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빙 어스
캐서린 헤이호 지음, 정현상 옮김 / 말하는나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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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1부를 읽으면서 이 기후의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게 정치적 상황 맞물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책에서 언급한 기후 위기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들이 대놓고 정치적 상황으로 몰아갈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하긴, 트럼프는 1기 때나 이번 2기 때도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했다. (그 효력은 1년 후에 발생한다고 한다.) 1기 때 이 기후 협정을 탈퇴한다고 했을 때 좀 놀랐다. 다 같이 맺은 건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탈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공동의 목표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이건 이제까지 내가 알던 미국과는 전혀 다른 행보였다. 미국은 우방과 늘 협력하는 자세를 보여오지 않았던가?

확실히 트럼프는 '무시 그룹'에 속하며, 그의 사전엔 '공동'이나 '협력'은 없으며 오직 '이익'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가 그럴 수 있는 건 그 자신의 이득과 지지그룹에 화석연료 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은 트럼프에 멍석을 깔아준 것 밖엔 되지 않는다. 그 이후 미국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어쩌다 미국이 그렇게 되어버렸는지.

하지만 이게 미국만 증오하고 비판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다음 문장을 보자.

인간에게 가장 좋은 온도는 몇 도일까? 그것은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온도다. 우리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골디락스 Goldilocks(딱 좋은) 온도다. 그 온도에서 인류 문명이 발달했다. 그 온도에서 수자원을 배치하고, 사회기반시설을 설계하고 건설했으며, 논경지를 구획해 나누었다. 그 조건에서 우리는 사회. 경제 시스템을 개발하고, 정치적 경제를 설정했으며, 자연 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정했다. ” 88p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미국이야 대놓고 한다지만 능력을 갖춘 나라는 자기네가 원래 살던 곳이 피폐해지거나 지형적으로 뭔가 불리해지면 침략을 해서라도 빼앗고 거기에 말뚝을 박는다. 지금까지의 전쟁이 다 그런 거 아닌가. 살다가 가뭄이나 홍수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좋은 기후를 가진 곳을 차지하기 위한 싸울 것이다. 능력을 갖춘 나라가 좋은 땅을 선점하게 될 것이다. 힘없는 나라는 고스란히 내팽개쳐질 테고. 근데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그건 둘 다 좋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 공조하는 노력이 필요할 텐데 앞으로 점점 더 패권주의로 노 나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뭐 하겠는가? 나 하나 그런 생각을 갖는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이 책에 나와 있는 다음 말을 주목해 보자.

“ ......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지적 구두쇠'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 인간은 가능하면 생각을 덜 하는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의존하기도 한다. ” 103p

인지적 구두쇠. 좀 재밌는 말 같다. 흔히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알 것도 같다. 그런데 이게 참 다양하게 작동하는 것 같긴 하다. 가스라이팅에 의해서도 그렇고,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다독이는 말에도 작용하고, 생각하는 게 싫어서 남들도 그렇게 한다며 스스로가 생각을 차단하기도 하지 않는가. 특히 환경이나 자연을 생각하는 건 막연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아서 더한 것 같다. 인간의 내면에 그러한 것이 있다니, 역시 인간은 여러모로 복잡한 존재인 것 같다.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우리의 적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국을 비판하고 강대국을 경계하면 뭐 하겠는가? 우리 안에 환경에 대한 안일한 생각들이 오히려 환경을 더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

“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모든 봉쇄를 통해 사람뿐 아니라 산업과 교통도 멈춰 섰을 때 세계의 탄소 배출량은 7% 줄일 수 있었다. 비록 일시적인 현상이었지만 말이다. 파리협정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그런 감축을 지속적으로 매년 하는 것이 중요하다. ” 130p

그래. 우린 이런 말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코로나 봉쇄는 분명 자연환경에는 선물 같은 기간이 될 거라며 그때를 버틴 적도 있다. 사실은 이보다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언제든지 다시 재현될 거란 보도는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다. 하도 많이 보도되고 있어 그러면 또 그런가 보다 한다. 또 격지 뭐. 그까이 꺼. 하지만 막상 닥쳐 봐라. 과연 그까이 꺼가 정말 그까짓 거가 될 수 있는지. 저자의 다음 말도 좀 기억하자.

코로나19는 백신 덕분에 결국 끝날 것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백신은 없습니다. 343p

이 책은 꼭 기후와 환경에 대해 암울한 전망만을 말하지 않는다. 희망적인 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 한 대가 뿜어내는 탄소가 자동차의 몇 천대 분량이라고 들었는데 과연 항공사에선 탄소 감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은 전해주고 있다.

