커다란 문제를 다룬다.
제3장에서는 갈등과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가를 다룬다. - 어니스트 레먼



18. 나는 내가 원하는 상황 속으로 캐릭터들을 억지로 밀어넣으려 하지 않는다.
캐릭터들이 충분히 리얼하게 그려졌다면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원하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줄 것이다. - 빌 위틀리프



19.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주변환경 사이에는 반드시 어떤 종류의 상호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 윌터 번스틴



20. 나는 결코 등장인물과 따로 놀고 있는 플롯을 짜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써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스토리가 누구에 관한 것인지,
주인공은 누구인지를 분명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가령 악당에 관한 시나리오를 쓸 경우
내가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그 악당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여
무시무시하지만 흥미로운 인물, 설득력 있고 매혹적인 인물로 만드는 일이다. - 윌터 번스틴



21. 중요한 것은 종이 위에 어떻게 쓰여 있는가가 아니라 스크린 위에 어떻게 보여지는가이다. - 톰 릭먼



22. 스토리가 허락하는 한 타임프레임을 짧게 설정하라 - 링 라드너 주니어



23. 당신에게 허락된 시간에 비해 스토리가 너무 많아선 안 된다. - 톰 릭먼



24. 관객에게 설명하려 들지말라. 그러면 관객은 방관자로 남게 된다.
대신 관객에게 조금씩 보여줘라. 그러면 관객은 등장인물이 체험하는 것과 똑같은 형식으로
그것을 체험하게 됨으로써 참여자가 된다. - 빌 위틀리프



25.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 작가는 그의 사회적 지적 역사적 정치적 입장을 확정지어야 한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무엇을 위하여 또는 무엇에 반하여 행동하는가? - 윌터 번스틴



26. 내게 있어서의 키워드는 언제나 '갈등'이다. 이 스토리의 갈등은 무엇인가?
내가 들려주고 싶어하는 스토리를 가능하게 하는 갈등은 어떤 것인가? - 윌터 번스틴



27. 만약 캐릭터가 살아 있다면 당신은 그에게 어떤 행동을 하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를 쫓아다니기에도 벅찰 따름이다.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
혹은 스토리텔링이 마법으로 화하는 순간이 바로 그런 때이다. - 빌 위틀리프



28. 만약 오프닝에서 너무 많은 액션과 흥분되는 장면들을 보여준다면 뒤이어 많은 설명이 필요하게 되고
캐릭터의 변화와 발전 또한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그토록 멋진 오프닝으로 시작된 지 겨우 20여 분만에
영화는 주저앉아 버리게 만다. 내가 좀더 소프트한 오프닝을 선호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오프닝에서는 거의 모든 것을 다 용서해주지만
엔딩에 이르면 거의 아무것도 용서하려 들지 않는 것이 바로 관객이다.
만약 관객이 엔딩에 만족스러워하지 않는다면 거기에 이르기 전까지 아무리 잘해왔어도 소용이 없다. - 로버트 타우니



29.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은 목수일을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종류의 구조물을 세워놓고 그 위에서 부산을 떨어대는 것이다.
그 구조물이 유지되고 있는 한 무엇을 쓰든 상관없다.
대사야 어찌되든 관계없이 그 장면은 버틸 수 있는 것이다. - 윌리엄 골드먼



30. 드라마의 핵심은 캐릭터의 변화이다. 엔딩의 캐릭터가 오프닝의 캐릭터와 같은 인물이어서는 안 된다.
캐릭터는 변한다 - 정신적으로 어쩌면 육체적으로까지. - 로버트 타우니



31. 관객은 쉽게 동조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동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에만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
그들은 놀라길 원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원하고, 무언가에 의하여 충만해지기를 원한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찌됐건 그들은 어떤 종류의 매듭이 지어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 톰 릭먼



32. 주제는 오프닝에서부터 멋지고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 패디 차예프스키



33. 시나리오를 망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나리오를 통하여 억지로 무언가를 증명해내려 쓰는 것이다. - 윌터 커어



34. 서브플롯 내에서 장난을 칠 때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도대체 여기에서 뭘 하고 있나? 이건 꼭 필요한가? 이것은 메인플롯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만약 이것을 없애버린다면 영화가 잃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주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 윌터 번스틴



35. 극본을 쓸 때 가장 중요한 테크닉 중의 하나는 캐릭터들이 내뱉는 대사 속에 작가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관객이 자기가 지금 어떤 현실을 체험하고 있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대사 속에 극작가의 개인적인 의견이 억지로 담겨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만큼 나쁜 것은 없다. - 헨리크 입센



36. 구조적인 통일성이란 이런 것이다. 어떤 한 부분을 없애버리거나 옮길 때 전체가 어긋나거나 손상을 입어서는 안 된다.
어떤 부분이 있건 없건 별 상관이 없다면 그것은 전체의 유기적인 부분이 아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37. 궁극적으로 당신이 신경써야할 것은 당신의 스토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이다. 구조야말로 당신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궁극적이고 기본적인 실마리이기 때문이다.
일단 스토리의 구조를 확장하고 나면 모든 것은 그 구조에 얽매어 있게 마련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작가가 그 구조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면 결과는 멋지게 나온다. 만약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면
아무리 좋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 해도 결과는 영 아니올시다가 되고 만다. - 윌리엄 골드먼



