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의 성공만 보는 모범생 여직원 너무 많아”

박선이 전문기자의 커리어우먼 탐구
대한민국의 여상무들 난상토론

일에 대한 열정은 필수… 적극적 대인관계로 자신을 알려라

길게는 28년, 짧게는 18년. 1980년대 초·중반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상무에 오른 100대 기업 여성 임원들은 ‘열정’이라는 공통의 키워드를 내놨다. 전문분야를 살리기 위한 재(再)교육과 사내외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는 네트워킹도 필수요소로 꼽았다. 신입사원 출신으로 상무에 오른 5명이 ‘여성으로 일하고 성공하기’ 생생한 체험을 털어놓았다. 저출산과 이혼율 급상승이 요즘 우리 사회의 큰 현안이지만, 이들은 안정된 결혼생활과 가족의 지원이 일을 계속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말한다. 모두 자녀를 2명씩 두었다.

◆나는 여성이다!

―특별히 난 여자니까, 하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선후배 동료를 ‘달래가면서’ 일해왔다. 하지만 여성이라서 소극적인 행동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열성적으로 일해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것은 당연하고, 평판도 중요하다. 경조사를 꼭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인간적 신뢰를 얻어야 한다.

-여성이라는 자각은 늘 있어왔다. 특별히 세심함, 친화력 같은 것을 살리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물론 단호한 결단력과 추진력이 함께 가야 한다. 아니면 물렁한 사람으로 치부된다.

-여성이라서 유리한 점이 얼마나 많은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반영하려는 포용력과 친화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울타리를 넓히는 것도 ‘실력’이다-네트워크 만들기

-등산, 골프를 함께 하며 신뢰를 쌓아가면 그게 다 일과 연결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이런 자리에 다 참여한다는 게 어렵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빠지면 안 된다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비공식적 네트워크를 열심히 하라. 사실 비공식이라는 말도 안 맞는다. 직장에서는 비공식 접촉이 곧 공식적 접촉이다. 울타리가 얼마나 넓으냐가 그 사람의 능력과 직결된다. 그런 점에서 여성들이 좀 멀리 보고 넓게 봐야 한다.

-여성 상사와 동료가 별로 없었기에 남자 상사들이 역할 모델이었고 생존의 끈이었다. 처음에는 관심사나 취미가 같은 사람들끼리 만나는 데서 출발하더라도, 결국은 일의 도움을 얻게 된다. 개인적으로 감정이 혼란스럽거나 의사결정이 어려울 때 의견을 들었다.

-업무로 부딪힐 일이 없는 사람들과도 적극적인 관계를 가져라. 이들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오히려 더 높일 수 있었다.


◆여성들은 코앞의 일만 보는 ‘모범생’이 너무 많다

―‘의식화 교육’ 차원에서 여성 리더십 훈련이 전략적으로 필요하다. 남성들과 비교했을 때, 여성들은 아주 사소한 일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상사와 뜻이 안 맞는다고 사표를 던지는 것은 자신과 조직 모두에게 무책임한 일이다. 세상에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다른 사람’ 때문에 자신을 던지나. 상사와 안 맞을 때는 먼저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들여다봐야 된다. 다른 데로 옮겨도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

-여자 상사, 여자 동료와의 갈등은 오히려 여자들이 더 많이 호소하는데, 그렇게까지 마음에 상처를 받을 정도로 몰두해야 할 일인가 싶을 때가 많다. 전체적으로 성숙하게 보고 자기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더라도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여성을 위한 별도의 리더십 교육은 꼭 필요하다. 사회구조가 이미 남성 중심으로 짜여있어서 기존의 네트워크에는 들어가기 어렵다. 관계형성 방법과 문제 풀어가는 방법 등 남성들 중심으로 형성된 현재의 구조에 대해 잘 알고 대처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과장 때는 차장, 부장 때는 또 그 이후를 내다보며 준비를 해야 한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공부도 해야 하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기회로 생각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준비가 있어야 한다.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노력이 있어야겠고,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갈등은 어떻게?

-상호 신뢰가 없어서 갈등을 빚는 일이 있다. 내가 남성이었다면 같이 술을 잔뜩 마시거나 쥐어 패서 말을 듣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짧게 보지 말라. 소탐대실이다. 웬만한 일은 빨리 잊어버리고 다음 단계로 나가라. 강한 체력은 필수. 일과 삶, 사람들의 관계에서 균형을 잃지 말고 일을 즐겨라.

-성공을 목표로 일하면 바로 앞만 보게 된다. 일에 대한 열정과 보다 수준 높은 퀄리티를 목표로 한다면 성공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다.

◆가정과의 양립

-결혼하지 않고 성공하는 것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일과 가정생활을 다 잘하는 것이 진정한 남녀차별이 없어지는 것이다. 남자들 또한 그렇게 살지 않나. 그래서 나는 젊어서부터 내가 버는 돈을 살림 도우미에게 투자했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한 최소한의 투자였다. 젊어서 월급이 적을 때는 그게 꽤 큰 부담이었지만, 지금 계산해보면 큰 수확을 거뒀다고 본다.