“ 코로나19 사태 이후 환경친화적 회복이 이런 계획들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에어 프랑스와 KLM에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으려면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승객당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라고 요구했다. 유나이티드에어라인은 2016년 이래 농업 폐기물로 만든 바이오 연료를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에 공급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베르겐과 오슬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호즈의 브리즈번, 스웨덴의 스톡홀름 등 5개 공항에서 바이오 연료 주입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 280p

그나마 다행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환경을 위하고 있는지는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 예컨대 2019년 셀-가장 부유한 기업 3위 이자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는 회사 6위-의 CEO는 런던에서 일단의 CEO들에게 제철이 아닐 때 딸기를 먹는 것과 너무 많은 옷을 사는 것은 문제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세 명의 딸이 있는데, 다들 너무 패션에 민감하답니다. 그래서 저는 딸들에게 1년에 네 번 계절마다 새 옷을 갖는 것은 상당한 생태발자국을 만든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여러분들도 그것을 깨달았나요? 이게 다 기후변화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241p

'제철이 아닌 딸기'란 문장은 진짜 딸기를 말하기 보다 제철이 아닌 과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요즘엔 계절 구분이 없거나, 일찍 나와 늦게까지 먹는 과일이 많아졌다. 수입 과일도 많고. 거기에 탄소가 많이 배출될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것이 농사짓는 분들과는 어떻게 이야기가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소비자의 입장에선 특별히 환자거나 입덧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제철 과일을 앞당겨 먹는다고 좋아라 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언젠가 TV에서 "세상의 모든 다큐'란 프로에서 패스트패션에 관해 다룬 적이 있었다. 패션을 위해 제3 세계 하청을 떠넘기고, 거기에 소요된 어린아이나 젊은이들의 열악한 노동을 보고 어느 패션모델은 자기 옷방에서 옷을 전부 다 내다 버렸다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정말 생각이 있다면 이미 산 옷은 오래도록 입고, 앞으로 옷을 안 사거나 아주 필요한 것만 제한해서 사 입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패션은 돌고 돈다고 10년, 20년 전 옷을 다시 입는다 해도 본인이 말하지 않는 이상 잘 모를 때가 많다. 나도 예전에는 잘 안 입으면 내다 버리곤 했는데 지금은 가급적 버리지 않고 입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패션계도 고민이 많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읽는 중 역대 최대, 최악의 산불이 났다. 매년 되풀이되는 산불 때문에 소나무가 문제로 대두됐다. 과연 소나무 없애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가? 의문스럽기도 하다. 화재의 90%가 실화라는데 그렇다면 인간과 제도에서 문제 해결을 찾지 않고 애꿎은 소나무를...? 정책이란 게 참 빈약하기 짝이 없다. 불을 내도 벌금이 3천만 원이거나 5년 이하 징역이라는데 그나마 그것도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는단다. 어쩔.

암스트롱은 달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겼다지만, 우리는 지구에 탄소 발자국을 남겼다. 지구가 두 개면 뭐 하겠는가? 이대로 가단 그 하나 남은 지구도 똑같이 망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지구의 환경을 예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늦출 순 있지 않을까. 그래야 우리의 후손에게 좀 덜 미안하지 않을까? 지금은 산소 발자국을 남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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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5-04-16 2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지구가 곧 우리네요.
그 지구에 가장 큰 문제가 우리 인간들이구요.
아니, 그악스런 탐욕으로 쪄든 극소수의 인간들 때문이지요.
지구 스스로 몸살 정도가 아니라 사망을 막기위해
지금 마지막 씨름 한판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한영애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stella.K 2025-04-16 21:48   좋아요 1 | URL
ㅎㅎ 그 노래 저도 알아요. 멋진 노래죠.
그러고보니 지구의 시계가 몇분 안 남았다는 얘기를하죠.
누구를 원망해야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오늘도 택배 받았는데 티이핑을 어찌나 많이했던지 굳이 안 해도
되는 곳까지 해서 택배 받아도 즐겁지가 않고 짜증부터 나요.
포장 쓰레기는 또 얼마나 많은지.걱정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5-04-17 1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후 위기의 심각성은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지만 당장 어떻게 되는 게 아니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죠. 그보다는 하루하루 생활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직장인은 당장 끝마쳐야 하는 과제가 있고, 주부로 돌아오면 당장 저녁 메뉴를 고민해야 하고... 저만 해도 당장 어머니 모시고 병원에 가서 혈압, 혈당 약을 받아 와야 하고. 이렇게 살다 보면 기후 위기는 먼 문제가 되고 말지요. 그래서 이건 법과 사회 시스템으로 관리해야 할 것 같아요. 가령 제철이 아닌 과일을 먹기 위해서는 비닐 하루스 안에서 적당한 온도의 유지를 위해 온풍기나 냉풍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것을 법으로 규제하는 방법을 써서 과일은 제철의 것만 먹게 하는 거죠. 연료를 덜 사용하게 하는 극단적인 예, 입니다. 이것이 좋은 방법인지는 모르겠어요.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죠.ㅋㅋ