38. 가장 흔히 쓰는 방법은 설명이 필요한 장면에서 갈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면 작가가 관객에게 알려줘야 될 설명이 캐릭터의 대사를 통해서 전달될 수 있다.
비록 그 대사들이 지극히 설명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관객이 설명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
자신이 그 사건을 목격하고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명적인 부분을 희석화시키는 또 하나의 방법은 유머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 어니스트 레먼



39. 플롯상의 어떤 목적에 맞추어 캐릭터를 창조해내면 필시 평면적이고 스테레오타입이며 죽어있는 캐릭터가 되고 만다. - 톰 릭먼



40. 어떤 장면을 넣을 것인가 뺄 것인가. 어떤 정보를 극화시킬 것인가 그저 단순히 언급할 것인가.
어떤 장면을 실제로 보여줄 것인가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짓는 것은 시나리오 작가이다. - 어니스트 레먼



41. 잘라낼 수만 있다면 아무리 짧은 장면이라도 무조건 잘라내라 - 윌리엄 골드먼



42. 때로는 자신이 명확하게 알고 있지 못한 것이라도 써보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당신도 모르고 있던) 당신 내면의 무엇인가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도 실제로는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당신에게 가르쳐줄 것이다.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은 언제나 일종의 '발견'이다. - 빌 위틀리프



43. 나는 아웃라인을 정해놓고 쓴다. 무엇보다도 먼저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인지는 알아야 하니까.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누구를 통해서 말해야 하나?
이 스토리는 무엇에 관한 것인가? 이 스토리의 갈등은 무엇인가? 해결은 어떻게 될 것인가? - 윌리 번스틴



44. 나는 신의 리스트를 만든다.
실제의 신은 아니다 그저 단순히 어떤 키워드로만 이루어져 있는 리스트이다. - 윌리엄 골드먼



45. 대체로 나는 어떤 작은 충동으로부터 스토리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그것을 계속 붙들고 늘어지면 무언가 좀더 재미있는 것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때즘 되면 최초의 작은 충동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다 - 빌 위틀리프



46. 극적효과란 개연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가능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47. 행동과 활동의 차이 : 많은 일들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들 사이에 어떤 갈등도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드라마틱한 행동이 전형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활동만 있을 뿐이다. - 프랭크 대니얼



48. 상상한 캐릭터들을 등장시킨다. 그리고는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지를 계속 따라간다.
대사는 그런 과정에서 나온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작가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 대사를 고쳐쓰고 잘라내고 다듬는다. 그 장면에 가장 정확하게 들어 맞을 때까지 - 패디 차예프스키



49. 시나리오는 대사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배우의 입을 통해서 나온 대사는 모두 시나리오 작가가 썼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시나리오 작가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임무는 대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 윌리엄 골드먼



50. 현재 영화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떠들어대는 대사야말로 최악의 대사이다. - 톰 릭먼



51. 시나리오 작가는 자기가 쓴 대사가 어떻게 들릴지를 결코 알 수 없다.
기막힌 노릇이다. 그것이 제대로 쓰여졌는지의 여부를 알게 되는 것은 항상 너무 늦은 시간이다. - 어니스트 레먼



52. 시나리오를 쓸 때 몇 줄의 대사로 시작한 다음 방안의 풍경을 묘사할 수도 있다.
그리고는 다시 대사를 몇 줄 쓰고 의상들을 언급하고 또 대사를 써나가고...
그러나 카메라는 이 모든 것을 단 한순간에 처리해버린다. 차르르르...!
그러면 이미 시작된 거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카메라는 자비가 없다.
시나리오 작가는 쉬지 말고 뛰어야 한다. - 윌리엄 골드먼



53. 내가 처음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장면 안에 나오는 모든 것을 다 써넣으려고 했다.
이제 나는 특별히 어떤 것을 지목해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결코 그런 식으로 쓰지 않는다. - 윌터 번스틴



54. 중요한 것은 마스터 신을 쓰는 것이다.
나는 희곡작가들이 그러는 것처럼 간단하게 무대 위의 상황을 지시할 뿐이다.
카메라르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따위는 쓸 필요가 없다. - 패디 차예프스키



55. 나는 모든 것을 본다. 머리 속에서 그 장면을 미리 그려보는 것이다.
나는 결코 대사만을 써내려가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머리 속에서
그 장면에서 벌어지는 행동들을 실연해본다. - 어니스트 레먼



56. 시나리오 작가는 매 장면마다 가능한 한 가장 늦게 들어가야 한다. - 윌리엄 골드먼



57. 대부분의 사람들은 닥친 문제를 직면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기가 너무 두려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편하게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의 누리는 편안함의 이면에는 대개 공포나 분노 혹은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도사리고 있다.
드라마틱한 상황이라는 바로 이런 것들이 표면화되는 시점을 뜻한다.
그러나 너무 쉽게 표면화되면 현실성 없이 보인다. - 로버트 타우니



58. 캐릭터들을 억지로 플롯에 들어맞추려 들면 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 톰 릭먼



59. 전체를 드러내되 그 끝은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어떤 것... 그런 것이 좋은 장면을 만든다. - 빌 위틀리프