-일과 가정생활 두 가지를 다 잘 하려고 하면 스트레스만 쌓인다. 차라리 그때그때의 상황에 최선을 다하라고 권하고 싶다. 필요하면 한쪽에 치우쳐야 하는 것이다.

정리=박선이 여성전문기자 sunnyp@chosun.com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eylontea 2006-10-09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정과의 양립... 그거이 말처럼 쉬운가요..--;;; 에효... OTL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남자의 가정생활과 여자의 가정생활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 5명중 아는 사람도 있네요.. 흐.. ^^

stella.K 2006-10-09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론티님...ㅜ.ㅜ 명절은 잘 지내셨나요?^^

ceylontea 2006-10-09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명절은 회사에서... ^^;;
 

 

뇌속엔 ‘이심전심’ 세포 있다

다른 사람 몸짓·말에 반응하는 거울 뉴런… 약하면 ‘왕따’되기 쉬워

“아프냐, 나도 아프다.” 드라마 ‘다모’ 폐인들을 열광시킨 이 대사가 아니어도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이 아프면 같이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최근 이 같은 감정이입(empathy)을 뇌(腦) 차원에서 연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 결과 뇌에는 다른 사람의 몸짓을 보거나 말을 듣고 그 사람과 같은 느낌을 받게 하는 이른바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 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생쥐도 감정이입 가능

거울 뉴런은 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됐다. 15년 전 이탈리아 파르마대의 지아코모 리졸라티 교수는 원숭이의 뇌에 전극을 심고 다양한 물건을 집을 때의 뇌 반응을 실험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대학원생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실험실에 들어왔을 때 이를 지켜보던 원숭이의 뇌에서 갑자기 반응이 일어났다.

분석 결과 그 반응은 원숭이 자신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을 때 뇌 반응과 같았다. 그 후 바나나를 손으로 집을 때와 포크로 찍을 때 반응이 달라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른 거울 뉴런이 활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거울 뉴런은 이처럼 보거나 소리만 듣고도 자신이 직접 겪는 것처럼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되는 것을 말한다.

생쥐들도 거울 뉴런을 갖고 있다. 캐나다 맥길대의 제프리 모길 교수 연구팀은 지난 6월 ‘사이언스’지(誌)에 생쥐가 동료의 고통을 같이 느끼는 거울 뉴런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함께 자란 생쥐와 처음 보는 생쥐에게 각각 전기 자극을 가한 뒤 이를 지켜본 생쥐의 뇌 반응을 조사했다. 생쥐는 모르는 생쥐의 고통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같이 자란 동료가 고통받으면 뇌에서 자신이 직접 고통을 받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KAIST 김대수 교수는 “거울 뉴런은 특히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들의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쥐덫에 걸린 동료의 고통을 같이 느낄 수 있으면 쥐덫 근처에 가지 않게 되므로 생존에 유리하다.

글만 읽어도 맛을 안다

사람도 거울 뉴런을 갖고 있을까. 영화에서 멋진 남자배우가 키스하거나 어깨를 만지면 자신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는 여성들이 많다. 실제로 같은 장면을 보여주고 뇌 사진을 찍으면 어깨나 입술과 연관된 뇌 부위가 반응한다. 또 운동선수가 머릿속으로 연습을 할 때도 실제 경기를 할 때 작동하는 신경세포들이 반응한다. 다모 대사는 진심인 셈이다.

거울 뉴런은 사탕을 깨무는 것을 보거나 소리를 들을 때뿐 아니라 글을 읽어도 작동한다.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지 최신호에는 사람의 거울 뉴런을 다룬 세 편의 논문이 게재됐다. 이 중 미 서든캘리포니아대의 리사 아지즈-자데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사람은 ‘복숭아를 베물다’는 문장을 읽을 때, 복숭아를 먹는 사람을 보거나 자신이 직접 복숭아를 먹을 때와 같이 뇌가 반응했다.

손상되면 정신분열 가능성

거울 뉴런이 약해 동료의 분위기를 모르면 ‘왕따’가 되기 쉽다. 이 점에서 정신분열증 환자나 자폐아는 거울 뉴런이 작동하지 않아 다른 사람과 교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대수 교수는 최근 정신분열증에 걸린 생쥐를 대상으로 이 가설을 입증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영완기자 ywlee@chosun.com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늘바람 2006-09-22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이심전심이 안되는 사람은 그 세포가 없는 걸까요

ceylontea 2006-09-22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신전심말고 역지사지 세포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stella.K 2006-09-22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ㅎㅎㅎ 설마~! 다른 사람 보다 적거나 어떤 사람에겐 그런 게 작동 안 하는거 아닐까요?^^
실론티님/맞아요! 역지사지 세포!^^
 

 

“소비자 뇌를 읽어라” 감성본능 자극하는 ‘뉴로마케팅’

감정 다루는 우뇌활동 뇌영상 장치로 분석 구매행동 알아내
찰나의 감성도 반영 광고효과 크게 높아져 “기업들 새 무기될 것”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눈을 가리고 마시게 하면 소비자의 기호는 거의 반반이다. 그러나 상표를 보여주고 뇌를 촬영하면 정서나 기억, 학습을 담당하는 부위가 불이 켜지듯 반짝하며 반응한다. 결국 소비자들은 맛보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콜라를 선택한다.