stella.K 2025-04-18 10:56   좋아요 1 | URL
얼마 전 야구 한 게임당 쓰레기가 톤 단위로 나오는 걸 보고 놀랐어요. 저 학교 때만해도 먹으면서 관중하는 거 없엤던 것 같은데. 그런 구장에서 다회용기만 써도 쓰레기를 엄청 줄일 수 있다고 하더군요.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나 하나쯤이야 하지 말고 나 하나라도 하는 생각으로 바꿔야 할 것 같아요.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 돌베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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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속한 온라인 독서 모임에서 3월 한 달 동안 읽었던 책이다. (그곳은 무조건 정해진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면 책을 찾아가 함께 읽는 것이다.) 왜 이 책을 읽었는지에 대해선 책 제목이 말해주고 있으니 굳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


권보드래. 이름이 독특하다. 저자에 대해선 문학평론가면서 대학교수 외엔 특별히 알려진 게 없다. 굳이 추가한다면 최근까지 왕성한 저술 활동을 했다는 정도? 건조한 문장에 한자어를 많이 사용해서 어느 나이 지긋한 남자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책 중간쯤 읽다 아무래도 저자가 궁금하여 찾아봤더니 여성이다. 이럴 수가.


이 책은 지난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서 나온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쓰기 전 저자가 3.1운동에 관한 책을 낼 거라고 하자 주위에서 좀 의아스러운 눈으로 보더란다. 역사 전공자가 아니고 문학평론가 그런 책을 내겠다고 하니. 하지만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뚝심을 가지고 밀어붙인 결과라고 한다.


저자는 문학을 전공한 만큼 당대 문학가 내지는 문필가들에 다소 집중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전혀 가치가 없거나 편파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역사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봐야 하기 때문에 그 나름의 성과가 있다고 보아진다. 그런데 역사 학자만이 논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면 그거야말로 사대주의 아닌가. 다양한 전공자들이 (그것이 비록 일반인일지라도) 저마다의 시선을 가지고 새롭고도 다양한 해석할 수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 또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 방면에 관심이 있다면 아울러 장석주의 빛나는 저작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 1권을 참조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그런데 이 책에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어 잠시 소개할까 한다.

“ 이들 중 누구도 일본어 글쓰기를 최종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이광수는 1910년대에 <매일신보>와 <청춘>을 무대로 '조선어로 쓰는 조선 문학'을 적극적으로 개척했고, 주요한은 1918년경부터 일본어 시 창작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 우리말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염상섭은 일본에서 지방지 기자로 사회적 이력을 시작했으나 <동아일보>의 초빙을 받고 귀국했으며 김우진은 3.1 운동 직전의 분위기 속에서 일본어 대신에 한글로 일기를 적기 시작했다. 김기진 역시 1923년 <개벽>에 '프롬나드 상티망탈'을 발표하면서 정력적으로 평민과 소설을 써 나가기에 이른다. 이들은 문학청년 시기에 한때 일본어로 글을 썼고 일본 문단 진출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3.1 운동 전후 한글 쓰기에 정착한다. 근대 한글 글쓰기는 이들을 통해 비로소 새로이 규범적이고 미적인 영역을 개척했다. 이윽고 1920년대를 통해 놀라울 정도로 풍성해진 공식어로서의 한글은 "조선말로 미문을 쓸 수 없다."던 시대에서 "특수한 학문상 술어 이외에는 조선말로 쓰지 못할 말이 없도록"까지 비약했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바 독자적 자국어의 밀도를 갖추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1919년 3.1 운동 이후 민족어 글쓰기의 공간이 대폭 확대됨으로써 가능케 된 상황이었다. ” (456p)


이른바, 일제 치하 36년. 물론 굴욕의 세월임엔 틀림없고, 이 기간 동안 한글을 사용할 수 없고, 일본어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였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한 세대 이상을 남의 나라말을 사용해야 한다면 정말 모국어를 잊어버리게 되는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1913년 당시의 조선인 사이에 일본어 해독률은 0. 61%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1930년대가 되면 10%를 돌파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일본어는 20% 정도 밖엔 구사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시 생각해 보면, 당시 일본어를 꼭 사용해야만 하는 곳은 학교나 관공서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우리나라 문맹률은 상당히 높았고, 학교에 갈 수 있는 사람도 소수에 불과했으니 상대적으로 일본어의 사용 빈도는 그리 높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어를 쓰나 일본어를 쓰나 감시하는 것도 한계는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당대 지식인들 중엔 문맹률을 낮춰야 하는 것에 공감을 했을 것이다. 글을 읽어야 무지를 깨칠 수 있고, 나라를 빼앗긴 것도 알고 보면 백성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탓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차치하더라도 어쩌면 당시 문맹률이 높았던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해 본다.