60. 나는 고쳐쓰기를 신봉한다. 고쳐쓰기는 단순히 고쳐쓰기가 아니다.
그것은 달리 생각해 보는 것이며 컨셉 자체를 달리 잡아보는 것이며,
새롭게 접근해보는 것이다. - 톰 릭먼



61. 쓴다는 것은 곧 고쳐쓴다는 뜻이다. 때로는 영화가 완성된 다음에조차 이런 소리가 나온다.
한 번만 더 손을 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윌터 번스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영화잡지 씨네21의 기획서로서, 장원재, 이윤택, 한창호, 듀나, 홍성남, 박준용, 진중권, 최영주, 김지미, 김희진, 이종도, 김철리, 임옥희 등이 한 챕터씩 맡아서 필진으로 참여했다.
1600년대의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이 4세기가 넘어 스크린 속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번안되었는가를 살펴본 상당히 유의미한 저서라는 생각이 든다. 셰익스피어 자신이 전승된 얘기나 민간에 떠도는 얘기들을 그 시대의 이야기 그릇에 맞게, 관객의 입맛을 돋울 수 있게끔 훌륭하게 각색했듯이, 그의 희곡들이 동시대의 이야기 그릇인 영화 속에서 어떻게 해체되고 해석되었는가를 보여준다.    

1. 맥베스가 변주된 영화들 ; 이윤택
- 구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집의 성.1957>과 로만 폴란스키의 <맥베스.1971>

*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은 한 인물의 흥망성쇠기처럼 구성되어 있다.
햄릿은 복수극일 수 있고, 맥베스는 권력 암투의 비화극일 수 있다.

* 셰익스피어 극은 관객들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마음 졸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견된 사건을 인물들이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 셰익스피어의 극적 공간은 바로 유령, 마녀, 도깨비들이 눈뜨는 불가사의한 공간이며, 이 공간은 인간의 의식 속에 잠복해 있던 추상적이고 환상적인 세계일 것이다.

* 구로사와의 셰익스피어 영화는 대체로 원본 구성을 따르면서 완전히 다른 미장센으로 작품을 둔갑시켜버린다.
오프닝에서 텅 빈 황야의 한 귀퉁이에 ‘ 거미성터’임을 암시하는 목판이 세워져 있는 장면. 여기서 모래바람에 맞고 서 있는 인간 문명의 흔적. 이로써 구로사와는 셰익스피어 연극이 지니는 허무와 싹쓸이의 미학을 프롤로그처럼 제시한다. 드라마로 진입하기 이전 셰익스피어 작품을 관통하는 정신성, 그 주제를 구로사와식의 미장센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와시추(맥베스)가 미래를 예언하는 유령을 만나고... 이후 유령의 예언이 진행되고... 와시추와 미키(벵코우)는 안개 속을 헤맨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계를 헤매는 인간의 모습이 지루할 정도로 상징적인 모습으로 반복된다.
..... 이윽고 성문이 열리고 영화는 일본 전국시대의 건축미와 의상, 일본인들의 몸짓과 화법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셰익스피어 극이 일본 시대극으로 완전히 뒤바뀌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구로사와의 <거미집의 성>에서 중요한 살해 장면은 직접 드러나지 않은 채 생략된다. 이는 영화를 외연적인 볼거리로 끌어가지 않고, 인간 내면에 도사린 욕망과 불안을 응축과 긴장으로 표현하려는 구로사와의 심미적 표현양식의 결과물인 것이다.
...... 거미숲이 성으로 옮겨지지 않는 한 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유령의 말에 숲을 응시하던 와시추의 눈에 숲이 실제로 움직이고....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날아오는 화살대를 부러뜨리며 전진하는 모습에서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허무한 행보를 깨닫게 된다..... 덧없는 욕망에 희생된 한 인간의 모습이 페이드아웃되면서 영화의 첫 장면인 거미의 성터를 기념하는 목패 장면으로 돌아간다.

* 오손 웰슨의 <맥베스>는 ‘응고된 화산의 불덩어리’ 같은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주관적 해석의 영화로 기록.
영상 전체가 인공적인 공상과학적 분위기를 창출..... 맥베스는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술주정뱅이로, 던컨 살해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저절러지는 것으로 묘사. 맥베스 부인은 프랑켄슈타인 신부의 머리 스타일에 금속성 목소리로 연기를 했고,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까지 나와서 영화 전편을 그녀의 광기로 이끌어나갔다.

* 로만 폴란스키의 <맥베스>.
현실과 초자연, 리얼한 카메라워크와 환상적 장면 처리가 겹치면서 셰익스피어 영화 중 가장 풍부한 영상미를 창조했다는 평....그러나 배우의 연기는 지극힌 정통적인 해석에 의존하여 진행된다.... 폴란스키가 셰익스피어 특유의 연극적 언어미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느낌... 배우들의 대사는 평이했고, 독백은 보이스 오버로 처리되면서 영화는 상당히 완만하게 진행... 영화적 공간은 탁월하게 형상화시켜 놓고도 정작 배우의 연기는 함량 미달이어서 몰개성적 지루함을 주고 만다.... 연극이건 영화건 셰익스피어 극은 전적으로 배우들의 연기에 성패가 달려 있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인물의 성격을 구축하느냐에 따라 영화적 완성도가 결정된다...