최근 이처럼 소비자의 뇌에서 일어나는 무의식 세계를 분석, 마케팅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를 두고 신경을 뜻하는 ‘뉴로(neuro)’와 ‘마케팅’을 합친 ‘뉴로마케팅(neuromarketing)’이란 단어까지 등장했다. 2005년 미국의 포천지(誌)는 뉴로마케팅을 10대 기술 트렌드로 선정했다.

본능을 자극하는 스포츠카=뉴로마케팅이 부상한 것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이란 뇌(腦) 영상장치 덕분이다. fMRI 영상은 뇌의 특정부위가 활동하면서 혈액이 모이는 현상을 마치 불이 켜지는 것처럼 보여준다. 때문에 제품이나 광고 사진을 모니터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fMRI로 뇌를 촬영하면 소비자의 무의식적 반응을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이 덕분에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소비자들이 스포츠카를 볼 때 사회적 지위와 보상을 연상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며, 켈로그는 여성들이 식품광고를 보면서 배고픔을 해소하면서도 날씬해지고 싶어하는 상반된 감정을 파악했다. 스포츠카 광고가 힘·섹스·생존과 같은 원초적 욕망을 자극하는 것도, 켈로그의 도넛 광고가 저(低)지방을 직설적으로 강조하지 않고 날씬한 다리를 보여주는 것도 바로 소비자의 뇌를 읽었기 때문이다.

현재 포드, GM, P&G 같은 제조업체부터 영국의 복권운영기관인 카멜롯까지 다양한 기업들이 fMRI를 이용한 뉴로마케팅을 제품 디자인과 광고에 적용하고 있다. 또 브라이트하우스, 세일즈브레인, 뉴로포커스 같은 뉴로마케팅 전문기업들도 등장했다.

찰나의 감정변화 파악=국내기업도 뉴로마케팅을 활용하기 등장했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은 고려대 심리학과 성영신 교수팀에 자사(自社) 브랜드의 소비자 선호도 조사를 의뢰했다. 연구팀은 여대생들에게 아모레퍼시픽과 해외 유명 브랜드의 광고와 제품 사진을 보여주면서 fMRI로 뇌사진을 찍었다. 이 실험에서 아모레퍼시픽의 헤라와 아이오페 브랜드에 대해 감성영역인 우뇌 반응이 예상보다 적어 친밀감이 모자란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모레퍼시픽의 관련 부서는 뇌 분석결과를 토대로 5개월간 브랜드 리뉴얼(renewal) 작업에 들어갔다. 그 결과 올해 초 사각형 용기를 사용한 헤라의 카타노크림이 출시됐다. 기초 화장품은 원통형 용기에 담는다는 관행을 깨고, 여성들이 화장을 고칠 때 사용하는 트윈케이크처럼 항상 핸드백에 넣고 다니며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것. 백화점 매장도 제품 색감과 디자인에 걸맞게 변형시켜 소비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브랜드에 익숙해지도록 했다. 카타노크림은 올해 아모레퍼시픽의 최대 히트 상품이 됐다.

뇌사진이 가져온 이나영의 변신=이해선 아모레퍼시픽 마케팅담당 부사장은 “헤라의 성공에 힘입어 아이오페 광고 전략도 fMRI 분석 결과에 맞췄다”고 말했다. 아이오페는 기능성(機能性) 화장품 브랜드다. 소비자의 뇌 분석결과 기능성을 강조하다보니 조금은 “차갑다”는 느낌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는 광고모델 이나영의 피부상태를 분석해 성숙하면서도 친밀한 느낌의 화장이 가능하도록 몇 달 동안 이미지 관리를 했다고 한다.

LG텔레콤도 fMRI를 활용해 광고 효과 조사를 실시했다. LG텔레콤 이철환 부장은 “광고에 나오는 멜로디를 따라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실제 뇌에서 그 같은 반응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최근엔 현대자동차도 뉴로마케팅을 도입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로 뇌 사진은 설문조사와 다른 결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성영신 교수팀이 조사한 결과 소비자들은 설문조사에서는 섹시한 광고 이미지에 선호했지만, 뇌 분석에서는 같은 연인이라도 친구 같은 느낌을 주는 광고에 훨씬 반응을 빨리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성 교수는 “20세기엔 제품의 정보를 전달하는 이성적 광고였다면 21세기 광고는 대부분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한다”며 “찰나에 일어나는 감성적 영역을 알아내는 뉴로마케팅이 기업의 새로운 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완기자 ywlee@chosun.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글 / 류화선yukineco@gmail.com
한국의 대표작가 신경숙, 공지영, 김훈과 만나는 지리산 문학캠프가 2006년 8월 24일에서 26일까지 지리산에서 있었다. 지리산 문학캠프는 YES24가 주최한 ‘네티즌 추천 한국의 대표작가 - 노벨문학상 후보를 추천하세요’의 후속 행사로, 2004년에서 2006년까지 ‘차세대 노벨문학상 후보’ 1위로 뽑힌 김훈(1회), 공지영(2회), 신경숙(3회)과 독자들이 만나는 자리였다. 낮에는 지리산 주변을 관광하고, 밤에는 작가를 만나 문학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들의 행복한 2박 3일이었다.