나는 저 글에 언급된 지식인들이 일본어를 의도적으로 탈피해서 조선어로 문학 활동을 했다는 게 대단하고 역시 지식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것이 해방도 되기 이전 1920년대 놀라울 정도로 풍성해진 공식어가 됐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해방의 조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앞서 진행되고 있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식민 경험이 있는 다른 나라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런 문학의 조상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작년(2024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타면서 사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노벨문학상 작품을 원어로 읽는 호사를 누린다고 입을 모았던 거 아니겠는가?


사실 우리는 모국어가 너무 익숙해서 공부할 게 뭐가 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한 달 전쯤이던가? <유퀴즈...>란 TV 프로에 어느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외국인 교수가 나와서 자신은 지금도 한국어 공부를 10시간씩 한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원래 남의 나라말은 어려운 것이고, 그건 그 교수의 남다른 한국어 사랑이거나 성격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 원어로 읽는 호사란 말이 안 나오겠는가?


또 하나 생각할 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신 건 정말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백번 다 감사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당시 한글이 확 퍼져나갔던 건 아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창제된 것이지만 지난 몇 세기 동안, 한 번도 글을 깨우치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이 글을 깨우치고 죽은 사람 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러니 대왕님께서 이런 건 만들어 뭐하나 성과 없는 일이라고 해도 뭐랄 사람이 없다. 하지만 대의는 늘 실용주의 보다 앞서야 한다.그게 몇백 년, 몇 세기가 흐르든지 간에.


세종 대왕님께서도 몰랐을 것이다. 그 몇 세기가 흐른 후,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서 비로소 한글이 우리나라에 퍼지기 시작했다는걸. 그 시절 선교사들은 빨리 조선어를 익혀서 성경을 조선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선교와 교육을 해야 했다. 그러니 평민 이하의 사람들이 성경과 우리 모국어를 깨우치는데 선교사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까 역사는 그렇게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새삼 놀랍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역사에서 '개화기'란 바로 이런 것이고, 그 중심에 3.1 운동이 있었겠구나 이 책을 보며 새삼 깨닫고 정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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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5-03-30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 강점기 때 조선인들이 강제로 일본어를 사용하라고 억압받았던 것을 생각하니
편하게 한글로 언어 생활을 할 수있게 만들어주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감사드립니다.
언어는 사상의 집이란 말이 있지요.
제 생각의 틀인 한글에 대한 사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스텔라님이 리뷰해주신 이 책 꼭 읽어보고 싶네요.^^

stella.K 2025-03-31 09:58   좋아요 1 | URL
아, 니르바나님! 감사합니다. 무플을 방지해 주셔서. ㅋㅋ 요즘 가끔 서재 초기 때 무플방지위원이 생각나더군요. 그땐 좋아요가 없었던 때라 자율적이면서도 누가 방지위원인지도 모르고 했잖아요. 지금은 좋아요 때문에 한때의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ㅋ
이책 한번 읽어봐도 좋긴한데 문학사관에 치우친 감이 있어요. 특별히 저자가 이광수의 문학을 애증하고 있죠. 그러니까 저도 왠지 이광수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이 책이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yamoo 2025-04-02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첨 듣는 작가네요.
흠...문학평론가가 낸 소설이라..
ㅎㅎ 읽을 마음이 샥 가십니다그려..^^
평론가 출신 소설 치고 재밌는 작품이 없었던 기억만...^^;;
그래두 스텔라 님은 한달내내 읽으셨네요...지루했을 거 같은데..
어쨌거나 창작활동을 계속 하는 작가라니...스텔라 님 덕분에 이런 작가도 알아가네요..ㅎㅎ

stella.K 2025-04-02 11:04   좋아요 0 | URL
ㅎㅎ 소설이라고 쓴적 없는데요? 3.1운동 전반을 다룬 일종의 논문 같은 책인데 역시 전공대로 문학사적 관점이 많죠. 나중엔 자신이 이광수를 못 벗어났다는 말도 남기고. 저는 자기 사관이 있어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역시 역사는 다양한 사관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잘 지내시죠?^^

2025-04-02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5-04-02 13:40   좋아요 0 | URL
ㅎㅎㅎ

페크pek0501 2025-04-02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광수는 ‘조선어로 쓰는 조선 문학‘을 적극적으로 개척했고~~˝ - 친일파 이광수 작가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네요. 처음부터 친일파이진 않았을 거라는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만...
역사는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해야 하는 바, 누구도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쓰는 게 쉽지 않으니 여러 사람이 쓰는 건 환영할 일인 것 같습니다. 독자는 여러 책을 보고 판단해야 하겠고요...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최태성 작가의 <역사의 쓸모>가 떠오르는군요.^^

stella.K 2025-04-02 20:18   좋아요 0 | URL
이 책을 보니까 이광수는 우리나라를 너무 비관적으로 본 것 같았어요.
아마 그렇게 보는 친일파도 적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워낙에 힘도 희망이 없었잖아요.
그렇게 일본에 붙어 먹어서라도 살아야 하지 않는가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해요. 물론 간사하게 자기 안위를 위해 친일을 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친일에 대해 너무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책 보니까 이광수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참 부지런히 읽으시네요.^^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요즘엔 영화 보단 드라마를 주로 보는 편인데, 드라마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 가끔은 기분 전환겸 영화도 봐야할 것 같아서.


