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보고 오랜만에 빅스비 불러 봤는데
대답이 없다. 내가 이름을 바꿨을지도 모른다.
이럴수가...

"안녕, 시리."
"네, 말씀하세요."
"질문이 있어."
"물어보시면 대답해드릴게요."
"질문이 뭐야?"
"흥미로운 질문이에요. 에릭."
그리고 시리는 말이 없다. 한마디도. 휴대전화를 흔들어본다.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 시리는 내가 자기를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며, 난 그걸 용인할 의사가 없다. 
나는 말뜻에 더 초점을 맞춰본다.
시리야. 질문의 정의가 뭐야?"
"정보를 구하기 위해 쓰거나 발화한 문장입니다."
정확한 것 같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형편없이 불완전한 대답이다. 소크라테스라면 절대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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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18 15:3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 급한일이 있어서 시리
소환 했더니 음성인식이 종료 되었다고
공손하게 망언을۴(๑ꆨ◡ꉺ๑)

미미 2021-05-18 15:47   좋아요 4 | URL
아 ㅋㅋㅋㅋㅋ저 빅스비 결국 찾았어요! 스콧님은 그래도 잘 사용하셨었나봐요^^*

mini74 2021-05-18 18: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방금 시리야 하고 불러봤어요ㅎㅎ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단호하게 대답을 하네요 ㅠ

미미 2021-05-18 18:33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가끔 같은질문 반복하면 뭔가 꿍한듯이 다르게 대답 할때 있어요. 얘들이 좀 냉정한거 같애요ㅋㅋㅋ
 

소크라테스는 ‘어떻게‘라는 질문에 관심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어떻게 하면 정의를 실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알 수 있지?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동료 시민들이 조각상의 제작이나 민주주의의 실천 같은 면에서는 더 나아지려는 의지가 대단하면서,
왜 이런 종류의 질문에는 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지 이해할 수없었다.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아테네인들은 모든 것을 개선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 모든 것에 자기 자신은 포함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그 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평생의 사명으로 삼았다.
- P50

이 결심이 철학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이제 철학은 우주에 대해 불확실한 추측을 하는 학문이 아니다. 철학은 삶,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한 것이고, 어떻게 하면 이 삶을 최대한 잘 살아내느냐에 관한 것이다. 철학은 실용적이다. 필수적이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처음으로 철학을 하늘에서 끌어내려 마을에 정착시켰고, 철학을 사5909)람들의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
- P50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철학자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추종자를 모으는 데 관심이 없었다(제자들이 다른 철학자에대해 물으면 소크라테스는 기꺼이 알려주었다). 그 어떤 지식이나 이론또는 신조도 남기지 않았다. 두꺼운 책을 출판하지도 않았다. 

사실 단 한 글자도 쓴 적이 없다. 오늘날 우리가 소크라테스를 아는것은 주로 그의 제자 플라톤이 남긴 얼마 안 되는 고대의 자료 덕분이다.
- P50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의 사상‘ 같은 것은 없다. 

소크라테스의사고방식만이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수단만 있을 뿐,
그 끝은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테네의 잔소리꾼을 기억하는것은 그가 알았던 지식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 지식을 알게 된 방식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지식보다 방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 P51

마음을 들여다보는 진정한 창문은 눈이 아니라 질문이다. 볼테르가 말했듯,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대답이 아닌 질문을 보는 것이다.
- P54

소크라테스는 최초의 심리상담가였다. 그는 질문으로 질문에답하곤 했다. 하지만 심리상담가와 달리 소크라테스는 시간당 비용을 청구하지 않았으며(자기 수업에 단 1드라크마도 받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이제 시간이 다 된 것 같습니다" 라는 말도 절대로 하는법이 없었다. 그에게는 늘 시간이 더 있었다.

《향연》에서 한 친구가 말한 바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심지어 혼자 있을 때도 한곳에 계속 머물렀다. "그는 가끔 멈춰서 그곳이 어디든 그 자리에 서 있곤 했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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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18 15: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들여다보는 진정한 창문은 눈이 아니라 질문이다. 볼테르가 말했듯,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대답이 아닌 질문을 보는 것이다.]
오늘의 밑줄 쫘악~ʚ(>ᴥ<)ɞ

미미 2021-05-18 15:48   좋아요 2 | URL
저도 넘 좋았던 문장!ㅋㅋ제 마음에도 밑줄 쫘악^^♡
 

이 시기, 즉 기원전 7000년경 아프가니스탄 고원의 가장자리에 인도 문명의 씨앗이 뿌려졌다. 그래서 발루치스탄(이란 남동부와 파키스탄 남부의 산악지대)의 황무지에서 이루어진 획기적인 발견이 지난 100년 동안의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 중 하나로 꼽힌다.
- P32

인도라는 이름의 기원인 인더스강.
티베트의 카일라시산 근처에서 솟아난 이 강은 카이베르고개 밑에서 인도ㅡ아리아인과 마주쳤다. 인더스라는 이름은 페르시아 힌두어로 ‘경계선 개울‘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
- P33

엄청나게 큰 신축 휴게소들이 번쩍이는 불빛 속에 궁전처럼 서 있고, 대규모 산업도시가 라호르에서 물탄에 이르기까지 길가에 점점이 흩어져 있다. 이것이 새로운 파키스탄의 모습이다. 10년 전 내가 들렀다 간 뒤로 급격히 현대화된 나라. 파키스탄은 현재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다. 1947년에 민족주의와 종교 때문에 인도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지금도 인도아대륙의 일부이자 인도 문명의 계승자다.
- P37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유적은 인도아대륙에서 역사가 시작된 시기를 밝혀주었다. 이 두 유적 덕분에 인도에 도시가 생겨난 시기가 기원전 3000년으로 앞당겨졌다. 