* 원작보다 짧은 구로사와의 영화는 그 깊고 넓은 정신성에 의해 더욱 큰 스케일과 영상미로 기억된다. 하지만 원작보다 긴 폴란스키의 영화는 미장센의 세련미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의 정신성과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깊이가 소홀히 취급되면서 영화적 감동과 미학이 뒤쳐지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2. 로미오와 줄리엣 (한창호)
프랑코 제피렐리의 <로미오와 줄리엣.1968>과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줄리엣. 1996>
    
* 제피렐리는 이탈리아의 거장 루키노 비스콘티의 조감독 출신으로 그의 복사판 같은 감독이다. 비스콘티처럼 연극 연출가이자 오페라 연출가이며 탁월한 영화감독이었다.

* <로미오와 줄리엣> 관련 영화들 중에서 제피렐리의 영화가 가장 대중성을 확보... 베로나의 두 집안 즉 몬테큐와 캐플릿 집안 사이의 반목과 사랑....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 줄리엣>에서는 ‘베로나 비치’로 불리는 가상의 도시에서 대로를 사이에 두고 몬테규 가의 빌딩과 캐플릿 가의 빌딩이 마주보고 서 있는데, 이는 현재 정치의 알레고리로 해석...

*줄리엣은 능동적인 인물로 제시되고, 로미오는 부드럽고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 속의 관습적인 남녀 역할이 제피렐리의 드라마에선 뒤바뀌어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줄리엣>은 시종일관 남성이 시선의 주체이고, 여성은 시선의 객체이다. 관객들은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로미오가 바라보는 대로 바라본다. 클레어 데인즈가 연기하는 줄리엣은 시선의 객체로 충실할 분이다. 성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뒤에 만들어진 루어만의 영화가 오히려 더욱 관습적인 것이다..... 루어만의 로미오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의 남성 영웅으로 제시돼 있다.

* 루어만의 영화가 관객의 관심을 끈 것은, 고전을 현대의 뮤직비디오처럼 현란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록 음악을 배경으로 청춘스타들을 등장시켜 흥미로운 시대극을 만들었다는 점... 빠른 편집, 원색의 컬러 등은 찰나적인 이미지를 더욱 화려하게 만들었다.... 흑인 동성애자, 비트 있는 음악, 복장도착자, 펑크족, 라틴아메리카풍 패션, 스포츠카 등 90년대 젊은이들의 독점적 문화 코드들이 영화에 역동적으로 제시돼 있다.

3. 햄릿(듀나)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 1948> 과 캐네스 브래너의 <햄릿.1996>

* 올리비에는 햄릿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있다. 그는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유부단함이라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마느 남자의 이야기이다.... 올리비에가 그리는 엘시노어 성은 구체적인 공간이 아니라 햄릿에게 고뇌의 동기를 제공해주는 추상적인 무대이다.... 원작에서 햄릿의 우유부단함은 타당성이 있다.. 그 타당성을 모두 삭제함으로써 올리비에의 햄릿은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 배신자들을 처단하는 소소한 일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은 채 열심히 고뇌만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은 원작에선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스포트라이트를 햄릿에게 모아주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올리비에의 햄릿은 너무 고상하다....

* 브래너의 <햄릿>은 올리비에가 필사적으로 감추려 했던 정보들이 폭로된다. 덴마크는 노르웨이와 전쟁 진전까지 갔고 안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날 뻔했으며 햄릿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미쳤고 성격도 일관성이 없다.... 이것이 브래너가 찾고 싶어 했던 <햄릿>의 원모습이기도 하다. <햄릿>은 결코 고뇌하는 우유부단한 젊은이만의 이야기인 적이 없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로맨스, 정치극, 궁중 음모극이며 활극이며 복수극이다. 그런가 하면 존재론적인 성찰일 뿐만 아니라 부조리한 코미디이기도 하다. ....

*  브래너는 시대 배경을 중세에서 19세기 말로 바꿨다...  브래너가 19세기로 시대를 옮기면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여성 캐릭터들의 묘사에 있다...... 올리비에의 영화에서 오필리아가 남성 로맨티스트들이 머릿속에 만들어낼 법한 여성의 이상적인 이미지였다면, 브래너는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성윤리와 정면충돌하는 피와 살로 구성된 생생한 여성들로 그려낸다...

4. 오셀로(홍성남)
오손 웰스의 <오셀로.1952>

*셰익스피어의 자취는 앙상하게 남아 있는 반면 웰스의 손길이 많이 묻어나는... 셰익스피어의 텍스트에 일종의 폭력을 행사하고 말았다는 식의 견해가 있었으나....그러나 웰스는 일찍이 셰익스피어에 경도돼 있었다.... 웰스의 필모그래피에는 <맥베스>, <오셀로>, <심야의 종소리>, <베니스의 상인> 이렇게 네 편의 셰익스피어 영화가 등재돼 있다.  

* 덫에 걸린 오셀로의 몰락과정을 그린 영화.... 그들 모두를 얽어맬 그물을 만들 테다, 라는 이아고의 대사.... 걸어가는 이아고의 위로 불길하게 매달린 쇠우리... 벽에 난 좁은 구멍 안에 감금된 듯 보이는 오셀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감옥을 연상케하는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처소- 함정, 감금, 폐쇄에 대한 미장센.