중국 애니매이션인데 꽤 괜찮은 작품이다. 하지만 보통은 애니매이션이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지는데 과연 어린아이가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굳이 말하자면 인간에게 생명을 빚진 붉은 고래가 은혜 갚는 이야기고, 거기에 중국 철학 장자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네러티브가 좀 복잡하다. 어른인 내가 봐도 조금은 버거운 느낌이다. 그래도 영상은 꽤 좋다. 

이제 중국 애니매이션도 무시 못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2010년. 꽤 오래된 작품인데 사극이라서 그런지 요즘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내용도 좋고, 당대 유명 배우들이 대거 많이 나와줘서 눈호강이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단연 황정민이다. 봉사로 나오는데 칼을 잘 쓰는 무사이면서 욕쟁이로 나오는다. 그런 상반된 캐릭터를 이렇게 잘 구사하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으리만치 연기를 잘한다. 

엔딩 크레딧이 나오고 맨 마지막 장면이 뭔가 방점을 찍듯 하는데 역시 이준익 감독 특유의 노련미가 돋보이는 엔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의 작품이라면 언제나 OK인데 이제야 보다니! 몰랐다. 알았으면 좀 더 일찍 봤을 텐데.

 문득 여기에 나온 배우들의 연기하는 모습을 앞으로 얼마나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안 보이기 시작한 배우들이 몇있던데...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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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5-03-10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봄날에 영화감상 좋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즐겨보시니 몸도 마음도 청춘이라고 칭찬해드리고 싶습니다.
미세먼지만 없어주면 좋겠는데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구요.

stella.K 2025-03-10 20:32   좋아요 1 | URL
ㅎㅎ 솔직히 드라마 보는 일이 고역이죠.
영화는 그냥 2시간 집중해서 보면 되는데 드라마는 아무리 봐도
끝나질 않아요. ㅠ 그래도 왠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다 보는 건 아니고 마음에 드는 걸로만 보지만. ㅋ

미세먼지가 좀 그렇긴하죠? 작년인가 언제 방송을 들으니 그동안
중국과 우리나라 접경 지역에 나무를 많이 심어서 미세먼지를 많이 줄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만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무튼 요맘 때가 가장 조심할 때이긴하죠.
니르바나님도 건강 유의하세요.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5-03-19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신문에서 입수한 정보, 폭싹 속았수다를 볼 예정이에요. 누가 칼럼에 이 드라마에 대해 썼는데 재밌을 것 같아서요. 찾아보니 16부작이더라고요. 길기도 하네, 하며 한숨이 나왔어요.ㅋ 앞에 몇 편 보고 나면 끝까지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이 되겠지요. 황정민, 제가 좋아하는 배우인데 사극으로는 보지 못했네요. 잘 어울릴 것도 같네요.
저는 영화가 두 시간이 넘어 버리면 잘라서 봅니다. 집에서 넷플 볼 때 중간에 화초에 물을 준다든지 과일을 먹는 방법이 있어요. 책이든 영화든 길면 질색인 건 늙어서 그런가 봐요.ㅋㅋ

stella.K 2025-03-19 13:57   좋아요 1 | URL
ㅎㅎ 맞아요. 나이 드니까 그래요. ㅋㅋ 폭싹 속았수다가 그렇게 재밌다면서요? 근데 제가 보는 지니TV에선 안하더군요. 중증외상센터도 재밌다는데.ㅠ 인터넷 말고 TV로 보면 좋은데 일부러 애써 볼려고 하지 않으려고요. 언니 말씀마따나 보는 게 넘 힘들어요. 그냥 인연이 없나보다 해요. 근데 저 어제부터 옥씨부인전 보고 있어요. 뭔가 재밌을 것 같은데 언제 다 보게될지 모르겠어요.ㅠ
저 두 영화 저도 끊어서 봤어요. 이제 영화관에서 영화보는 일 없지 싶어요. ㅋㅋ 기회되시면 한번 보세요.^^

2025-03-27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27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은 절판됐지만 내가 이 표지의 책을 살 때는 작가가 맨부커 상을 받고 난 직후였다. (지금은 작가가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받는 바람에 새로운 표지의 책이 다시 나왔다.) 그제야 난 이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하지만 난 이 책을 사고 난 후에도 쉬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농담이지만) 결국 난 맨부커상만으로도 안 되는구나. 노벨문학상은 돼야 읽는구나 했다.