기자의 피라미드가 아직 지어지지도 않은 때였다하라파 유적이 발굴되기 전에 유럽에서는 인도 문명이 외부에서 수입된 것이라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었다. 지중해의 고전 문명과 근동의 유대-기독교 전통에 고대 이집트와 바빌론 문명이 조금 섞여서 인도 문명이 탄생했다고 본 것이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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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18 1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두권 겹쳐읽기 인가요? 역시 예측 불허에요ㅎㅎ 요새 인도를 배경으로 한 책(저지대)을 읽어서 이 책도 관심이 가네요. 근데 막상 다른책들 주문 ㅜㅜ

미미 2021-05-18 13:15   좋아요 2 | URL
인도 흥미롭죠?! 약간 교과서적 느낌이라 지루하실수도 있어요. 저도 그래서 오래두고 조금씩 읽어나가려구요. 나중에
또 끌리면 확 주문하세요ㅋㅋㅋ 뒤에 책보인거 새파랑님 댓글본후 알고 막 웃었어요ㅋㅋㅋㅋ

새파랑 2021-05-18 13:21   좋아요 2 | URL
이 책은 미미님 평점보고 읽는걸로 해야겠어요 ㅋ 무임승차 ^^

미미 2021-05-18 13:23   좋아요 2 | URL
네!!ㅋㅇㅋ
 

소크라테스는 티끌이 아니었다. 관념이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었다. 숨을 쉬고, 걷고, 똥을 싸고, 섹스를 하고, 코를 후비고, 와인을 마시고, 농담을 하는 사람.

못생긴 남자이기도 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아테네에서 가장 못생긴 남자였다. 코가 납작하고 넙데데하다. 입술은 크고 두꺼웠으며, 뱃살이 두툼했다. 소크라테스는 대머리였다. 게처럼눈이 옆으로 쭉 찢어져서 주변 시야가 아주 좋았다. 소크라테스는 다른 아테네인보다 아는 게 더 많았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본인은 자신이 아는게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그가 더 많은 것을 봤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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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5-17 23: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거 저도 읽는데 잼있네요 ㅎㅎㅎ
처음 얼마간은 거의 페이지 전체를 줄만 그은 것 같아요 ㅎㅎㅎ

미미 2021-05-17 23:55   좋아요 2 | URL
아 정말요?ㅋㅋ저는 첨엔 긴가민가 했다가 이제 슬슬 재밌어지네요! 초딩님과 함께 읽는다니 신납니당^^*ㅋㅋㅋ

고양이라디오 2021-05-20 1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읽어볼래요! 읽고 싶은 책 추가용ㅎㅎㅎ

미미 2021-05-20 11:39   좋아요 0 | URL
잘 맞으셨음 좋겠어요ㅋㅋㅋㅋ
 

우리의 생각은 화물열차의 화물 칸처럼 하나하나 앞뒤로 연결되어 있다. 생각은 서로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선디 아이스크림에 대한 것이든 핵융합에 관한 것이든, 모든 생각은 이전생각에 끌려가고 다음 생각을 끌어당긴다.
- P41

감정도 열차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주기적으로 한바탕 찾아오는 나의 우울은 난데없이 나타난 것처럼 보이지만가만히 멈춰 서서 그 근원을 잘 살펴보면 숨은 원인을 찾게된다. 나의 슬픔은 바로 앞의 생각이나 감정에 원인이 있고,
이 생각이나 감정은 그 이전의 것에, 그 이전의 것은 1982년에 어머니가 한 말에 원인이 있다. 생각이 그렇듯이 감정도 결코 느닷없이 나타나지 않는다. 열차처럼 앞에서 감정을 끌어당기는 힘이 늘 존재한다. - P42

"우리 문화는 일반적으로 질문을 경험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 P43

나는 다른 철학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철학자들은 거의 외계인에 가까운 이질성이 있다.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조차도 자신을 부적응자로 여겼다. 견유학파의 창시자인 디오게네스는 괴짜 중의 괴짜였다. 그는 커다란 통 안에서 살았고 사람들 앞에서 자위를 했으며 고대 아테네의 선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 P46

소크라테스에게 가장 최악의 무지는 지식의 가면을 쓴 무지였다. 편협하고 수상쩍은 지식보다는 폭넓고 솔직한 무지가 더 나았다.
소크라테스가 인간 탐구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 오늘날에도여전히 철학적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바로 그것은 이 순진한 무지, 철학자 칼 야스퍼스의 표현에 따르면 이 "놀랍고 새로운 천진난만함"을 도입한 것이다.
- P49

소크라테스는 첫 번째 철학자가 아니었다.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데모크리토스, 탈레스 등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많은 철학자가 있었다. 이들의 시선은 하늘을 향했다. 우주를 설명하고자연의 신비를 꿰뚫어보려는 노력에 매진했다. 결과는 다양했다.
여러 방면에서 뛰어났던 탈레스는 우주의 모든 물질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확신했다. 소크라테스처럼 이 철학자들도 질문을 던졌지만 이들의 질문은 주로 ‘무엇을‘과 ‘왜‘에 관한 것이었다. 만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지? 왜 낮에는 별들이 보이지 않지?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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