섬진강은 지리산을 안고 흘러간다

버스는 섬진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차 재배지에 걸맞게 섬진강 주변 지역은 해가 쨍하게 빛나다가도 갑자기 안개가 사위를 감싸고, 구름이 낮게 깔리면서 비를 뿌려댔다. 강은 천천히 제 갈 길을 가고, 산은 뭉글뭉글 구름을 피어 올린다. 쌍계사에 도착할 즈음 소나기가 한차례 내렸다 그쳤지만 여전히 날씨는 후덥지근했다.

쌍계사는 절 양편으로 계곡이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기하게도 아무리 비가 많이 와 물이 불어도 절 쪽으로 물이 넘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곳 출신인 문화재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절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대웅전이 공사 중인 점이 아쉬웠지만, 미소 지은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운 마애불과 꽃담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각별했다.

대웅전 앞에는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47호)가 서 있다. 최치원이 글을 짓고 쓴 것으로 유명한 비석이지만, 이 고장 사람에게는 6.25와 지리산 빨치산으로 기억되는 비석이다. 폭탄을 맞아 여기저기 갈라졌고, 표면에는 총알 자국이 아직도 선명했다. 빨치산이 가져간 재봉틀을 가져오기 위해 쌀을 이고 갔다는 할머니, 가족들 중 죽지 않은 자가 없었던, 그 두려웠던 시절에 대한 기억,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타지 사람들이 이곳 사람들과 혼인을 하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 가지는 한스러운 여운까지. 지리산이 품은 슬픈 역사는 여전히 그 그림자를 드리워놓고 있었다.

 

 
첫날밤, 신경숙 작가와의 만남

뚫어져라 쳐다보는 독자들의 시선이 다소 부담스러웠나 보다. 수줍은 표정으로 마이크 앞에 앉은 작가는 무지개 이야기로 운을 떼었다. “여기에 오는 길에 오랜만에 무지개를 봤어요. 사진기가 없어서 눈에 담았습니다.” 시간은 어떻게 보내든지 흘러간다,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은 기쁘게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러니 문학캠프에 모인 모든 분들이 마음을 열고 함께 하는 시간을 충만히 보냈으면 좋겠다는 말로 인사말을 마무리한 후, 나직한 목소리로 그녀의 작품 『종소리』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돌아온 새 같다. 이젠 어디에나 깃들일 수 있는 새 같다. 낯선 새 한 마리가 세면장 창틀에 집을 짓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건 당신이었다.」로 시작되는 단편 소설 『종소리』는 가장 가깝게 있으면서도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진정 들어야 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부부의 이야기다. 소설을 읽다가 중간 중간 쉬면서, 각 부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편하게 털어놓았다. 언제 작품을 썼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작품을 쓰면서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무엇이었는지, 조곤조곤 이야기를 해주었다.

작가의 목소리가 작품과 꼭 어울리라는 법은 없지만, 신경숙 씨의 목소리와 그녀의 소설은 썩 잘 어울렸다.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놓쳐버리는 섬세한 문장들을 그녀의 나직한 목소리로 듣는 것은 색다르고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종소리』는 우연히 들은 이야기가 소설이 되었다. “찻집에서 있다가 보면 옆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들릴 때가 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이야기가 있죠. 그런 것들을 소설로 써요. 『종소리』도 옛 직장을 찾아오는 회사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쓴 것입니다.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인간의 이러저러한 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어요. 사무실에 갇힌 남자, 그 반대편에 있는 여자, 그 위에서 굽어보고 있는 새. 그리고 그 새를 통해 자유를 얻어가는 과정이 떠올랐어요.”

남편은 크론키드카나다라는 희귀한 병을 앓는다. 그런데 이 병에 걸린 후, 부부관계는 오히려 회복될 기미를 보인다. “불행이 온 후, 그 불행 앞에 서면서 자기 삶을 돌아보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게 되는 거예요. 살다가 보면 나도 나를 용서할 수 없는 순간이 있어요. 저는 그 순간에 문학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지점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위대함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신경숙 작가에게 궁금한 것 몇 가지

『종소리』를 읽고 나서 독자들의 질문에 작가가 대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작가도 독자도 처음엔 수줍어했지만 금방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갔다. 왜 작가가 되었는지, 작품을 쓸 때 혹시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할까 두렵진 않았는지, 작가 말고 하고 싶은 일은 없었는지, 소설을 쓸 때 특별한 습관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지리산 문학캠프에서 만난 작가 신경숙
“저는 책을 읽으면서 자랐고, 책을 쓴 사람에 대한 외경심 때문에 작가가 되었어요. 지금도 과정에 있는 사람이고, 누군가가 쓴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미래에 있다’고 대답합니다. 작품을 쓸 때는 쓰는 것만으로 벅차 읽어줄 사람은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여러분과 나 사이에 소설이 있다, 독자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녀를 문학 독자에게 널리 알린 첫 번째 작품집 『풍금이 있던 자리』는 ‘뜻밖의 성공’을 거둬 다음 소설을 쓸 수 있는 여유와 소원이었던 넓은 책상을 선사했다.