사실 노벨문학상도 나에겐 언제부턴가 그렇게 큰 의미로 와닿지는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큰 문학상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건 남의 나라 문학상이라고 생각했다. 더 정확히는 우리나라와는 인연이 없고 후보로만 만족해야 하는 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었다고, 정말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나는 노벨문학상을 배출한 나라의 국민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솔직히 얼떨떨했다. 내가 수상한 것도 아닌데 이 느낌은 뭐지? 우리나라는 노벨문학상과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런만큼 노벨문학상은 한강 작가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온 나라의 영광이었던 것이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무엇보다 수상 작가의 작품을 원어로 읽는다는 호사와 자긍심을 갖게 했다. 모르긴 해도 세종대왕님도 뿌듯해하셨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긴 하다. 막상 읽어보니 노벨문학상은 문학상이고, 작품은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그랬다. 처음 읽는 작가의 작품치고 좀 센 작품을 읽은 거라고. 좀 늦었지만 <소년이 온다>나 <흰 > 또는 <작별하지 않는다>부터 읽어보길 추천했다. 확실히 진입 장벽이 느껴지긴 했다. (이게 다 맨부커상 때문이다. >.<;;) 하지만 나도 좀 미안하긴 했다. 난 이 책이 단순히 작가의 소설집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보니 연작 소설집이었다. 그러니까 난 그것도 모르고 샀던 것이다. 적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 는 거 아닌가.

작품이 좀 당혹스럽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효과인 건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인지 읽고 난 후 예전 같으면 화를 냈을지 모르겠는데 '아, 작가가 이렇게 쓰는구나.' 작가가 먼저 보였다. 무엇보다 문체가 상당히 안정적이다. 그냥 단순히 글을 잘 쓴다는 말이 아니다. 그 사건 또는 에피소드를 상당히 잘 구축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건 또 뭔가 끝까지 쓰겠다는 작가의 결기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다. 같은 주제라도 좀 쉬운 방법으로 쓸수도 있지 않았을까? 일부러 어려운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는 생각이 들었고, 왠지 그것은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작가가 일부러 어려운 또는 흔치 않은 방법으로 글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고집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솔직히 그 과정에서 쓰다가 포기하고 싶은 때가 없었을까? 글 쓰다 막히면 포기하거나, 우회하거나, 다음 기회로 미루고 싶은 유혹 세상의 작가라면 다 있을 거라고 본다. 꼭 이 방법이어야 했을까? 다른 방법으로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왜 이 방법으로 밖엔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작가는 무수히 많이 물어보며 썼을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이건 독자로서 작가에게 묻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어떤 작가는 (영감이 충만해서) 내 안에 어떤 목소리가 있어 받아쓰듯 썼다고도 하던데, 왠지 한강 작가는 그렇게 썼을 것 같지가 않다. 이렇게 한 여자와 가족들 처참한 지경에 몰아넣고 신들리듯 쓸 수 있었을까? 오히려 펜이 바늘이 되어 한 땀 한 땀 자기 살에다 새기듯 쓰지 않았을까? 또 그런 과정에서 자주 머릿속이 하애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 작가는 쉬운 방법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분명한 것 같다.

사실 내가 이 작품을 쉬 읽지 못했던 이유는 꼭 어떤 선입견이나 게을러서만도 아니었다. 적어도 90년대 이후 우리나라 문학은 뭔가 편중된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이전 작품들이 다채로웠냐면 그렇지도 않다. 한때 민주화에 몰두했고, 그것이 사그라들자 문학은 사변화되어 인간의 허무나 일탈과 방황을 묘사하는데 급급했다. 게다가 열린 결말이라며 이도 저도 아닌 결말을 보여주는 게 트렌드였다. (물론 그런 중에도 독자적인 길을 간 작가도 없지 않다.) 그러니 연작인지도 모르고 표제작이자 첫 번째 수록작만 읽고 내가 느꼈던 건 잊고 있었던 그때의 문학 정서를 마주한 느낌이기도 했다. 그건 나머지 두 작품을 다 읽었다고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젠 이 작품에 대해 감히 혹평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마음에 맞는 사람 서넛과 술잔을 기울이며 작품을 안주 삼아, 시쳇말로 까대기를 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젠 노벨문학상 작가를 배출한 나라가 되지 않았는가? 그에 맞는 품격을 가지고 작품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작품에 대해 좋은 말을 해 줄 수 없을 것 같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환대를 못 받는다고, 세상 다시없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본토 일본에선 아주 환영받는 작가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테면 작가도 거지 뭐.