* 파괴적인 사악함의 화신인 이아고가 음모의 그물을 짜면(웰스는 이아고의 이런 행동의 근저에 성적인 무력감이 있다고 해석) 원래는 고결한 존재였던 오셀로가 그것에 걸려들어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죽이고 자신마저 파멸을 맞게 된다....

* 이 영화의 도입부 장면. 어둠 속에서 점차 드러나는 오셀로의 얼굴이 그가 사람들이 메고 가는 관 속에 누워 있는 모습이고... 다음에 장중하고도 비장한 장례식 행렬을 실루엣으로 처리... 이런 오프닝은 이미 죽은 자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들려주는 식이 된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선셋대로>의 도입부와 유사하다)

5. 리어왕(박준용)
그레고리 코진체프의 <리어왕. 1969)

*부모와 자식의 사랑을 주제로 두 이야기가 진행.  리어왕과 세 딸의 이야기와 글로스터 백작과 두 아들의 이야기.
늙은 리어왕이 권력과 재산을 세 딸들에게 넘겨주기 세 딸을 불러서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물어보자, 위의 두 딸들은 달콤한 감언이설로 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막내딸 코델리아는 말보다 진실한 마음이 중요하다면서 ‘할말이 없다’고 한자. 분노한 리어왕은 코델리아와 의절하고 그녀를 추방한다.
이와 함께 진행되는 글로스터와 두 아들의 이야기는, 서자인 동생 에드먼드가 적자인 형 에드거의 상속권을 빼앗기 위해 모함을 하고, 거기 넘아간 아버지가 죄없는 에드거를 죽이려 하자, 에드거는 살기 위해 달아나서 미친 사람 행세를 한다....

* 코진체프 감독은 이 영화를 무능한 지도자 때문에 온 나라가 고생한다, 라는 테마로 이끌어간다.... 왕은 국가다, 라는 해석을 강조하기 위해 쫓겨난 리어왕이 황야를 헤매면서 분노의 절규를 외치다가... 눈보라 몰아치는 황량한 벌판의 한 오두막에 도착한 리어왕은 그곳에 모인 밑바닥 인생들을 보면서, 자신이 백성을 이 꼴로 만들었다면서, 자신의 실수를 깨닫기 시작한다..... 부서지고 황폐해진 나라에서 백성들과 함께 몰락한 리어의 죽음에 영웅적인 의미는 없다...

* 코진체프의 <리어왕>의 대본은 파스테르나크, 음악은 쇼스타코비치가 담당했다.

*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1985>은 <리어왕>을 일본 전국시대로 옮긴 컬러 작품.

* 조슬린 무어하우스의 <1천 에이커>는 <리오왕>의 시대를 현대로 완전하게 바꾼 작품. 제인 스마일러의 퓰리처 수상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

6. 템페스트 (진중권)
피터 그리너웨이의 <프로스페로의 서재. 1991>

* 밀라노 영주 프로스페로는 마술을 좋아하여, 정치는 동생 안토니오에게 맡겨두고 오직 연구에만 몰두한다... 연구에만 몰두하는 동안 야심을 품은 동생 안토니오는 나폴리의 왕 알론조와 계략을 꾸며 자신이 밀라노 공국의 영주가 된다... 쫓겨난 프로스페로는 세 살도 안 된 딸 미랜더와 함께 한 척의 배에 실려 먼 바다로 추방된다... 배가 표류하다가 어느 황량한 섬에 당도하나, 그 섬은 마녀 시코렉스가 다스리던 곳이었는데, 이미 마녀는 죽은 상태고, 마녀의 흉측한 아들 캘리번과 마녀의 명을 거역한 죄로 나무에 갇힌 요정 에어리얼만 살고 있다.... 프로스페로는 마법으로 캘리번을 제압하고 에어리얼을 구해낸다... 그리고 이 둘을 시중으로 부리며 마법의 옷과 지팡이와 책으로 그 황량한 섬에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한다....

* 템페스트의 매력은 마법의 힘으로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지우는 데에 있다.

* 액자 속의 액자 속의 액자. 이것이 템페스트에 구현된 바로크적 가상현실의 세계다. 바로크의 시대감정을 특징짓는 말 중의 하나가 바니타스,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이 세계 자체가 실은 허망한 꿈, 한 편의 연극에 불과하다는 느낌이다.... 오늘날의 컴퓨터 영상.... 프로그래머가 명령어로 쓴 텍스트를 우리는 모니터 위에서 세계로 체험한다. 이 또한 마법이 아닌가... 이렇게 버추얼 리얼리티를 넘어 ‘리얼 버추얼리티를 이야기하는 오늘날의 세계는 어떤 의미에서 네오바로크라 할 수 있다...

* 영화 속의 프로스페로는 글자를 써서 가상의 영상을 만들어낸다. 신이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하셨듯이. 프로그래머는 0과 1의 명령어로 영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리너웨이는 이 영화를 디지털 가공을 거쳐 제작했다. 때문에 여기서 영화적 영상과 컴퓨터 영상은 하나로 어우러진다...

