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문학에
그렇게도 구애를 퍼부었던 나도 어느 순간 시들해짐을 넘어 아예 냉담해지기까지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된 원인엔
적어도 나에게 3 가지 악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토록
좋아했던 국어 선생님의 결혼과 교지에 내 글이 실리지 않은 것,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을 겨냥한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시작된 민주화 항쟁이 그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다. 국어 선생님 같은 경우 그 분의 결혼에 미련 같은 게 남아 있을 리 없다. 물론 잠시 아쉽긴 했지만 곧 선생님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렸고 오히려 이런 내가 대견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실연 당한 사람들 마음 아프다고 질질거리고 추태 부리고 하던데 솔직히 나도 그렇게 되면 어쩌나 했는데 의외로 덤덤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내 글이
교지에 실리지 않은 건 좀 아쉽고, 충격적이긴 했지만 어차피 작가가 되는 건 장기전이고 결국 나이 먹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리부터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대가 나의 작가의 꿈을 앗아갔다는 건 부인할 수 업을 것 같았다.
TV나 신문은 연일 시위와 군부독재를 타도하는 소식으로 들끓었고 나는 그게 남의 일인 양 바라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 시절 나의 아버지 같은 기성 세대는 요즘 젊은이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시위한다고
못 마땅해 했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고, 군인은 나라 잘
지키면 되는 것이고, 장사꾼은 장사나 잘하면 되는 것처럼 학생은 그저 공부나 잘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대의 기성세대들은 결코 범상치 않은 시대를 거치며 살아왔다. 나라가 하나되지 못하고 갈라진 것은
유감이긴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좀 전쟁의 불안에서 벗어나 안정되게 살 수만 있다면 그도 다행이겠다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 같은 힘 있는 사람이 이 불안한 휴전의 시대를 버텨줄 수만 있다면 그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이루어 놓은 게 좀 많은가? 무엇보다도 잿더미 같았던 남한의
땅을 이만큼 발전시켜 놓은 건 그의 힘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기성 세대들은
잘 몰랐을 것이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이고 다양성이 공존한다는 것이 뭔지를. 워낙 수직적이고 전통적 가치관에 길들여져 왔을 뿐만 아니라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이었으니 따숩게 밥 먹고 잠자는
것 외에 그것 너머의 자유가 허락될 거라고 누가 감히 상상하겠는가? 때문에 그 시절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하는 건 기성 세대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의 옷과 먹을 것 등록금이 어디서
나온 건데, 다 땅 팔고, 소 팔고, 기계 기름칠해 돌려 가며 번 돈 아니겠는가? 그런 피 같은 돈과
정력을 학교에 바치지 못하고 시위현장에 바치고 있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집 앞에서 교회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하필 시위가 일어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대학생 시위는 대학가 같은 번화한 곳에서 할 텐데 그런 곳과 한참 떨어진 시장 앞 도로변에서 시위를 하다니.
그 때문일까? 나는 한참 만에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를 탔지만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마침 버스 안에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어떤 아저씨 둘이 서로 초면에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버스 안에서 창문을 통해 바깥의 상황을 보고 같은 마음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사 논평에 밝은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그 광경이
나에게 너무나 극명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누가 더 자유로운 사람이었을까? 버스라는 우리 안에 갇혀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며 한담을 나눴던 그들이었을까?
아니면 대학이란 상아탑 안에 갇혀 있는다는 것이 위선이라고 생각해 저렇게 거리에 쏟아져 나와 행진을 했던 것이 자유였을까?
어쨌든 그들은
어쩌면 그리도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는지 나도 보면서 신기할 정도였다. 저 나이쯤 되면
저렇게 이물 없이 낯선 사람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의 호방함에 나의 소심한 성격이 유난히
쪼그라드는 느낌도 들었다.