그런데 나의 친애하는 한 이웃분께서, 사람들이 폭력을 폭력인지도 모르고 하는 경우가 있다며 사람은 동물을 죽여 먹지만 식물은 남을 해치지 않고 물과 햇빛만으로 살 수 있으니 주인공이 식물이 되려고 하는 게 이해가 간다고 하셨는데 과연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찌 보면 그건 살생하지 않다는 불교의 세계관의 역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자 애초의 당혹스러움이 줄어들면서 이해의 폭이 다소 넓어진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독자는 책을 읽는대서 끝나지 않고 리뷰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의 진정한 책무를 다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자 작가의 작품이 동티가 났다. 그러자 한 간에선 이렇게 품귀현상을 빚으면 뭐 하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중 하나라도 끝까지 성실하게 읽어낼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것이다. 뭐 꼭 틀린 건 아니지만 난 왠지 그게 사실이어도 싫지 않다. 우리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언제 또 원어로 된 노벨문학상 작품을 만져 보겠는가? 책이라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질기고 힘이 세다. 어떤 책은 사 놓은지 10년, 20년 만에 읽게 되는 경우도 있고, 실제로 어떤 책은 나중에 빛을 보고 역주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사 놓기라도 해라 언젠간 읽게 될 테니!

반가운 소식은, 요즘 동네 책방이 의외로 각광을 받는다고 한다. 거기선 여러 가지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람들을 끈다고 한다. (우리 동네는 아직 없다. ㅠ) 그 프로그램 중 빠지지 않는 건 독서 토론일 것이다. 아마도 이런 경사를 계기로 동네 책방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내가 이 작품을 읽은 것도 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이 작품을 읽고 토론한다고 해서 읽은 것이기도 하다. (온라인이라 편한 것도 있지만 약간의 한계도 있긴 하다. 하지만 나름 유용했다.)

노벨문학상을 비롯해 세계 주요 문학상 수상자는 그냥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고 본다. 물론 우리가 입시 치르듯 무슨 상을 바라보고 문학작품을 써서는 안 되겠지만 평소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고 확산되고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토론이 부재해서 지금 국가적으로 얼마나 난감하고 해괴한 일을 겪고 있는지 우리는 너무나 똑똑히 보고 있지 않은가.)

작가가 있기 전에 먼저 독자가 있었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을 통해 우리나라 작가의 위상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단순히 거기에만 머물면 안 된다. 그에 맞는 독자의 품격도 갖춰야 하고, 지금이야말로 독자는 어떻게 문학을 생산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가를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한강 작가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적어도 이 말은 올해 새로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때까지 유효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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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2-24 0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벨상이건 문학상이건 빈손이건, 누가 알아보아 주면서 크게 기리는 책이 아니라 하더라도, 삶을 밝히고 살림을 노래하는 책이 차분히 고루 읽히는 나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이 터전은 아름다운 나라로 나아갈 만하지 싶습니다.

푸나무는 해바람비흙으로 살아간다고 여기는데, 곰곰이 보면 ‘흙’은 “살덩이라는 몸을 입은 사람과 짐승이 죽고 나서 돌아가는 알갱이”이기도 합니다. 해바람비만 있을 적에는 풀이나 나무가 시들시들하고, 흙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풀이며 나무가 푸르고 싱그럽습니다. 사람과 짐승은 “살덩이라는 몸을 입은 삶”일 적에는 풀도 나무도 낟알도 열매도 다른 작은짐승도 먹되, “살덩이라는 몸을 내려놓고 떠날” 적에는 이 몸을 고스란히 흙으로 돌려보내어 푸나무를 살찌우는 얼거리입니다.

그래서 숲일 텐데, 고기밥이 맞거나 풀밥이 옳다고 여길 수 없다고 느껴요. 그저 이 푸른별에서 온숨결은 서로 다른 몸으로 돌고돌면서 하나인 마음, 곧 사랑으로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고기를 먹든 풀을 먹든, 스스로 사랑인 줄 알아보면서 “나를 둘러싼 모든 이웃(사람·짐승·푸나무)”도 고스란히 사랑인 줄 알아차릴 수 있으면, 걱정이나 멍울이나 생채기란 가뭇없이 녹으리라 봅니다.

그나저나 요즈음 ‘한국문학’은 너무 ‘주제(교훈)’에 치닫거나, 목소리(정의)만 높이거나, 글치레(문장기교·수사법)에 얽매인다고 느껴요. 그저 글꽃(문 + 학)이면 될 텐데, 그저 글꽃인 글이 사그라드는 듯싶습니다.