“서른이 되기 전에는 다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마음이 들떠 있잖아요. 저도 서른이 되기 전,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문학에 대해 고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동생에게 1년 동안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고, 1년 동안 단편소설 여섯 편을 썼어요. 그 단편 소설들이 『풍금이 있던 자리』에 실린 작품들입니다. 일년 동안 실컷 작품을 썼으니 직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출판사에서 책을 더 찍어야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책을 낸지 일주일 만이었어요. 그 책이 잘 팔려서 저는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웃음).”

신경숙 작가는 작품을 쓰려고 책상으로 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렇지만 일단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끝을 낼 때까지 기본적인 생활만 해결하면서 글쓰기에 몰두한다. “그래서 많은 인간관계들이 끊기고 연애도 충분히 못해봤어요. 글 쓸 때 버릇이라면, 청소를 하고 깨끗한 상태에서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글을 쓸 때는 약속도 안 만들고, 글쓰기와 상관없는 일은 하지 않아요. 아, 그리고 틈만 나면 손을 씻는 버릇이 있어요. 머리는 절대 안 감으면서.(웃음)” 그러면서 글쓰기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자기 자신일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문학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독자에게 싸인하는 신경숙. 손톱에 들인 봉숭아꽃물이 곱다
문학캠프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부분 80년 이후에 태어난 젊은 사람들. 문학에 진지하게 도전하고자 마음먹은 사람도 있을 터였다. 그런 예비 작가에게 신경숙 씨는 몇 가지 소중한 충고를 했다. 작품을 시작하면 무조건 완성시켜라, 그리고 좋은 작품을 많이 읽어라가 바로 그것이다.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끝을 내야 합니다. 중단하고 포기하면 계속 중단하고 포기하게 되니까요. 자꾸 쓰다보면 ‘이것이 소설인가 보다’는 느낌이 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작품을 읽어야 해요. 소설가 지망생들의 원고를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받은 느낌은 책을 별로 읽지 않았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좋은 작품을 많이 읽어야 하는 것이 작가의 세 번째 덕목쯤은 된다고 생각해요. 독서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하니까요.”

그녀 역시 작품을 쓰지 않을 때는 항상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머리가 왠지 느슨해졌다고 생각하면 어렵고 잘 안 읽히는 책에 도전한다. 그림책과 시집은 항상 뒤적거리고 있다. “대학생이라면, 계절별로 독서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을 겁니다. 한 계절 동안 관심 있는 주제의 책을 샅샅이 찾아서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는 거죠. 그런 것이 쌓이면 책을 고르는 안목이 생겨요. 한 작가의 작품을 죄다 찾아서 읽어보는 것도 권할 만 해요. 모든 작품을 읽다보면, 그 작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세계를 자기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그녀 역시 문학을 공부하던 시절, 이청준, 조세희, 최인훈 등 선배 작가들의 작품을 모두 찾아 7~8번씩 되풀이해서 읽고, 노트에 옮겨 적기도 했다.

책의 미래, 독서의 미래가 어둡게 점쳐지는 오늘, 그녀는 독서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영화와 같은 영상물은 그 자리에 그냥 있기만 하면 되요. 영화관에 가서 2시간만 앉아 있으면 영화를 다 보게 되죠. 책은 그렇게 할 수 없어요. 한 줄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줄로 넘어갈 수 없고, 한 페이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없으니까요. 책 한 권을 다 읽는다는 것은 그래서 영화 한 편을 다 본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인 거예요. 자기 눈으로 짚어가며 한 줄 한 줄 겪어나간 경험의 총합이 독서니까요.”

노고단에 올라 구름과 함께 밥을 먹다

지리산 문학캠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만한 노고단 산행이 있는 둘째 날이다.

버스는 먼저 화엄사로 향했다. 화엄사는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 도전하고 싶어 하는 지리산 정통종주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일주문, 사천왕문, 불이문, 탑을 지나 법당에 이르는 과정은 세속의 번뇌를 씻고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절은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가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지만, 화엄사는 특이하게도 일주문에서 비스듬한 위치에 대웅전이 있는, 태극 문양을 닮은 배치를 하고 있다는, 가이드분의 설명을 들으며 경내에 들어섰다.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일주문에 들어서는 순간 저 멀리 웅장한 대웅전이 한 눈에 보이면서 찾아온 이를 압도하는 절들과는 다르게, 화엄사는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 때마다 제 모습을 하나씩 보여준다. 조용히 나이를 먹어가는 절, 빛바랜 단청은 소박한 나무빛깔에 가까워져 간다. 어느 것 하나 들떠있는 구석이 없이 새벽처럼 맑은 기운을 뿜어낸다. 절을 감싸고 있는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유난히 시원했다. 절구경은 접어두고 계곡에 앉아 발이라도 담그고 싶을 만큼.