다행히도 길은
얼마 만에 뚫렸고,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한쪽이 먼저 목적지에 이르자 그 동안 말 벗이 되어준
것이 고마웠던지 상대 남자에게 어디까지 가시는지 모르겠지만 안녕히 가시라고 먼저 인사를 했고, 상대
역시 답례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80년 대는 서로 모르는 사이도 금방 공감대를 형성하고 친해질 수 있는 사이로 만드는 처절한 세대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문학은 어디로 갔던 것일까? 그렇게 민주화로 인해 촉발된
문학은 온통 참여문학 일색아니었던가? 그래서 문학이 그런 것이어야 한다면 나는 문학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 문학은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것이고, 천일야화 같은 상상력의 본체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옛날 선생님으로부터 요셉 이야기를 듣고 이 세상 어디엔가 요셉은 존재하지 않을까란 희망을 가지고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문학은 그렇게 상상력과 별을 쫓는 모험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별이 손에 닿지 않는다고 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 처럼 문학을 하는 작가는 그렇게 불가능한 것이 가능한 것인
양 독자에게 끊임없이 상상력을 불어 넣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척박한 세상이
되어버린 현실에 기름이라도 붓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끊임없이
상상력을 퍼 올려야 하는 문학이 고작 현실과 야합(?)해서 ‘참여문학’이란
그때까지 듣도 보도 못한 이름으로 나온 것에 나는 적잖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자고 그 시대의
작가들은 하나 같이 현실을 비판하는 글만 써 댔던 것일까? 이렇게 척박한 세상일수록 누군가는 계속 상상력
가득한 글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이대로 한 세대만 지나면 문학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문학을 멀리했던 이유가 정말 이런 이유에서일까에 확신이 없었다. 문학에 대한 내 관심 자체가 시들했던
건 아닐까? 그것을 그렇게 참여문학에 덮어 씌웠던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
우리가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사춘기 시절, 인간은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나의 염세주의적 사고방식과 맥락을 같이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소설의 일회성이 나의 이런 생각을 더 부추겼다. 한 번 읽고 마는 소설에 기꺼이 돈을 지불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더구나
그 시대의 문학은 돈 내고 사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이 돈 안 되는 일에 나 자신을 투신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혼자 문학을 떠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흐른 요즘에 와 드는 생각은 그 시절이 척박했다고
과연 문학이 문학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것을 어디서
알 수 있느냐면, 나는 1982년부터 내가 완독한 책을 기록하는
손바닥만한 노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지금도 아주 가끔 들여다 보는 때가 있다(사실 내가 이
노트를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을 거라곤 나 자신도 몰랐다. 잃어버리려면 충분히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건데
말이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런 책을 읽었던가?’ 조금 놀라기도 하고, 그 책을 읽은 건 확실히 기억이 나는데 내용이 뭔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책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책들은 언제고 날 잡아서 다시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또한 문학은
항상 보면 그 시대를 풍미하거나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참여문학이던 아니든 간에 말이다. 나는 또 문학에 애도를 표한다고
해 놓고 그 작가들의 작품을 야금야금 읽고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당시
문학계는 수필이 강세를 보였는데, 여류 수필가로 신달자와 유안진이, 남자로는
철학자 김형석과 안병욱이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들의 작품 한 두 권쯤은 다 읽었다. 독보적 지성으로는
이어령 교수가 있었고, 소설로는 박경리 선생과 박완서 선생이 있었다.
이들의 책 역시 난 몇 년간에 걸쳐 서너 권 이상은 읽었다.
또한 외국 작가로는 <빙점>으로 유명한 미우라 아야꼬 씨의 책들을 좋아했는데, 그녀가 구사하는
작품의 정서가 우리나라의 그것과 흡사해 좋아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녀가 쓰는 작품마다 기독교
작가로서 그 특유의 영성이 돋보여 좋아했다.
서양 작가로는 가톨릭 작가로 유명한 A. J 크로닌의 작품을 좋아했다. 그
의 작품을 알게 된 계기는 사실
난 교회를 다니기 전 성당엘 잠시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영세(세례)를 받을 때 나의
대모에게
그의 책 <인생의 도상에서>란 책을 다른 책과
함께 축하 선물로 받았었다. 그런데 아무리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고 하지만 판형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활자가 작은 편이어서 당장 읽을 맛이 나질 않았다.
그렇게 몇 년간 내 방 책장에 꽂혀 있었는데 우연히 어떤가 싶어 뽑아서 한 두 장 읽기 시작했는데 그게 또 의외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후 그의 책을 생각 외로 많이 읽었다.
그때 이미 나의 신앙은 가톨릭에서 기독교로 옮긴 상태였는데, 좀 웃긴 것은 그렇게 미우라 아야꼬와 크로닌의 작품들을 읽어서일까? 내친김에
아예 종교 문학에 발을 디뎌 볼 생각으로 집에서 한 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 신사역 가는 길에 기독교 서점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가면 기독교 문학에 관한 책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날 마음 먹고 갔다.
