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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사나이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47
그레이엄 그린 지음, 안흥규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5월
평점 :
어제 분명 나는 <제3의 사나이>리뷰를 쓰려고 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꽤 빠져들었고 몇몇 핵심적인 구절을 발견하며 읽었기 때문에 북마크로 잘 표시해두어 준비도 잘 되었으니까. 그런데 맙소사 내 안에 어떤 뚱딴지가 들어앉았었는지 북마크 해 놓은 곳을 하나하나 뒤적이다가 하나하나 떼어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며 떼어냈는지도 기억이 나진 않지만 <제3의 사나이>로 비롯된 생각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떼어진 북마크를 보며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고 리뷰를 쓸 마음이 도무지 들지가 않았다. 어제는 그렇게 속상해져 칙칙한 날씨탓도 하고 비가왔음에도 맑아지지 않는 공기와 연결하여 중국탓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늦었지만 기억을 되살려 보자.
얼마전 읽은 <브라이턴 록>으로 그레이엄 그린에 홀딱 빠진 나는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제3의 사나이>를 빌려왔다. 고전이고 익히 제목은 들어왔던 작품인데다 두께가 얇은 편이어서 더욱 신났더랬다. 기대이상으로 이야기에 퐁당 빠져들었지만 어쩐지 빠르게 읽을 수는 없었다. 어딘지 낯선 어투,문체가 꺼끌꺼끌 거슬린 편이었다. 옛스럽다고 할 수 있고 익숙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배경은 2차 대전 직후의 오스트리아. 폭격으로 이곳저곳이 폐허가 된 도시에 막 영국으로부터 도착한 주인공 홀리 마틴스.그는 어릴때부터 절친이었던 해리 라임의 초대로 이곳에 오게 됐는데 오자마자 친구가 사고로 숨졌다는 비보를 듣게 된다. 믿고 싶지도 믿기지도 않는 뭔가 찜찜한 그 사고에 대해 직접 추적해 나가는 이야기다. 제목<제3의 사나이>는 새로운 목격자에 의해 밝혀진, 사건현장에 추가로 더 있었다는 '제3의 사나이'를 의미한다. 하지만 읽다보면 중의적인 의미도 포함한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 또 다른 의미는 읽으실 분들을 위해 비밀로!
당시 2차 세계대전 직후라 물자가 극도로 부족했던 여건으로 암거래가 성행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극히 논픽션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병원에서 의료물품 역시 넉넉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잇속을 챙기려는 자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이런저런 도덕적인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비극은 여기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거기에 더해 오스트리아의 특수한 상황이 있었다. 연합국의 공동 점령으로 소련,미국,프랑스,영국군이 한 명씩 한 조를 이뤄 정찰을 했고(이들은 주로 독일어로 대화했다고 나오는데 군인들이 다 독일어에 능통할리도 없고 소통이 힘들었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거기 비롯된 불안하면서도 재밌는 에피소드도 등장한다.그리고 군인들은 한 자리에서 각 나라의 특징을 보여준다. 4개국이 모였을때 유머와 비슷하다.) 각 국이 점령한 지역도 분리되어있었다. 그레이엄 그린은 정보부 출신으로 이러저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위기의 시대를 마주한 인간의 딜레마를 스릴러로 그려낸 것이다.
북마크를 무심코 떼어버려 속상한 마음에 책을 바로 반납해 버렸기 때문에 인용문을 몇 개 밖에 건지지 못했다.하지만 작가의 삶에 대해 궁금함은 남아 뒷편에 나온 그의 이야기를 저장해뒀다. 몇 자 옮겨본다.
P.270 그린은 그의 자전적 작품<도피의 수단>에서 인간의 처지로서는 선천적인 광기,우울증,공포적 두려움을 모면할 수 없다고 기술한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에서 헤어나기 위해서 인간들은 글쓰기,작곡,그림 그리기,기타 무슨 일이든 자기의 정신을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그런 고통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그가 취한 것은 여러 방법 중 글쓰기였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인생을 보는 눈에서 시작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4년 후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북플의 다이아몬드'스콧'(scott)님에 의하면 그린은 각본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무엇보다 폐허가 된 도시의 구조물들이 소설과 흡사한데 원작과 이곳저곳에서 줄거리상 차이를 보이지만 작품을 이해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