각황전 뒤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사사자삼층석탑이 있다. 이름대로 사자 네 마리가 위층 기단에 기둥처럼 서 있다. 왜 사자인지 궁금해 절에 계시는 보살님에게 여쭈어 보았다. “사자후라는 말이 있잖아요.” 사자는 부처님을,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이란다. 사자를 탑 사방에 세워둔 것은 부처님의 진리가 사방에 넘침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성삼재 휴게소에 도착해 도시락과 얼린 물, 비옷을 나눠받고 노고단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중간에 쉬지 말고, 속도도 늦추지 말고, 무리하지 않으면 누구나 다 올라간다”고 가이드는 호언장담했지만, 산행은 만만치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코스는 노고단 대피소에서 노고단까지 오르는 오르막길. 가이드가 ‘노고단 대피소’가 보이면 절반 온 것이라고 한 것은 단순히 거리의 절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올라가면서 알게 되었다. 약 350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거리지만, 시종 완만한 오르막과 평지가 이어지다가 막판에 등장하는 오르막은 지친 사람의 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체력이 없다면 오기로, 다들 기어서 올라가든 끌려서 올라가든 노고단에 도착했다.

그리고 만난 노고단. ‘진짜’ 노고단은 개방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어 올라가지 못했지만 구름에 싸여있는 지리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산행을 마치고, 피아골의 한 야영장에서 퀴즈 이벤트를 가졌다.

 

둘째 날 밤, 김훈 공지영 작가와의 만남

단상에 나란히 앉은 두 작가는 간단하게 인사말을 했다. 김훈 작가는 다소 무뚝뚝한 목소리로, “작가는 혼자서 글 쓰는 사람인데,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하려니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라고 하며, 앞으로 글을 정말 똑바로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훈 작가의 뒤를 이어, 공지영 작가는 “생애 네 번째 등산을 오늘 여러분과 했습니다. 세 번째는 작년 문학캠프의 금강산이었지요.” 라고 이야기하면서,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라는 말로 인사를 맺었다.

첫날밤과 마찬가지로 먼저 작가의 작품 낭독이 있었다. 공지영 작가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두 번째 장을 낭독했고, 김훈 작가는『강산무진』에 실린 ‘화장’이라는 단편 소설을 조금 낭독했다.

작품 낭독이 끝난 후, 각각 읽은 부분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먼저 공지영 작가. “제가 읽은 부분은 유정이 모니카 고모의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차를 운전하여 가는 장면입니다. 저는 소설의 첫 부분에 상징적인 것을 넣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이 부분의 경우, 하늘과 땅의 경계, 어둠과 빛에 관한 이야기, 어떤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통해 어떤 만남이 진정한 사랑을 통한 것이었다면 거기엔 신과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첫 부분에 암시하고 싶었어요.”

작품의 한 장을 다 읽은 공지영 작가와 달리 김훈 작가는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秋殷周).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로 시작되는 장의 두어 단락쯤 읽다가 “이쯤 읽고 말지요.”라고 낭독을 마치고는 “‘화장’은 이른바 사랑이라는 것의 아득함에 대해 쓴 글입니다. 그 아득하고, 부옇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은 우리를 절망케 합니다. 손으로 만질 수 없기에 우리는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나 말이라는 것은 얼마나 불완전한가요. 사랑이라는 것은 3인칭을 2인칭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아득한 일인가요. 절망적이기까지 한 일이지요.”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독자와 김훈 공지영 작가와의 만남



활짝 웃고 있는 김훈 공지영 작가


소설 쓰기, 밥벌이의 지겨움

낭독이 끝난 후 독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첫 질문 ‘왜 작가가 되었는가’에 대해 두 작가는 같은 답을 했다. ‘밥벌이’를 위해서 소설을 쓴다는 것. 먼저 김훈 작가의 대답. “소설은 나에게 밥벌이의 노동입니다. 매우 힘들고 고달픈 노동이지요. 소설로 밥을 먹을 수 없다면 쓰지 않습니다. 다른 일을 찾아보겠지요. 저의 경우 27년 동안 다른 일을 해서 밥을 먹었습니다. 지금까지 ‘이게 아닌데’ 하면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제가 쓴 글이 제가 쓰려고 했던 글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그러면서도 출판사에 넘겨야 합니다. 그런 불완전 속에서 살아갑니다. 말할 수 없이 비통하죠. 그것을 견디며 밥벌이의 노동을 합니다.”