처음으로 가 본 그곳은 내가 찾던 기독교 문학 책은 그다지 있어 보이진 않았고, 주로 신학이나 신앙 서적을 팔고 있었다. 조금 실망은 했지만 이대로 나오기가 뭐해 용기를 내 그곳 주인에게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있냐고 물어 보았다.
그 무렵 이문열의 책들이 문학계를 주름잡고 있었다. 내가 알기론 그가 이전에도 책을 내긴 했지만 이 책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내가 그 책을 찾았을 싯점은 그나마 그 인기가 한풀 꺾인 때였다.
그렇게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 서점에 들어 온 이상 그 책이라도 사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말하는 순간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그 책을 이런 기독교 서점에서 찾고 있는 건지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그 책이 기독교 문학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던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서점을 기웃거리고 다녔으면서 하필 여기 와 그런 실수를 하다니?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나 주워 담을 수도 없고 그냥 모른 척 주인이 어떻게 나오나 지켜 보는 수 밖에.
그런데 의외로
나를 대하는 주인과 그 친구의 태도가 참 마음에 들었다. 보통은 왜 그런 책을 여기서 찾나 의아해 할 수도 었을 텐데 다소 얼떨떨한 표정 지으며 그들은 내가 찾는 책에 대해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는
것이었다. 이마에 내천 자까지 그리면서. 그리고는 그거 소설책 아니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었다. 그제야 그들은 어떠한 결론에 도달한 듯 주인이 그건 여기엔 없으며 일반 서점에 가보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도 그 유명한 책을 읽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베스트셀러여도 그렇게 안 읽은 사람도 못지 않게 많다는 얘기다.
나는 그런 그들의 진지함이 왠지 착해 보여 좋았다. 자칫 무안해질 수도 있는 상황을 그들은 직감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런 손님을 진지하게 대해주니
오히려 고마울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그 후 그들의 말대로 그 책을 단골 서점에서 사
읽었고, 그 책이 문학으로는 잘 쓴 작품이긴 하지만 기독교 문학과는 전혀 상관 없는 책이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
그 밖에도 80년대엔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이나 황인경의 <소설 목민심서> 같은 역사 소설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면서
나 역시 역사소설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바로 이런 책들이 시대의 질곡과 상관없이 80년 대를 대표하는 책들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무슨 근거로 80년 대는 문학적 상상력이 부재한 시대라고 단언하고 조용히 안녕을 고하려고 했던 걸까?
그런데도 80년 대를
생각하면 그 시절 내가 읽어 온 책들 보다는<해방 전후사의 인식>의
인식이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등과
함께 이념 서적들을 떠올리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누구는 문학을 함에 있어서 그 시대의 사회성과
참여정신을 닮지 못해 괴로워했는지 모르겠다. 문학의 길은 의외로 넓고 깊다.
시대에 저항하는 문학을 하는 것이 문학하는 자의 자세인지 아니면
그것과 상관없이 문학 그 자체의 길을 도도하게 가는 것이 옳은 건지 잘 모르겠다. 물론 그건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나 개인적인 생각은 시대를 초월해서 좀 더 예언자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문학하는 자세에
좀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언젠가 조선일보의 북세션을 담당했던(지금도 담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광일 기자가 이런 말을 했단다.
“(뜨거운 시대를
살아야 했던 작가들은 너무 뜨겁다고 전제하고)독자들은 이미 다 잊어버리고 가볍게 걸어가고 있는데 작가들은
아직 그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헐떡이고 있습니다. 짐을 올려놓기도 어렵지만 내려놓기는 더 어려운
법이지요. 그 역사의 짐을 내려놔야 새 시대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라고.
나는 기자의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시대를 정확하게 읽는 것도 작가의 몫이긴 하겠지만 시대를 관통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우리나라 작가는 조금
늦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위에 열거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그
시절 나름 나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책을 거의 인터넷에서 사는 형편이고 보면 이렇게
서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관해 할 말이 없는 것 같다.설혹 오프라인에서 책을 산다고 해도 직원들이
사무적인 친절로만 대할 뿐이니 그런 광경을 묘사할 일이 없어졌다. 아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