* 그리너웨이는 프로스페로의 서제를 스물네 권의 책으로 장식한다. 물의 책, 거울의 책, 건축의 책, 죽은 자의 명부, 색깔의 책, 기하의 책, 지리부도, 해부의 책, 작은 별 입문, 보편우주론의 책, 광물의 책, 식물의 책, 사랑의 책,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동물의 책, 유토피아의 책, 여행자의 책, 폐허에 대한 사랑, 세미라미스와 파르시파에의 자서전, 미노타우로스의 92개의 발상, 운동의 책, 신화의 책, 놀이의 책, 35편의 희곡의 책, 마지막으로 거기서 따로 떼어낸 <템페스트>라는 이름의 책..... 원작에는 마법의 책이 한 권 나오지만, 그리너웨이는 이 스물네 권 모두를 마법의 책으로 설정한다... 이 스물네 권의 책으로 그는 동굴 안에 환상의 공간을 창조하고, 그것으로 캘리번과 에어리얼, 그리고 수많은 요정들을 부리며 살 수 있었다...

* 일설에 따르면 <템페스트>의 주인공 프로스페로는 셰익스피어의 동시대 사람이었던 존 디를 모델로 한 것이라 한다... 그는 당대의 뛰어난 수학자이자 점성술가이며...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진기한 정보로 그의 서재는 가득 차 있었으나.... 그의 서재가 마술의 산실이라는 민중들의 믿음 때문에 불태워졌다. .... 당시에는 과학적 마인드를 가진 이들 중 종종 마법사라는 오해를 받았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는 과학이 마술이요, 마술이 곧 과학이었던 마니에리스모-바로크의 상상력이 빚어낸 꿈의 세계다..

* 그리너웨이의 말 ; 이 영화는 1611년을 배경으로 하지요. 그 시대는 연금술과 카발라와 같은 중세적 지식 근대의 경험주의와 뒤섞여 있던 시대였습니다...

* 그리너웨이의 영화를 지배하는 것은 21세기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중세적- 르네상스적 판타지, 한마디로 네오마니에리스모- 네오바로크의 상상력이다.

7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 (최영주)
줄리 테이머의 <타이터스. 1999>

* 셰익스피어의 최초의 비극작품이라는 설.... 타이터스는 고트족과의 전쟁에서 스물두 명의 아들을 읽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고트족의 여왕 타모라 일행을 생포해서 포로로 데려온다. 와중에 여왕 장자의 사지를 잘라 불태워 전쟁터에서 죽은 로마군의 원혼을 달랜다..... 그리고는 황제 자리를 거절하고 서거한 황제의 장자인 새터나이너스를 황제로 추대한다... 황제로 등극한 새터나이너스는 동생인 배시에이너스의 약혼자이며 타이터스의 딸인 라비니아를 새 황후로 맞겠다고 선포한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배시에이너스와 라비니아가 도망을 치자, 타이터스는 황제의 명을 거역한 이들을 잡으려다가 여동생 라비니아를 편드는 아들을 죽이게 된다.... 결국 황제는 고트족의 영왕 타모라와 결혼을 하고, 타모라는 내심 자신의 장자를 죽인 타이터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악랄한 복수가 시작되고... 모든 걸 잃어버린 타이터스가 비로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복수를 한다...

*테이머는 이 영화를 로마 시대와 현대의 시점을 교묘히 결합하여, 과거와 현재의 다리를 놓는 데 성공한다..... 로마는 인물들의 갈등과 사건의 배경일 뿐만 아니라 플롯의 전개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이다... 영화의 서두에서는 로마 문화의 영광의 상징인 콜로세움과 타이터스 집안의 지하무덤이 펼쳐진다. 타모라와 새터나이너스의 결혼 파티는 로마 사회의 부패의 상징인 지하 온천탕에서 행해진다. 영화의 말미에 이르면 지하 온천탕은 술과 마약, 그리고 섹스 파티가 어우러지는 도덕적 혼란의 장소로 표상된다. .... 테이머의 창조적 해석이 빛을 발하는 것은 장면을 통해 과거와 현재에 다리를 놓음으로써 전쟁과 폭력, 복수로 얼룩진 인류의 문명사를 축약한 것에 있다.

8. 베니스의 상인 (김지미)
마이클 레드퍼드의 <베니스의 상인. 2004>

* 샤일록은 이 작품을 유명하게 만든 캐릭터이자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전형적 인물이다... 셰익스피어는 그를 유대인으로 설정해놓고, 다른 인물들로 하여금 그의 민족성과 종교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마음껏 표출하도록 했다. .... 인종차별이라는 미묘한 문제 때문인지 나치 시대 이후에 이 작품은 거의 영화화되지 않았다....

* 마이클 레드퍼드는 이 작품의 서두에다가 1596년, 이라는 자막을 첨부하여 시간적 배경을 구체화함으로써 등장인물들의 민족적 감정과 종교적 대립을 역사화하는 구실을 갖는다. .... 감독에 의해 덧붙여진 6분 정도의 오프닝 시퀀스를 보면, 반유대주의가 특정한 시대에 한정된, 역사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었고, 외국인에게 부동산 소유가 금지되었던 당시 베니스의 법 때문에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유대인들의 거주지는 게토에 한정되었고, 낮에 그곳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활동할 때에는 일종의 낙인과도 같은 빨간 모자를 착용해야 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 레드퍼드 감독은 샤일록을 절대적인 악인으로 창조해냈다고 보기가 어렵다. 샤일록의 독백에는 소외된 자의 박탈감이 진솔하게 드러나며, 작품 전반을 통해 종교적 신념의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는 사회적 분위기와 기독교인의 유대인에 대한 일방적인 적대감 등이 암시되기 때문이다..... 샤일록에게서 복수심과 악의에 찬 유대인이라는, 왜곡된 민족적 특질을 벗겨내는 대신 차별받는 소수자라는 가려졌던 이면을 보여준다.  