공지영 작가도 ‘생계를 위해서 글을 쓴다’고 이야기했다. “저는 식솔들이 많이 딸려서 생계를 위해 글을 써야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것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죠. 책 읽고 쓰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할 수 있는 글을 좀더 잘 써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가라면 자유롭게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 공지영 작가는 아침에 출근해, 저녁이면 퇴근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면 책을 읽는다. 슬럼프도 크게 겪은 기억이 없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도 그냥 쓴다. 그렇게 쓰다보면 신기하게도 슬럼프가 지나간다고. 특별히 글을 쓰면서 구애받는 것은 없지만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나오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70% 완성된 상태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는 버릇이 있어요.”

매일매일 꾸준히 쓴다는 것은 김훈 작가도 똑같았지만, 그 방법은 조금 달랐다. “작가가 자기 통제를 못하면 건달밖에 될 것이 없습니다. 전, 아침에 일어나 연필을 깎으면 예감이 옵니다. 오늘은 두 장 정도 쓰겠구나, 그러면 정말 하루가 끝날 때까지 아무리 애를 써도 두 장 밖에 채우지 못합니다. 안되겠구나 싶은 날도 있죠. 그런 날은 그냥 나가서 놉니다.(웃음)”

대부분의 작가가 컴퓨터를 이용해 원고를 작성하는 요즘, 김훈 작가는 아직도 연필과 원고지를 고집한다. “연필로만 글을 쓰는 것이 저의 못된 버릇인데요. 컴퓨터로 쓰려고 해봐도, 컴퓨터를 만지면 꼭 고장이 나요. 연필로 글을 쓰기 때문에 저는 글이 잘 안 써지면 연필 탓을 합니다. 그리고 나가서 딴 연필을 사옵니다만, 그런다고 글이 잘 써지겠어요.(웃음)”


독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공지영 작가



독자들과 대화하던 중 웃음을 터뜨린 김훈 작가


소설가로 내가 매달리는 테마는 생로병사

한국을 대표하는 두 작가의 학창생활은 어땠을까? 공지영 씨는 중고등학교 때 새침한 학생이었고, 대학교 때는 동기 120명 중 끝에서 세 번째를 할 만큼 공부를 안했다. 김훈 씨는 학교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겠지만 대학이라는 곳이 사회인이 되기 전에 학생들을 몰아둔 포로수용소 같은 곳이잖아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1년 내내 데모를 하고, 수업은 휴강이고, 학교 문을 닫아 놓고, 최루탄을 쏘고 그랬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공부가 하고 싶었지만 학교는 도저히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동기들과 선배들이 공부를 포기하고 데모를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대학을 중퇴했지만 대학을 안나왔다는 것에 대해 아무런 자격지심이 없다. 27년 동안 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소설가로 글을 쓰고 있다. 소설가로 그가 매달리는 테마는 ‘생로병사’다.

“나는 인생에 생로병사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병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요.(웃음) 생로병사는 인간의 문제이고, 그것은 합쳐진 것, 한 덩어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감과 죽어감이 완전히 똑같은 것이 아닐까, 깨닫고 있죠. 저의 문학은 더럽고 억압적이고 가엾은 중생들의 세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기자로서 그는 언론에 대한 검열과 통제 때문에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없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기자로서 자신의 직업적 정신이 썩어문드러진’ 어두운 시절을 보냈다. “저항도 분명 있었지만 모두 다 실패했습니다. 기자로서 전 정당한 기사를 쓸 수 없었습니다. 그런 시대의 문제를 우리가 정리하지 못하고 좌절한 채로 다음 세대-공지영 작가의 세대-로 넘겨 버렸죠.”

데뷔할 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공지영 작가가 말을 이어갔다. “저는 1980년대에 제 문학관이 성립되었습니다. 사회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작가가 되자, 그렇게 결심했지요. 그리고 요즘에 와서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 나의 문학관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는가를 고민해 봤어요.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의식 있는 작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사회운동 노동운동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은 항상 현시대에 맞추어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되죠. 살아있는 모든 것은 환경에 맞춰 살아나가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노동운동이나 진보운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제일 안타까운 점은 새로운 시도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죠. 시위문화만 봐도, 정권은 진보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시위하시는 분들은 별로 변한 것이 없잖아요. 그래서 결국 소외되어 버리는 것이 안타까워요.”

한 독자는 김훈 작가에게 ‘나이가 들수록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지’를 물었다. 거기에 대해 그는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년에 제가 60살입니다. 앞으로 서너 편만 쓰고 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속에 소설로 씌어질 이야기가 쌓여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너 편은 기어코 쓰고 가려고요.” 그러면서 후세가 자신을 작가로 기억할지 아닐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김훈, 공지영이 생각하는 좋은 문장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언어로 할 수 없는 것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다. 체험 중에 인간이 묘사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언어의 한계가 눈에 보이니까, 소설을 쓰는 것도 그렇게 자유로운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한국어가 불편해요. 조사 때문에요. 한국어는 조사가 없으면 문장의 의미를 알 수가 없죠. 그런데 이 조사가 몇 개 안되잖아요. 한 움큼도 안 되는 조사를 가지고 살림을 살아야 하니 옹색해요. 조사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 그가 생각할 때 좋은 문장은 조사가 돌출하지 않는 문장이다. “그런 문장을 쓰는 건 아주 힘든 일이죠.”