stella.K 님이 쓰신 이 글자락은 ‘서평’이 아닌 ‘문학’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25-02-24 15:35   좋아요 0 | URL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조금 아까도 여기 들어와 다시 보니 글이 다듬어 지지않아 또 고쳐썼습니다. 잘 모르시겠지만. ㅋ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할 다름입니다. 글꽃이면 되겠다는 숲노래님 말씀 저도 깊이 새겨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니르바나 2025-02-24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훌륭한 소설가의 책은 많은 독자를 만들고,
많은 독자는 또 훌륭한 소설가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가 문학계에도 적용되는 것 아닌가요.
올림픽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따면 물론 선수 개인의 영광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한 선수이기에 온 국민이 축하해주는 것 처럼
한 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도 그런 의미로 많은 사람들이 수상을 축하했다고 봅니다.
스텔라님 같은 좋은 독자를 가진 한 강 작가가 부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stella.K 2025-02-24 18:2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니르바나님! 제가 그동안 격조했죠? 죄송합니다. ㅠ 그렇지 않아도 늘 안부가 궁금했는데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작년 말인가, 올초에 차기작 나올거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아직 소식이 없네요. 나오면 니르바나님 일착으로 사실 거잖아요. 저는 신간으로는 책을 거의 안 사는 편이라 저 같은 독자는 한강 작가가 안 좋아 할 겁니다. 니르바나님 같은 독자를 좋아하지.^^

2025-02-28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01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5-03-12 0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벨문학상은 작가 한사람보다 한나라 사람이 다 기뻐하는 일인 듯합니다 한국 작가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은 정말 기쁜 일입니다 한국 사람이어서 원어로 읽을 수 있는, 저는 그런 건 생각도 못했지만 많은 사람이 그것도 기뻐하더군요 노벨문학상 누가 받든 별로 마음 안 썼지만, 지난해에는 달랐네요 좋은 일이 있기도 하지만, 지금 한국은 걱정스럽기도 하죠 좀 나아져야 할 텐데...

stella.K 님 이달 당선작 축하합니다


희선

stella.K 2025-03-15 19:29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저도 희선님과 마찬가집니다. 다음 주 정도면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올모양인데 어떤 결과가 나오든 좀 결과에 순복하는 모습도 좀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요 근래 드라마만 보다가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한마디로 말하면 대만판 '먹방 사랑이 꽃 피는 나무'라고나 할까? 어느 고등학교에 퀸카에게 같은 반 남자아이가 아침밥 조공을 바치는데 그걸 뭐든지 먹기 좋아하는 일명 먹방 소녀가 대신 먹으면서 벌어지는 사랑과 우정을 그린 영화다. 사실 난 요리 영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먹지도 못하면서 눈요기나 하는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다. 근데 여자 주인공이 복스럽게 먹는 장면은 좀 인상적이긴 하다.


대만 영화는 평소 잘 접할 기회가 없어선지 이 영화에서도 좀 낮설었다. 게다가 스토리가 명확히 와닿지는 않았다. 내가 못 따라가는 건지 아니면 영화가 좀 불친절한 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전체적으론 따뜻한 영화다.


솔직히 난 로맨스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건 학교 영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예 자막이 없어도 끝까지 봤을 것 같다. 내용과 상관없이 옛 추억에 젖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


                


배우들이 연기는 잘하는데 인물은 좀 빠진다는 느낌이 든다. 학교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건 역시 학교 축제 장면이다. 내내 보면서 난 왜 저 시절을 즐기지 못했을까, 다시 청소년 시절로 돌아가면 끝내주게 잘 살 것 같은데 역시 하나마나 한 소리겠지? 그래도 돌이켜 보면 추억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다. 헛헛할 때 보면 좋긴 한데 너무 빠져서 보진 마라. 그러다 나도 모르게 먹을 것까지 챙겨 먹으면 책임 못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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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12-23 1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영화가 있긴 하지만 책과 영화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저는 책, 이에요. 영화를 보려면 부담스러워요. 두 시간 정도 꼼짝않고 시청하는 게 저는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영화를 오늘 반, 보고 내일 반, 본다면 연결성에 문제가 있을 것 같고요. 책은 오늘 몇 쪽 읽고 내일 몇 쪽 읽어도 앞 내용이 생각나지 않으면 들춰 보기가 어렵지 않은데 넷플릭스 영화는 앞으로 되감아 보려면 내가 찾으려는 장면이 쉽게 나오지 않는 거예요. 영화관에서 볼 땐 더 어려운데, 긴 대사를 놓칠 때 아 나는 독서 체질이야 영화는 어려워, 그런답니다.ㅋㅋ

stella.K 2024-12-23 19:46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제가 드라마로 옮겨 탔다는 거 아닙니까? ㅎㅎ
책 보는 거하고 비슷하잖아요. 1시간이면 충분하고 누워서도 볼 수 있고.
예전에 저의 선생님도 영화를 끊어서 보지 말라고 하셨는데
전 그렇게라도 보는 게 아주 안 보는 거 보다 낫지 않나해요.
또 언니 말대로 꼼짝 안하고 볼 자신이 없으니까 극장도 점점 멀어지더군요.
코로나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안 갔으면 말 다했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