* 감독은 연인들의 사랑이나 말장난 같은 희극적 요소들을 최대한 절제하고, 전체적으로 어둡고 장중한 세팅을 통해 샤일록과 안토니오의 내면을 탐색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모든 장면을 르네상스 시대의 화첩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이 정리한 것을 엎어왔다.

그런데 이 책 사볼까 했더니 알라딘에선 품절이란다. 된장~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 2008-11-28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꽤 볼만해요. 우리나라에 셰익스피어 관련 책이 많이 없는 것에 비하면, 소중한 책이죠! 가격이 비싸긴 한데, 책 잘 만들었고, 저는 당시 이벤트로 베니스의 상인이랑 햄릿 CD까지 함께 받았더랬네요.

stella.K 2008-11-28 19:06   좋아요 0 | URL
오, 정말요? 좋으셨겠습니다.^^
 

  • 이 도구들의 공통점은?…생활에 꼭 필요하다? 아니죠~
  • 기발한데 민방하다? 맞습니다~
    라면 먹을 땐 ‘긴 머리카락 고정기’
    작은 글씨 볼 땐 ‘돋보기 붙은 티셔츠’

  • 글=박은주 기자 zeeny@chosun.com
    김성윤 기자 gourmet@chosun.com
    사진=조선영상미디어 이경호 기자 ho@chosun.com  




    • 진도구협회는 진도구를 크게 다섯 부류로 구분한다. 우선 합체형 진도구. 2가지 형태와 기능이 합쳐진 것이다. 진도구협회는 “전혀 다른 성격과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의 DNA가 합쳐져서 완전히 새로운 아이가 탄생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라고 대단한 의미를 부여한다. 올 인 원(all-in-one)형 진도구는 여러 기능을 스위스 군용 주머니칼처럼 합친 것. 개량형 진도구는 크고 작은 불편함을 개선했다. 진도구협회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불편함을 만들 수도 있지만, 이조차 무시하는 추진력이 있어야 진짜 진도구”라고 강조한다. 원래 기능을 다른 기능으로 이용하도록 만든 전용형 진도구는 도구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무시했을 때 탄생한다. 진도구협회는 “바로 이때 새로운 발명의 블루오션이 펼쳐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태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도구는 신안형(新案型) 진도구로 분류된다. 진도구 발상법 중에서도 가장 도전적 발상법. 진도구협회는 "예술 분야에서 보여준 백남준의 놀이정신도 어떻게 보면 신안형 진도구 정신에 속한다. 그가 만든 수많은 비디오 아트 작품이 그렇다"고 주장한다.






    • 개량형 진도구


      여름용 와이셔츠


      한여름 와이셔츠에 넥타이 매고 재킷까지 입으면 무지 덥다. 민소매 웃도리를 입을 수 있는 여성들이 부럽기 그지없다. 이러한 남성의 마음을 고스란히 읽어내 진도구로 승화시킨 것이 ‘여름용 와이셔츠’다. 진도구협회는 “넥타이를 매고 재킷을 입어도 너무나 쾌적하다. 와이셔츠가 몸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앞모습뿐. 재킷을 벗으면 거의 알몸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바쁜 비즈니스맨들은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고 소개한다. 촬영을 위해 이 와이셔츠를 입은 한국진도구협회 직원 김도한씨. “제가 육덕(肉德)진 편이라 그런지 끈(와이셔츠 앞면이 펄럭거리지 않도록 뒤로 묶는다)이 살을 파고드네요.”


      ●단점_누구나 예상하듯 재킷을 벗으면 변태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 어쩔 수 없이 재킷을 벗었다면 항상 벽 쪽을 등지고 앉는 센스와 심지를.



    • 신안형 진도구


      애완동물용 아기인형 옷


      사랑하는 애완동물, 하지만 데려갈 수 없는 공간이 너무 많다. 이럴 때 유용하게 쓰일만한 진도구이다. 진도구협회는 “이 아기인형 옷을 입히면 아무리 격식을 차려야 하는 호텔까지도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다”고 자신했다. “털북숭이라는 점과 코가 검정색이라는 점만 빼면 어디서 어떻게 보더라도 사람 아기 같다. 소품으로 우유병 등을 준비해 놓으면 가게 점원들 어느 누구도 감쪽같이 속을 거다.” 세인트 버나드 등 덩치가 큰 개는 이용 불가능하다. 강아지 모델은 요크셔테리어종 ‘둘리’.


      ●단점_개가 한번 짖으면 아무 소용 없다. 개털은 어쩔려구!



    • 라면용 긴 머리카락 고정기


      긴 머리카락이 국물에 빠지지 않도록 손으로 잡고서 라면을 먹기란 얼마나 불편하던가. 해바라기처럼 생긴 이 진도구를 얼굴에 끼우면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는다. “국물을 마실 때나 요리를 할 때도 유용하다. 이외에 머리카락 날리면 곤란한 모든 작업에 아주 유용할 것 같다”고 진도구협회는 자평한다. 정다정씨는 “얼굴에 꽉 낀다. 오래 착용하면 자국이 남을 수 있으니 빨리 먹어야한다”고 말했다.