그에 비해, 공지영 작가는 괴테의 ‘모든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리라’ 같은 문장을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여성작가가 대거 등장하고, 여성적인 글쓰기가 씌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문장에 대해 공을 들이는데, 문장에 대해 이런저런 시비가 있었어요. 그런데 언제쯤부터는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문장과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문장 사이에 간격이 넓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녀가 좋다고 생각하는 문장은 인생 전체가 ‘찰칵’하고 잡히는 문장이며, 순간적이고 섬광적인 생각을 잡아내는 문장이다. 그녀가 쓰고 싶은 문장은 그렇게 인생 자체를 순간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그런 문장이다.

질문은 독서는 왜 해야 하는지, 문학의 매력이 무엇인지로 이어졌다. 공지영 작가는 ‘오픈북 오픈마인드’라는 말을 하면서, 책을 읽는 것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에게 나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김훈 작가는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저는 책만 본 세대입니다. 이것은 자랑이 아니라 나의 낙후성을 나타내는 이야깁니다. 흔히들, 책 속에 길이 있다,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책 속에 길이 있나요? 책 속엔 글자가 있죠.(웃음) 사실 전 책 속에 길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설사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해도 그 길이 세상의 길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책 속의 길은 있어도 없는 것과 다름없다고, 이 세상과는 상관없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이 세상을 바꾸기가 쉬울까요, 폭탄이 세상을 바꾸기가 쉬울까요? 폭탄이 바꾸기가 쉽습니다. 그렇지만 폭탄이 바꾼 세상은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책이 세상을 바꾸는 길은 멀고도 아득한 길이지만, 이 길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일은 눈물겹게도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소한 일에 감동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길

두 작가는 독자들에게 덕담을 하면서 시종일관 웃음으로 가득했던 독자와의 만남을 끝맺었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한 스님에게 했답니다. 그러자 스님이 ‘앉아 있을 때 앉아 있고, 걸어갈 때 걸어가는 것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저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라고 반문했죠. 그러자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는 일어서면서 걸어갈 생각을 하지 않느냐’라고요. 사실 저도 지금 이 시간 끝나고 술 마실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웃음) 순간순간을 명징하고 열렬하게 살아가세요.(공지영)”

“사소한 일에 감동할 줄 아는 사람, 말할 줄 아는 사람보단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테레사 수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인류는 잘 모른다. 나는 다만 쓰레기통에 버려진 갓난아이를 사랑한 것이다’ 그 말처럼 개별적인 인간을 사랑하고 보듬어 안았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것의 의미를 되새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김훈)”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춤추는인생. 2006-09-01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자세한 글을 처음이예요... ^^
글 잘보고 가요... ^^ 나도 갈껄. ㅠㅠ

stella.K 2006-09-01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글 읽고 후회하고 있었습니다요. 나도 갈껄. ㅠ.ㅠ

세실 2006-09-0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참으로 멋진 만남이군요. 아 저도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좋은 글 퍼갑니다^*^

stella.K 2006-09-01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대학진학 70% 男과 대등… 결혼보다 취업

한국의 20대 여성은…

한국의 20대 여성은 355만여명. 인구 규모에서는 30대보다 작지만, 대학 진학률, 또 석·박사 등 고등교육 이수율은 광복 이래 어느 때보다 높다. 2005년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대학교(재학·졸업·중퇴 포함) 학력 비율이 70.6%로, 20대 남성(377만명)의 74.4%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결혼과 출산·육아보다 취업을 우선 순위에 놓고 있으며 평생 2~3개의 일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 더해 최근 한명숙 총리,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등 여성정치 리더십의 등장과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 급성장을 보면서 자기의 미래상을 크게 그린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이다. 푸르덴셜생명 손병옥 부사장은 “20대 여성직원들은 임원, 최고 경영자가 꿈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면서 프로젝트 발굴에도 매우 공격적”이라며 “인턴사원으로 일하게 해달라는 요청도 여대생들이 훨씬 적극적”이라고 전한다.

이들이 앞 세대와 다른 점은 ‘직장 처세’나 엄숙주의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뻔뻔스럽게 야심을 드러내라” “잘생긴 남자에게 속지 말라”(‘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강인선·웅진)는 주문이 먹혀들고,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찾으라”(‘서른살 여자가 스무살 여자에게’·김현정·토네이도)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한 김지예씨(23·삼성SDS)는 “계발서들이 솔직하게 돈과 연애, 직장 생활 이야기를 한 것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된다”며 “속물적인 게 꼭 나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6-08-05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재미있게 읽은책입니다.
잘생긴 남자에게 속지 말라>그래서 제가 여자가 없어요.

stella.K 2006-08-05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비로그인 2006-08-06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로그인 2006-08-06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나서 밥만먹으면 동물스럽지 않겠습니까..영화도 봅시당.이벤트에 응모한게 당첨되어서 공짜로 영화볼수 있겠네요.

stella.K 2006-08-07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동물스럽기까지야...ㅎㅎ.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암튼 생각해 보십시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