      ●단점_인터넷 초기부터 너무 많이 알려진 도구라 신선함 제로인데다, 제법 쓸모가 있어 보여 진도구치고는 너무 ‘상업적’이다.  스프링 턱






    • 스프링 턱


      입을 벌리고 음식을 입에 넣는다. 얼굴 양옆에 달린 강력한 스프링이 턱을 자동으로 닫아준다. 직접 씹을 필요 없고, 턱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초절정 귀차니스트’들에게 희소식이다. 진도구협회는 “딱딱한 육포도 턱을 사용하지 않고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끈을 당기지 않고 먹으면 턱 근육을 강화할 수 있는 운동기구로도 변신할 수 있다.” 정다정씨는 “머리가 웬만큼 작지 않으면 착용 불가능하다는 점만 빼면 썩 괜찮은 진도구”라고 평가했다.


      ●단점_웬만큼 강심장이 아니면 ‘씹는 것도 귀찮냐’고 면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1개월 이상 무직자, 월수 20만원 미만인 자 등이 사용할 경우, 밥이 끊길 수도 있겠다.


    • 전용형 진도구

      다리떨기 방앗간

      다리를 떨면 어른들은 “복 나간다”며 야단 친다. 나쁜 습관을 보다 생산적으로 이용할 수 없을까 궁리하다 탄생한 진도구가 바로 ‘다리떨기 방앗간’이다. 작은 냄비처럼 생긴 용기 아랫부분에 달린 금속 링으로 다리를 넣는다. 볼트를 조여서 용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꼭 조인다. 용기 안에 떡쌀 찐 것을 넣고 다리를 떨면서 손잡이를 돌린다. 떡쌀이 뜨거워 다리가 델 지 모른다? 걱정 안해도 된다. 용기 외벽을 단열재로 감아 열이 차단된다. 내부는 불소 수지로 가공해 떡쌀이 들러붙지 않는다.

      하지만 웬만큼 흔들어서는 떡이 완성되지 않는다. 일본진도구학회는 떡 비슷한 걸 만드는데 겨우 성공했지만, 한국진도구협회는 실패했다. 한국진도구협회 김지경 회장은 “떡이 되려면 다리 근육이 파열될 때까지 다리를 30분 이상 떨어야 한다”고 했다. 또 뚜껑은 고정되지 않으니 다리를 흔드는 내내 손으로 붙들어야 한다.

      ●단점_‘다리 떨기’가 혈액순환을 돕고 두꺼운 종아리를 풀어준다는 반항적 속설을 과학으로 증명한 케이스. 그러나 지나친 근육 운동이 대퇴부의 발달을 촉진, 백두장사형 허벅지가 될 우려가 커 보인다.





    • 합체형 진도구

      돋보기 붙은 티셔츠

      돋보기를 어디다 뒀는지 ‘깜박깜박’ 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도구. 돋보기 2개를 아예 티셔츠 가슴팍에 붙여놓았다. 잃어버릴 염려가 전혀 없고 어디다 뒀는지 찾지 못해 허둥댈 필요없다. 정다정씨는 “글씨가 실제로 크게 잘 보인다”면서도 자꾸 티셔츠 아랫단을 끌어내렸다.

      ●단점_‘뱃살맨’에겐 천적이다. 집중적 독서에 빠질 수 있는 훌륭한 도구지만, 돋보기를 사용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등의 행위를 알아 차릴 수 없다. CCTV 등 보안도구 필수.





    • 개량형 진도구

      ◀기름 방패 튀김 젓가락

      튀김요리를 할 때 뜨거운 기름이 튈까 두려운 새댁들을 위한 진도구. 불에 타지 않는 투명한 판에 두 개의 구멍이 뚫려있다. 젓가락 하나는 투명판에 고정됐고, 다른 하나가 움직인다. 튀는 기름을 철저히 막아주면서 튀김은 잘 보인다. “고정되지 않은 젓가락이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도록 되어있다”는 진도구협회측 주장과 달리, 젓가락을 쥐는 각도가 어정쩡해서 튀김을 잡기 어렵다.

      ●단점_침이 많이 튀는 사람과 밥을 먹을 때 ‘방패’로 활용할 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무겁다는 단점을 갖고 있어, 두터운 팔뚝을 염려하는 주부들에게는 외면을 당할 듯.






    •  


      ▶땋은 머리용 헬멧

      스쿠터로 출퇴근하는 여성들을 위한 진도구. 멋지게 딴 머리를 헬멧으로 망가뜨리기 싫은 여성이라면 대단히 환영할 듯하다. 정수리부터 후두부까지 모두 4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서, 땋은 머리를 방향에 맞춰 구멍으로 뽑아내면 된다. 단, “헬멧 강도가 떨어져 사고시 머리를 보호하는 기능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진도구협회측은 밝히고 있다.

      ●단점_각종 분쟁이 발생해 승강이를 할 때, 상대방에게 머리채를 잡히기에 좋은 조건이다. 뚫린 구멍으로 각종 해충의 습격도 예상된다.



      (모델=정다정)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